치매에 걸리자 건망증이 심해져 제가 한 일이 확실히 기억나지 않았습니다. 그렇지만 주위 사람들에게 제 상태를(너무 빨리) 알리고 싶지는 않았습니다. 그래서 사람들 앞에 나설 때는 아무렇지 않은 것처럼 행동했습니다. 마음속으로 ‘나는 괜찮아, 아무렇지 않아’ 하고 되뇌면서 스스로 정말 그 말을 믿어 버렸습니다. 그러자 나 자신에게도, 다른 사람에게도 나름 괜찮은 행동을 한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거짓말이긴 하지만 남에게 해를 입히는 것도 아니고 스스로에게는 의지를 다지게 해 주니, 그러한 노력을 한다는 건 오히려 좋은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결코 해서는 안 되는 일이 있습니다. 바로 자동차 운전입니다. 운전만은 절대로 하지 않아야 합니다.

처음에 타던 차종은 도요타 마크II였고 그 다음은 벤츠였습니다. 평소 사치를 하지 않는 제가 ‘이것만은’ 하는 심정으로 원하는 자동차를 말했더니 아내도 그때만큼은 두말 않고 찬성해 주었습니다.

지금은 걸어서 갈 수 있는 곳은 걸어가는데 자꾸 넘어지는 일이 많아져서 가급적 택시를 이용하고 있습니다.

2017년 3월에 시행된 개정 도로교통법에서는 75세 이상인 자가 면허를 갱신할 때는 인지기능 검사를 받아 ‘치매 우려’가 있다고 판정되면 의무적으로 의사의 진단을 받아야 합니다. 그전까지는 치매 우려가 있다고 판정되어도 위반 사실이나 사고 이력이 없으면 그대로 운전을 계속할 수 있었습니다. 생각만 해도 무서운 일이었지요. 그러나 지금은 검사도 의무화되었고, 의사가 치매라고 진단을 내리면 운전면허는 자동 취소 또는 정지됩니다.

경찰청에 따르면, 2018년 한 해 동안 인지기능 검사를 받은 75세 이상의 고령 운전자 216만 5349명 가운데 2.5%에 해당하는 5만 4786명이 ‘치매 우려’ 판정을 받았다고 합니다. ‘인지기능 저하 우려’인 경우를 합하면 약 27%가 인지기능의 쇠퇴로 밝혀졌습니다.

저처럼 고령 운전자에 의한 사고가 자주 발생한다는 사실을 인식해 스스로 운전면허증을 반납하는 사람도 증가하고 있습니다. 다만, 버스나 전철 등의 공공 교통기관이 적은 지역에서는 운전을 하지 않고는 장 볼 때나 통원 치료를 다닐 때 등 일상생활에 지장이 생길 수 있습니다. 따라서 자동차를 운전하지 않고도 생활하기에 불편하지 않은 지역 시스템을 만드는 것이 시급합니다.

어릴 때부터 치매에 대해 올바른 지식을 알려 주고 이해할 수 있는 기반을 마련해 주는 일은 중요합니다.

《할아버지가 나를 못 알아봐요Grandpa doesn’t know it’s me》라는 오래된 책이었는데, 일본에서는 《잊지 않을게요, 할아버지》라는 제목으로 1990년에 출간되었습니다.

‘가족과의 따뜻한 교류야말로 치매 노인에게 반드시 필요한 영양분입니다’라는 취지의 서문을 쓰기도 했습니다.

옛날에 우리 가족이 살던 집 근처에 아내의 부모님이 살고 있었습니다. 어느 날 밤 아내와 저 그리고 둘째 딸이 식사를 하러 갔는데 알츠하이머형 치매에 걸린 장인어른이 이렇게 말씀하시더군요.
"여러분은 누구시지요? 누군지 알 수가 없어서 곤혹스럽습니다."
너무 불안해하는 그 모습에 ‘이렇게까지 증상이 심해진 건가?’ 하고 아내와 저는 충격을 받아 아무 말도 하지 못했습니다. 치매에 대해 연구하던 저였지만, 당장 가족의 그런 모습을 보니 순간 머리가 하얘졌습니다. 어떻게 할까, 뭐라고 대답해야 하나, 당황해서 답을 찾지 못하고 있을 때 뜻밖에도 딸아이가 외할아버지에게 이렇게 말했습니다.

