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르바를 춤추게 하는 글쓰기]를 읽고 리뷰 작성 후 본 페이퍼에 먼 댓글(트랙백)을 보내주세요.
-
-
조르바를 춤추게 하는 글쓰기 - 이윤기가 말하는 쓰고 옮긴다는 것
이윤기 지음 / 웅진지식하우스 / 2013년 10월
평점 :
품절
한 언어를 평생 몰두해 온 학자라도, 깊이 빠지면 빠질수록 그 원형의 방대함에 그만 ‘알 면 알수록 어렵다’라는 고백을 실토한다. 학자란 모름지기 기존의 정립된 연구체계에 그 다단을 밟는 자가 아닌 정말 그러한가를 탐구하고 이면의 세계도 자유자재로 드나드는 집요함을 갖춘 사람이어야 할 것이다.
기원을 거슬러 올라가다 보면 알던 사실에 대한 진면모를 보게 되기 때문에 비판의 안목도 생기고, 나만이 드나들 수 있는 통로가 자연스레 생기면서 시각도 확장되고 다른 학문으로의 넘나듦도 쉬워 진다. ‘전문가’라는 말은 이런 수순을 정직하게 밟은 자에게만 부여되는 특권일 것이다.
흔히 알수록 어렵다는 말을 하는 사람에게는 이렇게 되기까지 걸어온 깊은 ‘애정’의 향기가 난다. 뭔가에 깊이 빠져 있는 사람의 눈, 많이 알게 된 사람들의 겸손에는 이러한 애초의 호기심들이 어떻게 발전해 나갔는지에 대한 유난스러운 몰두의 흔적들이 있다. 누구에게나 더 알기 두렵고 뒷걸음질 쳐질 만큼 머리가 아파본 경험들이 있기 때문에 우리는 그 겸손이 얼마나 투명한 거짓말인지를 뻔히 알고 있다.
가령 어떤 작가의 글에 감명을 받게 됐다고 치자. 그 순간의 여운은 호기심을 유발하기에 이른다. 그 작가의 다른 작품들이 궁금해지고 또 그 책에서 언급된 단어나, 상징들이 알고 싶어져서 또 다른 책을 들춰 보게 되고, 그러다 보면 그것을 이루는 거의 모든 것들이 다 알고 싶어지게 된다. 지금의 앎에 이르기까지 저마다의 지식이란 이렇듯 끊임없는 일굼의 반복됨인 것이다.
알고 보면 거의 모든 앎의 출발이 이런 식의 사소한 ‘애정’에서 출발하였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작은 호기심이 어떻게 원형의 바다에 이르게 되는지, 그 여정은 멀고도 길지만 기필코 다다르고 싶어지는 매혹의 시간들인 것이다.
작가 이윤기에게 ‘언어’란 바로 이러한 가지치기해 끝없이 탐구하고픈 여정의 타래였음을 알겠다. 천재적으로 타고난 언어에 대한 빠른 이해와 재능이 있어 보이지만, 그보다 성실하게 공부하고 확인하는 열정이 그를 더 말해주는 것 같다. 우리의 언어뿐만 아니라 영어를 비롯한 몇몇 나라의 말에도 두루 관심을 갖고 또 다른 가지치기를 해나가면서 끊임없이 연구하고 자신만의 세계를 구축한 학자였다. 나라말을 바로 알고자 함, 더불어 번역하기 위해 하나하나 그 기원까지 거슬러 올라가는 수고를 게을리 하지 않은 열정이 있었다.
특히 그의 태도 중 가장 높이 사고 싶은 점은 바로 이미 아는 것을 다시 한 번 확인하는 자세 같은 것이었다. 단어 하나의 뜻을 유추해 내기 위해서 그 나라의 역사를 배우고 당시의 문화와 변모해 나간 과정들을 유추해 나가는 능력을 게을리 하지 않았기 때문에 방대한 양적인 정립 역시 이룰 수 있었던 것이다.
번역가로서 이윤기는 두 나라간의 말의 간극을 좁히기 위해 가장 적확하고 문화에 맞는 변이를 도모하는 학자였다. 단어를 선별해 내는 사람, 번역가의 자세가 그에게 어떤 삶의 추진력을 안겨 주었는지 이 책 <조르바를 춤추게 하는 글쓰기>를 보면 참으로 쉽지 않은 길이었음을 고스란히 느낄 수 있다.
‘언어’라는 애정의 대상이 생기고 부터 미지의 나라에 대한 말의 기원을 타고 올라가게 된 사연들, 신화와 역사 공부를 하게 된 우연, 그의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지점이 되는 사건들이 교차되고 흘러가면서 그의 작업들이 어떻게 일궈졌는지 엿볼 수 있었다. 그 과정 중에는 미처 더 옳은 번역이 아니었음을 부끄럽게 고백하는 장면도 있는데, 시행착오를 겪어 내면서 더욱 단단해지고 견고해져 가는 과정들이 솔직하고 인상적이게 펼쳐진다.
이 책은 번역가 이윤기 개인의 일상과 언어에 대한 철학, 소설가로서의 깊은 열망 등이 담겨 있지만 그를 보며 삶의 자세에 대한 생각이 특히 많이 들었다. 우선 그의 순수한 열정을 높이 사고 싶고, 세상이 말하는 정답에 대한 한 번 더 확인하고 질문을 던질 줄 아는 물음표의 수고, 이런 자세들이 거듭 생각나는 지점이 많았다.
즉 각자의 삶 안에서 스스로 만든 규칙들을 좀 더 세밀하게 분화해서 생각하고 분류해보는 부지런함 같은 것, 그것은 깊은 ‘애정’이라는 윤활유로 가동되는 일일 것이다. 이런 열정 같은 것은 학자의 머릿속에서나 가동되면 될 일 아닌가 싶지만, 이는 사실 살아가는 모든 사람들의 알아가는 태도에서도 발휘되는 똑같은 일들이다.
우리가 알아간다는 것은 이미 알고 있는 것의 확인뿐만 아니라, 전혀 알지 못했던 세계로의 첫 관문을 무사히 지나가는 두려움의 자청, 이 번거로움의 끊임없는 반복이라는 생각을 해본다. 이것이 계속될 때 무궁무진한 추진력으로 발휘되어 성장하게 될 것이다.
어떤 한 사람의 작은 호기심이 어떤 씨를 뿌리고 뿌리가 내려 자양을 얻게 되는지, 수많은 가지가 솟고, 거대한 줄기를 이루는 나무에 이르러 풍경을 이루는지, 우리는 이 책 이윤기의 삶에서 엿 보며 배울 수 있다.
그가 부리는 언어들이 어쩌면 그토록 풍요로운 아름다움을 선사해 주었는가, 수많은 언어의 가지 위에 핀 꽃과 열매의 그늘 아래에서 새삼 얼마나 큰 선물의 윤택함을 얻는 일인지 생각해본다. 그것은 특정한 사람만이 할 수 있는 거창한 일이 아니라 누구나 익숙하게 해 온 일, 그러니 좀 더 알고자 함을 더 부리면 될 일인 것이라는 희망을 준다. 힘을 내고 싶다.
* 알라딘 공식 신간평가단의 투표를 통해 선정된 우수 도서를 출판사로부터 제공 받아 읽고 쓴 리뷰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