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떤 정신과적 증상을 호소하는 환자를 마주하면, 자살 위험이 있는지를 꼭 파악해야 한다고 우리 의사들은 배운다. 진료실에서 한숨을 쉬거나 눈물을 보이거나 우울해 보이거나 기운이 없어 보여도, 자살 위험이 있는지 파악해야 한다고 배운다. 자살에 대한 생각은 넌지시 물어서는 안 되고, 아주 명료하고 구체적으로 질문해야 한다.

아… 머리가 울렸다. 맞다, 그렇지. 과호흡은 살고 싶어서 하는 거지. 의사가 되고 나서 정말 처음으로 거기에 생각이 미쳤다.

나는 과호흡을 해결하는 좋은 방법을 프리다이빙 자격증을 따면서 배웠다. 프리다이빙은 숨을 참고 물에 들어가야 하는데, 조금이라도 과호흡을 하고 들어가면 뇌가 저산소증에 빠지는 상황을 인지할 수 없어 결국 블랙아웃이라고 하는 저산소증 상태에 빠지게 된다. 그래서 프리다이빙 전에는 반드시 들숨과 날숨을 1:2 비율로 하도록 준비시킨다. 날숨을 천천히 하여 체내에 이산화탄소를 쌓이게 하고, 그럼으로써 호흡 충동을 느끼게 하려는 것이다.

사람은 산소를 마시고 싶어서가 아니가 이산화탄소를 뱉고 싶어서 숨을 쉬려고 하기 때문이다.

내 눈동자를 보고, 나와 같은 속도로 숨을 들이쉬고 내쉬도록…. 아무 말도 필요가 없다. 눈동자로 전달하는 것이 더 강력하다.

나는 첫 프리다이빙을 끝내고서, 친구에게 부탁했다. 혹시라도 내가 자살하고 싶어 하는 것 같을 땐 프리다이빙에 데려와달라고. 그러면 내가 숨 쉴 수 있다는 게 얼마나 고맙고 대단한 일인지 다시 깨달을 것 같다고.

신환이 입원하셨다는 병동 간호사의 콜을 받고 나는 응급실 진료기록과 검사 결과부터 찾아보았다. 응급실에서 촬영한 흉부방사선 검사 결과를 보니 폐암이 의심되었다. 입원 수속이 끝나자마자 흉부 CT를 찍었다. 다음 날 낮이 되어야 나오는 영상의학과의 판독을 기다릴 필요도 없었다. 이건 폐암, 상당히 진행된 폐암이다. 그것도 폐암이 상대정맥을 짓누르고 있어서 얼굴이나 팔에서 심장으로 내려가는 피가 정체되어 있는 ‘상대정맥증후군’이었다. 이것은 종양내과의 응급 상황이다.

할머니는 산소를 공급하는 콧줄을 코에 끼고 가쁜 숨을 쉬며 병실 침대에 기대어 계셨다. CT를 확인한 내가 환자를 만나기도 전에 미리 내린 오더였다. 산소를 공급할 것, 기대어 앉으시도록 할 것, 팔에 잡힌 수액 라인을 뺄 것. 나는 얼굴과 상체 쪽으로 가는 피를 최대한 줄여서 할머니를 편하게 해드리려고 했다.

아, 독거노인…! 순간, 독거노인에 따라붙는 여러 가지 이미지들이 떠올랐다. 돌봐주는 사람 없음. 책임지는 사람 없음. 관심 있는 사람 없음. 아무것도 결정할 수 없음. 그렇지만 뭔가 할머니 신상에 문제라도 생기면, 지금까지 아무 관심도 없던 가족들이 나타나 세상에 없는 효자인 양 행세를 하지. 그래서 의료인들은 환자분이 ‘독거노인’이라고 들으면 난감 일색이다.

폐암 덩어리가 상대정맥이라는 큰 정맥 혈관을 누르고 있어서, 머리로 올라온 피가 심장으로 되돌아가는 길이 좁아져 얼굴이 붓고 숨이 찬 거라고. 이 상황은 폐암으로 인한 응급 상황이라고. 그래서 오늘 밤에라도 당장 큰 대학병원으로 가셔야 하고, 그건 제가 지금 바로 알아봐드리겠다고 했다.

