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E.프롬Fromm(1900~1980)은 그의 저서 『자기를 찾는 인간(Man for Himself)』에 아래와 같이 쓰고 있다

  “부모가 갖는 불합리한 권위와 억압에 대한 자식의 자연스런 반응이 반항인데 그러한 반항은 프로이드가 말하는 외디프스 콤플렉스의 본질이다. 프로이드는 다음과 같이 생각했다. 즉 나이 어린 사내아이는 어머니에 대한 성적 욕구 때문에 아버지의 경쟁자가 되면 노이로제의 발생은 이러한 경쟁에서 유래하는 불만에 만족스런 방법으로 대처하지 못하는 데 있다. 어린이와 부모의 권위 사이의 갈등과 또한 어린이가 이런 갈등을 만족스럽게 해결할 수 없다는 사실을 지적하면서 프로이드는 노이로제의 근원에 대해 언급했다. 그러나 내 견해로는 이러한 갈등은 원래 성적인 경쟁에서 야기되는 것이 아니라 부모의 불합리한 권위라는 억압에 대한 반응에서 유래하는 것으로 부모의 권위라는 억압은 본래 가부장적 사회에서의 고유한 현상이다. 사회의 권위와 부모의 권위가 자기의 의지와 자발성 및 독립성을 파괴시키려 하는 한, 어린이는 파괴되기 위하여 태어나는 것은 아니므로, 부모에 의해서 표현되어지는 권위에 맞서 싸우게 되는 것이다. 그는 단지 억압으로부터의 해방을 위해서 뿐만 아니라 자기 자신, 즉 하나의 자동 인형이 아니라 어엿한 하나의 인간으로 존재하기 위해서 자유를 획득하려고 싸우는 것이다. …… 불합리한 권위에 대한 싸움에서 어린이가 패배함으로써 남겨진 상흔은 모든 노이로제의 밑바닥에서 발견되어질 수 있는 것이다. 이와 같은 상흔들은 하나의 증후군을 형성하는데 그 중에서 가장 중요한 특징은 그 사람의 독창성과 자발성을 약화시키거나 마비시키는 것이다. 자아는 약화되어 거짓된 자아가 그것을 대신하게 되며 그러한 속에서 나는 존재한다라는 의식이 무디어져 타인들의 기대에 대한 총체로서 자아를 경험하는 것으로 바뀌어진다. 즉 자율성은 타율성으로 대체되며 모든 인간 상호간에 생기는 체험은 혼미성을 띠게 되거나 혹은 H.S. 설리번Sullivan의 말을 빌리자면 병렬적 성질을 띠게 되는 것이다. 그런데 자기 자신과의 투쟁에서 패배의 가장 중대한 증상은 죄책감이다. 만일 사람이 권위주의의 그물망을 뚫고 나가는데 성공하지 못한다면 도피하고자 했던 헛된 시도는 죄의 증거가 되는 것이며 따라서 또다시 복종함으로써만 비로소 떳떳한 마음을 회복시킬 수가 있다.”

 

                                                                     - 김용규,『영화관 옆 철학카페』, 이론과 실천, 2002, pp264~26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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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니까 아마도 9월 28일이었나보다. 금요일 아침, 갑자기 직원모임을 가지게 되었는데 난데없이 아래와 같은 유인물과 함께 생활지도부 부장샘이 '그동안 민주적으로 아이들 지도를 해왔는데 아이들이 교칙을 어기고도 자신의 죄를 반성할 줄 모르며 너무도 뻔뻔스럽게 교문 밖으로 나갈 것을 요구한다. 따라서 앞으로는 교문지도를 강화하려고 하니 샘들께서 좀 도와주시라. 교무실 화이트 보트에 요일별 교문지도 당번 신청을 받겠다'는 요지의 발언을 하셨다.

이게 갑자기 뭔 소리공??? 하는 맘으로 듣고 있는 속이 부글부글 울렁거렸다. 개학 후 아이들의 교문 밖 군것질로 인한 식중독 사고가 있긴했다. (급식으로 인한 사고는 아니었다. 같이 학교 급식을 먹는 샘들은 모두 멀쩡했고, 어떤 반은 한 명의 환자도 발견되지 않았으니까.) 점심시간, 청소시간, 석식시간에 틈틈히 학교를 나가 학교 바로 옆 서동도서관도 다녀오고, 도서관 뜰에서 산책도 하고, 서동시장까지 가서 떡뽁이, 만두 등등을 사먹는 모습을 나도 많이 보았다. 학교 측에서는 가정에서 살뜰한 보살핌을 받지 못하는 아이들이 많고 평소 건강상태도 그리 좋지 못한 데다가 환절기에 다소 불안한(?) 음식들을 즐겨먹어서 '설사'병이 난 것이라고 진단했다. 아무튼...

