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날은 마침 내 생일이었는데, 믿을 수 없는 일이 벌어졌다. 절친했던 친구가 갑자기 자살했다는 소식을 듣게 된 것이다. 정말이지 그날은…. 그러나 감사하게도 우리 곁에는 정서적 의존 관계 전문가가 있었고, 최고의 업무 능력을 갖춘 그녀 덕에 우리는 이 상황을 극복할 수 있었다.

그녀가 예순셋에 유방암으로 세상을 떠났다는 기사를 접하고 얼마나 충격적이었는지 모른다. 그녀의 예순셋이란 여타 사람들의 마흔에 버금갔다.

「뉴욕 타임스」 기사에 따르면 당시 그녀는 많은 작가들에게 둘러싸여 있었다. 그리고 탄과 배리, 안젤루, 콜린스가 전화기 너머로 ‘어메이징 그레이스’를 불러 주었다.

나는 명성 높은 여성에게 하고 싶은 질문이 참 많았고 그녀는 친절히 답을 들려주었다. 그녀는 말했다. 올해도 책 홍보 투어를 다니느라 자신이 돌보는 백합들이 피어나는 광경을 놓치게 되었다고. 그녀는 절친한 사이인 마이클 코다에게 스케줄을 바꿔 줄 수 없냐고 부탁해 보기도 했다.

그러나 대작을 출판하기에 좋은 시기란 1년에 딱 한 번뿐이다.

참 놀랍게도 라임색 양말을 신은 남부 출신의 작가와 매력적인 금발의 신인 작가 두 사람은 이 인터뷰가 이어지는 내내 완전한 포커페이스를 유지하고 있었다.

그가 쓴 글에서는 어떤 우울감이 풍겨난다. 그건 우울감과 똑같은 방식으로 작동해 악과 고통으로부터 아름다움을 건져 올린다.

한 방문 작가가 휠체어를 밀면서 들어왔다. 난 눈을 찡그리며 그를 보고 생각했다. ‘잠깐만, 내가 아는 사람인가?’ 그가 느릿하게 말했다. "매리언 위닉, 당신을 만나다니 정말 놀랍군요." 그는 예순다섯의 나이에 고통스러운 신경 질환을 앓으면서 신체적 손상을 입고 이르게 나이 든 모습이었다. 하지만 그의 태도는 어느 때 못지않게 따뜻했고 기억력은 나보다 확실히 더 나았다. 우리는 여전히 또 다른 문학 행사가 열리는 곳에 있었고, 그가 지적했듯, 집에 두고 온 백합들은 우리가 보지 못하는 사이에도 여전히 피어났다.

그가 세상을 떠난 뒤, 다른 작가들과 옛 제자들이 깊은 감정을 담아 쓴 추도의 글을 읽었다. 다들 그와 좀 더 많은 시간을 보냈어야 했다고 말했다.

그는 사십 대 중반 이후부터 책을 출간했는데도 내가 아직 읽지 못한 그의 책이 일곱 권이나 되었다. 우리의 관계는 이제야 진정으로 시작된 참이었다.

젊은 시절 춤추는 걸 좋아했던 그녀는 꽤 괜찮은 남자들과 데이트를 즐겼다. 그때 그녀가 제일 즐겼던 일은 오스틴이나 샌안토니오까지 차를 몰고 가서 듀크 엘링턴이나 카운트 베이시를 보고 오는 일이었다.

"내가 좀 제멋대로였지." 나중엔 그녀도 인정했다. "그래도 난 수준이 높았다고." 재미있게도 그녀는 스물한 살에 한 남자와 결혼하겠다며 경영대를 다니다 말고 돌아왔다. 그 남자는 훗날 내 친구의 아빠가 될 사람이었다. 당시 그는 춤도 전혀 못 췄고, 확실한 직업도 없었다. 하지만 그녀는 시내의 신용 조합을 넘겨받으려던 참이었기에 금전적인 면은 별문제가 되지 않았던 것이다. 하지만 무도회장의 미녀가 어떻게 춤을 못 추는 남자와 결혼했을까?

