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머니는 교회의 기준에선 냉담자였지만, 자식들의 교육에 있어서는 ‘종교적인 사람’이었던 것이다.

그 강의의 가장 큰 가르침은 편견에 갇히지 않고 남의 말에 귀 기울일 수 있는 유연함, 경계 없이 열린 마음이었던 것 같다. 책 속에 틀어박혀 머리만 키운, 재승박덕(才勝薄德)한 사람이 되지는 않겠다고, 학식과 함께 따스하고 도타운 마음도 본받고 싶다고 생각했다.

‘그릇’이라 함은 떨어뜨렸을 때 깨지는 식기(食器)를 일컫는다. 냄비류와 목기(木器), 커트러리는 제외한다.

요리하는 것도 좋아하지 않고 음식에 큰돈 쓰는 걸 아까워하지만, 그릇 욕심은 있다. 역시나 그릇을 좋아하는 한 친구는 이를 ‘그릇된 그릇질’이라 명명하였는데, 좋아하는 것에 돈을 쓰는 일이 과연 그릇되었는지는 한번 생각해 볼 문제.

쓰지도 않는 그릇을 왜 계속 사들이는 거냐고 잔소리하는 사람들도 있지만, 모르는 소리! 그릇의 용도는 사용하는 것에만 있지 않다. 완상(玩賞)하고 쓰다듬으며 기형(器形)과 문양의 아름다움을 즐기는 것만으로도, 그릇은 그 의무를 족히 다한다.

일상에서 쓰는 그릇이 단조로우니, 그릇에 대한 나의 상상에도 한계가 있었다.

주입식 교육의 힘이란 놀랍게도 끈질긴 것이다.

중국 청동기 시대 제기(祭器)를 연상시키는 그릇만은 집에 들이지 않는다. 도자사 수업을 들었기 때문에 그런 형태의 그릇은 망자(亡者)를 위한 것이라는 인식이 강하게 박혀 있기 때문이다.

깨끗한 백자를 조심스레 씻어 물기를 훔쳐내면서 나는 종종 ‘경덕진’이라는 단어를 떠올린다. 한번도 가본 적 없는 그 지명이 아스라하게 그립기까지 한 건, ‘백자=경덕진’이라고 외우고 또 외웠기 때문이겠지.

어떤 분이 "와인잔의 구연부는 얇디얇아서 입에 대는 순간 마치 존재하지 않았던 것처럼 사라지는 편이 좋다."는 이야기를 했다. 아마도 술은 휘발하는 성질이 있기 때문에, 잔 역시 그 속성과 맞아떨어지는 것이 좋지 않을까?

차는 온기를 머금어야 하므로 찻잔의 구연부는 적당히 도톰한 편이 좋은 것 같다고. "입에 닿는 건 좋은 걸 써야 한다."면서 구연부에 푸른 문양이 박힌 로얄코펜하겐의 프린세스블루 라인 머그를 내게 선물해 주신 분이 있었다.

그 머그가 내 인생 최초의 ‘코페니’였는데, 그걸 주신 분은 이제 더 이상 이 세상 사람이 아니다. 그렇지만 입 대는 부분이 도톰하고 감각적인 그 잔을 사용할 때마다 그분에 대한 기억이 입술 끝 촉각으로 살아난다.

그 잔을 선물 받았을 때만 해도, 그릇 사치는 돈 아까운 일이라 생각했다. 이제는 식기는 최대한 좋은 걸 쓰려고 한다. 그건 스스로를 대접하는 마음 같은 것.

최근에 읽은 여행작가 김남희 에세이 『호의는 거절하지 않습니다』에도 비슷한 이야기가 나온다. 혼자 먹더라도 예쁜 그릇을 꺼내 제대로 차려 먹는 것이 최소한의 디그니티(dignity)를 지켜준다는 그 이야기에, 아마도 혼자 살아본 사람이라면 누구나 공감할 것이다.

차를 마실 때 특히 자주 사용하는 건 하늘색 바탕에 푸른 초롱꽃과 민들레 솜털이 그려져 있고 종(鍾)을 뒤집어 놓은 듯한 형태가 우아한 로열앨버트 100주년 머그다. 10여 년 전에 영국 출장을 다녀오는 길에 런던 히드로공항의 해로즈에서 사 온 것인데, 이때 처음으로 ‘나도 이제 사회생활을 어느 정도 했으니 좋은 그릇 한번 사보자.’는 생각을 했었다.

이 모든 컵에는 나만의 이야기가 있다. 어떤 그릇에든 사용한 사람들의 사연이 담겨 있고, 깨지지 않는 한 그 이야기는 천년 만년 이어진다. 로얄코펜하겐과 로모노소프, 웨지우드와 빌레로이 앤드 보흐, 포트메리온 그릇이 찬장 가득 쌓여 있지만, 나는 개수대에 항상 놓고 쓰는 20년 넘은 나의 코렐을 버릴 생각이 없다. 오랜 세월을 함께하면서 흰 바탕에 푸른색으로 잔잔한 열매가 그려진 그 그릇과 나만의 역사가 형성되었기 때문이다. 누구도 알지 못하는 은밀한 이야기.