그 일로 일주일 정도를 생활지도부에서 점심시간, 청소시간, 석식시간에 교문단속을 슬슬 시작하시더니만 결국 이런 대책을 마련하셨나 보다. 담임샘들과 부장샘들 사이에서 의논이 오갔는지는 모르겠지만 담임도 부장도 아닌 우리들은 처음 듣는 결정사항이었다. 소심한 나는 '누가 문제제기 좀 안하나...'하며 두리번 두리번 기다리다가 그만 회의가 끝나버렸고 화장실을 다녀오면서 힐끗 칠판 쪽을 보니 샘들이 와글와글 당번할 날짜에 이름을 적어넣고 있었다. 애써 무관심... 하며 외면하려는 순간, 교장샘과 눈이 마주쳤다. 꾸벅.. 인사하고 자리에 앉았는데...

어느덧 내 자리 옆에 서 계시는 교장샘. 예의 그 '소녀같은 웃음'을 삺포시 지으시며 "샘, 좀 도와주시죠"라는 멘트를 나에게 날리셨다. 그렇지 않아도 부글거리던 속에 표정관리, 감정관리도 잘 되지 않는 나는 대뜸 "저는 교문지도 반대합니다."라고 응대해버렸다. 여유있고 세련된 대응, 이게 안된다 나는!! 당돌한(?)내 말에 '교화의 의무'를 강하게 느끼셨는지 교장샘께서는 옆자리 샘이 권하는 의자에 앉으시더니 '아이들이 빠마 머리에 위에는 교복도 아닌 티셔츠 걸치고 실내화를 질질 끌고 학교밖을 배회한다, 인근 주민으로부터 우려성 전화도 자주오고 아이들을 방치한다는 이야기를 자주 듣는다. 아이들을 이대로 내버려두어서는 안된다. 담임들만 지도하기에는 역부족이다. &*(*+_|#$@%^&' 등등의 이야기를 다시 한번 강조하셨다.

나도 나름대로의 이야기를 좀 길게 하고 싶었다. '이 학교로 옮겨와 좋았던 모습 중의 하나가 아이들이 자유롭게 교문 밖을 나갈 수 있다는 사실이었다. 서동도서관으로 산책가는 모습, 책 빌리는 모습 등등이 너무 좋아보였다.'라고 말한 순간 내 말은 팍 잘렸다. 이어지는 교장 선생님의 말씀은... '콩샘의 말은 합리적이지 못하다' 내가 뭔 말이나 제대로 했어야 말이지. 순간 픽 웃음이 나왔다. 교장선생님의 동어반복은 이미 귀에 들어오지도 않았고. "아이들의 품행이나 식습관이 문제라면 그 부분을 지도해야지 이렇게 교문부터 닫아거는 것은 바람직한 교육은 아닌 것 같습니다. 교육의 효과는 일,이주만에 바로 나타나는 것이 아니라 오랜 시간 공을 들이며 기다려야하다는 사실은 교장샘께서 더 잘 아시지 않습니까. 그리고 이런 일의 결정을 어떤 경로로 의논한 것인지 모르겠네요. 저로서는 처음 듣는 이야기입니다. 아무튼 저는 이런 식의 교문지도는 반대합니다. 그외 복장이나 식습관 등의 지도는 하겠습니다. 그럼 수업이 있어서 이만..."

회의 시간에 배포된 유인물의 내용을 기록해 남겨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10년, 20년 후에는 이런 '직원회의 내용'을 보며 웃을 수 있을까? 이런 촌스런 일이 그땐 있었지... 하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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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교 교문지도를 강화하려 합니다.

학생들의 등교이후 교문 밖을 나가는 사례가 너무 많아 더 이상 간과할 수 없는 상황이라 판단되어 여러 선생님들의 관심과 협조를 당부드립니다.

 

1. 학생들이 교문 밖 출입의 이유

가. 금정시립도서관에 도서대여 및 반납을 위함.
나. 준비물 때문에 집에 다녀옴

다. 군것질 및 라면, 떡뽁이 등의 민생고 해결을 위함.

라. 오락실에서 게임 및 채팅을 위함

마. 수업시간에 임의로 이탈(주로 이동수업 및 출석체크를 잘 안하시는 선생님의 시간에)하여 학교 주위를 배회함.

 

 

2. 학생들의 교문 밖 출입을 제한하여야 하는 이유

가. 학생들의 탈선을 사전에 예방.

나. 검정되지 않은 음식물들을 함부로 취식하여 식중독 및 보상을 제대로 받을 수 없다.

다. 단정하지 못한 교복 및 체육복, 반티, 사복 등을 착용한 상태에서 무단 외출하다보니 주민들로부터 교사들이 하생들을 무한정 방치한다는 원성을 낳았다.

