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건축으로의 여행 건축을 읽는 눈 1
에블린 페레 크리스탱 지음, 김진화 옮김 / 눌와 / 2005년 2월
평점 :
절판


벽은 무엇인가-세상과 사람에 대한 나의 편견, 그리고 따뜻함

벽(mur)… 우리에게 어떤 의미인가. 그리고 무엇인가. 단절, 고립, 편견, 오해, 대립, 곤경, 막막함… 턱~! 가슴을 무겁게 짓누른다.

사람과 사람간에 말이나 뜻이 제대로 통하지 않는 그 답답함을 '벽에 대고 말한다' 하기도 하고, 더 이상 물러서지 못하는 어려움에 봉착하였을 때 '벽에 맞닥뜨리다'라고 말한다. 또한 아주 막막한 순간, 사면초가라는 말과 함께 '사방이 꽉 막힌 벽 사이에 갇히다'라고 표현하는가 하면 그리하여 결국 막막하여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절박의 심정으로 '벽을 등지고 서다' 혹은 ' 벽에 머리를 박다'라고 한다. 아, 말만으로도 답답하고 그저 막막하다.

▲ 천식
ⓒ2005 전라도닷컴 윤재경
혹은 사람과 세상에서 고립과 소외를 맛보았던 사람, 혹은 사람사이에 소통의 절망을 느낀 사람은 자신만의 벽을 만들어 그 안에 스스로 숨어들어 버린다. 그 사람은 자신이 스스로 만들어 버린 관념과 편견의 벽 속에서 차라리 편안할지도 모르겠다. 그럼 죄수에게 벽은 시시각각 어떤 의미일까. 자폐증의 그 벽은? 벽, 그러고 보니 세상은 보이든 보이지 않던 끊임없는 벽이다.

사람과 사람간의 관계, 혹은 나와 다른 존재들 과에서 오는 '편견의 벽'이 나에게는 없는가? 아니 분명히 있다. 그것도 셀 수도 없을 만큼이며, 이미 내 스스로 알고 있는 벽 외에 무수한 벽이 있다가 어느 순간 나타나 또 다른 세계로, 혹은 또 다른 사람과 단절시킨다.

그럼 그렇지. 오해가 풀리고 앙금이 가라앉는 순간 하나의 벽을 무너뜨리지만, 다시 나도 모르게 또 하나의 벽이 이미 세워져 있어 다시 부딪힐 날을 기다리고 있다. 그러고 보면 벽이란 사람이 살아가는 동안 늘 함께 하는 것이다.

건축으로서의 벽도 늘 우리와 함께 하듯이…

▲ 어린 왕자를 만나다.
ⓒ2005 전라도닷컴 윤재경
벽은 한편으로 우리들 삶을 거칠고 황량한 바람으로부터 보호해주는 든든한 보호자이다. 기댈 수 있는 의지 처다. 거친 비바람 속을 걸어 문을 열면 그곳에 가장 편안한 나만의 공간 혹은 사랑하는 가족들과 함께 할 수 있는 공간이 있다. 이럴 때 벽은 없어서는 안 되는 가장 든든한 버팀목이 되어 주는 것이다.

절망스러움에 기대고 앉아 마음을 다독거리기도 하고 외로움과 허전함에 벽을 기대고 앉아 허공 바라기 하다가 가슴에 돋는 별 하나 있어 다시 일으키는 삶…. 이럴 때 벽은 쓰러지지 말고 잠시 기대었다가 다시 일어서기를 독려해주는 고마운 위안이 되기도 한다.

이렇게 벽은 이 세상과 저 세상을 경계하고 있으며, 나와 너, 나와 다른 사람들이나 세상 모든 사물들과 존재를 구분하면서 동시에 이어주는 역할로서 우리의 삶이 지속되는 한은 함께 해야 하는 그런 존재다. 건축물로든 내마음 속에 가지고 있는 무엇이든, 개인마다 각자 나름으로 가지고 있는 수많은 벽이 있는가 하면 많은 사람들을 동시에 통곡하게 하는 그런 벽도 있다.

'…프랑스 북부 노르망디 해변에는 아주 일부분이기는 하지만, 아직도 보는 이들을 위압하는 대서양 방벽(1942년부터 1944년에 걸쳐 프랑스에서 노르웨이까지 펼쳐지는 해안과 절벽을 따라 나치에 의해 건조된 거대한 요새)의 흔적이 남아 있다. 또한 몇 세기가 지나는 동안 유대인들은 '통곡의 벽' 앞에서 눈물을 흘렸으며, 최근 역사 속으로 사라진 '베를린 장벽'은 여전히 자유의 부재를 의미한다. 이처럼 우리에게 벽은 언제나 싸워나가야 할 장애물이자 방해꾼, 그리고 적이기도 하다.

…'벽은 장애물이다'라는 고정관념과 함께 여러 이미지들이 겹쳐 떠오른다. 우선 어원학적으로 분석해보면 '무루스(murus)'라는 라틴어는 한 도시의 울타리를 가리키며 넓은 의미로는 보호와 안전을 뜻한다. 그리고 고대 그리스어 '모이로스(moiros)는 그리스의 세 여신 '모이라이(Moirai)라는 낱말과 비슷한데, 이 여신들은 운명의 손을 가지고 있어 인간의 생명 줄을 잣기도 하고 끊기도 한다. 이 같은 신화적 해석을 따른다면 벽은 모성적 보호 울타리인 동시에 부성적 금지를 뜻한다.


▲ 자유롭게 매일 탈출을 꿈꾼다.
ⓒ2005 전라도닷컴 윤재경

"내 권태의 벽 위에 너의 이름을 쓴다. 자유여"-폴 엘뤼아르

나에게 나 외의 무수한 존재는 무엇이어야 하는가? 난, 늘 새로운 자유를 꿈꾸며 새로운 것에 대하여 늘 치명적인 사랑을 갈구한다. 그리하여 오늘도 가장 낮은 벽의 틈새를 보기도 하고, 가장 견고한 현대의 재료들로 무장된 높디높은 벽 앞에도 서본다. 살아가는 동안 내가 만나야 하는 수많은 벽들, 수많은 사람들과 생각들… 나의 벽들, 나에게 와 있는 사람들, 나는 또한 타인에게 어떤 모습의 벽인가. 나는 어떤 벽을 가지고 타인에게 서 있는가.

