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서울 이제 내겐 서울뿐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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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능이 없는 사람은 글도 쓰면 안 된다고 말하지 않았습니다. 결국은 재능 있는 이가 쓴 글이 살아남을 거라고 말했지요. 재능이 없는 사람이 쓴 글은 읽힐 가치가 없다고 말하지 않았습니다. 당신은 당신이 좋아하는 글을 쓰고 나는 내가 좋아하는 글을 읽습니다. 그것만이 이 엄혹한 읽고 쓰기의 아수라장에서, 읽고 쓰기에 관해 우리가 오차 없이 합의 할 수 있는 유일한 약속입니다. 당신에게 재능이 없거나 내게 재능을 알아보는 재능이 없는 것은 지구에 슬픔이 존재하는 이유입니다. 아무래도 이것은 이번 생에 끝날 일도, 다음 생으로 끌고 갈 일도 아닌 시시한 충돌입니다. 어차피 내가 어쨌든 당신은 쓸 것이고, 당신이 어쨌든 나는 읽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당신의 글이 결국은 살아남을 글이라면 그 사실이 이번 생에 밝혀졌으면 좋겠습니다. 제때 알아보지 못한 부끄러움은 내가 감당하겠습니다. 어차피 그건 읽는 이들이 짊어지고 읽어나갈 괴나리봇짐 같은 숙명입니다. 그러니 재능을 부러워하며 끝까지 써나가시기를. 그것 역시 쓰는 이들이 펜을 놓는 날에야 같이 내려놓을 수 있는 끈질긴 두통 같은 숙명이 아니겠습니까.
이런 말을 전해드리려 합니다. 제가 그 재능을 부러워하여, 애증하느라 20대를 오롯이 소진해야 했던 소설가의 말입니다.
금정연 : 재능이 없다는 걸 한탄하지 않을 수가 있나요? 그게 오히려 재능이었을까요?
김연수 : 워낙 한 번도 글을 써본 적이 없는 상태에서 시작했기 때문에 처음에는 쓸 때마다 실력이 늘었어요. 쓰고 또 쓸 따름이었는데, 계절이 바뀌면 그간 글을 쓴 노트가 쌓인단 말이죠. 거기에는 시도 있고, 단편소설의 도입부도 있고, 짧은 평론도 있고, 심지어는 희곡도 있었어요. 모든 게 파편적이고 미완성이었지만, 어쨌든 글이 쌓여요. 그래서 전에 쓴 것들과 비교하면 이건 일취월장이라고 할 만큼 쓰는 실력이 늘었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었죠. 한탄할 겨를이 없었어요. 그건 아마도 내가 처음부터 재능이 있는 사람이라는 생각 없이 글을 썼기 때문이라고 생각해요. 제게는 한탄이 허용되지 않았어요. 왜냐하면 원래부터 없었던 걸 없다고 한탄할 수는 없는 일이니까요. 대신에 글을 쓸 때마다 조금씩 뭔가가 생기기 시작하는데, 그건 정말 대단했죠.
_ 김연수, 금정연, 『청춘의 문장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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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험에 대해서는 말할 만한 것이 없었으므로 그 자리에서 대충 지어내 둘러댔다. 급조한 인생사는 쫄깃쫄깃한 맛이 없었으니 면접관의 시큰둥한 표정이 이해가 갔다. 그러자 나 역시 시큰둥해졌다. 실망스러운 나의 상상력아.....
