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0주 이야기 - 생명의 잉태와 탄생에 이르는 81가지 신비로움
안나 블릭스 지음, 황덕령 옮김 / 미래의창 / 2026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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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한 주관적인 리뷰입니다."


진화 생물학과 동물행동학을 연구한 저자는 첫 임신을 겪으며

인간의 40 주가 지구의 수많은 번식 전략과 어떻게 이어져 있는지 궁금해졌다.

그리고 그 질문이 이 책의 출발점이 되었다.

출산의 고통 속에서도 음핵이 너무 좁아 첫 출산 때 새끼의 60%가 죽는 점박이하이에나가 아니라서

다행이라 생각하다니 정말 과학자답다는 생각이 들었다.

전갈은 뼛속에 새끼를 품고 등이 부풀어 오른 풍선처럼 되어 단단한 외골격 아래

새끼들을 가득 채운 채 살아간다. 참솜깃오리처럼 둥지에 가만히 누워 새끼가 부화할 때까지

움직이지 못하는 것도 아니고 문어처럼 알을 지키느라 굶어 죽기 직전까지 버티지도 않고

무엇보다 어떤 거미들처럼 자신의 새끼들에게 잡아먹히지도 않으니 다행이라며 감사하는 것은

과학자 엄마가 아니며 생각하기 힘든 일인 것 같다.

인간의 잉태와 탄생까지의 일도 제대로 알지 못하는지라 다른 생명의 잉태와 탄생에 관해서는

정말 무지한데, 과학자 엄마답게 자신이 낳은 작고 주름진 생명체를 미치도록 사랑하게 되는

신비로운 40주 이야기라서 너무 흥미롭고 재미있었다.

지구상의 수많은 생물 중에서 생리를 하는 종은 극히 일부에 불과하다.

매달 자궁내막을 출혈과 함께 흘려보내는 일은 엄청난 자원낭비처럼 보이고,

생존에 직접적인 이점을 주는 것도 아니다.

사실 인간이 왜 생리를 하는지는 아직 정확하게 규명되지 않았다고 한다.

그중 몇 가지 가설 중의 하나는 생리가 임신 가능성에 대비해

자궁을 준비시키는 과정에서 나타나는 부작용이라는 것이다.

역사적으로 노동, 기아, 전염병, 이미 태어난 다른 아이들의 존재는

자궁을 가진 이들에게 끊임없는 부담이 되어 왔다.

배아는 가능한 크고 강하게 자라려 하고 받을 수 있는 것을 전부 받으려 하지만

몸은 그 작은 수정란이 원하는 모든 것을 내줄 준비가 되어 있지 않을 수 있다.

이런 관점에서 제기된 가설이 모체-태아 갈등 이론이다.

태아는 모체로부터 더 많은 영양분을 얻기 위해 자궁 내로 깊이 파고들고

나선형 동맥을 조절하도록 발달한다. 동시에 모체의 유전자는 태아가 가져갈 수 있는

자원의 양을 제한해 자신과 앞으로 태어날지 모를 또 다른 자손에게

최적의 수준을 유지하려는 방향으로 진화해왔다. 생리를 하지 않는 종의 태아가

자궁내막에서 약간의 영양을 얻는 정도라면 인간의 태아는 진화 과정에서

더 많은 영양을 얻기 위해 점점 더 자궁 깊숙이, 영양이 풍부한 혈액 쪽으로 침투했고,

이에 맞서 엄마들은 점점 더 두꺼운 자궁내막으로 대응해 온 것으로 보인다.

결국 수정되지 않았거나 수정되었더라도 충분히 강하지 않아

방어 체계를 뚫지 못하는 배아는 자궁에 착상하지 못하고 결국 생리로 배출되는 것이다.

또 다른 가설은 왜 자궁이 난자가 오기 전에 미리 준비를 하는지에 초점을 맞춘다.

자궁은 수정란이 생존 가능한지 점검할 수 있도록 준비를 한다.

한참 세포 분열을 하며 새로운 인간을 만들어 가고 있는 작은 세포 덩어리가

정말로 9개월 뒤 자궁이라는 안전한 벽 너머에서 살아갈 수 있을 만큼 튼튼한 지를 확인하는 것이다.

수정란이 자궁내막 깊숙이 파고들 수 있을 정도로 강하다면

그 배아는 자궁 밖에서도 생존 가능한 아기로 자라날 힘을 가지고 있을 가능성이 높다.

