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내 삶의 리듬을 바꾸기 위해, 빈둥거리는 느낌을 기억하기 위해 기차를 탄다.

1837년 8월 22일자 편지에서 빅토르 위고는 기차 창문을 통해 바라본 풍경을 다음과 같이 묘사한다. "길가의 꽃들은 더 이상 꽃이 아니라 얼룩, 아니 빨갛고 하얀 줄무늬다……. 모든 것이 줄무늬가 된다. 곡물 밭은 부스스하게 마구 자라난 노란색 털이며, 알팔파 밭은 초록색 머리칼을 길게 땋은 것 같다……. 가끔씩 어떤 그림자, 형태, 허깨비가 나타났다가 번개처럼 창문 뒤로 사라진다."1 위고가 탄 기차는 시속 24킬로미터의 속도로 이동했다. 속도는 상대적인 것이다.

존 러스킨은 오늘날에도 여전히 유효한 격언을 남겼다. "모든 여행은 정확히 그 속도만큼 더 따분해진다."

이동수단은 가장 빠른 것이 살아남아 앞으로 내달리며 이전의 수단을 지우는 방식으로 점점 진화해왔다. 이제 우리는 너무 빠른 속도로 이동하고 있어서 잠시 멈추고 지금 정확히 어디에 있는지 물을 수조차 없다.

장 자크 루소는 다양한 정체성을 가진 사람이었다. 철학자, 소설가, 작곡가, 에세이 작가, 식물학자였고, 독학자, 도망자, 정치이론가, 마조히스트였다. 무엇보다 루소는 산책자였다. 그는 자주 걸었고, 혼자서 걸었다. 물론 걷기 모임에서처럼 가까운 친구와 걷는 데에도 나름의 즐거움이 있지만 본질적으로 걷기는 개인적인 행위다.

루소는 어디에도 뿌리 내리지 않은 최초의 자유인이었고, 오늘날 우리는 그런 사람을 도시 유목민이라고 부른다. 모든 곳이 집이요, 그 어디도 집이 아니었다.

대부분의 인류 역사에서 걷기는 선택의 문제가 아니었다. 어디론가 가고 싶다면 반드시 걸어야 했다. 오늘날 보행은 선택이다.

"혼자서 두 발로 여행할 때만큼…… 이렇게 생각하고, 이렇게 존재하고, 이렇게 살아 있고, 이렇게 나 자신이었던 적이 없다." 걷기는 루소를 살렸다. 또한 걷기는 루소를 죽이기도 했다.

루소는 자서전 《고백록》에서 이렇게 회상한다. "나는 늘 친구들보다 멀리까지 나아갔다. 그리고 친구들이 나 대신 생각해줄 때를 제외하면 다시 돌아올 생각은 하지도 않았다."

아름다움과 로맨스를 떠올리는 도시인 파리에 처음 도착한 루소는 이렇게 말한다. "내 눈에 보이는 것이라고는 더럽고 냄새나고 좁은 길, 못생긴 까만 집들, 전반적인 불결함과 가난, 거지, 짐마차꾼, 옷 수선공, 허브차 행상, 오래된 모자뿐이다."

사람을 좋아하는 사람 또한 아니었다. 루소는 요즘 말로 손이 많이 가는 사람이었다. 루소의 탁월한 전기를 쓴 작가 레오 담로시는 루소가 "어려운 친구, 실망스러운 애인, 난감한 직원"4이었다고 말한다.

루소는 평생 사람들이 자신을 쳐다보고 있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이 사실도 모르는 사람 앞에서 자기 엉덩이를 까는 루소의 기이한 강박을 막지 못했다. 루소는 스스로 마조히스트라고 인정했고, 세게 볼기짝 맞는 것을 즐겼다. 루소는 사상 처음으로 사적이고 음란한 내용을 담은 자서전에서 다음과 같이 말한다. "나는 고통, 심지어 수치심 안에서 엉덩이를 더 맞고 싶게 하는 관능을 느꼈다.

나는 내가 걷는 법을 안다고 생각했지만 루소를 읽다 보니 내게 그런 기본적인 능력이 있는지조차 의심하게 되었다.

걷는 방식을 보면 그 사람에 대해 많은 것을 알 수 있다. 걸음걸이는 지문이나 서명처럼 개개인이 다 다르며, 최근 국방부에서는 95퍼센트의 정확도로 걸음걸이를 식별할 수 있는 첨단 레이더를 개발했다.5 모두에겐 자기만의 걷는 스타일이 있다.

마을 목사의 부추김에 넘어간 마을 주민들이 루소의 집에 돌을 던진 것이다. 루소는 사회적 신호를 종종 잘못 해석하곤 했지만, 이번에는 제대로 이해했다. 루소는 모티에를 떠나 다시는 돌아오지 않았다. 나도 똑같이 하기로 한다.

