적을 만한 특별한 일은 없었지만 특별하지 않은 일은 적기에 너무 많다. 홍차를 마시고 있다. 소금을 줄이고 있다. 책을 많이 읽는데, 줄이는 중이다. 다시 장갑을 끼지 않고 설거지하기 시작했다. 구름이 몸을 열고 산의 콧잔등에 빛을 부었다. 그것은 이내 사라졌고 비가 잠깐 내리기도 했다. 돌아오는 길에 보니 빨간 고추는 그대로 매달려 있었다. 저녁을 거를 셈이다. 졸리다. 리뷰 대회에 참가해보자 싶어 책을 샀다.

 




 

--- 읽은 ---



134. 회사 밥맛

서귤 지음 / arte / 2020

 

물론 당연히 말할 것도 없이 기어이 기필코 기를 써도 회사란 밥맛이다. 그런 내용 아닌 건 아니지만, 실제로 회사에서 먹는 밥맛에 관한 이야기다! 재미있어글도 솔찬히 쓰고(음식 묘사가 침샘을 융단폭격한다) 주인공 캐릭터 표정도 너무 귀여워서귤 작가님은 글도 그림도 둘 다 세구나지금보다는 훨씬 더 많이 팔리고 읽힐 만한데…….




 

135. 희망은 과거에서 온다

김진영 지음 / 포스트카드 / 2019

 

선생님은 노련한 강의자셨지만 아마도 쉽게 가르치기보다는 제대로 알게 해야 한다고 생각하셨던 듯. 그리고 이런저런 장소에 남아 있는 선생님의 강의를 들어보면 체계적이라기보다는 두서없는 쪽에 가깝다. 좋게 말하자면, 그야말로 벤야민적인데- 싶달까. 하여튼 그런 저간의 사정들이 강연록을 풀어 쓴 이 책을 읽기 어려운 책으로 만들고 말았다. 구어를 옮겨오는 과정에서 발생할 수밖에 없었다고 이해하고 모른 체해주기에는 지나치게 빈번한 문법 오류도 한몫하지만, 그냥 강연 내용 자체가 벤야민을 아예 모르는 사람이 읽기에는 지리멸렬에 가까운 게 크다. 결국 이 책은 시중에 나와 있는 벤야민 개론서 가운데 제일 처음 손에 들만한 책이 되지 못하고 말았다.

 


 

 

136. 북항

안도현 지음 / 문학동네 / 2012

 

<너에게 가려고 강을 만들었다>를 참 좋아했고, <간절하게 참 철없이>를 더없이 좋아했는데, 두 시집이 각각 내 어떤 사랑과 관련이 있었기 때문이다. 너무 좋아했기에 시가 사랑에 닿았고, 사랑과 이어져서 시가 더욱 좋았다. <북항>은 때마침 사랑과 아무런 관계없이 읽었는데, , 좋았다. 그렇다면 그냥, 좋은 시라서 좋았던 것이겠다.

 

황현산 선생님이 해설을 통해 칭하길, ‘은유의 울타리라 하셨다. 이런, 감히 더 할 말이 없겠다.

 

 

 

137. 이사

마리 유키코 지음 / 김은모 옮김 / 작가정신 / 2020

 

이런 걸 호러 소설이라고 부르는 건가? 이 장르에 관해 조예가 없다 보니 이 책이, 그리고 이 작가가 그 판에서 어느 수준에 이르렀는지 제대로 알지 못한 채 평하게 된 것 같아서 송구스런 마음이 없지 않지만, 어쨌든 syo의 감상은 이렇다.

 

잔재주, 썩 귀여웠습니다.

 


 

 

138. 똑똑한 나를 만드는 철학 사용법

오가와 히토시 지음 / 전경아 옮김 / 글담출판 / 2020

 

공부법-지적 생산에 관한 기술책이다. 이 저자는 철학에서 뭔가를 띡 떼와서 실용적분야에 비비는 일을 즐기거나 그걸로 재미를 꽤 본 모양인데, 매번 느끼는 바지만 그가 말하는 철학과 실용 사이가 매끄럽게 들러붙어 있진 않다.

