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에 읽었던 그래픽 노블 세 권을 기억하며 한데 묶는다.



어린 시절 우리는 그런 환상을 갖는다. 내 제일 친한 친구는, 어쩌면 나하고 영혼도 나눠가졌을 거라고. 내가 좋아하는 음식을 그 친구도 반드시 좋아할 거고, 내가 즐기는 취미는 당연히 그 친구도 함께 즐길 것이라고. 우리는 마치 하나였던 것처럼 그 모든 것을 공유하고 나눌 것이라고. 당연하게도 그 유아기적 환상은 오래가지 않아 깨진다. 다만 누구에게나 그렇듯 아프게 깨어진다. 그리고 우정이라 믿었던 관계 속에서 존재하지 않아야 할 이기성을 깨닫는 그 순간 우리는 조금씩 자란다. 그 과정을 직접 겪는 경우가 더 많겠지만, 간접적으로 체험해서 항체를 생성하는 것도 괜찮을 것 같다. 



아, 겉으로는 한없이 순진무구해 보이는 어린 여자아이들이 얼마나 영악한지, 보이지 않는 손톱을 잘 접어 감추고 있는지 그녀들과 어린 시절을 함께 보내보지 않고서는 절대 모른다. 롤러 걸도 아마도 그랬지 싶지만, 섀넌 헤일의 자전적인 이야기를 그리고 있는 이 책들은 한 번에 다 읽기가 쉽지 않다. 마음이 힘들어서. 그리고 지금도 어디에선가 현재진행형으로 섀넌처럼 힘든 유년기를 보내고 있을 아이들이 있다면(있겠지만), 꼭 이 책을 쥐어주고 싶다. 



이것도 사실 읽기가 쉽진 않다. <진짜 친구>에서보다 나이를 좀 더 먹어 사춘기에 진입한 섀넌이 겪었던 일들을 한 마디로 압축하자면 또래 압력이다. 본인이 전혀 원하지 않는 일들을, 또는 하고 싶었어도 할 수 없는 일들을, 친구들과의 관계를 원만하게 유지하기 위해서 어떻게든 '~척' 하면서 그 무리 안에서 버텨야 했던 시기의 고단함은 마찬가지의 시기를 보내고 있을 아이들에게 큰 위로가 될 것이다. 특히 책 말미에 실린 부록이라고 해야 할지 본인의 이야기임을 확증하는 증거라고 해야 할지, 아무튼 그 자필 원고와 사진들을 보고 있으면 그 험난한 시기를 잘 견뎌내고 훌륭한 작가로 살아남은 작가에게 기립박수를 보내고 싶은 마음이 든다. 

주인공과 같은 학년인 둘째아이에게 어느 책을 가장 추천하겠냐고 물어보니 <진짜 친구>란다. 심적으로 덜 무리간다고. 하기사 이미 저 시기를 오래 전에 지나온 나로서도 쭉 읽어나가기가 너무 힘들었는데, 딱 그 나이인 아이 입장에서는 괴롭기도 했겠다. 

다만 우리나라 정서와 조금 안 맞는 부분도 있긴 한데, 잘린 컷 없이 들어갔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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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처럼 먹는 일이 힘들면서 소중한(...) 시절을 보내본 적이 없었다. 지금까지의 내 인생에서는, 감사하게도. 뉴스에 보도되는 것만큼 자극적으로 어려운 건 아니지만, 심정적으로는 전시상황만큼은 아니더라도 평상시의 마음으로 살기는 쉽지 않은 곳에서 버티는 느낌이다. 배급표 받으러 줄 서는 기분으로 서서 기다리다보면 마켓 입장이 허용되고, 그나마도 물건이 뭐 그렇게 넉넉한 것도 아니고. 사재기가 너무 심한 품목들 밑에는 품목당 1개씩만 구입 가능, 이런 딱지가 붙어 있고... 식사 때면, 아이들한테 툭하면 난 이거 좋아하는데 못 먹는 건데 같은 사치스러운 소리 하지 말라고 야단치고. 아이고, 머리야.



맛을 생각하면서 음식을 먹기보다 생존을 위해 먹는다는 의미가 더 부각되는 요즘에 더 생각나는 글이다. 히라마쓰 요코의 글은 눈으로 읽다 보면, 먹은 것도 아닌데 글따라 맛이 당겨올라와 입 안에 머무르는 신묘한 체험을 하게 한다. 이건, 정말 먹는 일을 사랑하고 맛있는 걸 좋아하는 사람이 아니면 쓸 수 없는 글이다. 다이어터라면 히라마쓰 요코의 책은 금서다. 



