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양의 모양 6
죽은 사람을 사랑하는 이야기는 어때요? 그런 이야기는 너무 흔하죠. 아니, 그러니까 사랑하던 사람이 죽은 뒤에도 계속 사랑하는 게 아니라, 애초에 죽은 사람을 사랑하는 이야기요. 그런 이야기는 우리가 사는 현실에 없죠. 그런 이야기가 있는 현실에 사는 누군가가 있을 수도 있잖아요. 있을 수도 있죠. 하지만 작가님, 단언컨대 그런 이야기가 베스트셀러로 팔려나가는 현실은 없을 거예요. 하지만 팀장님, 저는 베스트셀러 작가가 될 생각이 없는데요. 네, 작가님. 저는 작가님의 그런 스탠스가 좋아요. 대외적으로도 계속 그렇게 이야기해 주세요. 그렇지만 말씀하신 그 이야기는 안 좋아요. 이야기가 되지 못할 이야기입니다. 그럼 이건 어때요. 죽기 전에는 사랑하지 않았던 사람을 죽고 나서 사랑하는 거요. 그러니까 상대가 죽고 나서야 사랑이었음을 깨닫는 내용 말씀이신가요. 아뇨, 그게 아니라, 죽고 나서 사랑을 시작하는 거죠. 죽기 전에는 오히려 미움에 가까웠을 거예요. 그러니까 죽였겠죠. 아, 죽인 거구나. 그렇다면 이야기가 좀 다르겠네요. 그건 될 수도 있겠어요. 그렇죠? 괜찮죠? 풀어나가기에 따라서 다르겠죠. 그런데 그것도 현실성은 조금 약하지 않을까요? 공감을 얻기가 힘들 것 같은데. 왜요, 누구나 죽었으면 좋겠다 싶은 사람 하나쯤은 가슴 속에 품고 사는 거잖아요. 그렇죠. 그럴 수는 있지만, 그런 사람이 실제로 죽었을 때 사랑을 느낀다는 건 예외적이잖아요. 사람들이 그 마음을 이해할까요? 이해할 거예요. 이해한다고요? 네, 이해할 겁니다. 확신하시네요. 그럼요. 제가 그렇거든요. 작가님이요? 네. 저는 요즘 팀장님이 굉장히 밉거든요? 그런데 팀장님이 죽었다고 생각하니까, 죽은 팀장님은 굉장히 사랑스러울 것 같아요. 그런 전개인가요? 네, 그런 전개라서 그런데 팀장님, 조금, 죽어주시면 안 될까요? 별로 안 내키는데요. 왜요. 죽어주시면 제가 사랑해 드릴게요. 되게 사랑해요 팀장님, 죽어주시면. 죄송하지만 작가님 머리부터 발끝까지 제 스타일 아니셔서요, 그 사랑 안 받으려고 합니다. 네? 예상 밖이네요. 절 거절하실 거라고는 상상도 못 했는데. 네. 저에 대한 작가님의 마음이나 작가님의 제안은 전부 제 예상 안이네요. 그래서 쉽게 대응할 수 있었습니다. 제 어디가 그렇게 마음에 안 드시는 건데요. 말도 안 되는 이야기를 말이 되는 이야기처럼 하는 점이요. 죽은 사람을 사랑한다든가, 죽이고 나서 사랑한다든가, 제가 작가님을 거절하지 않을 거라든가 하는 그런 말도 안 되는 이야기를 말처럼 하시잖아요. 말씀이 너무 심하시네요, 팀장님. 네, 저의 특장점입니다. 이제 제가 생각해도 저 이야기는 안 되겠네요. 팀장님 죽이지도 않았는데 벌써 사랑에 빠져버린 것 같아요, 저. 저런, 애석해라. 저는 죽어도 안 되는 건가요, 팀장님? 네. 그렇게까지 단호할 일인가요. 네, 지금으로서는요. 나중에는 될 가능성도 있어요? 우선 작가님의 다음 작품이 50쇄 정도를 찍는 게 어떤 시작점이 될 수는 있겠습니다. 가능한 이야기일까요? 풀어나가기에 따라서 다르겠죠. 죽겠네요. 제가 이제껏 쓴 책들을 싸그리 합쳐봐야 10쇄가 안 되는데, 50쇄라니. 작가님도 잘 아시겠지만 사랑이란 게 그토록 어려운 거죠. 차라리 팀장님을 죽이는 게 빠르겠는데요. 아니오, 저는 늙어 죽을 계획입니다. 늙어 죽은 저도 사랑하실 수 있으시겠어요? 생각해봐야겠는데요. 네, 그럼 생각해 보시고 다시 연락 주세요. 저, 까인 거 맞죠? 정확히 말해서 제가 깐 건 작가님의 그 죽은 사람 사랑하는 이야기지만, 네, 겸사겸사 작가님도 같이 깐 걸로 해 두죠. 죽어라 써서 기필코 베스트셀러 작가가 되고야 말겠다는 의지가 생기네요. 네, 그게 또 저의 특장점입니다.
