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들은 서로를 제대로 바라보지 않았고, 살고 있는 집에도 관심이 없었다.

두 사람의 눈길이 머문 구두는 무척 비싼 것이었지만, 서로의 얼굴도, 눈앞의 집채도 제대로 볼 줄 모르는 그들에게는 내면적인 뭔가가 결여되어 있는 듯했다.

한편 지적 깊이는 없지만 세련된 마리로르는 유행에 따른 독서, 암시적 화법, 금기시되는 주제를 적절히 배합해 자신을 돋보이게 함으로써 사교계에서 완벽한 패션과 기민한 지성의 소유자라는 평판을 얻었다.

그녀는 자신의 삶뿐 아니라 다른 사람들의 삶까지도 이끌어 가고 싶었다.

자신이 사치스러운 생활을 원한다는 것외에는, 삶이라는 게 무엇인지, 삶에서 원하는 것이 정확히 무엇인지 알지 못했다.

이 지루한 주제를 다루기 위해서는 기억력보다는 상상력이 필요하리라.

그의 목소리는 무척 친절하고 부드러웠지만 별것 아닌 것을 가지고 법석을 떠는 것 같았고 지나치게 쩔쩔매는 것처럼 들렸다.

야외에 나올 때에도, 심지어 혼자 있을 때에도 마리로르는 무슨 일이 있어도 우아함과 ‘최신 유행으로 치장한’ 모습을 유지했다.

그런데 천연의 요새나 다름없는 청년의 몸속 기관들, 전체적인 건강을 좌우하는 폐와 어깨와 목 같은 것들이 예상보다 훨씬 튼튼했던 모양이었다. 그 결과, 사람들이 그의 장례식과 매장 때 틀 음악을 고르고 있을 때, 아내 마리로르가 단아하면서도 찬탄을 불러일으키는 과부의 차림새(필요하지는 않지만 반창고 하나를 관자놀이에 붙이면 효과적이었다.)를 연구하고 있을 때, 아버지 앙리 크레송이 아무 예고 없이 닥친 이 일에 몹시 화가 나 사방에 발길질을 해 대고 직원들에게 욕설을 퍼부어 대고 있을 때, 앙리 크레송의 새 아내이자 뤼도빅의 계모인 상드라가 언제나처럼 침대에 누워 까다롭고 오만하게 환자의 권리를 주장하고 있을 때, 뤼도빅은 필사적으로 죽음과 싸움을 벌이고 있었다. 그로부터 일주일 후 그가 혼수상태에서 깨어나자 모두들 어안이 벙벙하지 않을 수 없었다.

알다시피 때때로 환자가 아니라 자신들의 진단에 더 집착하는 의사들이 있다.

실제로 그는, 다리를 단련하라는 과제를 받은 아이처럼 넓은 정원을 달리면서, 또한 성인다운 태도를 되찾으려 애쓰면서 시간을 보냈다.

그의 아버지의 재산으로 충분했다.(사실 마리로르가 원하는 것은 그 재산일 뿐 그가 있든 없든 상관없었다).

뤼도빅이 집으로 돌아온 것은 마리로르에게 재난과도 같았다.

그녀는 사람들의 찬탄을 불러일으키는 과부 역할은 해낼 수 있었지만, ‘멍청이 ? 그녀는 터놓고 어울려 지내는 이들 앞에서 남편을 의도적으로 그렇게 불렀다 ? 의 아내’ 역할을 해야 한다는 것은 다른 문제였다.

그는 두려운 마음으로 뭔가를 기다리고 있었다. 그게 무엇일까? 누구일까? 하지만 그것에 진심으로 관심을 갖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그 집안에서 그것이 무엇인지 궁금해하는 사람은 뤼도빅 자신뿐이었다.

그 친구는 쉬라고 하면 몹시 좋아해. 온갖 보장 보험에다 급료까지 계속 나가니까. 그는 위험한 시도 같은 건 안 하려 들고 필요할 땐 침대를 안 떠난다고.

앙리 크레송에게는 형이 둘 있었는데, 둘 다 ‘39~40 전쟁’3)에서 전사했다. 앙리는 유쾌한 어조로 말하곤 했다. "그 전쟁에서 죽은 사람 중엔 멍청이가 많아. ‘14~18 전쟁’4)에서 죽은 이들은 대개 영웅들이지만 말이야. ‘39~40 전쟁’은 그렇다고!"

그는 그렇게 심술궂지는 않았지만 친절해지려는 생각 자체를 해 본 적이 없었다. 그렇게 탐욕스럽지는 않았지만 너그러워지겠다는 생각조차 하지 않았다.

또한 다른 사람들의 평판 같은 것에는 전혀 개의치 않았다. 천성적으로 집에 사람이 오는 것을 좋아하는 편이었고, 아들이 천사인지 유령인지 알 수 없게 된 이제는 집 안에 자기 이외의 남자, 그러니까 진짜 남자가 있다는 사실에 막연히 마음이 놓였다.