히라마쓰 요코보다는 좀 더 가볍고, 댄디한 느낌의 글을 쓰는 작가. 사실에 근거한 배경지식을 얻는 용도로 읽으면 안 된다. 재기발랄한 상상을 구경하고 읽고 깔깔 웃기에 딱 좋다. 책이라도 덜 무겁고 즐겁게 읽고 싶은 요즘엔 딱이랄까.



최근의 아만다와 미스터 라떼, 그리고 그들의 자녀들의 사진을 우연히 봤다. 미스터 라떼를 기억하지 못하고 있었는데, 그 사진 밑에 누군가가 미스터 라떼, 당신이 이렇게 나이가 들다니! 우리가 나이를 먹었군요... 라고 댓글을 단 걸 보고 순식간에 이 책이 기억났다. 아, 정말 유쾌하게 순식간에 읽을 수 있는 책이다. 실존 인물들의 이야기라서 더 그럴수도. 



몰리의 책도 아만다의 책과 비슷하지만 조금 다른 면이 있는데, 아만다에 비해 몰리는 자신의 인생 전반부를 그녀의 인생과 얽힌 음식들과 엮어 회고한다. 너무 가볍지는 않고, 그렇다고 또 너무 진지한 것은 아니고. 적당히 무게중심을 잘 잡고 있는 유쾌한 책. 몰리의 책은 더 있는데 번역돼 나온 건 이것밖에 없는 듯. 



몰리의 책처럼 지향하는 바는 비슷한데(인생 전체를 본인과 가족의 추억 속의 음식들과 함께 기억하고 돌이켜보는), 조금 더 진중하다. 짠하고, 마음 아프고, 박장대소하게 되고, 그녀가 쓰면서 울었을 것 같은 대목에서 같이 훌쩍거리게 되고. 캐슬린의 책 속에서 등장하는 가족들이 얼마나 생생하게 그려졌는지 마치 실제 옆집 사는 이웃 같기도 하다. 이 책이 우리나라에도 번역됐으면 좋겠다. 일일이 사전 찾아보기 귀찮아서, 대충 아 그렇구나- 하고 넘어간 대목들의 디테일 (특히 대공황 시절(이었던가?) 관련해서 -_- ...)이 궁금하기도 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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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등 딸아이와 요즘 스릴러와 미스터리 뭐가 재미있는 게 있을까 열심히 알아보면서 목록을 만드는 중이다(이건 나 혼자). 한참 미스터리에 맛들인 아이는 책을 읽고 난 뒤에 같은 책을 읽은 사람과 얘기하는 맛을 알아버렸는데, 무턱대고 이거 재미있다더라 하기엔 요즘 스릴러나 미스터리나 수위 높은 게 너무 많아서 거르는 작업이 필요하다(=내가 사전독서를 해야 한다 ㅠ.ㅠ). 근데 이건 YA인 듯하네.



아이 이야기를 하게 되는데 얘랑 내가 제일 좋아하던 프로그램이 알쓸신잡이었다. 공통의 경험(화제)를 놓고 자신의 전문적인 분야와 관심사에서 해당 주제에 대해 치열하게 이야기하는 세팅을 둘 다 몹시 좋아한다. 이 책은 어떨까?



책 소개는 안 읽어봤다. 제목만 보고 내가 평소에 갖고 있던 희망사항과 싱크로율이 너무 높아서... ㅎㅎㅎ 

다만 나는 편안한 자연사를 위해서 그저 내가 할 수 있는 일을 하고 있을 뿐이다. 규칙적인 운동(요즘은 쉽지 않다), 몸에 나쁜 음식 덜 먹기(안 먹기는 불가능한 목표다), 화가 뻗치는 일이 있어도(주로 화를 일으키는 사람은 정해져 있다) 웃고 넘기기(맨날 같이 있으니까 이것도 좀 불가능해지고 있다). 그러니 작가에게 이것은 꿈인지 목표인지도 궁금해진다. 



이런 제목을 제일 싫어한다. 도대체 무슨 생각으로 세상에서 제일(가장)을 붙이는 걸까. 심지어 원제는 그냥 The Cartoon Guide to Biology 인데. 하아... 제목은 진짜 마음에 안 드는데 출판사는 좋아하는 출판사다. 왜 그러셨나요... 혹시 편집자는 안 된다고 극구 말렸는데 윗분이 밀어붙이신 걸까요... 갑자기 심술 발동해서 '세상에서 가장'으로 알라딘 검색도 해봤음. 결과는 뭐... 