라. 돌아오는 시간이 초과될까 뛰어 들어오고(수업을 준비하지 못한 상태에서 땀이나 가쁜 숨으로 수업에 방해의 요소가 됨) 심지어는 수업 중에 들어오는 학생들도 만다.

마. 지난 몇 일 동안 중식시간 교문지도를 해 본 결과 학생들의 의식 자체에 문제가 많다고 여긴다. 왜냐하면 “라면 먹으러 갑니다.”, “학교 급식이 맛이 없어서 밥만 먹고 올께요.” 등 무단 외출하는 것에 대한 죄의식이나 미안한 마음, 교칙적용에 대한 두려움 등이 전혀 없다.

 

3. 이에 따른 교장 선생님의 의지가 완고한바 담임선생님을 통한 외출증이나 조퇴증 없이는 교문 밖으로 나갈 수 없도록 철저히 지도 하려 합니다.

 

4. 본교 생활지도부의 인원만으로는 감당하기에 어려움이 많아 여러 선생님들의 도움을 받고자하며, 향후 약 3개월간 매일 실시를 계획, 추진하려 합니다. 교무실 칠판에 부착한 직원명렬에 전 선생님들께서 한 번씩은 봉사 해주실 날짜를 기록해주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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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가, 나는 문제가 되지 않는다.

     1-다의 사안에 대해서는 아이들의 입장을 들어볼 필요가 있다. 아이들은 '급식'이 성에 차지 않는다고 이야기한다. 맛이 없거나 부족한 것이다. 급식의 질을 개선하는 문제가 그리 녹녹치 않다는 건 알지만 이 부분에 먼저 접근해야하는 건 사실인 것 같다. 물론 식생활, 식습관에 대한 교육이 병해되어야 하고.

     1-라에 해당하는 학생이 과연 몇 명이나 될까 싶다. 그 몇 명을 찾아내서 중점적으로 지도해야지 전체 아이들의 권리를 침해하는 일은 정말 신중에 또 신중을 기해야하지 않을까. 그리고 내 개인적 생각으로는 쉬는 시간이야 너무 짧으니 안되겠지만 점심, 석식 시간에야 밥 다 먹고 조금 남는 시간에 가볍게 오락 한 판 땡기는 것이 또 무에 그리 잘못인가. '죄' 운운해가면서 나무라기엔 낯간지럽다. 샘들도 점심, 청소시간에 컴터로 '맞고' 치고 카드놀이도 한다. 너무 길지 않게 하는 거라면 샘들의 '오락'도 스트레스 해소 차원에서 나쁘지 않다고 생각한다. 

     1-마는 유인물에도 나와 있듯이 '출석체크' 제대로 안하는 교사가 시정할 부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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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레이야 2007-09-29 13:2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이들이 방과후엔 시립도서관에 갈 시간이 없다는 이야기네요...

BRINY 2007-09-29 13:4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정규 수업시간에만이겠죠?

글샘 2007-09-29 14:5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해콩 샘네 학교는 좀 외진 데여서 바바리맨을 만날까봐 못 나가게 한다면 몰라도...^^
탈선이야 어른들이 더 많이 하는 거 아닌가요? ㅋㅋ

아나키 2007-09-30 20:1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낙동고 다니던 생각나네요 호홍

느티나무 2007-10-08 00:0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어떻게 생각하세요? 궁금하네...

해콩 2007-10-09 00:2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혜경님.. 대한민국 고딩들 중 대부분은 평일 방과 후엔 도서관 갈 시간이 없을 겁니다. 우리학교같은 경우는 학교 옆 담벼락에 바로 시립도서관이 붙어 있으니 정말 좋지요. 아이들이 도서관 근처에서 알짱거리는 모습만 봐도 너무 좋아요. "고딩들에게도 도서관 갈 시간을 허하라" 피켓 들고 목청이라도 높여야 할 판이라니깐요.

브리니님 오랜만이죠? 정규수업 시간에 출석체크를 제대로 한다면 나머지 쉬는 시간엔 교문을 자유롭게 왕래해도 괜찮지 않을까요? 샘네 학교는 어떠신지...

글샘샘~ 어떻게 지내시는지... 무섭게 올라오는 리뷰는 가끔 읽고있습니다요.. ㅋㅋ 아직까지 학교 근처에서 바바리맨은 못 만나봤구요, '탈선 사전 예방' 에구... 이 문구는 이제 그만 들을 때도 되지 않았나 싶어요. 도대체 무엇이 탈선이란 말인지...

너는 교문지도에 걸려 머리카락 잘린 적은 없었지, 아나키? 교문앞에서 열심 선도의 가위질하시던 '생활지도'부 샘들과 운동장까지 흩날리던 남학생들의 머리카락이 눈에 선하다.

