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심을 갖는 것과 실제로 참여하는 것은 굉장히 다른 일이다. 스페인에서 교환학생을 하다가 한국에 돌아오고, 이제 나의 관심분야를 직업으로 만드는 과정을 하나하나 밟아나가면서 느낀 것은 맞는 인연을 만났다는 기쁨이었다. 책에도 관심이 있었고, 영화에도 관심이 있었고, 마케팅에도 관심이 있었고, 사회공헌에도 관심이 있었는데 상상하지 못했던 부분에서 새로운 길이 열리고 내가 성장할 수 있는 지평이 열린 것 같아 기분이 좋다. 


우연한 기회에 아쇼카 북토크에도 참여를 하게 되었다. 아쇼카가 뭔지도 모르면서 북토크라는 이유만으로 신청을 했다. 책도 읽지 않았으면서 오랜만에 듣는 책 관련 강의라 기대감을 안고 갔더니, 우연이 사실은 인연이었나보다. 나와 비슷한 사람들, 내가 닮고 싶은 사람들이 가득했다. 


요즘엔 이런 식의 일들이 자주 일어난다. 창업과는 영영 거리가 멀 줄 알았건만 어느새 보니 창업에 뛰어들었고, 친환경과는 관련이 없는 삶을 살아왔는데 친환경 사업을 하게 되었다. 그런데 길을 달랐으나 정상으로 향하는 목표는 같기에 함께 걷기로 했고 그 과정에서 내 생각과는 다른 풍경들을 밟으며 신선한 즐거움도 누리고 있다. 많은 것을 보고, 많은 것을 생각하고, 얼마나 더 성장해야 할 것인지도 알게 되고. 


결국은 모든 것이 변화에 대한 문제로 귀결된다. 삐딱한 사람들, 삐딱한 생각들, 하지만 그렇기에 이룰 수 있는 긍정적인 변화들이 있다. 우연히 참여한 아쇼카 북토크에서 또다시 확신을 얻었고 계속 나아갈 원동력을 얻었다. 알면 알수록 세상에는 진정성을 지닌 사람들이 많았고, 남들이 가지 않는 길을 더 큰 외로움 속에서 묵묵히 걸어가고 있었다. 변화의 시작에 내가 서 있는 것이라면 얼마나 좋을까. 


또한 내 본연의 관심사인 '소설'과 아쇼카 북토크를 연결시킬 수 있어서 좋았다. 어떻게 보면 취미활동에 지나지 않을 독서라는 행위가 순간 순간마다 삶의 방향을 가리키는 화살표가 되어 반짝하고 빛날 때마다 큰 뿌듯함을 느낀다. "공감의 뿌리"라는 책을 소개하신 김은희씨의 강연 중 다른 사람과 공감을 함으로써 그 사람과 가까워지고 그 사람의 아픔을 이해하게 된다는 내용이 있었다. 듣자마자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이 생각났다. 책에서는 공감대신 '동정'에 초점이 맞추어져 있으나 결국 같은 맥락이라고 생각한다. 


라틴어에서 파생된 언어에서 동정이라는 단어는 타인의 고통을 차마 차가운 심장으로 바라볼 수 없다는 것을 뜻한다. 달리 말해 고통스러워하는 이와 공감한다는 뜻이다. (중략)

동정심을 갖는다는 것(co-sentiment)은 타인의 불행을 함께 겪을 뿐 아니라 환희, 고통, 행복, 고민과 같은 다른 모든 감정도 함께 느낄 수 있다는 것을 뜻한다. 이러한 동정은 고도의 감정적 상상력, 감정적 텔레파시 기술을 지칭한다. (중략)

그런데 그는 그녀를 내쫓지 않았을 뿐 아니라 그녀의 손을 잡고 손끝에 키스까지 했다. 왜냐하면 그 순간 마치 테레자 손가락의 신경이 자신의 뇌에 직접 연결된 듯 그녀가 손톱에서 느끼는 고통을 자신도 느꼈기 떄문이다.


토마스는 테레자에게 동정하였기에 그녀의 아픔을 내버려 둘 수 없었고 결국에는 자신의 직업까지 버리며 그녀를 따라 간다. 그로 인해 토마스가 그녀를 비난하였는가? 아니, 오히려 그녀를 더욱 사랑하였다. 나와 타인의 경계를 넘어서는 것만큼 숭고한 일은 없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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