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글을 지키기 위해서, 그리고 누군가의 글을 무너뜨리기 위해서

 

1

이별 노래가 많은 것은 사랑보다 이별이 많기 때문이다. 우리는 각자 몇 개씩의 이별을 마치고 지금 여기서 사랑을 하거나 하지 않는다. 어떤 사랑이 이별로 끝나지 않는다면 세상에는 등불처럼 하나의 사랑이 켜진다. 오직 그 하나의 불빛을 만들기 위해 지난 시간 위에 깨진 전구처럼 따갑게 깔린 이별의 시체들을 응시하면 알게 된다. 사람을 키우는 것은 대체로 사랑이 아니라 이별이다. 때론 사랑을 먹여 키우는 것 역시 사랑이 아니라 이별이기도 하다.

 

알라딘에서 사랑이나 이별에 관한 이야기를 만나는 일은 드물다. 하면 거의 내가 다 한다. 나는 못내 그 사실이 기이하다. 기실 사랑이란, 이별이란, 누구에게나 가장 큰 관심사라고까지는 단정할 수 없더라도, 은메달, 많이 봐 줘도 최소 동메달감은 되는 선수가 아닌가. 살면서 가장 많이 생각해 보는 주제가 아닌가? 나만 그런가?

 

알라딘은 책 이야기를 하는 공간일 순 있지만 책 이야기만 하는 공간은 아니고, 독후감은 책 이야기를 하는 장르일 순 있지만 책 이야기만 하는 장르는 아닌데, 왜 이렇게 사랑 이야기는 숨어 있는 걸까? 예술, 철학, 문화에서 정의까지, 없는 이야기가 없는 이 공간에서, 기가 죽어 구석진 곳에 웅크리고 손가락으로 땅바닥이나 만지고 있는 우리 불쌍한 사랑이......

 

사랑사랑사랑으로 점철된 김봉곤의 여름, 스피드를 읽기 시작했더니 그만 제 고질병, 중2병이 폭발하고 말았네요.....


 


 

2

하루 종일 빗소리를 들을 수 있는 반갑고 고마운 하루였다. 기온은 내내 20도 언저리에서 맴돌았다. 땀이 뭐더라? 어제까지만 해도 알았는데. 책 읽기 더없이 좋은 주말에, 김봉곤 말고도 신용목과 안희연의 당신은 우는 것 같다, 그레이슨 페리의 남자는 불편해, 야니카 브로크슈미트와 데니스 슐츠의 그녀는 괴테가 그는 아인슈타인이 좋다고 말했다, 이기호의 누구에게나 친절한 교회 오빠 강민호, 우응순의 친절한 강의 대학, 문성환의 닌하오 공자, 짜이찌엔 논어, 이운진의 시인을 만나다를 읽었다. 어떤 애는 다 읽었고, 어떤 애는 그러지 못했다. 한 권을 붙들고 600페이지를 읽을 힘을 쪼개어 80페이지씩 여덟 권을 읽는 것이 요즘 syo가 정한 독서방침이다.


 

이기호를 많이 읽은 것은 아니지만, <최미진은 어디로><나정만 씨의 살짝 아래로 굽은 붐> 같은 작품은 정말 다른 누구도 아닌 이기호라는 생각이 들게 한다. 이기호의 인물들은 따라 읽어 볼 맛이 나는 대사를 친다.


그녀는 괴테가 그는 아인슈타인이 좋다고 말했다는 간만에 만난 통통 튀는 책이다. 인문학 책은 나열된 지식의 함량만큼이나 지식을 나열하는 방식도 중요하다. 오히려 후자야말로 책을 돋보이게 한다. 이 장르의 책은 수없이 많기 때문이겠다.

 


 

3


헛소리나 푸념 따위를 쓰지 마라자기가 모르는 것을 쓰지 마라누구나 다 아는 걸 상투적으로 늘어놓지 마라문장의 규범을 함부로 파괴하지 마라다만 문법적으로 완벽하기보다는 문법과 사유가 자연스럽게 녹아 어우러진 문장생명의 리듬을 품은 문장흐르고 스쳐가는 절대의 찰나를 날렵하게 잡아낸 문장감각적인 기쁨과 충만을 담은 문장영혼을 울리면서 존재를 쇄신하는 문장을 써라나쁜 문장은 꾸밈이 많고형용사나 부사를 남발하고질척이는 감상이 넘친다쓸데없이 길게 늘어지며 중언부언하고빤한 지식을 늘어놓아 신선한 자극이 없다이런 글을 하품하면서 읽는 것은 인생 낭비에 지나지 않는다차라리 그 시간에 낮잠을 자는 게 더 낫다.