친구는 아빠에게 섹스에 관한 이야기를 들은 적 있었다. 엄마가 일하러 나간 사이 양육의 대부분을 아빠가 책임지고 있던 때였다. 아빠가 상황을 설명하자 딸은 말했다. "듣기론 아플 것 같은데요." 아빠가 말했다. "아, 그래. 처음엔 그렇지. 근데 그다음에는 말이야, 네가 그 남자를 붙잡으려 방 안을 돌아다니게 될걸."

우리는 그분들의 패션 신념에 대해 논했다. 친구 어머니의 신념은 피부에 닿는 마지막 옷가지까지 챙기는 것이었다. 만약 그날 핑크색 드레스를 입었다면 확신해도 좋다. 그녀는 분명 핑크색 브래지어와 핑크색 슬립, 핑크색 팬티를 챙겨 입었을 것이다.

그녀는 잘 때 입는, 얇게 비치는 나이트가운만 서랍 하나 가득이었다. 심지어 구십 대가 되어서도 약간의 레이스나마 달리지 않은 파자마는 입지 않았다.

내 친구나 나나 옷을 제대로 갖춰 입은 적이 없어서 둘 다 각자의 어머니에게 똑같은 소리를 자주 듣곤 했다.

하지만 언제나 의견을 맞추기 어려웠던 까다로운 여성이 내가 이룬 결과에 감탄하고 칭찬을 할 때면 어떤 기분이 드는지는, 우리 둘 다 알고 있다. 핑크색 실크 란제리는 당신의 영혼을 위한 것이었어요.

나는 텍사스, 이 외로운 별의 주Lone Star State를 사랑했던 만큼이나 친구네 가족을, 그들의 이야기, 말투에 깃든 억양, 요리, 관대함, 옷과 가구와 예술을 보는 탁월한 취향을 모두 사랑했다.

2년 간격으로 두 아들을 땅에 묻고, 남은 모든 걸 빼앗아가는 몹쓸 병으로 그토록 오랫동안 고생하고. "쉬잇, 다들 조용히 해 봐요." 그녀가 말한다. "여기 와서 저 석양을 좀 봐요. 이제껏 본 어느 하늘보다도 아름답지 않나요?"

그녀는 영민했으며 친절하면서도 엄격한 성격의 소유자였다.

딸의 결혼식에서 춤을 추었던 아버지는 딸의 이혼 파티에서도 춤을 추었으며, 딸의 두 번째 결혼식에서도 춤을 출 터였다. "얘야, 네가 행복할 수 있다면 뭐든 상관있겠니. 앞으로 쭉 나아가렴."

아버지는 딸이 자신을 따르도록 훈련하면서 동시에 상대를 리드하는 법까지 가르쳤다.

어머니는 간호사였고, 동물을 사랑하는 사람이었어. 매일 아침이면 도자기 잔에 담긴 커피를 들고 개들과 함께 나와 동네 개울가를 따라 걸었지. 아니 어쩌면 라마, 소 몇 마리, 닭 한두 마리도 함께했을 거야. 어머니는 앵무새야말로 가장 사회성이 뛰어난 새라고 말했어. 그리고 어머니가 가장 바라보기 좋아한 새는 왜가리였지."

친구와 친구의 오빠는 어머니가 세상을 떠난 뒤, 마지막으로 동네 개울가를 따라 걸었다. 두 사람은 도자기 잔을 들고 걷느라 자꾸만 발을 헛디뎠다. 친구는 그곳을 떠나며 도자기 잔을 나무에 걸어 두었다.

의사는 펜타닐(코카인보다 훨씬 값싸게 봉투 하나를 채울 수 있는) 때문에 사망하는 사람이 이 병원에서만 매달 열다섯 명에 이른다고 말했다.

아, 내가 사랑하는 여자들, 내 진정한 친구들! 꽃병이 부서지고 뼈가 부러지고 자동차가 찌그러지듯, 무너져 버렸지. 완전한 회복은 불가능하고 아예 그럴 희망조차 사라질 만큼 무너져 버렸지. 그래도 말이야, 충분히 오래 기다리다 보면 어떻게든 고통은 잦아든다더라. 아주 조금씩, 아주 천천히, 한 번에 한 단씩. 내가 그 자리에 있을게, 맹세해. 내 눈으로 보고 싶거든.

