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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6-03-16 오전 10:46:16 지하철 해피샵 온라인신용 재고확보중
어제 오전에 주문했으니 알라딘에 했으면 벌써 배송이 시작되었을텐데.  좀 답답하다. 급한 책이 아니라서 별 상관은 없지만 그래도 약간은 불편하다.  책 상태는 어떨지 궁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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벼르고 벼르던 보리에서 출판한 북한판 리상호 번역의 열하일기 3권 중 나머지 2권을 주문하다.  이번엔 재미삼아 매일 아침'에 주문하였다.  내가 애용하는 지하철역에서 직접 찾을 수 있고 할인도 알라딘보다 많아서 그냥 시험 삼아 주문하였다.   책의 배송 상태도 알라딘과 비교해 보고 싶기도 하고..앞으로는 무조건 알라딘을 고집하지 말고 두루 두루 인터넷서점의 폭을 넓혀 볼 생각이다.

기쁘다.  드디어 연암의 열하일기 번역본 3권과 산문집 1권을 갖게 되었다.  열하일기 원문도 영인본으로 가지고 싶지만 어디 구할 수가 있어야지...

열하일기를 통해 한문 산문의 이해의 폭이 넓어졌으면 한다.  여전히 4월 수유+너머에서 실시하는 고미숙의 강의는 신청해야 할지 말아야 할지 고민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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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아침의 인터넷 데일리 서플라이즈의 야구 관련기사이다.

일본투수들이 한국의 2번과 4번타자를 상대하기 쉽다면 3번 이승엽을 마음 놓고 거를 수 있게 된다. 하지만 이승엽 전후 타자가 까다롭다는 생각이 든다면 제 아무리 뛰어난 투수라도 이승엽을 거를 수 없게 된다. 4강으로 진출 하느냐 마느냐 하는 건곤일척의 한판승부에서 주자를 모아놓고 경기를 한다는 것은 투수로써는 자살 행위나 마찬 가지이기 때문이다.

'거를 수 있게 한다'가 좀 이상해 보인다. 내 생각에는 '걸릴 수 있게 된다'가 맞는 표현이다.  서울이나 경기도에 사는 사람들은 그들이 쓰는 말은 다 표준어라는 해괴한 생각을 가지고 있는 듯하다.

 기사 원문 http://www.dailyseop.com/data/article/43000/0000042673.aspx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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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03-1 子曰: "唯上知與下愚不移.①"



자왈: "유상지여하우불이."

번역 : 공자가 말하였다. "오직 上知와 下愚만이 변화시킬 수 없다.

① 孔安國의 疏에는 "上知不可使爲惡, 下愚不可使强賢<上知는 억지로 惡하게 할 수 없고, 下愚는 억지로 賢하게 할 수 없다>"라고 되어 있다. 陽伯俊의 번역(只有上等的智者和下等的愚人是改變不了的)에서 보듯이 '不移'는 '변화시킬 수 없다' 정도로 번역이 가능하겠다.

集註 - 此承上章而言. 人之氣質相近之中, 又有美惡一定, 而非習之所能移者②. ♥ 程子曰: "人性本善, 有不可移者何也? 語其性則皆善也, 語其才則有下愚之不移③. 所謂下愚有二焉: 自暴自棄也. 人苟④以善自治, 則無不可移, 雖昏愚之至⑤, 皆可漸磨而進也. 惟自暴者拒之以不信, 自棄者絶之以不爲⑥, 雖聖人與居, 不能化而入也⑦, 仲尼之所謂下愚也. 然其⑧質非必昏且愚也, 往往强戾而才力有過人者, 商辛⑨是也. 聖人以其自絶於善, 謂之下愚⑩, 然考其歸則誠⑪愚也." 或曰: "此與上章當合爲一, 子曰二字, 蓋衍文⑫耳."