장석주슬픔을 맛본 사람만이 자두 맛을 안다


선생님의 글을 읽고 제가 화가 좀 났습니다. 아마도 선생님이 지적하시는 그런 못난 글들을, 제가 꾸준하고 꿋꿋하게 쓰고 있기 때문이겠지요. 정말 죄송한데, 선생님께서는 이런 글을 책에 실어 저처럼 재능 없고 감상만 풍만한 인간들의 기를 팍 꺾어 놓을 만큼, 그래도 당당할 만큼 완벽한 글을 쓰는 분은 아니세요. 쓸데없이 길게 늘어지며 중언부언하고 빤한 지식을 늘어놓아 신선한 자극이 없다는 그 말씀을 들어보신 적보다 하신 적이 더 많다면, 선생님은 더 많이 들어보셔야 해요. 생명의 리듬을 품은 문장, 감각적인 기쁨과 충만을 남은 문장, 영혼을 울리면서 존재를 쇄신하는 문장을 쓰라고 하셨네요? , 국영수 중심으로, 교과서 위주로, 예습 복습 철저히, 모르는 것이 있으면 알 때까지 반복해서 학습할게요. 그렇게 해서 수능 만점 받을게요. 선생님. ’누구나 다 아는 걸 상투적으로 늘어놓지 마라고 하셔 놓고, 어쩜 이렇게 바로 다음 문장부터 그렇게 하시나요. 저 말들이 그저 속이 빈 예쁜 허방일 뿐이라는 걸, 정말 선생님은 모르시나요?

 

 

 

4

휴식

 

힘들면 쉬어가자

더 멀리 달릴 수 있도록

_ 이름을 밝히고 싶지 않은 어떤 책(시집 아님, 물론 시집이라고 해도 빡치겠으나)49페이지, 무려 전문

 

아무리 그래도, 이건 너무했다. 저자는 이런 책을 시리즈물로 뽑고 있다. 제발, 양심 좀 있자. 저게 돈 받고 팔 책에 실을 글이냐. 이걸 싣고도, 어디가서 작가라고 하기에 쪽팔리지가 않으십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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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08-27 00:28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8-08-27 08:16   URL
비밀 댓글입니다.

다락방 2018-08-27 08:4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장석주 선생님께 쓴 편지는 정말이지 명문이군요. 그런데 말입니다,

사랑 이야기라면..저도 지지 않고 쓰는데 말입니다. 사랑과 이별이라면 또 제가 언제나 늘 할 말이 많은 사람 아니겠습니까? 쇼님보다 제가 더 많이 한다고 생각합니다!! (이기고싶다..)

syo 2018-08-27 08:50   좋아요 0 | URL
그러고보니 제가 졌습니다😔
과연 사랑하면 다락방님이시지요. ㅇㅈㅇㅈ

독서괭 2018-08-27 16:2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휴식...
저도 이런 말 어디서 안 하는데 저건 진짜 저도 쓰겠네요..;;

syo 2018-08-27 17:20   좋아요 0 | URL
저는 저걸 보면서 ‘용기‘를 배웠습니다. 진짜.

stella.K 2018-08-27 18:4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기가 죽어 구석진 곳에 웅크리고 손가락으로 땅바닥이나 만지고 있는 우리 불쌍한 사랑이.....˝
이 문장 좋네요.
그러게요. 사랑 얘기를 왜 안 할까요?
솔직히 그런 얘기하면 찌질하다고 생각하는 건 아닌지...?
다 한때 지나간 얘긴데 허탈해 하면서.
그리고 요즘엔 사랑들을 잘 안하지 않나요?
삼포, 오포 중 하나고 게다가 여혐이나 남혐이니 해서.
좀 안타깝긴해요.ㅠ

syo 2018-08-27 20:34   좋아요 1 | URL
그런가요..... 너무 배부른 이야기였나요.

에이, 사랑 이야기가 꿀잼인데. 이별 이야기는 핵꿀잼이고....

북다이제스터 2018-08-27 20:1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사랑 이야기가 없는 건 실제 사랑이 몹시 두렵기 때문은 혹시 아닐까요?^^ 라고 추측해 봅니다 ^^

syo 2018-08-27 20:34   좋아요 0 | URL
다들 쉬쉬하시는 것 같기도 하고 그래서요. 사랑을 안 하고 계신 것 같진 않은데.....

프리즘메이커 2018-08-30 05:0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실패한 사랑 이야기를 올리려다 매번 포기하곤 합니다... 용기내서 해볼까요? ㅎㅎ

syo 2018-08-30 09:50   좋아요 0 | URL
좋아요 101개 박아드릴게요. 한 개로 뜨겠지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