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일 유학시절 때 일이다. 내가 속한 대학연구소와 막스플랑크연구소는 세계적인 학자들을 정기적으로 초청해 공동으로 콜로키엄을 열었다. 초청학자 안내 실무를 맡았던 나는 세계적인 학자들 가운데 유대인이 압도적으로 많다는 사실을 새롭게 깨달았다. 유대인에 대해 숱하게 들어온 이야기를 직접 확인한 셈이었다.

그렇다면 수천 년 동안 흩어져 살았음에도 유대인이라는 정체성을 잃지 않았을 뿐 아니라, 세계사에 강력한 영향을 미치는 인물을 지속적으로 배출할 수 있었던 이유는 무엇일까.

“영혼까지도 휴식이 필요” 탈무드에서도 역설
‘유전자가 다르기 때문’이라 한다면 지나치게 게으른 대답이다. 그것은 유대인 특유의 교육방식 때문이다. 세대를 이어 전수되는 교육방식과 문화적 전통이 유대인을 특별한 존재로 만드는 것이다. 그럼 도대체 어떤 교육방식이기에 유대인을 그토록 ‘다른 사람’들로 만드는 것일까.

유대인의 노동관은 근면과 성실에서 출발하지 않는다. 역설적이게도 휴식에 관한 명확한 철학이 유대인 노동관(觀)의 핵심이다. 유대인의 노동은 안식일을 정확히 지키는 것에서부터 시작된다. 일주일을 일했으면 안식일에는 무조건 쉬어야 한다. 환자도 고쳐서는 안 된다.

이를 어기고 안식일에 환자를 고친 예수는 유대인에게 배척당했다. 6년을 일했으면 7년째는 안식년으로 쉬어야 한다. 경작도 하지 말아야 한다. 경작하지 않은 땅에서 자연스럽게 난 과실은 가난한 사람들의 몫이었다.

안식년만 있었던 게 아니다. 7년씩 7번을 지나고 50년째 되는 해는 ‘희년(year of jubilee)’이라 했다. 희년에는 인간의 모든 관습도 쉬어야 했다. 죄인들은 풀어줘야 했고, 모든 계약관계는 무효가 되어 새로 시작돼야 했다.
유대인의 노동관이 이처럼 휴식에 초점이 맞춰져 있었기에 다른 민족이 도저히 따라갈 수 없는 창의적 민족이 될 수 있었다. 하루의 휴식에 관해 ‘탈무드’는 이렇게 말한다. “영혼까지도 휴식이 필요하다. 그래서 잠을 자는 것이다.”

잔업이 일상화된 일본에서 야근은 근면 성실한 직원의 특권으로 여겨진다. 하네다공항에서 도쿄 시내로 들어가는 모노레일을 타고 가다 보면 한밤에도 불이 꺼지지 않은 고층빌딩 사무실들이 눈에 띈다.

그러나 최근 이런 일본의 ‘잔업문화’가 오히려 일본 경제의 발목을 잡는다는 내부 비판이 쏟아지고 있다. ‘요미우리’ 신문에는 산업사회의 노동방식으로는 21세기 경쟁에서 살아남을 수 없다는 내용의 특집기사가 7월 말부터 몇 차례에 걸쳐 연재됐다. 서구기업에서 강조하는 ‘일과 삶의 조화(work-life balance)’ 정책에 앞서 일본에서는 ‘일과 생명의 조화’ 정책부터 실시해야 한다는 시니컬한 비평도 나왔다. 휴식을 통한 창의적 노동에 앞서 잔업을 없애 생명부터 부지할 수 있게 해달라는 것이다.

산업화 과정에서 일본의 노동문화를 흉내낼 수밖에 없었던 한국에서도 쉬지 않고 가동되는 공장과 불이 꺼지지 않는 사무실은 압축성장의 상징이었다. 그 압축성장의 핵심 인재들이 이제 각 기업의 최고경영자가 됐다. 이들의 눈에는 밥 먹듯 야근하는 직원들이 여전히 사랑스럽고 예쁘게 보일 것이다. 인간이란 자신의 경험으로 세상을 판단하게 돼 있으니 말이다. 그러나 세상이 바뀌었다. 능력 있고 창의적인 직원들은 무모한 노동만 강요하는 직장에 머물기를 원치 않는다.



