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토벤은 피아노 소나타만 서른두 곡을 썼다. 피아노의 신약성서로 비유되는 이 서른두 곡에는 원래 제목이 없다. 그러니까 소나타 1번부터 소나타 32번까지 있는 것이다.

베토벤의 경우 작품번호 36번은 교향곡, 작품번호 37번은 피아노 협주곡, 작품번호 38번은 클라리넷, 첼로, 피아노를 위한 삼중주곡이다.

시간이 흐르면 새 작품이 발견되기도 하고 연대가 다시 정리되기도 하다 보니 작품번호가 없는 곡(WoO)이라는 표기나 정리한 사람의 이름(베토벤의 경우 Hess, 드뷔시의 경우 L.)이 Op. 대신 붙기도 하고, 작품번호 뒤에 a, b 같은 알파벳이 붙기도 한다. 크게 중요하지 않다. 곡 뒤에 모르는 알파벳과 숫자가 적혀 있으면 대충 작품번호겠거니, 하면 된다.

일단 곡을 선택한 뒤에 연주자를 선택하는 기능과, 모르는 곡을 발견할 수 있도록 돕는 기능이 함께 제공되는. 책을 쓰고 있는 2021년을 기준으로 이걸 구현하고 있는 유일한 음악 스트리밍 서비스는 IDAGIO다.

로직 프로(Logic Pro)23Ⅹ에는 세 가지의 기본 피아노 사운드가 있다. 스타인웨이, 야마하, 뵈젠도르퍼다. 나는 스타인웨이로 작업하는 걸 좋아한다. 뵈젠도르퍼의 독특한 음색은 영감을 줄 때도 있고 오히려 방해가 될 때도 있다

사람들이 어떻게 음악을 하게 됐냐고 물어보면 그냥 스무 살 때 기타를 샀고, 그걸로 기타를 치면서 노래를 했고, 그러다 곡도 쓰게 됐고, 정신을 차려보니 일을 하고 있었다고 답하곤 했다. 전부 사실이었다. 휴학을 하고 연습실을 계약해서 머리 빠지게 미디 작업을 하고 공연장을 뚫으러 다니며 무진 애를 쓰던 시간들도 자연스러운 삶의 일부였기 때문에 ‘정신을 차려보니’라는 수사를 쓸 수 있었다.

커즈와일 pc3x

기타를 산 이유가 단순했다는 건 거짓말이다. 독자에게 한 거짓말이자 내가 나에게 한 거짓말이다. 나는 클래식 피아노를 치고 싶었지만 그것으로 내 커리어를 삼을 수는 없을 것이라는 자명하고 슬픈 사실 때문에 우회로를 선택했다. 그래 놓고 그게 아닌 척을 했다. 클래식 피아노를 다시 치고 싶다는 것은 늘 비밀이었다. 남들에게 비밀일 뿐만 아니라 나 자신에게도 비밀이었다.

실패하리라는 것을 알면서도 꾸역꾸역 피아노를 피해 다니면서, 또 피아노로 부족한 음악을 만들고 연주하면서, 나는 내가 나를 속일 때 얼마나 많은 시간을 후회의 몫으로 남겨두게 되는지를 배웠다.

어떤 순간에는 내가 나를 속이지 않고서는 삶을 견딜 수 없다는 사실도 배웠다.

고등학생 때의 나는 심적으로 몰려 있었다. 시야가 너무 좁아진 나머지 고등학생은 뭔가를 시작하기에는 늦은 나이라는 생각마저 해버렸을 정도다.

하지만 나는 나에게 많은 시간이 남아 있음을 모르고 초조해했다. 모두가 나에게 시간이 없다고 말했다.

나는 명문대에 들어가야만 이 망할 레이스가 끝난다는 생각과 하루빨리 지금의 상태를 벗어나고 싶다는 열망에 매일 혼이 나갔다. 그건 단순히 사춘기 시절의 맹목이나 이유 없는 정념은 아니었다.

