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빨갱이는 되는 것이 아니다. 되어지는 것이다. 제아무리 마르크스부터 레닌, 트로츠키, 마오, 심지어 주체사상까지, 짝퉁 포함해서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종류의 사회주의 사상에 통달해 있다 하더라도, 밥 숟가락을 뜨기 전이면 항상 식사기도 대신 김일성 삼대를 찬양고무하는 노래를 부르는 사람이라 하더라도, 누군가 나타나서 와, 저 빨갱이 새끼, 하기 전까지는 결코 저 혼자 힘으로 빨갱이가 될 수 없다. 이게 바로 빨갱이 생성 법칙이다. 태초에 말씀이 있었다. 월화수목금토를 일하게 하시고 보시기에 좋았으므로, 빨간 날 노는 놈들을 보고 와, 저 빨갱이 새끼, 하셨다. 그러자 기적처럼 빨갱이가 있게 되었다. 이것이 빨갱이 탄생 신화다. 물론 신화는 사실이 아니라는 말이다. 


혐오를 담은 모든 단어가 가리키는 대상은 달라도 같은 방식으로 발생한다. 누가 그 이름을 붙여주기 전까지, 그는 밉고 더러워도 그저 두루뭉수리하게 밉고 더럽다. 이름 붙는 순간 허상이 덩치를 키워 실체가 된다. 알아야 한다.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주었을 때, 그는 비로소 내게 와서 똥이 된다. 그리고 정정하자면, 혐오를 담은 모든 단어가 같은 방식으로 발생하듯이, 가리키는 대상도 결국 다르지 않다. 내가 가진 권능에 근거가 없으니 내어 놓으라는 날강도 같은 자, 그리고 그런 몹쓸 생각을 온 세상에 퍼뜨리는 전염병 같은 자.





"하인즈 씨, 제가 여기 온지 얼마 안 돼서 그러는데요, 그 망할 놈의 빨갱이라는 게 뭐죠?" 그랬더니 하인즈가 대답을 했지. "우리가 시간 당 25센트를 주겟다고 할 때 30센트를 달라고 하는 개자식들이 다 빨갱이야!" 이 젊은 친구는 그 말을 좀 생각해보다가 다시 머리를 긁적이면서 말했지. "세상에, 하인즈 씨, 전 개자식이 아니지만 만약 빨갱이가 그런 거라면 저도 시간 당 30센트를 받고 싶은 걸요. 다들 그래요, 하인즈 씨, 그럼 우리는 전부 빨갱이에요."

_존 스타인벡,『분노의 포도 2』


이 땅은 '가해자의 땅' 입니다. 가해자가 계속 권력과 영화를 누리는 땅이고, 그 가해가 한 번도 제대로 정리되어보지 못한 나랍니다. 그러니까 그들이 물적 토대를 장악하고 있고, 재생산 구조를 아주 강건하게 가진 그런 구조 속에서는, 인간의 탈을 쓰고 과연 그러한 것을 할 수 있겠나 싶을 정도의 행태도 반성하지 않게 됩니다. 우리 사회의 혐오의 뿌리를 그런 데서 볼 수 있지 않겠나 하는 생각이 듭니다.

_천정환 홍세화,『홍세화의 공부』



2


솔직히 나는 '보수'라는 말이 웃긴다. 진보는 욕심의 이름이다. 진보는 더 가지려 한다. 현재 가진 것보다 더 많이 가진 다음, 더 많이 나누려 한다. 보수는 가지려 하지 않는가? 보수도 가지려 한다. 사람은 누구나 더 가지려 한다. 그런 인간상은 보수가 선호하는 경제학에서 제시하는 기본적 인간형이다. 그런데 스스로를 보수라고 한다. 자신들이 보전하여 지킨다고 한다. 더 가지고 싶다는 말을 숨긴다. 그리고 숨길 수 있다. 왜냐하면, 현재를 보전하여 지키기만 하여도, 미래에 더 많이 가질 수 있는 비열한 판이 이미 잘 짜여져 있기 때문이다. 양심이 있어서 차마 더 가지고 싶다는 말을 못하는 건지, 양심이 없어서 부러 더 가지고 싶다는 말을 숨기는 건지는 알고 싶지도 않지만.