번역 : 이 장은 앞장에 이어서 말한 것이다. 사람의 氣質이 (서로) 비슷하지만, 좋고 나쁨이 일정하여 습관으로 변화시킬 수 없는 것이 있다. ♥ 정자가 말하였다. "사람의 본성은 본래 善한데 변화시키지 못함이 있다는 게 무슨 말인가? (사람의) 본성을 이야기하자면 모두 善하고, 材質을 이야기하자면 변화시킬 수 없는 下愚가 있다. 이른바 下愚에는 두 가지가 있다. 自暴하는 자와 自棄하는 자이다. 사람이 만일 善으로써 스스로를 다스린다면, 변화시키지 못할 것이 없을 것이고, 비록 어둡고 어리석음에 이르렀다하더라도, 모두 점차로 닦아서 나아갈 수 있는 것이다. 오로지 自暴者는 믿지 않음으로써 거부하고, 自棄者는 하지 않음으로써 거절하므로, 비록 성인이, (그들과) 더불어 살더라도 교화시켜 들일 수 없는 것이고, (이들이 바로) 공자가 말한 下愚이다. 하지만 그들의 바탕이 반드시 어둡고 어리석은 것이 아니라, 가끔은 강하고 사납고, 재능과 역량이 보통사람들보다 뛰어난 자가 있으니 商辛이 그러한 사람이다. 聖人이 그들이 스스로 善을 끊었기 때문에 그들을 下愚라고 이른 것이다. 하지만 그들의 귀착점을 살펴보면 참으로 어리석은 것이다." 혹자는 말하였다. "이 章은 앞 章과 마땅히 합하여 한 章이 되어야 한다. '子曰' 두 자는 아마도 衍文인 것 같다."

② "此承上章而言. 人之氣質相近之中, 又有美惡一定, 而非習之所能移者" 이 문장은 의외로 살펴볼 만한 것이 많다. 먼저 여러 책에서 아래와 같이 달리 끊어 읽기를 하고 있다.

 1) 此는 承上章而言人之氣質이 相近之中에 又有美惡一定하여 而非習之所能移者라 (성백효)
    - 이것은 윗 章을 이어서 사람의 氣質이 서로 비슷한 가운데에도 좋고 나쁨의 일정함이 있어서 습관으로 변화시킬 수 있는 것이 아님을 말씀한 것이다.

 2) 此承上章, 而言人之氣質相近之中, 又有美惡一定, 而非習之所能移者. (김도련)
   - 이것은 윗장을 이어서 사람의 氣質은 서로 비슷한 가운데에도, 아름답고 惡한 것이 一定하여 習慣으로 옮길 수 있는 것이 아님을 말씀하신 것이다.

 3) 此承上章而言. 人之氣質相近之中, 又有美惡一定, 而非習之所能移者. (李申, 中華書局版 四書章句集註)
    - 這(zhe)是接着上一章說的.人的氣質相近之中,又有善惡固定不變的情形, 不是操習所能改變的.
  
 끊어 읽기가 다름에도 성백효와 김도련의 번역은 별반 다르게 보이지 않는다.  李申의 번역과의 가장 큰 차이는 언뜻 보기에는  '동사 言을 타동사로 보느냐 자동사로 보느냐'는 것이다. 성백효와 김도련은 言을 타동사로 보아 문장 끝까지 言의 목적절로 보고 있고, 李申은 言을 此의 술어로만 보고 있는 듯하다. 한국과 중국에서 나온 책이 서로 다르다는 것은 흥미있는 일이고, 어느 것이 옳은 지는 나로서는 판단하기 어렵다. 다만, 조금 다르게 볼 수도 있다는 것을 말하고 싶은 것이다.

  그 다음은 '人之氣質相近之中, 又有美惡一定, 而非習之所能移者.'을 보자. 먼저 나는 人之氣質相近之中을 부사어로 보고, 뒤에 나오는 又와 연관지어 양보의 의미로 번역해 보았다. 또한, 有의 목적어를 문장 끝의 者까지로 보아, 美惡一定로 본 성백효나 김도련과는 다르게 번역하였다. 아마도 성백효나 김도련은 非의 목적어를 習之所能移者로 보는 것 같은데 나는 習之所能移로 보았다. 하나 더 부언하자면, 習之의 번역인데 참 마땅한 말이 떠오르지 않는다. '배워서'라고 번역하기도 좀 어색하고 해서 그냥 '습관으로'라고 번역하였다.

③ '有下愚之不移'에 대해서 살펴보자. 여기서의 '之'도 앞에 나온 下愚를 다시 받는 複指代詞이다. 좀더 정확하게 직역하면 <下愚, 그것을 변화시키지 못함이 있다>정도이겠다. 물론 도치의 가장 큰 이유는 강조이다.

④ 苟를 '진실로'라고 번역하기보다는 假定詞로 보아 '만일, 만약에' 정도로 번역하는 게 낫다고 본다.

⑤ '雖昏愚之至'에서도 之를 昏愚를 다시 받는 複指代詞로 보아 번역하면 <비록 昏愚, 거기에 이르렀다하더라도>가 되겠다.

⑥ '惟自暴者拒之以不信, 自棄者絶之以不爲'을 다른 번역자들이 번역한 것을 보자.