친구는 누군가에게 나를 소개할 때 늘 ‘피아노 소리가 예쁘다’는 말을 붙여줬다. 본인의 엄마에게도 친구에게도 그렇게 나를 소개했다고 했다. 공부를 잘하고, 춤을 잘 추고, 피아노 소리가 예쁜 친구.

빌 에번스의 〈Waltz for Debby〉, 젤리 롤 모턴의 〈The Crave〉, 스티브 바라캇의 〈Day by Day〉, 이사오 사사키의 〈When You Wish Upon a Star〉, 김광민의 〈Homeland Eternal〉, 빌리 조엘의 〈New York State of Mind〉 등을 처음 만났다.

"빌리 조엘 이 아저씨 완전 멋있는 사람이야. 우리 쌤이 말하길 이 아저씨 곡을 다 쳐보랬어."

free tempo라는 거 알아둬!" 그건 피아노 소리가 예쁜 친구에게 피아노 입시를 하고 있는 친구가 줄 수 있는 최고의 선물이었다.

나는 이 파일이 누구의 친절이었는지 기억한다. 파일을 건네주던 친구의 신난 얼굴도 기억한다. 나는 최선을 다해 기억하고 있다. 친구의 진짜로 예뻤던 피아노 소리와, 고등학교 체육관 단상에 놓여 있던 그랜드피아노, 그걸 치러 가던 점심시간 같은 것들을.

그렇게 격렬하게 졸 거였으면 뒷자리에나 앉을 일이지, 구태여 앞자리에 앉아서 졸았으니 나름대로 내 입장에서는 최선을 다했던 게 아닐까 짐작할 뿐이다.

스티비 원더의 〈Superstition〉으로 시작한 수업은 레이 찰스, 제임스 브라운, 어리사 프랭클린, 안토니오 카를루스 조빔, 마일스 데이비스, 빌 에번스 등등을 거쳐 갔다.

이이다 토시히코의 『재즈 하모니 I+II』

피아노의 기초는 지긋지긋한 하농이다. 피아노 학원을 다녀본 사람이라면 기초 테크닉 연습을 위한 하농의 존재를 알고 있을 것이다. 바로 그 하농을 치되 스윙 리듬으로 치면서 뒷박에 강세를 넣어서 연습하는 것이 첫날 숙제였다.

재즈 피아노에는 하농 못지않게 지겹기 그지없는 존재가 하나 더 있는데 II-V-I이라는 존재다. II-V-I 연습하는 거 정말 너무 재미없다. 지금 나는 ‘정말’과 ‘너무’를 둘 다 썼다. 지금 생각해도 소스라칠 정도로 재미없다. II-V-I은 음악에서 많이 쓰이는 코드 진행 중 하나로, 하도 많이 쓰이는 탓에 현대실용음악에서 반드시 배워야 하는 필수적인 패턴이다. 패턴은 같지만 조마다 구성음은 다르기 때문에 모든 조성의 II-V-I에 해당하는 코드를 달달 외워야 한다.

‘II-V-I 보이싱 연습’30이 있다. ‘관성으로도 외우고 각각의 코드별로도 외우기.’ ‘버전 두 가지로 손에 붙여서 외울 것.’ ‘저번에 외운 오른손 II-V-I 스케일과 합쳐서 스윙 리듬으로 연습(강약 조심).’ ‘오른손 스케일+왼손 보이싱 연습하기.’ 이렇게 열심히 외웠는데 지금은 못 친다.

이십몇 년 전에 배운 클래식 곡은 지금도 칠 수 있건만. 이건 조기교육과 성인 교육의 차이인가.

선생님은 네가 초등학생이었으면 무조건 전공을 시키는 건데 하고 웃었는데, 스물네 살에게 초등학생은 삶의 절반을 접어버려야 하는 너무 먼 가정이었기 때문에 어처구니가 없다고 생각했지만 말로 하진 않았다.

초등학생 때는 누가 뭘 전공해도 웬만하면 다 잘하(게 되)지 않나. 선생님도 그래서 웃었는지 아니면 정말 안타까워 웃었는지는 모를 일이다.