한번은 그가 나에게 자기 캠핑카에 가서 함께 누워 쉬자고 넌지시 말했다.
"에스키모인은 그럴 때 우리 함께 웃자고 하죠." 그리고 나는 형광 연두색 게시문을 가리켰다. "세탁하는 동안 자리를 비우지 마시오." 연결된 플라스틱 의자에 앉아 있는 우리는 각자 키득거리다 함께 웃었다. 그러고는 다시 조용히 앉아 있었다. 철벅거리는 물소리만 들렸다. 바다의 파도처럼 율동적인 그 소리.
_ 루시아 벌린, 「에인절 빨래방」
구체적인 형태를 띠고 계속되는 환상이 그를 현재에서 끌어내 무아경에 빠뜨렸는가? 아니, 환상은 오히려 얽힌 매듭을 풀어 주고 현재를 해명해 주며 개별적인 것들을 연결시켜 주지 않았는가?
_ 페터 한트케, 『어느 작가의 오후』
나는 각국의 젊은 여자들과 육체관계를 맺었고, 사랑은 서로의 차이점을 기반으로 키워나가는 것이며 비록 깊이 파고들면 누가 됐든 무수한 차이점이 발견된다 해도 원칙적으로 비슷한 사람끼리는 절대 사랑에 빠질 수 없다고 굳게 믿게 되었다. 요컨대 우리는 극단적인 나이 차가 상상을 초월하는 격정을 불러일으킬 수 있다는 걸 알고 있다. 인종의 차이도 놀라운 효과를 발휘하고, 단순히 국적과 언어가 다른 점도 결코 무시 못할 부분이다. 연인은 서로 같은 언어를 써서 좋을 것이 없다. 서로 하는 말을 모두 알아듣고, 말로 의사소통을 해서 좋을 게 없다. 말은 흔히 사랑이 아닌 분열과 증오를 조장하기 때문이다. 말은 하면 할수록 의도와 멀어지는 반면, 남자든 여자든 마치 개를 어르듯 상대를 향한 반半언어적이고 두루뭉술한 사랑의 속삭임은 무조건적이고 지속적인 사랑의 조건을 형성한다. 커플이 대화를 여전히 즉물적이고 구체적인 내용 ― 창고 열쇠 어디 있어? 혹은 전기 기사가 몇시에 온다고 했지? ― 으로만 국한할 수 있다면 그들은 계속해서 사이좋게 지낼 수 있을 것이나, 대화가 그 이상을 넘어선다면 불화와 식어버린 사랑과 이혼의 세계가 시작될 것이다.
_ 미셸 우엘벡, 『세로토닌』
--- 읽은 ---
20. 홍차, 너무나 영국적인
박영자 지음 / 한길사 / 2014
syo는 홍차도 잘 모르고 영국도 잘 모르지만, 이 책을 다 읽고 나서 제일 먼저 든 생각은 홍차를 알려면 영국을 알아야 하고, 마찬가지로 영국을 알려면 홍차를 알아야 하나보다- 였다. 이 책은 영국은 이러이러하다 -> 그래서 정답은 바로 홍차입니다! 하는 일관된 구성으로 영국의 다양한 면을 제시한다. 그런데 그게 꽤 재미있고 이런저런 이야기를 끌어오는 원산지도 폭넓어서 좋다.
이런 책은 보통 ‘땡땡땡의 인문학’ 같은 식의 제목으로 세상에 돌아다니는데, ‘인문학’이라는 단어가 요즘의 ‘주식’처럼 사람들의 눈을 끌어당기던 시절에나 붙던 제목이지, 지금 보면 <홍차와 영국의 인문학>은 좀 손이 안 가게 생겼다. 제목부터 시작해서 전체적으로 잘 뽑힌 책 같다. 내용이야 ASAP로 다 까먹겠지만, 읽는 동안은 괜찮은 시간이었다. 아, 이 책 읽으면서는 커피 대신 홍차만 마셨다.
1750년경 '진 유행병'Gin Craze이 절정에 다다랐을 때 어린이를 포함한 모든 영국인은 날마다 진 한 잔과 맥주 한 잔 반을마시고 있었다. 영국은 어느새 술의 나라가 되어버렸고, 이것은 망국의 전조였다. 조지 오웰이 『위건 부두로 가는 길』에서 "무알코올성 음료인 차, 커피, 코코아와 맥주 정도를 마시던 이곳에 증류주가 들어오지 않았다면 지난 400년의 영국 역사는 엄청나게 달라졌을 것"이라고 했을 만큼 진의 파급력은 엄청났다.