1) 성백효 : 다만 自暴하는 자는 善을 막아서 믿지 않고, 自棄하는 자는 善을 끊어 버려 행하지 않으니

2) 김도련 : 오직 自暴하는 자는 막아서 믿지 아니하고, 自棄하는 자는 끊어서 하지 아니하므로

3) 李申 : 只有自暴者用不相信來拒絶接受敎育,自棄者用不去做來自絶于聖人之道,
       <오로지 自暴者는 믿지 않아서 교육받기를 거절하고, 自棄者는 하지 않음으로써 聖人의 道를 스스로 끊는다>

 한문의 묘미를 조금 살려서 이 문장을 다시 살펴보아, 나는 '惟自暴者與自棄者拒絶之以不信'을 두 문장으로 나누었다고 생각하면 어떨까 한다. 동사 信의 의미상의 목적어를 성백효와 같이 善으로 보든지 李申과 같이 敎育이나 聖人之道로 보는 건 且置하고, 번역하면 <오로지 自暴者와自棄者만이 믿지 않아서 拒絶한다> 이런 식으로 본다면, 맨 뒤의 爲는 앞의 동사 信을 받는 代動詞로 볼 수 있다. 동사1 + 以 + 동사 2 가 있을 때의 번역은 다들 알다시피 두 가지가 가능하다. 以를 전치사로 볼 수도 있고, 접속사로 보아 而와 같이 보는 경우이다.  이 문장에서는 문맥상 '거절하다'와 '믿다'라는 동사의 인과관계를 미루어 볼 때, 성백효나 김도련처럼 而와 같이 보기보다는 李申의 번역이 더 나아 보인다.

⑦ '雖聖人與居, 不能化而入也'에서 다시 다른 번역자들의 번역을 보자.

1) 성백효 : 비록 聖人과 함께 거처하더라도 변화하여 들어갈 수 없다.

2) 김도련 : 비록 聖人과 더불어 살더라도 化하여 들어가지 못하니,

3) 李申 : 卽使和聖人住在一起,也不能讓他們(men)聽進善言受到感化,
    < 비록 聖人과 함께 살더라도, 善言을 듣게 하여 감화시킬 수 없다>

 내가 가장 한문 번역에서 강조하는 것은 문장에서 동사술어의 주어와 목적어를 정확하게 찾아내어 번역하는 것이다. 한문은 시도 때도 없이 아무런 규칙없이 문장에서 주어와 목적어가 생략되어 버리기 때문에 이 점은 더욱 중요하다.  먼저 '雖聖人與居'에서 주어는 무엇인가? 위의 번역자들은 모두 의미상으로 自暴者와 自棄者로 보고 있다. '不能化而入也'에서 주어는 성백효와 김도련은 여전히 自暴者와 自棄者로 보고 있고, 李申은 聖人 또는 일반인으로 보고 있는 것 같다. 하지만 나는 이 두 分句(종속절과 주절) 모두의 주어를 聖人으로 보고 싶다. 그렇게 보면 뜻이 훨씬 잘 통한다고 생각된다. 자세하게 직역해 보면 <비록 성인이 (그들과) 더불어 살지라도, (성인도 역시) (그들을) 化하게 하고 入하게 할 수 없다> 여기서 化와 入의 번역은 별개의 문제이나, 李申의 풀이도 참고할 만하다.

⑧ '其'는 의미상 '下愚之'이다.

⑨ '商辛'는 商나라 紂王이다.

⑩ '謂之下愚'에서 '之'는 간접목적어이며 '下愚'는 직접목적어이다.

⑪ '誠'은 '愚'를 강조하는 강조부사이다.

⑫ '衍文' - 문장 가운데서 쓸데없는 글귀

집주 - 차승상장이언. 인지기질상근지중, 우유미악일정, 이비습지소능이자. ♥ 정자왈: "인성본선, 유불가이자하야? 어기성즉개선야, 어기재즉유하우지불이. 소위하우유이언: 자포자기야. 인구이선자치, 즉무불가이, 수혼우지지, 개가점마이진야. 유자포자거지이불신, 자기자절지이불위, 수성인여거, 불능화이입야, 중니지소위하우야. 연기질비필혼차우야, 왕왕강려이재력유과인자, 상신시야. 성인이기자절어선, 위지하우, 연고기귀즉성우야. 혹왈: "차여상장당합위일, 자왈이자, 개연문이." 433508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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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02-1 子曰: "性相近①也, 習相遠也."


자왈: "성상근야, 습상원야."

번역 : 공자가 말하였다. "성품은 서로 가깝지만, 습성은 서로 멀다."

