근대 syo3요소

 

 

1. 독서

 

시험은 이제 25일 남았다. 본격 총정리 씨-즌이군.

 

그런 와중이지만서도 매일 꼭 250~300쪽 씩은 읽으려 용쓰고 있다. 딴엔, 공부 밖에 하는 게 없는 놈이 꼴랑 공부한다는 핑계로 안 읽는다니, 직장이라도 다니는 날에는 뭐 아예 신나서 문맹이라도 될 작정인가 보지? 요런 마인드로부터 나온 귀결이긴 한데, 여러분, 이거 다 거짓말인거 아시죠? 너 그냥 공부하기 싫어서 그런 거잖아......

 

 


이 글들을 쓴 시기가 한가하고 여유로운 시절이었냐 하면 결코 그렇지 않습니다.. 오히려 병원 일과 환자를 보는 일과 요구받는 일 사이에서 옴짝달싹 못하는 숨 막히는 시간이었습니다사실 그런 시절은 다시 겪고 싶지 않습니다어깨에 지워진 본연의 업무를 달리 누구로 대체할 수 없었다는 점에서 견뎠고 세월이 흘러간 것입니다꾹꾹 참아 견디기만 하는 것은 매우 위험한데 저는 죽어가는 화분을 살리거나책에서 나와 같은 의사 혹은 감염병을 찾아내거나글로 신세 한탄을 하는 데서 탈출구를 찾았던 것 같습니다문은 닫혀 있었으나 그래도 어딘가 창 하나를 열어둔 셈이지요.

최영화감염된 독서

 

마음속에 약간의 성의만 있다면 아무리 난리 속이라도 반드시 진보할 수 있는 법이다너희들은 집에 책이 없느냐몸에 재주가 없느냐눈이나 귀에 총명이 없느냐어째서 스스로 포기하려 하느냐영원히 폐족으로 지낼 작정이냐너희 처지가 비록 벼슬길은 막혔어도 성인(聖人)이 되는 일이야 꺼릴 것이 없지 않느냐문장가가 되는 일이나 통식달리(通識達理)의 선비가 되는 일은 꺼릴 것이 없지 않느냐꺼릴 것이 없을 뿐만 아니라 과거공부하는 사람들이 빠지는 잘못을 벗어날 수도 있고가난하고 곤궁하여 고생하다보면 그 마음을 단련하고 지혜와 생각을 넓히게 되어 인정이나 사물의 진실과 거짓을 옳게 판단할 수 있는 장점까지 가지고 있다.

정약용박석무유배지에서 보낸 편지

 

 

 

2. 육신

 

어린 syo(갑자기??) 작은 아이였다. 둘째 줄 책상 그 뒤, 키 큰 오랑캐놈들이 차지한 광활한 영토는 한번 앉아 보지도 못하고 초등학교를 졸업해야 했던, 꾸준하고 성실하게 조그만 아이였다. 그리고 그 아이는 자라서 작은 어른이 되었다. 너무나 예상대로였다. 흔한 반전 하나 없었다. 남자는 군대 가도 키가 자란다는 명제가 참이라면, 군대 가도 키가 자라지 않는 자는 남자도 아니라는 말인데, 그 말 같지도 않은 말 때문에 스무 해 넘게 지켜온 성 정체성에 위기가 닥치는 것을 용납해야만 하는가? 용납해야지 딱히 뾰족한 수는 없었다. syo는 여전히 syo를 둘러싼 모든 친구 그룹에서 가장 키가 작은, 혹은 그 다음 멤버로 활동하고 있다. 사람 참 안 변한다.