난, 궁금한 것이 많다. 그것도 잡식성으로… 뱀, 그것이 징그러워 그 징그러움을 제대로 알고 싶어 한동안 뱀만 따라 다녔다. 집요하게 따라다니는 동안 꿈속에서 수많은 뱀들이 엉켜들었고, 똬리를 틀고 혀를 날름거리며 나를 놀리기도 하였으며, 어느 날은 내 양어깨를 교묘히 눌러대며 눈 가까이에까지 독기어린 혀를 날름거렸다.

"얘는 취미도 어지간히 별스럽다. 보기만 해도 징그러운 그 뱀이 그리 궁금하냐?" "뱀이 어때서? 글쎄 징그러우니까 더 들여다보아야지. 죽는 날까지 징그럽다고 피할래? 그까짓 뱀이 뭔데 나를 지배해?"… 그런 어느 날 뱀은 웃으며 나를 쫒아 왔는데, 첫날 꿈에 꿈속에서마저 오싹하던 소름은 이젠 친구 같은 그런 친근함으로 바뀌어 있어서 꿈 속에조차 참 편안한 기분이었다.

막연히 두렵고 꺼려지던 뱀을 내 스스로 먼저 잡아들이자, 그 너머로 혐오스럽던 모든 것들에 대한 경계가 느슨해져 있었다. 막연히 두렵던 뱀에 대한 편견을 내 스스로 불러 들여 깨뜨리고 나니 막연히 두렵고 징그러워 마냥 피하던 그 편견 뒤에는 하마터면 놓쳐버리고 말았을 값진 것들이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큰 비가 그친 땡볕의 포장된 아스팔트 위에 잘못 나온 지렁이를 손으로 잡아 풀숲에 넣어 준다. 기어가는 벌레를 슬그머니 손으로 톡 쳐보기도 하고 가만히 들여다보며 천천히 따라가 보기도 한다. 징그럽다? 이 작고 사소한 것들을 통하여 다양한 세계와 접속할 수 있는 그 시작을 수시로 만끽한다.

많은 사람들이 손가락질 하는 사람 옆에 슬그머니 앉아 그 사람을 잠시 바라보다보면 그 사람에게서 또 다른 모습을 보게도 된다. 세상 모든 사람이 진실이라고 믿는 것 중에 진실이 아니어서 또 다른 진실이 억울하게 숨겨져 버리는 경우도 있다.

-<뱀>에 대한 리뷰 그 후기, 내가 막연한 편견을 깨뜨려 가는 방법 중 하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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뱀은 무조건 싫다?



건축물로서 벽을 통하여 삶의 본질을 본다

▲ 昇天
ⓒ2005 전라도닷컴 윤재경
사람들이 제일 처음 만나는 벽은 어머니의 자궁벽이다. 벽 속에서 보호를 받던 어린아이는 걸음과 함께 벽 그 너머를 가고 싶어 한다. 아이는 벽에 부딪히거나 혹은 상처를 입거나…를 되풀이 하며 청소년기를 지나 어른이 된다. 사람들은 보이든 보이지 않던 수많은 벽을 만나고 그 벽을 넘나들며, 혹은 그 벽을 넘지 못하기도 하면서 일생을 살아간다.

벽은, 상징물로서 문학작품에도 수없이 묘사된다. 벽만큼 이것 아니면 저것을 경계하는 강한 소재가 또 있을까 싶을 만큼 벽은 경계를 이루며 수많은 진실과 수많은 거짓의 경계, 남자와 여자의 그 가운데, 억압과 자유의 경계를 이루는 그런 존재로서 벽은 문학작품에서 무수히 세워지는가 하면 무수히 부수어진다.

얼핏, 이런 책은 일부 사람들의 관심에서나 유용하게 읽혀질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할지도 모르겠는데, 막연히 그런 생각만 고집하는 것보다는 좀 더 다양한 소재로 접근해보면 결국 그것은 우리 삶의 또 다른 모습임을 쉽게 알 수 있다. 세상의 모든 책은 결국 우리의 삶, 그 한 부분이자, 또 다른 곳으로 연결 시켜주는 고리이기 때문이다. 이 책은 실은 건축가보다는 일반인을 위하여 씌어진 책이라는 생각이 더 앞선다. 벽. 그것은 우리의 생활요소 중에서 뗄 수 없는 존재이기 때문이다.

이 책은 2001년 처음 출간된 후 유럽등지에서 큰 호응을 얻은 책이다. 그간 나왔던 책들이 각 지역의 어떤 벽들을 따라 대상으로 삼아 단순히 벽으로만 말한다면, 이 책은 벽을 통하여 벽이 우리의 삶에 어떻게 스며있는지 생활적, 문학적, 철학적으로 어떤 의미인지 약간의 지성만 겸비한 사람이라면 누구나 쉽게 건축물로서 다가 온 벽을 삶에서의 없어서는 안 될 요소로 이해할 수 있게, 각자 스스로의 벽을 생각하며 돌아보게 하는 철학적 요소까지 담고 있기 때문이다.

세상에는 어떤 벽들이 있는가?… 원시 동굴에서 시작한 벽은 이제 점점 갈수록 상징적 요소가 강해지고 있다. 사람들은 벽에 구인광고를 하기도 하고 벽에서 일자리 광고를 보기도 한다. 어떤 권리를 되찾기 위한 현수막을 거는 등 벽을 통하여 수많은 사람과 이야기를 하고 무언가를 알린다… 대자보는 어떤가. 벽은 어디에나 세워진다. 벽은 무엇으로든 세워지며 인간의 역사가 변하듯 계속 변한다. 그리고 이런 벽은 누구나 받아들일 수 있으며 넘고자 한다면 누구나 넘을 수 있다. 세상에는 생명을 걸고 넘어야만 하는 그런 벽도 수없이 있어왔지 않은가.

ⓒ2005 눌와
이 책의 저자 에블린 페레 크리스탱은 현재 프랑스에서 학교나 관공서 같은 공공건물을 주로 짓고 있으며 교육에도 관심이 많아 대학에서 학생들을 가르치고 있는 건축가다. 이런 저자의 특성으로 건축가의 눈으로 건축의 일부분을 통하여 인간의 삶과 세상의 이야기를 철학적 의미로 들려준다. 일반인들도 건축으로서의 벽을 이루는 요소들을 쉽게 이해할 수 있으며, 인간의 거주 공간으로서의 벽을 여러 각도에서 의미지어 볼 수 있는 책이다.

