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간만에 뵙겠습니다. 지금 '이 분야 최고의 책'이라는 이벤트가 진행중인데요.
MD들도 참여를 했습니다. 자기 분야 내에서 열 권을 자유롭게 뽑았어요.
그래서 저는 예술/역사 분야에서 뽑았습니다.
왜 추천했는지 간략한 설명 정도는 필요하지 않을까 싶어서 써 봅니다.
사실, 사심 가득한 리스트라서 말이죠.
1. 글렌 굴드, 피아노 솔로 by 미셸 슈나이더
-저는 세상 모든 <글렌 굴드, 피아노 솔로>를 모아놓더라도 제가 갖고 있는 놈을 단번에 알아볼 수 있습니다. 책을 볼 때 엄지손가락이 닿는 부분에 까맣게 때가 타 있으니까요. 완독만 20회는 넘었을 거고, 가끔 꺼내 읽는 걸 합하면 백 번을 훨씬 넘길 겁니다. 여행을 갈 때 책을 딱 한 권만 들고 가야 한다면 무조건 이 책을 집어들던 때도 있었습니다. 어디를 펼쳐서 읽기 시작해도 좋았으니까요. 제가 좋아하는 것들이 가득 들어 있거든요. 바흐와 굴드와 피아노와, 부끄럽지만 고독과 뭐 그런 것들 말이죠. 겨울, 북극, 장거리 전화의 먼 통화감도, 쥬스와 비스킷만 들어있는 냉장고, 침묵, 서로 다른 두 개의 라디오 방송과 진공청소기를 동시에 틀어놓고 피아노를 연습하는 이상한 남자. '중요한 것은 건반을 누를 때의 소리가 아니라 그 촉감이다.'
이 책은 피아니스트 글렌 굴드의 전기 같지만, 실상은 좀 복잡합니다. 저자인 미셸 슈나이더는 몇몇 없는 사실을 지어내거나 '변조'했다고 아예 떳떳하게 써 놨죠. 연대기적 구성도 아니라서 이 책으로 굴드의 삶을 꿰어보려는 시도는 실패할 확률이 높습니다. 이 책이 노리는 것은 굴드의 '삶-혼' 속으로 곧바로 치고들어가서 그가 추구한 게 뭐였는지를 살펴보는 것입니다. 즉, 글렌 굴드라는 렌즈를 통해 보는 거대하고 공허한 우주, 에 관한 미셸 슈나이더의 수상록인 셈이죠.
'자발적인' 고독이 바흐의 음악과 이어져 우주를 투영하는 순간은 그 어떤 객관적인 전기물에서도 만날 수 없을 겁니다. 성 아우구스티누스와 불레즈 파스칼의 뒤를 이은 無의 전도사 겸 노다메짱을 뛰어넘는 초 괴짜 천재 피아니스트를 이 책에서 영접하실 수 있습니다. 네 간증입니다. 저는 굴드빠 맞습니다.
*번역 파문을 늘 가슴에 품고 있는 동문선입니다만, 이 책은 읽는 데 지장 없습니다.
2. 타인의 고통 by 수잔 손택
-좌파가 늘 듣는 타박 중 하나는 "그래서 뭘 어쩌라고" 입니다. 이 책을 읽고 나면 똑같은 소리가 나와요. 그런데 비아냥이 아니라 진심 절망이고요. 특히 사진(중에서도 저널리즘) 공부한 친구들은 아마 '이기적 유전자'를 읽는 생물학도 같은 기분일 겁니다. 어디로 가긴 가야겠는데 온 천지가 시커먼.
보도사진은 촬영한 사람이 어떠한 생각을 갖고 찍었든간에, 이미지가 배포되고 읽히는 순간에 '각자 나름대로의 의미'를 발생시켜 버립니다. 어떤 신문을 통해 그것을 보았는지, 보는 사람이 누구인지, 사진을 본 시간이 아침인지 저녁인지에 따라 모든 의미들이 달라지죠. 결국 사진은 전달되고 소비되는 과정에서 이미지 자체의 강렬함을 빼고는 아무것도 말하지 못합니다. 충격적인 이미지의 사진에서 가장 충격적인 점은, 그 내용이 사실상 텅 빈 채로 우리에게 해석을 요구하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사진의 안에는, 아무것도 없습니다.
보도사진은 정말 인류의 진보에 기여할 수 있을까요. 사진을 통해 타인의 고통을 공유할 수 있을까요. 그러나 내가 공유한 고통은 이미 타인의 고통이 아닌 것. 책의 제목은 콘래드의 <Heart of Darkness>처럼 폼나고, 또 그만큼 의미심장합니다.
