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확한 명칭은 모르겠지만 예전 직장에 다닐 때 사장님의 와이프가 듀크대학 MBA 학위를 받고 은행에 다니면서 엑셀 블랙벨트를 땄다고 했는데 그게 정식 명칭인지 아니면 사장님이 자랑하는 거 별로 안 하는 분이라서 우스갯소리 비슷하게 하느라 그렇게 말한 것인지는 찾아보지 않아서 모르지만, 오늘, 아니 지금 갑자기 그 생각이 났다. (지금 찾아보니 블랙벨트가 맞는 명칭이라네)


그게 벌써 5년도 더 되었을 때 이야기다. 나는 컴꽝인데다 타자까지 느리고 엑셀은 뭔가요? 뭐 이런 수준(지금도 그닥 달라진 것 없지만;;)인데 자료를 추려야 하는 일을 맡게 되었다. 고객들의 주소를 엑셀에 옮기고 정리하고 뭐 암튼 해야 하는 일인데 뭐가 뭔지 모르니까 거의 수작업처럼 하나하나 확인하고 하는 구석기시대처럼 시간만 먹고 일은 진전이 거의 없이 일을 하고 돈을 받고 있;;;(사장님은 나의 은인!ㅋㅋ)었는데 거기다 일을 잘 해서 해결을 했으면 좋았을 텐데 더 미궁에 빠지게 만들었다는 과거가 있다. 일주일 작업을 한 것 같다. 그런데 일을 해결한 것이 아니라 더 문제를 만들게 되어 난감해 하고 있다가 엑셀 블랙벨트라는 사장님의 와이프에게(그 당시 사장님 와이프가 부사장) 부탁했더니 왈라~~. 몇 분 안에 해결!!@@


그때 알았다. 왜 실력 있는 사람들이 돈을 더 받아야 하는지. 같은 업무량이 있다면 나처럼 엑셀 하얀 벨트도 안 되는 사람은 일주일 걸려도 해결이 안 되는 일을 블랙벨트는 거의 10분 만에 해결. 그러니 열심히 했는데 왜 나를 이런 취급해? 뭐 이런 생각을 하기 전에 다시 생각을 해봐야 한다는 것을, 자신을 늘 돌아봐야 한다는 것을 그때 깨달았다는.


어제의 병원 일은 힘들었다. 힘들지 않았던 적은 7개월이 넘어가는 동안 3번 정도 룰루랄라 일을 했었던 듯. 오늘 아침 어제의 환자들을 인계하는데 내가 인계 하기를 두려워하는 K 간호사에게 직장탈출증인 환자를 인계해야 했다. '직장탈출증'이라고 하니까 직장에서 도망가거나 이직하고 싶어 하는 것처럼 들리는데 영어로는 rectal prolapse라고 한다. 이 질병에 대한 기록은 고대 이집트의 파피루스에도 남아 있다고 하니 사실 새로운 병은 아닌데 나는 어제 그 환자를 만나고 처음 봤다는!@@ 66세의 여성 환자였는데 직장탈출증으로 고생하고 있었는데 직장 탈출증 때문이 아니라 경피적 산소포화도가 낮아지고 혈압이 급저하하게 되어 중환자실로 오게 되었다. (직장 탈출증은 여성 환자가 우월하게 많다고 하고, 그중 70대 이후에 많다고 한다. 여자들이 분만을 하냐고 밑에 힘을 주고 해서 그런 것인지와의 연관은 아직 확인되지 않았다고 하지만, 관계가 있을 듯. 그리고 변비가 있는 분들이라면 빨리 해결하시길. 그런 것도 다 영향이 있;;;)


사실 인계를 할 때 보통 간호사들은 기본적인 것만 말해주고 간호하다가 발생한 특이 사항만 전달해 주면 되는데 이 K는 의사처럼 너무 꼬치꼬치 물어보고 원인까지 파악하는 것을 나에게 요구하니까 언제나 그녀가 인계를 받는다는 생각을 하면서 준비를 하면 좋겠지만, 간호를 12시간을 하고 다음 간호사를 위해 또 준비도 해야 하는데 언제 의사들이 쓴 기록을 다 보고 정리하고 있을 수 있겠냐고.라고 나는 생각하지만, K 같은 블랙벨트급 간호사는 환자도 능숙하게 간호하고 똥도 다 치우고 기록도 다 읽고 다 한다. 


어제는 직장탈출증 환자뿐 아니라 다른 환자가 ER에서 중환자실로 들어왔는데 그 환자를 내가 맡아야 해서 정말 정신이 없었다. 들어가고 나가는 과정은 정말 피하고 싶은데 이렇게 자주 나에게 주어진다, 요즘.ㅠㅠ 그런데다가 그 새로 온 환자가 CVA라고 cerebrovascular accident인 환자인데 겨우 44세. 그 환자가 2시간마다 똥을 싸니까 계속 치워줘야 하고 직장탈출증의 환자도 몸속에서 계속 피와 섞인 액체 같은 것이 나와서 치워줘야 하고,,,미쳐 죽는 줄 알았는데 이제 집에 가는구나 생각하고 얼렁 인계하고 집에 가고 싶은 마음뿐인데 K 간호사라는 넘어야 하는 마지막 산이 떡하니 버티고 있;;;


심신이 고달팠다. 하지만, K 간호사를 보면서 사장님 와이프가 생각이 났고, 모든 뛰어난 사람들이 왜 뛰어난지에 대해 생각하게 되었고, 범인凡人 미달인 내가, 凡看護師도 안 되는 내가 따라가려니 정말 지친다. 그러면서도 문제는 내가 이렇게 열심히 일하는데 왜 안 알아주는 거야? 그렇게 내 주제 파악을 못하면서 그딴 못된 생각이 들기도 한다는 것. 다시 초심으로 돌아가서 나를 돌아봐야 할 타이밍인 것 같다. 원래 3개월, 6개월, 1년, 3년,,,뭐 이런 식으로 슬럼프가 온다고 하는데 나는 다행히 정신없이 따라가느라 슬럼프 없이 지금까지 잘 왔다. 이제 슬슬 좀 아는 것 같으니까 이렇게 자만이 비집고 올라오는 듯. K 같은 블렉벨트 간호사들을 떠올리며 더욱 정진해야 하느니라..ㅋ


직장탈출증을 구글에서 찾아보니 사진이 많이 나오는데 차마 사진을 올릴 수 없;;;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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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07-02 08:39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21-07-02 14:55   URL
비밀 댓글입니다.

mini74 2021-07-02 14:49   좋아요 3 | URL
같이 일 할때는 좀 피곤할때도 주눅들때도 있지만 ㅎㅎㅎ무슨 일이 생기면 저런 분들에게 제 일이나 제 몸뚱이리를 맡기고 싶어지지요 라로님은 북플의 블랙벨트 ㅎㅎㅎ 곧 간호계의 블랙벨트도 되실겁니다 까짓 것 안되면 하나 사지요 뭐. 집에 다들 블랙벨트 하나쯤은 있잖아요. ㅎㅎ

라로 2021-07-02 14:57   좋아요 3 | URL
맞아요, 저도 만약 제 시어머니가 병원에 입원한다며 K에게 부탁하고 싶어요. 그녀는 카르마를 믿기 때문에 더 열심히 간호하기도 하구요.ㅋㅋ
하긴 저희집에 딸아이랑 큰아들의 합기도 블랙벨트 3개나 있네요. 큰아들이 합기도 2단인데 또 다른 것을 주더라구요. ㅎㅎㅎ 늘 긍정의 힘이 넘치시는 미니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