이와 관련해 흥미로운 조사 결과가 있다. 최근 삼성경제연구소에서 11개 기업을 대상으로 ‘직장생활에서 무엇이 가장 중요한지’를 조사했다. 그 결과 11개 기업 가운데 7개 기업에서 ‘일과 삶의 균형’이 급여, 고용안정, 승진 등을 제치고 1위를 차지했다. 월급을 많이 받는 것보다, 높은 지위에 오르는 것보다 일할 때 일하고 졸릴 때 자는, 인간다운 삶을 원하는 사람이 많아졌다는 의미다. 회사에 꼭 필요한 우수 인재일수록 이런 경향이 강하다고 한다. 그런 까닭에 인사담당자의 한숨은 깊어진다. 놓치고 싶지 않은 인재는 떠나고, 그저 참고 인내할 뿐인 직원만 남아 있는 회사가 무한경쟁에서 살아남을 리 만무하기 때문이다.

집단자살 ‘레밍’의 운명 남의 일? 천만의 말씀
한 가지 더 흥미로운 현상이 있다. 최근 들어 야근을 많이 하는 직종이 바뀌고 있다. 단순직종보다 전문직의 야근과 주말근무가 갈수록 늘고 있는 것이다. 지식기반 사회에서 자신의 존재와 가치를 증명할 방법은 그리 간단하지 않다. 단순직무의 경우 생산성의 확인은 매우 간명하다. 노동시간에 상응하는 제품이 나오기 때문이다. 그러나 지식노동의 가치는 노동시간에 상응하지도 않고, 단시간 내에 생산성이 확인되지도 않는다.

문제는 우리가 지금까지 단순 육체노동으로 여겨왔던 일의 대부분이 지식노동의 형태로 옮겨가고 있다는 점이다. 자신의 전문성을 증명하는 것이 점점 더 어려워지고 있다는 말이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지식노동을 하면서도 자신의 가치는 단순한 육체노동 방식으로 증명하려 한다. 바로 야근과 주말근무다. 자신의 존재가 확인되지 않을 것에 대한 두려움 때문에 당신은 오늘도 야근하고 있지는 않은지….

지식노동자에게 휴식과 수면의 박탈은 죽음에 이르는 병이다. 아주 깊이 잠들어 있을 때를 ‘렘(REM)’이라 한다. 급속안구운동(rapid eye movement)의 첫 글자를 딴 것으로, 깊은 수면단계지만 눈동자가 의식이 있을 때처럼 급속하게 움직이기 때문에 붙여진 명칭이다. 뇌 과학자들은 렘 수면 단계에서 우리의 단기기억장치에 저장된 자료들이 장기기억장치로 전환된다고 주장한다. 마치 컴퓨터의 램(RAM)과 하드디스크의 관계처럼 말이다. 중앙정보처리장치(CPU)에서 처리된 자료를 하드디스크에 저장해두듯, 잠을 자는 것은 낮에 일어난 모든 정보를 정리해 장기기억장치로 전환하는 기능을 한다. 잠을 자는 동안 기억해야 할 중요한 정보와 버려야 할 정보를 분류하는 과정도 일어난다고 한다.

결국 야근을 밥 먹듯 하는 사람들은 자신에게 무엇이 중요한지를 판단하는 능력을 상실하게 된다. 21세기 경쟁력은 억지로 잠을 줄여서 나오는 것이 아니다. 자신의 삶을 즐기는 재미와 행복에서 나온다. 미국 존스 홉킨스 의대의 존 가트너 교수는 “가벼운 조증(Hypomania), 즉 재미있어서 약간 흥분한 상태의 지속이 21세기 성공의 한 요인”이라고 주장한다. 스티브 잡스, 빌 게이츠, 클린턴 같은 사람들에게 공통적으로 나타나는 증상(?)이 바로 이것이라 한다.

