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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사를 바꾼 와인 이야기 ㅣ 세계사를 바꾼 시리즈
나이토 히로후미 지음, 서수지 옮김 / 사람과나무사이 / 2025년 6월
평점 :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한 주관적인 리뷰입니다."

세계사를 바꾼 이야기 시리즈를 좋아하는 사람이기에 와인 편 또한 재미있었다.
사람들에게 활력을 불어넣어 주고 음식의 풍미를 높여주는 알코올음료로 사랑받는
와인을 고대에는 신이 내린 은총으로 최고의 약으로 여겼다.
와인이 신의 음료로 추앙받고, 포도나무를 생명의 나무로 숭배했던 이유는
'발효' 때문이다. 포도 주스를 그대로 두면 산화해서 마실 수 없지만
발효라는 화학 작용이 일어나 알코올이라는 새로운 물질로 부활하면
훨씬 오래 보존하고 일반적인 주스와 달리 장기 저장도 가능했기에
와인을 생명의 재생을 가능케 하는 숭고한 음료로 여겼다.
죽었던 액체가 다시 살아나는 신비와 기적은 와인에서 나타나는 현상이었기 때문에
죽었다가 다시 살아나는 와인은 유대교에서 파생한 기독교에서도
재생이라는 기적의 사상을 이어받게 되었단다.
고대 오리엔트 세계에서 지배자와 기득권층이 광대하고 비옥한 토지를 독점했기 때문에
피지배층에게 포도 재배와 와인 양조를 명령하고 거기서 나오는 모든 이익과 혜택을 독차지한 결과
와인은 지배층의 음료였다. 그런데 고대 그리스인들이 신분의 지위의 높고 낮음에 관계없이
와인을 즐기고 수준 높은 와인 문화를 발전시킬 수 있었던 것은 독특한 지형 때문이었다.
메소포타미아나 이집트와 달리 고대 그리스는 큰 강이 없을 뿐 아니라 비옥한 평야도 없고
산이 바다를 향해 내달리는 독특한 지형이라 지배 계급이 모든 권력을 손에 쥐고 토지를 독점한 채
폭력을 행사하기가 어려웠다. 좁은 평야를 소유한 평민 계급의 농민들이 천민이나 전쟁 포로를
노예로 부리며 농사를 지어 풍요로운 삶을 누릴 수 있었다.
지형 특성상 절대군주가 존재하기 어려워서 민주 정치도 와인 문화도 발전한 것이다.
흥미롭게도 그 시대에는 물을 타지 않은 와인을 품위가 없고 야만인들에게나 어울리는 음료로 여겼는데
당시에는 와인이 쉽게 산화해 1년도 맛을 유지하기 어려워 와인에 뭔가 새로운 맛을 추가하기 위해
여러 가지 식재료를 섞어 마시는 문화가 성행했기 때문이라니 신기했다.
고대 그리스식 연회에서 와인은 사람을 자유롭게 하고 달변가로 만들어주는 지적 윤활유 역할을 했고,
와인이 다른 알코올에 비해 사람을 지적으로 만드는 묘한 특색이 있는 것은 와인 속 타닌의 효능과 관계있다.
기독교의 급속한 확산은 와인의 세계화로 이어진다.
수도회는 와인을 독창적으로 발전시킨 요람이자 인큐베이터가 되었다.
게르만족의 대이동과 전쟁으로 인해 포도밭이 짓밟혀 서유럽의 와인 수난 시대가 초래되었다
게르만족이 시나브로 와인 맛을 알아가기 시작한 덕분에 포도밭이 다시 살아나게 된다니
역시 술맛을 알게 되면 빠져나올 수 없나 보다.
음주를 즐기지 않고 과음을 경계했던 카롤루스 대제는 왕국을 안정시키기 위해
기독교와 함께 와인을 적극적으로 이용하기도 했다. 교회를 중심으로 와인 생산을 독려하고
와인 산업을 발전시켜 일자리를 창출하는 과정에서 성정이 거칠고 다루기 힘든
게르만족을 포도 농사와 와인 생산에 적응시켜 온순한 기질로 변화시키는 게
꽤 훌륭한 작전이었던 것 같다.
프랑스의 수도가 파리가 된 이유도 와인 때문이라니 흥미로웠다.
지금의 파리 주변에는 포도밭이 대부분 자취를 감추었지만
카페 왕조 시대 때 파리 주변은 훌륭한 포도 와인 생산지였다.
카페 왕조는 왕실 소유의 포도밭에서 생산되는 와인을 배를 이용해 우선 판매하여
막대한 이익을 차지해 왕실 재정을 확충했다. 보관 기술이 좋지 않던 시절,
와인 우선 판매권을 선점하여 독점에 가까운 막대한 이익을 차지할 수 있으므로
와인을 생산 판매하기 쉬운 파리가 수도로 채택된 것이다.
가난한 자연인을 표방한 베네딕도 수도사들에 의해 만들어진 와인이
비싸고 화려한 부르고뉴 와인의 모태라는 것,
아비뇽 유수로 울며 겨자 먹기로 시작한 프랑스 생활이 와인 덕분에 쾌적하고 안락했을 만큼
와인을 사랑한 교황 클레멘스 5세 이야기,
프랑스 혁명의 기폭제가 된 와인 입시세 등 인간의 욕망과 뒤얽힌
지적인 신의 음료 와인 이야기 너무나 흥미진진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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