실제 임신 중 약 1/5은 자연유산으로 끝난단다.

수정된 난자 중 최대 50%가 생존 가능한 태아로 발전하지 못한다.

많은 경우 여성들은 자신이 임신했는지도 모른 채 유산으로 이어지기도 하고

그저 평범한 생리라고 느낀 출혈이 실제로는 아주 초기에 자연 유산일 수 있다.

이러한 점에서 보면 자궁내막은 몸이 생존 가능성이 없는 배아에

에너지를 낭비하지 않도록 막아주는 일종의 안전장치이다.

인구의 1~2%는 XY 염색체와 남성 생식기관을 함께 갖고 있지 않고

XX 염색체와 여성 생식기관을 함께 갖고 있지 않다.

게다가 염색체와 생식기관은 일치하지만 출생 시 생식기관 모양을 기준으로 부여된

성별과 자신의 성 정체성이 일치하지 않는 사람들도 있다.

흔히 성별에 대해 이야기할 때 자연히 남성과 여성이라는

서로 완전히 분리된 두 개의 상자를 만든 것처럼 이야기하지만, 현실은 그렇게 단순하지가 않다

작은 생식세포와 큰 생식세포가 개체의 번식적 투자 방향,

즉 자손을 돌볼 것인지, 아니면 정자를 퍼뜨리기 위해 경쟁할 것인지를 결정한다는

전통적인 이해가 균열을 드러내고 있듯이 우리가 생물학적인 성을 이해하는 방식도

마찬가지로 흔들리고 있다. 진화는 본질적으로 다양성을 의미하며,

종 사이에서도, 종내에서도 변이는 끊임없이 존재한다.

성별과 종의 형태에 대해 몇 가지 기본적인 틀이 있지만

그 기본 형태는 끊임없이 깨어지고 변형되고 그것이 진화임을 기억한다면

성에 대한 편견에서 벗어날 수 있을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과학자 엄마의 40주간의 모체의 변화 그리고 아기의 변화, 그리고

다른 생명체들의 기상천외한 탄생 이야기까지 같이 생명의 탄생에 대한 81가지 이야기를

새롭게 알게 되어 너무 유익하고 재미있었다.

#40주 이야기 #임신 #생명의 탄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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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학하는 인간의 태도
카를로 로벨리 지음, 김동규 옮김 / 쌤앤파커스 / 2026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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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한 주관적인 리뷰입니다."


과학적 사고의 본질을 최초의 과학자 아낙시만드로스를 통해 알 수 있는 책이라 흥미로웠다.

인류의 사상가 중에서 크게 과소평가되어 있는 아낙시만드로스의 중요성에 대해

알게 되어 유익했다. 저자는 과학사에서 아낙시만드로스에 버금가는 사고 혁명으로

1543년에 발표된 코페르니쿠스의 논문이 불러온 혁명을 꼽았다.

아낙시만드로스가 위에 하늘이 있고 아래에 지구가 있는 우주 대신 주변이 하늘로 둘러싸인 채

허공에 떠 있는 지구라는 우주를 제시했다면, 코페르니쿠스는 허공에 떠 있는 지구를

우주의 중심에서 태양의 주변을 도는 궤도로 옮겨놓았다.

둘 다 엄청난 과학 발전의 토대가 되었다. 코페르니쿠스가 알렉산드리아와 아랍의 천문학자들이

집대성한 기술과 학문을 바탕으로 자신의 이론을 정립했던 반면, 아낙시만드로스는

탈레스가 최초로 던진 질문과 부정확한 추측에 그가 직접 관찰한 내용을 덧입혔다.

아낙시만드로스의 이런 빈약한 바탕으로 과학사에서 최초이자 가장 뛰어난 혁명,

지구가 허공에 떠 있다는 발견이 이루어진 것이다.

피타고라스 학파가 피타고라스를, 맹자가 공자를, 바울이 예수를 절대적으로 따르고

가치관이 다른 이들을 무조건 배격하던 당시 풍토에서 아낙시만드로스는 제3의 길을 열었다.

그가 탈레스를 존경하고 그의 지적 성취에 크게 기대고 있었음에도, 서슴없이

탈레스의 오류를 지적하고 개선 방안을 내놓은 것이다.

아낙시만드로스는 제3의 길을 개척한 인물이다.