술독에 빠진 영국인들을 구제한 것은 왕도 총리도 아니었다. 그것은 바로 '차'였다. 따뜻한 차 한 잔은 금주운동의 씨앗이자 술 중독자들을 구원할 치유제가 되었다. 또한 오염이 심각했던 물에서 벗어나게 해주었다. 차의 천연 항 박테리아 성분은 술독에 빠진 노동자를, 질병에 걸린 어린아이를, 조산의 위험에 처한 임산부를 구해주었다.
영국의 이질 발생 건수는 1730년대부터 줄어들기 시작했다. 1796년 한 평론가는 "이질과 다른 수인성 질병이 상당히 줄어들었다"고 했으며, 의사와 통계학자들도 19세기 말까지 국가적으로 건강의 질이 개선된 것이 바로 차 덕분임을 인정했다. 동인도와의 무역이 활발해지면서 극빈층 노동자도 차를 구입할 수 있게 되자 차는 영국 가정의 식탁에서 술을 밀쳐냈다. 비로소 영국은 차의 기운으로 술독에서 빠져나오게 되었다.
_ 박영자, 『홍차, 너무나 영국적인』
21. 한 번이라도 모든 걸 걸어본 적 있는가
전성민 지음 / 센시오 / 2020
아, 이걸 이렇게 길게 인용해야 할 일인지 싶지만, 그래도 하고 싶은 말이 있으니 한번 해본다. 문단 앞에 붙은 숫자는 syo가 편의상 붙였다.
(1) 1687년 뉴턴이 《프린키피아》를 통해 소개한 세 가지 운동 법칙(관성의 법칙, 가속도의 법칙, 작용반작용의 법칙)과 만유인력의 법칙은 신의 섭리로만 이해하던 세상을 과학적으로 설명하는 이론적 틀이 되었다. 세계와 자연의 모든 현상을 인과법칙으로 설명하는 것이 가능해진 것이다.
(2) 하지만 아인슈타인의 상대성 이론은 시간이 절대적이고 고정불변한 것이라는 기계론적 고정관념을 깨뜨렸다. 속도가 빠르거나 중력이 강할수록 시간은 느리게 흐르며 이 세상의 시간은 절대적인 것이 아닌 상대적이라는 것이다.
(3) 슈뢰딩거와 하이젠베르크에 의해서 탄생한 양자역학도 고전 물리학을 전복시킨 건 마찬가지다. 하이젠베르크의 불확정성 원리에 따르면 입자의 위치와 운동량을 모두 정확하게 파악할 수 없다.
(4) 뉴턴의 고전역학은 눈에 보이는 거시 세계를 잘 설명하지만, 원자 이하의 눈에 보이지 않는 미시 세계는 양자역학이 지배한다. 이 두 가지는 서로 다른 차원에서의 현상을 설명하지만, 무언가를 끌어당긴다는 점에서 서로가 묘하게 만나는 지점이 존재한다.
(5) 고전역학에서 만유인력의 법칙은 질량을 가진 모든 물체에 서로 끌어당기는 힘이 작용한다는 것이다. 사과와 같은 물체가 땅위로 떨어지는 것도, 지구가 태양 주위를 도는 것도 만유인력이 있기 때문이다.
(6) 한편 양자역학에서 나타나는 양자 얽힘이란 두 개의 입자가 강한 상관성을 가지면 아무리 멀리 떨어져 있더라도 서로 얽혀 있어 즉각적인 영향을 주고 받는 현상을 말한다. 만유인력의 법칙과 양자 얽힘 현상의 원인이 무엇인지는 모른다. 하지만 이러한 현상이 공통적으로 말하는 것은 우리를 둘러싼 우주가 작동하는 원리 중에도 알 수 없는 이유가 서로를 끌어당기는 현상이 존재한다는 것이다.
(7) 론다 번의 《시크릿》에서 소수의 지도자들만 알고 있었다는 놀라운 비밀은 다름 아닌 ‘끌어당김의 법칙’이다. 우리가 하는 생각에는 ‘끌어당기는 힘’과 ‘주파수’가 있으며, 어떤 것을 생각하면 그 생각이 우주로 전송되고, 이는 자석처럼 같은 주파수에 있는 것들을 끌어당긴다는 것이다.
(8) 즉, ‘나는 할 수 있다’는 긍정적인 생각은 다시 낙관적인 마음가짐을 불러와서 ‘할 수 있다’는 내 생각이 달성되도록 돕는다. 마찬가지로 ‘할 수 없다’는 부정적인 생각은 다시 비관적인 마음가짐을 불러와서 ‘할 수 없다’는 내 생각이 달성되도록 돕는다. 우리 선조들의 격언 “말이 씨가 된다”나 영어속담 “하늘은 스스로 돕는 자를 돕는다”도 따지고 보면 끌어당김의 법칙과 같은 이야기를 하고 있다.
