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정치 워리어가 밤 늦도록 토론을 보는 이유
이번에는 안 보리라 그렇게 다짐했건만, 아, 결국 마법처럼 나를 TV 앞에 끌어다 앉힌 이 맵고 짠 말요리들아.... 대선 토론은 몸에 나쁘다. 따가운 말은 앉아도 따갑고 나쁜 말은 서도 나쁘다. 그렇지만 그게 다 저 매서운 입들의 잘못만은 아니다.
막장 드라마가 계속 만들어지는 이유는 어쨌든 소비되기 때문이다. MSG에 식재료를 첨가한 듯한 역설적인 음식이 명맥을 유지하는 것은 먹는 사람이 있기 때문이다. 마찬가지로 그들이 맵고 짜고 따갑고 나쁜 말로 말야구를 하는 것은 그것이 먹히기 떄문이다. 너도 나도 그 누구보다도 나도 모두가 정치평론으로 한가락 하는 대한민국 국민들은 정치인들의 막말잔치를 욕하면서도, 달리 보면 오히려 욕할 수 있기 때문에 즐긴다.
강한 이를 욕하는 놀이는 생각보다 중독성이 강하고, 스스로의 지식과 품격, 권위를 드러낼 수 있는 용인된 통로로 기능하면서 종종 자존감에 물뽕을 놓는다. 누구나 처음부터 정치에 미쳐있는 것은 아니다. 지지하는 후보가 다르다는 이유로 멱살잡이를 하는 사람들도 태어날 때부터 정치 콜로세움의 검투사는 아니었다. 처음에는 "야, 이건 아니지 않냐? 이게 아니라 저거지."로 시작했을지도 모른다. 아마도 처음에는 자유나 평등과 같은 부인하기 어려운 가치를 부정하는 이들을 공격했을 것이고, 듣는 이의 동의를 즉각 획득했을 수 있다. 그리고 맛을 알았을 것이다. 태어나 처음 초콜릿을 입에 넣어 본 아이들처럼. 발언과 동의의 반복되는 다선 속에서 성장해 왔을 것이다. 사실은 그 성장은 절반이 편향이라는 것을 모르거나 모른 체 하면서. 그리하여 마침내 같은 방식으로 자가 육성된 검투사를 콜로세움에서 맞닥뜨렸을 때, 그 만남은 승과 패가 곧 자신의 전 인생에 대한 긍정과 부정으로 치환되는 일도양단의 싸움판이 된다.
그러니까 또 어떻게 보면, 정치 위리어에게 정치인들의 토론은 피트니스 센터나 태릉선수촌 같은 것이 된다. 언젠가 찾아올 대결의 날을 위해 부단히 몸을 만드는. 막장이건 끝장이건 결국 볼 밖에. 아, 찌질한 걸 알아도 벗어나질 못하겠는 이 정치 워리어질의 맛.
2. 정책은 따로, 좀, 꼭, 듣고 싶습니다.
나도 후보들의 정책에 대한 좀 더 자세한 이야기를 듣고 싶다. 궁금한 것이 있으면 물어보고 싶다. 그러나 내 생각에 대선토론회가 말싸움과 과오논쟁을 완전 배제한 정책토론의 장이 되어야 한다고 생각하는 것은 오판이고, 그다지 이상적이지도 않다. 여전히 나는 후보간 토론을 통해 우리는 주로 정책이 아닌 다른 것을 검증해야 한다고 믿는 쪽이다.
논객들의 토론과 대선후보들의 토론은 그 목적 자체가 다르다. 논객들은 논쟁에서 이기기 위해 토론하고, 후보들은 대선에서 이기기 위해 토론한다. 후보들은 국민들의 알 권리를 위해 토론하지 않는다. 정책이 궁금하면 국민들은 정책자료집을 공부해야 한다. 한 사람에게 20분씩 밖에 주어지지 않는 토론회에서 후보들이 공약을 알기 쉽게 쏙쏙 설명해주기를 바라며 정책자료는 거들떠도 안보는 것은 전형적인 공부 못하는 학생의 공부법이다.
설사 미리 정책자료를 다 숙지한 다음 TV 앞에 앉았다 한들, 예를 들면 내가 문재인의 공약 중 특정 부분에 품고 있는 의문을 유승민이 문재인에게 그대로 물어 줄 거라는 확신은 도대체 어디서 오는가. 정책에 대한 후보들의 의중을 듣고 궁금증을 해소하는 것이 국민들의 진짜 바람이었다면, 국민은 최소한 후보간 토론회가 아니라 국민을 대상으로 한 공청회나 질의응답을 요구했어야 한다. 솔직히 인정하자. 우리 대부분은 그냥 검투가 보고 싶었을 뿐이다. 스포츠를 보고 싶었을 뿐이다. 싸움에 대한 인류의 오래된 욕망의 한 변형물로서.
3. 내 패를 안 보이는 안보
유는 언제나 잘하지만, 어제는 좀 본인답지 않았다. 본인도 실제로 국정원이 북한의 반응을 예측하기 위해 북한에 물어보는 것 말고 무슨 방법이 있겠냐고 생각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상대의 반응을 알기 위해 상대방에게 직접 물어보는 것 말고는 다른 수단이 없는 정보조직이라면 문을 닫아야지. 유의 3분과 문의 2분이 쓸데 없이 허공으로 날아갔다.
홍, 유, 심은 사드 배치에 대해 말을 바꿨다며 문과 안을 공격하지만, 나는 그 중 심의 입장 말고는 논리적으로 도저히 이해가 되지 않는다. 심이야 사드 배치를 반대하는 입장이니, 애초에 반대했다가 찬성이나 유보쪽으로 슬그머니 옮겨간 문과 안을 꾸짖는 것에 일관성이 있다. 그러나 홍과 유는 국방을 위해 사드가 필요하다고 주장해 왔으면, 문과 안의 사드 찬성 또는 유보 입장을 환영해야 하는 것은 아닐까? 배치하지 말자고 한다며 비난하다가, 이제 배치할 수도 있다고 하니 배치하지 말자고 "했"다며 비난하는 것은 재밌다. 실제로는 사드 배치보다 사드 배치에 대한 문과 안의 입장 배치에 더 관심이 많아 보이는데.
주적 이야기는 논할 가치도 없다. 나는 오히려 유와 홍, 안의 안보관이 의심된다. 우리의 안보를 위해 우리는 외교적 군사적으로 최대한 많은 카드를 보유해야 한다. 지피지기는 백전불태이므로, 상대의 '지피'를 최대한 막아야 한다. 싸움장에 들어서기도 전에 상대방에게 영상편지를 띄운다. 나는 너에게 레프트를 날릴 것이다. 라이트는 없다. 내 인생 오직 레프트 외길 인생. 이 전략은 실제로 나의 레프트를 대비해 오른쪽 옆구리를 키운 적에게 라이트를 꽂는 방식으로 쓰이지 않고서는 의미가 없다. 진짜 안보는 전쟁이든 외교든 결국 이기는 싸움을 해야 얻어지는 것인데, 왜 자꾸 스스로 패를 까지 못해 안달일까.
그리고 홍은 매주 개콘에 나왔으면 좋겠다...... 난 개콘 안보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