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러니까 아마도 9월 28일이었나보다. 금요일 아침, 갑자기 직원모임을 가지게 되었는데 난데없이 아래와 같은 유인물과 함께 생활지도부 부장샘이 '그동안 민주적으로 아이들 지도를 해왔는데 아이들이 교칙을 어기고도 자신의 죄를 반성할 줄 모르며 너무도 뻔뻔스럽게 교문 밖으로 나갈 것을 요구한다. 따라서 앞으로는 교문지도를 강화하려고 하니 샘들께서 좀 도와주시라. 교무실 화이트 보트에 요일별 교문지도 당번 신청을 받겠다'는 요지의 발언을 하셨다.

이게 갑자기 뭔 소리공??? 하는 맘으로 듣고 있는 속이 부글부글 울렁거렸다. 개학 후 아이들의 교문 밖 군것질로 인한 식중독 사고가 있긴했다. (급식으로 인한 사고는 아니었다. 같이 학교 급식을 먹는 샘들은 모두 멀쩡했고, 어떤 반은 한 명의 환자도 발견되지 않았으니까.) 점심시간, 청소시간, 석식시간에 틈틈히 학교를 나가 학교 바로 옆 서동도서관도 다녀오고, 도서관 뜰에서 산책도 하고, 서동시장까지 가서 떡뽁이, 만두 등등을 사먹는 모습을 나도 많이 보았다. 학교 측에서는 가정에서 살뜰한 보살핌을 받지 못하는 아이들이 많고 평소 건강상태도 그리 좋지 못한 데다가 환절기에 다소 불안한(?) 음식들을 즐겨먹어서 '설사'병이 난 것이라고 진단했다. 아무튼...

그 일로 일주일 정도를 생활지도부에서 점심시간, 청소시간, 석식시간에 교문단속을 슬슬 시작하시더니만 결국 이런 대책을 마련하셨나 보다. 담임샘들과 부장샘들 사이에서 의논이 오갔는지는 모르겠지만 담임도 부장도 아닌 우리들은 처음 듣는 결정사항이었다. 소심한 나는 '누가 문제제기 좀 안하나...'하며 두리번 두리번 기다리다가 그만 회의가 끝나버렸고 화장실을 다녀오면서 힐끗 칠판 쪽을 보니 샘들이 와글와글 당번할 날짜에 이름을 적어넣고 있었다. 애써 무관심... 하며 외면하려는 순간, 교장샘과 눈이 마주쳤다. 꾸벅.. 인사하고 자리에 앉았는데...

어느덧 내 자리 옆에 서 계시는 교장샘. 예의 그 '소녀같은 웃음'을 삺포시 지으시며 "샘, 좀 도와주시죠"라는 멘트를 나에게 날리셨다. 그렇지 않아도 부글거리던 속에 표정관리, 감정관리도 잘 되지 않는 나는 대뜸 "저는 교문지도 반대합니다."라고 응대해버렸다. 여유있고 세련된 대응, 이게 안된다 나는!! 당돌한(?)내 말에 '교화의 의무'를 강하게 느끼셨는지 교장샘께서는 옆자리 샘이 권하는 의자에 앉으시더니 '아이들이 빠마 머리에 위에는 교복도 아닌 티셔츠 걸치고 실내화를 질질 끌고 학교밖을 배회한다, 인근 주민으로부터 우려성 전화도 자주오고 아이들을 방치한다는 이야기를 자주 듣는다. 아이들을 이대로 내버려두어서는 안된다. 담임들만 지도하기에는 역부족이다. &*(*+_|#$@%^&' 등등의 이야기를 다시 한번 강조하셨다.

나도 나름대로의 이야기를 좀 길게 하고 싶었다. '이 학교로 옮겨와 좋았던 모습 중의 하나가 아이들이 자유롭게 교문 밖을 나갈 수 있다는 사실이었다. 서동도서관으로 산책가는 모습, 책 빌리는 모습 등등이 너무 좋아보였다.'라고 말한 순간 내 말은 팍 잘렸다. 이어지는 교장 선생님의 말씀은... '콩샘의 말은 합리적이지 못하다' 내가 뭔 말이나 제대로 했어야 말이지. 순간 픽 웃음이 나왔다. 교장선생님의 동어반복은 이미 귀에 들어오지도 않았고. "아이들의 품행이나 식습관이 문제라면 그 부분을 지도해야지 이렇게 교문부터 닫아거는 것은 바람직한 교육은 아닌 것 같습니다. 교육의 효과는 일,이주만에 바로 나타나는 것이 아니라 오랜 시간 공을 들이며 기다려야하다는 사실은 교장샘께서 더 잘 아시지 않습니까. 그리고 이런 일의 결정을 어떤 경로로 의논한 것인지 모르겠네요. 저로서는 처음 듣는 이야기입니다. 아무튼 저는 이런 식의 교문지도는 반대합니다. 그외 복장이나 식습관 등의 지도는 하겠습니다. 그럼 수업이 있어서 이만..."

회의 시간에 배포된 유인물의 내용을 기록해 남겨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10년, 20년 후에는 이런 '직원회의 내용'을 보며 웃을 수 있을까? 이런 촌스런 일이 그땐 있었지... 하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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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교 교문지도를 강화하려 합니다.

학생들의 등교이후 교문 밖을 나가는 사례가 너무 많아 더 이상 간과할 수 없는 상황이라 판단되어 여러 선생님들의 관심과 협조를 당부드립니다.

 

1. 학생들이 교문 밖 출입의 이유

가. 금정시립도서관에 도서대여 및 반납을 위함.
나. 준비물 때문에 집에 다녀옴

다. 군것질 및 라면, 떡뽁이 등의 민생고 해결을 위함.