 

작은 어른으로 사는 게 불가피한 일이라면 그나마 작고 가벼운 어른이기라도 하고 싶었는데, 어허허허. 어린 syo는 작고 가벼운 아이였다. 국민학교 3학년 신체검사 날까지 20kg이 채 되지 않았다. 작고 가볍고 날렵한 아이여서, 여자아이들을 날렵하게 괴롭히고는 홍길동처럼 요리조리 잘도 도망 다녔고 잡힐 일이 없었다. 날쌘돌이 syo길동이는 축구도 잘했고, 어린이 운동회의 꽃이라 할 수 있는 이어달리기에서는 의심의 여지없는 라스트 주자이기도 했다. 꽃 같은 시절이었다. 그런데 사람이 변했다.

 

국민학교 시절에는 그랬는데, 시절이 바뀌어 초등학생이 되자 사정은 크게 달라졌다. 하루가 멀다고 코피가 빵빵 터지는 국민학syo를 보다 못한 엄마가 어느 이름나고 음습한 한약방에서, 정말 고문을 동원하지 않고서는 인간이 자발적으로 마실 수 없는 맛의 한약 오조 오만 톤을 지어 왔는데, 우리 조상들의 피땀눈물로 이룩한(맛이 피땀눈물 맛) 그 전통 깊은 지혜의 산물을 모조리 들이켜는데 장장 18개월이 걸렸다. 그리고 다시 태어난 초등학syo는 코피를 잃는 대신, 놀라운 양의 체지방을 얻었다. 그건 엄마와 한약방 고문기술자님에겐 절반의 성공으로 해석되는 일일지 모르겠으나, syo에겐 그 후로 이어진 긴 인생 전체를 진한 스트레스빛으로 물들인 지독한 똥망이었다. 자라라는 키는 안 자라고!

 

저학년 syo길동이는 그렇게 고학년 syo꺽정이가 되었다. 꺽정이도 길동이처럼 역시 특별한 이유 없이 여자아이들에게 짓궂게 굴었으나, 뭔가 양상이 많이 변했다. 꺽정이는 길동이처럼 압도적인 스피드를 이용해 쫓아오는 여자아이들을 여유롭게 따돌릴 수가 없었다. 전략은 바뀌었다. 그렇다면 쫓아오는 아이가 지칠 때까지 나도 참고 달린다. 이제 그에게 필요한 것은 지구력이었다. 그런데 그건 정말 재미가 없는 일이었다. 1분만 달려도 추격자의 시야에서 벗어날 수 있었던 여유로운 시절에는 몰랐다. 쉬는 시간 10분이 얼마나 소중한지. 쫓고 쫓기고 숨 고르고 땀 닦는데 통째로 낭비하기에 얼마나 귀한 시간이었는지.

 

변한 것은 그뿐이 아니었다. 길동이나 꺽정이나 땋은 머리를 잡아당긴다거나, 고무줄을 끊는다거나, 쪽지나 신발주머니를 날치기한다거나 하는 짓은 비슷했지만, 길동이와 그런 시간을 보낸 여자아이들은 편지랄지, 초콜릿이랄지, 구하기 힘든 따조랄지, 인기 가요를 직접 녹음해 만든 믹스 테이프랄지 뭐 이런 것들을 길동이에게 건네주며 우리 주말에 같이 롤러스케이트 타러 가지 않을래? 와 같은 유형의 다양하고 앙증맞은 교섭을 시도하곤 했다. 그러나 꺽정이가 나타나자 그 아이들의 반응은 한결같았다. 선생님, 반장이 괴롭혀요! 반장은 반장이므로 훈방조치하고 공부 못하는 아이들은 운동장을 돌리는 비겁한 담임선생이 아니었다면 syo꺽정이도 한층 더 힘든 시간을 보냈겠으나, 운동장을 돌지 않는다고 해서 기운이 나는 것은 아니었다. 사라진 길동이가 너무 그리웠고, 반장은 괴롭힐 의지를 상실했다. 꺽정이는 자기 처지를 알고 나자 기하급수적으로 소심해졌고, 중학교에 올라가자 꺽정이는 마침내 걱정이가 되고 말았다.