여하간, 책은 좋은 책일거라 확신한다. 제목에 실컷 태클 걸어놓고 이런 말 하는 게 우습긴 하지만.



이런 책의 문제점은(책이 가진 문제점이 아니라), 이런 책을 꼭 읽어야 될 분들이 안 읽고, 안 읽어도 크게 사회나 환경에 해를 안 끼치는 분들이 열심히 읽는다는 거다.



좋아하는 분들이 쓴 책인데 안 읽을 수가 없겠다. 그런데, 읽다 보면 되게 화가 나고 슬퍼지고, 그럴 것 같다.



이렇게 '왜?'를 떠올리게 하는 책은 당연히 펼쳐보고 싶다. 



이번엔 진짜 엉뚱한 이유다. 표지에 완전히 꽂혔다. 더불어 갑자기 아이에게 '오늘의 엄마'를 표상하는 물건이 뭔지도 묻고 싶어진다.



흥미진진한 주제다. 게다가 엄기호 선생님과 다른 한 분(제가 아직 잘 몰라서, 죄송합니다)의 대담집이다. 무슨 이야기가 오갔을까, 당연히 알고 싶다. 시의적절한 이야깃거리고 논의거리다.



진짜, 난 왜 이렇게 변방의, 작은, 많은 사람이 알지 못하지만 누군가가 말해주고 싶어하는 것들이 이렇게 좋을까.



이 책이 번역되어 나왔구나. 이건 정말 누구에게나 선물용으로 완벽한 책이다. 가볍지 않은데 가볍고, 심플한데 진중하고, 뭣보다 생각으로 채워야 할 여백이 많다.



색상도감같은 책이랄까. 그냥 아무 생각없이 부르는 대표적인 색의 이름 안에 얼마나 많은 다른 빛과 그림자가 혼색되어 있는지를 저절로 알게 해 준다. 이런 책은 나이가 어리면 어린대로, 있으면 있는대로 각기 다른 종류의 깨우침을 준다.



교황님이 추천하셨다고 하셔서. 남편은 천주교 신자지만 나는 아니다. 그렇지만 지금의 교황님은 존경스러운 분이라고 생각한다. 독서생활에 한해서 믿고 따르는 사람이 추천했다면 덮어놓고 보고 싶어지는 책이 있는 것과 비슷한 경우다.



현실이 마음에 안 들 때, 가끔 책으로 도피할 수는 있어도 결국 우리는 발 딛고 사는 공간으로 돌아와 삶을 지속해야 한다. 그러니 머무는 곳, 대부분의 경우 도시인 그 공간을 좀 더 살 만한 곳으로 가꾸는 일에 관심을 갖는 일은 중요하다.



그 유명한 <사서함 110호의 우편물>도 읽어본 적이 없다. 그런데 도대체 어떤 글을 썼기에 그의 소설을 그렇게나 사랑하고 아끼는 사람이 많은지 궁금하긴 되게 궁금하다. 이왕지사 읽어볼 마음을 낸 거 최신작부터 역주행해볼까 하는 생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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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랑 피 블루픽션 (비룡소 청소년 문학선) 49
메리 E. 피어슨 지음, 황소연 옮김 / 비룡소 / 2010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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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가 좋아하는 어떤 독서가이자, 아이들에게 책을 읽어주는 일에 사명감을 갖고 있는 어떤 엄마가 본인의 책에서 이렇게 썼습니다. 좋은 책은, 그 책이 어떤 책이건 간에 나이에 상관없이 독자에게 끊임없이 질문합니다. 그것도 쉽게 그러하다, 아니다로 대답할 수 없는 질문을요. 

YA- young adult, 우리나라에서는 그냥 '청소년 소설'이라는 범주로 묶고 있는 듯한데, 이 카테고리에 속하는 소설은 막상 제가 그 연령대였던 시절에는 그렇게 주목받지 못했던 것 같습니다. 아니, 아예 그런 이름이 없었던 것도 같고요. 즉 청소년 소설이라는 걸 성인이 된 지 한참 지나서 제대로 읽어보게 됐다는 의미입니다. 그러니까 본의 아니게 약간 '......' 하는 마음이 없었던 것도 아닐 거예요. 그런데 앞서 이야기한 분의 말마따나, 좋은 이야기는 그것이 누가 읽었으면 좋겠다라고 상정하고 쓴 작가의 의도가 있다 하더라도 누구에게든 호소하는 바가 있더군요.


