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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의 목적어 - 세상 사람들이 뽑은 가장 소중한 단어 50
정철 지음 / 리더스북 / 2013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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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초에 그렇게 생겨먹은 탓을 들먹이면 느닷없어 보이겠지만, 도무지 어떤 유형의 마음가짐’이라도 가져본 일이 있던가 싶다. 아예 없이는 생활에 추진을 가져오지 않겠지만 이루고자 하는 성취의 어떤 방편으로 남들만큼 잘 부림할 수 없는 것이었다. 대충 산다고 해도 그것이 마음가짐의 일부분이라 한다면 모르겠지만 일면 내게는 그냥 살아지는 면으로서의 마음만 크게 보인다. 인생의 중요한 목적어하나쯤 살아가는데 주요한 심지로 굳혀 보는 일도 근사한 일인걸 알지만, 여전히 의식으로 결의를 다져보자는 마음이 잘 안 드는 것을 보면 생겨먹은 탓을 들먹일 수밖에 없는 것이다. 때때로 당장 주어진 일 앞에서 혹은 얼마간의 지속성을 유지하기 위한 사건 앞에서 발휘되는 일이 종종 있었지만 일상을 매번 그렇게 살아가는 것이라고 할 수 없는 이유가 내겐 있다.

매우 게을러 보이는 태도의 변을 굳이 하자면, 아마도 이 질문에 대한 답과 연결될 것이다. ‘인생의 의미를 어디에 두고 살아갑니까?’ 이 물음에 답할 수 있는 유일한 말은 고작 오늘을 잘 버티는 것쯤 이려나, 정말로 이 정도가 다다. 기왕이면 위트있는 삶이라면 더없이 족할 뿐이다. 거창하게 삶의 철학적 성찰을 내 식으로 풀어서 오늘을 위트 있게 살자라는 마음가짐을 돌려서 말하려는 것은 아니지만 살아온 내 태도를 반추해보면 대충 이런 식의 게으름에 대한 변명을 해볼 수 있다는 정도일 것이다.

 

 

 

 

오늘을 버텨내 살 뿐이라는 것은 내일의 행복을 위해 오늘을 담보로 불행하지 않겠다는 믿음의 반영이 전부이다. 나는 긍정 보다는 부정, 낙관 보다는 비관된 태도로 후일을 걱정하며 사는 어린이였고, 소녀로 자라 하루하루 친구들과 어울려 시답잖은 농담이나 하고 공상하며 남들이 웃어줄 때의 낙으로 살던 사람이었다. 우스워 보이기는 하지만 별 생각 없이 내일을 걱정하지 않는 오늘을 사는 삶은 나의 불안과 슬픔을 이겨내준 시간들이었다. 언제나 상처를 덜 받기 위한 나의 보호막이 이런 '태도'였고 이에 대한 생각은 여전히 어른이 된 지금에도 가동되는 중이다. 어쩌면 살아가면서 가장 행복했던 순간이거나 하는 흔한 질문에 쉬이 답을 망설이게 되는 방만한 삶이었지만, 기억나지 않는 평범한 일상들이 오히려 소중하고 고마울 따름이다.

인생을 얼마나 살아서 달관한 현자 생각 흉내 내고 싶은 것이 아니라 하루하루 알 수 없는 언덕 앞에 자주 주저하게 되는 나의 타고난 기질을 고백하는 것이다. 망설이고 자주 쉬는 사람이 게을러 보이는 것은 어쩔 수 없어 보일 지라도 조금 더 들여다 봐준다면 그 이유가 전혀 없는 것은 아니라는 것을 다만 말하고 싶다. 하루의 무사함은 오히려 불가해한 낭만이며 축복인 것이다.

