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우리 네 식구가 한자리에 모여서 시간을 같이 보낼 수만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하지만 우리는 제각기 자기가 가야 할 곳으로 가서 해야 할 일을 해야 한다.

얼굴에 밝은 미소를 띄고 자기 책임을 게을리 하지 않으면서 최선을 다한다는 것도 일종의 사랑이란다.

주위에 있는 여러 사람들을 한없이 기쁘게 해주는 일이니까.

 

사랑하는 아빠가

 

부모님의 서재에 있었던 이 책을, 결혼해서 집을 떠나면서 몰래 내 짐속에 넣어 가지고 왔었다. 1987년이라니, 이게 도대체 몇 년 전이야... 삼십 년이 더 된 책이구나.

물론 아버지가 이 책을 절대 안 읽으셨을 거라는 걸 내 손가락 열 개를 다 걸고 장담할 수 있다. ㅎㅎㅎ 우리 아버지는 그런 분이니까. 한때는 가족보다 바깥에서 친구들 만나 왁자하게 술자리를 즐기는 걸 인생의 주요한 즐거움으로 삼으시는 걸 이해할 수 없어했지만 지금 나이가 되고 보니 뭐 그런 사람도 있는 거고 아닌 사람도 있는 거고, 다만 아버지는 가장으로서의 책임을 더할나위없이 책임감있게 완수하셨기 때문에 더 이상 할 말이 없어요... 라는 기분이다.

 

우리집 서재에서는 굉장히 연배가 있으신 어르신 책임에도, 단지 좀 색이 바랬다 뿐이지 흡사 새책과 같은 굿 컨디션을 유지하고 있는 이 책을 보고 있자니 참... 마음이 묘오... 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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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로 다른 고통으로 연대한다. 인간에게 남은 선함이 있다면 이것이다. 완전히 다른 사례들에 무관심한 채로 그들을 뭉뚱그리거나, 알면서도 외면하는 것이 아니라, 관심을 가지고 지켜보며 내가 할 수 있는 일을 하는 것. 나의 행복이 타인의 고통 위에 세워지지 않았는지 성찰하는 것. 그리고 더 나아가, 나에게 주어진 고통이 없다고 할지라도 타인이 고통받지 않을 환경을 만들기 위해 노력하는 것. 인간의 선함을 필요로 하지 않는 시스템을 세우는 것. 공감이 결여된 사람마저 따라야 할 규범을 만들기 위해 노력하는 것. 그럴 때 차리라 인간이란 이런 걸 할 수 있는 존재라고 이야기하고 싶고, 그런 것을, 조금 믿어보고 싶다. -55쪽

 

세상을 조금이라도 바꿀 수 있는 힘은 바깥쪽보다는 가장 안쪽의 연약한 곳에서부터 시작된다고 믿었다. 믿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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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인 선택이기 때문에 기러기 아빠 현상 자체를 비난할 이유는 없어요. 그러나 한국에서 대학교육을 책임지고 있는 교수들이 이 현상의 선두에 서 있는 건 보통 일이 아니에요. 왜냐?

(...)

우리 교육 씨스템의 정점에서 일하면서 자기 자녀는 외국 교육 씨스템에 맡기는 거죠. 말이 안 돼요.

첫째, 남의 자식에게 한국 대학교육이 괜찮다고 얘기하려면 자기 자식도 거기서 교육을 받게 해야죠,

둘째, 자식을 외국에 맡겨놓은 상태에서 과연 자신이 몸담고 있는 대학의 교육, 대입제도, 대학원생의 미래에 혼신의 힘을 쏟을 수 있을까요?

셋째, 교수들은 대개 자신이 학위를 받거나 연구했던 동네에 자녀를 보내요. (...) 지도교수랑 공동연구를 많이 하는 것도 이 문제와 무관하지 않아요. 지도교수는 필요할 때 언제든 초청장을 써주니까요. 당연히 우리 연구나 학문이 해외에 종속되는 거예요.

넷째, 학문과 직접 관련은 없을 수 있지만 그 자녀들이 나중에 미국 시민으로서 완전히 합법적인 병역기피를 하게 돼요. 그게 위화감을 조성하고요.

 

"우리 아들은 미국 명문대학을 다녀요. 그런데 당신 애는 한국의 우리 학교에 보내주세요."

