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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드러운 노란 빛의 조명이 좋다. 따뜻한 우유의 부드러움 끝에 살짝 씁쓸한 맛이 묻어 나오는 카페라떼도 좋고, 커피 머신이 돌아가는 소리가 간간히 들리는 것도 좋다. 기계음 사이로는 재즈 보컬의 굴곡진 목소리가 앞 서거니 뒷 서거니하며 흘러 나온다. 좁고 긴 카페 공간 안에 앉아 있는 사람은 나까지 포함하여 세 명. 모두 다른 방향을 바라보고 있다. 우리들은 말하지 않지만, 카운터의 주인 아저씨와 가끔 테이크 아웃을 사러 오는 손님들이 나누는 대화가 침묵의 공간을 잠시 떠돌다 사라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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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뜻하게 목욕을 하고 편한 옷으로 갈아 입은 다음, 화장도 최소한으로 하고 카페로 나오자 이런 아늑한 분위기가 기다리고 있었다! 전부다 좋다. 보송보송한 머리며, 좋아하는 향수 냄새며, 선선한 바깥 날씨와 꽃 내음, 따뜻한 커피, 1000원 짜리 쿠키 세개. 시험 기간이라서 내 왼쪽에는 프린트가 한 무더기로 쌓여 있지만 여느 때와 달리 그다지 위협적이지 않다. 형광펜으로 색칠을 할 일조차 즐겁게 느껴진다! 요새 내내 학교 도서관에만 박혀 있었더니 간만의 여유로움이, 오로지 혼자만의 시간이 참 소중하게 다가 온다. 동네 카페의 매력이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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헉슬리의 '멋진 신세계'도 내 가방 안에 고요히 차례를 기다리고 있다. 까다로운 책이다. 이 아늑한 분위기에 다소 어울리지 않는 손님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든다. (읽는 순간 내 주위 문명을 모두 잿빛으로 만들어 버릴 것만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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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 모든 속삭임과 평화로움을 한 순간에 무너 뜨려 버리는 큰 목소리가 음료수 세 잔을 주문하고 이어서 네 개의 발소리가 들려 온다. 모두의 공간에서 나만의 시간을 갖기란 이렇게 어렵다. 짧았던 아늑함이여 안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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