 

 

 

 

삶은 불안한 그림자가 언제 드리울지 몰라 허둥대는 사람에게 그 가르침을 혹독하게 치르게도 하지만 적어도 자기가 가진 비관만큼 쌓아낸 장벽 위로 넘어가 해일로 덮치는 일은 쉽게 없는 것이다. 물론 그 막의 높이를 높이 쌓을수록 그 만큼의 안식을 위한 불안이 내 온몸을 잠식되는 것을 감수해야 하는 고통도 따른다. 그러나 이를 무사히 넘겼을 때의 안도감에 비한다면 충분히 감내할 일이다. 인생은 항상 이런 식으로 반복되는 일이니까, 어른이 된다는 것은 내성을 견딜 수 있을 만큼 쌓아가는 일이리라. 

 

 

 

희망과 배려로 넘치는 일이 흔치 않은 세상에서 그 하루를 버티는 훌륭한 치유제는 또 각자가 강구해야 할 일이다. 그 일일의 처방전 혹은 도피처로 나는 위트를 삼고 싶다. 행복한 웃음이 만연한 재미로서 라기 보다 채플린이나 우디앨런 영화에서 흔히 볼 수 있는 그런 위트에 가깝다. 세상의 위선과 자신이 부린 쩨쩨함의 혐오현실과 자주 대결해야만 하는 피로 속에서 사람들이 전하는 방식은 매우 아이러니하면서 흥미롭다. 자신을 거침없이 표현하는 본연의 모습들, 화와 불안을 요란하게 호소하거나 비장하게 그려내는 법 없는 인생사가 있다. 그들의 위트에는 쓴맛이 나는 행복과 삶의 오만상이 다 있고, 그럼에도 웃을 수밖에 없는 어떤 강한 힘이 스며있다. 뭉클한 무엇, 갈 데 없는 마음을 안착시켜주는 무엇, 외면하지 않은 노고에 대한 보상이라는 듯 우리를 웃음 짓게 하는 무엇의 힘이 있다.

 

 

 

정철의 <인생의 목적어>를 읽으며 수많은 사람들의 각오에는 참으로 다양한 위안들이 자리한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그리고 그 중점에 작가 정철의 오랜 고심의 마음가짐이 보인다.

대체 나다운 게 뭔데!’라는 유행어를 본뜨자면 카피라이터다운 게 뭔데!’라는 말에 어떤 호응을 할 수 있을까 싶어진다. 작가는 과연 말의 하나하나 예상될만한 그 이상을 생각해낸 시간의 성의와 그 너머를 볼 줄 아는 혜안의 깊이를 가졌다. 카피라이터라면 역시 대중의 이목을 끄는 일상의 고찰을 충분히 공감해낸 사람들을 일컫겠지만, 작가 정철이 만들어낸 공감의 깊이를 따지자면 이렇게 말하고 싶어진다. 언어의 현명함에 깊이가 확장되게 하고, 잠시 쉴 틈을 주는 영원한 시간을 선사하는 사람이라고 말이다. 이 책은 참으로 오랜 시간 타자의 목적어를 이해하게 하고 또 그만큼 나를 돌아보게 하는 복기의 의미를 준다.

 

 

 

인생의 여러 의미들이 그들의 일상에 가뿐히 밟고 지나갈 수 있도록, 그것들로 무사한 보호의 하루일 수 있기를 바라는 선물을 이렇게 또 받는다.

 

 

 

 

 

 

 

* 알라딘 공식 신간평가단의 투표를 통해 선정된 우수 도서를 출판사로부터 제공 받아 읽고 쓴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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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자를 위하여]를 읽고 리뷰 작성 후 본 페이퍼에 먼 댓글(트랙백)을 보내주세요.
남자를 위하여 - 여자가 알아야 할 남자 이야기
김형경 지음 / 창비 / 2013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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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을 이루는 性은 남자와 여자 단 둘, 심플하다. 각자의 성으로 태어난 이상 어필하고 싶은 성만 선택하고 이해하면 될 일이니 서로를 안다는 일이란 얼마나 간단하고 쉬운 일인가.