 

왜 좋은 것들은 다 변하고, 안 좋은 것들은 하나도 변하지 않는가. 물론 중학교-고등학교-대학교-군대-방구석의 길고 긴 인생의 사슬 위에서 때에 따라 약간씩의 변동은 있었다. 하지만 큰 틀에서 보면syo는 늘 배나온 민족이었다. 배 나온 중학생 -> 배 나온 고등학생 -> 배 나온 대학생 -> 배 들어간 이등병(만세!) -> 배 들어간 일병(영원하라!) -> 배 나오기 시작한 상병(어어어) -> 배 엄청 나온 병장(안녕, 나야, 배. 오랜만이지?) -> 배 나온 백수(넌 나를 벗어날 수 없어) -> 배 나온 백수 아저씨(우린 영원히 함께 하는 거야). 이런 식으로 일관성 있는 인생이란 참 복잡한 심정을 유발한다......

 

요즘 체중은 큰 변화가 없는데 배는 자꾸 나온다는 말을 하려 했는데, 판이 이렇게 커질 줄이야. TMI 죄송합니다.


 

물론 그때는 살아온 인생 중에서 제일 늙었을 때였기는 했지만앞으로 이보다 더 늙을 수는 없다고 생각했던 것 같아요마음이 그래서인지 서른 살을 갓 넘겼을 때였는데회사에 새로 들어온 직원들은 제가 30대 후반이나 40대 초반이라고 생각했다고 말하더라고요그때는 김 과장이었는데그래서 그런 포스가 풍겼을지도 모르죠마음이 그보다 더 늙었었어요인생에서 좋은 시절은 다 지나갔다고 생각했거든요. 10대와 20살아 있다는 느낌이 너무나 강했던 청춘 시절이 끝나고 이제부터는 여분의 삶이다그런 생각이제부터는 인생이 크게 바뀌지는 않고 계속 이런 식으로 흘러갈 것이다뭐 그런 생각지금 그때의 제게 돌아가서 뭔가 얘기해준다면정신 차리라고 하고 싶네요네가 얼마나 어린지 아느냐고그러니 지금 그런 생각을 할 때가 아니라고 말해주고 싶어요하지만 못 돌아가는 거니까요그건 누구나 다 거치는 과정 같은 것이겠죠지금은 그때처럼 이제 좋은 시절은 다 갔다는 생각 같은 걸 안 해요그때 이후로는 계속 그랬어요그런 의미에서 가장 늙었던 시절이었죠.

김연수금정연청춘의 문장들+ 

 

기억은 실존의 문제입니다여러분이 여러분일 수 있는 것은 지금까지의 수많은 기억들이 쌓여 있기 때문입니다여러분의 거울뉴런은 끊임없이 여러분을 구축하는 기억을 활성화할 수 있는 외부자극을 찾습니다하지만 그런 자극을 줄 수 있는 기억의 공간들이 점점 사라진다면 여러분 역시 언젠가는 사라지게 됩니다.

승효상 외도시 인문학 강의 서울의 재발견


 

 

3. 사랑


수갑을 차고 사랑하는 것만 같다.


 

예전에 내가 당신에게 했던 말을 기억해보세요눈을 감고 뜨는 방법그 한 가지 행위만으로도 두려움과 아름다움슬픔과 사랑그 이외 원하는 어떤 감정이라도 드러낼 수 있음을 당신은 알고 있어야 한다고요사랑을 표현하는 데 필요한 것은 많지 않습니다하지만 그러기 위해서 당신은 일생 동안 단 한번이라도 사랑이 무엇인지사랑에 빠지면 어떤 태도를 취하게 되는지솔직하고 순수한 마음으로 느껴 본 상태라야만 합니다물론 분노나 이름 없는 슬픔 등 모든 이가 살면서 한 번쯤 겪게 되는 감정들의 경우도 다 마찬가지입니다.

