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무래도 이상하다. 전에 가본 적이 있는 곳이니 당연히 갈 수 있어야 하는데, 갈 수가 없다. 오늘이 몇 월 며칠이고 뭘 하려고 했는지 도무지 생각나지 않는다. 어쩌면 나는 치매에 걸린 게 아닐까?’

2015년 10월 어느 날의 일기에 이런 글이 적혀 있습니다.

"강연. 주제는 ‘모두 함께 생각하는 치매 케어’다. 약 한 시간쯤 이야기했는데, 중간중간 내가 무엇을 말해야 하는지를 잊어버렸다. 세 번 정도 그런 순간이 있었다. 어떻게든 얼버무리고 얼렁뚱땅 마쳤다.(중략) 이런, 맙소사!"

치매는 누구나 걸릴 가능성이 있으며 설령 치매에 걸린다 해도 ‘인간’이라는 사실에는 변함없다는 것, 오늘날과 같은 장수 시대에는 누구나 치매를 마주하며 살아가야 한다는 것 그리고 치매에 걸리더라도 평상시의 생활을 그대로 유지하는 게 중요하다는 것입니다. 저는 이 사실을 많은 사람들이 알았으면 했습니다.

제 고백을 들은 참석자들은 모두 무척 진지하고도 따뜻하게 받아주었습니다. 당시 저는 만 88세였습니다. 오늘날에는 저처럼 장수하는 사람이 늘고 있습니다.

100세 이상의 고령자 수는 2019년 9월 15일 기준 7만 1274명(그중 여성은 6만 2810명)으로 49년 연속해서 과거 최다 기록을 경신했고 처음으로 7만 명을 돌파했습니다. 노인복지법이 제정되면서 국가가 100세 이상의 고령자를 표창하기 시작한 1963년에는 전국을 통틀어 겨우 153명이었던 점을 생각하면 격세지감을 느낍니다.

인간의 삶은 여전히 60대 은퇴에 맞춰 흘러갈까요? 그렇다면 사람들은 은퇴 후 30~40년이라는 시간을 어떻게 보내게 될까요? 여전히 활력이 넘치는데 갈 곳이 공원밖에 없다면 개인적으로나 사회적으로 엄청난 손해가 아닐까 생각해 봅니다.

인간의 평균 수명이 늘어나면서 ‘인생 100세 시대’라는 말도 널리 사용되고 있습니다. 이 말은 원래 세계에서 급격히 진행되는 장수화에 입각해 지금까지와는 다른 인생 설계가 필요하다고 주장한, 영국 런던비즈니스스쿨의 린다 그래튼과 앤드루 스콧 두 교수가 처음 발표한 개념입니다. 예전에는 인생을 ‘교육, 일, 퇴직’의 3단계로 나누는 설계가 일반적이었지만, 100세 인생이 당연해진 사회에서는 연령에 따른 구분이 없어지고, 일하는 시기를 거쳐 다시 배우는 시기를 맞이하는 등 인생의 로드맵이 다양해져야 한다는 게 그들의 주장입니다.

린다 그래튼과 앤드루 스콧 교수의 공동 저서 《100세 인생》에 따르면 일본에서 2007년에 태어난 아이들은 그 절반 정도가 100세까지 살아갈 것이라고 합니다.

80대, 90대로 점점 나이 듦에 따라 치매에 걸리는 사람이 증가하는 것은 더 이상 낯선 현상이 아닙니다. 오히려 100세를 넘어서면 거의 모두가 치매에 걸린다고 해도 과하지 않을 것입니다.

물론 치매에 걸리지 않고 만년까지 건강하고 의식이 또렷한 사람도 있습니다. 하지만 그런 경우는 극히 일부일 뿐이며 그 사람들도 더 나이가 들면 시간문제라고 말할 수 있을 정도로 치매는 결코 남의 일이 아닙니다.

치매에 걸린 사람이 생사를 건 심정으로 부딪혀 올 때는, 그 자리를 모면하려는 임시방편의 대답이나 어설픈 위로는 통하지 않습니다. 그런 상황에서는 상대가 무슨 말을 하든 끝까지 듣겠다는 자세로 고통과 슬픔을 함께할 수밖에 없다는 것을 그때까지의 임상 경험을 통해 절실히 느끼고 있었습니다.

치매의 대표적인 유형에는 알츠하이머형 치매, 혈관성 치매, 루이소체형 치매, 전두측두형 치매 등이 있는데, 그중 가장 많은 부분을 차지하는 알츠하이머형 치매의 경우 가장 먼저 시간을 가늠할 수 없게 되고, 그다음에는 장소를 알 수 없게 되며, 마지막으로 사람의 얼굴을 알아보지 못하게 됩니다.

저는 이 세상을 살아가는 동안에는 어떻게든 병의 진행을 늦춰서, 가능하면 사람의 얼굴을 알아보지 못하는 단계는 저세상에 간 후로 미루고 싶었습니다. 가족의 얼굴을 알아보지 못한다는 건 너무나 괴로운 일이니까요. 그리고 얼굴을 알아보지 못하게 되면 삶의 마지막 순간도 가까워졌다는 의미가 되겠지요.