 

그러나 실상 상대를 꿰뚫어 이해한다는 사람, ‘나의 마음 너의 마음 이심전심’ 이렇게 눙칠 수 있는 사람이 없다는 사실은 차라리 경이롭다. 주위에 마음 읽기가 자신 있다고 말하는 사람이 있다면 필시 착각 속에 빠져 사는 바보이거나 비슷한 바보들로 둘러싸인 바보이거나 둘 중 하나일 것이다. 제아무리 만리장성을 통과하고 자유의 여신상을 사라지게 한다는 데이비드 카퍼필드라도 사람의 마음까지 꿰뚫는 마술을 부린다는 소리는 못 들어 봤다. 평생 연구만 해온 심리학 박사라거나 사람의 마음만을 읽는 노동자로 한평생 살아갈 지라도 모두의 마음을 다 가질 수는 없다. 물론 사랑을 독차지 할 수 있는 어여쁜 사람이 될 수는 있겠지만 완벽하게 상대를 아는 사람이기란 불가능 한 것이다. 그것은 상대에 달린 것이 아니라 결국 나의 문제이며 각자의 끝없는 가지와 같은 마음 문제이기 때문에 그렇다.

 

 

 

 

비약인가 싶지만 노인들의 경우만 봐도 그렇지 않은가. 한 평생 알고 겪은 상대에 대한 앎과 경험치로 말하자면 그쯤의 나이가 되보면 그야말로 만능 소통가가 따로 없을 정도로 완벽해야 마땅할 것이다. 그러나 현실은 나이가 많고 적고와 전혀 무방할 정도로 개인적 기질과 인내심, 배려만 존재할 뿐 더 이상의 특출자는 없다라는 것을 알게 된다. 즉 평생을 다 바쳐 이해해보려도 마음의 길을 다 헤아리기란 불가능하다는 것이 자명한 것이다. 우리는 죽을 때까지 상대를 위해 상처주지 않을 말을 골라내야 하는 수고, 이해한다는 고갯짓, 신뢰의 눈빛을 끊임없이 연출해내야 하는 타당과 맞부딪치며 태도의 문제에 항상 직면 한다. 만약 이 경계의 꼿꼿함을 피곤해해 포기해 버린 사람이된다면 그는 필시 누군가로부터 알게 모르게 소통 장애를 겪게 될 것이고 이마저도 어려워지면 미움까지 사게 되는 불통에 직면하게 될 것이다.

분명한 것은 상대에 대한 끊임없는 노력만이 나라는 사람을 반영하며 투영하는 일이라는 것이다. 배려라는 나태함에서 영원히 자유로울 수 없는 것, 결국 우리는 사랑하는 상대의 마음 하나도 쉽게 얻지 못하는 바보로 살다 죽는 인생인 것이다.

 

 

 

 

 

 

 

사람이 나이를 먹는다는 것은 그만큼의 세상을 알아간다는 일일 것이다. 치기어림을 벗어나 세상과의 간극을 좁혀가는 이해와 배려 융화하는 법을 알아가는 과정은 그리 녹녹치 않은 여정이다. 나이를 먹을 만큼 먹었어도 합당한 언행을 하지 않는 어른들도 허다하다는걸 아는 순간 어느새 어른이 되어 버린다. 저절로 얻어지는 일은 아무것도 없다. 죽어도 나와 맞지 않는대도 그 사람과 더불어 살아가야하는 이유가 가치 있는 일임을, 관계란 이해와의 싸움이며 고되어도 지속되어야만 하는 이치라는 것을 알게 되는 시기가 찾아온다. 나이를 먹는 일이란 이런 일일 것이다.

 

 

 

 

 

 

더불어 살아가기가 아무리 어려운 일이라고는 해도 다행히 세상에는 엄연한 규칙과 질서가 있다. 보다 성숙한 어른이 되기 위한 나름의 단련들이 주위 사람들의 배려와 이해 속에서 이루어지며 정립되는 것이다. 그러니 가급적 나를 둘러싼 세상이 좀 더 이해하기 쉬운 터전으로 일궈질 수 있도록 제 정원을 가꾸는 일도 어른이 된 이후 선택할 수 있는 자유이며 권리이다. 삶은 끊임없이 ‘다르다’라는 차이의, 실로 우주만큼의 공백을 여실히 느끼는 일이지만 꿋꿋이 서로를 향해 걸어 나가는 나선형의 걸음걸이를 닮아 있으니 또 부지런히 걸어내는 운명을 받아 들여야 하는 것이다.