"여기 벽이 있다. 그 뒤에서는 과연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을까?" 이 책은 이렇게 시작하여 내 안의 무수한 벽들을 둘러보게 하였다. 몇은 버려야 하고 몇은 나를 지탱해주는 자존심이다.

벽이란 무엇인가. 세상의 벽들에는 어떤 벽들이 있으며 벽은 어떻게 발전하여 왔는가. 벽을 이루는 소재는 무엇이며 어떤 역할로 세워지는가. 벽은 우리에게 어떤 의미였으며 어떤 의미인가… 벽이 우리에게 말을 걸어오고 있다. 자, 둘러보자. 지금 나를 둘러싸고 있는 벽들은 어떤 벽인가.
▶벽-건축으로의 여행(Le mur-un itine'raire architectural,2001)

글쓴이:에블린 페레 크리스텡/역자:김진화/펴낸곳:눌와/값:10,000

이미지 사용을 허락해주신 전라도닷컴과 윤재경 사진작가님께 감사드립니다. 참고 이미지 중 두번 째 "어린왕자를 만나다"는 3년 전쯤 처음 만난 벽이었지만, 일부러 찾아 보곤 하던 '따뜻한 벽'이어서 마침 요청을 드렸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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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린이 살아있는 한자 교과서 1 - 팬더 구출 대작전 어린이 살아있는 휴머니스트 교과서 4
정민.박수밀.박동욱.강민경 지음, 조경규 그림 / 휴머니스트 / 2005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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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선 재미있고 만화 주인공들이 친근해요. 잘 알지 못하던 상식을 알 수 있어서 한자도 한자지만 다른 이야기들도 많이 알 수 있어요. 저는 뒤에 다시 쓸 수 있는 곳에 쓰면서 앞에서 보았던 것을 써볼 수 있어서 좋아요. 글자들 속에 그렇게 많은 뜻이 들어 있는 줄 몰랐어요. 우리말만 중요한 줄 알았는데 한자도 이렇게 중요한 줄 몰랐어요. 학교에서 배우는 것보다 더 쉬워서 앞으로 자주 보면서 한자 공부를 하고 싶어요. 어? 이것도 배운 건데...이렇게 재미있는 이야기가 숨어 있었어요? 한자와 이야기들이 자연스럽게 쏙쏙 들어 와요!"

어린이를 우선 '눈높이'로 한 책이어서 일단 아이들에게 모두 보게 한 다음 두 아이에게 책에 대한 느낌을 물어 보았다(중 1, 아들/초등4, 딸). 한자에 그다지 관심을 보이지 않던 첫째와 이 년 전부터 한자를 썩 좋아하여 서점에 같이 가게 되면 한자 문제집에 관심을 보이며, 스스로 고르기도 하였던 둘째의 의견은 약간 차이를 보였지만, 대체적으로 이랬다.

"우리 마마님께...<엄마>
기자님 ㅋㅋㅋ ^.^~ 오늘 그곳에 가서 재미있었어요? 그곳이 무슨 동이에요? 낮에 말씀 드렸던 <어린이 살아 있는 한자 교과서>의 소감 이곳에 쓸게요. 먼저 소라라는 이름이 그다지 마음에 들지 않아요. 좀 더 우리나라를 나타내는 이름이 있을 것인데, 엄마의 의견을 듣고 보니 저도 그런 생각이 들어요. 그러나 깻잎이란 이름은 맘에 들어요.

책 안쪽을 펴보면 우리나라나 중국, 일본의 역사를 알 수 있는 것이 참 마음에 들어요. 아! 맨 뒤쪽에 있는 ‘팬더댄스’와 함께 쓰는 한자 100자'에 한자 한자 써보면서 읽으니깐 더 잘 외워지는 것 같아요. 모르던 한자도 새로 알게 되고....아!, 하나 빼먹었어요. 각 나라의 문화재나 이런 저런 이야기 물건 이야기도 참 재미있었어요. 어쨌든 기자님! 덕분에 이 책을 만나서 고맙습니다. 기자님 홧팅~! <김수연/여/경기 고양 삼송초등학교 4학년/ 8.12 책동네 커뮤니티 다녀와서 받은 편지 한 통>"

이 책은, 지난해 청소년 이상의 눈높이로 나왔던 <살아 있는 한자 교과서(2004,2,26 휴머니스트)>를 다시 재구성, 어린이의 눈높이에 맞추어 새롭게 내놓은 책으로 원저자들이 다시 참여 하였다. 현재 1,2권이 나왔지만 앞으로 5권까지 완간할 예정이며, 1권마다 기본적으로 100자를 실었다.

아이들에게 친숙한 만화 주인공을 따라 여행을 하며 한자는 물론 한자와 관련된 생활, 문화는 물론 역사적인 상식까지 골고루 배울 수 있는 내용이 장점이다. 내용 중에 한자를 사용함으로써 아이들이 만화를 읽는 동안 자연스럽게 한자를 대하고 읽을 수 있는 것도 돋보인다.

한자는 물건의 모양을 본뜬 상형문자인 만큼 한자마다 나름의 뜻을 가지고 있는데, 이런 점을 생활 속에서 반드시 알아야 할 교양적인 소양을 높일 수 있는 내용으로 구성하여서 아이들은 물론 학부모들에도 썩 유용한 내용들이다(위 본문 내용 이미지 참조).

중국은 물론 한자의 가장 큰 영향권인 우리나라나 일본의 역사적인 이야기나, 문화재등도 비교적 자세히 싣고 있어서 아이들에게 역사적인 관심도 가져 보게끔 하는 계기가 될 것이다.

이 부분에서 제안을 한다면, '이 책을 읽은 아이에게 역사이야기 중에서 더 알았으면 하는 것이나, 기억에 남는 것을 말하게 한 다음 관련 책을 사주는 것'도 앞으로 아이가 책이나 역사에 계속적으로 관심과 흥미를 느낄 수 있는 방법이라는 생각이다.