"할아버지, 우리를 못 알아보시는 것 같은데 우리가 할아버지를 잘 알고 있으니까 괜찮아요. 걱정 안 하셔도 돼요."
장인어른은 손녀딸의 말을 듣고 무척 안심하시는 듯했습니다.

이럴 때 "왜 못 알아보세요?", "대체 왜 그러시는 거예요? 정신 차리세요" 같은 말을 하면 안 됩니다. 그러면 상대는 오히려 더 혼란스러워지고 불안한 마음만 커질 뿐입니다.

게다가 치매에 걸리면 주변 사람들은 돌연 지금까지와는 다른 사람을 대하듯이 나무라거나 아이 취급을 하기 쉽습니다. 하지만 당사자는 자신이 별로 달라지지 않았다고 생각합니다. 그들의 입장에서 자신이 살고 있는 세계는 예나 지금이나 연속되어 있습니다.

실수를 저지르거나 잘못하는 일은 늘어나겠지만, 치매가 아닌 사람들도 실수는 늘 하지 않습니까. 그러니 치매에 걸린 사람을 무조건 이상행동을 하는 사람으로 생각하고 나무라지 않았으면 좋겠습니다.

지역 전체가 잘 살펴봐 주고 도움이 필요할 때는 손을 내밀어 주는 것. 서로를 소중히 여기고 따뜻한 마음으로 인연을 쌓으면서 안정감을 나누는 것이 바로 지역 케어라는 것을 다시 한번 말하고 싶습니다.

수요회는 대략 13년 동안 운영하다 그 막을 내렸습니다. 그즈음에는 행정 조치도 제법 시행되어 저로서는 어느 정도 제 역할을 끝냈다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악전고투하면서도 데이케어를 시작했던 덕분에 치매 당사자와 가족들의 고민과 괴로움, 슬픔 그리고 희망을 함께 나눌 수 있었습니다. 진찰실 안에서만 일할 때는 전혀 알 수 없었던 깨달음이었고 그때로부터 정말로 많은 것을 배웠습니다.

저는 주치의로서 그를 마주했지만 당시는 치매에 관한 약도 없었던 때라 진료를 하는 내내 의사로서 부끄럽고 깊은 무력감이 덮쳐왔습니다. 결국 그분은 교회를 그만두고 고향으로 돌아갔고, 그때 제가 할 수 있는 일이라고는 그 지역의 전문의에게 소견서를 써 주는 정도밖에 없었습니다.

"내게는 멜로디가 없다. 화음이 없다."
"그 아름다운 마음의 울림은 이제 영원히 느낄 수 없는 것인가."
"여러 멜로디가 뒤섞여 미칠 것만 같다."

그의 메모에는 비통한 울부짖음과 고통스러운 마음의 신음이 고스란히 담겨 있었습니다. 그 기록을 읽고 저는 말을 잃었습니다. 치매 당사자의 마음을 내가 정말 이해했던 걸까 하는 생각에 사로잡혔기 때문입니다.

치매는 낫지 않습니다. 그래서 의사들 가운데서도 치매를 전공으로 선택하면 상당히 별난 사람으로 취급받습니다.

의사란 환자를 낫게 해야만 의미와 가치가 빛나는 세계입니다. 대부분의 의사는 노년의학과 치매 의료를 외면했습니다.

의사는 진단만 내리면 되는 게 아닙니다. 가능하면 치료 수단을 마련해서 "함께 해봅시다" 하고 환자에게 말할 수 있어야 진정한 진료라고 할 수 있으며, 그것이 의사로서의 본분을 다하는 일이라고 믿고 있습니다.

뇌내에는 아세틸콜린acetylcholine이라는 각성 작용과 활성화 작용을 하는 중요한 신경전달물질이 있습니다. 이 아세틸콜린을 만드는 세포가 알츠하이머형 치매의 뇌내에서는 감소합니다.

아세틸콜린 분해를 억제함으로써 아세틸콜린 감소를 막는 약제가 바로 도네페질염산염입니다. 도네페질염산염이 나온 뒤에 같은 기능을 가진 갈란타민이나 리바스티그민이 개발되었습니다. 이들 세 가지 치료제의 부작용으로는 위장 장애를 들 수 있습니다.