 

 

 

 

 

 

 

 

김형경의 <남자를 위하여>를 읽으니 새삼 남자와 여자란 어쩌자고 이렇게 닮지 못했을까란 생각이 절로 든다. 음과 양의 상징을 들먹이지 않더라도 서로 다름과의 융화를 도모하라는 자연의 이치는 어쩌면 이다지도 극명하게 얄궂은가 싶다.

이 책은 저자가 오랜 시간 칼럼을 쓰면서 비축된 이성으로서의 남성을 거듭 이해해보려 노력한 결과물이다. 소설가가 쓴 심리학적인 접근이란 점도 재미있고 생각의 근원을 거슬러 올라가다 보면 다 그럴 만한 이유들이 있더라 하는 낱낱의 정찰을 밝히는 글이라 흥미롭다. 참으로 다양한 남자들이 여러 유형으로 나뉘는 듯 하지만 그 연원은 참으로 나약한 이유들 뿐이어서 때로 애처롭기까지 하다. ‘그의 말도 안 되는 행태의 이유가 고작 유아기 때의 트라우마 때문이었다고?’ 거의 대부분의 문제들이 이러한 식의 문제로 도달하는 허무함은 어쩐지 믿고 싶어지지 않을 만큼 협소해 보인다. 단순히 도식화되기보다 예측불가능한 사람이여라라고 부르짖고 싶어진다. 사람은 결국 과거의 상처와 영광에서 영원히 자유롭지 못하는 것일까. 그렇다 해도 마음 길 다 헤지 못하는 건 또 무언지.

 

 

 

 

유형별로 묶어 이해해본들 막상 대면하며 상대해 이해하기란 쉽지 않은 일이다. 이쯤이면 다 뭉개버리고 그냥 각자의 성에서 좀 더 근사한 ‘어른’의 역할을 해내면 어떨까 싶어진다. 상대방에게 내보이고 싶어지는 나의 이해를 각자의 방법으로 펼쳐 보이는 일 말이다. 남자, 여자라는 타고난 기질의 차이를 매순간 부딪치며 다투게 된다 해도 상대를 향한 끊임없는 긴장과 이완이 필요하다는 걸 깨닫고 싶다. 어른이라는 카테고리에 들어간 이상 무엇과 결별하고 또 맞이해내는 순환을 이어나갈지 ‘잘 아는 어른’이 되고 싶다. 부디 그런 어른으로 사랑하는 사람을 대하고 싶어진다.

 

 

 

 

 

 

 

 

* 알라딘 공식 신간평가단의 투표를 통해 선정된 우수 도서를 출판사로부터 제공 받아 읽고 쓴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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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일락 2014-01-23 09:4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푸리울님, 먼댓글이 잘못 달렸습니다. 확인 부탁드립니다.


puriul 2014-01-23 10:16   좋아요 0 | URL
임시저장하고 나면 꼭 이렇게 잘못 달리네요. 알려주셔서 감사합니다! 좋은 하루 보내세요.
 
에세이 주목 신간 작성 후 본 글에 먼댓글 남겨 주세요.

 

 

김경주가는 책을 다 덮을 때까지 어딘가 가늠 할 수 없는 예측불허의 글을 쓴다. 과연 어떤 이야기를 하게 될지 전혀 감이 오지 않는 뻔하지 않은 시선을 갖고 있다. 그는 일상의 뒷면을 보고 전혀 다른 시선으로 이야기하는 시인이기 때문에, 이번 신작 <펄프극장>에서도 그의 독특한 시선들이 눈길을 사로 잡는다. 전작인 <밀어>가 몸에 대한 치밀한 관찰과 은유가 인상적이던 만큼, <펄프극장>에서는 그의 시선이 머문 한 시대에 대한 멋진 골몰이 펼쳐질 것이란 기대가 든다. 시대를 아우르는 문화와 철학 예술에 대한 깊이 있는 시간을 보낼 수 있을 것 같다.