궁금증은 풀리셨나요? 진복이 아버님.. 샘은 어떻게 생각하시는지.. 궁금해요. 사실 저는 교복도 없어져야하지 않나... 그런 생각도 드는데 말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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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레이야 2007-09-23 12:2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늘 느끼지만 이철수님의 저 글씨체가 참 좋아요.
해콩님도 만월처럼 넉넉하고 다정하게 추석 보내시기 바랍니다. ^^

hook-choi 2007-09-25 01:2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최근 몇년을 통틀어 가장 여유롭고 평온한 명절 연휴를 보내고 있자니 잠이 안와~ 오랫만에 다른 사람들의 일상을 기웃거리다 생각한 건... 역시 내 주위에 좋은 사람들이 있었다는 거. 그리고 좀더 열심히 살아야 겠다는 거. 그리고 앞으로도 이 좋은 사람들과의 만남을 이어나갈 수만 있어도 내 삶이 훨씬 풍요롭고 행복해질 수 있다는 거... 도와줄거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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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antaclausly l 2007-09-22 12:18


http://blog.aladin.co.kr/santaclausly/1586578





본문의 너비가 페이퍼의 제한 너비를 초과한 글입니다. 여기를 클릭하면 새창에서 원래 너비의 글로 확인할 수 있습니다.

독서에 관한 격언


1. 책이란?

책은 이를 펴보지 않으면 나무 조각이나 다름없다. (영국 속담)
책은 책 자신의 운명이 있다. (테렌티마누스 마우루스)
책, 그대는 사원의 황금 그릇이요, 언제까지나 손에 들고 있어야 할 타오르는 등불이다. (rd 베리)
책은 아마도 피어난 꽃송이. 먼 마을로 가는 길. 지붕이요, 우물이요, 탑이다. 책은 지팡이. 독자의 자랑이로다. (l.w. 리즈)
그대(책)는 생명의 나무요, 사방으로 뻗은 낙원의 강이다, 그대에 의 해 인간의 마음은 자라고 갈증나는 지성의 물을 길어 활기를 찾는다. 열매맺 게 하는 무화과나무로다.(베리)
책은 남달리 키가 큰 사람이요, 다가오는 세계가 들리게끔 소리 높이 외치는 유일한 사람이다. (eb 브라우닝)

2. 책의 선택

인생은 매우 짧고 그 중에서 조용한 시간은 얼마 안되므로 우리는 그 시간을 가치 없는 책을 읽는데 낭비하지 말아야 한다.(j. 러스킨)
인생은 저질의 책을 읽기엔 너무 짧다. (j 브라우스)
인도의 재보를 준다 해도 독서의 즐거움과는 바꿀 수 없다. 인생은 짧다. 이 책을 읽으면서 저 책을 읽지 못한다. (러스킨)?
친구를 선택하듯이 작가를 선택하라. (w.딜런)
과학에서는 최신의 연구서를 읽자. 문학에서는 최고(最古)의 것을 읽 어라. 고전 문학은 항상 현대적이다. (리튼)
어리석은 사람은 이름난 사람의 것이라면 무엇이든지 찬미한다. 나는 오직 나를 위해서만 읽는다. (볼테르)
좋은 책을 읽는다는 것은 과거의 가장 훌륭한 사람들과 대화하는 것 이다. (데카르트)

3. 독서의 효용

읽은 책이 한 권이면 한 권의 이익이 있다. 하루 종일 글을 읽었다면 하루의 이익이 있다. (과문절)
나는 재산도 명예도 권력도 다 가졌으나, 그래도 한 생애중 가장 행복 했던 때는 독서로 인하여 얻은 것이다. (미클리)?
독서처럼 값싸고 영속적인 것은 없다. (몽데스키외)
벗삼아 읽은 책 평생의 스승 (서울 청량리 지하철 표어)
독서와 마음의 관계는 운동과 육체의 관계와 같다. (r 스릴 경)
같은 책을 읽었다는 것은 사람들 사이를 이어주는 끈이다. - 에머슨(일기)
읽는 것은 빌리는 것을 의미한다. 창작하는 것은 자기가 진 빚을 갚는 일이다. (g.c.리히렌베르크)
독서는 다만 지식의 재료를 줄 뿐이다. 자기 것으로 만드는 것은 사색 의 힘이다.(로크)
독서의 진정한 기쁨은 몇 번이고 그것을 되풀이하여 읽는 데 있다. (.h. 로렌스)
책 속에 길이 있다.