‘레밍’이라 불리는 스칸디나비아의 쥐들은 정기적으로 집단자살을 한다. 앞서가는 쥐가 절벽으로 떨어지면 뒤따라가는 쥐들이 그저 앞의 쥐를 따라 절벽에서 떨어지는 것이다. 아무 생각 없이 남의 방식을 따르며 참고 인내하는 사람들, 즉 야근, 주말근무 같은 산업사회의 낡은 유산을 아무 생각 없이 반복하며 재미없이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레밍의 운명은 남의 일이 아니다. 자발적으로 절벽에서 떨어지는 일이다. 미친 짓이라는 말이다.
김정운 명지대학교 대학원 여가경영학과 교수 cwkim@mju.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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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http://zine.media.daum.net/weekdonga/200709/17/weekdonga/v18172627.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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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저명한 경제학자를 위한 파티에서 있었던 일이라고 한다. 파티 참석자중 한 사람이 경제학자에게 한 마디 가르침을 부탁했다. 그 경제학자는 “경제적 진리는 많지만, 보통사람들이 이해하도록 설명하기에는 너무 복잡하고 어렵습니다. 그러나 그것들도 결국 따지고 보면 역사를 통해 거듭 증명된 한가지 단순한 사실로 귀결됩니다. 즉 ‘세상에는 공짜 점심이란 없다(There is no such thing as a free lunch)’는 것입니다”라고 말했다.
모든 선택에는 ‘기회비용’이 발생한다, 다시 말해 뭔가 대가를 치러야 한다는 원칙을 한 마디로 표현한 것이 ‘공짜 점심’이다. 그러나 공짜 점심은 생각만큼 쉽게 이해할 수 있는 개념은 아니다. 미국 대학생들에게 기회비용에 관한 4지선다형 문제를 내고 풀어보게 했더니 경제학 과목을 수강한 학생의 7.4%만 정답을 맞췄다고 한다. 경제학 과목을 듣지 않은 학생들의 정답률이 17.2%로 더 높았다. 2005년 미국경제학회 연례총회에서 199명의 경제학자들에게 문제를 풀게 한 결과도 정답률이 21.6%에 그쳤다. 연필을 굴려서 답을 찍을 때 나올 수 있는 정답 확률 25%보다 낮았다.

저자인 로버트 프랭크 교수는 ‘끔직한 그래프와 수식’들로 채워져 있는 경제학 과목의 교육방식에 문제가 있기 때문이라고 지적한다. ‘기회비용’같은 기본 개념들은 제대로 가르치지 않고 경제학에 대한 흥미만 떨어뜨리고 있다는 것이다. 그래서 그는 한 번 배우면 ‘10년 뒤에도 잊히지 않는’ 독특한 수업방식을 개발했다. 학생들에게 일상 생활에서 접할 수 있는 익숙한 경험들을 골라 이를 경제 논리로 설명하라는 과제를 내준 것이다. ‘이코노믹 씽킹’은 그 결과물을 모은 책이다.

일상의 경험을 설명할 때 가장 유용한 경제 개념은 무엇일까. ‘안락의자의 경제학자(The armchair economist)’의 저자인 스티븐 랜즈버그는 “경제학은 다음의 한 문장으로 요약할 수 있다. ‘사람들은 인센티브에 반응한다(people respond to incentives)’. 그 외의 것은 모두 부가적인 설명에 불과하다”고 했다. 프랭크 교수는 랜즈버그의 ‘인센티브’에 대응하는 개념으로 ‘비용·편익의 원리’를 들었다. ‘어떤 행위든 그에 따르는 추가비용보다 그로부터 얻는 편익이 큰 경우에만 합리화된다’는 간단한 원리가 ‘모든 경제학 개념의 모체(母體)’이자 세상의 모든 비밀을 푸는 열쇠라는 것이다.