나는 책에 푹 빠져든다. 루소에 손을 적시기만 하는 건 불가능하다. 머리부터 뛰어들든가, 아예 뛰어들지 않든가 둘 중 하나다.

샤르도네는 정말로 책과 잘 어울린다.

곧 나는 루소의 언어에 명확성 외에 무언가가 더 있다는 사실을 깨닫는다. 루소는(어떻게 이 이야기를 예의 바르게 할 수 있을까?) 드라마퀸이다.

루소는 주기적으로, 또 길고 상세하게 울부짖는다. 폭발적인 황홀경에 쉽게 빠져든다. 루소는 자주 기절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루소가 가장 선호하는 신체 기관인 심장은 늘 바쁘다. 루소의 심장은 "활짝 열리"거나 "불이 붙"거나 "흔들"린다. 그리고 대개는 고동친다. 루소의 심장은 "조급함"이나 "기쁨"으로, 그리고 종종 "난폭하게" 고동친다.

비열하고, 옹졸하고, 앙심을 품고, 피해망상에 빠진 채 태어나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우리는 훈연한 브리치즈와 인스타그램을 향한 사랑이 자연스러운 것이라고 확신하지만 사실은 문화적인 것이다. 어쨌거나 1970년대 사람들은 활주로만큼 넓디넓은 털 카펫과 넥타이를 ‘자연스러운 것’으로 여기지 않았는가.

자기 사랑은 혼자 샤워하면서 노래를 부를 때 느끼는 기쁨이다.

자기 편애는 뉴욕 록펠러센터에 있는 라디오시티 뮤직홀에서 노래를 부를 때 느끼는 기쁨이다.

샤워실에서 노래를 더럽게 못 부를 수도 있다. 하지만 그 기쁨은 오로지 자신만의 것이며 타인의 의견과는 아무런 관계가 없다. 그러므로 루소는 이것이 더 진실한 기쁨이라고 주장한다.

이제 우리는 루소가 왜 걸었는지 이해할 수 있다. 걷는 데에는 인류 문명의 인위적 요소가 전혀 필요치 않다. 가축도, 사륜마차도, 길도 필요 없다. 산책자는 자유롭고, 아무런 구애도 받지 않는다. 순수한자기 사랑이다.

정신은 시간당 5킬로미터의 속도, 즉 걷기에 적당한 속도에서 가장 활발하게 움직인다.

니체는 "진정으로 위대한 생각은 전부 걷기에서 나온다"라고 확신하며 종종 기운차게 스위스 알프스 산맥으로 두 시간가량의 짧은 여행을 떠났다.

토머스 홉스는 느긋하게 걸을 때 떠오른 생각을 기록할 수 있도록 잉크병을 넣을 수 있는 산책용 지팡이를 특별 주문 제작했다.

모두 훌륭한 산책자들이다. 하지만 루소만 한 사람은 없다. 루소는 하루에 30킬로미터 이상을 걷곤 했다. 한번은 제네바에서 파리까지 480킬로미터를 걸은 적도 있었다. 제네바에서 파리까지 가는 데에는 2주가 걸렸다.

루소가 걸어 다닌 첫 번째 철학자는 아니지만, 걷는 행위에 대해 이렇게 두루 철학적으로 사고한 철학자는 루소 이전에 없었다.

아르키메데스가 욕조에서 유레카를 외친 순간부터 데카르트의 걸출한 펜싱 실력과 사르트르의 성적 모험에 이르기까지, 철학에는 신체와 관련된 조류가 흐른다. 신체와 분리된 철학자, 신체와 분리된 철학은 존재하지 않는다. 니체는 "철학보다 몸에 더 많은 지혜가 있다"고 말했다.

이번에는 루소의 미완성 유작인 《고독한 산책자의 몽상》이다. 리베카 솔닛이 자신이 걸어온 역사를 담은 책에서 말했듯이, 이 이상하지만 사랑스러운 책은 "걷기에 관한 책이기도 하고 아니기도"7 하다.

《고독한 산책자의 몽상》은 내가 가장 좋아하는 루소의 작품이다. 이 책에는 추방당하고 돌에 맞고 조롱당했으나 이제는 더 이상 눈곱만큼도 신경 안 쓰는 사람의 도덕적 명료함과 생생한 지혜가 고동친다. 이 책 속의 루소는 주류 의견에 반대하는 루소도, 속마음을 고백하는 루소도, 개혁을 주창하는 루소도 아니다. 여기서의 루소는 쉬고 있는 루소다.