 

 

 

 

 

 

<한국 작가가 읽은 세계문학은> 문학동네 카페에 연재된 작가들의 기획섹션을 묶은 책이다.

박민규, 김애란, 김영하, 김연수 등 저마다의 가슴 속 세계문학들이 소개되고 그 소설에 대한 느낌을 자유롭게 각자의 방식대로 표현해 낸 결과물들이다. 편지와, 시, 짧은 소설, 에시이 등 자신만의 개성을 표현한 자체로서도 궁금해지지만 순수하게 어떤 감상들을 담고 있을지가 더욱 궁금해진다. 독자 스스로의 감상에 자주 빗대어 읽어 낼 수 있을 만한 흥미로운 책이다.

 

 

 

 

 

 

 

죽을 것을 알고 마음을 추스리는 일만도 어려운 일인데 체념하고 품위를 지키며 때를 받아들이는 일은 아무래도 가늠하기 힘든 심경이다. 차분하게 작가로서의 소임을 끝까지 지켜내며 글로 남기는 일이란 당연하게도 그를 버티게 한 원동력이었을 것이다. 

<눈물>은 생전 발표되지 않은 원고를 묶은 책으로 '사랑하는 벗이여'로 시작되는, 유고집이다. 자신의 죽음으로 힘들어 하고 있을 주변인들에 대한 사랑과 걱정이 엿보이는 글들이리라. 여전히 곁에 남아 '쓰기'를 하고 있을 최인호의 어떤 내면의 풍경이 그리워 진다.

 

 

 

 

 

 

비극적인 생을 마감했지만 그 죽음 역시도 스스로 선택했던 사람. 누구보다도 치열하게 자신을 고민하고 한 인생을 파란만장하게 살다간 작가, 버지니아 울프.  

<존재의 순간들>은 그녀가 죽고 난 뒤 가족들이 발굴해 발표한 책으로 그동안 그녀만이 깊숙이 생각하고 밝혀지지 않은 면들이 많이 담겨 있다.

유년시절부터 죽기 전에 이르는 고통스러운 삶의 행적, 세상에 대한 시각, 문학적으로 성숙해 가는 시기들이 솔직한 어법으로 담겨 있다. 버지니아울프 문학 세계를 이해하는데 더 없이 좋은 작품이라 기대해도 좋은 책이다.

 

 

 

 

 

 

그러고 보니, 하성란 작가의 산문집을 보는 것이 오랜만이다. 소설로서가 아닌 산문 형태의 글로 묶는 작업을 부러 하지 않았다는 것은 몰랐지만, 이유 역시 책을 보며 차츰 알아가고 싶다. 

등단 이후 20여년이 가까운 세월간 문학가로서 어떤 성장을 해 나가고 어떤 세계관을 가지고 작품에 임하는지 '아직 설레는 일이 많다'는 말에 설레임을 안고 정말 그러한가를 살펴 읽어봐야 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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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르바를 춤추게 하는 글쓰기 - 이윤기가 말하는 쓰고 옮긴다는 것
이윤기 지음 / 웅진지식하우스 / 2013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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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언어를 평생 몰두해 온 학자라도, 깊이 빠지면 빠질수록 그 원형의 방대함에 그만 알 면 알수록 어렵다라는 고백을 실토한다. 학자란 모름지기 기존의 정립된 연구체계에 그 다단을 밟는 자가 아닌 정말 그러한가를 탐구하고 이면의 세계도 자유자재로 드나드는 집요함을 갖춘 사람이어야 할 것이다.

기원을 거슬러 올라가다 보면 알던 사실에 대한 진면모를 보게 되기 때문에 비판의 안목도 생기고, 나만이 드나들 수 있는 통로가 자연스레 생기면서 시각도 확장되고 다른 학문으로의 넘나듦도 쉬워 진다. ‘전문가라는 말은 이런 수순을 정직하게 밟은 자에게만 부여되는 특권일 것이다.