수잔 손택이 펼쳐놓은 이 출구 없는 미로는, 그러나 그녀의 말에 따르면 끝이 아니라 가장 먼저 고민해야 할 문제에 불과합니다. 세계에 관심있는 분들은 누구나가 마음 속에 두어야 할 절망적인 근원, 사고思考의 그라운드 제로(Ground Zero) 말이죠.
3. 윤미네 집 by 전몽각
-이십여 년 전에 딱 1천 부만 찍었다던 가족 사진집이 있었다. 그 책은 한국에서 사진 구경하기 좋아하는 사람들에게는 가장 신기한 전설이었다. 목격자들의 증언에 따르면 그 사진들은 시간의 빈틈을 찌르는 날카로운 성찰도, 기록과 해석 사이의 간격을 이용한 흥미로운 실험도 보여주지 않았다. 가슴이 데어버리는 뜨거운 휴머니즘도 아니었고, 소리높여 정의와 진실을 주장하지도 않았다. 거기에는 그냥 단란한 가족이 있었다. 딸 윤미가 태어나서부터 결혼할 때까지의 모습들이라고 했다. 겉보기에 그 책은 모든 집에 하나씩은 있을법한, 단지 중단되지만 않았을 뿐인 가족 앨범이었다.
그러나 사진을 찍는 사람이라면 윤미가 얼마나 부드럽고 편안하게 카메라를 응시하는지 느낄 수 있을 것이다. <윤미네 집>은 '사람에게 들이대는' 카메라라는 개념이 없는 집이다. 표지 사진에서도 윤미는 카메라가 아닌 '아빠'를 바라보고 있다. 아무것도 의식적이지 않고, 촬영자와 피사체의 호흡은 언제나 함께한다. 사진가나 피사체가 천재라서가 아니다. 그들은 그냥 한가족이기 때문이다. 이 숨쉬기야말로 윤미네 전설의 기원이다. 그것이 독자들을 사진과 같은 호흡으로 이끌고 그들 각자의 과거를 불러낸다. 이 마법은 윤미네의 사진들이 전혀 대단해보이지 않기 때문에 가능하다. 모두가 한번쯤 들어본 목소리였기에 마음의 문은 더 쉽게 열린다.
'전설의 책'이라면 마땅히 어떤 천재성과 위대함을 기대할 만하다. 그러나 전설적일만한 꺼리가 없이 전설이 되기, 그것이야말로 전설 위의 전설이며 하나의 경지다. 오직 사랑, 도저한 사랑만으로 그 경지는 이루어졌다.
...라고 썼었습니다. 웰컴 페이지 책소개 문구였죠. 하나 더 말씀드려 보자면, 이 책 거꾸로 보신 적 있나요? 과거로 역행하는 순간들의 집합은 이상한 감흥을 안겨드릴 겁니다. 사진 좋아하는 불란서 철학가들이 말하던 그것 같기도 하고요. 팁 하나 드리자면, 자기 가족 앨범으로도 해볼 수 있습니다. 감동보다는 어떤 날카로운 물건을 만지는 느낌이지만요. 어쨌든 이 책은 정말 물건입니다. 국산 사진집이 이렇게 팔리다니요.
4. 야만의 시대 by 스벤 린드크비스트
-어떤 유대인 강제수용소에서는 몇몇 독일군 병사들이 '그래도 같은 인간인데...' 라고 생각하는 바람에 '적절한 행정 집행'이 되지 않았다고 합니다. 해서 등장한 아이디어는 수용소 내에 화장실을 없애는 것이었죠. 분뇨 처리가 엉망이 되고 유대인들이 갈수록 지저분해지면서 병사들도 유대인들을 인간 이하의 존재로 보기 시작했습니다. 그런 더러운 야만인들은 더이상 같은 인간이 아니었던 거죠.
놀라운 내용인가요? 이 책에 의하면, 아닙니다. 유럽은 수백 년 전부터 이미 그런 시스템을 갖추고 있었으니까요. <야만의 시대>는 유럽 국가들이 어떻게 '다른 사람들'을 '야만인'으로 치환하고 그들에게 인간 이하의 지위를 부여했는지를, 또한 그게 우발적인 현상이 아니라 치밀하게 연출한 제국주의의 정당화 수단이었음을 고발합니다.
"모든 야수들을 절멸하라!"