리바스티그민은 패치형 치료제이므로 부착한 부위의 피부 관리에도 주의해야 합니다. 또한 뇌내에는 신경세포를 흥분시키는 글루타민산glutamic acid이라는 신경전달물질이 있는데 신경세포가 계속 흥분하면 신경세포가 죽기도 합니다. 글루타민산의 작용을 억제하고 신경세포가 흥분사하는 것을 막아 진행을 늦추는 약제가 바로 메만틴염산염입니다. 주된 부작용으로는 현기증을 들 수 있습니다.

저는 뇌의 신경세포가 지칠 대로 지칠 때까지 약을 쓰며 파손되는 것을 늦추기보다는 있는 그대로를 받아들이는 편이 더 좋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하지만 노화에 수반되는 치매는 있는 그대로를 받아들이고 자신답게 살아가는 자세가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혈관성 치매를 제외하고, 알츠하이머형 치매를 비롯한 치매의 대부분은 ‘아밀로이드 베타amyloid-β’나 ‘타우Tau’라고 불리는 특정 단백질이 뇌내에 비정상적으로 축적되어 신경세포가 사멸함으로써 병의 증상이 나타난다고 알려져 있습니다. 따라서 이 특정 단백질이 뇌에 축적되지 않도록 하는 약제가 개발되었는데 그중에는 가능성이 보이는 약도 있긴 했지만 효과가 확실히 증명되지 않아 현재는 개발이 잇달아 중지되고 있습니다.

알츠하이머형 치매 증상이 나타난 시점에서는 이미 단백질의 축적으로 인해 뇌의 손상이 진행된 상태이므로, 수많은 신경세포가 사멸한 후에 원인 물질을 제어하려 해도 소용없다는 견해가 지배적입니다. 따라서 증상이 나타나기 전에 약을 투여해 효과가 있는지 없는지가 관건이 되고 있습니다.

톰 킷우드는 치매가 뇌에 생기는 두려운 병이라고 규정한 질환 중심의 견해를 ‘올드 컬처’라고 불렀습니다. 그리고 치매 당사자의 인격을 우선으로 여기고 일상생활을 유지할 수 있게 도움을 주면서 질 높은 케어를 바탕으로 치매를 새롭게 인식하는 견해를 ‘뉴 컬처’라고 불렀습니다. 또한 그는 의학 모델에 근거하는 기존의 사고관을 바꿔야 한다고 주장했습니다. 그가 쓴 책 《치매의 재인식》의 부제에도 ‘사람이 먼저다The person comes first’라는 그의 뜻이 적혀 있습니다.

톰 킷우드는 연구에서 치매 당사자를 세심히 관찰해 좋은 상태로 이끌어 주는 질 높은 케어의 중요성을 강조했습니다. 그는 환자의 상태를 오히려 나빠지게 하고 당사자의 존엄성을 해치는 행위로 아이처럼 취급하거나 속이는 일, 또는 할 줄 아는 일인데도 맡기지 않고 무시하거나 다급하게 재촉하는 일들을 대표적으로 꼽았습니다.

우리는 질병이나 장애에 주목하는 경향이 있지만 어디까지나 사람이 우선되어야 합니다. 물론 적절한 진단과 치료가 중요한 것은 두말할 필요도 없지요. 하지만 너무 질환 중심으로만 환자를 대하다 보면 ‘사람을 진찰한다’는 근본에서 멀어지고 맙니다. ‘올드 컬처’의 폐해를 막고 치매 의료에 ‘환자 중심’의 시점을 확고하게 뿌리내리려면 어떻게 해야 좋을까. 의사로서의 제 인생은 그러한 고민에 해답을 찾아나간 시행착오의 연속이었습니다.
의료에 종사하는 모든 사람은 ‘사람이 우선이다’라는 생각을 마음에 되새겨 겸허한 자세로 진료에 임해야 할 것입니다.

학생들에게 매우 엄격했기 때문에 제가 복도를 지나갈 때면 "하세가와가 나타났다!" 하고 학생들은 서로 눈짓으로 알려 주는 분위기였습니다. 그렇다고 해서 늘 호통을 치거나 꾸짖기만 하는 건 아니었습니다. 잘한 점이 있으면 진심으로 칭찬했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성 마리안나 의대는 틀림없는 저의 전쟁터였습니다. 그곳에서 저도 단련되고 실력을 쌓아 갔던 것입니다. 그래서 지금까지도 성 마리안나 의대에 가면 그때의 일이 아련히 떠오릅니다. 대학교 건물 안에 앉아서 시간 가는 줄 모르고 멍하니 있을 정도입니다.