예를 들어 우유팩은 사각형이고 음료수 캔은 원통형인 이유는 우유를 저장하는 데 들어가는 비용이 더 크기 때문이다. 음료수 캔은 일반 선반에 진열할 수도 있지만 우유팩은 반드시 냉장 유리장에 넣어두어야 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같은 공간에 더 많은 물량을 담을 수 있는 사각형 팩을 사용하는 것이다. 여성복의 단추를 왼쪽에 다는 전통이 바뀌지 않는 것이나 고래와 코뿔소 같은 귀한 동물이 멸종위기에 처하는 현상을 설명하는 ‘공유지의 비극’도 비용·편익 측면에서 풀어볼 수 있다. 비용·편익의 원리를 확대하면 ‘눈먼 돈은 없다(no cash on the table)’는 것 같은 새로운 원리로 이어진다. 쉽게 돈을 벌 기회가 있는데 아무도 그 기회를 잡지 않는 경우는 거의 없다는 것이다.

미국 술집에선 땅콩 같은 견과류 안주는 공짜로 주면서 물은 돈 받고 파는 경우가 많다. 왜 그런가. 짭짤한 견과류를 많이 먹는 사람일수록 맥주나 칵테일을 더 주문할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값싼 안주를 공짜로 주는 대신 비싼 술을 더 많이 팔겠다는 것이다. 반면 물을 많이 마신 사람은 술을 적게 주문할 가능성이 높기 때문에 물은 돈 받고 팔아야 한다. 컴퓨터 회사들이 소프트웨어를 공짜로 끼워주고, 음식점에서 콜라 같은 청량음료를 공짜로 리필해주는 데서도 ‘눈먼 돈은 없다’는 원리를 확인할 수 있다.

세상의 모든 일을 이렇게 일일이 경제 논리로 따져봐야 할 이유는 뭔가. 시장에서 더 나은 결정을 내릴 수 있는 지혜를 얻게 된다는 것이다. 특정 기업의 주가가 저평가돼 있기 때문에 지금 사두면 큰 돈을 벌 수 있다는 꼬임에 쉽게 넘어가지 않게 된다. 직장을 구할 때 임금이 특별히 많은 곳은 승진이나 작업 환경에 문제가 있을 것이라는 짐작도 할 수 있다. 여기에 더해 세상사의 이치를 파고 들면서 평생 지적 모험을 즐길 수 있는 추가 ‘보상’도 있다고 했다. 그런 자부심이 지나쳐 보이지 않는 책이지만 미시적인 이슈에 치우쳐 있어 경제의 큰 흐름을 읽기 어려운 것은 아쉬운 부분이다. 원제 ‘The Economic Naturalist’

김기천 논설의원 kckim@chosun.com

원문-http://news.media.daum.net/culture/book/200709/15/chosun/v18149814.html?_right_TOPIC=R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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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이 재밌어서 세 개 퍼 왔는데 얄밉게도 다 조선일보 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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짱꿀라 2007-09-15 21:1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잘 읽었어요. 오늘은 1시간 전 퇴근을 해 글 올리고 님 서재실에 처음 방문이네요.
부여에서 전주로 자리 옮기고 나니 예전처럼 시간이 나지 않네요. 일요일 행복한 하루 되세요.

심술 2007-09-15 21:4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잘 읽으셨다니 저도 기쁩니다.
 

철저한 신분사회였던 조선시대. 내외가 엄격했기 때문에 연애라던가 스캔들이 일어나지 않았을 것이라고 생각하는 경향이 있다. 하지만 사람 사는 사회에서는 어떠한 장벽이 있더라도 남녀가 사랑에 빠지게 마련이고, 또 세상을 떠들썩하게 만드는 스캔들도 일어난다.

