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좋아하는 친구중에 한 명은, 어찌나 책을 소중히 다루는지 밑줄 긋는 것은 물론이고 읽던 부분을 표시하기위해 책을 접는 행위 그리고 좁혀 드는 책장을 고정시키기 위해 가운데를 깊게 누르는 행위도 절대로 하지 않고, 다 읽고 나면 새 책과 똑같은 상태로 책꽂이에 꽂아 둔다고 했다. 친한 친구의 말씀이라 귀담아 들었고, 뜨거운 물건을 내려놓기 위한 깔판 용도나 컵라면에 물을 붓고 난 다음 덮개 용도나 아니면 차갑고 지저분한 곳에 앉기 위해 방석 용도처럼 책을 함부로 다루지 않고 소중히 다루어야 한다는 점에는 동의하지만, 나의 책읽는 습관과는 사뭇 다르다고 생각했었다. 나는 나의 뇌를 내리 치는 말이나 가슴을 꿰뚫은 내용이나 전신을 마비시키는 글귀를 보면 연필이나 샤프를 찾아 줄을 그어야만 직성이 풀려 다시 읽어 나갈 수 있기 때문이다. 또한, 앞에 거론되었던 내용이 다시 나오면 앞으로 돌아가서 확인도 하고 그 내용의 페이지의 숫자도 기입하는 등 조금은 책이 지저분해 진다. 하지만 밑줄이 많이 간 책은 오히려 나에게 유익한 책이고 더욱더 가치가 있어 별이 다섯개 되는 그런 책인 것이다.
그런데, 최근에 읽은 '독서의 기술'의 저자인 모티머 j. 애들러는 책을 통한 저자와의 대화에서 우리가 얻을 수 있는 오직 하나의 이익은 저자에게서 무엇인가를 배우는 것이며, 그 배움의 방법에 있어 책에 써넣기는 독자가 저자에게 바치는 최고의 경의(敬意)라고 까지 표현하고 있다. 나의 책읽기가 크게 어긋나지 않음을 확인하는 안도의 순간이었으며 앞으로도 쭉쭉 밑줄을 그어 나갈 명분이 서는 순간이었다. 나의 책읽기 습관에 활력을 불어넣어 준 애들러가 고맙고, 앞으로도 밑줄을 많이 그을 수 있는 책을 찾아 나아갈 생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