① '近'의 풀이를 古今漢語詞典에서는 '差不多,接近(비슷하다)'라 하고 위의 본문을 들고 있다. 나는 굳이 '가깝다'라고 번역하였으나, 아무래도 '별 차이가 없다'나 '비슷하다'가 더 나을 것 같다. 당연히 相遠은 반대의 意味일 것이다.

集註 - 此所謂性, 兼氣質而言者也②. 氣質之性, 固有美惡之不同矣. 然以其初而言, 則皆不甚相遠也. 但習於善則善③, 習於惡則惡, 於是始④相遠耳. ♥ 程子曰: "此言氣質之性. 非言性之本也. 若言其⑤本, 則性卽是理, 理無不善, 孟子之言性善是也. 何相近之有哉?⑥"

번역 : 여기서 말하는 바의 性은 氣質(氣質之性)을 겸하여 말한 것이다. 氣質之性은 본래 美惡이 같지 않음이 있다. 하지만 그 처음(始初)을 가지고 말한다면, 모두 서로 먼 것이 심하지 않다. 다만, 善에 습관이 되면 善해지고, 惡에 습관이 들면 惡해지니, 여기에서 비로소 서로 멀어지는 것이다. ♥  정자가 말하였다. "이는 氣質之性을 말한 것이지 性의 근본을 말한 것이 아니다. 만약 性의 근본을 말한다면, 性은 바로 理이고, 理는 不善이 없는 것이니 맹자가 '性善'을 말한 것은 이것이니( 性의 근본이니) 어찌 '相近', 그것이 있겠는가?"

② 李申은 '包括氣質之性'이라고 번역한다. 즉, 이 문장에서의 兼은 '포괄하다'의 뜻으로 보아도 좋겠다.

③ 但習於善則善에서 '習'을 번역하기가 아주 애매하다. 언뜻 이해는 되는 데 글로 표현하기가 용이하지 않은 것이다. 중국인은 어떻게 이해하고 있는지 알아보기 위해 李申의 번역을 보자. "只要從事于善就成爲善" 엄밀하게 이 문장을 번역해 보자. '只要~就~'는 원문의 '但~則'을 번역한 것으로 어떤 동작이 일어나는 최소한의 조건을 말한다. 즉, '~하기만 하면'으로 번역이 가능하다. '從事'는 當代漢英雙解詞典에는 1)'投身到(某種事業中去)' 2)'(按某種辦法)處理'라고 풀이되어 있다. 但習於善則善을 직역이 아닌, 의미에 근거하여 번역하면 <단지 善한 방식으로 (일을) 처리하기만 하면 선해지고>가 되겠다.  별로 어렵지도 않은 문장을 어쩌면 어렵게 풀어 보는 이유는 나 역시 단어 하나하나에 너무나도 고정된 의미밖에 없는 것처럼 알아, 번역에도 그 틀을 벗어나지 못하기 때문이다. 그런 면에서 李申은 나에게 좋은 스승이다.

④ 始는 부사로 '비로소'라는 의미이다.  

⑤ 其는 性을 가리키는 대사로 여기서는 관형어로 쓰여 '性之'이다.  늘 강조하지만, 사소한 것이라도 외국어 공부에 있어서 대(명)사의 지시대상을 꼼꼼히 챙기는 것은 중요하다.

⑥ '孟子之言性善是也. 何相近之有哉', 이 문장의 의미가 정확하게 전달이 되지 않아 李申의 번역을 보니 문장 구조 자체를 다르게 보고 있어 소개한다.

* 孟子說的'性善'就是, (na)有什 (shenme)'相近'一說 (ne)?
 <맹자가 말한 '性善'에 어디에 무슨 '相近' 이런 말이 있더냐?>

내 개인적으로 李申의 번역에 찬성한다. 정자가 바로 위에서 말한 것과 같이 여기서는 맹자가 말한 性과는 다른 氣質之性을 말하고 있기 때문이다. 또, 何相近之有哉를 분석하면, 何(의문사)相近(주어)之(주어를 다시 가리키는 復指代詞)有(술어)哉(何와 호응하여 쓰이는 語氣詞)이다. 다시 직역하면, <어찌 '相近' 그것이 있겠는가?>가 될 것이다.

집주 - 차소위성, 겸기질이언자야. 기질지성, 고유미악지부동의. 연이기초이언, 즉개불심상원야. 단습어선즉선, 습어악즉악, 어시시상원이. ♥ 정자왈: "차언기질지성. 비언성지본야. 약언기본, 즉성즉시리, 리무불선, 맹자지언성선시야. 하상근지유재?" 433507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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