매 장마다 루소는 산책에 나서지만, 산책은 책의 진짜 주제인 추억으로 향하는 수단일 뿐이다. 어떻게 하면 인생에서 가장 달콤했던 순간들을 되찾을 수 있을까? 그 순간들은 두 번째 기회에서도 똑같이 달콤할까? 아니면 전보다 더 달콤할까?

다섯 번째 산책에서 루소는 생피에르라는 이름의 작은 섬에서 보낸 시간을 회상한다. 모티에에서 돌 던지는 사람들을 피해 달아난 곳이다. 생피에르는 루소의 파라다이스였다. 루소는 "살면서 가장 행복한 시간"이었다고 술회한다.
나는 이 문장을 읽고 마시던 샤르도네를 거의 뱉을 뻔한다. 자신의 병적인 측면을 전문가처럼 정확히 꿰고 있었던 루소는 쉽게 행복에 빠지는 사람이 아니었다. 나는 내 눈으로 그 섬을 보고 싶어졌다.

스위스의 기차는 시간을 잘 지킨다는 명성을 누릴 자격이 있다.

루소는 이렇게 말한다. "이 세상에 있는 모든 것은 끊임없는 변화의 흐름 속에 있다."

"만물은 변화한다"라는 그리스 철학자 헤라클레이토스의 격언을 떠올리게 하는 말이다. 우리가 두 번째로 발을 담그는 강물은 절대로 전과 같은 강물이 아니며, 우리 자신도 전과 같은 우리가 아니다.

나는 배에 탄 술고래처럼 이쪽저쪽으로 휘청거린다. 진화적 관점에서 보면 당연한 일이다. 우리 인간은 바다에서 왔는데, ‘걷다walk’라는 단어의 어원에서도 그 사실이 드러난다. 11세기에 이 단어는 바다처럼 ‘굽이치고 요동치다’8라는 뜻이었다. ‘걷다’라는 단어가 해안으로 걸어 나와 몸을 말리고 현대의 의미를 획득한 것은 13세기의 일이다. 단어는 진화한다.

우리는 두 발로 걷지만 우리의 뼈는 네 발로 걷는 것에 가장 적합하다. 예로부터 변하지 않은 신체 구조와 현대의 몸 사용법 사이의 이런 간극 덕분에 발 전문가들은 계속 먹고살 수 있다.

루소는 발에 생긴 티눈으로 거의 평생을 고생했다. 루소는 거만하게 뒤꿈치로 걸었다.

더 이상 섬이 아닌 섬에 들어서자 왜 루소가 이곳을 그렇게 좋아했는지를 알게 된다. 목가적이지만 가식적이지 않다. 아름답지만 호화롭지는 않고, 푸릇푸릇하지만지나치게 푸르지는 않다.

철학자이자 황제인 마르쿠스가 대답을 해준다.상상 속에서든 현실에서든 역경을 만나면 자기 연민이나 절망에 빠지지 말고 그저 다시 시작하라.

이런 식으로 바라보면 삶은 더 이상 실패한 서사나 망쳐버린 결말처럼 느껴지지 않는다. 그건 진실이 아니다. 결말 같은 건 없다. 무한한 시작의 사슬만이 있을 뿐.
그래서 다시 시작한다. 한 걸음 한 걸음씩. 좋아. 이제 다시 또 한 번.

우리는 또 한 명의 훌륭한 산책자였던 윌리엄 워즈워스의 표현처럼 "우리에게 너무한" 세상을 잠시나마 잊기 위해 걷는다.
우리는 자기 자신을 잊기 위해 걷기도 한다.

이런 장식의 시대에 걷기는 우리가 아직 행할 수 있는 몇 안 되는 꾸밈없는 활동이자, 리베카 솔닛이 지적하듯 "인류가 시작된 이래로 전혀 진보하지 않은"11 활동이다.

"나 실컷 울어야겠어"라고 말한 적이 있다면 루소에게 고마워해야 한다. "상상력을 이용해봐"라고 말한 적이 있다면 루소의 영향을 받은 것이다. 한창 열띤 논쟁을 벌이다 "이게 말이 안 돼도 상관없어. 난 그렇게느끼니까"라고 내뱉은 적이 있어도 마찬가지다. 배우자가 "당신에게 좋을 것"이라는 이유로 춥고 축축한 날 당신을 16킬로미터 트레킹에 끌고 간 적이 있다면 루소에게 고마워하거나 저주를 퍼부을 수 있다. 루소 덕분에 우리는 다르게 생각하고 느끼게 되었으며, 우리의 감정에 대해 다르게 사고할 수 있게 되었다.

루소는 산업혁명이 일어나기 수십 년 전에, 캘리포니아에 고속도로가 깔리기 수 세기 전에 환경 문제를 예측했다.

걷고 있지만 걷고 있는 사람은 내가 아닌 듯하다. 나는 동사일 뿐, 주어가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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