벽은 무엇인가-세상과 사람에 대한 나의 편견, 그리고 따뜻함
벽(mur)… 우리에게 어떤 의미인가. 그리고 무엇인가. 단절, 고립, 편견, 오해, 대립, 곤경, 막막함… 턱~! 가슴을 무겁게 짓누른다.
사람과 사람간에 말이나 뜻이 제대로 통하지 않는 그 답답함을 '벽에 대고 말한다' 하기도 하고, 더 이상 물러서지 못하는 어려움에 봉착하였을 때 '벽에 맞닥뜨리다'라고 말한다. 또한 아주 막막한 순간, 사면초가라는 말과 함께 '사방이 꽉 막힌 벽 사이에 갇히다'라고 표현하는가 하면 그리하여 결국 막막하여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절박의 심정으로 '벽을 등지고 서다' 혹은 ' 벽에 머리를 박다'라고 한다. 아, 말만으로도 답답하고 그저 막막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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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천식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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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5 전라도닷컴 윤재경 |
| 혹은 사람과 세상에서 고립과 소외를 맛보았던 사람, 혹은 사람사이에 소통의 절망을 느낀 사람은 자신만의 벽을 만들어 그 안에 스스로 숨어들어 버린다. 그 사람은 자신이 스스로 만들어 버린 관념과 편견의 벽 속에서 차라리 편안할지도 모르겠다. 그럼 죄수에게 벽은 시시각각 어떤 의미일까. 자폐증의 그 벽은? 벽, 그러고 보니 세상은 보이든 보이지 않던 끊임없는 벽이다.
사람과 사람간의 관계, 혹은 나와 다른 존재들 과에서 오는 '편견의 벽'이 나에게는 없는가? 아니 분명히 있다. 그것도 셀 수도 없을 만큼이며, 이미 내 스스로 알고 있는 벽 외에 무수한 벽이 있다가 어느 순간 나타나 또 다른 세계로, 혹은 또 다른 사람과 단절시킨다.
그럼 그렇지. 오해가 풀리고 앙금이 가라앉는 순간 하나의 벽을 무너뜨리지만, 다시 나도 모르게 또 하나의 벽이 이미 세워져 있어 다시 부딪힐 날을 기다리고 있다. 그러고 보면 벽이란 사람이 살아가는 동안 늘 함께 하는 것이다.
건축으로서의 벽도 늘 우리와 함께 하듯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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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어린 왕자를 만나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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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5 전라도닷컴 윤재경 |
| 벽은 한편으로 우리들 삶을 거칠고 황량한 바람으로부터 보호해주는 든든한 보호자이다. 기댈 수 있는 의지 처다. 거친 비바람 속을 걸어 문을 열면 그곳에 가장 편안한 나만의 공간 혹은 사랑하는 가족들과 함께 할 수 있는 공간이 있다. 이럴 때 벽은 없어서는 안 되는 가장 든든한 버팀목이 되어 주는 것이다.
절망스러움에 기대고 앉아 마음을 다독거리기도 하고 외로움과 허전함에 벽을 기대고 앉아 허공 바라기 하다가 가슴에 돋는 별 하나 있어 다시 일으키는 삶…. 이럴 때 벽은 쓰러지지 말고 잠시 기대었다가 다시 일어서기를 독려해주는 고마운 위안이 되기도 한다.
이렇게 벽은 이 세상과 저 세상을 경계하고 있으며, 나와 너, 나와 다른 사람들이나 세상 모든 사물들과 존재를 구분하면서 동시에 이어주는 역할로서 우리의 삶이 지속되는 한은 함께 해야 하는 그런 존재다. 건축물로든 내마음 속에 가지고 있는 무엇이든, 개인마다 각자 나름으로 가지고 있는 수많은 벽이 있는가 하면 많은 사람들을 동시에 통곡하게 하는 그런 벽도 있다.
'…프랑스 북부 노르망디 해변에는 아주 일부분이기는 하지만, 아직도 보는 이들을 위압하는 대서양 방벽(1942년부터 1944년에 걸쳐 프랑스에서 노르웨이까지 펼쳐지는 해안과 절벽을 따라 나치에 의해 건조된 거대한 요새)의 흔적이 남아 있다. 또한 몇 세기가 지나는 동안 유대인들은 '통곡의 벽' 앞에서 눈물을 흘렸으며, 최근 역사 속으로 사라진 '베를린 장벽'은 여전히 자유의 부재를 의미한다. 이처럼 우리에게 벽은 언제나 싸워나가야 할 장애물이자 방해꾼, 그리고 적이기도 하다.