재즈 피아노와의 짧은 인연은 여기까지다(아니, 쉰 기간까지 합하면 5년 정도 되니까 사실 짧지는 않다). 애써봤지만 여기까지였다. 한국인은 삼 세 번이라는 공식도 지켰으니 이만하면 충분하다. 기타의 몸도 재즈의 몸도 입는 데에 실패한 나에게 남은 것은 숨겨왔던 미련을 꺼내서 제대로 응시하는 일이었다.

나는 클래식 음악이 내가 가진 마지막 벽이라고 느낀다. 내가 가진 유일한 마음의 집이 활활 타올라 서까래마저 불타 없어져도 홀로 불타지 않는 벽. 노래에도, 말소리에도, 대화에도, 그 어떤 것에도 기댈 수 없을 때 지친 몸을 끌고 가서 털썩 주저앉으면 기댈 수 있는, 푹신한 소파는 못 되지만 결코 무너지지는 않는 든든한 벽. 거칠고 두꺼운 벽에 머리를 기대면 나보다 먼저 기쁘고 슬펐던 이들이 온갖 소리로 나를 지탱해준다. 이 벽은, 적어도 아직까지는, 나를 배신한 적이 없다.

존 루이스의 바흐 평균율 앨범은 그 자체로 아름다운 클래식 앨범이다.

루이 암스트롱은 클래식 피아노로 음악을 시작했다. 빌 에번스는 클래식 피아노를 전공해 대학교 졸업 작품으로 베토벤 피아노 협주곡 3번을 연주했다. 오스카 피터슨은 리스트의 제자의 제자인 폴 드 마키를 사사했다. 한편 드뷔시나 라벨, 조지 거슈윈 등 여러 클래식 작곡가의 음악에서는 재즈의 흔적이 발견된다.

피아니스트이자 작가, 작곡가인 스튜어트 아이자코프는 『피아노의 역사』에서 피아니스트들을 네 가지 스타일로 나누는데, 열정으로 타오르는 불의 속성을 지닌 흥분가들, 유려하게 흐르는 물의 속성을 지닌 선율주의자들, 공기의 울림을 바꾸는 연금술사들, 그리고 견고한 땅의 이미지를 지닌 리듬주의자들이다.

선율주의자들로는 슈베르트와 바흐, 조지 시어링32이 방을 나눠 쓰고 있고, 연금술사의 방에는 빌 에번스와 드뷔시가 공존한다. 목록에는 재즈뿐만 아니라 록 연주자들도 포함된다.

애초에 모든 분류에는 자의성과 위험성이 있다. 보르헤스의 「존 윌킨스의 분석적 언어」에 인용된 ‘어떤 중국 백과사전’의 동물 분류가 현대인의 눈에 놀랍게 보이는 것처럼. 분류에는 그 분류가 이루어지는 시대와 분류하는 사람의 관점이 반영되어 있으므로.

클래식 피아노와 재즈 피아노의 악보를 보면 금방 차이가 드러난다. 바흐나 모차르트의 피아노 악보를 구경해보자. 왼손과 오른손의 멜로디부터 셈여림과 표현하고자 하는 느낌까지 촘촘히 기록된 클래식 악보는 작곡가가 구상한 음악을 가능한 한 그대로 전달하고자 하는 노력의 산물이다. 반면 재즈 피아노 악보를 살펴보자. 교과서처럼 여겨지는 『리얼북』 같은 교재를 볼 일이 없다면 악보 사이트에서 판매하는 멜로디 악보를 떠올려보면 된다. 왼손 반주 악보는 어디로 가고 멜로디와 코드가 덩그러니 쓰여 있다. 이걸로 어떻게 연주를 하라는 거야? 하지만 재즈를 기반으로 하는 연주자들은 어렵지 않게 연주를 해낸다. 코드가 주어지고 리듬과 속도가 정해지면, 암묵적으로 합의된 규칙을 기반으로 합주가 된다. 재즈가 ‘즉흥적’인 음악이라고 여겨지는 이유는 그 때문이다.