기본적인 한자--> 일상에서 널리 쓰이는 관련 단어--> 꼭 알아야 하는 고사성어(사자성어)의 단계적인 구성도 좋다. 훗날, 아이들이 이미 한번이라도 만났던 단어나 사자 성어는 어떤 책을 읽다가 우연히 만났을 때 더 쉽게 들어오는 계기가 될 것이기 때문이다.

아이들에게 책을 선택하게 하면 부모에게는 시시하거나 속빈 강정 같은 느낌이 드는 것이 예사고, 어른 눈으로 고르게 되면 아이들이 흥미를 느끼지 못하는 경우도 다반사다. 이 책은 아이들에게건, 어른들에게건 흥미로우며 알토란같은 내용이 많다.

한자가 우리 생활에서 어떻게 적용되고 쓰이는지를 사물과 문화를 통해 살피는 맛깔스러운 한자 여행. 이 책은 일단 재밌다. 그리하여 쏙쏙 들어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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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희빈, 사극의 배반
정두희 외 지음 / 소나무 / 2004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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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여정(1971), 이미숙(1981), 전인화(1988), 정선경(1995), 김혜수(2002)는 그간 우리가 드라마에서 만났던 장희빈들이다. 앞서서 김지미(1961), 남정임(1968)을 통하여 영화로 만들어졌다고 하는데 우리 사극에서, 아니 드라마를 통틀어 '장희빈'만큼 많이 다루어진 인물 소재가 있을까? 잊을만 하면 드라마로 나타났던 장희빈이고, 정권이 바뀔 때마다 새로운 모습으로 우리 곁에 왔던 장희빈이다.

도대체 왜? 장희빈이 어떻길래? 우리에게 끊임없이 진화하면서 나타나는가?

일부 연기자들 중에는 장희빈 역을 맡아보는 것이 최고의 영광이라고 선망하였으며, 지금 현재 장희빈의 마지막 역할이었던 김혜수 역시 직설적으로 "장희빈 연기만큼은 꼭 해보고 싶다"고 했다 한다. 김혜수는 그 선망대로 장희빈 역할을 하였는데, 처음에는 눈도 크고 글래머인 김혜수에게 어울리지 않는 배역이라는 일부 사람들의 의견에도 불구하고 '지금 현재의 시대감각에 맞는 진취적인 장희빈의 역할'을 해냈다. 또한 사극 장희빈 배역을 하고 나면 그 연기자의 인기는 한 단계 더 업그레이드되었다. 현재까지 마지막 장희빈은 김혜수다.

현재까지 마지막 장희빈은 김혜수다?

사람들은 사극에서 보여 지는 것들을 역사적인 진실로 생각하여 받아들이며 그 드라마가 인기를 모을수록 배역을 통하여 역사속의 인물을 생각한다. 그리하여 연기자의 모습이 곧 역사적 주인공 바로 그 자체일 것이라는 착각까지 하게 된다고 할까? 지금은 많이 달라졌지만 지난 시절에는 악역을 맡은 배우는 그야말로 얼굴 들고 다니기가 두려울 만큼의 곤혹스런 일도 많았다고 한다. 이제는 악역을 맡은 배우를 향하여 돌팔매질하는 일은 줄었지만 어떤 드라마가 인기를 끌면 끌수록 그 주인공을 연기한 배우가 왠지 역사속의 실존 인물인 것 같은 착각을 하게 만든다.

전문 역사학자들에게 사극은 허구의 영역이었다. 그래서 그동안 사극은 관심밖의 것이었다. 그러나 이제 4명의 역사학자들이 사극 <장희빈>을 말하기 시작했다. ‘사극이 배반한 장희빈의 진실’을 찾아, 대중에게 그 진실을 되돌려 주기 위해서이다. 허구인 사극이 역사학자들을 움직였지만, 결국 이들의 대답은 '도대체 역사란 무엇인가?', '이 시대에 역사학자는 무엇을 할 것인가?'라는 물음으로 돌아왔다. <출판사 보도 자료 중에서>

이 책은 역사학자 4사람이 그간 우리에게 사극으로 다가왔던 장희빈에 대한 집중적인 해석과 진실 찾기다. 4명의 역사가가 같은 주제를 다루고 있어서 중복되는 부분도 없잖아 보이지만 역사 학자마다 나름의 주관적인 시각을 보여주고 있어서 중복되는 내용이 다소 보여도 지루하거나 그게 그거라는 생각은 전혀 들지 않는다.

4명의 역사학자는 사극속의 장희빈과 실제 역사속의 장희빈을 찾아 새로운 진실을 향해 생각의 꼬리를 잇게 하고 사극을 바라보는 눈, 역사를 바라보는 눈을 트이게 한다. 그렇다 이 책은 결국 장희빈의 이런저런 모습을 통하여 이제라도 사극과 역사를 제대로 알아보는 것이 주된 목적이다.

TV사극이 자주 만들어지는 까닭은 무엇인가? 이에 대해 시원한 답을 구하기는 어렵다. 하지만 화면에서 펼쳐지는 사극이 우리나라 사람들의 역사 지식과 역사 인식에 막강한 영향을 끼치고 있다는 사실을 모르는 사람은 없다. TV를 시청하는 사람들은 방영중인 사극이 나름대로 전하고 있다고 믿는다.

초등학교에서 대학과정에 이르기까지 '국사'라는 이름으로 정부가 나서서 역사교육을 강조했지만, 학교에서 배웠다고나 역사책을 읽고 우리 역사를 잘 알게 되었다는 사람은 드물다. TV사극은 더 이상 단순한 볼거리에 그치지 않는다. 이를 시청하는 국민 모두에게 역사를 교육하고 국민의 역사의식을 지배하는 지경에 이르게 되었다.<책 속에서>


사람들은 사극을 역사의 진실로 받아들인다. 사극을 집필하고 제작하는 사람들이 실록이나 관련 문헌을 바탕으로 하고 있고 어떤 중요한 사건이 펼쳐질 때 실록 한 장면을 내보내거나 자막으로 혹은 해설로 사람들에게 진실을 호소하기도 하는데 정말 사극속의 모든 사람이 그 당시 실존인물이며 이 실록이라는 것이 절대적으로 보편적이고 진실하며 공평한가. 또한 사극이 얼마나 역사에 충실하고자 노력하는가. 사극은 사극이고 역사는 역사일 뿐인데 사람들은 사극을 절대적인 역사의 진실로 본다.