야사에는 세자였던 양녕대군이 총명한 충녕대군에게 세자 자리를 양보하기 위해 일부러 방탕한 짓을 한 것으로 되어 있지만 정사인 조선왕조실록의 기록은 전혀 다르다. 양녕대군은 어느 눈 오는 밤, 풍류를 즐기기 위해 대궐을 나왔다가 마침 가마에서 내려 집으로 들어가는 유부녀 어리를 발견하고 사랑에 빠진다. 실록에 ‘자색이 있다’고 기록될 정도로 어리는 뛰어난 미인이었다. 세자 양녕대군과 어리는 거침없는 사랑에 빠졌고, 이 사건이 빌미가 되어 양녕대군은 폐세자가 된다. 이는 ‘세기의 로맨스’로 불리는 윈저공과 심슨 부인의 사랑과 닮아 있다. 윈저공은 영국의 왕위 계승권까지 포기하고 심슨 부인과 결혼했다. 왕위 계승권을 포기했다는 사실 때문에 이들의 사랑은 전 세계적인 스캔들이 됐다.

양녕대군이 폐세자가 되면서 훗날의 세종대왕이 되는 충녕대군이 세자에 책봉된다. 태종은 충녕대군을 세자로 책봉하면서 둘째인 효령대군을 세자로 책봉하지 않은 이유를 다음과 같이 밝힌다.



“충녕은 비록 술을 잘 마시지 못하나 적당히 마시고 또 그친다. 효령대군은 한 모금도 술을 마시지 못하니, 이것도 불가하다.”

효령대군이 왕세자가 되지 못한 이유 중의 하나가 술을 마시지 못하는 것이라니 얼마나 황당한가.

충녕대군은 세종이 돼 업적을 남겼지만 자신의 맏며느리인 세자빈을 두 번이나 폐서인으로 만들었다. 두 번째 세자빈 봉씨가 동성애자여서 폐서인이 됐다.

“봉씨가 소쌍을 몹시 사랑하여 잠시라도 그 곁을 떠나기만 하면 원망하고 성을 내면서 말하기를, ‘나는 비록 너를 매우 사랑하나, 너는 그다지 나를 사랑하지 않는구나.’ 하였고….”

실록의 기록이다. 봉씨가 사랑한 여인 소쌍은 궁녀였다.

“빈께서 저의 나머지 옷을 다 빼앗고 강제로 들어와 눕게 하여, 남자와 교합하는 형상과 같이 서로 희롱하였습니다.”

봉씨가 궁녀 소쌍을 사랑한다는 소문이 대궐 안에 파다하게 퍼지자 세종이 소쌍을 추궁했을 때 소쌍이 대답한 말이다.

“소쌍이 단지와 더불어 항상 사랑하고 좋아하여, 밤에 같이 잘 뿐 아니라 낮에도 목을 맞대고 혓바닥을 빨았습니다.“

세자빈 봉씨는 세종이 추궁을 하자, “소쌍이 단지라는 궁녀와 동성애를 했다”고 발뺌을 한다. 역시 실록에 있는 기록이다.

스캔들은 사실인데도 은폐하려고 하기 때문에 더욱 부풀어진다. 허위 학력 문제로 불거진 신정아씨 문제가 점입가경이다. 비호 인물로 지목된 인사는 한사코 부인하더니 검찰 압수 수사에서 연서로 보이는 이메일이 100여 통이나 발견됐다. 처음부터 은폐하려 하지 않았다면 이 사건은 허위 학력 사건으로 간단하게 매듭지어졌을 것이고, 온 나라를 들끓게 하는 스캔들로 발전하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선조 때 진주에 사는 하종악의 후처 이씨 부인은 전처의 딸이 그녀가 간음했다고 모함을 하는 바람에 나라를 발칵 뒤집어 놓는 스캔들의 주인공이 되었다. 영남 학계의 거두인 남명 조식이 “치마를 걷은(은유적으로 음란하다는 의미) 죄”라고 말하자마자, 이씨 부인 간음사건은 스캔들이 되어 영남 일대에 파다하게 퍼졌다.