내가 원하는 데 꽂아줄 것도 아니면서 합격하면 어떤 업무를 맡고 싶은지 물어왔는데, 예상하고 식상하고 범상한 그 질문에 미리 준비해놓은 답은 백악관이요, 였으나, 그짓을 저지를 호연지기는 차마 갖추지 못했으므로 요즘 도시재생에 관심을 두고 책을 읽고 있다고 온순하게 대답했다. 도시재생에 관한 질문의 창과 대답의 방패가 시시하게 몇 차례 부딪히다가 종국에는 도시재생과 젠트리피케이션의 길항관계에 관한 이야기에 도달했다. 나는 두 가지가 충돌하면 젠트리피케이션을 방어하는 쪽에 더 역점을 두어야 한다고 했고, 일단 무조건 밀어붙이는 식의 도시재생은 예쁘게 화장한 도시재개발일 뿐이라는 식의 첨언도 한 것 같다. 그렇다면 젠트리피케이션을 잡을 대안이 있냐는 질문이 들어왔는데, 그런 건 무거워서 들고 오지 못했다. 그것은 어려운 문제라 지금도 여기저기서 실패사례가 만들어지는 중인 줄 안다고만 대답해 확전을 피하려 했다. 그런 내 마음도 모른 채, 마땅한 대안도 없이 일단 비판만 하는 건 비생산적이지 않느냐며 매서운 창을 날리는 면접관. 아까의 그 시큰둥했던 표정은 어디가고, 이젠 열정이 다 느껴질 지경이었다. 부정적인 열정이. 때문에 이쪽에서는 열정적인 부정으로 맞받아, 방패를 들어야 할 타이밍에 창을 맞던지고 말았다. 모든 대안을 먼저 구비한 다음 비판하는 것은 천재의 일입니다. 저는 평범한 사람이고, 평범한 사람들은 비판 속에서 대안을 찾으려 노력합니다. 여기까지 내뱉자 내 언성이 조금 높아졌음을 나도 눈치 챌 수 있었고, 뒤이어 나올 뻔한, 나한테 방법이 있었으면 내가 syo하고 있겠냐 승효상 하고 있지, 라는 개소리만큼은 끝까지 참아낼 수 있었다.
면접은 생각보다 빨리 끝났다. 아무 데도 들르지 않고 곧바로 다시 대구로 내려왔다. 아무래도 나는 좀 망한 것 같다.
그렇다면 이제는 서울시뿐이다......
독서 시간을 한 시간 더 줄이고 공부에 투입한다(엄청난 각오라도 하는 것마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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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록 유명한 회사들은 최상의 제품을 만들기 위해 시장을 세분화하여 자사 제품을 홍보하지만 이런 전략이 늘 성공하는 것만은 아니라는 걸 업체들도 잘 알고 있다. 더구나 다수의 회사들은 구매자들이 이성이 아닌 감정에 따라 구매를 결정한다고 믿는다. 그 결과 많은 광고들이 소비자들에게 올바른 정보를 전달하기보다는 감정에 호소하려고 노력한다. 가장 흔한 방법으로는 다음의 것들이 있다. (...)
2. 감정에의 호소 : 특정 상품을 소비자의 감정과 동일시하는 것이다. 예를 들면,
패션=소속감·멋있음·섹스
화장품=사랑 혹은 섹스
음식=인정 혹은 섹스
자동차=욕망·사회적 지위·자유·혹은 섹스,
이런 식인 것이다.
_ 조지 셰프너, 『산수의 감각』
인간들은 정말 대단하다. 웃기기 위해선 뭐든지 한다. 하다하다 이제는 산수까지 한다. 그러나 웃자고 쓴 것이 분명한 저 대목에서 차마 웃지 못한 syo. 왜 나는 ‘섹스’라는 단어만 보면 물 다 끓은 전기포트마냥 틱, 자동적으로 깊은 상념에 젖어드는가.....
--- 읽은 ---
화재의 색 / 피에르 르메트르 : 300 ~ 618
산수의 감각 / 조지 셰프너 : 124 ~ 244
피로사회 / 한병철 : 30 ~ 128
--- 읽는 ---
시 읽는 법 / 김이경 : 9 ~ 62
이야기 한국 미술사 / 이태호 : 124 ~ 188
아침에는 죽음을 생각하는 것이 좋다 / 김영민 : 4 ~ 72
도시를 보다 / 앤 미콜라이트, 모리츠 퓌르크하우어 : 55 ~ 77
나는 내 파이를 구할 뿐 인류를 구하러 온 게 아니라고 / 김진아 : 5 ~ 7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