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 독일 철학의 아이콘으로 불리는 철학자 리하르트 다비트 프레히트가
인간은 동물을 어떻게 인식하고 있는지 냉철하게 묻고 있다.
인간 중심적 사고를 해체하는 철학적 성찰이 돋보이며,
동물의 권리에 대해서 곰곰이 생각하게 만드는 책이었다.
우리가 얼마나 많은 편견과 인간 중심의 생각을 하고 있는지 놀라울 지경이었다.
인간을 인간으로 만드는 것이 과연 무엇일까에 대한 물음에 쉽게 답할 수가 없었다.
인간 뇌의 크기와 속성이 현대 인간과 뛰어난 문화를 탄생시켰다고 하지만,
인간의 발달사에서 몸의 크기와 보행방법, 뇌의 성장 같은 유전적 변화와
도구 생산 같은 문화적 성취는 나란히 진행되지 않았다.
일부 고인류학자들은 인간의 정체성을 사냥꾼으로 규정하는 유혹의 빠졌다.
오늘날 존재하는 유인원은 간혹 작은 영양과 다른 원숭이를 잡아먹는 침팬지를 제외하면
모두 채식을 한다. 그러다 보니 사냥 능력에 기초해서 인간을 영장류의 제국에서 떼어내는 것은
꽤 매력적으로 비쳤을 것이다. 유인원의 몇몇 초기 종 대표자들은 점점 입지가 좁아지는 숲을 떠나
초지로 피신했을 때, 채식성에서 잡식성으로 바뀌었다.
사바나에는 영양분이 풍부한 식물과 열매 견과류가 별로 없었고
커다란 딱정벌레와 개구리 도마뱀, 뱀, 작은 포유류, 땅바닥에서 생활하는 조류가 있었고
그것이 주요 식량원이 되었다. 일각에서 주장하는 우리 조상처럼 건강하게 사는 법,
석기시대의 식이요법을 따라야 한다면 실제론 열매가 아니라 곤충과 개구리, 뱀을 먹어야 하지만
미래 식량 곤충에 대해 거부감이 많은 걸 보면 인간의 편견은 참 이상하다 싶었다.
익히지 않은 생고기는 송곳니 없이는 찌거나 자르거나 먹지 못한다.
고기 섭취는 70만 년 전 이전에는 그 증거가 남아있지 않은 불 피우기 기술이 등장하면서부터
비로소 가능해진다. 단백질을 다량으로 함유한 음식이 우리 조상들의 뇌 성장에 촉매제가 되었다는
사실은 학계의 일치된 의견이다. 그런데 그 단백질은 매머드가 아닌 곤충이라고 생각하는 것이 합당하다.
대형동물 사냥이 시작되었을 즘에 호모사피엔스의 뇌가 이미 오래전에
오늘날의 무게에 도달한 상태였다. 실제로 대형동물을 사냥한 시기는 10만 년 전으로 추정되며
사바나에서 섭취한 다량의 단백질 함유 음식이 우리 조상을 더 똑똑하게 만든 요소라고도 할 수 없다.
육식만 하지만 특별히 똑똑한 동물이라고 할 수 없는 악어나 사자 독수리 같은 맹수만 보아도 알 수 있다.
보디빌딩을 하는 사람이 단백질 섭취를 한다고 해서 더 똑똑해지지 않는 것과 비슷하지 않을까.
우리 조상이 더 똑똑해진 이유는 단백질 때문만은 아니었고, 사냥 때문만도 분명 아니라는 것이다.
사냥 신화는 그리 믿을 만해 보이지 않는다.
사냥 신화는 대형동물 사냥이 남자 원시인들에게 상호 간의 협력을 북돋우고
언어와 대뇌를 발전시키고 하나의 무리로 결속시키고 먹이를 서로 나누는 데
핵심적인 역할을 했다고 강조하지만 사실은 뜬구름 잡는 이야기 같다.
사실 우리의 뇌는 다른 모든 육상 척추동물의 뇌와 구조와 다르지 않다.
심지어 유인원과 인간의 뇌는 거의 똑같고 크기만 다를 뿐인데
절대적으로나 상대적으로나 인간의 뇌가 큰 것도 아니다.
몸집과 뇌의 비율로 보면 딱쥐나 코끼리주둥이고기 같은 몇몇 귀여운 동물이 인간을 능가한다.
고차원의 뇌기능이라고 할 수 있는 의식, 지각, 사고, 표상을 담당하는 중추부위도
코끼리, 돌고래, 그리고 다른 고래들이 더 크다.
원숭이와 인간 태아 사이에 차이는 미미하지만,
인간 태아는 원숭이에 비해 느리게 성장하기에 뇌의 성장 시간도 길다는 점이 다르다.
인간 발달에서 느림이 바로 핵심이라는 사실이 흥미로웠다.
인간은 평생 끝까지 성숙하지 않는 원숭이 태아와 비슷하고 그로 인해 장점도 많다.
성인이 된 뒤에도 원숭이에게서는 유년기에만 발견되는 특징이 여전히 나타난다는 것이다.
무엇보다 강한 놀이 욕구와 다른 동물과는 비교가 안될 정도로 많은 호기심,
배움에 대한 욕구 말이다. 호기심과 끊임없는 배움이 정말 중요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인간은 자신의 의식과 똑같은 것이 나타날 때만 동물에게 의식이 있다고 여기는 경향이 있다.
일부일처제, 위생, 분업 같은 행동방식이 필연적으로 인간만의 의식에 속하는 것처럼 말이다.
고대에 이미 인간은 스스로를 동물과 구분 짓는 두 가지 가능성을 알고 있었다.
자신의 단계적으로 생명의 최고 수준에 오른 존재로 정의하거나,
동물이 완전히 대립되는 존재로 규정한 것이다.
동물과 인간을 구분하는 데 언어가 중요하다고 하지만, 사실 풍부한 어휘와 비유는
소통의 필요성에 따른 것이라기보다는 여러모로 복잡한 상황에 대처하는 과정에서 생겨난 것이다.
언어가 의식에 영향을 준다는 것은 논란의 여지가 없지만,
그건 비단 인간언어만이 아니라 원숭이의 소통에도 해당한다.
인간은 자기 언어의 힘을 과대평가하는 경향이 있다.
우리 삶을 구조화하는 것이 언어라고 생각할 때가 많아서
인간과 비슷한 언어를 갖고 있지 않은 생물은 원시적이라고 생각하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