그는 심장마비를 겪고 살아 돌아온 뒤에, 심장마비란 "마치 곰이 내 가슴 위에 앉아 스포츠 기사를 읽고 있는 느낌"이었다고 설명했다

그때 그는 본인도 모르는 사이에, 내 인생을 바꾼 어느 한순간에 기여했다.

그는 좋은 남편이 못 되었다. 그는 네 번째 아내가 떠나자 결국 식기세척기 사용법을 배워야 했다. 그러다 나이 팔십 대 초반에 접어든 어느 날, 욕실에서 나오다가 넘어졌다. 그 자리에 그대로 누워 있다가 나흘 만에 발견되었으며 병원으로 옮겨지고 일주일 뒤에 세상을 떠났다. 스티로폼 컵에 테킬라를 담아 마시고 있던 늙은 친구들에게 둘러싸인 채였다.

우리의 우정에는 상식에 맞지 않는, 의아한 마법 같은 면이 있었다. 나보다 여섯 살 어렸고 손톱과 메이크업이 완벽했으며 맞춤복 바지를 입고 다니던 그녀는 마치 1960년대 스튜어디스나 꿈 많은 1학년 담임 선생님 같았다.

이 세계에서는 샤르도네 와인도 진통제 하이드로콘도 만족스럽지 못했다. 나는 닥치는 대로 타이 국수와 소고기 찜과 스파게티를 만들어 계속 차로 실어 날랐다.

엄마로 살아간다는 것은 결국 쥐었던 걸 내려놓아야 하는 수많은 순간들로 이루어진다. 그걸 친구는 너무나 느닷없이 이르게, 상상할 수도 없고 불가능한 방식으로 해내야만 했고 어쨌든 그 순간은 닥쳐왔다. 장례식을 마치고 8년이 흐른 어느 날, 나는 친구의 딸 결혼식장에 가서 한자리에 모여 있는 어여쁜 남매들의 모습을 보았다. 나 없는 이 세상이 어떻게 지속될지, 이보다 더 명확히 깨달을 수 있었던 순간은 없었다.

키가 큰 그녀는 더운 날의 물 한 잔처럼 확 끌리는 사람이었으며, 말이 많은 텍사스 출신의 금발머리였다.

이 화가가 스스로 목숨을 끊은 해, 어머니는 손녀의 대학 등록금에 보탬이 되고자 이 그림을 팔았다. 이 그림을 산 사람은 친절하게도 어머니가 요구한 금액보다 두 배는 더 가치가 있다며 제대로 된 가격을 치러주었다. 사실 언젠가 이 그림에 내 손에 들어오길 바라는 마음이 있었는지도 모르겠지만 괜찮았다. 지금쯤은 화가의 딸이 스스로 대학에 가고자 할 것이다. 그녀 삶이 어땠을지 상상하기란 어렵다. 아마 그녀 역시 똑같은 방식으로 등록금을 마련하지 않았을까 싶다.

그녀는 자기 침대에 누워, 자기 머리카락을 지킨 채, 자기만의 엔딩을 써 내려갔다. 끝.

"버티는 게 중요해PERSISTENCE IS KEY."

그는 무슨 일이든 제시간에 맞추는 법이 별로 없었고, 물려받은 재산이라도 있는 것처럼 돈을 썼고, 글 쓰는 속도가 느렸으며, 성적 욕망이 강했다. 또 그는 레스토랑에서 늘 특별한 주문을 청할 수 있는 사람이었다. 초콜릿 케이크 한 조각을 다시 전자레인지 앞으로 보내면서 웨이터에게 살짝 녹여 달라고, 조지아 사투리로 말하는 식이었다.

그날 밤, 멀리 주차장을 향해 지루하게 걷는 길에서도 그랬다. 그에게는 매혹적인 면모가 있었다. 기사도적 예의와 삶의 기쁨과 느긋함이 흔치 않은 조합을 이루고 있는 사람이었다. 그의 친구였던 나는 마치 고통 없는 성형 수술을 겪은 기분이었다. 그는 나를 예전보다 조금은 더 아름답고 매력적인 사람으로 만들어 주었다.

개와의 동반 입장이 허락되지 않을 때 그녀는 답했다. "알았어요, 젠장!" 그러곤 티켓을 쓰레기통에 버리고 집으로 갔다.