"하세가와 선생님은 당신이 말씀하시듯이 의사들 앞에서는 엄하고 무서운 존재였지만 저희 간호사나 환자들에게는 정말로 다정다감한 분이었어요. 언제나 저희의 의견을 존중해 주셨지요.

외래에서 도무지 약을 먹으려 들지 않는 환자가 있었어요. 가족들이 어쩔 줄을 몰라 하자 하세가와 선생님이 ‘식사를 하고 나면 꼭 약을 드세요. 하세가와입니다’ 하고 테이프에 녹음해서 가족에게 전달했습니다. 나중에 가족들이 하는 말이 식사를 마친 후 환자에게 그 테이프를 들려주면 고분고분 약을 먹었다고 해요. 하세가와 선생님은 환자는 물론이고 가족에게도 매우 자상하고 정성껏 대했기 때문에 모두에게 두터운 신뢰를 얻었습니다."

가장 좋아하는 음악은 베토벤의 피아노소나타 <비창>의 제2악장입니다. 아내가 피아노과 출신이어서 때때로 이 곡을 피아노로 쳐 줍니다. 무척 아름다운 곡이지요. 제가 세상을 떠날 때는 꼭 이 곡을 연주해 달라고 아내에게 부탁해 두었습니다.

치매가 진행되어도 기쁨이나 슬픔 등 희로애락의 감정은 끝까지 남아 있다고들 말합니다. 저도 치매에 걸려 실제로 겪어 보니 정말 그렇더군요. 그래서 설령 증상이 더 심해진다 해도 가능한 한 아름다운 것을 보고 듣고 느끼면서 지내고 싶습니다.

저는 책도 좋아합니다. 소설가 나쓰메 소세키의 작품은 학창시절부터 좋아해서 여러 권을 소장하고 틈날 때마다 몇 번씩 다시 읽고 있습니다. 그의 인간 묘사는 정말이지 대단합니다.

책을 읽고 나면 전용 독서노트에 저자와 책 제목을 기록하고 저의 감상을 함께 적어 둡니다. 이 습관도 오랜 세월 동안 계속해 왔는데 일력을 떼는 일처럼 최근 반년간은 줄어들었습니다.
저의 서재는 책과 자료로 가득 차 있어 발 들여놓을 틈이 없는 상태입니다. 만약 지진이라도 일어난다면 근방에서 가장 위험한 구역일 것입니다. 그런 이유로 가족들은 볼 때마다 정리 좀 하라고 성화를 해댑니다. 하지만 뭐라고 하든 이곳은 제가 오랫동안 싸워 온 ‘전쟁터’이므로 그리 쉽게 바꿀 수는 없습니다. 조용히 생각에 잠긴다거나 무언가 글을 쓸 때는 뒤죽박죽인 이곳이 가장 편하거든요.

"독서가인 하세가와 씨의 자택 서재에는 책이 빽빽이 들어차 있다. 정신과에 관련된 전문서적이 단연 많지만 소설, 미스터리 등 다양한 분야의 책도 있다. 오랜 세월 동안 독서노트를 적고 있으며 최근의 독서노트 표지에는 ‘독서를 최고의 친구로 삼자’라고 쓰여 있다.
승려이자 소설가인 세토우치 자쿠초와 저널리스트 이케가미 아키라가 함께 쓴 《95세까지 사는 것은 행복합니까?95?まで生きるのは幸せですか?》(2017)를 읽었을 때의 독서 노트에는 이렇게 적혀 있다.

"95세의 파란만장한 인생을 살아온 작가 세토우치 자쿠초에게 저널리스트인 이케가미 아키라가 ‘노후의 마음가짐’에 관해 묻는다. 풍요로운 인생 경험을 지닌 말의 무게에 감동했다. 초고령사회를 맞이한 일본에서 장수하는 것은 정말로 행복한 일일까? 나도 88세인 미수米壽를 지나, 일 년 전에는 드디어 89세를 넘기고 90세가 되었는데, 걸음이 느려지고 보폭도 좁아져 조심하지 않으면 어느새 넘어지기 일쑤다. 아직 움직일 수 있으니 나를 필요로 하는 곳이 있으면 언제든지 응하겠지만, 이제는 일어나 걸으려고 하면 현기증이 나거나 다리가 후들거린다. 무언가를 붙잡든지 지팡이를 짚든지 어떻게든 방법을 찾아야만 하는 상태가 되었다. 앞으로 점점 더 그런 일이 늘어나고 정도도 심해질 것이다. 쇠약해지는 나 자신과 의사의 눈으로 내 상태를 확인하는 또 다른 나 자신과의 싸움! 이 싸움이 계속될 것이다. 반년인가 10개월쯤 전에는 발밑에 아무 걸릴 게 없었는데도 앞으로 푹 꼬꾸라져 순식간에 넘어졌다. 그러고는 일어서려다가 다시 넘어졌다.

