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천파마비판

 

 

1

 

남자들은 누구나 처음에는 자기가 잘생겼다고 생각한다. 못생긴 사람과 더 못생긴 사람의 차이는, 누가 더 오랫동안 자기가 잘생겼다고 생각하며 버틸 수 있는지(사회가 얼마나 오랫동안 그를 깨우치지 않고 내비두는지)에 달려있다.

 

syo의 경우, 6까지 버틸 수 있었다. 실은 초4부터 이미 돼지였지만, 반장이라 정치적 권력도 있고 꽤 인정받는 나댐꾼이라 사회적 권력도 있다보니 애들이 한 2년 정도 참아준 듯하다. 그러던 어느 날이었다. syo는 평소와 다름없이 여자애 하나를 붙들고 실컷 깝치는 중이었는데, 참다 참다 못한 그 애가 엄지손가락을 턱 내밀며 말했다. syo, 넌 이거야. 짧고 배불뚝이. 그날 집에 가서 거울을 보니, 그전까지 보이지 않던 배가 드디어 보이기 시작했다. 어째서 이제껏 이걸 못 봤지? 깨달았을 때는 이미 장난 아니었다. 모든 것을 잃은 기분이었다. 모든 게 마음에 들지 않았다. 못생겼어. 돼지고 아니고를 떠나서, 난 그냥 못생긴 거야…… 거기다가 돼지기까지 하지…… 엉엉, 내가 이 세상의 주인공인줄 알았더니! 으아아아아아아…….

 

세월이 흘러 그 살은 얼추 빠졌다. 다는 아니지만.

 

결론적으로 보면 외모란 상대적인 거고, 원빈이 살아 있는 이상 우리는 대충 다 못생긴 축이다. 그냥 커피에 불과하다. 잘생긴 얼굴과 못생긴 얼굴 사이에서 너른 스펙트럼을 형성하고 있는 못 잘생긴 얼굴과 잘 못생긴 얼굴 등등의 오묘한 얼굴로 살아가는 많은 사람 가운데 오늘의 syo가 있지 않을까. 뭐 얼굴이야 아무렇게나 생기면 또 어때?

 

그러나 아무렇게나 생기면 어떻다! 어떻지 않지가 않다. 나이를 먹으면 얼굴 생김을 중요하게 여기지 않는 철든 어른이 될 줄 알았는데 전혀 그렇지가 못하다. 어렸을 때는 그냥 포기하고 살았더니 도리어 마음이 편했다. 하지만 삼십대도 다 꺾인 지금 거울을 보면, 이 순간 내가 가진 얼굴이 바로 내가 살아온 경로와 서사, 위기를 맞닥뜨렸을 때 내가 취했던 방식들, 상처주고 싶은 마음에 져서 뱉었던 모진 말들과 험한 표정, 진심으로 행복하게 웃었던 추억, 흘린 눈물의 양, 다른 사람의 아픔에 공감하려 시도나 해봤던 소소한 경험 같은 것들, 그런 것들이 하나로 뒤엉켜 만들어진 일종의 증명서 같다. 드디어 자기 얼굴을 책임져야 할 나이가 온 것이다.

 

 


사람은 점차로 자기 운명의 모습과 뒤섞여 닮아 간다따라서 길게 보면 사람은 자신의 상황들 자체이다.

호르헤 루이스 보르헤스신의 글


중요한 사건일수록 처음 생겨날 때 어떤 소란도 일으키지 않는다그 사건의 결과도 사실상 마찬가지다그런 사건들은 비밀에 둘러싸였다고나 할까소음이 일어나는 까닭은 공기가 빈 공간을 채우면서 진동하거나 부딪히기 때문이다모든 사람이 뜻을 같이 해 길을 예비하는 위대한 사건은 점진적으로 일어난다갑자기 채워 넣어야 하는 빈 공간을 만들지 않으므로 어떤 폭발도 일으키지 않는다침묵 속에 태어나 주변에 작은 소리로 속삭인다그러나 사회가 패가 갈려 다툴 때 암살은 즉각적인 소동을 일으킨다.

 

  옥수수는 밤에 자란다.