할머니는 차분하게 들으시다가 얼핏 눈시울을 적셨고, 나는 엉엉 울면서 설명을 하고 있었다. 마치 나이 든 내 미래를 보는 것 같아서 말하는 동안 울음이 멈추질 않았다.

폐암이라고 정확히 말씀드리기를 잘했다. 그분의 생명력을 믿기를 잘했다.

나도 저렇게 나이 들어갈 수 있을까? 폐암의 응급 상황이라는 설명을 듣고 오히려 의사를 위로하는 할머니, 의연하고 차분하게 죽음을 준비하던 모습…. 혈연으로 맺어지지 않았어도 절에서 서로를 돌보고 돌봄 받으면서 공동체로 생활해온 분이었다. 그 관계가 있기에 할머니는 암 진단을 받는 상황에서도 의연하실 수 있는 게 아닐까.

나는 단 하루 환자와 의사 관계로 만난 그 큰스님 할머니께 크게 반하고 또 배운다.

소독을 끝내고 이제 새 기저귀를 반듯하게 깔아서 환자분의 가벼워진 다리를 들고 기저귀를 잘 채워드리려 했는데, 다 채운 듯하여 만지작거리다 보니 앞뒤를 잘못 채운 것 같다. 아이가 없는 나는 아이들의 기저귀도 별로 갈아본 적이 없어, 초보 티가 확 났던 것이다.

나는 기저귀 가는 일이 하찮다고 절대 생각하지 않는다. 천추부의 욕창은 눌리지 않도록 자세 변화를 시켜주는 것과 위생 관리가 핵심이다. 물론 의료인들이 죽은 조직을 적절히 제거해주어야 하지만, 기본은(그리고 앞으로의 예방을 위해서도) 일상생활에서 이루어져야 하는 것이다. 그리고 그 핵심에는 깨끗한 기저귀가 있다.

이날같이 나 이외에 아무도 할 사람이 없는 상황에선, 일이 손에 익지 않아 거꾸로 채우는 실수를 하면서라도 어쨌든 해야 하는 일이었다. 누구라도 그 장소에 그 시간에 있었다면 해야 하는 일. 앞으로도 왕진을 지속한다면, 지금까지 내가 한 번도 해오지 않았던, 하지만 환자분의 건강을 위해 정말 중요한 기본적인 것들을 하나하나 하게 되는 이런 날들이 더해지겠지.

만화 『헬프맨』을 읽으면서 내 생각이 깨졌다. 일본 만화가 쿠사카 리키의 작품인 『헬프맨』은 일본 개호보험(우리나라의 장기요양보험과 비슷한 것)에 대한 내용을 다루는데, 어떤 것이 존엄한 돌봄이고 무엇이 웰 에이징well-aging인가에 대해서 많은 생각을 하게 한다.

이 만화의 주인공, 어리숙하지만 다정한 요양보호사 온다 모모타로는 ‘기저귀를 가는 것이야말로 간호·간병의 꽃’이라고 얘기한다. 한 신입 직원이 돌봄 시설에서 일하고는 싶지만 기저귀는 갈고 싶지 않다고 하자, 모모타로는 "누구도 자신의 은밀한 부위를 초보자에게, 그것도 신뢰할 수 없는 사람에게 맡기고 싶어 하지는 않아"라고 말한다. 그러니까 기저귀를 가는 것은 그만한 신뢰, 그만한 익숙함, 그만한 관계를 필요로 하는 일이라는 것이다.

나는 그만한 관계, 그만한 친숙함이 아닌데도 그분의 공간으로 너무 훅 들어갔던 게 아닐까. 누구에게나 다른 사람과 맺고 싶은 관계라는 것이 있는데, 그분도 ‘자신의 담당 주치의’와 맺고 싶었던 관계라는 것이 있는데, 그분이 설정한 그 관계의 선을 내가 너무 순식간에 아무렇지 않게 넘어버렸던 것이 아닐까.