치매를 앓는 사람은 슬프고 괴롭고 안타까운 마음을 품고 매일을 살아가고 있습니다. 그 사실을 너무나도 잘 알기에 치매 당사자를 어떻게 대해야 하는지를 여러분이 꼭 알았으면 했습니다.

"괜찮아요. 우리가 곁에 있으니까 안심하세요." 이런 메시지를 전해 주는 존재가 있으면 치매에 걸렸더라도 얼마나 든든하고 마음이 놓이겠습니까. 또한 치매 당사자를 단순히 지켜보기만 하는 게 아니라, 공감하고 함께 걸어가고자 한다면 얼마나 용기가 날까요.

치매를 스스로 밝힌 이유를 한층 파고들면 ‘나 자신이 더욱 잘 살아가기 위해서’라고 해도 좋을 것입니다. 살아 있는 동안 타인과 사회에 조금이라도 보탬이 되고 싶었고, 정말로 도움이 될지 안 될지는 몰라도 치매를 있는 그대로 알려 주는 일이야말로 내가 살아가는 이유라고 생각했습니다.

증상이 점점 심해져 끝내 기억이 없어질지도 모릅니다. 매우 불편할 뿐만 아니라 하고 싶은 일을 할 수 없는 안타까움 그리고 끝까지 해낼 수 없는 데서 솟는 분노와 애달픔도 있을 것입니다.

하지만 예상 외로 진행이 더뎌서 죽음의 문턱까지 갔을 때 증상이 심해진다든가, 진행 속도 자체를 늦출 수 있을지도 모릅니다. 그건 아무도 모르는 일입니다. 저는 어차피 모르는 일이라면 모르는 대로 일단 지금 할 수 있는 일에 최선을 다하겠다고 마음먹었습니다.

일밖에 모르던 제가 이 나이가 되고 나서 새로운 사람들을 만나고 가보지 못했던 지역을 다니면서 마음과 신체의 재활 치료가 되고 자극을 받은 것이지요.

예전 같았으면 얼마든지 세심하게 배려할 수 있었던 일인데 이제 그럴 수 없게 되었다는 현실이 실감 나더군요. 말이나 행동을 한 그 자리에서는 스스로 잘 깨닫지 못합니다. 누군가 지적해 주거나 한참이 지나서야 어떤 순간의 우연이나 계기를 통해 깨닫고 반성하게 됩니다.

저는 치매라는 사실을 주변 사람들에게 사실대로 말하고 교류하는 편이 좋다고 생각합니다. 치매 당사자가 스스로 치매라는 질환과 똑바로 마주하면서 말입니다. 그리고 이 사회가 적어도 치매 당사자를 깔본다거나 부끄러운 일로 여기는 사회가 아니기를 바랍니다.

정상적으로 발달한 뇌의 신경세포가 외상이나 감염증, 또는 혈관 장애 같은 다양한 질병과 원인으로 인해 손상되어 장애를 입었을 때 일어나는 현상이 바로 치매입니다.

치매의 특징을 조금 더 상세히 말해 보면, 우선 뇌에 기질적器質的 장애가 생겨 인지기능이 저하된다는 점을 들 수 있습니다. 이때 ‘기질적 장애’란 뇌의 신경세포와 신경세포 간의 연결이 제 기능을 하지 못하게 되는 상태를 가리킵니다.

전문가들은 이렇게 부수적으로 일어나는 분노와 폭력, 폭언, 의심 같은 감정과 행동을 ‘BPSDBehavioral and Psychological Symptoms of Dementia(치매에 따른 행동심리증상)’라고 부릅니다.

치매란 ‘대개 만성 또는 진행성 뇌질환으로 인해 생기며 기억, 사고, 지남력指南力, 이해, 계산, 학습, 언어, 판단 등 다양한 고차뇌기능 장애가 발생하는 증후군’입니다.

이 분야에 오랜 세월 동안 몸담아 온 저의 시각으로 보자면, 치매의 본질은 ‘지금까지의 일상생활을 지속할 수 없는 상태’라고 할 수 있습니다.

실천하기 어려운 일이라는 것은 알지만, 상대의 입장이 되어서 아무렇지도 않은 듯 지원의 손길을 내미는 배려가 있어야 합니다.

사람은 누구나 이제 무엇을 해야 좋을지 모를 때 불안해지기 마련입니다. 치매 당사자는 계속해서 그런 상황에 처합니다.

눈높이를 같게 하고 치매 당사자의 입장에 서서 배려하는 사람이 많아지면 좋겠습니다.

세계 최초로 확인된 환자는 독일에 사는 아우구스테 데터Auguste Deter라는 여성이었습니다. 그녀에게 두드러지게 나타난 증상은 질투와 망상이었습니다. 남편이 바람을 피운다고 생각하고는 남편과 이웃 여성에게 폭력을 휘두르기도 하고 누군가가 자신을 해치려 한다고 주장하거나 주위 사람들이 온통 자신의 험담을 한다고 믿게 되었지요.

