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의 백양을 있게 만든 대표상품이 바로 흰색의 민소매 러닝셔츠다. 백양이 1958년 아염산소다를 활용한 표백기술을 국내 최초로 개발한 후 나온 상품인데, 이로 인해 비로소 우리 국민은 빨았는지 안 빨았는지 모를 누런색의 애매한 내의가 아닌 눈처럼 흰 깨끗한 속옷을 입을 수 있게 된 것이다.

1960년대부터는 해외 수출로도 눈길을 돌린다. 우리나라 정부는 1960년대 들어 외화 획득 등을 위해 기업들에게 "수출만이 살 길"이라며 해외 시장 진출을 적극적으로 권유했고, 백양 역시 이 시책에 호응했다. 백양의 첫 수출 대상국은 일본이었는데, 미쓰비시가 백양의 품질을 보고 먼저 수출 제안을 해왔다. 일반적이라면 환영할 만한 제안이지만, 한 회장은 아직 품질 수준이 만족스럽지 못했기에 이 제안을 거절했다. 품질을 속여서 수출해봤자 회사에도 좋지 않지만, 나라에도 망신이라는 생각이었다.

그동안의 요리 실력 밑천이 들통 나기 전에 주부들은 미원을 부엌에 들여놓을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사실 미원이라는 이름도 ‘맛의 근원’이라는 아지노모도의 의미를 거의 그대로 가져온 것이고, 신선로 마크와 패키지 디자인 역시 아지노모도와 구별이 쉽지 않을 정도였다.

선발주자의 성공이 있으면 언제나 그렇듯이 경쟁 제품이 등장할 차례다.

어느 제품도 미원을 넘어서진 못했지만, 이 경쟁을 통해 소비자들은 즐거워했고, 제품 경쟁력 또한 한 단계 발전하는 계기가 된다. 이 중에 백미는 ‘미풍’과의 경쟁이었다.

삼성그룹을 일군 이병철 회장은 《호암자전》에서 "세상에서 내 맘대로 안 되는 세 가지는 자식 농사와 골프, 그리고 미원"이라고 푸념하기도 했다.

종합 조미료 시장에서 45년이 넘게 부동의 1위를 차지하고 있는 우리나라 조미료의 대명사인 다시다는 그렇게 미풍에서 얻은 실패를 딛고 시작되었다.

"따라하지 말 것."
"천연 지향적일 것."
새로운 조미료 개발을 시작하면서 이병철 회장이 주문한 내용이다. 1차 조미료 전쟁에서 패하면서 얻은 시장의 개념을 바꾸지 않고는 이길 수 없다는 사업가의 본능적 판단이었다.

다시다의 성공에는 여러 가지 요인이 있겠지만, 브랜드 이름도 크게 한몫했다. 미원, 미풍 등 한자 브랜드 일색이었던 당시 시장에서, "입맛을 다시다"에서 출발한 우리말 이름은 새로움과 친근함을 주기에 충분했다.

기업이 하고 싶은 말을 담는 것이 아니라, 소비자 입장에서 맛있는 음식을 보면 반사적으로 나오는 본능적 행동을 브랜드 네이밍에 반영한 것도 당시로서는 꽤 신선한 접근이었다.

오랫동안 사랑받으며 장수하는 브랜드가 되기 위해서는 제품력뿐 아니라 적절한 마케팅 활동이 뒷받침되어야 한다.

혹시라도 어머니 손맛의 비밀이 미원과 다시다였음을 깨닫고 실망하지는 마시길.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