이 책은 역사와 기행문이 절반씩 섞여 있습니다. 조셉 콘래드의 소설 <어둠의 중심>에 대한 현실의 응답이라고 할까요. 책 뒷면 추천사 중에는 마치 추리소설처럼 읽힌다는 문구가 있는데, 그정도로 흥미롭습니다. 재미와는 좀 달라요. 이 책 속에서 우리는 끝없이 부활하는 커츠 대령과 맞딱드리고 수많은 암흑의 중심'들'을 방문하게 됩니다. 지금 이 순간까지 이어지고 있는 지독함의 스펙터클이죠. 지구, 그러니까 지옥의 놀이동산에 오신 것을 환영합니다. 요즘도 성업중입니다.
아, 지하철에 같이 탄 동남아 출신 노동자들에게서 카레 냄새가 난다고 쓴웃음을 지은 당신도 그 구성원이지 않나요?
5. 기술복제시대의 예술작품 / 사진의 작은 역사 외 by 발터 벤야민
-이 글을 읽는 분들은 모두 매트릭스 속에 살고 있는 겁니다. 절반쯤은요. 옆에 있는 책 표지만 해도 아시다시피 진짜 표지가 아닙니다. 모니터에 비친 전자 신호가 책 표지를 흉내내고 있는 거죠. 모사, 재현, 시뮬레이션, 뭐 그렇습니다. 근데 그게 뭐가 문제냐면,
사진이나 영화처럼 '원본 없음-복제 가능'을 전제로 한 시각예술들은 '감동의 중심에 오리지널이 있다'는 오래된 생각을 부셔버렸단 거죠. 고흐의 해바라기가 불타버린다면 전 세계에서 조기를 걸지도 모르지만, 우리가 모니터로 보는 사진들은 원본 필름이 사라지더라도 그 가치가 줄어들지 않습니다. 필름은 복제 불가능한 원본이 주는 아우라와는 거리가 멀 뿐더러, 오히려 무한한 복제를 위한 '최초의 복사품'에 불과하니까요. 원본 없는 복제. 바야흐로 세상은 실재하지 않는 것들과 공생하게 된 겁니다. 시뮬라르크가 어쩌고 하는. 그게 무슨 상관이냐면,
'존재하지 않아도' 현실의 일부가 될 수 있다는 겁니다. 매트릭스는 이미 시작되었던 거죠. 언젠가는 존재하지 않는 것들만으로도 현실을 구성할 수도 있을 테니까요. 복제술과 예술과의 관계를 고찰하던 벤야민은 놀랍게도 실체와 복제와 현실 사이의 삼각관계를 발견했습니다. 현실과 반(半과 反 모두 사용가능)현실이 뭉뚱그려진 새로운 현실을 보았던 거죠. 놀라운 발견이며 아름다운 예언입니다. 네 맞아요. 그는 경배받아 마땅한 예언자이며 이 책은 과거-현재-미래를 모두 말하고 있습니다. 그게 바로 걸작이라는 거죠.
*수많은 사진/영화학도 여러분, 제목도 폼이 나고 다들 이거 읽어보라 하니까 괜히 샀다가 집에 이 책 꽂아놓고만 계십니까. 눈 딱 감고 다시 도전해 보세요. 그리고 눈을 뜬 다음 빨간약을 먹는 겁니다.
6. 신좌파의 상상력 by 조지 카치아피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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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몽상가들>에 등장하는 영화광 남매는 (결코 그렇게 보이지 않았지만) 당시의 심약한 프랑스 영화에 대한 냉소입니다. 남매는 준 근친상간의 관계처럼 보이지만 '연출'을 제외하면 사실 아무것도 아니었죠. 그들은 자살극을 통해 삶에 연연하지 않는 인간처럼 보이고 싶어하지만, 실제로 삶을 건 폭력이 발생하는 데모는 두려워합니다. 그건 연출이 아니라 실재하는 에너지고 두려움이었으니까요. 실제로 누벨바그는 제도권에 흡수되면서 명성과 초심을 맞바꾸었죠. <몽상가들>의 시간적 배경인 68혁명은 이 영화를 읽기 위한 열쇠입니다. 혁명은 마치 백설공주에 나오는 마법 거울 같았죠. 이 거울에 누벨바그를 비추자, 두 발이 허공에 떠 있는 '아트'만이...
