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권위적이면서도 완벽하게 예의를 차려 주문하는 그의 태도에 감탄하지 않을 수 없었다.

로이가 나 같은 잔챙이와 어울려 하루를 헛되이 보내는 것보다 더 질색하는 일은 없었다

그가 하도 자주 웃어서 상대방은 그가 한 말이 웃기다고 착각하게 된다는 것을 알리기 위함이었는데 내 바람대로 될는지는 모르겠다.

그리고 그 쾌활한 태도 뒤에는 희미한 불안감이 어른거렸다. 만약 그의 넉넉한 형편을 몰랐다면 나한테 100파운드쯤 빌릴 속셈인가 의심했을 것이다.

건너편 클럽의 이름조차 모르는 것이 창피했지만 로이가 품위 있는 사람으로서 알아야 할 것을 모른다고 무시할까 봐 물어볼 수도 없었다. 나는 그가 부르는 소리에 정신을 차렸다.

그래도 부인 덕분에 그 양반이 여든 네 살까지 살아서 기력을 유지했다고 봐야지.

"어차피 모두들 한목소리를 낸다면 굳이 회고록을 낼 필요가 있을까?"

"영향력이 있는 사람들이 모두 자네와 의견을 달리하는데 조금 불편하지 않은가?"

"딱히 그렇지는 않아. 나도 글을 쓴 지 삼십오 년이 되었네. 천재 소리깨나 들은 자들이 반짝 떴다가 망각 속으로 사라지는 것을 내가 얼마나 많이 보았겠는가. 그들이 어떻게 되었을지 궁금할 뿐이야. 죽었을까, 정신 병원에 갇혔을까, 아무도 모르는 일꾼으로 살아가고 있을까? 이름 모를 마을에서 자기 책을 의사나 노처녀에게 슬그머니 빌려줄지도 모르지. 어느 이탈리아 호텔에서는 아직 위대한 작가 선생일 수도 있고."

내가 로이의 성미를 건드리고 있다는 걸 알고서 만족감이 들었다.

『의상 철학』

나는 남들의 의견을 내 의견보다 우선시하고 조지 메러디스를 훌륭하다고 억지로 나 스스로를 설득했었어. 내심 그가 인위적이고 장황하고 거짓되다고 느끼면서도 말이야.

"삼십 년 전에는 그들 모두 얼마나 영원불멸할 것처럼 보였나."

"그럼 그때나 지금이나 대단하다고 생각하는 건 무엇인가?"
"글쎄, 『트리스트럼 샌디』, 『아멜리아』, 『허영의 시장』, 『마담 보바리』, 『파르마의 수도원』, 『안나 카레니나』. 그리고 워즈워스와 키츠, 베를렌."

나는 당시에 존경을 받을 만하다 여겨졌던 일부 작가들을 그다지 존경하지 않았고, 결국은 내가 옳았음이 밝혀졌지 않은가. 또한 그때 내가 진심으로, 본능적으로 좋아했던 것들은 세월의 검증을 거쳐 현재 나도 그렇고 일반 평론도 인정하고 있어."

"모든 의견을 종합하면 결국 중요한 건 하나야. 드리필드는 아름다움이 넘치지 않는 페이지는 단 한 장도 쓰지 않았어."
"그래?" 내가 말했다.

흔히들 생각하는 요리사와 다르게 그녀는 뚱뚱하지도 얼굴이 붉지도 너부데데하지도 않았다. 호리호리하고 아주 꼿꼿한 몸매에 깔끔하면서도 유행에 맞는 옷차림을 하고 이목구비가 야무진 중년 여성이었다. 입술에는 립스틱을 발랐고 단안경을 꼈다. 그리고 사무적이고 조용하며 냉소적이고 돈을 시원시원하게 썼다.

나는 실재감을 잃은 과거를 관조했다.

삶은 사십 년 전에 비해 더 즐거워졌고 사람들도 더 쾌활해진 것 같다. 옛날이 더 훌륭하다고, 더 방대한 지식을 가졌으므로 확고한 도덕관을 지녔을 것이라고 하는데 나는 잘 모르겠다.

내가 알기로 그때 사람들은 쉽게 화를 냈고 너무 많이 먹었다. 많은 이들이 과음을 하고 운동은 거의 하지 않았다. 간이 고장 나고 소화 기관은 자주 망가졌다. 그들은 성미가 불같았다.

반경 1~2킬로미터12) 내에 모여 살도록 운명 지어진 사람들이 서로 심하게 싸우고 나면 날마다 읍내에서 마주치면서도 이십 년씩 관계를 끊은 채 살아갔다.

괴짜가 나올 수밖에 없는 삶이었다.

"나쁜 언사는 행실을 망친단다."

내가 부목사와 이야기를 나누는 동안 남자는 미소 띤 연푸른색 눈으로 나를 다정하게 바라보았다. 나는 그가 대화에 낄 것 같아서 짐짓 거들먹대는 태도를 취했다. 사냥터지기처럼 니커보커스를 입은 사람과는 말을 섞고 싶지 않았다. 그의 온화한 표정에서 풍기는 친숙한 느낌도 마음에 들지 않았다.

헤어질 때 낯선 남자가 고개를 끄덕이며 미소를 지었지만 나는 차가운 눈으로 그를 가만 쳐다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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