독일 막스플랑크 연구소의 인간 인지 및 뇌과학 연구소에서는 클래식 피아니스트와 재즈 피아니스트의 뇌를 비교하는 연구를 진행했는데, 이에 따르면 두 장르의 피아니스트들은 같은 곡을 피아노로 연주할 때에도 서로 다른 정보 처리 방식을 사용한다.

실험에서 재즈 피아니스트들은 운지법이 틀리더라도 화성을 더 빨리 파악했고, 클래식 피아니스트들은 화성보다는 특이한 음을 연주하기 위한 운지법을 더 빠르게 찾아냈다. 이렇게 차이가 나는 이유는 재즈 피아니스트들은 구조를 생성하는 관점으로, 클래식 피아니스트들은 구조를 해석하는 관점으로 곡에 접근하기 때문이라고 한다. 그러니까 내가 II-V-I을 외우는 것보다 수십 분짜리 클래식 곡을 외우는 게 더 재미있고 쉬웠다고 한 건 단순한 변명이 아니다.

국립발레단 출신의 선생님에게 발레 레슨을 받은 적이 있는데, 발레 댄서들 중에 의외로(우리가 흔히 말하는 의미의) ‘춤을 못 추는’ 사람들이 있다고 했다. 갑자기 아무 음악이나 틀고 춤을 춰보라고 하면 당황한다고(물론 그 기준이 춤을 추지 않는 사람과 상당히 다르겠지만).

규칙이 요구하는 동작들은 신체의 자연스러운 움직임을 거부하고 아름다움을 향하기에 수행하기 어렵다.

재즈 피아노가 즉흥적인 춤과 비슷하다면 클래식 피아노는 클래식 발레의 속성을 공유한다.

나는 피아노를 배울 때도 춤을 출 때도 클래식 피아노와 클래식 발레에 어떤 고향과도 같은 느낌, 본능적인 노스탤지어를 느끼는데, 단지 규칙 안에서 안심할 수 있기 때문은 아니다. 둘 모두 불가능한 완벽을 향해 불완전한 시도를 계속해나간다는 점이 나를 매료시키기 때문이다.
나는 정말로 그런 것에 늘 져버리고 만다.

대학에서 철학과를 다니면서 제일 매료되었던 건 누구도 이걸 멈출 수가 없다는 점이었다. 누가 뜯어말려도, 도시락을 싸 들고 다니며 말려도 이 쓸모없어 보이는 ? 실제로는 어떤지 차치하더라도 ? 짓을 멈출 수가 없을 것이다. 이들은 계속 읽을 것이고, 논쟁할 것이고, 좌절할 것이다. 그게 인간이라는 게 좋았다.

인간은 동물일 수도 신일 수도 없어서 가능한 한 가장 좋은 선택을 향해 복작거린다. 세상을 사물로만 볼 수도 없고 추상적으로만 볼 수도 없어서 그 사이에서 덜컹거린다.

인간의 이성은 어떤 종류의 인식에서는 특수한 운명을 가지고 있다. 인간 이성은 이성의 자연본성 자체로부터 부과된 것이기 때문에 물리칠 수도 없고 그의 전 능력을 벗어나는 것이어서 대답할 수도 없는 문제들로 인해 괴롭힘을 당하고 있는 것이다.34
34 임마누엘 칸트, 『순수이성비판 1』, 백종현 옮김, 아카넷, 2006.

물리칠 수도 없고 그렇다고 대답할 수도 없는 문제를 고민해야 하는. 완벽한 상(像)을 향해 나아가고 싶어 하면서도 지지부진한 삶을 꾸려나가야 하는. 혹은 답할 수 없음을 알면서도 답하고자 노력하고, 완벽에 도달할 수 없음을 알면서도 매달리는 인간의 노력에는, 정말이지 속수무책으로 굴복하고 만다. 실패할 것을 알면서도 뛰어드는 모든 것에 나는 늘 약하다. 도달할 수 없음을 알면서도 멈추지 않는 모든 것에 나는 늘 약하다. 나는 ‘그럼에도 불구하고’의, 시시포스의 기꺼운 패배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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