선대의 지식을 습득한 다음 그들이 저지른 오류를 찾아내고 수정해 세상에 관한

이해를 증진하는 과정을 현대 과학도 그대로 따른다.

중국 문명이 수 세기 동안 서양보다 여러 면에서 우월했지만 서구의 과학 혁명과 같은 일이

중국에서 일어나지 않은 까닭이 중국 문화에서 스승의 가르침은 비판이나 의문의 대상이

될 수 없었기 때문이라는 말에 많은 생각이 들었다.

중국 철학은 질문과 답이 아니라 확립된 지식을 심화하는 과정을 통해 발전했다.

그토록 찬란했던 중국 문명에서 지구가 둥글다는 인식조차 탄생하지 못한 채

예수회 선교사가 도착할 때까지 기다려야 했던 이유가

아낙시만드로스와 같은 사람이 존재했어도 중국 문화에서는 지도자의 명령에 따라

참수당했을 것이라는 말이 씁쓸하였다.

과학과 민주주의는 같은 뿌리에서 자라난 열매라는 사실이 흥미로웠다.

동등한 사람들끼리 비판하고 대화하는 일이 가능하고 또 중요함을 새삼 깨닫게 되었다.

아낙시만드로스가 스승인 탈레스를 비판한 행동은 당시 밀레토스의 아고라에서

흔히 행해지던 관행을 지식 탐구 분야에서 실천한 것일 뿐이었다.

당시 아고라에서는 신이나 왕의 명이라고 맹목적으로 복종하지 않고

거침없이 비판하는 풍토가 조성되어 있었다.

신이나 왕을 존중하지 않아서가 아니라 더 좋은 의견이 언제든 나올 수 있다는

신념을 공유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새로운 정치사회 구조와 과학적 사고의 탄생이 서로 관계가 있다는 것은 분명하다.

자유로운 비판과 질문은 취약한 가설을 제거하고 최고의 개념을 선별할 수 있게 한다.

과학의 본질은 세상을 항상 새로운 방법으로 바라보려는 열정이다

과학의 강점은 결론이 지닌 확실성이 아니라, 인간이 얼마나 무지한 존재인지를

철저히 깨닫는 데서 찾을 수 있다는 말에 전적으로 공감한다.

무지를 깨달음으로써 기존의 지식에 의문을 제기하고 새로운 재식을 끊임없이 배울 수 있다.

과학적 지식은 우리의 세계관을 끊임없이 수정하며 개선하고, 그 바탕이 되는 가정과 신념에

의문을 제기하며 더 나은 개선책을 찾는 과정이다.

우리는 과학적 사고를 통해 세상을 탐구하고 재구성한다.

과학은 세상을 어떻게 바라보고 생각해야 하는지를 가르쳐 준다.

새로운 사고의 틀을 탐구하는 끝없는 과정인 과학의 본질에 대해 제대로 알게 되어 좋았다.

#과학하는인간의태도 #아낙시만드로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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벌거벗은 세계사 : 라이벌편 벌거벗은 세계사
tvN〈벌거벗은 세계사〉제작팀 지음 / 교보문고(단행본) / 2026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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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한 주관적인 리뷰입니다."

tvN <벌거벗은 세계사> 프로그램을 좋아하는데, 세계사 속의 라이벌 편 역시

기대를 저버리지 않았다. 르네상스를 이끈 두 천재 예술가 레오나르도 미켈란젤로의 결투로 시작해서 

전 세계를 공포에 떨게 하고 있는 이란과 이스라엘의 갈등 등 

소설보다 더 재미있는 세계사 속 라이벌 벗기기를 통해 

서로 다른 가치와 전략, 권력이 충돌하는 모습을 생생히 볼 수 있었다. 


세상에서 가장 유명한 현대 조각가, 부활한 미켈란젤로, 작품의 감정을 불어넣는 천재.

이탈리아에 천재 조각가 미켈란젤로가 있다면 프랑스에는 로딩이 있다며

칭송받는 독보적인 예술가 로댕에게는 늘 치명적인 꼬리표가 따라붙는다. 

불륜 스캔들의 주인공. 특히 자신의 제자였던 카미유 클로델과의 관계는 많은 이들의

분노를 유발한다. 오귀스트 로댕과 카미유 클로델의 이야기는 널리 알려져 있지만 

다시 벗겨보니 정말 더 화가 났다. 19세의 클로델이 로딩을 처음 만났을 때 그의 나이는

무려 24세가 많은 43세였다. 지금도 그렇지만 그 당시에도 둘의 관계는 

파리 미술계에 엄청난 논란을 일으켰다. 

