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사단장 죽이기 1, 2 / 무라카미 하루키 / 홍은주 옮김 / 문학동네
하루키를 향한 맹목적인 믿음은 이제 잃은 듯하다. 다른 책에서 나왔다면 반드시 밑줄을 그었다싶을 멋진 말을 지나치게 많이 해대는데, 그러다보니 마치 그 말을 하기 위해 그 상황을 만들어낸 것처럼 작위적으로 느껴지는 지점이 있다. 현실성과 비현실성을 섞어 직조하는 대화의 그 특이한 결이나, 사건을 전개하는 그만의 독특한 방식이 나는 오랫동안 좋았는데, 십 오년을 좋았더니 슬슬 울림이 덜하다. 제일 큰 문제는 그가 거장이라는 것, 따라서 하루키의 라이벌은 어제의 하루키라는 데 있다. 개인적인 생각이지만, 하루키의 역량이 내 눈에 가장 빛나 보였던 때는, 해변의 카프카를 시작점으로 하고 1Q84를 마침점으로 하는 선분 위의 어느 지점인 것 같다(해변의 카프카 쪽으로 좀 더 가까이 당길 것이다). 물론 그때 이후로도 하루키의 필력은 절대적 기준에서 보면 향상되었을 것이다. 그리고 상대적으로 보아도 여전히 하루키는 문학 마라톤의 선두주자임을 의심받지 않는다. 그렇지만 뒤에서 따라오는 작가들과 다른 독자들의 보폭이 하루키의 것보다 더 넓다. 거리는 자꾸 좁혀질 것이다.
욕(?)을 하자는 마음이라 해놨지만, 솔직히 좋은 책이다. 600페이지 종이 뭉텅이를 앉은 자리에서 다 읽게 하는 능력은 아무한테나 있는 게 아니다. 하루키에게는 여전히 누구도 흉내낼 수 없는 하루키만의 하루키가 있다. 신작이 언제 발매 되어도 장바구니 맨 앞칸에 들어갈 작가임에 틀림이 없다.
고양이의 서재 / 장샤오위안 / 이경민 옮김 / 유유
보시다시피 표지가 어마어마하게 사랑스럽다. 한 손에 머그컵을 든 고양이가 사뭇 진지한 표정으로 책을 읽고 있는데, 그 책이 무려 생선책이다...... 그러나 고양이는 표지에만 나온다. 손헌수 닮은 영감님(장샤오위안 선생으로 추정된다) 무릎에 앉은 고양이 사진 하나 덜렁 있긴 한데, 그걸로 충분하다고 생각한걸까? 제목이 고양이의 서재인데?
장샤오위안 선생은 현지에서 유명한 책벌레인 듯한데, 역시 이름 드높은 책벌레들이 공유하는 유년기의 경험, 그러니까 어린 시절 거의 무한한 양의 책을 공급해주는 도서관이랄지, 아버지의 서재랄지, 하다 못해 친구 아버지의 서재랄지, 그런 뭔가가 꼭 있고, 이상하게도 반드시 그 책을(번호가 붙어있는 책들은 꼭 번호 순으로) 몽땅 읽어본 경험이 있다.
그렇지만 삐꾸 같은 부분도 더러 있는데 이를테면, 진정한 책벌레이지만 외모가 극히 볼품없는 L의 불모지같은 청춘사에 대해 다음과 같이 언급한다.
L은 지금도 결혼을 하지 않은 상태다. 그는 내게 자기 같은 사람을 좋아하는 여성은 무척 적다고 말한다. 지금은 많은 여성이 스스로 '독서를 사랑'하고 '문학을 사랑'한다고 말하지만 그녀들의 진정한 사랑은 어디에 있는가? 그녀들의 진정한 사랑은 돈이다. 물론 직접 그렇게 말하지는 않는다. 듣기 좋은 말로 표현할 뿐이다. 예를 들면 남자친구에게 '일에서 어느 정도 성공해야 한다.'라고 요구하는 것 말이다. (236)
L은 책벌레라는 것 말고는 외모도, 돈도, 명예도 가진 것이 없다(성격은 언급하지 않았지만 에피소드를 보면 괴짜 기질이 다분히 있다). 근데 왜 독서를 사랑하고 문학을 사랑하는 여자는 그런 L을 사랑하지 않으면 거짓말쟁이가 되야 하는가. 남자를 돈으로 판단하는 여성에 대해 분개해놓고, 막상 자기는 여자의 외모로 가치를 매긴다. 다음 문장에서.
자기 책을 사랑하는 일은 어렵지 않다. 어려운 일은 자기 책이든 아니든 세상의 모든 책을 사랑하는 일이다. 그렇게 책을 사랑하는 사람 가운데는 친구나 도서관에서 빌린 책에서 흠을 발견하면 나서서 손보는 이가 있다. 서점에서 책을 보다가 책 정리가 제대로 되어 있지 않은 걸 보면 아무렇지도 않게 책 정리를 한다. 누군가 책을 더럽히거나 망가뜨리는 걸 본다든가 책이 잘못될 가능성만 느껴도 그러지 못하도록 저지하거나 좋은 말로 말린다. 그들에게 좋은 책이 더럽혀지거나 부적절한 대우를 받는 것은 미인이 모욕을 당하는 것과 같아서 아름다운 것을 아끼는 마음에 보호하려 드는 것이다. (188)
이런 사람들을 놓고 내가 좋아하는 한 작가는 이런 말을 한다. 나는 더 더러운 말을 할 수 있지만, 정갈한 말을 인용하는 것으로 갈음하자.
그러나 나는 책을 많이 읽는 사람이 더 나은 사람이라는 것을 보장하지는 못한다고 생각한다. 공부를 더 많이 하고 잘하는 사람이 더 훌륭한 사람이 되는 게 아닌 것처럼, 다른 사람보다 책을 더 많이 읽는다고 더 훌륭한 사람이 되는 건 아니다. ....... 책을 많이 읽었지만 모순으로 가득 찬 사람, 세상의 모든 일들에 대해 남들보다 더 많은 지식을 책에서 얻었지만 타인에 대한 이해나 배려는 부족한 사람들을 나는 곧잘 마주치곤 한다.
_이유경,『독서공감, 사람을 읽다』34-35
채링크로스 84번지 / 헬렌 한프 / 이민아 옮김 / 궁리
어쩐지 한 번도 가보지 못한 옛 서점들에 관한 책을 읽고 싶어진다. 2차대전 직후, 전승국인 영국 국민들이 식량이나 나일롱 양말을 배급받아야 했다는 사실을 처음 알게 되었고, 전후를 겪은 사람들의 경험을 담은 책을 읽고 싶어진다. 다른 책으로 건너가는 다리를 놓아 주는 책에 별점을 매기면 다섯 개 미만이 나올 수가 없다.
따뜻하게 편지와 소포를 주고 받는 모습을 읽고 상상하는 것만으로도 슬쩍 눈물이 나는 것은 왜일까. 나는 편지도 잘 못 쓰고 선물을 주는 일도 드물지만 편지와 선물이 아름다운 삶을 위한 요소가 될 수 있다고 누군가 말한다면 그 말에 기꺼이 동의한다. 그들이 주고 받은 편지는 그야말로 실용적 용도로 쓰였으므로 오히려 아름답다. 작위적인 아름다움이나 불필요한 가식이 전혀 섞일 자리가 없었기 때문이 아닐까. 책을 사랑하는 마음으로 사람을 사랑하는 사람. 서점 점원과 고객이라는 그야말로 비즈니스적 관계를 따뜻한 끈으로 바꾸어 이어나가는 그 마음들. 한없이 따뜻한 책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