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어나고 자란 곳, 공부한 곳, 일하는 곳이 모두 다르니 어떤 문화를 따라야 할지도 몰랐다.

자신의 모국어(A)와 제2언어(B) 사이의 언어를 중간언어(interlanguage; Selinker, 1972)라고 부른다.

오래 쓰지 않거나, 공부를 멈추거나, 쓰고 있던 표현만 쓰게 되면 발전이 점점 둔화되어 멈춰버리는데, 이때 언어가 화석화되었다고 말한다.

학습자는 언어A에서 언어B로 이행하려는 사람이 아니라, 언어와 의사소통 자원 간의 경계를 넘어서 자신의 의사소통 능력을 확장시켜 가는 사람이다.

자신이 구사할 수 있는 언어를 하나하나 더해가는 것보다, 언어 간의 경계를 넘어서 상대와 협력하며 목적을 달성하는 게 더 중요하다.

언어는 더하기가 아니라 곱하기다.

한 언어를 완벽히 구사한다거나 한 문화에 완벽히 적응해야겠다는 생각을 버리고, 경계에 선 자유를 누렸으면.

유튜브에서 명동 길거리 브이로그를 찾아다가 보여주었다. "여러분, 교과서의 예는 정말 전형적인 길거리 음식이고, 실제로 명동에 가면 이런 음식들이 있어요. 랍스터도 팔고 조개도 팔고 문어 꼬치도 있어요. 맛있긴 하지만, 바가지에 주의하세요"라고 알려주면서.

백남준이란 이름은 교과서에서 스치듯 본 게 전부였다. 유치원에서 박물관으로 소풍을 갔을 때 텔레비전 여러 대가 높이 쌓여 있는 곳을 지나갔고, 그게 백남준과 관련이 있었다는 것 정도밖에 기억이 나질 않았다. 겨우 유튜브에서 관련 영상을 찾아서 수업을 하긴 했지만, 내가 잘 모르는 것이라 설명하기가 어려웠다. 교과서를 집필한 사람들이 좀 윗세대인가 보다 생각하고 넘어갔다. 교재를 만든 사람과 내 경험이 워낙에 달라서 가끔은 학생들에게 무엇을 보여주어야 할지도 잘 알 수가 없었다.

교재에서 그리고 있는 세계와 학습자가 실제로 경험하며 살아가는 세계는 비슷할 수도 다를 수도 있다. 비슷하다면 좋은 교재를 찾은 것이고, 다르다면 새로운 세계를 경험하는 도구로 삼기 이전에 오히려 박탈감을 부추길 수도 있다.

상대와 내가 서 있는 자리의 차이를 인식해야 상대의 조언과 경험이 나에게 어느 정도 가치가 있을지 가늠해 볼 수 있다는 뜻이다.

내가 소수자의 위치에서 다수자의 언어를 말하며 다수자의 사회를 살아가고 있다면 자신을 계속 검열하게 되고 소심해진다.

언어는 사회, 정체성, 권력, 차별과 똑 떨어진 진공 상태에서 존재하지 않는다.

상투적인 말이지만, 인생은 실전이었다.

내가 말하는 언어가 곧 내가 되는 건 아니지만, 적어도 내가 말하는 언어로 나를 빚어나갈 수는 있다.

타고나는 정체성도 있지만, 자신이 만들어가는 정체성도 있다.

외모를 바꾸기는 상당히 어렵지만, 입고 다니는 옷, 언어 선택, 말투, 수업 스타일 등으로 만들어갈 수 있는 정체성도 있으니까.

이렇게 짝으로 묶여서 함께 쓰이는 단어를 ‘연어(collocation)’라고 부릅니다.

단어는 항상 짝지어 다닙니다. 그 짝을 찾으려면 이런 연어를 찾아주는 온라인 도구를 사용하면 편해요.

어떤 학원이 잘 가르치는지 수소문하기 전에 한 가지 생각해야 할 게 있다. 자신의 학습 목적이 뭔지, 왜 외국어를 배우고 싶은지, 시간, 에너지, 자원을 얼마나 쓸 수 있는지, 무엇을 잘하고 무엇을 못하는지 등 자신에 대한 질문을 먼저 해보아야 한다.