아무리 예술적인 재능에 서로 이끌렸다고 해도 어떻게 19 년을 함께한 사실혼 관계의 아내가 있는

중년의 남자를 19세의 소녀가 사랑하게 되었을까, 아무리 생각해 봐도 이해가 되지 않는다.

사춘기 소녀들의 첫사랑이 선생님인 것은 존경심에 가까운 풋사랑일 텐데,

그런 순수한 마음을 어른이 사랑의 감정과는 다름을 분명하게 선을 그어야 했던 것은 아닌가라는

개인적인 생각이 들기는 하지만, 워낙 감수성이 남다른 예술가들의 사랑을 

나의 기준으로 평가할 수는 없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로댕은 최악의 남자임은 분명하다.

카미유 클로델을 뮤즈로 예술적 동지로 사랑하고 임신까지 하게 하고,

예술가로서의 성장도 막은 정말 못난 스승이었다.

소녀에게 자신을 정식 아내로 받아주겠다는 달콤한 약속을 하며, 

온갖 염문을 뿌리고 사실혼인 로즈와의 관계도 끊지 않는 비겁한 남자의 우유부단한 행동에

다행히 클로델은 내연녀가 아니라 예술가로서 당당히 인정받겠다는 결심을 하고

그의 품을 떠났다. 로댕과 결별하고, <샤쿤탈라>로 파리 예술계 최고 권위를 자랑하는 살롱전에

입상하여 조각가로서 인정받는가 했지만 그녀의 작품보다 나중에 발표된 로댕의 작품이 

그녀의 작품과 유사하자, 클로델이 로댕의 작품을 모방했다는 맹비난을 퍼부었다.

당시 여성 예술가의 입지가 매우 좁았고, 로댕은 이미 이름난 조각가였기에

표절 시비 여론은 로댕에게 유리하게 흘러갔다. 

로댕이 클로델의 아이디어를 몰래 가져왔어도 시대는 클로델의 편이 아니었다.

지금이라면 그녀의 홀로서기를 응원해 주는 소수의 사람들이라도 존재했을 텐데,

부와 명예를 모두 거머쥔 로댕이 클로델을 점점 예술계에서 고립시켜나가는 것으로부터

조금이라도 보호해 줄 수 있었더라면, 그녀가 작업을 계속할 수 있는 여건이 되었더라면

그녀의 삶이 그렇게 처참하게 끝나지는 않았을 텐데 하는 안타까움이 컸다. 


카미유 클로델뿐만 아니라 사실혼 관계없던 로즈 뵈레에게도 로댕은 정말 최악의 남자였다.

로즈 역시 로댕의 모델로 시작해서 그의 아들까지 낳았지만 로댕은 호적에 올리지도 않았다. 

그런 로댕을 원망하기는 커녕 로즈는 놀랍게도 아들 문제로 로댕에게 부담을 줄 것이 걱정되어 

아이에게 자신의 성을 붙이고 아들의 세례명에 로댕과 같은 오귀스트를 붙여 

오귀스트 외젠 뵈레라 이름을 짓고, 아들의 울음소리가 로딩의 작업에 방해가 될까 봐 전전긍긍했단다.

평생 자식으로 인정하지도 않았고, 재산이나 작품을 물려주지도 않은 무책임한 로댕을

로즈는 남편이나 연인이 아닌 '몽 세뇨르(나의 주인님)'이라는 존칭으로 부르며 

무조건적인 존경과 순종을 하였다고 하니 어처구니가 없다. 

가스라이팅의 결과인지, 훗날 로댕의 아버지가 휠체어에 의지할 만큼 시력이 나빠지고 

일상생활이 불가능해지자 병시중과 집 안의 대부분을 맡아서 한 로즈 또한 이해할 수가 없다.

곁에 있어준 적도 없는 주인님이 자신과 아들을 버릴까 봐 두려워

돈 버는 일까지 게을리하지 않으며 홀로 가정을 지키고 헌신하다니 말이다.

클로델이 정신병원에 갇힌 지 3년이 지나고 76세의 로댕이 뇌졸중으로 쓰러졌다 정신을 차린 후,

수많은 내연녀가 있는 상황에서 상속자 하나 없이 죽으면 유산이 어떻게 흩어질지 몰라

로즈와 결혼을 했다는데 53년 만에 법적 부부가 된 로즈는 행복했을까 궁금했다.