 

 

 

흔히 알수록 어렵다는 말을 하는 사람에게는 이렇게 되기까지 걸어온 깊은 애정의 향기가 난다. 뭔가에 깊이 빠져 있는 사람의 눈, 많이 알게 된 사람들의 겸손에는 이러한 애초의 호기심들이 어떻게 발전해 나갔는지에 대한 유난스러운 몰두의 흔적들이 있다. 누구에게나 더 알기 두렵고 뒷걸음질 쳐질 만큼 머리가 아파본 경험들이 있기 때문에 우리는 그 겸손이 얼마나 투명한 거짓말인지를 뻔히 알고 있다.

 

 

 

 

가령 어떤 작가의 글에 감명을 받게 됐다고 치자. 그 순간의 여운은 호기심을 유발하기에 이른다. 그 작가의 다른 작품들이 궁금해지고 또 그 책에서 언급된 단어나, 상징들이 알고 싶어져서 또 다른 책을 들춰 보게 되고, 그러다 보면 그것을 이루는 거의 모든 것들이 다 알고 싶어지게 된다. 지금의 앎에 이르기까지 저마다의 지식이란 이렇듯 끊임없는 일굼의 반복됨인 것이다.

 

 

알고 보면 거의 모든 앎의 출발이 이런 식의 사소한 애정에서 출발하였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작은 호기심이 어떻게 원형의 바다에 이르게 되는지, 그 여정은 멀고도 길지만 기필코 다다르고 싶어지는 매혹의 시간들인 것이다.

  

 

 

 

작가 이윤기에게 언어란 바로 이러한 가지치기해 끝없이 탐구하고픈 여정의 타래였음을 알겠다. 천재적으로 타고난 언어에 대한 빠른 이해와 재능이 있어 보이지만, 그보다 성실하게 공부하고 확인하는 열정이 그를 더 말해주는 것 같다. 우리의 언어뿐만 아니라 영어를 비롯한 몇몇 나라의 말에도 두루 관심을 갖고 또 다른 가지치기를 해나가면서 끊임없이 연구하고 자신만의 세계를 구축한 학자였다. 나라말을 바로 알고자 함, 더불어 번역하기 위해 하나하나 그 기원까지 거슬러 올라가는 수고를 게을리 하지 않은 열정이 있었다.

특히 그의 태도 중 가장 높이 사고 싶은 점은 바로 이미 아는 것을 다시 한 번 확인하는 자세 같은 것이었다. 단어 하나의 뜻을 유추해 내기 위해서 그 나라의 역사를 배우고 당시의 문화와 변모해 나간 과정들을 유추해 나가는 능력을 게을리 하지 않았기 때문에 방대한 양적인 정립 역시 이룰 수 있었던 것이다.

 

 

번역가로서 이윤기는 두 나라간의 말의 간극을 좁히기 위해 가장 적확하고 문화에 맞는 변이를 도모하는 학자였다. 단어를 선별해 내는 사람, 번역가의 자세가 그에게 어떤 삶의 추진력을 안겨 주었는지 이 책 <조르바를 춤추게 하는 글쓰기>를 보면 참으로 쉽지 않은 길이었음을 고스란히 느낄 수 있다.

 

언어라는 애정의 대상이 생기고 부터 미지의 나라에 대한 말의 기원을 타고 올라가게 된 사연들, 신화와 역사 공부를 하게 된 우연, 그의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지점이 되는 사건들이 교차되고 흘러가면서 그의 작업들이 어떻게 일궈졌는지 엿볼 수 있었다. 그 과정 중에는 미처 더 옳은 번역이 아니었음을 부끄럽게 고백하는 장면도 있는데, 시행착오를 겪어 내면서 더욱 단단해지고 견고해져 가는 과정들이 솔직하고 인상적이게 펼쳐진다.

