돼지가 호흡곤란에 빠진 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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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금 2019년 하반기의 첫 달리기가 있었다. 그리고 그것이 2019년의 세 번째 달리기였다......
울 뻔 했다. 1km도 제대로 못 달리고 거친 숨을 몰아쉬는 이 하자 몸덩어리를 달고 살다보면 정말 자기 자신을 사랑할 수가 없게 된다. 주 3회 회당 10km씩 도림천을 타박타박 정말 가벼웁게도 달리던 추억을 떠올리면 복받치는 눈물을 참기가 어렵다. 먼 옛날도 아니다. 바로 작년의 일인데..... 폐활량이 현란했던 과거의 나여. 아, 사람이 돼지가 되는 데 1년이면 차고 넘친다.
치킨을 사랑하지만 치킨이 돼지를 만드는 게 아니었다. ‘육개장 사발면 맛’ 감자칩을 주 480g 섭취하기도 했지만 역시 감자칩이 돼지를 만드는 게 아니었다. 돼지는 돼지가 만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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헤겔 입문서를 한 권 빌려 읽는 중인데, 요런 대목이 있다.

우선 책상 위에 감각적으로 확인할 수 있는 가방 속에 노트북 컴퓨터가 한 대 있다고 해 보자. 우리는 이것에 대해 다음과 같이 말할 수 있다. “이것은 노트북이다!” 그렇다. 이것은 노트북이다. 이때 이것이 노트북이라는 사실에는 누구나 동의할 수 있다. 사람들이 감각적으로 확인할 수 있는 사실만이 가장 분명한 것이라고 생각하는 근거이다.
하지만 그 컴퓨터는 바이러스에 감염되었다. 따라서 치료를 해야 하는데, 나는 컴퓨터에 대해 잘 알지 못한다. 하지만 내 친구 병창이는 컴퓨터 프로그램에 대하여 잘 안다. 그래서 나는 병창이에게 바이러스를 치료해 달라고 부탁하며 컴퓨터를 그에게 주었다. 오늘 내 책상 위에 있는 것은 더 이상 노트북이 아니라 빈 가방이다. 상황이 이렇다면 이제 ‘이것은 노트북이다.’라는 판단은 더 이상 올바르지 않다. 그 판단은 어제는 옳았지만 오늘은 더 이상 올바르지 않다.
_ 이광모, 『다시, 헤겔을 읽다』
syo는 컴퓨터 프로그램에 대해 잘 아는 친구, 저 병창이라는 인물에 눈이 갔다. 아무렇게나 지은 이름이라고 보기에는 너무 유니크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짚이는 바가 있었다. 내 친구 병창이는 어쩌면 이 선생님이 아닐까?

현대 철학 아는 척하기 / 이병창 지음 / 팬덤북스 / 2016
이광모 선생님의 프로필과 이병창 선생님의 프로필을 대조해보면, 두 분 사이에 접점이 있을 개연성이 높아 뵌다. 컴퓨터 프로그램에 대하여 잘 아시는구나, 이병창 선생님.
굳이 이 이야기를 하는 것은, 최근 이병창 선생님이 어마어마한 대역사의 첫삽을 뜨셨다는 사실을 인지했기 때문이다.


독일 이데올로기 1, 2권 / 카를 마르크스, 프리드리히 엥겔스 지음 / 이병창 옮김 / 먼빛으로 / 2019
사!랑!해!요! 이!병!창! 우!유!빛!깔! 이!병!창!
이 책 자체가 번역된 것도 놀라운 일이지만, 제목 위에 쬐끄만 글씨로 “마르크스 엥겔스 전집”이라고 써놓은 데가 놀랄 포인트.
완간이 가능할까? 마르크스-엥겔스 전집은 MEGA라는 판본과 MEW라는 판본이 있다는데, MEGA만 해도 독일어로 100권이 넘는다는 소문이다. “먼빛으로”라는 출판사는 이병창 선생님의 책만 출간한 작은 출판사로 보이는데, 전집이 완간될 때까지 살아남을지 회의적이다. 레닌 전집을 출간하고 있는 아고라 출판사도 어쩐지 불안하다. 힘을 내요 먼빛으로, 죽지 마요 아고라..... 저 두 곳을 위해 syo가 뭐라도 하고 싶지만 syo가 뭐라고......
레닌 전집 요, 요, 귀요미들 같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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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래 회계책을 스리슬쩍 읽기 시작한 것은 특별히 회개한 바가 있어서다.
친구 하나가 작은 회사에서 회계일을 맡아 밥벌이를 한다. 이런 대화가 있었다.
syo : 넌 열라 비용 같은 놈이지.
친구 : 뭔 말이야.
syo : 대변 같다고, 똥 같다고, 비용은 대변.
친구 : 븅신아 알고 깝쳐, 비용은 차변이고 수익이 대변이여.
syo : !!!!!!!
저것은 회계의 기본, 회계학에서는 구구단 취급도 못 받는, 아라비아 숫자 수준의 지식이라고 한다. 그리고 과거의 일이긴 하지만, syo도 회계원리 관련된 책을 몇 권 읽은 적이 있었다! 나도 저거 알았어! 알았다고! 근데 왜 저랬지? 왜? 아 쪽팔려, 대체 왜! 멍청아, 이 “수익”멍청이야!
뭐 이런 허접스런 회개스토리였다.






