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드시 비가 와야한다. 눈이어서는 안 된다. 그리고, 그 비는 그 전 날 낮부터든 저녁부터든, 중요한 것은 밤사이에 걸쳐서 내려야 한다는 것이다. 비가 대지를 흠뻑 적시고 스스로 아침이 온 것을 확인하고서 멈추는 그런 '비'이여야 한다.
해도 떠서는 안 된다. 눈에 보이지 않은 작은 물 알갱이를 데워 잘못하면 사람의 불쾌지수를 올려놓을 수 있다. 반 팔 셔츠를 입으면 한기가 조금 느껴지고, 긴소매 옷을 입으면 딱 좋은 그런 상태를 유지해야한다. 그래서, 지금만은 '해'가 떠서는 안 된다.
기압도 알맞아야한다. 알갱이가 조금만 커지면 중력에 의해 비가 되어 내릴 것이며 알갱이가 조금만 적어지면 저기압의 상승기류를 타고 날아가 버린다. 지금처럼 알갱이가 떠 다녀서, 지상에 있는 내게도 촉촉함을 전해줄 수 있는 '기압'이 유지되어야 한다.
오늘은 이런 아침이다. 내가 가장 바라고 좋아하는 촉촉한 아침이다. 이러할 때, 나는 나를 주체할 수 없다. 아침을 맞은 잎사귀가 기공을 열듯, 내 오감이 풀어져 너덜너덜 해 지는 기분이다. 이런 날에 태어났을지도 모를 일이다.
그리고 이런 날, 산을 보는 것은 나에게 가장 큰 축복이다. 외부에 의해 입혀진 모든 잡스러움을 깨끗이 씻어버리고 말쑥하게 산은 또렷이 다가와 앉았다. 산이 웃고 있는 것이다. 산은 소리내어 웃는 법이 없다. 다만 입가 가득 미소만 띄울 뿐이다. 산에 기댄 모든 만물이 물을 머금고 있다. 뿌리, 가지, 잎사귀 마디마디마다 맺힌 영롱한 물방울은 산에 대한 감사의 눈물이다. 산을 감고 도는, 짙은 산 빛으로 더욱 희게 빛나는, 물안개는 나를 부르는 손짓이다.
산은 강력한 자석이고 나는 보잘것없는 미세한 쇳가루다. 주체할 수 없는 나를 산은 강력히 끌고 있다. 그 자성이 전해져 나도 산이 되어 가고 있다.
....말없이 홀로 솟은 미소짓는 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