4. 독서의 방법과 기술

사고(思考)하는 데 필요한 기술, 책을 쓰는 데 필요한 기술뿐만 아니라, 독서하는 데도 필요한 기술이 있다. (디즈레일리)
책을 읽되 전부를 삼켜버리지 말고, 한 가지를 무엇에 이용할 것인가를 알아야 한다. (h.입센)
자기의 전력을 다 사용하지 않으면 훌륭한 독서행위라고 할 수 없다. 만일 독서 후에 피로하지 않으면 그 독자는 상식이 없는 것이다. (a. 베네트)
천천히 읽는 법을 배워라. 모든 다른 장점들이 적당한 곳에서 따라올 것이다.(w.워크)
많이 읽어라. 그러나 많은 책을 읽지 말라. (c. 폴리니우스)
읽고 표(標)해 두고 배우고 마음속으로 소화시켜라. (영국 국교 기도서)
독서에도 방법이 있다. 수동적 독서법은 효과가 적다. 읽은 것을 눈앞 에 그려보도록 해야 한다. (에이버리)
무엇이든 하루에 다섯 시간 독서하라. 그러면 당신은 곧 박식하게 될 것이다. (s.존슨 보즈웰)
책을 읽음에 있어 어찌 장소를 가릴 것이랴. (이황)
열 번 읽기보다는 한 번 베끼는 편이 낫다. (讀十遍不如字一遍) 學林玉露
서당 개 삼 년이면 풍월을 읊는다. (한국 속담)
생각하지 않고 읽는 것은 잘 씹지 않고 먹는 것과 같다. (바이크)
한 권 읽기를 마치지 않고서는 결코 다른 책을 읽지 말라. 한 권을 다 읽었다 하더라도 그 뜻을 체득하지 못하였으면 또 다른 책을 읽지 말라. (북 스톤)
아무리 어려운 글이라도 일백 번 되풀이하여 읽으면 그 참뜻을 스스로 깨우쳐 알게 된다. (朱子訓學育記)

5. 양서와 악서

유익한 책이란 독자에게 捕捉을 요구하지 않고는 못 배기게끔 하는 책이다.(볼테르)
책은 반드시 고전적 명저가 아니라도 좋다. 알려지지 않은 책 중에서도 상당히 좋은 책이 있다. (w. 차몬드)
신간 서적이 매우 괘씸한 까닭은 우리의 해묵은 책을 못 읽게 하기 때 문이다.(a.쥬벨)
베스트셀러는 평범한 재능인의 금박 입힌 무덤이다. (l.p. 스미드)
나쁜 책보다 더 나쁜 도적은 없다. (이탈리아 격언)
아주 중요하다는 책은 없다. 가장 중요한 것은 그대 자신이 무엇을 생 각하느냐 하는 것이다. (e. 허버트)

6. 장서

책만큼 매력적인 가구는 없다. (s. 스미드 호전드 부인)
책이 없는 방은 영혼이 없는 육체와 같다. (기케로 루보크)
돈이 가득 찬 지갑보다는 책이 가득 찬 서재를 가지는 것이 훨씬 좋아 보인다.(j 릴리)
집은 책으로, 정원은 꽃으로 가득 채워라. (a. 랭)
장서는 만들어지는 것이 아니라 성장한다. (a. 비절)
소유할 수 있는 책 전부를 읽을 수 없는 한, 읽을 수 있는 만큼의 책만 을 소유하면 충분하다. (세네카)
큰 서재를 가진 것으로 자기가 학식이 많다고 세상 사람에게 설복하는 것은 허영이다. (j. 풀러)

7. 독서 생활과 지혜

목적이 없는 독서는 산책이지 학습이 아니다. (b. 리튼)
단 한 권의 책밖에는 읽은 적이 없는 사람을 경계하라. (디즈레일리)
우리가 읽어야 할 것은 그 말이 아니라, 그 말 뒤에 있다고 느끼는 사 람이다.(s.버틀러)
청년으로서 글을 읽는 것은 울타리 사이로 달을 바라보는 것과 같고, 중년으로서 글을 읽는 것은 자기 집 뜰에서 달을 바라보는 것과 같으며, 노 년에 글을 읽는 것은 발코니에서 달을 바라보는 것과 같다. 독서의 깊이가 체험에 따라서 다르기 때문이다. (임어당)
책이 없는 궁전에 사는 것보다 책이 있는 마구간에 사는 것이 낫다. (영국 격언)
책을 읽고 싶다는 열성적인 사람과 책을 원하는 지극한 사람과의 사이 에는 굉장한 거리가 있다. (g.k. 체스터톤)
사람의 품격이 그 읽는 바의 서적으로 판단되는 것은 마치 그 사귀는 바 벗으로써 판단할 수 있음과 같다. (스마일즈)
지금까지 세계 전체는 책의 지배를 받아 왔다. (볼테르)
독서상우 (讀書尙友) (맹자)
책을 읽는다는 것은 그들에게서 배우고 싶다, 그들의 사상 속에 들어가 고 싶다는 욕구 때문이지 그대들의 생각을 그들 속에서 찾아내기 위한 것은 아니다. (러스킨) 

                                                                                     (출처) 네이버 카페 공부 멘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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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외동포, 우리는 왜 그들을 한국인으로 받아들일 수 없는가?

