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유유는 정말 미쳤다. 악마다. 버어어어얼써 저격당해 숨이 끊어진 내 취향의 시체 위에다 여전히 갈겨대고 있다! 그만, 이 피도 눈물도 없는 출판사야, 제발 그만하라고, 당신네들 책 보다가 조상님 영접......은 과장이지만, 과장 아니라 유유의 정말 모든 책이 다 나 보라고 나오는 것 같다. 내 취향을 분석하기 위해 유유에서 공작원이 파견된 것이 틀림없다. 지금도 어디선가 쌍안경을 들고 내가 일기 쓰는 모습을 지켜보고 있을 것이다. 듣기로 유유는 1인 출판사라던데, 그렇다면 전직원이 다 나를 감시하는데 투입된 셈이다. 책 출판 같은 소소한 일은 인공지능이 하고 있는 게 틀림없겠지.  

 

 

 

2

 

 

이 책들이 없었다면 내 글은 얼마나 더 끔찍했을까. 쌍안경으로 글을 쓰고 있는 syo의 모니터를 지켜보던 유유는 들끓는 울분을 도저히 참을 수 없었을 것이다. 가뜩이나 더러운 이 세상에 저런 머저리 같은 문장으로 똥물까지 타도록 놔 둘 수는 없지. 유유는 한 손으로는 쌍안경을 들고 여전히 내 동태를 살피는 한편, 나머지 한 손으로 인공지능에게 메시지를 보낸다. 이세돌을 이겨먹은 인공지능 집안의 좀 모자라지만 구김살 없이 자란 막내놈쯤 되는 유유의 인공지능은 즉시 명령을 캐치하여 작가를 섭외하고, 디자이너를 섭외하고, 교열보고, 편집봐서 책을 출판한다. 책이 나올 때쯤 되면 제 아무리 자아성찰에 재능이 없는 syo로서도 더 이상 자신의 문장을 눈뜨고 볼 수 없게 되었기에, 알라딘을 뒤진다. 그리고 유유의 책을 찾아낸다. 일은 십중팔구 이렇게 진행되었던 것이다.

 

 

3

 

 

 

이 책들이 없었으면 나는 얼마나 더 무식했을까. 어느 날 카페에서 여자친구와 syo는 이런 대화를 나누었을 것이다. syo야, 너는 마르크스의 사적 유물론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니? 음......아무래도 유물은 사적으로 소유하기보다는 박물관에 전시하는 게 좋지 않을까? 세상에, syo야, 니가 달고 있는 그 머리통은 너의 사적인 유물일 뿐이니? 대화를 도청하고 있던 유유는 syo의 묵시록적인 무식함에 치를 떨었을 것이다. 저런 오스트랄로피테쿠스만도 못한 뇌하수체를 가진 놈이 이 사회를 활보하도록 풀어 놓을 수는 없지. 유유는 인공지능에게 메시지를 보낸다. 명령을 캐치한 인공지능이, 판권을 확보하고, 번역하고, 감수를 받고, 이 책들을 출판했을 무렵, syo는 실연의 슬픔을 딛고 다시는 똑같은 실수를 반복하지 않기 위해 알라딘을 뒤지고, 이 책들을 발견해 읽는다. 그리고 외친다. 이 나쁜 기집애, 니가 그렇게 잘났냐, 그래봤자 너나 나나 똑같은 자연선택의 산물일 뿐이야, 이 남근선망의 결과물아! 그러나 모든 것은 이미 늦었다. 헛소리는 허공에 산산히 부서지고, 굵은 눈물이 또르르 syo의 볼을 타고 흐른다. 이번만큼은 유유가 조금 더 선제적이었어야 했다.