한평생 로댕과의 결혼을 원했던 로즈는 결혼한 지 2주 만에 급성폐렴으로 세상을 떠났다는데

언제 들어도 갑갑하고, 로즈와 클로델이 라이벌이 아니라 같은 편이 되어 

로댕을 혼쭐낼 수는 없었을까라는 생각을 하여 로댕을 욕하게 되는 라이벌편이었다.


2017년 엄마와 스페인 여행을 하며, 가우디 서거 100주년인 2026년에는 

사그라다 파밀리아 성당이 완공된다고 하니 다시 꼭 오자고 약속했는데 어느새 2026 년이다. 

코로나19로 한동안 공사가 중단되어 완공 목표였던 2026년 기한을 맞추지 못할 것으로 예상되고,

사실상 얼마나 더 오래 걸릴지는 아무도 모르는 상황이다. 

지금은 미완성 자체를 건축적 이벤트로 받아들이는 사람들이 더 많다. 

기존의 양식이나 전통에 얽매이지 않고 창조적인 건축을 향해 나아간 가우디의 열정이

가우디 건축물의 유일무이한 비법이다. 역사 유적도 아니고 개인이 남긴 작품이

세계 문화유산에 등재되는 일은 매우 이례적이다. 

그런데 가우디가 남긴 작품 중 무려 일곱 개가 세계문화유산에 등재되어 있다. 

카사바트요, 카사밀라, 구엘공원, 카사비센스, 콜로니아 구엘 지하 경당, 구엘 궁전,

사그리다 파밀리아 성당. 우리가 바르셀로나를 찾는 이유이기도 하다. 

미술이나 음악과 달리 건축은 막대한 돈이 들기 때문에 대부분 의뢰를 받아 작업을 하기 때문에

건축가의 개성을 드러내기 어려운데 가우디는 자신만의 철학을 발전시키고 

그것을 건축계 반영해 위대한 예술작품으로 남겨서 건축의 신이라 불리게 되었다. 

원래 바르셀로나는 특색 없는 산업도시였는데, 가우디 건축물을 보유하게 되면서

매년 19조 원에 달하는 관광수입을 벌어들이고 있단다.

가우디가 건축에 대한 열정이 넘쳤으나 고집이 너무 세서 괴짜로 통했다며 전해지는

교수님과의 다툼 일화는 가우디의 고집이라기 보다 시대를 앞서나간 자기주장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가우디가 건축학교에 다니던 150년 전에는 투시도에 사람을 그려 넣는 일이 매우 드물었다.

건물만 그리는 게 관례였는데 가우디는 건물을 이용하는 사람까지 그려 넣어야 한다고 생각해서

투시도에 사람을 넣었고, 교수는 넣지 말라고 했다. 

가우디가 주장을 굽히지 않자 교수는 시험장에서 그를 쫓아냈고, 

가우디 또한 화가 나서 문을 박차고 뛰쳐나갔다는데 교수님의 고집도 만만치 않은 것 같다.

아직도 학교 시험은 정형화되어 있고, 우리의 평가 기준은 채점기준표라는 틀에 얽매여있는 것 같아

많은 생각에 잠기게 되는 대목이었다.


인간, 종교, 이념, 예술 도시, 국가 등 저마다의 라이벌과 맞대결을 펼치며 

보다 나은 내일에 대한 답을 지혜롭게 지금 모색하는 계기가 되어 유익하였다. 


#벌거벗은세계사라이벌편  #벌거벗은세계사 #라이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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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종과 함께한 사람들
강현규 지음 / 메이트북스 / 2026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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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한 주관적인 리뷰입니다."


역사가 스포라 영화를 보기 전부터 결말을 알고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영화 <왕과 사는 남자>를 보고 가슴이 묵직하니 눈물이 흘렀다.

엄흥도가 실존 인물임을 영화를 보고 처음 알게 되면서,

어디까지가 사실이고 허구일까 궁금했는데 마침 관련된 책이 출간되어 반가웠다.