이 책은 68혁명에 대한 최초의 입문서로는 어울리지 않을지도 모르겠습니다. 삼인에서 나온 <1968 - 희망의 시절, 분노의 나날>이 머릿속을 정리하기에는 더 편합니다(절판이네요;). 그러나 68혁명은 개념화하고 과오를 따지기 이전에 그 뜨끈함과 혼란스러움을 먼저 느껴보는 것도 좋다고, 사실은 그게 더 좋을 거라고 생각합니다. 일단, 우와 이게 뭐야... 라고 한 다음에 머리를 식히고 따져보는 거죠. 실제로 그 시절을 사는 중인 것처럼요.
어째서 이 책이 그게 가능하냐면, 68혁명 당시의 배경과 진행 과정을 전달함과 동시에 현재 속에서 68 신좌파의 흔적을 추적하고 있어서에요. 종결된 역사가 아니라 진행형이라는 느낌. 그렇지만 '후예'나 '흔적'이라기보다는 일종의 변형태가 되어 있죠. 그들은 사라진 것같기도, 아닌 것같기도 합니다. 유령이 우리 곁을 떠돌고 있는 건지도 모르겠네요. 하긴 상상력과 사랑을 제외한 모든 것에 저항하려던 무모한 영혼들이라니, 정말 유령이 아니고서야...
아, 이거 대학생들이 읽으면 간지+3의 효과가 있습니다.
7. 스페인 내전 by 앤터니 비버
-선정 카피를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바벨탑'이라고 썼는데, 좀 허세돋는 문구지만 괜찮았다고 생각합니다. -_-; 사람이 쌓는 모든 탑은 아마 바벨탑이 아닐까 생각해서요. 어차피 무너질 거라면 멋지게 쌓고 희한하게 부서지는 게 유일한 목표는 아닐까.
그래서 스페인 내전은 그 허무한 결말까지 너무나 인간적으로 보입니다. 온갖 서로 다른 정의들이 힘을 합쳐 목숨을 걸고 힘겹게 쌓았던 탑이 맥없이 무너지는 모습 말이죠. 어쩌면 그렇게 실패했기 때문에 인간적이라는 상상을 하는 건지도 모르겠네요. 만약 소련이 더 지원해줘서 (어쨌든) 사회주의 국가가 되었다면 살림살이가 좀 나아졌을까. 아마 아니겠죠. 그럴 바엔 장렬하게 가라앉아서 희망 가진 자들의 마음 속에 전설로 남은 게 차라리 다행일지도 모른다... 저는 냉소적인 인간은 아니라고 생각했는데 이걸 쓰다 보니 기분이 좀 이상하네요. 역사 분야 괜히 맡았나.
저는 이 책을 쓴 앤터니 비버 좋아합니다. 스탈린그라드 전투를 다룬 전작(국내 출시 기준)도 좋았죠. 역사를 다루면서 그 안에서 드라마를 뽑아내는 능력이 탁월합니다. 그래서 웬만한 소설 못지 않게 잘 읽히죠(물론 독자가 전쟁사에 흥미가 있을 경우겠지만). 스페인 내전은 각 진영 내부에서도 온갖 파벌과 알력다툼이 심했고 역학관계도 복잡해서 잘 정리할 필요가 있습니다. 그런데 깔끔하게만 정리하면 재미가 없죠. 이 책은 스페인 내전의 겉과 속을 모두 품으려는 야심찬 시도이며, 지금까지 우리가 접할 수 있는 책들 중에서는 단연 가장 성공적인 사례입니다. 너무 자명한 추천이지 않나요. 음.. 제본이 약간 아쉽습니다만...(흠)
8. 말하기의 다른 방법 by 존 버거
-모든 혁명과 진보는 역사의 물꼬를 트기 위한 작업일 뿐 아니라, 궁극적으로는 역사 그 자체에서 벗어나기 위한 시도이기도 합니다. 진보건 보수건간에 모든 현대사는 인간을 자신의 시간축 안에 가두어두려 하거든요. 누구에게나 똑같이 주어지는 시간은 혜택이 아니라 폭력입니다. 시간이 획일화되는 순간 신비는 사라지고 인간은 규격화되니까요.
거기에 어떻게 저항할까요. 언어가 가장 익숙한 수단이겠죠. 그러나 언어는 한계가 있습니다. 언어 자신이 논리를 필요로 하니까요. 하나의 규격이 정해지는 순간에 하나의 신비가 빛을 잃습니다.
말하기의 다른 방법이 필요할 때, 존 버거는 사진을 들었습니다.