사람은 누구나 좌파로 살거나 우파로 살 자유가 있지만 중요한 건 그런 선택을 일생에 걸쳐 일상 속에서 지키고 감당할 수 있는 수준으로 한정하는 일인 것 같다. 좌파로 사는 일은 우파로 사는 일에 비할 수 없이 어려우며, 어느 시대나 좌파로 살 수 있는 인간적 소양을 지닌 사람은 아주 적다. 우파는 자신의 양심을 건사는일만으로도 건전할 수 있지만, 좌파는 다른 이의 양심까지 지켜내야 건전할 수 있기 때문이다.

_김규항,『우리는 고독할 기회가 적기 때문에 외롭다』


우리는 왜 위로만, 그리고 슬금슬금 오른쪽으로만 향하는가. 우리에게는 왼쪽으로 그리고 아래로도 세상을 탐험할 권리가 있으며, 바로 그러한 자기 확장을 통해서 더 높은 차원의 행복을 추구할 권리가 있는 것이다. 세상 사람들이 일관되게 추구하는 더 높은 곳으로만 향하는 지루하고 어리석은 경주를 거부하고, 상하좌우로 온전히 세상을 경험하며 자아를 확장할 수 있었던 사람들만이 진정한 자유를 누렸으며, 그들만이 애벌레에서 나비로 환골탈태하는 도약을 경험했으리라.

_목수정,『월경독서』


사장이 고용인에게 말한다. "젊은 친구, 이 회사에서 아주 빠르게 출세했군. 2년 전 사환으로 시작해서 두 달 뒤 사무직원이 됐고, 판매요원, 부지배인, 지배인을 거쳐 어느덧 부사장이네. 소감이 어때?" 고용인이 대답한다. "고마워요, 아빠."

_버텔 올먼,『마르크스와 함께 A학점을』


국가권력 사유화와 헌법 파괴, 부정부패, 직무유기에 가까운 태만의 실상이 분명하게 드러난 시점까지 박근혜 정부는 국가주의 국가론을 다르는 일부 국민들의 견고한 지지를 기반으로 권력을 유지했다. 박근혜 대통령이 탄핵을 당했고 국민들이 집권 보수여당에 등을 돌렸기 때문에 유사한 사태가 다시는 생기지 않을 것이라고 낙관하는 사람들이 있을지 모르겠지만, 그렇게 단언하기는 어렵다. 자유주의 국가론이나 마르크스주의 국가론을 선호하는 사람들은 '이념형 보수'를 무식하다고 경멸하거나 시간이 흐르면 사라질것으로 기대하는 경향이 있는데, 이는 현실과 희망사항을 잘 구별하지 못한 소치일 가능성이 높다. 국가주의 이데올로기의 생명력은 흔히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더 강하고 끈질기다.

_유시민,『국가란 무엇인가』


지배계급들은 이성이 확산되면 머지않아 전 세계 민족들이 자신들이 주모자가 되어 펼치고 있는 어마어마한 사기극을 알아차리게 되리라는 것을 너무나도 잘 알고 있다. 전 세계 민족들은 교회의 신성함, 왕의 신적 권한, 민족적 자부심, 혹은 부나 권력의 소유 등과 같은 허구에 사로잡혀 자신들이 타고난 권리를 포기한 채, 특권을 요구할 아무런 권리도 없는 소수계급을 부양하기 위해 불평없이 노력할 것을 강요받고 있다. 따라서 사회적 위계구조 속에서 상층에 자리잡고 있는 계급은 자신의 직접적인 이익을 지키기 위해 노력한다. 그들은 자연적 인식이 자기 계급이 갖고 있는 권위의 자의적 성격을 폭로할 위험이 있을 때는 언제나 그런 인식의 발전을 저지한다. 

_이사야 벌린,『칼 마르크스 - 그의 생애와 시대』



3


읽고 또 읽고 있는데, 간혹 과속방지턱처럼 나타나는 문장들이 의욕을 확 꺾는다. 요새 것들 염색하고 다니는 것을 보면 유행이 개성인 줄 착각한다, 개성은 마음 속에 있는 본성을 드러내는 것인데- 하는 식의 문단을 보면 네이버에 저자의 나이를 검색하게 된다. 76년부터 책을 내기 시작했다는 것이 발견되면, 역시 그렇지, 하는 생각에다 이어서 읽어나가고 싶지 않은 마음이 포개진다. 그 뿐일까. 여성의 특성이 돌봄 노동에 적합하게 발달되어 있어서 여성이 돌봄 노동을 하는 것이 효율이 높다는 식의 글을 읽고 나면, 혹시 저자의 메일 주소 같은 것이 없나 책날개를 뒤지게 된다. 만사 시장에 맡기면 무조건 오케이라는 말은 보이는 족족 그냥 다 찢어버리고 싶다. 보이지 않는 손, 이 손 이거는 아주 보이기만 해라, 내 눈에. 니빠로 손톱을 다 뽑아버릴라니까.