…'벽은 장애물이다'라는 고정관념과 함께 여러 이미지들이 겹쳐 떠오른다. 우선 어원학적으로 분석해보면 '무루스(murus)'라는 라틴어는 한 도시의 울타리를 가리키며 넓은 의미로는 보호와 안전을 뜻한다. 그리고 고대 그리스어 '모이로스(moiros)는 그리스의 세 여신 '모이라이(Moirai)라는 낱말과 비슷한데, 이 여신들은 운명의 손을 가지고 있어 인간의 생명 줄을 잣기도 하고 끊기도 한다. 이 같은 신화적 해석을 따른다면 벽은 모성적 보호 울타리인 동시에 부성적 금지를 뜻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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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자유롭게 매일 탈출을 꿈꾼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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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5 전라도닷컴 윤재경 |
| "내 권태의 벽 위에 너의 이름을 쓴다. 자유여"-폴 엘뤼아르
나에게 나 외의 무수한 존재는 무엇이어야 하는가? 난, 늘 새로운 자유를 꿈꾸며 새로운 것에 대하여 늘 치명적인 사랑을 갈구한다. 그리하여 오늘도 가장 낮은 벽의 틈새를 보기도 하고, 가장 견고한 현대의 재료들로 무장된 높디높은 벽 앞에도 서본다. 살아가는 동안 내가 만나야 하는 수많은 벽들, 수많은 사람들과 생각들… 나의 벽들, 나에게 와 있는 사람들, 나는 또한 타인에게 어떤 모습의 벽인가. 나는 어떤 벽을 가지고 타인에게 서 있는가.
난, 궁금한 것이 많다. 그것도 잡식성으로… 뱀, 그것이 징그러워 그 징그러움을 제대로 알고 싶어 한동안 뱀만 따라 다녔다. 집요하게 따라다니는 동안 꿈속에서 수많은 뱀들이 엉켜들었고, 똬리를 틀고 혀를 날름거리며 나를 놀리기도 하였으며, 어느 날은 내 양어깨를 교묘히 눌러대며 눈 가까이에까지 독기어린 혀를 날름거렸다.
"얘는 취미도 어지간히 별스럽다. 보기만 해도 징그러운 그 뱀이 그리 궁금하냐?" "뱀이 어때서? 글쎄 징그러우니까 더 들여다보아야지. 죽는 날까지 징그럽다고 피할래? 그까짓 뱀이 뭔데 나를 지배해?"… 그런 어느 날 뱀은 웃으며 나를 쫒아 왔는데, 첫날 꿈에 꿈속에서마저 오싹하던 소름은 이젠 친구 같은 그런 친근함으로 바뀌어 있어서 꿈 속에조차 참 편안한 기분이었다.
막연히 두렵고 꺼려지던 뱀을 내 스스로 먼저 잡아들이자, 그 너머로 혐오스럽던 모든 것들에 대한 경계가 느슨해져 있었다. 막연히 두렵던 뱀에 대한 편견을 내 스스로 불러 들여 깨뜨리고 나니 막연히 두렵고 징그러워 마냥 피하던 그 편견 뒤에는 하마터면 놓쳐버리고 말았을 값진 것들이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큰 비가 그친 땡볕의 포장된 아스팔트 위에 잘못 나온 지렁이를 손으로 잡아 풀숲에 넣어 준다. 기어가는 벌레를 슬그머니 손으로 톡 쳐보기도 하고 가만히 들여다보며 천천히 따라가 보기도 한다. 징그럽다? 이 작고 사소한 것들을 통하여 다양한 세계와 접속할 수 있는 그 시작을 수시로 만끽한다.
많은 사람들이 손가락질 하는 사람 옆에 슬그머니 앉아 그 사람을 잠시 바라보다보면 그 사람에게서 또 다른 모습을 보게도 된다. 세상 모든 사람이 진실이라고 믿는 것 중에 진실이 아니어서 또 다른 진실이 억울하게 숨겨져 버리는 경우도 있다.
