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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성의 타임슬립
필립 K. 딕 지음, 김상훈 옮김 / 폴라북스
"이 아름답도록 어지러운 어둠!"
이 SF에는 이런 것들이 없습니다
:광선검, 포톤 캐논, 염동력, UFO, 강화복(파워 슈츠), 항성간 히치하이킹, ‘포스가 너와 함께 하길’
대신 이런 것들이 있습니다
:신경안정제, 수면제, 각성제, 정신분열, 환각, 지각능력이상, 비선형적인 시간, ‘잠의 층層’
올해 가장 놀라운 기획 중 하나인 필립 K. 딕 걸작선. 그 중에서도 영예의 시리즈 1번을 차지한 <화성의 타임슬립>은 PKD의 특징이 확연히 드러나는 작품이다. 현실법칙이 어떤 측면에서부터 무너지기 시작하고, 그 균열에 빠진 인간은 더 이상 현실과 현실 아닌 것을 분간할 수 없다. 이 모호함은 ‘현실과 비현실 중에 보다 옳은 것’을 선택할 수 있는 권리조차 박탈하며, 그야말로 ‘진짜이기도 아니기도 한’ 이 존재론의 진흙탕은 PKD의 전매특허다. 때로 마술적 리얼리즘이나 고딕-환상소설에서도 이런 시도를 만날 수 있으나, PKD의 경우에는 불안의 급이 다르다.
역설적이게도 그 파급력은 <화성의 타임슬립>이 환상모험소설이 ‘아니’라는 점에서 온다. ‘1994년의 화성 식민지’는 키치적으로 느껴질 정도로 비현실적인(그리고 이미 틀린) 설정이지만, 설정의 거리감과는 달리 그 내부 묘사는 21세기 문명사회의 그것과 무척 닮아 있다. 자본과 정치와 권태와 고독이 노골적으로 지배하는 곳. 따라서 21세기의 독자들에게 이 소설은 키치적인 외면으로 위장한 함정이다. 달나라보다도 먼 화성의 이야기를 읽던 독자들은 어느 순간 자신의 현실까지 모래지옥 속으로 끌어당겨졌음을 느끼게 되며, 결국 PKD가 방아쇠를 당겨 현실을 폭파하는 순간에 함께 휘말릴 수밖에 없을 것이다. 그 순간 펼쳐지는, 아름답도록 어지러운 어둠. 이 황홀한 함정 속으로 발을 밀어넣을 수 있는 행운을 드디어 우리도 얻게 되었다.
- 소설 MD 최원호
필립 K. 딕 걸작선 1차 발매분 나머지 두 권:
<죽음의 미로>
<닥터 블러드머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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