이율배반이고 말도 안 되는 얘기예요. -153쪽

 

읽다보면 덩달아 분통이 터졌다가 웃겼다가 격한 공감을 하게 됐다가, 나라는 인간에게 이렇게 다이나믹한 감정선이 존재했던가 새삼 생각하지 않을 수 없게 하는 책이다. 갖은 기분을 다 느끼게 하지만, 전반적으로 씁쓸해진다. 오늘 책모임에서 할까말까 백번쯤 망설이다가 "사교육과 입시에 정열을 불태우시는 엄마들의 반만 그 열정을 사회안전망을 구축하는 데 투자해도 우리나라는 훨씬 좋아지지 않을까, 막연한 이야기를 하는 건 안다. 그렇지만 여기 있는 분들만이라도 세상을 함께, 넓게 보면 좋겠다"는 말을 했는데 얼마나 진정성있게 들렸을지는 미지수... @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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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게 매일 저녁을 해야 하는 줄 알았으면 절대 결혼 같은 건 안 했다고 구시렁거리다가 겨우겨우 저녁을 차리던 날, 식탁에서 가족의 대화를 듣다가 웃었고, 블로그에 남겼고, 나중에 읽으면서 또 웃었다.

(...)

나는 이중인격자인 걸까. 남에게 더 즐겁게 사는 척 보이고 싶었던 걸까.

아니, 나는 찾아내고 있었다. 내 인생을 가능한 밝게 색칠할 수 있는 색깔들을. 내 마음을 가볍게 만들어 순간 붕 뜨게 해줄 재료들을. 그 장면에 흐를 신나는 BGM을.

그리고 그렇게 유쾌한 순간들을수집하고 기록하면서 나도 내 글의 캐릭터를 조금씩 닮아가고 있었다. 망친 요리를 웃음으로 승화하는 주부, 아이와 랩 배틀을 벌이는 엄마, 스탠드업 코미디언이 꿈인 번역가. -182쪽

 

행복을 찾아 자신이 개척한 오솔길을 보여주는 사람들이 좋다. 천천히 느긋하게 산보하듯 가면서 그 길에 놓여있는 것들을 말이나 글로 그려가며 남들과 공유해주는 사람들에게 고맙다. 지금 당장은 내가 뭘 어쩌지 못해도 그곳에 가는 많은 지도들을 손에 쥐고 있는 느낌은 좀 다르니까. 언제고 나도 나만의 지도를 그려보고 싶다. 저는 이렇게 해보니까 찾아졌어요, 하고. 그건 제법 보물지도 같기도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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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명한 음식점에 길게 줄 서 있는 모습, 흥행하는 영화는 봐야 한다고 믿는 사람들, 유행하는 것은 뒤늦게라도 사서 가져야 안심하는 이들, 남 노는 것 구경하는 걸로도 부족해서 그대로 따라 하는 족속들. 한 가지에서만 정보를 얻는 무지. 이게 바보 아니고 뭔가.

 

책도 그렇다. 서점에서 베스트셀러만 찾는 사람들. '많은 사람이 샀다니까 뭔가 이유가 있겠지, 그럼 나도' 하지 말고 제발 직접 읽고 판단해주길 바란다(그게 내 책이라도 마찬가지다). 창의성은 고사하고 스스로 판단도 못 한다면 국가와 사회가 통제하기 가장 좋은 대상으로 전락해버린다. 미디어에 의해 사육당하고 조종당하는 무기력한 존재들 말이다. -28쪽

 

굳이 남 앞에서 바들바들 떨면서 자기 의견을 발표하지 않아도 좋다. 생각하는 힘을 기르자. 단, 대나무같이 키우지 말고 수세미같이 키우자. 그래서 언제든 나보다 더 타당한 의견을, 참신한 생각을 받아들일 수 있게. 나는 언제든지 틀릴 수 있고, 저 사람도 나보다 어른이라고 해서 늘 옳은 건 아니다.

써놓고 보면 당연하지만 누구도 당연한 듯 실천하기는 쉽지 않지만... :)

 

본인이 고치려고 마음먹은 성인도 쉽지 않은 일이니, 아직 머리가 말랑말랑한 아이들만이라도 이렇게 키우면 좋겠지요. 그런데 다들 똑같은 방식으로 공부를 하고, 우리반 누구가 다니는 학원은 나도 다녀야 하고, 그래서야 이건 사육환경과 다를 바가 없어 보여요. 건설적인 비판이 아니어서 무안하지만, 그래도 현행교육에 반기를 들고 있는 소심한 반동분자세력으로 한 마디 보탬. 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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