쾌활하고 자기 욕망을 기꺼이 즐기는 그녀였지만, 그런 그녀에게도 절망의 그늘은 있었다. 그녀는 외롭고 비밀이 많은 사람이었고, 나이 든다는 걸 더없이 끔찍하게 여겼다.

장례식은 그녀의 아파트에서 열린 칵테일파티로 대신했다. 그곳에서 난 그녀가 자신의 개를 보살펴 줄 사람들을 지정하고 유산을 남겼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그때 깨달았다. 나는 그녀와 다소 걱정스럽게 닮은 점들이 있었지만, 그래도 그녀보단 훨씬 운이 좋다.

난 운동선수였던 적도 없고, 비밀도 없다. 그리고 나라면 그 개를 두고 떠나는 일만큼은 절대 하지 않았을 것이다.

이 젊은 작가를 키운 건 거의 자기 형이었다. 형은 기세등등하고 인기 높은 마약 거래상이었으며 자기 남동생을 필사적으로 보호했다. 형은 동생이 열다섯 되던 해에 아버지의 집에서 그를 데리고 나왔고, 길거리에 두는 일 없이 학교에 머물게 하려고 안간힘을 썼다. 정작 형 본인은 교육을 다 받지 못했지만 그래도 독서에 열정적인 사람이었다.

둘이 사는 집은 책들로 가득 차 있었다. 그리고 농구공들과 운동화 상자들도.

보통은 그녀가 북클럽에서 읽고 있다는 소설에 관한 의견을 나눴다. 그녀는 이 북클럽에 40년째 참석 중이라고 했다.

아이들 여섯 명을 낳아 기른 그녀는 결단력 있게 대응하고 엄하게 처벌하는 방식이 옳다고 굳게 믿는 사람이었다.

이제는 내 모습을 머릿속으로 그려 본다. 제프리 유제니디스나 앤 패칫(미국의 소설가들-옮긴이)에 관해 떠드는 내 모습, 본인이 재미있는 이야기를 가진 사람이라고 생각하는 내 모습.

나는 중요한 지점을 깨달아 가기 시작했다. 예술과 혁명에 관한 거창한 생각들이 얼마나 쉽게 자기 파괴라는 어리석은 로맨스에 물드는지.

"얼마나 이상하고도 흥분되며 경이로운 일인지 모르겠다. 언어와 음악과 현실의 삶을 통해 우리가 서로를 그토록 변화시킬 수 있다니, 서로를 그토록 사랑할 수 있다니." 그렇다. 두 사람은 정말이지 아름다운 커플이었다. 너무나 안타깝게도 우리 중 일부는 굳이 잘못된 생각을 택하려 했다.

"친애하는 엘라, 레슬리가 지난밤에 죽었어요. 안타까운 일이 갑작스럽게 벌어졌고 점점 상태가 나빠지다가 결국 떠났어요. 이 일은 일주일 전에 시작되었어요. 내가 어항을 청소하고 있었는데, 레슬리가 뜰채 밖으로 뛰쳐나왔죠. 좀 더 조심했어야 했는데! 그때 레슬리가 지느러미를 다쳤는데, 그 자리에 감염이 생긴 것 같아요. 며칠이 지나자 퉁퉁 부어오르더니 매끈했던 금빛 몸통이 흉한 빨간 반점으로 덮였어요. 지난밤 밖에서 저녁을 먹고 집에 돌아온 우리는 몸이 뒤집어진 채 수면에 떠 있는 레슬리를 발견했어요. 미동도 없고 핏기도 사라져 있었죠. 그런데 레슬리가 날 보더니 몸을 일으켜 흔들어 보려 했어요."

레슬리 노프는 원래 프레첼이란 이름으로 살다가 파양된 금붕어였다.

레슬리는 손님이 어항으로 다가온다는 걸 알아채는 순간 바로 헤엄쳐 올랐다가 꼬리를 흔들었고 매력적이고 앙증맞은 캉캉 춤을 췄다. 손님은 반투명한 복숭앗빛 꼬리지느러미와 등지느러미를 뽐내며 이리저리 헤엄치는 레슬리의 모습에 눈에 떼지 못하고 진솔하고 다정한 눈빛을 보냈다. 레슬리는 반복되는 이 의식을 전혀 지겨워하지 않는 것 같았고 나 역시 그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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