이상하다! 뇌가 지령을 내려도 팔다리의 말초신경이 말을 듣지 않는다. 신경 전달 기능이 제대로 작동하지 않는 것이다! 자신과 또 한 사람의 자신이 충돌한다고 할까, 싸운다고 할까. 서로 대항하고 있다. 자신의 사고에 태클을 거는 것이다. 젊을 때도 그런 적이 있었지만 그때는 나를 둘러싼 모든 환경이 큰 문제가 없던 시절이어서 웃고 넘어갈 수 있었다. 지금은 무대 자체가 어두컴컴하다. 95세까지 살아가는 일은 결코 행복하다고는 할 수 없다. 싸움! 고통! 고뇌의 연속이다. 하지만 사람을 구원하는 것은 신앙이다. 예수 그리스도는 아버지 하느님과 함께 우리 한 사람 한 사람을 가엾게 여기고 무한한 자애로 돌봐주신다."

"치매에 걸리면 아무것도 모를 텐데 그럼 죽음도 두렵지 않게 되나요? 치매가 아닐 때보다 오히려 편한가요?"

"솔직히, 저도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중증 치매가 되어도 자신이 당하는 불쾌한 일이나 자신의 존재가 소멸하는 데 대한 두려운 마음은 남아 있을 거라고 생각합니다."
제가 이렇게 대답한 이유는 불쾌감이나 두려움이 본능적인 감정이기 때문입니다.

의식 없이 누워 있다고 아무것도 모를 거라 예단하지 말아 주세요. 눈에 보이는 것은 알아보지 못한다 해도 목소리는 들을 수 있으며 말도 알아들을 수 있습니다.

나중에 만약 그저 목숨만 붙어 있는 상태가 된다면 연명치료는 하지 말라는 의사를 생전에 표명하는 카드도 만들었습니다.(우리나라에서는 국립연명의료관리기관에서 사전연명의료의향서를 작성할 수 있다.-역주) 지금도 그 생각에는 변함이 없습니다. 아이들에게도 그렇게 말해 두었습니다.

장수하면 치매에 걸릴 확률이 높아지니까 제가 치매에 걸린 것도 그리 부자연스러운 일이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다만 살아가는 동안은 조금이라도 사회나 다른 사람에게 도움이 되고 싶습니다. 이제는 신체마저도 부자유스러워졌지만 주변의 도움을 받아 그 바람을 이뤄 나가고 싶습니다.

저의 가장 큰 소망은 많은 분이 치매에 관해 올바른 지식을 갖는 일입니다. 아무것도 모른다고 단정짓고 방치하지 말아 주세요. 그리고 치매 당사자를 빼고서 결정하지 않기를 바랍니다. 무엇을 해도 시간이 걸린다는 것을 이해하고 일상생활에서 버팀목이 되어 주면 좋겠습니다.

치매에 걸린 후 새삼 깨닫게 된 게 있습니다. 체험에 온도 차가 있다는 것입니다. 예를 들어, 당신이 오늘 여기에 와 주었다면 그것은 제게 ‘따뜻하다’는 느낌을 줍니다. 마음은 기쁘고 함께 이야기하는 것이 마냥 즐겁지요. 그리고 헤어질 시간이 다가와 ‘안녕’ 하는 인사를 들으면 낙담합니다. 온도가 내려가는 것을 느낍니다. 사람과 만나면 온도가 올라가고 사람과 헤어져 쓸쓸함을 느끼면 내려갑니다. 그렇기에 따뜻한 체험과 따뜻한 인연을 가능한 한 많이 맺었으면 좋겠습니다.

살아가고 병들고 죽는다는 것 그리고 죽음은 단 한 번뿐이며 다시 돌아올 수 없다는 이 종교적인 물음을 깊이 생각하고 마음에 두지 않으면 인간은 궁지에 몰릴지도 모릅니다. 이 세상에서 아등바등 돈 버는 데만 매달리다가는 죽을 때 당황해서 어찌할 바를 모르게 될 수도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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