또한 최근 몇 년간 사극은 높은 시청률을 기록했고, 사극의 가장 많은 소재였던 장희빈에 대한 해석도 분분하다. 그래서 이 책은 우리에게 필요하다.

나 역시 사극은 무척 즐기는 편이다. 때문인지 아이들도 사극을 좋아하여 다른 드라마를 제치고 사극을 보곤 하는데 그럭저럭 부족하나마 어느 정도는 알고 있던 역사적 지식을 가지고 보는 것하고 역사에 관한 지극히 짧은 단편적인 지식만 가지고 아이들이 보는 사극으로서 장희빈에 대한 차이는 당연히 엄청나다. 역사의 주인공들은 앞으로 자라나는 우리 아이들 몫이며 지금 우리는 그 아이들에게 기초 같은 존재가 되어 주어야 할 것이다. 다시 이 책이 필요한 이유다.

사극을 좋아한다면, 정권이 바뀔 때마다, 혹은 시대가 요구하는 모습으로 끊임없이 진화하여 잊을만하면 우리 앞에 나타나는 장희빈에 대하여 집중적으로 알아봄도 좋을 것이다. 앞으로도 수많은 사극이 만들어지며 역사의 한 부분으로 사람들에게 중요한 역할을 할 것이다. 사람들은 사극을 통하여 역사를 알아가기를 머뭇거리지 않을 것이다. 그간 가장 많은 소재였던 장희빈 역시 그 시대에 맞게 진화하여 우리 앞에 다시 나타날 것이다. 사극을 좀 더 재미있게 영리하게 보기 위하여 다시 이 책이 필요한 이유다.

이 책은 전체적으로 4부로 구성되어 있다. 역사학자 4명이 공통 주제를 놓고 새로운 시각으로 새로운 이야기를 들려주어서 또 다시 역사에 한발 더 다가가는 계기가 되었다. 앞으로 다시 또 다른 장희빈이 나타난다면 좀 더 깊은 안목을 가지고 장희빈과 인현왕후나 숙종, 그리고 역사적 배경이나 상황을 좀 더 깊숙이 탐구하고 싶다. 이제 사극을 바라보는 눈이 좀 더 날카로워 지고 좀 더 복잡해지기를 내 스스로 원한다고 할까. 이런 생각과 함께 역사적인 많은 지식들도 이 책에서 얻을 수 있다

장희빈의 진화 못지않게 숙종이나 인현왕후의 진화도 흥미로우며, 역사가들이 들려주는 상세하고 명쾌한 역사적인 이야기는 끊임없는 질문과 꼬리를 물고 가상의 역사까지 생각해보게 한다. 역사를 해부해 본다는 것. 이미 우리에게 알려진 역사지만 진실을 찾아 다시 생각하게 한다는 것, 사극을 해부해 본다는 것, 특히 ‘실록’에 대한 이야기와 그 시대 가장 큰 정치세력이었던 남인과 서인에 대한 다각도의 상식과 눈 트임이 가능한 책이었다. 두루두루 생각을 많이 하며 읽었고 앞으로 더 알아야 할 관련 지식까지 갖게 하는 책이랄까.

책을 덮고 다시 생각해본다. 장희빈이 역사에서 승리자였다면 장희빈은 우리 앞에 어떤 모습으로 진화하였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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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연사랑 2005-08-15 02:3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역사란 '이긴 자의 기록'이라 하던가요. 삼국지을 보면서 유비를 좋게 평가하지만 실제로 현명한 통치자는 조조였다고 하더군요. 장희빈이 앞으로 어떤 모습으로 우리 앞에 다시 나타날지, 저도 같이 궁금해 하렵니다^^

2005-10-21 23:29   URL
비밀 댓글입니다.
 
몸으로 하는 공부 - 강유원 잡문집
강유원 지음 / 여름언덕 / 2005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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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따로 세상 따로 인지, 책과 세상이 서로 엉켜있는지는 모르겠으나 적어도 나의 경우에는 내 삶과 책은 서로 엉켜있다. 난 책에서 읽은 것을 세상에서 확인하고 세상에서 겪은 것을 책에서 정리한다. 책에서 읽고 감동한 바를 가슴에 새겨두고 그것을 다시 되새기곤 한다. 그리고 책을 읽는 사람 모두가 이런 과정을 모두 겪을 것이다. 그렇다면 책과 세상까지는 아니어도 책과 사람은 생각해볼 필요가 있는 것이다 <본문 중에서>

학문은, 철학은 일상을 떠나서 이루어질 수 없다

스스로를 '시니컬'한 사람이라 말하는 철학박사의 잡문집을 읽는다. 16꼭지의 다소 긴 듯한 글들은 결코 지루하다거나 고루하지 않고 냉철한 이성으로 깨어 있다. 또한 지금 우리가 살아가는 세상의 한편을 신랄하게 꼬집어 주는 글들은 진보적이며 통쾌하기까지 하다.

사실 철학이란 무엇인가. 우리의 삶, 곧 그것 아닌가. 그런데 왠지 철학은 어렵다. 학문의 한 분야로서 존재하는 것이라고 결론까지 미리 내려버리고 나니 철학은, 현실을 살아가는 일상인에게는 어떤 개념이나 정의와 함께 그야말로 학문적 가치일 뿐이다. 그냥 칸트, 소크라테스와 함께 한편에 올려 두어도 아무런 탈이 없을 것인데 일부 사람들(철학자, 학자)은 그걸 ‘논’하자고 일부러 들먹인다. 그렇다고 일상에서 써먹을 것도 절대로 아닌데… 그러나 새삼스럽게 철학은 내 삶의 모습임을 이 책을 통하여 돌아보게 되었다.

철학을 전공하였으며, 한때 강단에서 학생들을 가르친 적도 있는 철학자 강유원의 삶과 학문, 철학의 연결 고리는 이렇다.