그때 내가 어떻게 했으면 선을 넘는 불편함을 드리지 않으면서 부드럽게 선을 타고 넘을 수 있었을까, 다시 생각해보게 된다. 그렇게 넘은 선 밖으로 또 새로운 관계가 열릴 수도 있으니까.

수술실보다 병실을 구하는 것이 더 힘들기 때문이다.

결과적으로 경제력이 있는 사람들의 수술이 주로 앞당겨지는 것이다. 의료가 모두에게 평등해야 한다고 주장하던 와중에 엄마의 수술이 당겨지는 것을 본 나는 다행스러운 마음 한편으로 그런 기회를 갖지 못한 다른 사람들에게 미안한 마음이 들어 묘한 기분이었다.

교수님과 마취과 선생님들의 배려로 나는 엄마의 수술방 안에 들어가 전신마취 전까지 엄마의 손을 꼭 잡아드릴 수 있었다. 대장암 수술을 앞두고 불안한 와중에도 미래에 의사가 될 딸의 손을 잡고 의식의 저편으로 넘어갈 수 있었던 엄마. 마취된 엄마의 손에서 힘이 빠져나가자, 교수님은 눈짓으로 나가서 기다리라고 하셨다.

학생에 대한 걱정과 애정이 묻어났다. 나는 다시 주저앉을 뻔했다. 이번에는 허탈해서. 아무리 학생은 공부가 중요하고 의대 본과 3학년은 연말고사가 제일 중요하다지만, 교수님, 그러시면 안 되는 거였어요. 제가 저 스페시멘을 보고 대체 뭘 알겠어요? 저는 지옥과 천당을 오갔다고요! 내가 허탈한 표정으로 터덜터덜 수술장 밖으로 걸어 나왔을 때, 십수 명에 달하는 우리 가족들이 모두 울부짖으며 기다리고 있었다. 이 많은 사람들을 그렇게 놀라게 하셨다고요!

엄마는 퇴원할 때까지 계속 1인실에 입원해 계셨다. 가족들이 하지 말라는데도 스스로를 ‘달걀 껍데기 암 환자’라고 부르셨다. "나는 이제 달걀 껍데기처럼 깨지기 쉬운 사람이야. 너희 다섯 남매 낳아서 키우느라 너무 힘들었고 속이 다 상한 것 같아. 이제 장까지 잘려나가서 속이 더 비었어. 속 빈 달걀 껍데기 같아. 다들 그걸 알아줬으면 해." 자칫 우리가 ‘계란 껍데기’라고 잘못 말하면, 항상 ‘달걀 껍데기’라고 정정해주시곤 했다. 그 두 단어가 무슨 차이가 있느냐 물으면 ‘달걀 껍데기’가 발음이 더 예쁘고 더 나약하게 들린다고 하셨다.

1인실 입원료로만 천만 원 정도가 나왔다. 딱 예상했던 보험료만큼. 그 일로 인해 나에게 대학병원 1인실은 정말 비싼 곳, 아주 특별한 곳이라는 이미지가 남았다. 그리고 1인실에 입원할 수 있는 경제력이 있으면 수술 일정이 앞당겨질 수 있다는, 우리 가족에게는 다행이었지만 씁쓸한 자본주의 사회의 단면인 듯도 한 공공연한 병원의 비밀 한 가지도 알게 되었다.

엄마는 독시사이클린을 복용하느라 너무 고생하셨다. 이 항생제는 울렁거리고 소화가 안 되는 부작용을 일으키는데, 나도 인도 배낭여행을 갔을 때 말라리아 예방 목적으로 하루에 한 알씩 먹어본 적이 있다. 처음 며칠은 먹고 나면 울렁거리는 정도였는데, 1주일쯤 지나고 나자 먹기 전부터 슬슬 기분이 나빠졌다. 아직 약을 먹지 않았는데도 울렁거리는 듯한 느낌이 들었고, 다가올 울렁거림이 예상되어 머리가 지끈거릴 지경이었다. 하루에 한 알로도 여행의 설레는 기분을 충분히 망칠 수 있는 약이었는데 엄마는 그 약을 고용량으로 하루에 두 번씩 꼬박꼬박 몇 달을 드셔야 했으니, 고충이 심했을 것이다.