상드라와 재혼한 후 그는 부부 관계라는 측면에서 십오 일 동안 그녀를 ‘존중했다’. 그다음에는 그녀의 존재를 좀 잊고 지냈고 이제는 드물게만 존중을 표했다.

건강이 좋지 않은 상드라는 이렇게 부부 관계가 뜸한 것을 다행스럽게 여겼다.

뤼도빅이 열여덟 살이 되도록 여자 경험이 없었다는 것은 그가 외롭게 자랐다는 것, 다른 가엾은 시골 출신 소년들처럼 학창 시절을 거의 학교에 갇혀 보냈음을 말해 주었다.

"왜 보낼 필요가 없어요? 양갓집 여자들은 나에게 몸을 허락하지 않는데도 꽃을 보내야 하고, 나에게 서비스를 해 준 여자들에게는 꽃을 보낼 필요가 없다니요."

그가 불행해진 것은 얼마 후 마리로르를 만나면서였다. 그는 사랑에 빠졌고 자신보다 상대의 삶이 더 중요해졌고 그래서 불행해졌다. 사랑하는 이와 삶을 공유하지 않았다면 덜 불행했으리라.

마리로르는 영리하고 신중하게 그를 관리하고 감시했다. 여리고 상처 입기 쉬운 돈 많고 시간 많은 청년 뤼도빅 크레송에게 어린 아가씨든 성숙한 여자든 접근하지 못하게 했다. 태어나면서부터 제대로 된 애정을 받아본 적이 없고 여자 경험이 늦었던 뤼도빅 같은 남자를 손에 넣는 것은 결코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삶은 투쟁이었다. 두 사람 중 하나가 주도권을 쥐어야 했고, 승자는 언제나 예외 없이 그녀, 마리로르였다.

뤼도빅은 마리로르와 함께 그녀의 부모처럼 서로에게 의지하는 커플, 플라톤의 사과처럼 하나에서 갈라져 나와 갖다 대면 꼭 맞물리는 그런 커플이 되기를 꿈꾸었다.

마지막 두 개의 계단을 내려오면서 그 젊은이는 나이를 단번에 서른 살 더 먹은 것 같았다.

필립은 오래전부터 시골을 몹시 싫어했지만, 오 년 전부터는 그 사실을 입 밖에 내어 말할 수 없는 처지가 되고 말았다.

그는 미남이었다. 그러니까 한때는 미남이었고 그 사실을 결코 잊지 않았다. 그 사실을 자랑스러워하는지 안타까워하는지는 그날그날 상황에 따라 달랐다.

미남에다 부자이고 집안 좋고 건방진 스물두 살의 청년 필립 라바유는, 어리석고 유혹에 약한 여자 ‘제트 피플’들이 그런 형의 남자들에게 열어 주는 다양한 세계에 뛰어들었다.

그는 유산을 모조리 탕진했으나 누군가와 나눠 쓴 적이 없었고, 여자들을 정복할 줄만 알았지 사랑한 적은 없었다.

방문할 때마다 조금씩 허물어지고 있긴 했지만 필립의 잘생긴 외모는 그의 유일한 밑천이었으므로, 상드라는 그것을 언급하는 것을 잊지 않았다.

식사가 끝나자마자 그는 의자의 방향을 전환해 전용 텔레비전을 볼 수 있었는데, 그것이야말로 그가 꿈꾸던 것임에 분명했다.

그가 보고 싶어 하는 프로그램이 다른 사람들이 원하는 프로그램과 일치하는 적은 결코 없었다.

식사 시간이면 저택의 주인인 앙리의 머릿속에는 이런 냉철한 생각이 떠오르곤 했다. 그의 아들은 머리가 좀 이상해진 것 같고, 며느리는 속물에다 어리석으며, 아내는 못생기고 우둔하고, 처남은 멍청한 식객이었다! 그는 그런 상황을 운명인 양 차분하게 받아들였지만, 이따금 생각지도 못한 참을 수 없는 분노가 발작적으로 터져 나오는 것까지 막을 수는 없었다.

그녀는, 자랑으로 여기는 고갯짓을 꾸며 내는 것을 한순간 잊고, 아무렇게나 고개를 흔들어 대며 그렇게 덧붙였다.

앙리 크레송의 두 번째 아내인 상드라 크레송은 오래전부터 자신의 권위와 매력을 확실하게 드러내기 위해 꾸며 낸 고갯짓을 동원하곤 했다.

"여자라면 언제나 사람들의 마음을 얻을 수 있는 특유의 고갯짓이나 권위 같은 것을 갖고 있어야 해요. 그건 무기인 동시에 방패라고 할 수 있어요, 내 말 믿으세요."

그 말을 듣는 데 넌덜머리가 난 앙리는 어느 날, 중요한 것은 머리를 기울이는 방식이 아니라 머릿속에 든 것이라고 쏘아붙였다.

여자의 목과 어깨와 목덜미는 그녀가 받은 교육과 권위를 드러낸답니다.

필립은 나오려는 눈물을 매형 앞이라 애써 억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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