외국어 학습의 재료는 여기저기에 널려 있다. 중요한 건 재료를 내 목적과 삶에 맞게 녹여서 내게 필요한 자료로 만드는 일이다.

평소 내가 말을 할 때 잘 쓰지 않는 표현을 입으로 말해보는 게 표현의 가짓수를 늘리는 데 도움이 되었다.

영어로 말하는 날이 많지는 않았지만, 운전할 때만이라도 꾸준히 입을 풀어준 게 꽤나 도움이 되었다.

‘시간을 내서 외국어를 이만큼 공부해야지!’ 같은 결심을 하면 작심삼일도 어렵다.

삶에 외국어를 녹이려면, 일단 내 삶이 어떤지부터 알아야 한다.

외국어를 배워서 뭘 하고 싶은지, 무엇에 흥미가 있는지, 얼만큼의 시간과 노력을 들일 수 있는지. 이 세 가지 질문의 답에 맞게 학습 재료를 고르고, 딱히 대단한 에너지나 결심 없이도 일상생활에서 자연스레 실천할 수 있을 만큼의 계획을 짜보면 된다.

운동도 처음 헬스장에 가는 게 어렵지, 일단 가면 어떻게든 하는 것처럼, 외국어도 처음 시작하는 건 어렵지만 일단 연습하는 습관이 삶에 녹아든 이후로는 쉽게 이어갈 수 있다.

학습의 재료는 어디든지 널려 있다. 중요한 건 재료를 내 삶에 녹여서 자료로 만드는 일이다.

"경력이 짧은 강사는 학생이랑 자신을 구분하려고 일부러 엄격한 기준을 세워서 학생한테 따라오라고 해. 아직 미숙한 걸 들키고 싶지 않은 거지."

"여러분, 계란후라이에는 뭐죠? 소금 후추 케첩 간장? 네 방금 뭐라고 했어요? 핫소스라고요? 오케이 그것도 좋죠. 근데 뭐? 된장이요? 아뇨 아무리 제가 한국인이라도 그건 아니죠. 음식에 어울리는 조미료가 있는 것처럼 단어도 함께 어울리는 아이들이 있어요. 우린 그걸 연어라고 부릅니다. get이 계란후라이라면 조미료는 on, out, back, in 등등이 될 수 있겠네요. get on, get out, get back, get in 모두 다 잘 쓰이는 표현이죠. 그런데 아무리 같은 전치사라도 get vis-a-vis라고는 잘 안 쓰겠네요. 그게 계란후라이에 된장 같은 느낌이에요."

영어 문단도 똑같습니다. 가장 위의 문장과 가장 아래의 문장이 딱 맞게 내용을 감싸고 있어야 해요. 이때 위의 문장을 주제 문장(topic sentence)이라고 부릅니다. 아래 문장 역시 내용을 딱 감싸줘야겠죠. 이 문장을 마무리 문장(concluding sentence)라고 부릅니다. 그래서 계속 만났냐고요? 아뇨, 아무 일도 없었습니다.

제2언어를 배울 때, 특히 말하기나 쓰기를 연습할 때는 아무 말 대잔치를 하는 게 중요하다. 말은 생각을 그대로 끄집어낸 결과가 아니다. 생각은 총체적인 반면 말은 순차적이다.

머릿속에 떠오른 이미지를 말로 바꾸려면 사진을 찍을 때 카메라의 초점을 맞추듯 어디에 초점을 맞출지를 먼저 결정하고, 어울리는 단어 그릇을 골라 생각 조각을 담고, 문법이라는 규칙에 맞게 단어를 배치하여 차려내야 한다. 총체적인 생각을 순차적인 말로 풀어내려면 이 과정이 반드시 필요하다.

비고츠키는 "생각은 말로 변형되어 가면서 재구성된다. 생각은 낱말로 표현되는 게 아니라 완성된다"라고 말했다(Vygotsky, 1987, p. 251).

말로 개념을 하나하나 풀어내다 보니 생각이 한층 더 정리되었기 때문이다. 이처럼 생각은 말을 통해서 완성된다.