 

 

 

이 책은 번역가 이윤기 개인의 일상과 언어에 대한 철학, 소설가로서의 깊은 열망 등이 담겨 있지만 그를 보며 삶의 자세에 대한 생각이 특히 많이 들었다. 우선 그의 순수한 열정을 높이 사고 싶고, 세상이 말하는 정답에 대한 한 번 더 확인하고 질문을 던질 줄 아는 물음표의 수고, 이런 자세들이 거듭 생각나는 지점이 많았다.

 

 

즉 각자의 삶 안에서 스스로 만든 규칙들을 좀 더 세밀하게 분화해서 생각하고 분류해보는 부지런함 같은 것, 그것은 깊은 애정이라는 윤활유로 가동되는 일일 것이다. 이런 열정 같은 것은 학자의 머릿속에서나 가동되면 될 일 아닌가 싶지만, 이는 사실 살아가는 모든 사람들의 알아가는 태도에서도 발휘되는 똑같은 일들이다.

 

우리가 알아간다는 것은 이미 알고 있는 것의 확인뿐만 아니라, 전혀 알지 못했던 세계로의 첫 관문을 무사히 지나가는 두려움의 자청, 이 번거로움의 끊임없는 반복이라는 생각을 해본다. 이것이 계속될 때 무궁무진한 추진력으로 발휘되어 성장하게 될 것이다.

 

 

 

어떤 한 사람의 작은 호기심이 어떤 씨를 뿌리고 뿌리가 내려 자양을 얻게 되는지, 수많은 가지가 솟고, 거대한 줄기를 이루는 나무에 이르러 풍경을 이루는지, 우리는 이 책 이윤기의 삶에서 엿 보며 배울 수 있다.

 

 

 

 

그가 부리는 언어들이 어쩌면 그토록 풍요로운 아름다움을 선사해 주었는가, 수많은 언어의 가지 위에 핀 꽃과 열매의 그늘 아래에서 새삼 얼마나 큰 선물의 윤택함을 얻는 일인지 생각해본다. 그것은 특정한 사람만이 할 수 있는 거창한 일이 아니라 누구나 익숙하게 해 온 일, 그러니 좀 더 알고자 함을 더 부리면 될 일인 것이라는 희망을 준다. 힘을 내고 싶다.

 

 

 

 

 

 

 

* 알라딘 공식 신간평가단의 투표를 통해 선정된 우수 도서를 출판사로부터 제공 받아 읽고 쓴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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꼼쥐 2013-12-31 11:5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좋은 리뷰 선정 축하드려요.

모쪼록 이 행운이 2014년에도 쭈~~욱 이어지시길...^^

puriul 2014-01-03 14:4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꼼쥐님 감사합니다.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서점]을 읽고 리뷰 작성 후 본 페이퍼에 먼 댓글(트랙백)을 보내주세요.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서점
시미즈 레이나 지음 / 학산문화사(단행본) / 2013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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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을 모아둔 곳이라면 그곳이 도서관이든 서점이든 북카페든 자주 들러 보고 싶어 진다. 좋아하는 이유는 각기 다르지만 이 중 으뜸이라면 도서관 가는 것을 꼽고 싶다. 집이랑 가까운 이유가 가장 크지만 무료로 책을 빌려 볼 수도 있고, 공휴일만 아니라면 밤 열시까지 언제든 가서 원하는 만큼 시간을 보내다 오기 좋은 곳이다.

그리고 도서관 만큼이나 서점 역시 자주 들러 새로 나온 책을 두루 살피는 일을 게을리 하지 않을 수 없는 곳이다. 앞으로 읽으면 좋을 나만의 리스트를 만드는 재미도 쏠쏠하고, 소장하고 싶은 책을 직접 사보는 설렘은 실로 큰 행복감을 안겨 준다.

두 곳 어느 곳이든 공통의 정서가 있어서 좋고, 책 읽는 광경을 원 없이 볼 수 있다는 점도 큰 매력으로 다가 온다언제나 사람이 책에 집중하고 있을 때의 굳게 다문 입을 보게 될 때마다 매력적이라는 생각을 자주 했다. 책이 있는 곳만이 풍기는 특유의 정적인 냄새가 좋고, 그곳을 이루는 남다른 의미들은 끊임없이 들락날락 거리는 사람들에게서 부여되는 에너지일지도 모르겠다. 마치 책으로 하여금 사람이 본연의 매무새가 더욱 견고하게 매만져지고, 공간으로서의 서점도 그 시간의 축적에 따른 아우라가 만들어 지는 것 같다.

