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렌지 다섯 조각
조안 해리스 지음, 송은경 옮김 / 문학동네 / 2004년 11월
품절


어머니와 내가 왜 서로 그렇게 겨루었는지 나도 모르겠다. 단순히 내가 성장기여서 그랬는지도 모른다. 청소년기로 접어들자 어린 나를 벌벌 떨게 만들었던 그녀가 다른 각도에서 보이기 시작했다. 그녀의 머리는 희끗희끗해졌고 입가에도 주름이 잡혔다. 나는 어머니가 발작이 시작되면 무기력하게 자기 방으로 물러날 수밖에 없는 늙은 여자에 불과하다는 것을 한줄기 경멸감과 더불어 깨달았다.-85쪽

사과 따위는 하지 않았다. 어머니에게 상처를 주고 싶었다. 아이들이 잔인하다는 옛말은 틀림없는 얘기다. 아이들이 목적을 가지고 덤벼들 때는 어른보다 더 독한 법이다. 게다가 우리는 약점의 냄새를 맡았다 싶으면 무자비하게 덤벼드는 어린 야수들이었다.-281쪽

아, 어머니는 술을 제대로 이해한 사람이었다. 향이 깊어지는 과정과 발효과정 - 병 속에서 끓어오르며 원숙해지는 생명력, 어둠 속에서 서서히 남몰래 이루어지는 변화를 그녀는 정확히 알고 있었다. 마치 마술사가 종이 꽃다발로 마술을 부리듯 향기의 꽃다발 속에서 새로운 포도주가 탄생하는 것이다. 아, 그녀가 시간과 인내로 우리를 대했더라면. 이는 과일나무와 다르다. 그녀는 그 점을 너무 늦게 깨달았다. 아이를 멋지고 믿음직한 어른으로 만들어낼 수 있는 비법은 존재하지 않는다. 그녀는 그 점을 알았어야 했다.-325쪽

죽음이란 것은 본래 집 안 가구 속에 숨에 있던 생쥐들을 불러내게 마련인데, 레 라뷔즈에서 튀어나온 생쥐들은 질시와 위선, 거짓 동정과 탐욕이었다.-486~487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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