 

예를 들어, 지식을 카테고리로 분류하여 정리하는 방법(이 방법 자체는 뭐 굉장한 영업비밀도 아니고 딱히 특별하지도 않다)을 설명하면서 칸트의 12범주를 가져와 붙이는데, 칸트가 12범주를 만든 것은 철학적으로 의미 있는 사실이고, 카테고리로 분류하여 정리하는 것은 실용적인 방법이긴 하지만 칸트가 그런 일을 했다는 것이 카테고리 분류법의 실용성을 증명하거나 최소한 보충하는 일은 아니다.

 

나는 두 가지 중 하나라고 생각한다. 저자는 칸트의 분류법을 보고 아, 공부한 거 정리할 때도 이렇게 나눠서 하면 좋겠군- 하는 이미지를 연상하는 식으로, 철학자들의 사상을 가져와서 실용적지식 기술과 인상적으로 연결했을 수 있다. 혹은, 책으로 쓸 몇 가지 지적 생산 기술(이렇게 계속 기술 타령하는 것도 웃기다. 별것 없다.)을 먼저 정해놓은 다음 거기에 제일 덜 어색하게 갖다 붙일 수 있는 철학자와 그 사상을 찾아 매칭시켰을 수도 있다. 오가와 히토시가 낸 다른 책을 읽고 미루어 짐작건대, 후자일 것이다.

 

나쁘다는 게 아니라, 별것 아니라는 뜻이고, 그걸 별것처럼 보이게 만들려 애썼다는 뜻이다.

 


 


139. 그리고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전혜린 지음 / 민서출판사 / 2004


한때 내가 두른 모든 고독의 치수를 재는 줄자와도 같았던 전혜린을 지금 내려놓으려고 마지막 배웅을 했다. 그를 찍은 모든 사진이 나보다 젊어졌으니 이제 약속을 지켜야겠다. 벌써 좀 늦었다.

 

 

 

 

 

--- 읽는 ---

페미니즘 : 교차하는 관점들 / 로즈마리 퍼트넘 통 외

문학사를 움직인 100/ 이한이

한나 아렌트의 정치 강의 / 이진우

마카롱 사 먹는데 이유 같은 게 어딨어요? / 이묵돌

청소 끝에 철학 / 임성민

모든 것을 기억하는 남자 / 데이비드 발다치

 

 

 

--- 갖춘 ---

문명과 혐오 / 데릭 젠슨

프랑스 언어학의 이해 / 김이정 외

현상학이란 무엇인가 / 피에르 테브나즈

/ 최희봉

복자에게 / 김금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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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유행열반인 2020-09-14 18:4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멋진 하늘. 멋진 하루 보내셨길. 보내시길.

syo 2020-09-16 18:55   좋아요 1 | URL
멋진 하루 보내고 계시길.

stella.K 2020-09-14 19:4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삼시세끼중 한끼만이라도 남이 해 준 밥을 먹으면 좋겠슴다.
어쩌다 저는 삼순이로 태어나 삼시세끼 밥을 챙겨 먹어야 하는 운명인건지...ㅠ

벤야민 강의실 읽어보고 싶네요.

syo 2020-09-16 18:55   좋아요 0 | URL
ㅎㅎㅎㅎㅎ 돈 있으면 남이 해준 밥 실컷 먹을 수 있는 건데 ㅠㅠ
벤야민에 관심 있으시면 한 번 읽어보시는 것도 뭐 ㅎ 관심 없으시면 저 책 가지고 관심 가지시기는 어려울 것 같기도 하고...

수이 2020-09-14 19:5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니 그대가 프랑스의 언어학이라니_ 혹시 프랑스 유학 준비중?!

syo 2020-09-16 18:54   좋아요 0 | URL
그럴리가요. 언어학에 포인트를 둔 것이어요.

청아 2020-09-14 20:4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하늘 저거 실화입니까👍

syo 2020-09-16 18:53   좋아요 0 | URL
ㅎㅎㅎㅎ 저런 거 정말 오랜만에 봤어요. 금방 사라지더라구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