알츠하이머 박사가 아우구스테 데터의 뇌를 해부해 병리학적 검사를 실시한 결과, 현저한 뇌의 위축과 뇌내 신경세포의 이탈, 노인반senile plaque이라고 불리는 기미 같은 반점, 신경세포체 속의 섬유 매듭 등 특징적인 변화를 발견했습니다.

아밀로이드 베타가 쌓이기 시작하고부터 10~15년 넘게 치매가 천천히 진행됩니다.

알츠하이머형 치매에 걸리면 건망증 같은 기억 장애나 시간과 장소 등을 알지 못하는 지남력 장애 등 다양한 형태의 인지 장애가 일어나 일상생활에 지장을 초래합니다.

과거 일본을 포함한 동양권에서 가장 많이 보고됐던 유형은 혈관성 치매Vascular dementia였습니다. 혈관성 치매는 뇌경색이나 뇌출혈 등 뇌의 혈관성 장애로 인해 일어나는 치매입니다.

혈관 질환을 일으키는 주요 원인은 동맥경화입니다. 동맥경화의 위험인자로는 고혈압, 당뇨병, 심질환, 고지혈증, 흡연 등이 있습니다. 일본에는 짠 음식이 많았기 때문에 혈관성 치매의 발생률이 높았지만, 오늘날에는 생활습관병 예방에 대한 인식이 높아지면서 혈관성 치매 예방에도 도움이 되고 있습니다.

혈관성 치매의 증상으로는 기억 장애 외에도 보행 장애가 많이 일어나며 배뇨 장애가 동시에 생기기도 하고 감정을 조절하지 못해 사소한 일에도 금세 울거나 화를 내는 ‘감정실금emotional incontinence’이 나타납니다.

과도한 감정 표현이 시도 때도 없이 일어나고 감정 기복이 심하게 나타나는 것이 바로 혈관성 치매의 특징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루이소체형 치매의 가장 대표적인 특징은 ‘환시’ 현상입니다.

사회성이 저하되고 문제가 발생하는 일이 많아서 이 치매의 특징을 잘 이해하지 못하면 본인도 가족도 무척 힘들어집니다.

치매의 증상은 모두 똑같지 않습니다. 루이소체형 치매 환자는 뚜렷한 환시를 호소합니다. 집안에 벌레가 있다고도 하고 모르는 사람이 들어와 있다고도 합니다.

‘루이소체형 치매Lewy body dementia’라는 병명을 들어 본 적이 있을 것입니다. 루이소체는 신경세포에 생기는 특수한 단백질을 가리키는데 이 단백질이 뇌의 대뇌피질과 뇌간에 많이 모이면 신경세포를 파괴해서 치매 증상을 일으킵니다.

측두엽은 언어 이해, 청각, 미각뿐만 아니라 기억과 감정을 담당하지요. 전두엽과 측두엽은 모두 뇌의 중요한 기능을 담당하고 있기 때문에 이 두 부분의 기능이 저하되면 사람의 인지능력과 행동에 큰 영향을 미칠 수밖에 없습니다.

‘전두측두형 치매Frontotemporal dementia’도 대표적인 치매의 한 종류입니다. 전두측두형 치매는 뇌의 전두엽과 측두엽이 위축되어 혈류 기능이 저하됨에 따라 여러 가지 증상이 생기는 치매입니다.

루이소체는 파킨슨병에서도 나타나기 때문에 루이소체형 치매인 사람은 파킨슨병 환자와 증상이 비슷합니다

전두측두형 치매의 특징은 인격의 변화와 상식에서 벗어난 행동을 유발한다는 점입니다.

지금은 치료와 회복이 가능한 치매도 있다는 사실이 밝혀져 정의에서 제외되었습니다. 그러므로 다른 병과 마찬가지로 치매 역시 조기 진단이 중요하다는 말을 전하고 싶습니다.

대뇌피질은 인간이 무언가를 생각할 때 중추적인 역할을 담당하고 뇌간은 호흡과 혈액 순환 등 사람이 살아가는 데 없어서는 안 되는 역할을 담당하는 부분입니다.

다른 사람에게는 보이지 않더라도 본인에게는 자꾸 뭔가 보이기 때문에 말하는 것이니, 다짜고짜 부정하거나 비웃지 말고 이야기를 잘 들어 주는 자세가 중요합니다.

억제능력이 떨어지고 똑같은 일을 여러 차례 되풀이하기도 합니다. 또한 다른 사람의 의견이나 감정에 공감하지 못하게 되고 감정이입이 불가능해지는 등 감정이 둔해지는 증상도 나타납니다.

전두엽은 사고와 감정의 표현, 판단을 통제하는 기관으로 인격과 이성적인 행동, 사회성에 크게 관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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