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떤 브랜드를 선택하는가에 따라 취향과 스타일, 관심사는 물론 경제 상황이나 특정 사회 이슈에 대한 태도 등 그 사람의 거의 모든 것이 드러난다.

가벼운 선택이었을 수도 있지만, 결과적으로 내가 사용하는 모든 상품과 브랜드는 나의 생활모습과 사고방식을 반영한다.

개인에게 통용되는 이 원칙은 사회적·시대적으로 얼마든지 확장될 수 있다. 어떤 제품이 새로 만들어지고, 어떤 서비스와 상품이 인기를 얻는지, 어떤 브랜드가 시장에서 우위를 점하는지 등을 보면 당시 경제상황이나 산업기술의 발전 정도, 시장경제의 성숙도는 물론 사회적 소비취향이나 생활방식 등 사회·경제·문화·정치에 걸친 우리 일상 모습 전부를 찾아볼 수 있게 된다.

그동안 우리 근대화 역사가 서양의 산업기술, 상품 등을 통해 우리도 모르는 사이 그들의 생활문화를 받아들이고 적용하는 방식이었다면, 이제는 거꾸로 우리의 생활모습과 가치관, 사고방식 등이 투영된 상품과 브랜드가 세계 시장으로 들어가 그들의 삶과 생활 모습을 바꾸어 놓는 사례들도 어느덧 많이 존재한다.

제품은 필요한 기능을 제공하지만 브랜드는 욕망까지 담고 있다.

시장에 나와 있는 제품들 대부분이 그렇게 어느 순간 옛 모습은 사라지고 때로는 완전히 다른 제품으로 뒤바뀌기도 하지만, 브랜드 속에 그 DNA를 남겨 세대를 만들고 그 종을 보존하며 진화한다. 제품의 생애는 유한하지만 브랜드는 불사의 생명을 가질 수 있다.

개항과 함께 자전거, 안경, 사진기, 망원경, 펜, 양복, 화장품, 양장 등 신식 문물을 상징하는 상품들이 조선인의 눈길을 끌었다.

1905년에는 조선에 직접 연초 공장이 설립되고, 여기에서 ‘이글(매표)’담배가 생산된다. 최초의 ‘메이드 인 코리아madeinKorea’ 담배 브랜드였다.

초록색의 팔각형 케이스로 기억되는 ‘유엔성냥’이 가장 유명하다.

지금은 기억 저편으로 아련히 사라진 제품이 바로 고무신이다. 1922년에 우리나라 최초의 고무신 제조업체 ‘대륙고무’가 ‘대장군’ 고무신을 선보인다. 당시로서는 최신식 하이패션상품이었는지, "대륙고무가 고무신을 출매함에 있어 이왕純宗(순종)께서 이용하심에 황감함을 비롯하여 여관女官 각 위의 애용을 수하야"라고 황제까지 들먹여 가며 신문광고를 집행하기도 했다.

산업의 발전과 시대 환경의 변화에 따라 브랜드가 얼마나 치열하게 자기변신을 하고 트렌드에 맞춰 지속적 발전을 해야 살아남을 수 있는지를 말해주는 사례들이다.

1960년대 후반을 지나 1970년대로 접어들면서 우리나라 경제와 산업은 비약적 발전기를 맞이한다. 오랜 역사를 지닌 장수 브랜드 중 대부분이 이 시기에 태어난다.

앞으로 살펴볼, 지금까지 사랑받는 수많은 장수 브랜드들이 대부분 1960~70년대 생들이다.

1980년대부터는 광고나 마케팅 기업의 발전으로 오히려 단명한 브랜드가 많은 것도 특징이다.

1980년대를 거치면서 새로운 기술 발달로 나타난 첨단제품들은 반대로 더 빠르게 발전하는 신기술에 의해 사라지는 경우들이 잦았다. 삐삐, 씨티폰, 천리안, 하이텔 등 PC통신, 컴퓨터나 라디오카세트 등의 전자제품, 자동차 등 기술발전이 빠르고 첨단 영역일 수록 그런 경향이 많았다.

브랜드는 단순한 상품 이름이 아니라 그 얼굴은 물론 의미와 경험이 계속해서 변화하고 발전하는 생명체나 다름없다.

지금의 두산은 중공업 중심의 사업구조를 가지고 있지만 초기에는 오비맥주를 비롯한 식음료와 생활소비재, 유통 중심이었는데, 그 첫 시작은 의외로 화장품이었다.

분가루라는 설명을 듣고 찾는 사람이 많은가 물었더니 할머니는 "예뻐지기 싫어하는 여인도 있나?"라고 대답했다. 어찌 보면 화장품 사업의 본질을 명쾌하게 설명한 한마디인데, 이 말을 들은 정정숙은 부업 삼아 백분을 만들어보기 시작했다.

1920년에는 ‘박朴’ 자를 동그라미 안에 넣어 만든 상표와 함께 특허청에 정식상품으로 등록, 국산 화장품 1호라는 기록을 갖게 된다.

박가분 이전에 화장품이 없었던 것은 아니다. 쌀즙을 말린 가루를 물에 개어 바르던 분백분 등이 있었는데, 접착력이 약해 얼굴에 잘 붙지 않는데다가 비린내까지 풍겼다고 한다.

지금도 그렇지만 특히 여성 미용 상품의 광고모델이라고 하면 당대 아름다움의 기준을 적용하기 마련이니 당시 흰 얼굴이 어느 정도 유행했는지 짐작할 수 있다.

죽음을 불사하고서라도 아름다움을 좇는 인간의 욕망은 시대와 장소를 뛰어넘어 반복되는가 보다.

"조선 부인의 얼굴에 맞도록 만든 새로운 제품, 절대로 납이 안 든, 분쇠독 없는 고급원료와 고상순결한 향료로 만든 제품"

장 담그기는 가장 중요한 연례행사 중 하나였고, 장 담그는 날이 정해지면 불경스러운 일을 피하며 조심했다. 장 담그는 날 아침에는 목욕을 다시 하고 정갈한 마음과 몸으로 임하는 것은 물론 장 담그는 동안에는 음기의 발산을 막는다는 이유로 한지로 입을 막기까지 했다. 장맛 좋기로 소문난 집은 그것만으로도 자랑이자 자부심이었다. 장은 그만큼 우리에게는 특별한 의미를 지닌 식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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