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달다

 

 

1

 

네 어머니가 반찬과 함께 보내주신 참외를 syo가 혼자 다 쳐묵고 있다. 이 달고 맛있는 참외를 은 구경도 못 해봤다. 소식만 들은 상태다. 하루에 한 번씩 카톡으로 아달다를 보내고 있다. 은 그저 속수무책이다. 그는 원래 참외 별로 좋아하지도 않지만, 아달다 공격을 받으면 오이도 꿀처럼 달 것만 같은 게 인간이라는 작은 동물의 심리인지라 약이 좀 올라 보인다. 심지어 syo 역시 참외 별로 좋아하지 않는데, 아달다 공격을 시전하다 보니까 괜시리 꿀맛이다. 그리고 니가 돌아올 때쯤, 아달다는 아달았다가 될 것이다.

 

 

 

2

 

참외 하나 깎아 들고 옥상에 올라갔다. 경험상, 백수는 분연히 옥상에 올라가는 법이다. 2018 백수는 올라가서 한숨을 쉬었는데 2020 백수는 심호흡을 한다. 우리 집이 산 동네 머리 꼭대기까지는 아니지만 그래도 미간쯤은 되는 위치라서 내다보기에 그림이 썩 괜찮다.




 

편의점 의자라도 하나 가져다 놓고 싶다, 진짜. 앉아서 구름이나 세면서 아삭아삭 참외를 씹어먹으면 얼마나 맛있게요…….

 

아주 풍류남아 나셨군요.

 

 

 

3

 

시간은 시간이 알아서 할 거고, 나는 시간의 곁에 서서 그 위로 둥둥 떠내려가는 것들을 찬찬히 지켜볼 거고, 내미는 손을 잡을 거고, 후회되면 된 만큼 후회를 할 거고, 그만두어야 할 때 그만두는 결정을 망설이지 않을 거고, 망하면 크게 울되 짧게 울고, 다시 참외를 들고 옥상에 올라가야지.

 

 

 

 

 

--- 읽은 ---

 


170. 소설가의 공부

루이스 라무르 지음 / 박산호 옮김 / 유유 / 2018

 

독서가라는 자아는 날로 얻을 수 있는 것도 아니지만 공짜로 유지되는 것도 아니어서 가끔 읽는 일이 말 못 할 무게감으로 엄습할 때가 있다. 많이 읽는 것은 하나도 어렵지 않다. 꾸준함에 대해 이야기하고 싶다.

 

루이스 라무르는 소설가인 모양인데, 우리나라에서는 자서전급 에세이 <소설가의 공부>가 대표작이자 유일한 작품이다. 서부 소설로 명성을 드날렸던 것으로 보인다. 그의 소설이 어떤지는 모르겠고 이 책 역시 그저 그랬지만, 인간 자체는 대단한 것 같다. 학교에서 더는 배울 게 없다며 고등학교를 박차고 나가 미국 여기저기를 떠돌면서 선원에, 벌목꾼에, 광부에, 심지어 50승이 넘는 전적의 프로 복서까지 했는데, 더 대단한 건 그 와중에 쉬지 않고, 농담 아니라 진짜 쉼 없이 책을 읽었다는 점이다. 읊어주는 목록을 보면 이걸 다 기억하고 있는 게 말이 되나 싶을 정도로 어마어마하다.

 

이런 대목이 인상적이다.

 

한번은 히치하이크를 하다가 어떤 단과대학 교수의 차를 얻어 탔다그는 내 코트 주머니에 꽂힌 책을 보고 호기심을 가졌다그것은 현대문학 모음집으로 제본 상태가 별로였는데당시 한 권에 95센트였다이 책에는 니체의 이 사람을 보라와 비극의 탄생이 실려 있었다.

