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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얼 먹어도 물을 싸는, 뭐 다소 흔한 질병에 걸렸다. 흔한 질병이긴 하나 그 원리가 참으로 신묘하다 아니 할 수 없다. 대처 방법 또한 그렇다. 물을 많이 배출하므로 물을 많이 먹어라. 당연한 말이긴 해도, 내 몸이 들어온 물을 그대로 내보내는 한 줄기 파이프가 된 것 같아 놀랍고 비참하다. 항쟁의지가 남다른 괄약근의 철벽수비가 아니었다면 훨씬 더 비참했을 것이다. 쓰다듬어 주고 싶다. 미쳤군.


인체의 신비는 경이롭다. 사람의 몸은 샌드위치를 잘못 먹으면 파이프가 된다. 우유를 잘못 먹어도 파이프가 된다. 치즈 잔뜩 뿌린 치킨을 잘못 먹으면 성능 좋은 파이프가 된다. syo는 낙지 볶음을 잘못 먹고 밸브가 고장난 노브레이크 하이패스 PVC 파이프가 된 기억이 있다. 치매가 와도 결코 잊지 않을 아주 흥건한 추억이다. 인체의 신비는 경이롭다. 그러나 그 경이로운 체험은 늘  이런저런 고통을 수반한다. 넓은 호수 표면에 잔잔한 물결을 일으키는 소슬바람 같은 고통에서부터, '말 못할 고통'이라고 아주 간편하게 말할 수 있는 아이러니한 고통까지. syo는 지금 또 한번 소소한 경이를 체험하는 중이다. 


온몸으로 웃으려고 노력 중이다. 그러니까, 다음의 인용문들은 다 원 맥락을 무시한 채, 지금 상황에서 스스로 웃으며 버텨보려는 목적으로 인용하는 것임을 밝힌다. 안 그럼 울 것 같잖아. 지금 syo의 입장에선, 저게 웃긴다. 쓴웃음도 웃음입니다..... 아, 괄약근 너는 빼고. 지금 벌어질 수 있는 것들 중 가장 비극적 상황은, syo는 못 웃는데 괄약근만 지 혼자 박장대소 하는 사태라 할 수 있겠다. 괄 장군에게 구국의 결단을 촉구한다......




어떤 기미를 둘이 거의 동시에 느꼈다. 남매는 나뭇가지를 던져버리고 장난감 같은 차들이 오가는 강변도로를 향해 뛰었다. 기미는 방귀냄새로, 생똥 냄새로 또 독가스 같은 구린내로 순식간에 바뀌어갔다. 그것이 오고 있었다. 남매는 모래밭에서 허우적거렸다. 숨은 적게 들이마시면서 뛰기는 빨리 뛰려는 불가능한 노력을 하는 중이었다. 그러나 걱정은 하지 않았다.

그것은 아무리 늦장을 부려도 결국 흘러가고야 말 것이다. 하류로 내려가서 서해 바다로 빠져나가 버릴 것이다. 한강다리의 교각에 몇 층으로 뚜렷이 그어져 있는 그것의 자취도 언젠가는 말끔히 지워질 것이다. 늘 이렇지는 않을 것이다. 모든 것이 달라질 것이다. 그것을 구경조차 할 수 없는 날이 올 것이다. 그때 그들은 그런 것을 본 적이 있다고 말할 것이다.
_ 오수연,「강변에서」,『이해 없이 당분간』


비참 속에 담긴 비참, 비참에도 질서가 있었고, 그 길은 따라야만 했다.

_ 콜슨 화이트헤드,『언더그라운드 레일로드』 


"살해당할 거라면? 멍청하긴, 언제라는 거야, 그게? 지금 살해당하고 있는 거 아냐? 아주 조금씩 말이야. 그놈들은 말야, 능숙하다구."

_ 고바야시 다키지,『게 가공선』


오물로 가득한 폐허를 만나지 못힌 자들, 자신이 있는 곳를 폐허로 경험하지 못한 자들은 어떤 것도 창조할 수 없다. 그러하니 창조하려거든 몰락하라. 태어나려거든 흔쾌히 죽어라!

_ 고미숙 외,『루쉰, 길 없는 대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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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타일이 간절히 목마른 때일수록 콘텐츠에 눈을 돌리자. 양식이나 미학이 부족하다는 느낌은 기반이나 근본이 빈곤한 정신에 종종 일어나는 증상이다. 일종의 저혈당쇼크라고 본다면 적절한 해결책은 결국 정신에 양분을 제공하는 일이다. 손은 저절로 움직일 때 가장 아름다운 결과를 빚는다. 손을 어떻게 움직일지를 계산하고 제어하는데 역량을 분산시키면 그만큼 멀리 가지 못하고 높이 닿지 못한다. 그러므로 손은 평소에 쉼없이 놀려야 한다. 손이 저 혼자 놀 수 있도록 하고, 저 혼자 놀아도 마음과 다투는 일이 없도록 해야 한다. 자주 놀고 많이 익힐 것. 자주 쓰고 많이 읽을 것.