왕의 시신을 수습하면 삼족이 멸한다는 것을 알면서도 사람을 사람답게 보내는 도리를 택한 엄흥도,

단종을 기억하며 존엄을 붙들고 살아간 정순왕후를 모시고자 정업원으로 돌아온 궁녀 매화,

사약 사발을 건넨 손으로 쓰러지는 주군을 받쳐 들었던 환관 안신을 비롯해,

사육신의 이야기로 주군의 마지막 온기를 지켜려는 이들의 의리를 담고 있었다.

<세조실록>의 건조한 기록 위에서 시작해서 영월 일대에 전해오는 민초들의 전승과

시대를 건너온 이름 없는 이들의 기억을 바탕으로 재구성된 책이라고 한다.

역사는 승자의 문장으로 기록되지만 의리는 민초들의 기억으로 전승된다는 말에 가슴이 뭉클했다.

실록이 침묵한 자리에서 이 책은 말을 잇고 있다.

엄흥도가 강을 건넌 이유, 안신이 강가에서 유품을 품에 안고 기다린 밤,

금성대군이 가시 울타리 안에서도 놓지 않았던 것들.

이 장면들은 공식 기록에 없거나 단 한 줄로 처리된 것들이다.

그래서 이 책에서는 그 행간을 민간전승과 역사적 정황 그리고 개연성을 근거로 복원했다고 한다.

사실을 지어낸 것이 아니라 사실을 가리키는 방향을 따라 걸어간 것이라고 한다.

어떤 인물은 공식 기록인 실록에 이름 한 줄도 남기지 못했다고 한다.

영화를 통해 기록조차 남기지 못했던 사람들에 대한 이야기에 대한 사람들의 관심이 생겼으니,

죽음의 마지막 온기를 지키려고 했던 이들의 지극한 의리와 정성이 잊히지 않길 바란다.

금기를 깨고 왕의 시신을 수습하려던 엄홍도를 지켜보던 집안사람들이 울며 그를 만류하자,

그는 나직하게 이렇게 답했다고 한다.

"옳은 일을 하다가 화를 입는 것이라면 그것이 정녕 내가 원하는 바다."

이 말에 가족들은 더 이상 엄흥도를 말리지 않았다고 한다.

단종이 복위되면서 엄흥도가 파낸 언 땅이 장릉이라는 이름을 얻으며 왕릉이 된 이후

당대에 대역죄로 분류되던 행위는 240년 만에 국가가 공인하는 충절의 기록으로 바뀌었다.

실록의 기록에는 단 한 줄만이 남았다고 한다.

"후환이 두려워 시신을 거두는 사람이 없었는데 호장 엄흥도가 장사를 지냈다."

엄흥도가 영월을 떠난 뒤 그의 가족이 어디로 흩어졌는지는 기록에 남아있지 않다고 한다.

후손들이 신분을 숨긴 채 여러 골을 나누어 살았다는 전승이 영월 일대에 전해온다는데,

야반도주한 가문의 후손이라는 사실을 평생 입 밖에 낼 수 없었던 이들의 삶은 결코 녹록하지 않았을 것이다.

엄흥도가 겨울에 차디찬 강물에서 건져 올린 것은 왕의 주검이었으나

강물 속으로 가라앉은 것은 한 가문의 이름이었던 것이다.

그 모든 걸 각오하고 강물로 기꺼이 들어갔다니 그의 선택은 다시 생각해도 정말 처연하고 울컥했다.

영화에서는 매화가 왕에 따라 죽는 것으로 되어 있지만 실제로는 그렇지 않다고 한다.

남양주와 영월 그리고 동대문 밖 숭인동 일대에는 '매화 혹은 시녀 권 씨'라 불리는 여인의 이야기가

600년 넘게 흐르고 있는데, 이름이 실명인지도 알 수는 없다고 한다.

매화가 절개와 인내를 상징하는 꽃 이름이라 후대 사람들이

그녀의 삶을 기리며 붙인 이름일 가능성이 높다고 한다.

영화는 극적인 죽음을 입혔지만 실제 전해오는 이야기 속 매화는 죽음 대신 더 처연한 삶을 선택했다.

그녀는 정순왕후가 시장에 나갈 때마다 앞을 가로막는 무뢰배들을 호통쳐 물리쳤고,

모든 고된 일을 도맡았다고 한다. 매화의 헌신으로 고립된 정업원 안에서 왕비는 인간의 품위를 지킬 수 있었고,

외부의 위협으로부터 보호받았다. 영화 속 비장한 마침표가 아니라 이름조차 불분명한 채

64년을 버텨낸 것이 그녀의 진짜 삶이었다.

