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생물학자이자 과학 저술가로서 '우리 시대 가장 탁월한 젊은 과학 작가'로 평가받는
라일리 블랙의 과학적 사실에 기반한 서사적 글쓰기가 빛을 발하는 책이다.
수억 년에 걸친 식물과 생명의 관계를 하나의 장대한 이야기로 엮어내며
식물이 어떻게 지구의 운명과 생명의 방향을 바꾸어왔는지가 정말 다큐처럼 눈앞에 펼쳐졌다.
미국 국립 과학교육센터 선정 <다윈의 친구상> 수상작이자,
아마존 편집진 선정 최고의 논픽션으로 올해의 주목할 과학 저술다웠다.
어디에나 존재하고 우리 삶에 너무나 중요해서 우리가 그들의 삶에 더 이상
관심을 기울이지 않게 하는 것이 식물의 가장 놀라운 재주라는 말이 공감이 되었다.
모든 생물학자가 각자 하나씩의 종을 선택해 평생을 바쳐 연구한다 해도
여전히 많은 것이 미지의 영역으로 남을 만큼 다양하고 특이한 식물은 끊임없이 상호작용한다.
날씨, 기후, 곤충의 섭식, 심지어 우리의 미적 감각의 진화들이 복잡하게 교차하는 지점에 놓인
생명체의 역사는 식물 없이는 불가능했다.
지구가 푸른 행성인 것은 식물을 비롯한 광합성 생명체들 덕분이다.
고대 광합성 생명체들이 이미 1억 년 이상 바다와 땅 사이 경계에서 살아왔고,
고대 홍조류들이 변형되어 식물이 출현할 수 있었다.
식물의 광합성으로 대기 중에 산소가 많아지면서 불이 쉽게 일어날 수 있었다.
공기 중 산소가 10 이하면 연기나 그을음 정도만 만들 수 있다.
아직 불에 탈 만한 숲은 없었지만, 산소 농도가 점차 높아지면서 식물은 천천히
그 가능성을 만들어가고 있었다. 생애 주기에 불이 반드시 필요하도록 진화한
식물이 존재하는 까닭이다.
산소의 폭증은 새로운 가능성을 연 만큼 새로운 문제들도 야기했다.
소고도 과하면 중독을 일으킬 수 있고, 동물의 중추신경계에 영향을 미칠 수 있다.
몸집이 커지면 이런 단점들을 상쵀할 수 있으므로 석탄기 거대 동물들이 등장할 수 있었다.
과거엔 잠자리가 너무 커서 놀랐는데, 산소 과잉에 예민하지 않게 적응한 것이라니 신기했다.
적응을 마친 잠자리에게 산소 과잉은 극복해야 할 문제가 아니라
숲속을 더욱 힘차게 날아다닐 수 있는 이점이 되었던 것이다.
곤충이 크게 성공할 수 있었던 이유 중 하나가 엄청난 속도로 번식하기 때문이다.
그 덕분에 잠재적으로 유용한 변이가 빠르게 나타나고 잃어버린 기능을 곧바로 대체할 수 있다.
그 결과 백악기 말 대재앙에서 살아남은 강인한 생존자들의 토대가 되어
딱정벌레와 애벌레, 그리고 끝없는 허기를 지닌 수많은 절지동물이
한때 사라졌던 역할을 다시금 이어갈 수 있었다.
다양한 곤충이 진화의 시간 속에서 같은 역할을 되풀이하며 살아왔고,
그들의 모습은 주변 생명체들이 만들어낸 기회에 맞추어 변해왔다.
식물들이 발달시킨 방어수단은 속의 수만큼이나 다양하다.
어떤 식물은 조직 속에 해로운 화합물을 넣어 곤충에게 독성을 나타내거나 중동을 일으켜
다른 먹이를 찾도록 만들거나 적어도 먹는 속도를 늦추게 한다.
두꺼운 왁스층 같은 구조적 방어는 아예 곤충들이 잎 조직을 뚫지 못하게 막아버리기도 한다.
각 식물이 완전히 홀로 곤충들의 공격을 막아내지는 않는다.
어떤 식물들은 화학 신호를 방출해 같은 종의 이웃 식물들에게 경고 신호를 전하고
미리 방어 물질을 만들도록 유도한다. 심지어 이 신호는 곤충의 천적들을 불러들이기도 하는데
이는 식물과 곤충 포식자 모두에게 이득이 된다.
주고받음은 자연히 균형이라기보다 길게 이어지는 진화적 대화에 가깝다.
새로운 식물 방어수단은 우연히 그것을 회피할 수 있는 곤충이 더 잘 번성할 수 있게 하고
이는 다시 더 강인하고 저항성 있는 식물종의 등장을 촉진한다.
이렇게 새로운 변이로 양쪽은 균형 아닌 균형을 이어가며 공존하고 있다.
식물은 땅속 침전물과 암석에도 변화를 일으키는데,
토양 물질들 중에서 칼슘, 인 같은 원소들을 흡수한다.
원소들이 새로운 방식으로 재분배되고 지구 생명의 본질을 바꿔놓았다.
기후가 바뀌면 식물도 변하고 그 식물에 의존하는 모든 생명도 변한다.
이전의 풍부한 다양성이 성공을 보장하지는 않는다.
식물은 놀라울 만큼 민감한 존재이다. 평생 뿌리를 내린 채 그 자리를 떠날 수 없기에
굶주린 초식동물을 피하거나 힘으로 쫓아낼 수 없다.
그래서 살아남기 위해 식물들은 위험을 감지하고 공격자를 몰아내지는 못하더라도
수많은 잎이 남긴 상처를 재빨리 회복시킬 수 있는 방법을 진화시켜 왔다.
진동을 감지하는 능력도 그중 하나라고 한다.
다른 나무들이 화학신호를 통해 초식동물이 다가왔음을 서로 알리듯
진동 역시 나무에 경고 신호가 될 수 있다니 신기하였다.
식물은 먹이뿐 아니라 건축자재도 될 수 있어서 수백만 년의 공진화 과정을 거치며
지구라는 정원에서 이뤄지는 관계는 더욱 복잡한 상호작용으로 확장된다.
어떤 식물은 다른 종들이 나무에서 가져간 것을 다시 되찾아가도록 진화하기도 했다니
알면 알수록 신비로운 존재인 것 같다. 식물과 동물은 서로의 그늘이 되고
서로의 형태를 만들며 단순히 지속되는 관계로 통해 서로를 존재하게 한다.
가장 사소한 선택과 우연조차도 울려 퍼져 자연의 본질을 바꿀 수 있다니
오늘 내가 선택한 행동에 대한 막중한 책임감이 느껴졌다.
12억 년 식물과 지구가 함께 써 내려간 생명의 장대한 연대기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