알면 뭐 해, 안 되는데. 근래 독서량은 가장 좋은 시절에 비해 1/5 수준이고, 이제 거의 읽는다는 데 의의를 둔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다. 어제는 닷새만에 뭐라도 써 봤는데, 글이라는게 참 늘 때는 정말 더럽게 더디더니 빠질 때는 KTX급이다. 싸야 할 곳으로는 물을 싸고, 손으로 똥글을 싸고 있다. 그런데도 읽을 시간도 쓸 시간도 없으니 어쩔 수 없이 문워크 하면서 사는 것이 바로 인생이로구나..... 하고 징징거리려는데, 이럴 때마다 다잡아 읽는 우리 선생님들 꽃같은 말씀.



밤에도 잠자는 것보다 일이 우선이었다. 때로 피곤할 때면 옷도 벗지 심지어는 이불도 덮지 않은 채 그대로 침대에 누워 두어 시간 눈을 붙였다. 이렇게 루쉰은 참호 속의 전사처럼 깜빡 잠이 들었다가, 몸을 뒤척이고는 바로 깨어나 담배를 한 대 피우고 진하게 끓인 차를 마신 다음, 과자가 있으면 조금 먹고는 또 글을 쓰기 시작했다. 급한 글이 있을 때면 펜을 놓을 줄 몰랐으며, 대부분 동이 틀 때까지 작업했다. 루쉰은 많은 잡문들을 대부분 이런 상황에서 써냈으며, 많은 소설도 이런 상황에서 써냈다.

_ 왕스징, 『루쉰전』


우리가 학생에서 '직업인'이 되고 '교양'에서 '전문'으로 넘어갈 때, 혹은 청년에서 장년으로 넘어갈 때, 우리의 앎과 독서는 길을 잃고 위기에 처하기 십상이다. 어떤 이는 아예 책을 완전히 손에서 내려 놓기도 한다. 주로는 생계 활동의 고달픔 때문인데, 만흔 한국인들이 한 달에 책한 권도 못 본다. 어찌보면 이는 인생 자체의 행로가 위험해지는 것과 다르지 않은 과정일지 모른다. 우리는 이때 젊은이로서의 열정과 '꿈'을 잃고, 밥벌이과 기성 질서의 노예가 될 수 있다. 그런데 리영희의 말은 그러할 때 책 읽기가 어떠해야 하는지를 가르쳐 준다. 그것은 자기 생과 앎을 소명을 지닌 프로젝트로 만드는 것, 또한 그것을 늘 또럿이 스스로 의식하고, 스스로 설정한 지적 과제를 충일하게 채워 나가는 책 읽기다.

_ 고병권 외, 『리영희 프리즘』


박태순이 내 글을 괴팍하다고 했다고 한다. 괴팍하다니. 나는 내가 쓰고 싶은 글을 썼을 뿐이며, 남들도 다 쓸 수 있는 글들을 쓰는 것을 삼갔을 따름이다.

_ 김현,『행복한 책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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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락방 2017-11-20 13:2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몸조리 잘해요, 쇼님. (토닥토닥)

syo 2017-11-20 14:26   좋아요 0 | URL
어차피 뭘 먹어도 똑같을 거라면 맛있는거 먹자며 돼지고기를.....

단발머리 2017-11-20 13:3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우리 선생님들 꽃같은 말씀들 장난 아니네요. 일단 <루쉰전> 찜하고...

저같은 경우는.... (경우?) 이럴 때(이럴 때?)는 물을 마시는 것도 사실.... 힘듭니다.
물을 넘 많이 마시지 말구요. 넘 힘들면 링겔 맞으시기 바래요. 회복이 조금 빨라집니다. (토닥토닥)

syo 2017-11-20 14:30   좋아요 1 | URL
사실은 어제 절정으로 고생하고, 오늘은 낫고 있는 상황이었어요.
걱정해주셔서 감사합니다^^

루쉰전은 괜찮은 것 같아요. 분량 대비 좋은 평전. 신영복 선생님 번역입니당.

얄라알라 2017-11-20 14:1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너무너무 재미나게 읽고가면서도, 쓰신 분 건강이 안 좋으시다는데...재밌어 하는 독자로서 죄송스럽네요 쾌차하세요

syo 2017-11-20 14:30   좋아요 0 | URL
쾌차의 과정에 있어서 이렇게 뭐라도 쓸 여력이 났어요.

재밌으셨다니 더 빨리 낫겠네요 ㅎㅎ

2017-11-20 14:25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7-11-20 14:31   URL
비밀 댓글입니다.

프리즘메이커 2017-11-20 19:2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사라예보에서 또다시 총성이 들린다면...그것은 syo님의 괄약근이 치르는 3차대전을 ... 독서량이 정말 어마어마 하십니다. 1/5로 줄었는데도 이 정도라니..!

syo 2017-11-20 22:45   좋아요 1 | URL
완전 오해십니다. 최근에 읽은 책들 아니고, 지금의 다섯배를 읽던 시절 읽은 책들입니다.....

프리즘메이커 2017-11-21 04:00   좋아요 1 | URL
하하하 오늘도 공통점 하나 발견하고 갑니다 ㅎㅎ

독서괭 2017-11-28 13:1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더러운 괄약근 얘기를 이렇게 재미나게 쓰시다니.. 괄약근은 syo님에게 감사해야겠어요 ㅋ
재미는 재미고. 고생 많으셨겠어요. 이제 다 나으셨죠?

syo 2017-11-28 13:30   좋아요 0 | URL
물론 깨끗이 완치되어서 지금도 더블치즈와퍼를 쳐넣고 있었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