죽음이라는 선언보다 끈질긴 삶의 의리가 무엇인지를 그녀는 몸소 증명했다.

매일 새벽 정업원 마당의 서리를 제일 먼저 밟으며 하루를 열었고,

시장 바닥에서 장꾼들과 실랑이를 벌이며 왕비의 끼니를 확보했다고 한다.

찰나의 결기가 아니라 매일 반복되는 고독한 노동이 매화에 의리였다.

단종은 매화에게 보랏빛 비단 주머니를 꺼내서 건네며

"이 안에는 한양의 전할 내 마음이 담겨 있으니 내가 혹여 이곳을 벗어나지 못하더라도

너는 반드시 살아서 돌아가 왕비의 남은 생을 지켜달라."라고 말했다고 한다.

어린 단종이 자신의 죽음을 우려하기보다 홀로 남겨질 아내의 고독을 더 걱정한 그 마음을 헤아린

궁녀는 주군과의 약속을 지키기 위해 64년의 긴 세월을 버텨내었다.

단종이 건넨 보랏빛 비단 주머니를 품 속 가장 안쪽 옷감에 바느질해 고정해서 자결의 대열을 이탈하여

어렵게 한양으로 향했다. 동료들의 죽음을 뒤로 한 채 비난의 시선을 감수하며 정업원으로 가서

정순왕후 앞에 엎드려 주머니를 바쳤다.

훗날 사람들은 강물로 뛰어든 세 시녀를 충절을 표상으로 기렸지만, 매화를 향한 시선은 달랐다고 한다.

주인의 죽음 앞에서 살기를 택한 연인이라는 비난이 그녀의 뒤를 따랐지만 그녀는 개의치 않았다.

왕의 마지막 부탁을 지키기 위한 정업원에서의 삶은 유배지 청령포보다도 더 가혹했다.

신분이 박탈되고 감시가 일상이 된 정순왕후의 곁에서 스스로 노비의 역할을 자처했다.

왕비가 남편을 죽인 자의 쌀을 먹지 않겠다며 세조의 시혜를 거부했고,

매화는 그 선언을 현실로 뒷받침하기 위해 장터의 거친 노동을 시작했다.

시장 상인들이 역적의 집안이라며 외면했으니 그녀의 현실이 얼마나 고달팠을지 생각하니,

가슴이 너무 아려왔다. 역사의 뒷면에 있던 사람들의 이야기를 더 알게 되니,

영화를 볼 때보다 더 마음이 무겁고 짠한 것이 사람의 도리에 대한 생각에 잠기게 하였다.

#단종과함께한사람들 #왕과사는남자실존인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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식물성 도시, 피토폴리스 - 회색 콘크리트를 덮는 초록 혁명
스테파노 만쿠소 지음, 김현주 옮김 / 김영사 / 2026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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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한 주관적인 리뷰입니다."


화해 불가능한 불가능해 보이는 도시와 자연 간의 갈등을 해결할 수 있는 방안으로

저자는 식물성 도시를 제안하고 있다. 미래에 우리가 도시를 새로 만들든,

혹은 기존 도시를 개조하든 우리의 새로운 서식지 안으로 자연을 끌어들이는 것이다.

식물과 동물의 비율을 자연에서의 비율대로 식물 86.7%, 동물 0.3%에 가깝게 만들자는 것인데,

상상만으로도 초록 내음 가득히 행복이 피어올랐다.

현재 상황과 정반대로 도시 면적의 상당 부분을 식물에 할당하는 도시가 정착되려면

얼마나 많은 사람들의 공감과 시간이 필요할까라는 생각이 들었다.

인류의 미래를 위해 다른 생명체와의 관계를 재조정하는 일보다 중요한 일은 없는데,

특히 식물과의 관계에 집중해야 한다.

우리는 인간과 식물의 관계의 진정한 본질을 이해하지 못하지만,

식물에게 의존하고 있다는 것은 명백히 알고 있다.

동물의 생명은 식물의 생명에 달렸다.

식물이 없다면 어떠한 동물도 생명을 유지할 수 없기 때문이다.

지구에서 수면 위로 올라와 있는 지표면 중 남극 대륙 면적을 제외하면

도시가 차지하는 비율은 고작 2.7% 밖에 되지 않는다.

지구의 작은 파편 정도밖에 되지 않은 면적에 현재까지 이미 40억 명이 넘는 사람들이 살고 있고,

2070년에는 70억 명이 살게 될 것으로 전망된다.