일제가 버린 사할린 동포들, 대한민국도 버릴 셈인가



 

 

정진경(지구촌동포연대(KIN) 활동가)


 

 



이 기사는 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에서 발행하는 월간 <희망세상> 2007년 9월호에 실린 글을 편집진의 허락 하에 실었음을 알려드립니다. <편집자 주>


 

 

“어휴, 그거 말로는 다 못해. 날마다 울었어. 날마다 술 먹고 고향가고 싶다, 고향가고 싶다고 하셨어. 그렇게 가고 싶어 하셨는데, 결국엔 한국 못 가보고 돌아가셨지.”
10시가 되어서야 어두워지는 사할린의 밤, 민박집 주인 부부는 별 생각 없이  꺼낸 그들의  부모 이야기에 이렇게 말했다. 해방 이전 사할린으로 건너가 1988년 서울올림픽 중계에서  한국을 처음 보고 감격에 겨워 눈물을 흘리셨다는 주인 부부는  으레 한국의 부모들이 그렇듯이 입버릇처럼 계속 음식을 권하셨다.

러시아 사할린, 인천에서  비행기로 단 2시간 30분이면 갈 수 있는 곳.  멀고도 가까운 이 동토에서 살아온 4만 7천 명의  한인들은 반세기 동안 고향만 생각하다 한 많은 세상을 떠나갔고, 이제는 단 3천 5백 명만이 남아 영주귀국을 기다리고 있다.  88올림픽을 통해  조국이 헐벗은 나라가 아니라는 사실을 안지도 이미 20년이 되어가지만, 사할린 한인들은  아직도 고향에 돌아갈 날만을 손꼽아 기다리고 있다. 그들이 기다린 긴 세월 동안 바뀐 사실이 있다면, 이제 한국은 돌아갈 수 있는  고향이 아니라는 것이다.  또 입국 비자를  받아야 갈 수 있는 타국이 되어버렸다는 것, 그토록 우리말과 고향의 모습을 잊지 않으려고 노력했건만, 한국 정부는 그들을 이제 러시아 국민으로 생각한다는 것이다.

지구촌동포연대(KIN)의 국제워크숍을  통해, 지난 7월 7일부터 일주일 동안 사할린 방문에서 내가 가지고 온 것은 현실을 무시하고 탁상행정만 하는 한국 정부에 대한 분노와 지금까지 그들의 한을 모르고 살아왔다는 죄책감이었다.  한정된 지면에 한인들이 평생을 품어온 한을 어떻게 풀어놓을 수 있을까? 일본을 탓할  수밖에 없는 역사적인 문제보다는 현재의 문제, 즉 영주귀국 문제와 현지의 생계문제에  대해서 쓰는 게 현재의  그들에게 도움이 될 수 있는 방향이 아닌가 싶다.




영주귀국하는 한인 사진제공 사할린 새고려신문


이산의 땅, 사할린
1938년 일제의 총동원령 당시, 사할린 지역에 징집된 조선인들은 고된 노동과 배고픔, 추위라는 삼중고를 겪고 있었다. 국권 상실 이후 일본 국적을 갖게 되었지만, 1945년 8월 러시아의 선전포고 이후 일본으로 귀환하는 일본인들의 틈에 낄 수 있는 자격은 없었다.  오히려 종전 이후 레오니도워나 포르자스코예와 같은 일부 지역에서는  일본인들이 조선인들을 학살하는 사건까지 있었고, 소련과 일본 사이에 맺어진 일본인  귀환협정에서도 조선인들은 철저히 배제되었다. 일본은 1957년까지 사할린 내 일본인과 그 가족을 모두 본국으로 송환하였다.

고향을  잃은 조선인들은 고향이 아닌 일본으로 가는 배에 매달렸지만 30만 명에 달하는 일본인만을 태우고  배는 떠났고,  남겨진 4만 7천 명의 한인들은 반세기 동안 고향을 머릿속으로만 그려야 했다. 대부분 남쪽 출신이었던 한인들은  북조선으로라도 귀국을 하면  걸어서라도 고향에 갈 수 있으리라는 희망으로 북조선으로 갔지만 영영  돌아오지 않았다. 식민지 시절 사할린에서 일본으로  다시 징용을 당해 가족과 헤어지게 된 경우까지,  남쪽 부모를  떠나온 한인들은 북으로, 일본으로 가족을 보내고 철저하게 찢어진 이산가족이 되었다.

이 땅에 그들을 버려둔 건 일본뿐만이 아니었다.  한국은 지금까지 이들의 귀환을 요구하면서도 일본에 책임을 전가하기에 바빴고, 북한은 체제 선전을  통해 한인들을 데려가 고향에 보내주지 않았다. 물론 냉전시기 소련과 대화하는 것이  쉽지 않았던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일본의 귀환정책을  보면 ‘국민보호’라는  국가의 기본 의무를 한국이 얼마나 방관해왔는지 알 수 있다. 일본의 자국민 귀환사업 내용을 들여다보면 눈물겨울 정도다.