몇 달을 꼬박 독시사이클린을 드셨지만 엄마의 암은 전혀 줄어들지 않았다. 그렇다고 커지지도 않았다. 엄마는 ‘싸구려 약’을 탓하기 시작하셨다.
"내가 약값이 780원 나왔을 때부터 알아차렸어야 했어. 희귀한 암이라니 희귀하고 비싼 약, 좋은 약을 먹었어야 했는데, 약이 너무 쌌어. 아무 효과도 없잖아. 다른 집은 항암 치료 한다고 집안 기둥뿌리 뽑힌다는데, 나는 암 환자 대우를 제대로 못 받네. 못 받아도 너무 못 받는 것 같아 서럽기도 해."

비싼 약이 좋은 약이라는 믿음은 환자들에게서 자주 보인다. 플라시보 효과라고 실제 아무런 약리적인 효과가 없어도 환자의 믿음만으로도 약효가 나타나는 경우가 있는데, 진통제나 영양제 같은 종류에서 플라시보 효과가 특히 많이 나타난다. 이럴 때는 약이 비쌀수록 효과가 좋다. 한때의 나는 이 효과를 경시했었다. 믿지도 않았다.

전공의 때 파견 나갔던 지방 의료원에서 수액을 맞던 환자가 ‘이거 말고 좋은 거’를 계속 요구했다. 장염으로 인한 탈수를 교정하기 위해 수액을 맞으시던 참이었다. 대체 어떤 걸 드려야 할지 몰라 담당 과장님께 말씀드렸더니, ‘색깔 있는 비타민을 섞어주라’는 오더를 주셨다. 노란색 비타민이 수액에 섞여 들어가자, 아직 약효가 나타날 시간이 아닌데도 환자의 표정이 평화로워지고 얼굴에 생기가 돌기 시작했다.

과장님은 젊은 의사의 치기를 이해해주셨다. 그러면서 말씀하셨다. 내 주치의가 나의 요구에 귀를 기울여주는 것, 나의 불편과 통증을 해결하기 위해 뭔가 알 수 있는(환자에게 직접 보이는) 시도를 해주는 것, 그 관계성의 확인이 환자에게는 필요한 것이라는 얘기였다. 꼭 의학적으로 필요한 치료만이 환자가 필요로 하는 전부는 아니라고. 플라시보 효과라고 우습게 보고 무시할 게 아니라, 그걸 어떻게 환자에게 더 도움이 되게 활용할지를 고민해야 한다고 말이다.

뒤통수를 세게 맞은 것처럼 얼얼했다. 싸구려 약이라 효과가 없는 게 아니냐며 서운해하셨던 내 엄마에게 필요했던 건 실제로 비싼 약, 희귀한 약이 아니라 천만 원 어치의 위로, 천만 원 어치의 사랑이었을지도 모르겠다. 사랑해요, 달걀 껍데기 엄마.

이 별것 없는 날이 오랫동안 기억에 남은 것은, 2년에 걸친 엄마의 암 투병기로 약간은 스산해져 있었던 가족 분위기가 완전히 예전으로 돌아왔다고 느꼈기 때문인 것 같다. 그리고 엄마가 대장 수술에 이은 생리적인 부작용을 가족들에게 거리낌 없이 털어놓을 수 있을 정도로 회복되었다고 느꼈기 때문인 것 같다.

여자들은 병을 앓는 순간에도 ‘여성성’을 잃지 않도록 영화나 소설 속에서 그려졌다. 암 투병이 얼마나 치열한 투쟁의 현장인데, 어떤 암을 앓을지 지정되는 바로 그 순간부터 생명력을 박탈당하고 초상화처럼 박제되었다.