요는, syo의 좌편향된 사상이, 자꾸만 독서를 왼쪽으로 끌고 간다는 것이다. 이런 충고들은 대놓고 쓰라리다. 




독자는 자신이 알게 모르게 쌓아 온 선입견으로 책을 읽지는 않는지, 그래서 반성적 자아를 키우는 대신 완고한 자아의 성을 쌓고 있는 건 아닌지 끊임없이 되물어야 합니다. 그러지 않으면 도서는 오히려 세상이 인정한 권위 있는 책과 저자를 내세워 스스로의 부족함을 가리려는 허위의 몸짓이 될 뿐입니다. 자신의 앎과 실천이 아니라 읽은 책의 목록을 훈장으로 삼는 허영의 독서를 하는 것이지요.

_김이경,『책 먹는 법』


끊임없이 책을 읽는데도 안정된 판단력과 정신을 갖추지 못하는 사람은 책에는 조예가 깊을지 몰라도 자신에 대해서는 잘 알지 못하는 사람이다.

_조지 스웨인,『공부책』


일상적인 경험에서도 알 수 있듯이 우리는 확고한 견해를 가진 인간으로 텍스트를 읽고 있는 것이 결코 아닙니다. 오히려 텍스트 쪽이 우리를 '그 텍스트를 읽을 수 있는 주체'로 형성합니다.

_우치다 타츠루,『푸코, 바르트, 레비스트로스, 라캉 쉽게 읽기』



4


자, 이만하면, 나도 충분히 빨갱이가 될 수 있지 않을까?


syo를 빨갱이로 만들어 주실 분을 찾습니다. 자격요건은 딱 하나 뿐입니다. 한국 공인 빨갱이 자격증 발급을 독점하고 있는 자유한국당 당원이신 분. 댓글로, "와, 저 빨갱이 새끼"를 올려주세요. 비댓도 환영합니다. 당신이 나를 빨갱이라 불러 주었을 때, 나는 당신께 달려가 아주 새애애빨간 빨갱이가 한 번 되어 보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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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니데이 2017-09-20 22:46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저 공부책, 표지가 조금 특이하지만, 읽어보고 좋았던 것 같아요.
실제로 해보면 절대 쉽지 않을 책이긴 했지만요.^^;
syo님, 좋은밤되세요.^^

syo 2017-09-20 23:10   좋아요 2 | URL
유유는 사랑입니다.

서니데이님도 좋은 꿈 꾸셔요^^

책한엄마 2017-09-21 10:09   좋아요 2 | URL
저도 유유책 좋아해요.^^
반가운 마음에 불쑥!!

독서괭 2017-09-21 02:2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혐오는 이름 붙이는 순간 실체가 된다는 것, 현재를 보전하여 지키기만 해도 미래에 더 많이 가질 수 있는 비열한 판이 이미 짜여져 있기에 ˝보수˝라는 것- 공감합니다.
분노의 포도를 왜 강추하시는지 점점 더 알 것 같네요.

syo 2017-09-21 06:49   좋아요 0 | URL
분노의 포도는 진리입니다. 책은 또 어찌나 퍼뜩퍼뜩 넘어가는지 몰라요....

다락방 2017-09-21 08:33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저는 어릴 때부터 빨갱이였습니다. 저를 빨갱이로 칭하였으므로 저를 빨갱이로 만든 사람은 바로 우리 아빠였지요. 아빠...
아빠 말에 대들면 빨갱이, 밤에 늦게 들어오면 빨갱이, 시키는대로 하지 않으면 빨갱이, 빨갱이...
그러니까 이를테면, 제가 아빠가 하라는대로 하지 않으면 빨갱이였던 셈입니다.
그건 지금까지도 그래요. 저는 여즉 빨갱이란 말을 듣고 삽니다. 아빠로부터...

여기있습니다, 빨갱이.....

syo 2017-09-21 08:38   좋아요 1 | URL
우리 아버지도 살아 계셨으면 지금의 저한테 빨갱이라고 하셨을 겁니다. 제가 채 빨갱이가 되기도 전에 아버지가 돌아가셔서 참 아쉽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