-<뱀>에 대한 리뷰 그 후기, 내가 막연한 편견을 깨뜨려 가는 방법 중 하나
건축물로서 벽을 통하여 삶의 본질을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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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昇天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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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5 전라도닷컴 윤재경 | 사람들이 제일 처음 만나는 벽은 어머니의 자궁벽이다. 벽 속에서 보호를 받던 어린아이는 걸음과 함께 벽 그 너머를 가고 싶어 한다. 아이는 벽에 부딪히거나 혹은 상처를 입거나…를 되풀이 하며 청소년기를 지나 어른이 된다. 사람들은 보이든 보이지 않던 수많은 벽을 만나고 그 벽을 넘나들며, 혹은 그 벽을 넘지 못하기도 하면서 일생을 살아간다.
벽은, 상징물로서 문학작품에도 수없이 묘사된다. 벽만큼 이것 아니면 저것을 경계하는 강한 소재가 또 있을까 싶을 만큼 벽은 경계를 이루며 수많은 진실과 수많은 거짓의 경계, 남자와 여자의 그 가운데, 억압과 자유의 경계를 이루는 그런 존재로서 벽은 문학작품에서 무수히 세워지는가 하면 무수히 부수어진다.
얼핏, 이런 책은 일부 사람들의 관심에서나 유용하게 읽혀질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할지도 모르겠는데, 막연히 그런 생각만 고집하는 것보다는 좀 더 다양한 소재로 접근해보면 결국 그것은 우리 삶의 또 다른 모습임을 쉽게 알 수 있다. 세상의 모든 책은 결국 우리의 삶, 그 한 부분이자, 또 다른 곳으로 연결 시켜주는 고리이기 때문이다. 이 책은 실은 건축가보다는 일반인을 위하여 씌어진 책이라는 생각이 더 앞선다. 벽. 그것은 우리의 생활요소 중에서 뗄 수 없는 존재이기 때문이다.
이 책은 2001년 처음 출간된 후 유럽등지에서 큰 호응을 얻은 책이다. 그간 나왔던 책들이 각 지역의 어떤 벽들을 따라 대상으로 삼아 단순히 벽으로만 말한다면, 이 책은 벽을 통하여 벽이 우리의 삶에 어떻게 스며있는지 생활적, 문학적, 철학적으로 어떤 의미인지 약간의 지성만 겸비한 사람이라면 누구나 쉽게 건축물로서 다가 온 벽을 삶에서의 없어서는 안 될 요소로 이해할 수 있게, 각자 스스로의 벽을 생각하며 돌아보게 하는 철학적 요소까지 담고 있기 때문이다.
세상에는 어떤 벽들이 있는가?… 원시 동굴에서 시작한 벽은 이제 점점 갈수록 상징적 요소가 강해지고 있다. 사람들은 벽에 구인광고를 하기도 하고 벽에서 일자리 광고를 보기도 한다. 어떤 권리를 되찾기 위한 현수막을 거는 등 벽을 통하여 수많은 사람과 이야기를 하고 무언가를 알린다… 대자보는 어떤가. 벽은 어디에나 세워진다. 벽은 무엇으로든 세워지며 인간의 역사가 변하듯 계속 변한다. 그리고 이런 벽은 누구나 받아들일 수 있으며 넘고자 한다면 누구나 넘을 수 있다. 세상에는 생명을 걸고 넘어야만 하는 그런 벽도 수없이 있어왔지 않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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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5 눌와 | 이 책의 저자 에블린 페레 크리스탱은 현재 프랑스에서 학교나 관공서 같은 공공건물을 주로 짓고 있으며 교육에도 관심이 많아 대학에서 학생들을 가르치고 있는 건축가다. 이런 저자의 특성으로 건축가의 눈으로 건축의 일부분을 통하여 인간의 삶과 세상의 이야기를 철학적 의미로 들려준다. 일반인들도 건축으로서의 벽을 이루는 요소들을 쉽게 이해할 수 있으며, 인간의 거주 공간으로서의 벽을 여러 각도에서 의미지어 볼 수 있는 책이다.
"여기 벽이 있다. 그 뒤에서는 과연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을까?" 이 책은 이렇게 시작하여 내 안의 무수한 벽들을 둘러보게 하였다. 몇은 버려야 하고 몇은 나를 지탱해주는 자존심이다.
벽이란 무엇인가. 세상의 벽들에는 어떤 벽들이 있으며 벽은 어떻게 발전하여 왔는가. 벽을 이루는 소재는 무엇이며 어떤 역할로 세워지는가. 벽은 우리에게 어떤 의미였으며 어떤 의미인가… 벽이 우리에게 말을 걸어오고 있다. 자, 둘러보자. 지금 나를 둘러싸고 있는 벽들은 어떤 벽인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