 

 

 

 

 

내가 가는 도서관이나 서점에서 많은 책을 마음껏 보고 사거나 빌릴 수 있는 일은 그 자체로서 행복감을 주지만, 공간이 주는 매력을 크게 인식해 본 일이 없다는 것은 이 책을 보고 오히려 인식되는 점이 흥미로웠다. 앞에서 언급했듯이 가령 책에 열중하는 사람들과 함께 있다는 것만으로도 공간이 주는 자체의 매력이 생겼기 때문에 따로 공간적 매력에 대한 상상은 해본 일이 없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 책을 보니 우리가 이루지 못한 공간의 역사적 의미에 대한 부재가 느껴졌고 세계 곳곳의 서점 여행이 참 반가워졌다.

물론 디자인 서적을 파는 어느 서점에 들렀을 때 공간이 참 예쁘고 개성이 있구나 하는 인상이 없지 않았지만 단순히 서점이 책을 파는공간을 넘어서 어떤 문화 공간으로서의 자리매김을 하고 있구나 하는 장소는 언뜻 생각나지 않은 아쉬움이 있다. 아기자기한 북카페들이 늘어가고 있지만, 서점이 자체로서의 기능을 충실히 하는 곳은 아쉽게도 부재한 것이 사실인 것 같다. 이는 물론 출판계의 소비 여건이 부실한 이유가 크긴 할 것이다. 그나마 우리에게 익숙한 서점의 풍경이란 특유의 오래된 책 냄새와 허름한 책장이 세월 만큼이나 책을 누르고 있는 헌책방의 낭만 정도가 비슷한 정서로 떠오를 뿐이다. 아쉬운 일일까?   

 

 

 

 

 

공간이 주는 큰 의미를 부여해서 세계의 이곳저곳 서점을 구경해 보는 여행은 그래서 꽤나 흥미로웠다.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서점>은 짧지만 강렬하게 그 서점을 이루는 역사와 디테일한 특징들, 전체를 조망한 사진들이 함께 소개되는 책이다. 어떤 곳이든 모두가 특별한 역사적 사건으로 이루어진, 그래서 모두 특별하지 않을 수 없고 그곳의 명맥이 어떻게 유지되어가는지 흥미롭게 지켜보고 또 상상해갈 수 있는 점이 좋았다.

책을 사랑한 어떤 개인의 열망이 어떻게 서점의 역사를 이루었는지, 그래서 그곳의 문화를 이루는 훌륭한 을 마련하고 또 어떻게 비전을 제시하면서 유지되어 나가는지 계속해서 지켜보며 배우고 싶어진다. 규모의 방대함에 혀가 내둘러지는 서점도 있고, 소박함에 지극히 삶의 한 모퉁이처럼 보이는 서점도 각기 다른 이유로 사랑할 수 있을 것 같다. 사람들은 저마다의 서점에 들러 자신의 인생을 풍요롭게 가꾸는 샘물을 긷는 것처럼 보인다.

 

 

 

각 공간의 사연, 개성만큼이나 그곳에 들르는 사람들이 뿜어낸 양질의 에너지들이 그곳을 이루는 문화를 형성한다. 서점은 그곳을 공유하는 사람들과 같이 만들어가는 공동의 장이며 수 만권의 책이 서로 다른 이야기를 품듯, 각자 읽은 책을 마음에 품고 또 어떤 희망을 꿈꾸게 될지 수만가지의 몽실몽실한 기대감으로 부풀게 해준다. 이런 여운을 안고 나만의 서점으로 가고 싶어지는 겨울이다.  

 

 

 

 

 

 

 

* 알라딘 공식 신간평가단의 투표를 통해 선정된 우수 도서를 출판사로부터 제공 받아 읽고 쓴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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