인간은 역사 대부분의 기간 동안 안정적인 정착지 없이 수렵채집인이자 유목민으로서

약 29만 년 동안 살아왔다. 12,000년 전 농업혁명 이후 정착생활을 하면서

최초의 도시가 탄생하고 인류 문명이 탄생하게 되었다. 1,2000 년부터 지금까지 대부분의 시간 동안

도시에 살았던 사람의 수는 전체 인류의 일부에 지나지 않는다.

역사 대부분의 시간에 인간은 인구 밀도가 낮은 시골 환경에서 살았다.

1,600년 이전에는 도시에 사는 전 세계 인구의 비율이 5%에도 이르지 못한 것으로 추정되는데,

1,800년대에는 이 비율이 7%에 도달했고 1,900년에는 16%로 상승했다.

그리고 현재의 도시인구는 55% 정도이며 인간이 거의 도시 환경에서만 살게 되는 세상으로

빠르게 진행되고 있는 것이다. 도시에서 사는 장점이 엄청나게 늘어나 발생한

급작스러운 혁명이지만, 그 결과 우리 인간에게 미치는 영향은 아직 전혀 명확하지 않다.

불과 몇 년 전까지 인간이 가진 독특한 특징 중 하나는 가장 적대적이고

척박한 환경은 물론 지구상의 모든 환경을 개척할 수 있는 능력이었다.

면적도 좁고 확실히 사람이 살 수 없는 지역을 제외하고

인간은 짧은 기간 내에 사실상 지구 곳곳에 진출할 수 있었던

인간의 능력이 갑자기 사라지고 대다수가 도시에 집중되는 전례 없는 상황이 나타났다.

그리고 도시화로 인해서 다른 생물들에게 또 다른 악영향을 끼치고 있다.

질병을 퇴치하기 위해 연구하는 실험실, 대학 등이 모두 도시권에 집중되어 있어 편리하지만

도시 특유의 매우 높은 접촉 횟수는 언제나 전염병 확산의 위험을 명백하게 드러낸다.

우리와 도시 공간을 함께 사용하는 공생동물과의 근접성은 전염병의 발생과 확산을 부추긴다.

공생 동물이 인간에게 감염될 수 있는 병원체를 보유하고 있을 뿐 아니라

병원체의 저장 숙주이기 때문이다.

인수 공통감염병의 숙주 역할을 하는 동물들은 언제나 인구밀도가 높은 곳에서 발생했다.

식물은 태어나서 뿌리를 내린 곳에서 움직이지 않는다.

움직이지 못하는 모든 생명체는 포식자로부터 스스로를 방어하기가 상당히 어렵다.

그래서 식물은 몸체의 상당 부분이 제거되어도 계속 살 수 있는 구조로 진화하였다.

식물의 조직이 강한 저항력을 가질 수 있는 비결은 단일 혹은 이중 기관이 없다는 점에 있다.

나무가 만약 단일 또는 이중의 전문기관이 있는 동물처럼 구성되어 있다면

미세한 손상을 한 번만 입어도 죽을 것이다.

수천 년을 살 수 있으려면 몸체의 그 어떤 부분도 유일하거나 대체 불가능해서는 안 된다.

생명의 기본이 되는 모든 기능이 특정 기관에 집중된 것이 아니라 몸 전체에 분산되어야 가능한 일이다.

동물은 엄격한 계층과 전문화를 바탕으로 하고 있어서 조직 중 단 하나만 기능을 하지 못해도

구조 전체가 붕괴한다. 식물의 경우 빠른 반응이 가치가 없다. 환경의 변화로 인해 문제가 생기면

식물은 이를 해결하는 것 외에 다른 선택지가 없는 것이다.

도망은 식물이 선택할 수 있는 옵션이 아니니까 말이다.

우리는 수천 년 동안 움직이지 않는 도시를 움직이는 동물인 우리 몸에 맞추려 했고

그 무모한 대가를 치르고 있다는 말을 들으니 이해가 쏙 되었다.

도시의 성장과 발전 기능을 맡게 할 모델은 의심할 여지 없이 식물 모델이다.

식물 모델에 따라 도시의 중심부를 변화시키는 것이

기기 위기에 맞서는데 근본적인 해결책임을 알 수 있는 책이었다.

#식물성도시 #피토폴리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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