화려하고 섬세한 그릇과 마찬가지로 잘 깨지지 않는 만만한 그릇 역시 참으로 귀한 존재. 사람 사귐도 그렇지 않나, 나는 생각해 본다. 다루기 조심스럽고 까다로워서 쉽게 다가서기 힘든 사람들의 묘한 매력에 이끌려 항상 곁에 있는 튼튼하고 듬직한 사람들의 중요함을 종종 잊어버리지만, 결국 오래 남아 곁을 지켜주는 건 그런 사람들이 아닌가, 하고.

청춘이란 그렇게 서슬 푸른 것이다. 지금은 부드럽고 푸근한 정요 백자 같은 사람이 더 나을 수도 있겠다 생각한다. 모난 성미에 정 맞아 보기도 하고, 싸늘한 성정 때문에 미움받기도 해보아서 이제는 그만 동글고 눅진하게 살고 싶은, 40대란 뭐, 그런 시기인 것이다.

내 감정은 자주 튜닝이 필요하다. 조율이 덜 된 현악기 같다. 때때로 곤두박질친다. 아래로, 아래로, 더 아래로. 끝이 어딘지도 모르는 구덩이 속으로 추락하는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처럼 쿵 하고 심장이 내려앉으면서 마음이 나락으로 떨어질 때가 있다. 위로 솟구칠 때도 물론 있다. 그 솟구침은 분명 흥분이지만, 즐거움과는 거리가 멀다. 불안에 의한 각성으로, 지나치게 긴장돼 안절부절못한다. 잠을 이루지 못한다. 잠들더라도 쉽게 깬다. 음정이 편안한 악기처럼, 언제나 일정한 감정의 파고(波高)를 유지하고 있는 사람들이 종종 부럽다.

감정의 스펙트럼이 넓기 때문에 남들이 보지 못하는 것을 볼 수 있으며, 그리하여 글을 쓰는 사람이 될 수 있었다고 믿는다. 자주 불협화음을 일으키는 신경은 약과 상담으로 다스린다.

많은 이들이 쉬쉬하며 정신과를 드나들던 20년 전부터 나는 거리낌 없이 병원을 찾았다. 과정은 힘들었지만 그 덕에 나 자신의 문제를 빨리 발견하고, 스스로를 위험한 지경에서 구해낼 수 있었다. 우울증은 마음이 아니라 뇌의 문제이며, 의지로 해결할 수 없고 의사와 약의 도움을 받아야 한다는 것을 나는 일찍 배웠다. ‘심리학 개론’ 수업을 통해서다.

S는 뛰어난 수학적 두뇌를 지녔고 고등학교 때까지 ‘소설은 거짓말인데 그걸 왜 읽냐?’고 생각했다고 한다.

"내향적인 사람이 외향적인 사람에 비해 뇌의 각성 수준이 더 강하다."는 설명을 그 수업시간에 들었을 때, 나를 괴롭혀 왔던 문제에 대한 실마리를 찾은 기분이었다.

어떤 경우에도 안심하기 위해 항상 최악을 상정하는 ‘방어적 비관주의(defensive pessimism)’, 우울한 사람의 자기 지각이 그렇지 않은 사람에 비해 현실적이라는 ‘우울한 현실주의(depressive realism)’, ‘자기 인식(self awareness)’이 강하면 행복지수가 떨어진다는 이론 등에 대한 설명을 들으면서, 나는 심리학이라는 세계엔 그간 나를 힘들게 했던 여러 성격적 특질을 설명하는 보편의 언어가 있다는 것을 알았고, 안도했다.

어른들은 "의지로 극복할 수 있는 일을 쓸데없이 병원에 가서 약을 먹는다."며 혀를 찼지만, 나는 단호히 말했다. "아니오. 이건 의지의 문제가 아니라 뇌의 문제예요. 제게 지금 필요한 건 약과 의사예요."

"약이랑 싸우려 하지 마세요. 약은 당신을 휘두르는 것이 아니라, 당신을 가장 당신답게 만들도록 도와줍니다.", "게임으로 치자면 약은 아이템인 거예요, 아이템을 써서 더 잘 싸워 이길 수 있는데 왜 안 써요?", "혈압약이나 갑상선약을 평생 먹는 사람도 있어요, 그거랑 다를 게 없습니다."

"당신이 그 성격을 유지하고 있는 건, 당신 인생에서 그 성격이 가진 단점보다 장점이 더 많기 때문이에요. 무의식적으로 알고 있을 겁니다. 당신의 성취는 당신을 힘들게 하는 그 성격 덕이라는 걸."