로베르트 발저문의에 대한 답변


 

 

--- 읽은 ---

청춘의 문장들+ / 김연수 지음, 금정연 대담

유배지에서 보낸 편지 / 정약용 지음, 박석무 엮음

본격 한중일 세계사 3 / 굽시니스트 지음

세상을 바꾼 씨앗 / 장인용 지음

시로 읽는 경제 이야기 / 임병걸 지음

도시 인문학 강의 : 서울의 재발견 / 승효상 외 지음

 

 

--- 읽는 ---

심용환의 역사토크 / 심용환 지음

이야기 한국 미술사 / 이태호 지음

산수의 감각 / 조지 세프너 지음

감염된 독서 / 최영화 지음

산책자 / 로베르트 발저 지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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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삭매냐 2019-05-21 14:1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25일 남은 시험도 그리고 꾸준한 독서도
파이팅!입니다.

그나저나 발저의 <산책자>는 한 번 읽어
보겠다고 도전하기는 했는데 저랑은 여엉~
맞지 않아서 어딘가에 둔 모양입니다.

syo 2019-05-21 18:50   좋아요 0 | URL
와, 저도 처음에 사서 읽었을 때 정말 나랑 안 맞는다 싶어서 던져놨었는데요. 이제는 곧 죽어도 딱 하루에 한 꼭지씩만 읽고 덮는다는 마음으로 읽기 시작했더니, 어느새 두 꼭지 세 꼭지씩 읽는 반칙을 저지르고 싶어졌습니다....

카알벨루치 2019-05-21 16:2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배나온 백수라...난 그냥 배씨...

syo 2019-05-21 18:51   좋아요 0 | URL
중요한 것은 배나온 배씨인가 배안나온 배씨인가 하는 부분입니다......

카알벨루치 2019-06-03 14:16   좋아요 0 | URL
난 배가 없는 사람입니다 ㅎㅎ

syo 2019-06-16 22:03   좋아요 1 | URL
답글이 늦었습니다. 시험이 어제 끝나서요 ㅎㅎㅎㅎ
5월21일에 달린 댓글이 6월 16일에 마무리되는군요...... 죄송합니다 ㅠㅠ

카알벨루치 2019-06-16 22:07   좋아요 0 | URL
잘 마무리됐나요??? 수고많았어요^^ 대댓글 늦어도 되유

syo 2019-06-16 22:14   좋아요 0 | URL
네, 덕분에 잘 마무리되었습니다. 감사합니다 카알님 ㅎㅎㅎ

북다이제스터 2019-05-21 20:1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근대 3요소 중 사랑이 가장 맘에 닿습니다. 근데 다음주 시작하는 JTBC 드라마 ‘바람이 분다’ 예고편이 맘에 들어오더라구요. ㅎ
시험 방해해야지. ㅋㅋ

syo 2019-05-24 11:13   좋아요 1 | URL
헉 ㅋㅋㅋㅋㅋㅋㅋ 엄근진 이미지의 북다님께서 드라마 공격을 시전하실 줄은 몰랐네요.
그러다보니 더욱 공격력이 강력합니다....

2019-05-23 02:35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9-05-24 11:15   URL
비밀 댓글입니다.

뒷북소녀 2019-06-03 12:5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근대 소요 3요소라뇨. 소요님 정말 재미있는 분이시네요.ㅋㅋㅋ
하루에 250~300쪽을 꼭 읽으려고 하신다니.
시속 몇 페이지로 읽으시는건가요?ㅋ

syo 2019-06-16 22:06   좋아요 0 | URL
답댓글이 늦었습니다. 먹고 살겠다고 아등바등하다보니 한동안 못들어왔네요. 죄송합니다......

장르에 따라 시속이 너무 달라서 일반적으로 말하기는 어렵지만, 두 시간에서 세 시간 정도는 읽으려 했었습니다. 했었는데, 알라딘도 못 들어올 정도니, 결국 읽지도 못하고 말았지요 ㅠ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