헨리 데이비드 소로소로의 일기 

 

 

 

2

 

파마를 했다. 4월에 파마를 했다는 글을 올리자, 서재친구들이 일제히 사진 업로드를 요구했다. 그때 뼈저리게 느꼈다. 백수생활이 너무 길었고 방구석 독서 생활 역시 지나치게 길어서 syo가 현재 대단히 많은 것들을 놓치고 있다는 사실을. 내가 책에 몰두하고 사는 동안, ‘파마한 사람에게는 사진을 요구하는 것이 미풍양속!’이라는 새로운 윤리규범이 세상에 등장한 것이었다! 젠장, 칸트도 그런 건 가르쳐 주지 않았어. 그래서 누가 파마를 했다고 언급하면, 나도 득달같이 사진을 요구하여 예의범절을 아는 21세기 참사회인임을 어필하겠다며 기를 쓰고 기다리고 있었지만, 아무도 그런 정보를 알라딘에 올리지 않았다……. 4월부터 11월까지 세상사람 누구도 파마를 하지 않는 바람에 로레알의 주가가 폭락했다는 비보는 들은 적이 없다. 확률상 알라디너 중 누군가는 그간 분명히 파마를 했을 것이다. 그렇다면 이건, 알라딘에다가 자기 파마 소식 같은 걸 전하는 인간은 syo밖에 없다는 이야기인데……. 그럼 혹시, ‘자기 파마한 걸 알라딘에 올리는 것은 선량한 풍속 기타 사회질서에 반하는 행동!’이라는 또 하나의 새로운 윤리규범이 있었던 것일까? 잠깐만…… 근데 이 규범과 저 규범, 상호모순관계 아니냐?

 

그리하여 머리 볶은 syo는 목하 윤리적 딜레마에 포획된 상태라고 아뢰오…….

 



그에 대해서 자주 그리고 계속해서 숙고하면 할수록점점 더 새롭고 점점 더 큰 경탄과 외경으로 마음을 채우는 두 가지 것이 있다그것은 내 위의 별이 빛나는 하늘과 내 안의 도덕법칙이다이 양자를 나는 어둠 속에 감춰져 있거나 초절적인 것 속에 있는 것으로 내 시야 밖에서 찾고 한낱 추측해서는 안 된다.

임마누엘 칸트실천이성비판

 

 

 

- 읽은 -

+ 그림으로 설명하는 개념 쏙쏙 통계학 / 와쿠이 요시유키 외 : 87 ~ 159

+ 왜 칸트인가 / 김상환 : 227 ~ 315

 

 

- 읽는 -

- 2의 성 1 / 시몬 드 보부아르 : 300 ~ 413

- 초기 그리스 철학 / 피터 애덤슨 : ~ 109

- 그리스인 이야기 1 / 앙드레 보나르 : 122 ~ 235

- 좌전을 읽다 / 양자오 : ~ 8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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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11-05 22:09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9-11-05 22:29   URL
비밀 댓글입니다.

Angela 2019-11-06 00:2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서울이사기념 파마인가요? ㅎ 사진 업로드로 미풍양속에 동참해주세요^^

syo 2019-11-06 09:10   좋아요 0 | URL
ㅎㅎㅎㅎㅎㅎ 그건 제가 제 발등 찧는 일이라서요.

수연 2019-11-06 08:5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파마 사진 보고싶어요 하지만 참을게요 쇼님 쇼님

syo 2019-11-06 09:10   좋아요 0 | URL
참아주셔서 감사합니다 수연님 수연님^-^

단발머리 2019-11-06 09:3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담주에 중차대한 국가행사가 있어서 나도 어제 동네미용실에서 파마했는데, 넘 짧게 잘랐나요 ㅠㅠ
애들은 푸들이라고 하고 내가 보기엔 요술공주 밍키에요. 나 어쩔.......
그냥 커피지만 넘 슬퍼요.

잠자냥 2019-11-06 09:42   좋아요 0 | URL
밍키 사진 올려주세요! ㅋㅋㅋㅋ

syo 2019-11-06 09:47   좋아요 0 | URL
밍키면 괜찮잖아요.
멍키예요 이쪽은.
안녕하세요🐵

단발머리 2019-11-06 09:55   좋아요 0 | URL
머리만 밍키에요. 머리만!
그러니까.... 밍키는....으아앙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