의사들의 이 말이 "네가 힘든 것은 사주에 의욕을 뜻하는 목(木)이

많은데, 목을 지지할 토(土)는 부족하기 때문."이라는 역술인의 말보다 더 의지가 되고 위안을 주는 이유는, 심리학 개론 시간에 배운 것처럼 그것이 과학에 기반하기 때문이다.

코로나19 사태가 불거지고 화이자 미국 본사 벽에 ‘과학이 승리하리라(Science Will Win)’라는 표어가 붙은 걸 보았을 때, 나는 눈시울이 뜨거워졌다. 기질적인 문제로 생긴 내 인생의 여러 고비에서도, 대개 과학이 승리해 왔다.

겨울이 그러하듯, 여름도 다시 오게 마련이다. 나는 밑바닥으로 굴러떨어졌을 때조차도 좋아진 때를 상상하는 법을 배웠고, 그 소중한 능력은 악마적인 어둠 속을 한낮의 햇살처럼 파고든다.
? 앤드루 솔로몬, 민승남 옮김, 『한낮의 우울』(민음사)에서

"우리의 소망이란 우리들 속에 있는 능력의 예감이다."라는 괴테의 말을 떠올렸다.

불쌍한 한스 기벤라트! 수업을 듣는 내내 헤르만 헤세의 소설 『수레바퀴 아래서』의 주인공 한스 기벤라트를 생각했다. 공부에 치이다 목숨을 잃는 이 가엾은 소년에게 한창 대입 준비 중이던 고등학생 때도 공감한 적이 없는데, 라틴어를 수강하면서 마침내 그를 이해했다. 소설의 디테일은 흐려지고 큰 줄거리만 기억났는데, 한스가 라틴어학교에 다녔다는 내용이 희미하게 머릿속에 남아서인지 한스가 라틴어 때문에 고생했고 그를 끝내 죽음으로 몰아넣은 것도 몹쓸 라틴어라고 생각했다.

친구 따라 강남 가려고 라틴어 강의에 등록해서 사서 고생 중이었던 나와, 아버지와 고향의 기대를 등에 업고 훌륭한 인물이 되기 위해 신학교에 진학한 한스의 처지는 사뭇 달랐지만, 어쨌든 라틴어를 배우는 내내 나는 ‘불쌍한 한스’가 된 기분이었다.

기억이란 어쩌면 그렇게 제멋대로인지!
한스를 괴롭혔던 건 신학교의 엄격한 규율과 숨막히는 분위기였지, 라틴어가 아니었다. 『수레바퀴 아래서』를 다시 읽어보니, 한스는 그리스어 문법을 어려워했고 히브리어에는 흥미가 없었지만, 라틴어를 뛰어나게 잘했고 심지어 좋아했다. 헤세는 한스가 "수학의 세계에서는 미로를 헤매거나 남을 속이는 일이 벌어지지 않는다는 사실을 마음에 들어 했다."면서 이렇게 쓴다.

같은 이유로 한스는 라틴어를 매우 좋아했다. 왜냐하면 그 언어는 뚜렷하고, 확실하며, 좀처럼 의혹의 여지를 남기는 법이 없기 때문이다.
? 헤르만 헤세, 김이섭 옮김, 『수레바퀴 아래서』(민음사)에서

"stat rosa pristina nomine, nomina nuda tenemus."(지난날의 장미는 이제 그 이름뿐, 우리에게 남은 것은 그 덧없는 이름뿐.)

그 시절, 우리는 무엇 때문에 청춘의 일부를 투자하여 대학을 졸업하면 더 이상 쓸 일 없을 것 같은 언어를 붙들고 끙끙대며 머리를 싸매었던 것일까? 어떤 힘이 우리를 지식의 세계로 인도하였으며, 그 미지의 세계를 헤매며 끝없이 공부하고 또 공부하도록 만들었던 것일까?

교수 자리가 날지 불확실하지만 단지 공부가 좋아 서양 고전 연구를 업으로 삼겠다 결심한 시간강사와, 졸업 후에 미래가 불투명하지만 단지 공부가 좋아 쓸데도 없어 보이는 라틴어 강의를 듣겠다 마음먹은 학생들……. 그 낡고 허름한 지상(地上)의 강의실에서 우리는 천상(天上)의 언어를 배우고 있었고, 그 언어는 대부분의 수강생들에게 삶의 잉여였지만 분명 ‘위안’이었다. 세상은 우리에게 ‘쓸모’를 요구하지만 유용한 것만이 반드시 의미 있지는 않으며 실용만이 답은 아니라는 그런, 위로.