 

 

 

4

 

   

그리고 이 책들이 없었다면 지금쯤 나는 얼마나 더 지루한 놈이 되고 말았을까. 실연의 밤을 눈물과 지식으로 수놓으며 새로운 인연을 기다렸으나 syo의 곁자리에는 끝내 누구도 다가오지 않았고, 아, 내가 무식한 것만이 문제가 아니었구나, 하는 슬픈 사실을 깨달았을 때쯤 syo는 이미 어떤 코미디에도 웃지를 못하는 메마른 사람이 되어 있었던 것이다. 그런 syo의 비루한 모습을 역시 쌍안경으로 지켜보던 유유의 가슴 속에 어찌 타는 듯한 연민과 동정심이 샘솟지 않았으랴. 그래, 너는 심장이 없어, 너는 심장이 없어, 너는 아프다고 말하면 더 아플 것 같고, 슬프다고 말하면 눈물이 날 것 같아서 그냥 웃지, 그냥 웃지...... 하여간 인도적인 차원에서라도 저 못난 자식에게 웃음이라도 되찾아 주어야겠군. 유유는 인공지능에게 메시지를 보낸다. 명령을 캐치한 인공지능은 15세기부터 시작해 출판된 모든 고전을 훑어내려가며 syo가 웃지 않고는 배겨 낼 도리가 없는 걸작들을 찾아내고, 번역하고, 양념을 치고, 출판한다. 그 무렵 syo는 정말로 아무런 생각도 감정도 없었기 때문에, 이유없이 구글에 트림, 똥, 방귀 따위를 때려 넣으며 소일하고 있었는데, 떡하니 검색된 책과, 그 근처에 있는 책들을 읽는다. 그리고 마침내 메말랐던 마음에 촉촉히 개그의 단비가 내림을 느낀다.....

 

 

 

5

 

이런 짓은 얼마든지 더 할 수 있지만 여기서 그만 둔다. 읽은 책들은 더 많다. 지금도 유유는 쌍안경을 통해 내가 이 글을 작성하고 있는 모습을 흐뭇하게 지켜보고 있을 것이다. 내가 사람 하나 만든 거지, 하면서. 동의한다. 유유, 당신은 분명 이 글을 보고 있다. 당신은 좀 더 보람을 느껴도 좋겠다. 이제 syo는 물가에 내 놔도 걱정이 덜 되는 인간이 되었고, 당신은 더 이상 다음에 출판할 책을 결정하기 위해 내가 어떤 머저리 같은 짓을 할지 지켜볼 필요가 없다. 내키는대로 만드시라. 이제 당신이 무슨 책을 만들어도, 나는 읽을 것이다. 이미 방귀도 읽은 마당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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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락방 2017-08-22 21:30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아이고 이사람 ㅋㅋㅋㅋㅋㅋㅋㅋ 글 실력 늘어가는 것 좀 보소!!!!!

syo 2017-08-22 21:38   좋아요 0 | URL
아시다시피 제 스타일이 뭘까 찾기 위해 이것저것 해보는 중입니다.

다락방님은 즐거운 글을 선호하시니까 좋아하실 것 같았어요ㅎㅎㅎ

다락방 2020-10-06 08:19   좋아요 0 | URL
나 유유 검색하다가 이 글 보면서 이 글 참 재미나네, 댓글 달라고 했더니 여기 이미 내가 있다?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syo 2020-10-06 13:01   좋아요 0 | URL
ㅋㅋㅋㅋㅋㅋㅋㅋㅋ 이 시절 내가 좀 잘 썼다?

책읽는나무 2017-08-22 22:1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러니까,김영하 작가님을 제친 유유책이라굽쇼???
음.....그래도 어쨌거나 좋아요 한 개는 지금 눌렀어요.
이제 몇 개 남은거죠??

syo 2017-08-22 22:23   좋아요 0 | URL
ㅎㅎㅎ음, 백만 개요??

졔졔 2017-08-22 23:2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ㅋㅋㅋ만화보는 것처럼 킄킄ㅋ대면서 읽었어요ㅋ 재밌는 글이에요! 유유 출판사는 독특한 시그니처(?) 디자인을 갖고 있네요?! 책 디자인을 많이 보는편이라^^;

syo 2017-08-23 06:25   좋아요 0 | URL
엄청 품격있는 디자인은 아니어도 어떤지 모아보고 싶게 만드는 맛이 있는 것 같습니다 ㅎㅎㅎ

오거서 2017-08-23 08:0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앞으로 유유 책을 볼 때면 syo 님이 바로 떠오를 것 같아요. ^^;

syo 2017-08-23 08:12   좋아요 0 | URL
앗, 바람직하지 않은 기억은 빨리 잊혀지기를 바랍니다. 좋은 책들 보는데 syo같은 게 떠오르면 뒷맛이 찝찝할 거예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