그런데 당대의 유명 문인인 이정이 “증거도 없고, 남녀의 일은 은미하여 타인이 알 수 없다” 라고 이씨의 편을 들었다. 처사로서 깨끗한 삶을 중요하게 생각한 조식은 이정에게 절교를 선언했다. 이정은 조식에게 실망하여 교분을 나누고 있던 퇴계 이황에게 이 사실을 편지로 알렸다. 이황은 “그만한 일로 절교를 하는 것을 나는 이해할 수 없다”라고 이정에게 답장을 보냈다. 이황은 완곡한 표현으로 조식을 비판한 것이다.

이 사실이 알려지자 조식의 제자들이 이황을 격렬하게 비난하고, 이황의 제자들 역시 조식을 비난했다. 이 사건은 영남 유림의 양대 산맥인 이황과 조식이 서로 등을 돌리는 계기가 됐다. 조식의 제자들은 이씨 부인의 집으로 몰려가 집을 부수는 행패까지 부렸다. 이때부터 영남에서는 음란한 행위를 한 사람의 집을 부수는 풍습이 생겼다고 한다. 이씨 부인 스캔들은 영남 일대를 뒤흔들었고, 조정에서의 논쟁으로까지 번졌다.

조선시대 한 마을에서, 한날 한시에 태어나 18세에 부부가 되어 평생을 서로 깊이 사랑하면서 아름답게 산 부부가 있다. 담락당 하립과 부인인 삼의당 김씨. 이들은 18세의 신혼 첫날밤에 주옥 같은 시로 서로의 사랑을 고백한다.


“삼경에 밝은 달은 봄꽃 같아라/ 꽃이 화려한 때라 달빛이 더욱 곱네/ 달 따르는데 꽃 같은 님이 오니/ 둘도 없는 아름다움이 내 집에 있네.”

신랑 하립이 신부를 위하여 지은 시다.

“하늘엔 달빛이 그윽하고 정원에 꽃이 만개했네/ 꽃 그림자 서로 엉키고 달 그림자 더 할 때/ 달 같고 꽃 같은 우리 님과 마주 앉으니/ 세상의 영욕이야 내 알 바 아니네.“

신부 삼의당 김씨가 신랑 하립을 위하여 지은 시다. 신랑은 신부를 “꽃 같은 임이 왔다”고 반기고, 신부는 “우리 임과 마주 앉으니 세상의 영욕도 필요 없다”고 고백하고 있는 것이다. 이 시는 조선시대 가장 아름다운 연시 가운데 하나다. 담락당 하립과 삼의당 김씨가 진주 이씨 부인이나 현대의 신정아 스캔들을 알았다면 어찌 생각했을까. 아마 실소하고 말았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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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수광-저자. 저서로 조선을 뒤흔든 16가지 연애사건.
http://news.media.daum.net/society/others/200709/15/chosun/v18153165.html?_right_TOPIC=R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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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국에서 사는 불편함의 목록에서 맨 위에 있는 게 언어다. 한국에 처음 왔을 때 나 자신이 힘없는 아기처럼 느껴졌다. “화장실이 어디예요?” 같은 기본적인 질문조차 쩔쩔맸다.

10년이 흘러 한국어 몇 마디는 어렵잖게 할 수 있게 된 지금도 언어는 내게 최악의 두통거리다. 재미있는 것은 한국어를 몰라서 고민하는 게 아니라는 점이다.반대로 나처럼 한국말을 쓰는 외국인에게 한국인들이 한국말로 대꾸하려 들지 않는 것이 문제다!

이런 현상은 은행·식당·소매점·길 모퉁이 편의점 직원들에게서 흔히 볼 수 있다. 큼직한 코에 접시 같은 눈동자를 가진 털북숭이 외국인과 딱 마주쳤을 때, 공포가 그들을 엄습한다.