그렇지만 나 자신이 조직의 부품에 불과한 것만 같을 때, 부품인 주제에 쓸모라곤 없는 것 같을 때, 그래서 비참하여 마음이 괴로울 때, 위로와 안식을 주는 건 내가 떠난 지 오래된, 그저 ‘잉여’에 불과하다 여겼던 그 공부의 세계였다. 쓸모없어 보였던 그 라틴어 수업이 내 세계를 확장시켜 주었다. 세상에는 엄청난 세월이 지나 실생활에서 쓰이지 않아도 기억되는 언어가 있고, 온 힘을 다해 그 언어를 공부하는 사람이 있고, 그 언어로 쓰인 아름다운 노래가 있다는 사실을 자각하게 하면서…….

다시 『수레바퀴 아래서』로 돌아가자면, 한스 기벤라트를 죽인 것은 공부가 아니었다. ‘쓸모’에 대한 세상의 강박이었다. 한스는 그리스어와 히브리어를 배우며 문법보다 내러티브에 더 감정이입한다. 호메로스의 영웅이나 복음서의 인물들을 단순한 이름이나 숫자로 기억하지 않고 붉은 입술과 얼굴, 영혼이 살아 숨 쉬는 손을 가진 이들로 가까이 느낄 수 있었다. 그러나 학교가 그에게 허락한 언어는 틀에 박힌 문법의 세계, 향후의 영달을 위한 실용의 테두리 안에 갇혀 있었다. 친구 하일너와의 관계에 몰두해 성적이 떨어진 한스를 부른 교장은 열심히 공부하겠다고 약속해 주겠느냐고 물은 후에 이렇게 덧붙인다.

"아무튼 지치지 않도록 해야 하네. 그렇지 않으면 수레바퀴 아래 깔리게 될지도 모르니까."

교양은 비정한 현실 속에서, 더 비정하거나 덜 비정한 세계를 상상하고 그에 틈입할 여지를 준다. 그러한 자유라도 있기에, 우리는 지치지 않고 생(生)의 수레바퀴를 유연하게 굴릴 수 있는 것이다.

Sapiens nihil facit invitus nihil iratus
현명한 이는 어떤 것도 마지못해 하거나 분노한 채로 하지 않는다.

지금 생각해 보면 지극히 이상적인 생각이었지만, 그런 믿음이라도 없었다면 그 시절을 견디기 어려웠을 것 같다.

원어로 읽었으면 축자적으로 따져가며 곱씹어 생각해 보았을 텐데, 번역본을 읽을 때는 그런 과정이 생략되었다. 나는 작품의 과감하고 독창적인 해석에 방점을 두고 과제와 시험 준비를 했다. 스스로가 꽤나 창의적이라고 생각했는데, 착각이었다. 텍스트를 꼼꼼히 읽지 않았는데 무엇을 밑거름 삼아 창의성이 싹을 틔우겠는가? 그렇게 한 학기를 보낸 결과는 실망스러웠다. 나의 사고(思考)는 선생님의 가르침 그 이상을 넘어가지 못했다. 학점은 B-에 머물렀다. 다른 과목도 아니고 문학인데! 문학에는 자신이 있었는데…….

새로운 단어를 하나하나 알아가고, 문장의 뜻을 짚어가고, 글자 그대로의 의미를 이해하고, 행간에 숨겨진 뜻을 유추해 내는 일이 좋았다.

골수를 짜내듯 모국어를 한껏 동원해 취업을 위한 무기로 사용하던 지난한 시간 속에서 외국어로 된 문학 작품을 읽고, 여기가 아닌 다른 세계를 그려보고, 단어의 의미와 아름다움을 곱씹어보는 일이 숨통을 틔워주었다.

미래에 관한 모든 질문 앞에서 나는 자신이 없었고, 대답을 유예하고 싶었다. 그렇지만 현실은 즉답을 요구했다. 괴로움은 그 간극에서 왔다.

어쨌든간에 기말 리포트를 쓰면서 나는 왕성하고 자유롭게 사고하였는데, 그렇게 사유를 뻗어갈 수 있었던 힘은 텍스트를 착실하게 읽어낸 데서 왔다.

대학원 진학을 거세게 반대하던 아버지마저 걱정이 되었는지 "사람은 어디든 적(籍)이 있어야 한다."면서 "대학원 시험을 보는 게 어떻겠냐."고 했다.

아무리 낡고 지루하다 해도, 기본은 변하지 않는다. 인문학의 기본은 긴 텍스트를 읽어내는 훈련이고, 그러기 위해서는 책상머리에 묵직하게 앉아 보내는 시간이 필요하다. 공부의 기본은 언제나 아날로그다.

책을 장악한다는 것은 날뛰는 야수의 목덜미를 낚아채어 도망가지 못하도록 틀어쥐는 것과 비슷하다고 생각한다. 대학이라는 공간이 나를, 책이라는 맹수를 길들일 수 있도록 정교하게 훈련시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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