제2언어를 배울 때 아무 말 대잔치를 해야 하는 이유는 생각을 제2언어로 완성하는 연습을 하기 위해서다.

어느 정도 표현의 도구가 모였다면, 스스로 말해보며 생각을 완성해 가는 연습이 꼭 필요하다.

분명히 똑같은 생각인데도 한국어로 표현할 때와 영어로 표현할 때는 방식도 다르고, 규칙도 다르고, 느낌도 다르다. 이 연습을 자주 해야 나의 생각을 언어로 잘 담아낼 수 있다.

동사는 짝과 함께 쓰이거나 형태를 바꿀 때 파생되는 의미가 많으므로, 핵심 의미를 외울 때 함께 살펴보면 표현의 폭을 한층 더 넓힐 수 있다.

《Corpus of Contemporary American English》

단어와 문법을 엮어 설명하는 개념을 영어로는 lexicogrammar, 한국어로는 어휘-문법이라고 부른다.

어휘와 문법은 상호 불가침의 영역에 있는 게 아니라, 서로 교류하며 뻗어나가는 관계다.

사람이 관계 속에서 존재하듯이, 영단어도 관계 속에서 존재한다.

사람이 친구, 동료, 가족 등과 교류하며 성장해 나가듯, 단어도 다른 단어, 문법, 표현과 관계를 맺으며 의미를 만들어나간다.

다른 단어 및 문법과의 관계를 살피고 확장해 나가는 공부가 필요하다.

언어마다 시간을 바라보는 관점이 다르다. 우리는 시간을 과거-현재-미래 순서로, 왼쪽 끝에서 오른쪽 끝으로 뻗어나가는 수평선으로 생각한다. 그런데 중국어를 사용하는 사람은 시간을 수평선뿐만 아니라 수직선으로도 생각하는 경향이 있고(Boroditsky, 2001), 오른쪽에서 왼쪽으로 글을 쓰는 아랍어 화자는 시간 또한 오른쪽 끝에서 왼쪽 끝으로 진행된다고 상상한다(Bergen & Lau, 2012). 시간은 모두에게 같은 방식으로 흘러가지만, 시간을 바라보는 관점은 언어마다 다른 셈이다.

한 경제학자는 현재와 미래를 엄격히 구분하는 언어를 사용하는 사람들은 미래를 위한 행동(저축, 금연 등)을 그렇지 않은 사람들에 비해 덜 할 거라는 가설을 세워서 검증하기도 했다(Chen, 2013).

현재와 미래가 엄격히 구분되는 언어를 쓰면 미래가 멀리 있는 것처럼 느껴질 것이고, 현재와 미래의 구분이 약한 언어를 사용한다면 지금 이 순간과 미래가 가깝게 느껴질 것이기 때문이다.

시제는 말 그대로 시간을 다루고, 상은 그 시점에 일어나고 있는 행위의 내적 구조를 다룬다(Larsen-Freeman & Celce-Murcia, 2015).

쉽게 말하면 시제는 특정 행위가 언제 일어났는지를, 상은 내가 그 행위를 어떻게 바라보는지를 나타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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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크pek0501 2022-04-28 16:56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상대와 내가 서 있는 자리의 차이를 인식해야 상대의 조언과 경험이 나에게 어느 정도 가치가 있을지 가늠해 볼 수 있다는 뜻이다.˝ - 엄청 중요한 말이라고 생각해요. 같은 말이라도 듣는 사람의 처지나 경험에 따라서 무척 달라지는 경우가 있거든요. 이것을 우리는 간과하는 경향이 있죠.

라로 2022-04-28 19:48   좋아요 2 | URL
이 저자가 제 딸 또래는 아니지만 많이 어린데요,, 글을 참 차분차분 조근조근 자기의 생각을 잘 풀어나가네요. 생각이 바른 사람이라 좋은데 저는 뭔가가 또 삐걱거리는지 완전히 좋지는 않았어요. 저런 글이 무척 많아서 그랬나? 싶기도 하고요.^^;; 페크님은 이 책을 어찌 읽으실지 정말 궁금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