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술관에 고즈넉한 분위기를 좋아하기 때문에 해외여행할 때마다
늘 미술관에 시간을 투자하는 편이다. 그런데 어쩌다 보니 국내 미술관은 많이 가보지 못했다.
여유 시간이 많지 않다 보니 짧은 휴가는 그냥 집에서 쉬고 일주일 이상의 휴가가 허락될 때는
해외여행을 다니다 보니, 국내 미술관은 사실 몇 군데 밖에 가보지 못해 국내 미술관 완벽 탐방기
라고 해서 기대가 되는 책이었다.
현대미술은 이해하기가 참 난해하여 쿠사마 야요이의 거대한 땡땡이 호박이 왜 그렇게 유명한지
이해하지 못하다가 작품 설명을 듣고 쿠사마 야오이라는 작가를 다시 보게 되었던 기억이 있다.
환공포증이 있는 사람들에게는 공포스러울 정도로 작가가 왜 그렇게 땡땡이에 집착할까라는
생각을 하다가 쿠사마의 어린 시절 이야기를 듣고 이해가 되었다.
광기와 예술의 중간에 서 있는 사람이라는 수식어가 늘 따라붙는 쿠사마는
외도를 밥 먹듯 하는 아버지와 이로 인한 스트레스를 딸에게 푸는 엄마로부터
심한 학대를 받다가 정신적인 문제까지 발생했다. 그런 어린 쿠사마에게 엄마는 치료 대신
매질을 했고, 그 결과 편집증과 강박에 시달리다가 빨간 점이 나타났다가 사라지다
점점 일상을 점령했고, 결국 자기 몸까지 점으로 뒤덮이는 환각 속에서 엄청난 공포를 느끼게 된다.
환각에 시달리던 어린 쿠사마는 호박 도매업을 하는 아버지로 인해 늘 쌓여있던 호박을 통해
위로를 받았다. 호박을 친구 삼아 마음을 열기 시작했고 호박에 자기가 겪은 트라우마를 점으로 그렸다.
호박의 점들에 자신을 투영했다면 <무한 거울의 방>에는 내면세계를 담았다고 한다.
점들 사이에서 자아가 소멸하는 공포를 표현했는데, 아이러니하게도 관람객은 공포보다는
그 아름다움에 현혹된다니 참 신기하다.
SNS 시대의 인증샷에 최적화된 작품이라고 단순히 생각하다 작가의 생애를 알고 나면
작품이 또 다르게 보이는 걸 보면 미술적 인간이란 결국 타인이 고통과 지나간 시간에
깊이 공감할 줄 아는 성숙한 존재의 다른 이름이라는 말에 참 공감이 된다.
국내에서 가장 비싸게 거래된 작품의 주인공은 김환기로 미술계에서는
김환기의 라이벌은 김환기밖에 없다고 말한다. 추상 미술을 국내에 들여온 1세대 추상 화가로
가장 한국적이면서도 가장 세계적인 작가로 평가되는 최고의 작가이지만,
저자가 그의 작품도 작품이지만 그의 아내 김향안에게 깊은 경외심을 가지고 있다는 말에
나 또한 공감이 됐다. 두 사람의 러브 스토리는 너무도 유명하다.
한 생애에 두 명의 천재와 부부의 연이 닿았던 여자 변동림은 천재 시인 이상의 부인이었다.
이상이 결핵으로 사망하는 바람에 어린 나이에 사별자가 되었고,
김환기는 명랑하고 지적인 변동림을 보고 한눈에 반했다.
애가 셋이나 딸린 김환기와의 재혼을 가족들이 반대했지만,
변동림은 김환기의 성과 그의 아호를 이름으로 한 김향안으로 개명하고 또 다른 그가 되었다.
아내에게 아호를 준 김환기는 수화라는 새로운 아호를 지었고,
두 사람은 결혼하고 고향에 전답을 팔아 성북동에 거처를 마련하고
수향산방이라는 보금자리를 마련했다.
수화와 향안에서 따온 이름은 현재 환기미술관 달관의 별칭이기도 하다.
대체 자신의 그림이 세계 어느 수준일 수 알 수 없다는 남편의 푸념을 듣고,
곧장 프랑스 대사관으로 달려가 비자를 신청하고 혼자 파리로 날아가
프랑스어와 미술평론을 공부하며 남편의 전시와 아틀리에를 준비하는 아내라니,
지금 시대에도 쉽지 않은 도전이었을 일에 단 한순간도 주저함이 없었던 여성이라니
정말 대단한 사람이다. 향안은 사랑이란 지성이고, 지성으로 이해하고 지성으로 교류하며
지성으로 믿어야 오래갈 수 있다고 했다. 함께 성장해야 함부로 시들지 않는다며
자신의 성장이 남편의 성장을 이끌고 남편의 성장이 또 자신을 성장하게 하면서
서로에게 점점 잘 맞는 반쪽이 되어가는 일,
함께 성장하는 일이 사랑이라고 생각한 멋있는 여성이었다.
그래서인지 남편이 뇌출혈로 갑자기 세상을 떠난 후, 전 세계를 다니며 남편의 그림을 알리는 데
남은 인생 30 년을 모두 쓰며 사랑을 완성한 한 여인의 삶이 더 숭고하게 느껴졌다.
사람 하나 사라져 없을 뿐인데 우주가 텅 빈 같다는 그녀의 말에 가슴이 먹먹해지며,
인생에 그런 사랑을 경험하는 것이 얼마나 큰 축복일지 참으로 부러워졌다.
세계적으로 세 곳의 이우환 미술관이 있다. 안도 다다오가 설계한 일본 나오시마 이우환 미술관,
프랑스 아를에 이우환 아를, 그리고 부산 시립미술관 이우환 공간이다.
다행히 이우환 공간이 부산에 있기에 그의 작품은 친숙하긴 하지만,
나에겐 여전히 어려운 작품이기도 하다.
그의 작품엔 여백이 중요한데 동양화에서 강조하는 여백의 의미와는 사뭇 다르다.
그에게 여백은 그린 것과 그리지 않는 것이 부딪혀 일어나는 총체적 울림이다.
그림 자체가 작품이라기보다는 그 공간에서 느껴지는 울림이 작품의 본질이라고 말한다.
같은 속성을 가진 물질이라도 그것이 놓인 시간과 공간에 의해 혹은 여러 가지 관계 속에서
그 의미가 달라진다. 이우환은 돌에 있는 철을 추출해 철판을 만들었으니 돌과 철판은
그 본질이 다르다고 할 수 없다고 말한다. 같은 본질을 가졌지만 가공되지 않은 자연물과
가공품인 철판을 만나게 해 둘 사이에 팽팽한 긴장감이 생겼고,
하얀 벽과 인공조명 아래 두 물질은 전시실이란 공간을 만나
본래 갖고 있는 물성과는 다른 느낌을 자아낸다.
물질과 공간의 관계가 만들어내는 올림인 것이다.
그의 작품 중 가장 인기 있는 점과 선 시리즈는 존재와 소멸, 생명의 유연함을 표현한 것으로 유명하다.
캔버스에 진한 점을 찍은 다음 물감이 소진될 때까지 계속해서 점을 찍어나가고
더 이상 물감이 묻어나지 않으면 다시 물감을 묻혀 점을 찍어
생성과 소멸이 무한히 반복되는 걸 바라보고 있으면 정말 고요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