  교수는 상상력이 별로 없는 현학적인 사람으로 내가 그런 책을 읽는 것이 불쾌하기까지 한 것처럼 보였다(몇 분 정도 그와 이야기를 해보니 정작 그는 그 책을 읽지 않은 것 같았다). 그는 내게 다짜고짜 질문을 해 댔다분명 내가 자기가 생각한 범주에 속하지 않는 사람이라고 판단한 모양이었고날 시내에 내려줬을 때는 마침내 날 떼어내 안도한 것 같았다.

  그는 계속 내게 왜 그런 책을 읽고 싶어하는지 물었다처음에는 내가 그 책을 읽고 있는지도 의심했다대체 니체의 이름은 어디서 들었나?

  내가 쇼펜하우어에 대한 책 서문에서 니체를 처음 본 것 같다고 대답하자 그는 더 당황했는데아마도 내가 거짓말을 한다고 생각했던 것 같다.

 

니체 이름은 어디서 들었나?”라는 질문에 쇼펜하우어에 대한 책 서문에서요.”라고 대답하다니. 이건 정말 대단하다. 그리고 엄청 폼 난다. 라무르가 syo처럼 거들먹거려 보려고 철학책에 기웃거리는 인간이었다면, 니체에 대한 책에서 쇼펜하우어의 이름을 들었을 공산이 크다. 저건 그야말로 장르고 나발이고 손에 잡히는 책은 다 먹어 치운다는 뜻이다…….

 

하여튼 그는 통나무 더미 아래에서도 읽고, 폭풍 몰아치는 선실에서도 읽고, 그냥 읽고 또 읽는다. 책만 보면 환장을 하고 덤벼든다. , 키보드만 두드리는 주제에 야근 좀 시켰다고 집에 돌아와 책 안 보고 치킨이나 시켜 먹던 syo…….

 

책 자체에 대해 말하자면, 매 챕터, 자신의 고난으로 ’, 역경으로 ’, 읽은 책 목록으로 을 갖춘다. 근데 이 없다. 에세이라기보다는 자서전에 가까워서, 저자에 대해 관심이 없는 상황에서 끈기 있게 읽기는 아무래도 어렵다. , 하다하다 끈기 없는 것도 책 탓하는 syo, 너는 대체…….

 

 

 

171. 고도를 기다리며

사무엘 베케트 지음 / 오증자 옮김 / 민음사 / 2000

 

쟤네는 자기네가 고도를 왜 기다리는지 똑바로 알지도 못하고 고도를 기다린다. 그런 그들이 납득이 가진 않는다. 그렇지만 그게 이상하다고 욕할 수는 없다. 왜냐하면 syo역시 고도를 기다리며를 왜 읽는지 똑바로 알지도 못하고 고도를 기다리며를 읽기 때문이다. 처음도 아닌데, 진짜 모르겠단 말이야.

 

그나저나 번역은, 이제 낡았다는 느낌이 물씬 든다. 다음 번 기다릴 때는 다른 번역으로 기다려야겠다.

 

 

 


172. 칸트

최인숙 지음 / 살림 / 2005

 

개론서와 입문서를 사랑하는 syo지만, 포켓 사이즈로 나오는 살림 시리즈는 사랑 반 전쟁 반이다. 분량상 후려치는 건 어쩔 수 없지만, 그 작은 지면을 철학자 쉴드 치는데 쓰기 시작하면 그만큼 내실이 줄어들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아래와 같은 대목에서,

 

칸트의 도덕이론이 엄숙주의에 빠졌다는 비판도 있다개연적 상황에 따른 감정 요소가 결여되어 있다는 것이다그러나 이러한 비판도 칸트의 이론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한 경우에서 비롯한다고 볼 수 있다.

  인간을 근본적으로 도덕적 이성을 본질로 하는 존재로 보는 칸트철학은 개별적 감정을 배제하고 보편적인 정언명법에 따라야 한다고 보는 관점에서 오히려 모든 인간의 존엄성을 평등하게 인정하며 고양시키는 장점이 있다.