오래전 일본에 살 때, 나는 이런 현상을 ‘외국인 쇼크 증후군’(Gaijin Shock Meltdown), 혹은 GSM이라고 불렀다. 내 앞에 선 일본인의 뇌세포가 나와 마주친 충격 때문에 누전을 일으킨 것은 아닐까 걱정했을 정도다. 쇼크의 원인은 이방인과 별안간 근접했다는 놀라움에 있을 것이다. 그러나 나처럼 충격의 대상이 되는 외국인의 입장이 되어 보라. 더 당혹스럽다.

세계화 덕분에 일본 대도시에서 GSM은 과거지사가 되어 가고 있다. 그러나 ‘아시아의 허브’를 자부하는 한국에는 ‘외국인 쇼크 증후군’(Oegugin Shock Meltdown), 일명 OSM이 폭넓고 뿌리깊게 남아 있다.

다른 모든 면에서 멀쩡한 한국 사람들이 외국인만 마주치면 모국어 구사 능력마저 상실한다. 나는 몇 번이나 내 이마에 “한국어 할 수 있음! 외계인이 아닌 평범한 손님으로 대해 주세요!”라고 한국어 문신이라도 해야 하지 않을까 생각했다.

예를 들어 종각역 근처에 편의점이 하나 있다. 이 가게 바깥에는 영어로 “친절하게! 신선하게! 재미있게!”(Friendly! Fresh! Fun!)라고 쓰여 있다. 지난 5년간 나는 거의 매일 이 가게에 들렀지만, 내가 받은 서비스는 별로 친절하지도 재미있지도 않았다. 가게 주인인 노부부는 서너 해 동안 나와 말을 섞지 않고 묵묵히 계산기만 응시했다. 내 자리에선 계산기 숫자가 잘 안 보였기 때문에 나는 목을 뽑아야 했다. 한국어라는 난해한 언어로 간단한 산수를 할 수 있는 능력이 나 같은 외국인에게도 있다는 것을 그분들이 알아주길 바라면서, 나는 지금까지 수백 번 완벽한 한국어로 “얼마예요?” 하고 여쭸다.

밤에 가게를 보는 점원은 나만 보면 긴장해서 몸을 떨었다. 반년이 지난 뒤에야 그는 다른 손님에겐 다 묻는 간단한 질문(“봉지 드릴까요?”)을 내게도 해줄 결심을 했다. 그 전에는 내가 값을 치른 대여섯 가지 물건을 막막한 얼굴로 몇 초씩 내려다보기만 했다. 기다리다 못한 내가 한국말로 “봉지 하나 주실래요?” 할 때까지 말이다.

이 문제엔 양면이 있다. 첫째, 한국인에겐 한국에 사는 백인은 모두 미국인이고, 유전적으로 영어밖에 못하며, 단기 체류자나 관광객에 불과하다는 고정관념이 박혀 있다. 이런 고루한 편견에서 탈피할 때가 왔다는 내 생각에 한국어를 할 줄 아는 수많은 주한 러시아인·유럽인·캐나다인·호주인·뉴질랜드인·미국인이 동의할 것이다.

둘째, 김영삼 전(前) 대통령이 ‘세계화’를 외치기 시작한 이래 한국 정부와 미디어와 기업은 “세계화하려면 영어를 해야 한다”고 국민들을 들볶았다. 좋은 얘기긴 한데, 솔직히 내 입장에선 한국인들이 영어를 못해서 불편한 게 아니다. 여기는 한국이고 한국의 공용어는 한국어다. 한국인들이 외국인과 마주쳤을 때 지레 ‘외국인 쇼크 증후군’에 사로잡혀 한국말마저 입에서 떨어지지 않게 되는 것이 문제다.