(9) 우리 우주를 지배하는 만유인력의 법칙은 말 그대로 우주에 존재하는 모든 것에 끌어당기는 힘이 있다고 말한다. 보잘것없는 나도 우주의 일부분으로 우주의 법칙에 지배당한다.
자, 전체의 주제는 (9)다. 저자는 저 말이 하고 싶은 건데, 그냥 띡 말하면 그러니까 다른 자연법칙과의 유사성을 근거로 가져오고 싶다. 그래서 다른 문단들을 우수수 가져왔다. 자, 문제는 이렇다.
1. (1)~(3)은 (9)와 아무런 상관이 없다. 그나마 (4)~(6)은 ‘끌어당긴다’라는 맥락으로 (9)에 억지로 가져다붙일 수 있다고 쳐도 (1)~(3)은 그냥 물리학 지식 설명에 불과하다. 통째로 빼버려도 논지 전개에 아무런 문제가 생기지 않는다. 그냥 분량 채우기나 지식 자랑에 불과하다. 도대체 이 문단에서 뉴턴의 운동3법칙은 왜 필요한가. 심지어 괄호까지 쳐서 하나하나 나열하는 게 무슨 의미가 있나.
2. (4)~(6)에서 ‘끌어당김’의 요소가 있다고 해서 그걸 (9)로 가져다붙이는 것이 자연스러운지도 의심스럽다. 그것은 (9)의 마지막 문장, ‘우주의 법칙에 지배당한다’는 말을 통해 시크릿의 ‘끌어당김의 법칙’을 다른 물리학 법칙과 동등한 위치에 놓으려는 말장난에 불과하다. 심지어 이는 ‘끌어당김의 법칙’의 존재 자체를 증명해야 하는 의무를 뭉개는 효과도 있다. 두 가지 요건을 한 번에 해치우려는 어설픈 시도인 셈이다. 저자의 말대로 만유인력의 법칙과 양자 얽힘이 닮은 구석이 있다고 인정한다 치더라도, 만유인력의 법칙의 존재는 양자 얽힘과의 닮음으로 증명되는 것이 아니다. 양자 얽힘도 마찬가지다. 즉, ‘끌어당김의 법칙’이 물리법칙과 닮았음을 가지고 뭔가를 증명하려는 시도인 (4)~(6)은 애초에 목적을 달성하는데 부적합하다는 것이다.
3. 나는 태양을 당기고 태양도 나를 당기지만 내가 죽는 날까지 태양은 내게 도달하지 않는다. 우린 그냥 당길 뿐이다.
결국 살아남은 것은 (7), (8), (9)다. 이것에 관해서는 더 말하지 않겠다.
이 책은 시크릿의 재판은 아니다. 이 책은 다른 자기계발서를 폭넓게 인용하고 있고, 이 부분은 그중 《시크릿》을 이용한 한 꼭지일 뿐이다. ‘끌어당김의 법칙’이라는 것의 이치나 효과에 관해서 따지자는 것은 아니다. 그냥 나는 이 꼭지에서 저자가 전개하고 있는 논리의 부실함이랄지, 불필요한 문단을 집어넣는 책 구성이랄지, 이런 것들이 이 책의 단점임을 이야기하고 싶을 뿐이다.
22. 당신이 글을 쓰면 좋겠습니다
홍승은 지음 / 어크로스 / 2020
syo에게 2021년 최초의 화두메이커는 단연 홍승은 선생님이다. 이 책과 나란히 선생님의 다른 책 『두 명의 애인과 삽니다』를 읽고 있다.
1월이라는 때는 재정비하고 새로운 출발을 도모하기에 적절한 시기인데 마침 이맘때 자신에 대해 깊숙이 생각해보는 기회를 가지게 된 것은 올해 내게 어떤 작용을 할까. syo ver.2021은 구버전의 치명적인 오류를 수정하고 사용자에게 혁신적인 UX를 제공할 수 있을 것인가!
어떤 글은 존재의 목을 조르고, 어떤 글은 존재를 자유롭게 한다. 편견을 재생산하지 않고 자기 이야기를 써내려 가는 건 어떻게 가능할까. 나를 나로 살게 하는 글은 어떻게 쓸 수 있을까.
_ 홍승은, 『당신이 글을 쓰면 좋겠습니다』
--- 읽는 ---
두 명의 애인과 삽니다 / 홍승은
기초 전기전자 에센스 / 모현선 외
차이나는 클라스 : 국제정치 편 / JTBC <차이나는 클라스> 제작진
헤겔과 그의 시대 / 곤자 다케시
법의 이유 / 홍성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