이 책에는 서스펜스가 조금, 아주 약한... 소금간 정도의 서스펜스가 들어 있습니다. 딱 아이들이 감당하기 적절한 수준으로요. 어디까지나 교과서적인 '청소년' 얘기지, 현실의 청소년 감각으로는 서스펜스라고 부르기도 유치할지도 모르겠지만요. 

이야기는 어떤 치명적인 사고를 당한 뒤 일 년 반의 혼수상태에서 깨어난 주인공 소녀가 주변 세계를 탐색하고 재인식해 나가는 과정을 서술하면서 시작됩니다. 기억이 통째로 날아간 주인공 제나는, 도대체 왜 어떤 것들은 이토록 생소한지, 그리고 왜 갑자기 어느 순간에는 기억이 물밀듯 차 올라오는지 의아해하면서도 천천히 다시 세상에 적응해 나가는 법을 배웁니다. 

그러면서 의문이 쏟아집니다. 왜, 왜 저것은 저렇지? 이건 이래야 하는 게 아닌가? 그리고, 가끔씩 들려오는 듯한, 머릿속에서 울리는 것 같은 환청 같기도 하고 절규 같기도 한 이것은 뭐지? 제나는 혼란스럽습니다. 나는 아직도 세상을 다 기억해내지 못했는데. 간헐적으로, 그러나 폭발적으로 쏟아져 나오는 기억은 제나를 더 어지럽게 만듭니다. 제나는 지그소 퍼즐처럼 흩어져버린 기억의 파편들과 자신을 바라보는 '시선'과 '반응'들로 자꾸 자신을 괴롭히는 뭔가를 유추해 나갑니다. 


청소년 소설이니까 그 과정이 복잡한 것도 아니고 대단한 반전이 있는 것은 아니지만 여전히 충격적입니다. 사랑을 옳고 그른 것으로 평가할 수 있을까요? 그렇다면, 그 평가의 잣대는 뭘까요. 사랑이 왜곡되기 시작했다면 그건 어느 지점부터인지 누가 말할 수 있을까요. 자식은 부모의 사랑에 응답할 의무가 있을까요. 부모는 자식에게 어디까지 할 수 있는 걸까요. 


결정적 스포일러가... ▼

 

나를 이루는 것은 무엇일까요. 마음이 기거하는 곳은 어디이고, 마음이 사라진다면 생명은 의미가 없는 걸까요? 신체와 정신이 정체성의 지분을 똑같이 나누어 갖는 걸까요? 어느 쪽에 무게가 더 실리지는 않을까요. 둘 중 하나를 선택해야 한다면, 꼭 선택해야만 한다면, 현재의 '나'를 더 많이 점유하고 있는 것은 정신일까요, 신체일까요.


사랑과 집착의 경계는 어디에 자리하고 있을까요? 사랑이라는 이름으로 허용되는 행위의 한계는 어디까지일까요.


백업을 없애려는 제나와 제나를 지원하는 릴리, 백업을 보존하려는 제나의 부모. 어느 쪽이 인간적이라고 봐야 할까요.

원본이 아니지만 고유해지고자 하는 제나의 욕망. 그건 인간적일까요? 제나는 인간일까요? 


'나'는 '나'의 영역을 어디까지 손대고자 하는 타인(부모 포함)의 욕망을 인정하고 수용할 수 있을까요?


여기까지가 제가 떠올린 의문입니다. 아마 퍼낼 수 있는 질문은 더 많을 거예요. 


이 책은 정체성과 고유성, 개별성에 대해 끝없는 의문을 불러일으킵니다. 어떤 것도 쉽게 대답할 수 없어요. 좋은 질문을 던지는 책을 좋은 책이라고 한다면, 거기에 완벽하게 부합하는 책입니다. 

 

펼친 부분 접기 ▲


많은, 정말 많은 말할 거리와 생각할 거리가 들어 있어요. 중학생 이상의 아이에게라면 꼭 추천하고 싶고요. 자아정체성에 대해 가장 많은 고민을 할 나이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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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moot: A Rebellious Shadow (Hardcover) - 『어느 날, 그림자가 탈출했다』원서
미셸 쿠에바스 / Dial Books for Young Readers / 2017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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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존의 세상 질서와 조화하면서 ‘나’를 일으켜세우는 일에 대하여 말하고 싶어집니다. 이루고 싶었지만 그러지 못해 간직만 하던 내면의 꿈, 소망을 다시 열어보고 싶게도 하고요.


두근두근해 
어른도생각해볼문제 
가르쳐주고싶은마음 

철학하는그림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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