철학은 일상을 떠나서 이루어질 수 없다.우리가 발 딛고 있는 현실에 대한 철저한 의식이 있어야만 철학을 제대로 할 수 있다는 것이 내 생각이다. 여기서 우리는 현실이라는 말에 주의를 둘 필요가 있다. 현실은 늘 우리 앞에 있다. 그러나 그것은 항상 사실 그대로의 모습으로 놓여 있는 것이 아니다. 많은 왜곡과 거짓으로 쌓여있다. 따라서 현실을 본다는 것은 그러한 왜곡과 거짓을 벗겨 내야 한다는 것을 뜻한다. 여기서 철학적 사유의 기본적인 출발점인 의심이 생겨나는 것이다. <본문 ‘철학의 현실적 쓸모’중에서>

사실 욕심이라면 이 책의 각 주제의 글 중 밑줄 그은 곳 한 꼭지씩이라도 슬쩍 보여주면서, 학문을 삶의 한 방편으로 옹골지게 껴안기를 원하는 저자의 이성과 사고를 함께 나누자고 하고 싶다. 현실을 외면하지 않고 자신의 학문을 단지 사유하고 담론하는 것으로가 아닌 '몸으로 엉켜들기'를, '현실에서 그 체험'을 원하는 저자의 냉철한 지성을 같이 나누자고 하고 싶다.

…마지막으로 한 가지 더 이야기해보자. 안다는 것은 일반적으로 머리로 아는 것을 가리키는데 그것이 안다는 것의 전부를 의미하는 건 아니다. 제대로 안다는 것은 사실 '할 줄 안다'는 것까지 포함한다. 머리로 익힌 것을 몸으로 해봐서 할 줄 아는 단계로까지 가야 어느 정도 앎의 완성에 접근해간 것이다. 이걸 흔히 '지행합일'. 또는 지행일치'라고 한다.<본문 '안다는 것'>

거리낌 없이 날카로운 글들에서 내가 얻는 것은...

책을 읽으며 다시 생각해 볼 필요가 있으며 새로운 세계로 이어지는 고리의 글에 밑줄을 긋는다. 또한 읽어 나가다가 깊이 공감하는 글이 묻히거나 바래지지 않기를 바라며 밑줄을 긋기도 하는데, 이 책 역시 밑줄을 많이 그었다.

모순의 박정희 전기 그 출판에 대한 통렬한 비판의 글에도 밑줄을 그었다. 하기야 그렇지. 전기라는 것은 '어떤 사람의 사후에 그의 업적을 기려, 혹은 그의 정신을 추앙하며' 가 당연한데 국민 학교 4학년 때 세계 위인전 시리즈 전기로 읽은 사람이 고등학교 3학년 때 드디어 죽다니… 우리가 살아 온 세월의 한 갈래다.

…박정희 전기라고? 딱 잘라 말해 미친 짓이다. 박정희가 죽은 게 나 고등학교 3학년 때인데 내가 국민 학교 4학년 때 벌써 박정희 전기를 읽었다는 게 지금 생각해봐도 어이없는 짓이다. 스스로 쓴 회고록이 아닌 한, 전기는 전기의 대상이 되는 사람이 죽은 다음에야 쓰여 지는 것이다. 그런데 버젓이 살아 있는 사람의 전기가 쓰여 진다는 것은 어이없고, 그걸 쓴 사람도 미쳤고 출판사도 미쳤다…"<책 따로 세상 따로 중에서>

사실 이 잡문집에서 만나는 저자의 비판은 거리낌 없고 날카롭다. 사회의 비주류, 즉 약자인 나에게는 통쾌한 대리만족이다. 누가 나서서 사회의 비주류인 나를 위하여 잘나가는 주류들을 이렇게 거침없이 때려 줄 수 있음 이련가. 통쾌한 칼날을 따라 가다가 아차~! 그러나 시니컬한 철학자는 위험 수치를 결코 넘지 않고서도 다시 또 다른 주류들을 향하여 거리낌 없다.

대학과 매스 미디어에 공생의 관계로 혹은 빌붙어 사는 지식인들을 향한 비판에도 밑줄을 그었다. 꽤나 유명한 어느 철학자에 대한 공자론 운운 글에도 밑줄을 그었다. 애초부터 팍팍하기 이를 데 없는 삶을 살아가는 나에게 답답하기 이를 데 없는 공자운운이었지만, 확실한 학문 체계가 없는 나로서는 누군가에게 단 한번이라도 써먹기 위하여 모방의 밑줄을 그었다.

'맥도날드로 대변되는 패스트푸드. '패스트푸드의 전체주의'라는 주제의 글은 몇 번을 읽어도 생각을 갈래갈래 잇고 있다. 우리 스스로 편하고자 만들어 낸 패스트푸드는 이젠 인간을 패스트푸드 화 시키고 있다. 공존하는 나 역시 좋든 싫든 그 영향에서 아주 벗어나기란 불가능하다. 그러나 가급이면 덜 스며들어야겠지. 나의 관심 분야를 어느 정도는 고리 짓고 있는 주제여서 앞으로 좀 더 유용하게 펼쳐 보고 참고삼으면 좋을 글임은 분명하다. 저자는 약간 다른 방향의 사유를 내비치지만 내 나름의 방식으로 흡수하여 보는 글이다.

몸으로 공부하기, 강유원을 알려면 이 잡문집을 읽어라.

2002년까지는 책읽기만이 내 인생의 알리바이였으나 2005년에는 글쓰기가 그것에 덧붙여졌다. 예나 지금이나 책읽기와 글쓰기는 몸으로 하는 것이고, 그 목적은 위기지학이라 여긴다.

그간 저자가 시중에 내보였던 서평집 '책'이나 '서양근대문명의 기반' '책과 세계'등이 일정의 형식을 따라야 했다면 이 잡문집은 저자 강유원의 형식을 벗어 던진 한층 더 자유로운 사유를 이해할 수 있는 글들이다. 이 잡문집은 강유원의 ‘책과 세상’에 대한 자유로운 사유와 통찰의 글들로 자신의 홈페이지에 ‘잡문’이라 정하여 적은 글들이다.

저자가 말하는 지식인으로서 설 곳은 두 군데 '체제 안'과 '체제 밖'.이다. 저자는 체제 안에 흡수되기를 거부한다. 이 책은 ‘체제 밖‘에서 꿋꿋하게 걸어가는 저자의 삶과 학문, 문화 사회 등에 관한 짧지만 깊이 있는 글들을 담고 있다. 그 작은 형식마저 벗어던진 자유로운 사유를 통하여 그간 우리에게 보여 주었던 글의 근원을 이해하기에 좋은 책이란 생각이다.