여주인공의 이미지들이 실제 투병 중인 여성들에게 자기 신체 이미지에 대한 훼손으로 작용하고, 생리적인 현상들을 잘 호소하지 못하게 하는 굴레로도 작용했다는 것을 부인할 수 없다. 여성은 심지어 아플 때조차 여성스럽게 아파야 한다니!

나는 엄마가 겪고 계셨던 대장 절제의 합병증을, 특히나 배설과 관련한 생리적인 이야기들을 이토록 솔직하고 가감 없이 들을 수 있어서 오히려 좋았다. 그런 얘기를 스스럼없이 나눌 수 있는 딸과 엄마 사이라서 행운이었다.

드라마를 보는 동안 사무치게 그리웠다. 마스크를 쓰지 않고 맨 얼굴로 이야기를 나누는 의사와 환자들. 저렇게 가까이에서 서로의 눈을 들여다보고 신뢰를 나누는 그들. 온 얼굴로 안타까움과 기쁨을 드러낼 수 있었던 시절. 이제 다시는 우리에게 돌아올 수 없겠지?

여러 다양한 과의 업무를 배워야 하는 가정의학과의 특성상 3년차인 치프 연차가 되어서도 매달 다른 과를 돌아다니게 되었다. 달마다 새로운 환경, 새로운 동료들과 적응하는 것이 힘들다는 이들도 있었지만 다행히도 나는 떠돌아다니는 것을 좋아했다. 그달은 산부인과로 파견 가는 달이었다.

힘들었다는 얘기를 너무 자주 듣다 보면, 익숙하다 못해 식상해지는 구석이 있는 법이니까.

산모들이 겪는 소화불량, 두통, 우울과 불안, 피로, 입덧 등은 아주 충격적이었다. 엄마가 입덧이 심했다고 하실 때는 으레 그런가 보다 싶었지, 얼굴이 허옇게 질릴 정도일 줄은 몰랐던 것이다. 이렇게까지 힘든 거였어? 그리고 기형아나 유산에 대한 불안이 이렇게 큰 거였어? 임신이란, 도저히 어이쿠야, 싶었다.

산부인과 파견이 끝난 후 가끔 가정의학과 직장 동료들의 태아 얼굴 3D 사진을 찍어줄 일이 있었다. 아가의 얼굴을 들여다보다가 또 피곤에 지친 친구의 얼굴을 보다가 나도 문득, "잘 키웠네, 진짜 고생했다" 하는 말이 목까지 차올랐다. 괜히 얘기를 꺼냈다가 울컥하여 수습하지 못할까 봐 참곤 했지만.

어떤 남자가 부인에게 무통분만을 하지 못하게 했다는 얘기를 듣고 우리는 분개했다. 그 남자는 자신의 부인이 신께서 내려주신 성스러운 산고도 없이 아이 낳는 걸 받아들일 수 없다고 했다. 자신의 아이가 태어나는 그 절정의, 환희의 순간이 현대 의료 기술로 오염되는 것 같다나 뭐라나. 무통주사가 아이의 탄생이라는 기적의 의미를 퇴색시키는 것 같다나 뭐라나. 뭐 이런 자식이 다 있어?

산모가 거부할 수는 있다. 똑같은 이유로 거부하는 산모들도 있다. 그래도 그건 본인이 감내하겠다니까 그러려니 하는 것이지, 감히 남편이 반대할 수는 없는 문제다. 차라리 돈이 없어서 무통분만을 하기 힘들다고 하면 안타깝지만 이해는 간다.

우리는 언니의 입원실에 모여 앉아 그 남편 욕을 했다. 그런 자식은 마취도 안 하고 사랑니를 뽑아버려야 한다고 했다가, 마취 없이 개복 수술을 해야 한다고도 했다. 여성들이 겪어내야 하는 힘든 순간에 대해서만 어찌나 ‘자연화’하려는 시도들이 넘쳐나는지. 임신·출산의 고통은 자연스러운 것이라는 둥, 생리통은 자연스러운 것이라는 둥, 심지어 여자는 자연 미인이 최고라는 둥…!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