 

부자건 가난한 사람이건 똑같이 한 푼도 지원하지 않는 보편적으로 평등한 나라비슷한 느낌이다. 이 짧은 책에서 저렇게 써 버리면, 그게 칸트가 자신의 저서에서 직접 언급한 내용인지 아니면 칸트의 사상을 해석한 저자의 견해인지를 독자는 구분하기 어려워진다. 그리고 칸트를 비판하는 사람들도 어지간히 읽고 쓰는 사람들일 텐데, 저런 몇 줄의 설명으로 납득이 될 정도로 간단한 것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했다고 보는 게 더 이상하다. 요는, 크기도 작고 100쪽도 채 안 되는 개론서에서 철학자 쉴드까지 치는 무리한 욕심은 내지 않는 쪽이 개론서의 목적에 더 부합한다는 것. 방패는 두꺼워야 칼을 막는다. 두꺼운 책으로 쉴드 치세요.

 

 

  

--- 읽는 ---

우물에서 하늘 보기 / 황현산

프로이트 패러다임 / 맹정현

혁명의 시대 / 에릭 홉스봄

길 잃기 안내서 / 리베카 솔닛

사람, 장소, 환대 / 김현경

백치는 대기를 느낀다 / 서대경

헤겔에 이르는 길 / 미타 세키스케

페미니스트까진 아니지만 / 박은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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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풍오장원 2020-10-08 17:5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언급하신 칸트 입문서에 나오는 대목은 정말 하나마나한 이야기 같아요...

syo 2020-10-08 18:23   좋아요 0 | URL
내용 자체를 떠나서, 작은 책에서까지 저러지 말았으면 좋겠다 싶었어요. 가뜩이나 칸트 철학이 방대하잖아요....

반유행열반인 2020-10-08 18:2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달다 달다 ㅋㅋㅋ얄밉다...

syo 2020-10-08 21:14   좋아요 2 | URL
ㅎㅎㅎㅎㅎ 아달다.

2020-10-08 19:12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20-10-08 21:14   URL
비밀 댓글입니다.

북다이제스터 2020-10-08 20:4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김현경을 접하셨네요.
syo 님 리뷰가 기대됩니다.

syo 2020-10-08 21:15   좋아요 0 | URL
이번 달 풀로 써가며 천천히 읽어볼까 생각중입니다 ㅎㅎ

2020-10-08 22:34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20-10-11 20:37   URL
비밀 댓글입니다.

라로 2020-10-09 01:3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 구름 너무 이쁘다!!
그리고 지붕을 보니 생각나는 것. 얼마 전에 막내와 비밀의 숲2를 보는데 막내가 한국은 왜 지붕이 거의 다 초록색이냐고 (옥상이란 것을 모르는 아이라). 그런데 토비 님이 찍으신 사진의 옥상도 초록색이 좀 보이네요.ㅎㅎㅎㅎ 토비님 댁 옥상은 무슨 색이에요? (난 왜 이런 것이 궁금한지.ㅋ)
곰발 님이 막 칭찬하셔서 저도 김 현경 씨 책 샀는데. 오고 있어요~~~~!!(한 달은 넘게 걸릴 듯 하오만..)

syo 2020-10-11 20:36   좋아요 0 | URL
우리집 옥상은 색칠 안 한 콘크리트에 검은 먼지 같은게 붙은, 그냥 땅바닥 느낌의 옥상입니다.

옥상이라는 것이 없군요?
우와 저는 그게 더 신기해요.....

라로 2020-10-13 00:29   좋아요 0 | URL
있지 왜 없겠어요?ㅎㅎㅎㅎ 제 아들이가 ‘옥상‘이라는 단어를 모른다는 말인데?ㅎㅎㅎ
rooftop이라는 멋진 공간이 있죠. 하지만 제가 사는 동네에서 저렇게 옥상으로 지붕을 처리한 곳은 단 한군데도 없는 것 같아요.좀 높은 빌딩이라면 모르지만.

2020-10-10 05:13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20-10-11 20:35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20-10-12 05:43   URL
비밀 댓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