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면하면 물론 편하기야 하겠지요
1
우리는 그게 하나뿐이라고 쉽게 생각하지만, 사실 세상에 가장 많은 것은 진실이다. 누구나 스스로 진실한 사람이라고 믿기 때문에. 그리고 진실들은 경합적이다. 진실이 다른 진실을 꺾고, 덮고, 삼킨다. 강한 진실이 약한 진실의 가슴에 허위의 명찰을 달고 더 강해진다. 더 거대해진다. 뼛속까지 가짜로 태어난 진실은 없다. 정말 작은 진실의 씨앗에 선명한 의도와 큰 힘을 더하면 외피가 거대해진다. 그 거대함 속으로 거미줄에 붙잡힌 벌레들처럼 이런저런 거짓들이 포획된다. 그런 식으로 모든 진실은 진짜 진실에서 출발하지만 때때로 가짜 진실로서 거대해진다. 거대해진 진실을 마주하면, 우리는 그 씨앗이 어떻게 생겼는지 속을 들여다보기가 어렵다. 이 거대한 진실의 과육이 어느 층위부터 썩어 악취가 나는지, 어디를 도려내야 될는지 판단하는 일은 힘이 든다. 그럴 때 우리는 그 진실을 통째로 거짓으로 취급하는 편한 방법을 취하기도 한다. 누군가의 절박한 진실이 누군가에겐 용납할 수 없는 거짓이 된다. 어려워서, 힘이 들어서, 편해지고 싶어서.
이미 세상에는 우리의 손을 떠난 진실이 무수히 많다. 그것들은 관리되지 않고 저절로 커지다가 서로 부딪히며 세상을 반으로 쪼개놓기도 한다. 우리는 이제 진실들을 컨트롤할 수 없다. 대체로 승인하거나 부인하고, 용맹하게 달려들어 진실을 해부하려는 노력은 정말 드물게 일어난다. 나는 지쳤고, 겁이 많고 무능하여 아무것도 하지 않는다. 진실들에 관해서는 아무것도 모르겠다. 오직 한 가지만 빼고.
거대한 진실은 거대한 자들이 만든 진실이고, 아픈 진실은 오로지 아픈 자들에게만 진실이다.
2
산양을 지키는 일이 왜 중요한지 의문이 들 수 있다. ‘멸종 위기에 처한 동물을 왜 보호해야 하는 거지? 산양 하나 멸종했다고 해서 생태계가 무너지는 것도 아닌데?’ 멸종위기종을 보호하는 것은 그리 간단한 문제가 아니다. 산양 같은 멸종위기종을 보호한다는 건 단순히 산양만이 아니라 산양이 살아갈 수 있는 환경을 지키고 복원하는 것까지 아우른다. 밀렵에 희생당하지 않게 감시하는 한편 안전하게 쉴 수 있는 공간을 마련해주고, 적절하게 활동할 수 있는 지역을 보장해주는 일이다. 그리고 이 과정에는 산양의 먹이가 되는 식물들을 보호하는 일도 자연스레 함께 이루어진다. 즉 먹이사슬의 상위에 있는 종을 보호하겠다는 약속은 한 지역의 생태계 전체를 보호하고 복원하겠다는 약속이다.
_ 김기범, 『오늘도, 녹색 이슈』 70쪽
관심이 없으면 사태의 일면만 보게 된다. 돌려 말하면, 사태의 일면만 보인다면 관심이 없는 것이다. 환경을 지켜야 한다는 추상적이고 도덕책적인 대의에 동의만 한다고 관심이 있는 것이 아니다.
스피노자는 다양한 변용들과의 ‘공통관념’을 형성하는 것이 완전한 인식으로 가는 디딤돌이라고 말했다. 거칠게 말하면 이렇다. 우리는 모두 닮아있지만, 그 사실은 서로를 톺아보지 않고는 쉽게 드러나지 않는다. 깊은 눈으로 들여다보면 너는 나와 닮았다. 닮아서 나는 네게 관심을 둔다. 관심이 너를 알게 만든다. 너를 아는 만큼 다시 나를 알게 된다. 너와 나를 더 많이 알고 나면 우리는 더욱 닮았고, 한편 선명하게 다르다. 그 다름도 이제는 기껍다. 벌써 사랑이 시작되었기 때문에.
3
따라서 우리가 기꺼이 인정할 수 있는 것은 17세기에 철학을 이성주의적으로 전환시킨 결정적 요인에는 한편으론 똑같은 정도로 권위적인 진리 요구를 지닌 서로 배타적인 다수의 그리스도교 종파가 존재하므로 바로 그 점이 단순히 권위에 기초하지 않는 심급에 대한 추구를 요구한다는 경험 그리고 다른 한편으로는 무조건적으로 끝내야 하는 종교적 시민 전쟁이 불러일으킨 물리적·도덕적 악이 속해 있었다는 점이다.
_ 비토리오 회슬레, 『독일철학사』76쪽
도대체 우리가 뭘 기꺼이 인정할 수 있는 건지 기꺼이 인정할 수가 없는 문장이다. syo는 이것을, 번역자가 읽는 이를 전혀 배려하지 않았거나, 아니면 특정 집단만을 읽는 이로 고려했다는 증거라고 본다. 이 책의 문장들은 시종일관 이렇다. 의미가 아니라 문장 자체를 이해하는 데 에너지 소모가 너무 극심하다.
4
우리는 처음부터 사물에 대한 적합한 관념을 갖지는 못한다. 왜냐하면 우리 신체가 많은 부분으로 이루어져 있으며, 신체적 변용에 따른 관념들을 무차별적으로 갖게 되기 때문이다. (128쪽 2~5줄)
우리는 처음부터 사물에 대한 적합한 관념을 갖지 못한다. 왜냐하면 우리 신체는 많은 부분으로 이루어져 있으며, 신체적 변용에 따른 관념들을 무차별적으로 갖게 되기 때문이다. (128쪽 마지막줄~129쪽 2줄)
우리는 태어나자마자 사물에 대한 적합한 관념을 형성하지는 못한다. 우리 신체가 많은 부분으로 이루어져 있으며, 신체적 변용에 따른 관념들을 무차별적으로 갖게 되기 때문이다. (130쪽)
_ 손기태, 『고요한 폭풍, 스피노자』
두 번째 읽는 책이고, 첫 번째 독서가 좋았던 기억이 있다. 스피노자에 관한 첫 번째 입문서로 쓰기에 나쁘지 않다는 생각은 여전하다. 하지만 꼼꼼히 읽었더니, 저렇다.
우선 책을 꼼꼼하게 읽지 않고 평가하는 syo의 버르장머리를 고쳐놔야겠다 싶은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원고를 꼼꼼하게 검토하지 않고 출판하는 제작진(?)들의 저 태평함은 어떻게 고쳐놔야 하나 싶은 생각도 들었다. 토씨(갖지는->갖지, 신체가->신체는)를 제외하면 완전히 동일한 문장이, 심지어 같은 페이지에 들어 있는데도 저걸 그냥 통과시켜?
-- 읽은 --



손기태, 『고요한 폭풍, 스피노자』
비토리오 회슬레, 『독일 철학사』
미카엘 로네, 『수학에 관한 어마어마한 이야기』
-- 읽는 --





남경태, 『종횡무진 서양사 1』
로버트 H. 프랭크, 『실력과 노력으로 성공했다는 당신에게』
고병권, 『다시 자본을 읽자 1』
임채호, 『물리학의 기본을 이야기하다』
콜린 베번, 『당신의 행복이 어떻게 세상을 구하냐고 물으신다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