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율
잘 모르는 어떤 아이가 피아노 치는 영상을 반복해서 보았다. 어찌나 잘 치는지, 겨우 숨 한번 크게 들이쉬었다 내쉬면 끝날 만한 그 짧은 시간 동안에 펼쳐 놓은 악보 속 모든 음표를 예쁜 소리로 바꾸어놓고 얼른 한 쪽을 넘긴다. 소리를 만드는 것은 작은 손이지만, 그 손을 만든 것은 시간일 것이다. 처음에는 건반 위를 뒤뚱뒤뚱 옮겨 다녔을 그 손이 빛나는 날개가 되어 음률 위를 날아다닐 때까지, 아이가 피아노에 주었던 것은 아마도 시간.
그런 것들이 있어서 세상은 아름답다. 내가 내준 시간만큼, 딱 그만큼만 내게 내어주는 것들. 속일 수 없고 속이지도 않는 것들.
50초 남짓 되는 영상을 500초 동안 보면서, 매일 글 쓰는 일에 대해 생각한다. 누구에게도 결코 쉽지 않을 그 고단한 작업에 대해서. 둘러보면 세상을 아름답게 밝히는 문장들이 저마다 꼿꼿하다. 그렇다면 미루어 짐작건대, 악기를 연주하는 것과 마찬가지로 문장을 연주하는 일 또한 에누리도 덤도 없는 교환이겠다. 한결 나은 연주자가 되는 방법은 어쩌면 간단할지도 모른다. 나보다 더 아름다운 연주를 하는 이들을 시샘하기보다는, 오늘의 나보다 더 많은 시간을 문장에 내어줬을 내일의 나를 부러워하는 것. 내일의 나는 내일에서야 오기 때문에 오늘의 나는 끝내 충분하지 않음을 인정하고, 자꾸 쓰는 것.
시간의 공정함을 믿고, 거대한 항아리에 문장을 계속 붓자. 눈을 감고 붓자. 안은 들여다보지 말자.
넘치면 젖겠지.



십여 년 전, 나는 두어 권의 책을 펴낸 삼십대 초반의 젊은 소설가였다. 그즈음, 나 역시 내 재능이 모두 타버리고 난 뒤의 그을음을 보고 있었다. 하지만 서가를 다 뒤져도 그 그을음에 대해 말해주는 책은 없었다. 그러다가 우연히 노란색 표지의 『파리 리뷰 인터뷰』라는 책을 발견하게 됐다. 거기에는 내가 열광했던 소설가들의 인터뷰가 실려 있었다. 그리고 그들은 육성으로 자기 직업에 대해, 그리고 스스로 터득한 기술에 대해 말하고 있었다. 그들에게서 나는 허세라고는 조금도 찾아볼 수 없었다. 그들은 마치 매일 아침 작업장으로 나가는 시계 기술자들 같았다. 늘 실패한다는 사실을 운명처럼 받아들여야만 한다는 점만 다를 뿐. 그제야 나는 내가 되고자 하는 소설가가 어떤 사람인지 알게 됐다. 단 한 번의 불꽃, 뒤이은 그을음과 어둠, 그리고 평생에 걸친 글쓰기라는 헌신만이 나를 소설가로 만든다는 것을. 그게 바로 소설가의 운명이라는 것을.
_ 김연수, 『시절 일기』, 53-54쪽
연필은 내 밥벌이의 도구다. 글자는 나의 실핏줄이다. 연필을 쥐고 글을 쓸 때 나는 내 연필이 구석기 사내의 주먹도끼, 대장장이의 망치, 뱃사공의 노를 닮기를 바란다.
지우개 가루가 책상 위에 눈처럼 쌓이면 내 하루는 다 지나갔다. 밤에는 글을 쓰지 말자. 밤에는 밤을 맞자.
_ 김훈, 『연필로 쓰기』, 11쪽
글을 써도 고통스럽고 글을 안 써도 고통스럽다. 그러면 쓰는 게 낫다. 뭐라도 하다 보면 시간이 가니까. 슬프지만 일을 하고, 슬픈데도 밥을 먹고, 슬프니까 글을 쓴다. 그렇게 하루를 보냈으면 내일도 살 수 있다. 서툴더라도 자기 말로 고통을 써 본다면 일상을 중단시키는 고통이 다스릴 만한 고통이 될 수는 있다. 그러므로 우리 뭐든 써보자고 하며 저마다 무언가를 쓰기 시작한다.
_ 은유, 『다가오는 말들』, 6쪽
--- 읽는 ---



= 시절일기 / 김연수 : ~ 152
= 너무 시끄러운 고독 / 보후밀 흐라발 : ~ 49
= 주경철의 유럽인 이야기 1 / 주경철 : 92 ~ 22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