4
그런데 프랑스 여성 참정권을 적극적으로 반대한 세력은 보수적인 왕당파가 아니라 진보를 지향하는 공화주의자들이었습니다. 혁명기 이후 프랑스에는 왕이 통치하는 체제로 되돌아가기를 원하는 왕당파와 국민이 주권을 가진 공화국 체제를 유지하려는 공화주의자 사이의 싸움이 지속되었습니다. 왕정을 옹호하는 가톨릭교회 세력 또한 공화주의자들 입장에서는 공화국의 걸림돌로 생각되었습니다. 공화주의자들은 신앙심 깊은 여성들이 스스로 이성적으로 판단하는 대신 가톨릭 성직자들의 영향에 휩쓸려 편향된 선거를 하게 될 것이라고 믿었습니다. 여성들이 가톨릭 교회와 성직자를 지지함으로써 궁극적으로는 왕당파 같은 보수 세력의 정치적 입지를 강화시킬 것이라 판단했기 때문에 참정권을 부여하지 않으려 한 것입니다.
여성에게 정치적 권리를 부여하는 데 인색했던 또 다른 이유는 인구 감소에 대한 위기의식 때문입니다. 프랑스 혁명 이전까지만 해도 프랑스는 ‘유럽의 중국’이라 불릴 정도로 인구가 많았습니다. 그러나 19세기 중반 이후 출생률이 정체되기 시작합니다. 인구가 곧 국력의 근원이라 여기며 인구수와 출생률에 강박적 관심을 보이던 프랑스는 여성들이 정치적 권리를 얻게 되면 공적 영역에 관심을 쏟느라 집안일, 특히 출산과 육아에 소홀해질 것이라 우려했습니다. 특히 출산과 육아에 소홀해지 것이라 우려했습니다. 게다가 인구 손실과 사회적 변화의 계기가 되었던 두 차례의 세계 대전을 거치면서 출산과 육아에 충실한 여성을 이상적으로 여기는 분위기가 지배적이 됩니다.
결국 프랑스 여성들이 남성들과 동일한 자격으로 첫 선거를 치른 것은 1945년의 일입니다. 다른 유럽 국가에 비해 꽤 늦었지요. (33 – 34)
한편, 프랑스 혁명에도 불구하고 아니 어쩌면 혁명 때문에 1944년에 이르기까지 프랑스에서 여성이 온당한 시민으로 인정받지 못했음은 잘 알려진 사실입니다. 그 배경에는 여성은 남성과 다른 존재이기에 주권을 갖고 참정권을 누릴 수 없다는 논리가 있었습니다. 여성의 배제를 정당화한 공식적 논리는 여성이 독립적인 개인이 아니라는 것이었습니다. 여성의 참정권 문제가 제기될 때마다 이를 반대했던 남성들은 육체적 차이를 거론하고는 했습니다. 여성의 육체야말로 참정권을 가질 수 없음을 보여주는 부정할 수 없는 증거인 양 들이댄 것입니다. 1849년 정치 사상가 프루동Pierre Joseph Proudhon은 페미니스트 드루앙Jeanne Deroin이 의회 선거에 출마하겠다고 나서자 “여성이 의원이 된다는 것은 남성이 유모가 된다는 것과 같다.” 라는 식의 전형적인 논리를 구사하며 반대했습니다. 그러자 드루앙이 이렇게 응수했습니다. “의원의 기능을 수행하는 데 어떤 육체적 기관이 필요한지 보여주신다면 제가 포기하겠습니다.” (112 – 113)
_ 박단, 『이만큼 가까운 프랑스』
저쯤 되면 무례가 아니라 무식에 가깝다. 이 책은 뭐랄까, 프랑스에 대해 굉장히 실망하는 계기가 되었다고 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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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일부터는 다시 공부를 많이많이 할 생각이다.
결국 생각대로 되지도 않을 이놈의 생각은 왜 맨날 생각하는지 모르겠다. 이럴 때면 정말 나란 놈은 무슨 생각으로 이산화탄소나 생성하고 있는지, 깝깝하다.
--- 읽은 ---


+ 이만큼 가까운 프랑스 / 박단 : ~ 328
+ 회계 기초 탈출기 15일 플랜 : 136 ~ 363
--- 읽는 ---




= 혁명 / 잭 A. 골드스톤 : ~ 48
= 다시, 헤겔을 읽다 / 이광모 : ~ 95
= 팩트풀니스 / 한스 로슬링 외 : ~ 108
= 그림이 위로가 되는 시간 / 서정욱 : ~ 15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