라. 오락실에서 게임 및 채팅을 위함

마. 수업시간에 임의로 이탈(주로 이동수업 및 출석체크를 잘 안하시는 선생님의 시간에)하여 학교 주위를 배회함.

 

 

2. 학생들의 교문 밖 출입을 제한하여야 하는 이유

가. 학생들의 탈선을 사전에 예방.

나. 검정되지 않은 음식물들을 함부로 취식하여 식중독 및 보상을 제대로 받을 수 없다.

다. 단정하지 못한 교복 및 체육복, 반티, 사복 등을 착용한 상태에서 무단 외출하다보니 주민들로부터 교사들이 하생들을 무한정 방치한다는 원성을 낳았다.

라. 돌아오는 시간이 초과될까 뛰어 들어오고(수업을 준비하지 못한 상태에서 땀이나 가쁜 숨으로 수업에 방해의 요소가 됨) 심지어는 수업 중에 들어오는 학생들도 만다.

마. 지난 몇 일 동안 중식시간 교문지도를 해 본 결과 학생들의 의식 자체에 문제가 많다고 여긴다. 왜냐하면 “라면 먹으러 갑니다.”, “학교 급식이 맛이 없어서 밥만 먹고 올께요.” 등 무단 외출하는 것에 대한 죄의식이나 미안한 마음, 교칙적용에 대한 두려움 등이 전혀 없다.

 

3. 이에 따른 교장 선생님의 의지가 완고한바 담임선생님을 통한 외출증이나 조퇴증 없이는 교문 밖으로 나갈 수 없도록 철저히 지도 하려 합니다.

 

4. 본교 생활지도부의 인원만으로는 감당하기에 어려움이 많아 여러 선생님들의 도움을 받고자하며, 향후 약 3개월간 매일 실시를 계획, 추진하려 합니다. 교무실 칠판에 부착한 직원명렬에 전 선생님들께서 한 번씩은 봉사 해주실 날짜를 기록해주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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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가, 나는 문제가 되지 않는다.

     1-다의 사안에 대해서는 아이들의 입장을 들어볼 필요가 있다. 아이들은 '급식'이 성에 차지 않는다고 이야기한다. 맛이 없거나 부족한 것이다. 급식의 질을 개선하는 문제가 그리 녹녹치 않다는 건 알지만 이 부분에 먼저 접근해야하는 건 사실인 것 같다. 물론 식생활, 식습관에 대한 교육이 병해되어야 하고.

     1-라에 해당하는 학생이 과연 몇 명이나 될까 싶다. 그 몇 명을 찾아내서 중점적으로 지도해야지 전체 아이들의 권리를 침해하는 일은 정말 신중에 또 신중을 기해야하지 않을까. 그리고 내 개인적 생각으로는 쉬는 시간이야 너무 짧으니 안되겠지만 점심, 석식 시간에야 밥 다 먹고 조금 남는 시간에 가볍게 오락 한 판 땡기는 것이 또 무에 그리 잘못인가. '죄' 운운해가면서 나무라기엔 낯간지럽다. 샘들도 점심, 청소시간에 컴터로 '맞고' 치고 카드놀이도 한다. 너무 길지 않게 하는 거라면 샘들의 '오락'도 스트레스 해소 차원에서 나쁘지 않다고 생각한다. 

     1-마는 유인물에도 나와 있듯이 '출석체크' 제대로 안하는 교사가 시정할 부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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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레이야 2007-09-29 13:2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이들이 방과후엔 시립도서관에 갈 시간이 없다는 이야기네요...

BRINY 2007-09-29 13:4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정규 수업시간에만이겠죠?

글샘 2007-09-29 14:5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해콩 샘네 학교는 좀 외진 데여서 바바리맨을 만날까봐 못 나가게 한다면 몰라도...^^
탈선이야 어른들이 더 많이 하는 거 아닌가요? ㅋㅋ

아나키 2007-09-30 20:1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낙동고 다니던 생각나네요 호홍

느티나무 2007-10-08 00:0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어떻게 생각하세요? 궁금하네...

해콩 2007-10-09 00:2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혜경님.. 대한민국 고딩들 중 대부분은 평일 방과 후엔 도서관 갈 시간이 없을 겁니다. 우리학교같은 경우는 학교 옆 담벼락에 바로 시립도서관이 붙어 있으니 정말 좋지요. 아이들이 도서관 근처에서 알짱거리는 모습만 봐도 너무 좋아요. "고딩들에게도 도서관 갈 시간을 허하라" 피켓 들고 목청이라도 높여야 할 판이라니깐요.

브리니님 오랜만이죠? 정규수업 시간에 출석체크를 제대로 한다면 나머지 쉬는 시간엔 교문을 자유롭게 왕래해도 괜찮지 않을까요? 샘네 학교는 어떠신지...

글샘샘~ 어떻게 지내시는지... 무섭게 올라오는 리뷰는 가끔 읽고있습니다요.. ㅋㅋ 아직까지 학교 근처에서 바바리맨은 못 만나봤구요, '탈선 사전 예방' 에구... 이 문구는 이제 그만 들을 때도 되지 않았나 싶어요. 도대체 무엇이 탈선이란 말인지...

너는 교문지도에 걸려 머리카락 잘린 적은 없었지, 아나키? 교문앞에서 열심 선도의 가위질하시던 '생활지도'부 샘들과 운동장까지 흩날리던 남학생들의 머리카락이 눈에 선하다.

궁금증은 풀리셨나요? 진복이 아버님.. 샘은 어떻게 생각하시는지.. 궁금해요. 사실 저는 교복도 없어져야하지 않나... 그런 생각도 드는데 말이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