한 장의 사진은 아무런 체계도 없습니다. 그래서 언젠가 역사와 담론이 덤벼들 때, 그 자신의 비밀을 보여주지 않고 해석되기를 거부합니다. 그러다가 열쇠를 가진 극히 소수의 사람에게만 문을 열어 주죠. 정지한 장면의 과거와 미래, 다른 사람들은 결코 알아보지 못할 작은 흔적들을요. (좋건 나빴건간에) 돌이킬 수 없는 것들이 눈앞에 나타나는 순간에 시간은 이상하게 흐릅니다. 현실은 기억과, 기억은 추억과 뒤섞이죠. <카메라 루시다>에서 롤랑 바르트는 이러한 특징을 푼크툼이라고 지칭하면서 '강렬하지만 결코 설명할 수도 전달할 수도 없는 힘'이라고 했습니다. 존 버거가 보기에 그것은 모든 이가 내면에 품고 있는 신비, 그 어떤 힘과 권력도 결코 침범할 수 없는 내밀하고 사적인 공간이었죠. 사진은 삶의 놀라움을 비밀리에 끌어안은 보물상자이며, 세계의 폭력적 시간에 저항하는 맞춤형 부적인 셈입니다.
정치적으로 올바르면서 우리 생각의 지평을 넓혀주고, 거기에 아름다움을 더한 이야기들.
아, 이건 이 책이 하는 이야기의 일부일 뿐입니다. 휴우.
9. 닥터 노먼 베쑨 by 테드 알렌
-네. 법정스님 추천도서죠. 이런 하수상한 시절에 좌익 서적을 추천하시다니 스님도 참.
부와 명성쯤은 기본 옵션이었던 천재적인 의사가 병에 걸려 죽을 고비를 넘깁니다. 삶과 인간의 중요성을 깨달은 그는 세계의 격전지들에 찾아가 의료활동을 하죠. 그 자신의 최후의 순간까지요. 왠지 영화 스토리 같네요. 영화라. 장 피에르 멜빌의 <그림자 군단>이나 마틴 스콜세지의 <성난 황소>가 떠올라요. 현실도 등장인물들도 잿빛입니다. 뜨거운 잿빛이죠. 감동적인 에피소드들이 곳곳에 있음에도 불구하고, 저는 이 책을 생각하면 어두운 야전 병원의 한켠에서 홀로 생각에 잠긴 한 노의사가 먼저 떠오릅니다. 강한 의지가 억누르고 있는 무한한 피로.
노먼 베쑨은 인화단결 류의 위인은 아닙니다. 유명한 의사나 간호사들이 백의의 천사라거나 봉사심이 투철하다거나 해서 이타적이고 온화하다는 캐릭터가 입혀져 있는데요. 나이팅게일만 해도 엄청 엄격한 사람이었고, 특히 이 양반께서는 무서우리만치 엄정하셨더랬죠. 그 기준이 자신이든 타인이든간에 결코 변하지 않았다는 것만큼은 모든 위대한 인물들의 공통점이겠지만요. 까칠하다 싶을 정도로 시크한 의사 남자. 하지만 인민들에겐 따뜻했었죠. 비록 겉으로는 잘 웃어보이지 않는
츤데레고독한 사람이었지만...
엔간한 드라마쯤은 찜쪄먹을 하드보일드 메디컬 역사 전쟁물입니다. 주인공의 뽄새부터가 다르죠. 지금까지 비교적 무거운 책들을 많이 소개했는데, 이 책만큼은 멋진 스토리에 몸을 그냥 맡기시면 됩니다. 실화라서 감동은 더블입니다. 강추.
10.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편지 by 반 고흐 (박홍규 편저, 번역)
-제목이 너무 평범해서 안타까운데.. 현재까지 번역된 반 고흐 서간집 중에서 으뜸입니다. 박홍규 교수의 설명도 시기별로 꼼꼼하게 달려 있고, 각 편지들도 발췌가 아닌 완역이 되어 있거든요. 더불어 평소에는 보기 힘든 스케치 등도 구경할 수 있고요.
신간브리핑에서 자세히? 소개드린 적이 있습니다.
여기를 누르시면 보실 수 있어요.
...전혀 간략하지 않잖아...-_-;;
빠뜨린 책이 두 권 생각났습니다. 필립 퍼키스의 <사진강의 노트>와 안드레이 타르코프스키의 <봉인된 시간>요.
이걸 어떡하나.. 그치만 지금 더 쓸 생각은 없습니다.;
쓰고 보니 이게 도움이 될만한 글인지도 확신이 서지 않습니다만(울고싶네요)...
부디 마음에 드는 책을 고르셨으면 합니다. 다음부터는 좀 적당한 길이로 뵙겠습니다. 꾸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