1950년 4월 소련 당국이 소련 내 일본인은 전범을 제외하고 전원 일본으로 송환하겠다고 발표했다.  그러자 일본 정부는 이에 반발해 상당수 일본인이 계속 소련에 있으며, 적십자사를 통해 잔류 일본인  송환 문제를 협의하자고 제의하였다.  1953년 소련은 2천 5백 명에 달하는 일본인 죄수를 송환하기로 하고, 1956년 국교회복을 거쳐 1957년까지 사할린 내 일본인과 가족 모두를 송환시켰고, 자국민의 유골까지 모두 본국으로 송환하였다.  또한 소련은 소식이 불분명한 일본인에 대하여 계속 조사하기로 합의하였다. 현재까지도 일본인 본국 송환이 진행되고 있으며, 직계자손의 가족까지 받아들이고 있다.





현지의 한인3세
사진제공 임재현


영주귀국의 함정
1957년 귀환한  일본인 중에는 1천 5백여 명 정도의  조선인이 끼어 있었다. 일본인과 결혼한 조선인들이 있었고,  일본어를 잘하는 소수의 조선인들은 일본인을 가장해 귀국선에 오를 수 있었다. 일본으로 간 조선인들은 한국으로  돌아오지 않았다. 대신 사할린에  두고 온 동포들의 귀국운동을 시작했다.

1958년  일본에 귀국한 조선인으로 결성된  화태억류귀환한국인회는 한인 귀국문제를 공론화했고, 당시 징용된 조선인들이 일본 국적이었으니  한국으로 돌려보내는 것이 옳다는 주장이 정치권에서 논의되었다. 결국 1992년  일본의 제의로 양국 적십자사를 통해 한인 영주귀국이 시행되었다. 당시 영주귀국 원칙을 규정하는 법 하나 없이,  한일 양국 실무진들의 탁상회의를 통해 결정된 고령자 우선원칙, 자녀를 제외한 부부귀환 원칙으로 인해 수십 년 동안 러시아인과 결혼해 살고 있던 한인은 고향에 가기 위해 이혼하고 배우자가 죽은 한인들은 즉석에서 황혼 결혼을 하기에 이른다.

영주귀국사업은 당시 일본이 제공한 23억 엔으로 이루어진 사업인 만큼,  사업의 목적도 일본의 의지에 따라 정해진 듯하다. 일본이 정한 원칙에 따라 일본의 자금으로 일본이 실시하고 한국은 영주귀국 시설만 제공하는 상황이다 보니,  한국으로 떠나는  1세 노인들과 사할린에 두고 온 자식들은 또 이산가족이 될 수밖에 없었다. 게다가 1945년 8월 15일 이전 출생자로 한정하다 보니, 8월 16일에 태어난 한인은 돌아오고 싶어도 돌아올 수 없고 8월 14일에 태어났으나 출생신고를 늦게 한 한인은 고국 땅에 돌아올 수 있는 자격이 없는 것이다.

오히려 일본의 ‘당시에는 일본인이었으니 귀국시킨다’는 원칙에 따른다면, 한인들은 샌프란시스코강화조약 발효일인 1952년 4월 28일이  일본 국적이던 한인들의 국적을 박탈한 시기이므로 현재 한일 양국이 설정한 영주귀국 기준도 그리 타당해 보이지는 않는다. 또 현재 가족을 제외한 1세 부부나 독신끼리 반드시 짝을 이루어야 한다는 원칙 아닌 원칙 탓에 나타나는 부작용도 적지 않았다. 적십자사를 통해 진행되고 있는 영주귀국은 합산연령을 기준으로 하며 1945년 8월 15일 이전 출생한 자라 하더라도 배우자가 귀국대상자가 아닐 경우, 귀국을 위해 다른 동반자를 찾아야 한다. 또 1세 노인이라고 하더라도  자식을 여의고  손자를 부양해야하는 경우 영주귀국 방법은 전혀 없는 실정이다.





지난해 경기도 안산 고향마을에서 합의결혼으로 한국에 정착한 남편이 부인을 살해하고 자살하는 사건이 있었다. 극단적인 예이긴 하지만 16년째 사업을 진행하면서도 실제 귀국 한인들의 현실을 도외시하는 영주귀국 사업의 현주소다.  이 상황에서 한인들은 가족을  버리면서까지 고향으로 돌아오고 있다.  그리고 영주귀국사업을  통해 지난 15년 동안 1천 7백 명의 한인들이 고향으로 돌아왔으며,  아직 3천 5백 명(사할린이산가족회, 2007년 8월 통계)의 한인 1세들이 영주귀국을 애타게 기다리고 있다. 정부는 귀국 당사자들이 원하는 바를 직접 들어야 한다. 80세, 90세에 달하는 고령자들이 고향에 돌아와 살 수 있는 시간은 얼마 남지 않았다.