내 생각에 진정한 세계화는 모든 한국인이 영어를 하는 상태가 아니다. 수많은 외국인들이 자발적으로 한국에서 돈 벌고 살기를 선택하고 한국어를 배우는 상태가 세계화다. 따라서 한국에서는 모든 공적인 의사 소통이 한국어로 이뤄져야 한다. 외국인이 관계된 경우에도 영어는 필요할 때만 쓰여야 한다. 그래야 더 많은 외국인들이 한국어를 배울 결심을 하게 될 테고, 그것이 한국어와 한국 모두를 세계화시키는 데 기여하게 될 것이다. 한국인과 주한 외국인 모두를 피곤하게 만드는 ‘외국인 쇼크 증후군’도 없어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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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콧 버거슨-문화평론가, 저서로 발칙한 한국학 등.
원문-http://news.media.daum.net/editorial/editorial/200709/15/chosun/v18149802.html?_right_TOPIC=R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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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조깅하다가 태어나서 두번째로 새똥 맞을 뻔 했다.
뛰는데 바로 앞에 떨어졌다.
조금만 빨랐더라면 정통으로 정수리에 맞을 뻔 했다.
운 좋은 날이다.

5시부터 조깅하기 전에 텔레비전 레드삭스-양키스전을 보다가
다큐멘타리 채널로 옮겨 버니 이여즈(Bunny Years)라는 걸 봤는데
60년대 플레이보이 회사 직영 클럽에서 일하던 여성들 얘기였다.
많은 돈을 짧은 시간에 벌 수 있기에 또 미국이라도 60년대엔 여성들에게
취업기회가 적었기에 꽤 고학력자인 여성들도 많이 뛰어들었다고 한다.
그러다 나중에 사업가,작가,의사,배우,모델로 성공하기도 하고.

글로리아 스타이넘이 우리나라 80년대 운동권 대학생들이 노동자로
분해 공장 취업하듯 웨이트리스로 11일간 일하며 르뽀르따쥐를 써서
명성을 날리기 시작했다는 얘기도 나온다.
더 재밌는 건 글로리아 스타이넘에 대한 실재 버니들-플레이보이
클럽에서는 써빙하는 웨이트리스들을 버니라고 부른다-의 반응이었는데
대부분 스타이넘에게 비판적이었다.
결론을 미리 내 놓고 끼워 맞춘 식이라나.
그러고 보니 한국 SBS 방송 그것이 알고싶다가 뉴질랜드 유학과 이민에
대해 취재하면서 과장을 너무 많이 했다고 교민사회가 분개했던 일이 생각난다.
그게 벌써 언제 적 얘기더라? 한 6-7년 된 거 같은데.

무례하게 구는 남자 손님이 없는 건 아니지만 클럽에서 고용하는 힘 좋은 남자
직원들에게 얘기하면 무례한 손님은 퇴장되고 앞으로도 입장 금지됐다 한다.
신이 내린 직장은 아니었지만 수입이 많고 그런 대로 대우도 나쁘지 않고
인기 좋은 버니들은 팬들 덕분에 꽤 호사로운 생활도 누릴 수 있었기에 대체로
만족스러웠다는 얘기가 많았다.
버니 생활을 안 했으면 아이 둘을 남편도 없이 키우지 못했을 거라 얘기하는
인터뷰이도 하나 있었고.
일의 어려운 점으로는 육체적으론 꽉 죄는 옷을 입고 하이힐을 신고 꽤 많은
수의 술병을 쟁반에 담아 옮기는 게 어렵고 정신적으로는 가족이나 이웃 같은
주위 사람들의 냉정한 시선과 버니들을 유혹해서 한동안 갖고놀고는 버리는
바람둥이들이 꼽혔다.

일터에서 겪은 재밌는 일화 가운데는 어느 손님이 한 버니에게 발을 탁자 위에 올려달라고
부탁해서 들어줬더니 구두를 핥아 대서 기겁했다는 얘기가 가장 재밌었다.
아마 발 페티쉬스트였나본데 웃기는 건 그 변태손님이 N.Y.U.(New York University) 교수였다나.

유행이 바뀌면서 플레이보이 클럽은 80년대 들어 많이 문을 닫았다고 한다.
다큐멘터리는 옛날 버니들이 지금 어떻게 돼 있는가를 죽 보여주며 끝나는데
꽤 재미나는 다큐멘터리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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