책을 펼쳐 속살을 보기 전에 눈길을 끌었던 글을 덧붙인다.

누가 요즘 무슨 책 읽느냐고 물어 봤을 때,'한글 엑셀 따라하기 읽는다.'고 대답하는 사람들은 없을 것이다. 그런 책을 우습게 봐서가 아니라 사람들은 대개 그런 걸 책이라 여기지 않기 때문이다. 거듭 말하지만 사람들이 책으로 여기는 것들을 읽지 않아도 세상사는 데에는 지장이 없다.

세상사는 데 지장이 없다는 것은 바로 세상과 책이 별 관계가 없다는 것에 대한 가장 틀림없는 증거이다. 게다가 지금까지의 인류 역사를 볼 때 책을 읽지 않고 살았던 시기가 훨씬 길었으며, 그런 사람의 숫자도 훨씬 많았다. 그러니 책을 읽어야만 제대로 된 사람이 될 수 있고. 알찬 삶을 살 수 있다는 스트레스에서 벗어나는 것이 좋겠다. 괜히 주눅들 필요는 없다.

그러면 책은 왜 읽어야만 할까? 이 물음에 대한 답은 사람마다 다르다. 그리고 반드시 책을 좋아하는 사람만 이 물음에 답을 해야 할 것이다.<뒤표지 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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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arine 2005-09-01 16:0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리뷰를 참 성실하게 잘 쓰시네요 ^^ 저도 이 책 재밌게 읽고 있습니다 강유원의 홈페이지에서 본 내용들도 있는데, 다시 읽어도 재밌습니다 "몸으로 하는 공부" 라는 제목에 저자가 하고 싶은 말이 다 압축되어 있는 것 같아요
 
이윤기가 건너는 강 - 내가 건너고 있으나 필경 다 건너지 못할 강에 대한 글 37꼭지
이윤기 지음 / 작가정신 / 2001년 10월
평점 :
구판절판


<이윤기가 건너는 강>의 '패자부활, 혹은 불량인간의 위대한 탄생'편에서 불량인간으로 대표되는 사람은 국민가수 조용필이다. 단연 조용필을 두고 불량인간이라고 말한다. 나름의 이유로 이 불량인간편을 자주 찾아 읽는다.

"조용필을 인터뷰한 월간 잡지 신동아의 박윤석 기자는 조용필이 혼잣말하듯이 '딴따라가 불량인간으로 취급받던 때가 엊그제 같은데…' 이렇게 중얼거리더라. 면서 기자 자신의 심중소회를 다음과 같이 쓰고 있다.

조용필은 광복 이후 한국 가요계를 수놓은 대중 스타들. 그 숱한 불량인간의 반열 그 끝자리에 위치하고 있다. 그는 기타를 처음 잡은 그날 이후 최소한 70년대까지는 불량인간의 범주를 벗어나지 못했다. 세상이 그렇게 규정했기 때문이다. 그의 이름이 알려지기도 전, 일찍이 그를 불량인간으로 규정한 것은 그의 부모였다.… '우리 가문에 딴따라는 없다'는 부모의 뜻을 거스를 수 없어 고려대 영문과에 원서를 보내기는 했지만 고사장으로 가는 대신 가출, 잠시 다닌 음악 학원 친구들과 아마추어 그룹을 만들어 파주 일대 기지촌 클럽 주변으로 흘러들었다. 이만하면 불량인간의 전형을 이루고도 남는다. <책 속에서>


불량인간 조용필에 관한 글을 일부러 찾아 읽는 날은 대부분 아이 문제로 착잡한 날이다.

'내가 아이에게 바라는 것, 사회가 아이에게 모범인간으로 못 박아 규정하는 것, 그리고 내 아이가 스스로 원하는 것. 사회에 모범인간으로 발 딛고 살아가야 이른바 성공하였다는 평을 들을 것인데 사회에서 바라는 모범인간이기를 내 스스로 거부해버린 터에 모범인간을 어떻게 길러 낼 수 있을까. 제대로 된 모범인간과 사회의 규범이 만들어 낸 모범인간, 불량인간과 사회의 지나친 규범이 만들어 낸 불량인간, 아이를 어떻게 키움이 제대로 된 그것인가? 내 아이는 장차 어떤 인간으로 살아가길 원하는가? 언제든 아이편이 되어 아이를 믿어 줄 수 있을까?'

혼자만의 생각이 깊어지는 시간에, 잡스러운 생각으로 서성이는 시간에 일부러 찾아 읽는 글들이 이 산문집에 꽤 많다. 써지지 않는 글에 대한 상념, 나와 관계하는 사람들과의 어정쩡한 지금 이 순간, 그리고 무엇이든 뜨겁지도 차갑지도 않아 어정쩡할 때 이 책을 꺾어 들고 아무렇게나 읽어 버리기 일쑤다.

아무렇게나 읽다가 그냥 문득 털어버리고 다시 나의 시간들을 가곤 하는, 이 책에 대하여 나는 왜 이런 무작정이며 막연한 습관을 들였을까. 편안함일 것이다. 쉽고 친숙한 사람에게 생각 날 때 찾아가 차 한 잔 얻어 마시고 돌아오는 것만으로 마음이 어느 정도는 편안해지는 것처럼, 아무 때나 찾아 읽고 편안해지거나 무언가 지금 해야겠다는 자발적인 힘이 돋게 하는 책이지 아마.

'내가 건너고 있으나 필경 다 건너지 못할 강에 대한 글 37꼭지'라는 부제를 달고 있는 이 산문집은 전체적으로 농익은 저자의 글맛과 함부로 버릴 수 없는 자의식을 높이 세우는 자존심 강한 글들이다.

첫 번째 '말의 강, 글의 강'에서 저자의 말과 글에 대한 살핌과 깊은 책임의식을 느낄 수 있다. 밑줄 그어둔 한 대목, 같이 생각하자는 의미에 덧붙여 보면.

…문제는 우리말인데 나는 우리말과의 씨름을 이렇게 하고 있다. 첫째는 사전과의 싸움이다. …사전을 열어야 말의 역사. 단어의 진화사가 보인다. 그런데도 번역가는 사전 안 펴고 어물쩍 구렁이 담 넘듯이 넘어가고 싶다는 유혹과 하룻밤에도 수십 번씩 싸워야 한다. …호치키스는 어떤가? 호치키스는 원래 기관총 상표명이다. 전쟁 끝나 기관총 잘 안 팔리니까 그 기관총 탄창에 총알 쟁여 넣는 기술을 원용해서 만든 것이 우리가 아는 호치키스다. 하지만 호치키스는 상표명이고 이 물건의 일반 명사는 '스태플러'다. 우리말로는 제책기라고 한다.