관련법 제정이 시급하다.
지난 2005년 한명숙 의원이 발의한 ‘사할린동포귀국촉진 및 정착지원에관한 특별법안’은 국회통일외교통상위원회에  아직까지 계류 중이다.  또 지난 6월 이화영 의원의 외교부 질의에 대한 답변에 따르면, 러시아 국적인 사할린 동포는  러시아 국민이므로,  2·3세는 영주귀국에 동반할 수 없다고 한다.

일본이 시행하고  한국이 보조하는  사업이니 사할린 한인을 바라보는 시각이 일본과 별 차이가 없어 보인다. 사할린동포지원특별법안도 조속히 통과되어야 하겠지만  근본적으로는  재외동포기본법이 제정되어야 한다. 이 법을 통해 재외동포에 대한 포괄적 정의, 국가의 기본적 책무, 장기적인 국가정책의 대강을 규정지을  필요가 있는 것이다. 이른바 선진국에 사는  동포들에게는 입국 비자를 쉽게 발급해주고  중국이나 구소련 지역 동포들에게는 외교 관계를 핑계로 입국 절차를 까다롭게 하는 것은 정부에서 그토록 강조하는 동포정책의 형평성에 맞지 않다.

독일의 예를 들어보자.  독일은 2004년까지 구소련 지역에  살고 있던 독일계 러시아인 400만 명 중 230만 명을 본국으로 송환시겼고  현재도 조부모 중 한 명 독일계라는 것이  증명되면 귀국을 받아들이고 있다.  굳이 선진국을 예로 들지 않아도 헝가리, 이스라엘, 독일, 그리스, 핀란드, 스페인 등 많은 나라들이 자기 나라 재외동포의 본국 귀국을 적극적으로 장려하고 있다.




사할린 동포들이 모여사는 네벨스크의 아파트


사할린의 현재
사할린에는 현재 140개 민족이 살고 있다.  인구도 전체 56만 명 중  5.5% 정도인 3만 1천 6백 명(2007년 8월, 사할린이산가족회) 정도가 살고 있다. 3세 청년들은 이제 러시아인과 섞여 모든 면에서 러시아인으로서의  삶을 꾸려가고 있지만 어려서부터  조선교육을 받은 2세들은 여전히 쌀밥을 주식으로 고유문화를 지켜가며 살아가고 있다. 주로 연금(대략 한화로 20만 원 ~ 30만 원)으로 생활 하고 있는 2세들은  쌀농사가 불가능한 사할린에서 중국산 수입쌀을 주식으로 이용했으나 금년 초 사할린  검역당국이 중국쌀 수입을 금지하면서 식생활이 급격히 힘들어졌다. 쌀값은 천정부지로 치솟았다가  현재 가격이 조금 내려가기는  했지만 여전히 연금만으로는  생활이 불안정한 상태다.

영주귀국하지 못한 한인들의 생활에도 정부의 지원이 필요하다. 1만 6천 명의 한인이 살고 있는 유즈노사할린스크와 같은 대도시의 한인들은  그나마 형편이 나은 편이지만, 돌린스크 시 ‘브이코프 탄광촌’의  400명 한인들은 그야말로 1940년대 탄광촌 모습 그대로 살고 있다.  지난달에는 400명의 한인들이 거주하고  있는 네벨스크 시가 강진 피해를 입었지만, 의료진이나 복구장비가 턱없이 부족해 인도적 지원도 필요한 실정이다.

이제껏 한국이 경제발전과  민주화에 급급해 하느라 재외동포 문제에 신경을 쓸 수 없었다지만, 민주주의의 의미는 끝없이 확장되어야 하는  개념이지 않은가? 고향을  그리워하며 사는 한인들을  재외동포로 인정하고 경제적으로 지원하며 자유출입국을 가능하게  해주는 것, 국가는 그런 역할을 수행하기 위해 만들어진 것 아닌가? 국권 상실기에 해외로 흩어진 한인들을 모두 불러올 수는 없다 하더라도,  이들을 동포로 바라보는  정책적 일관성을 수립하고 적극적인 역사청산의 노력을 해야 할 것이다.

대한민국은 진정으로 사할린 동포들의  아픔을 치유하고 포용하고자  하는 의지를  가지고 있는가? 사할린 한인들에게는 이제 그 대답을 들을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다.


글 정진경
지구촌동포연대(KIN) 활동가 , 대한민국이 재외동포에게 조국보다 모국이 되는 날을 꿈꾼다.
사진제공 지구촌동포연대(KI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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