남의 번역을 시비하는 것은 되도록 삼가고 있지만 번역하는 사람이 사전 안 찾고 얼렁뚱땅 넘어가는 버릇은 반드시 고쳐야 한다는 뜻에서 하나만 시비한다. 나는 십수년 전 어떤 소설의 한국어 번역판에서 "그는 자기의 루거를 불태웠다"는 문장을 읽고 많이 웃었던 적이 있다. 원문을 확인 할 것도 없이 'He fired his Luger'일 것이라고 짐작했기 때문이다. '루거'는 독일제 9밀리 권총의 상표명이다. 따라서 그 문장의 정확한 번역은 "그는 권총을 쏘았다"가 맞다. <책 속에서>"


번역서 150여 권, 그리스 로마신화의 대명사. 이 산문집의 첫 번째 말의 강, 글의 강에 실린 글들은 이런 위치의 작가가 밥벌이의 무기랄 수 있는 말과 글에 대한 스스로 살핌과 함께 살핌의 글들이다. 번역이든, 자신의 순수 창작의 글이든 책임감을 가지고 번역하고 글을 쓰는 작가가 늘 들여다보는 거울을 같이 보는 그런 착각을 하며 수시로 들여다보는 글들이다.

두 번째 '풍속의 강, 세월의 강'에서는 일상에서 만나는 문제들에 대한 작가의 경험과 사유들인데 앞서 말한 불량인간에 대한 글도 두 번째 장에 있다. 책을 보면서 밑줄 긋기를 예사로 하다 보니 이 책에도 나의 밑줄 긋기는 어지간히 눈에 띈다. 20가지 주제마다 느끼는 것은 문제의식이다. 나 자신에 대하여 사회에 대하여 혹은 타인과의 그 관계에 대하여.

사실 두 번째에서는 함께 생각할 공감의 글들이 많다. 정곡으로 찌르기보다는 예의 있게 말을 꺼내고 공감하고 같이 걸어가다가 은근슬쩍 툭~! 치며 "이건 이렇게 하면 안 되는 거야.", "그건 절대로 아닌 거지.", "이럴 수야 없잖겠어." 이런 느낌의 글들이다.

지나친 형식에 의식화된 행사장에서 그 알아들을 수도 없고 쩡쩡 울리는 소리에 곤혹이었던 이야기는 지금도 우리가 종종 겪는 일이다. 학창 시절에 죽으라고 길게 이어지던 교장선생임의 뻔한 그런 이야기를 생각하며 공감의 박수를 보냈었다. 손가락의 인류학이라는 글도 자주 보게 되는 글인데 문득 다시 펼쳐보니 이렇게 메모해 둔 글이 보인다."손가락? 나의 마음을 대신하여 키보드에서 오늘도 혹사당하는 손가락에 대하여 나도 좀 더 생각해보자" 이런 메모와 함께 밑줄 그어둔 부분을 소개하면,

"내가 여러 차례 지적해왔거니와 우리는 '다름'과 '틀림'을 혼용하는 기이한 시대를 살고 있다. 그 사람의 종교는 나와 틀려요 . '다르지' '틀리다'는 것이 아니다. 그 사람과 나는 방향이 틀려요. '다를 뿐' '틀리는 것'이 아니다. '다르다'는 '같다'의 반대말이고, '틀리다'는 '옳다'의 반대말이다. 나와 다른 것은 틀린 것이라는 뜻인가? 나와 같지 않은 녀석은 '틀려먹은 녀석'이라는 것인가? 오늘부터라도 바로 쓰면 큰 병 하나 고치는 셈이 된다. <책 속에서> "

이 외에도, '굳은 살 이야기'나 '고향에 대한 이야기', 내가 기도하지 않는 까닭' 등 많은 글에서 많은 공감을 얻었다. 치부일망정 솔직히 인정하며 좀 더 깊은 인간의 길을 선택하는 글들이 참 좋다. 아무나 쉽게 읽으며 받아들일 수 있는 유쾌하고 친숙한 글들에 잠시 빠져들다 보면 어정쩡하게 서성이는 시간들이 정리되는 이유가 아마 이건가 보다.

세 번째 '신화의 강, 문학의 강'은 저자의 신화작가로서 문학에 대한 얼마든지 더 깊어도 되는 문학에 대한 통찰과 사유인데 이제까지 다루었던 문학 소재의 인물들 그 함축적인 모습을 만날 수 있어서 좋다. 다시 만난 조르바는 오히려 더 반가웠다고 할까. 조르바나 니코스에 관한 글 외에도 그간 신화문학인으로서 이윤기의 깊은 사유를 볼 수 있는 글들은 다른 책으로 이미 만나졌던 인물들에게 더 깊은 애정을 갖게 한다.

이 산문집은 1993년부터 1999년까지 6년간 수필 전문 월간지 <에세이>에 '이윤기가 건너는 강'이라는 제목으로 연재했던 글을 모태로 하고 있다. 여기에다 이런 저런 일간지에 기고했던 글을 보강하여 한 권 분량으로 묶은 것이다. 독자들 중에는 작가들이 여기저기 연재했던 글을 모아 한 권의 책으로 묶는 것에 대해 그리 탐탁하지 않게 생각하기도 한다는데, 글쎄? 개인적인 의견을 덧붙이면 작가의 이런 저런 면을 한꺼번에 볼 수 있어서 오히려 좋다.

말과 글이 막히는 날이면 이윤기의 산문집을 본다. <무지개와 프리즘> <어른의 학교> <우리가 어제 죽인 괴물> 그리고 이 책이다. 언뜻 미국에 오래 생활했던 만큼, 또한 서양문명의 대표랄 수 있는 그리스 로마 신화를 대표하는 작가라서 '메이드인 유에스에이화?' 그러나 절대로 인스턴트식의 맛이 아니다. 적당히 제대로 참고 기다린 발효의 맛, 깊고 그윽한 그 발효의 맛이 늘 느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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