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율스님.. 오늘, 58일째 단식을 푸셨다. 입원하셨단다.

사진으로 본 천성산은 참 아름답다. 그 산을, 그 산에 깃든 생명을 지키기 위하여 세 번이나 목숨을 건 단식을 하셨다. 어떤 사람들은 그것이 스님의 욕심이라하지만, 그런 욕심 때문에 세 번씩이나 목숨을 내놓을 사람이 있을까? 그건 또 단순한 '욕심'은 아닌 것이다. 개인을 버린, 모든 이들을 위한 '욕심'이겠지. 개인의 '욕심'을 버리고 진심으로 들여다 보아야 보인다. 자신의 일-자신이 옳다고 생각하는 일에 그렇게 매몰될 수 있다는 것이 신기하고 또 부러웠다. 그런 힘은 어디에서 나오는 걸까? 단순히 이렇게 말하는 것조차 죄스럽다.

개학 첫날 오늘, 실은 몸이 좀 무거웠다. 갈까 말까 계속 망설였다. 누군가 같이 간다면 모를까 혼자 대중교통으로 그곳에 가기에는 너무 아득했다. 그러면서 후원금 몇푼 내고 집회 몇 번 간 것으로 양심의 빚을 덜어보려했던 불순함을 씻고도 싶었다. 황경희 샘한테 연락이 왔다. 가야지... 같이!

이 집회는 아주 다양한 사람들이 모인다. 장준호샘 말처럼 극좌에서 극우까지의 사람들이 한 자리에 있는지 어떤지 나는 모르겠지만 연령이나 성별은 확실히 그렇다. 오늘은 금정초등학교 6학년 여학생이 앞에 나와 글을 읽었고 개구장이 1학년들이 노래를 했고 수녀님들도 노래를 해주셨다. 소박하지만 다양한 힘이 모이는 참 마음 따뜻한 집회다. 노래하고 웃고 느끼는 동안 몸이 좀 가벼워지는 듯도 했다. 역시 사람은 움직여야한다.

집회장 한 쪽에 마련된 스크린에 천성산의 모습과 지율스님의 인터뷰가 흐른다. 눈물 흘리시는... 코끝이 찡해왔다. 목숨을 걸고 무언가 하는 사람.. 부럽다. 내가 무엇에 목숨을 걸고 있는 지, 혹은 걸어볼 것인지 생각해볼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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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콩 2004-09-05 23:2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지율스님 동생의 아린 편지 [지부 게시판에서 펌]

저에게는 언니가 둘이 있습니다. 사실 말이 언니지, 나이 차이가 많은 언니들은 저에게는 엄마나 다름이 없었습니다. 한 언니는 저를 먹이고 입혀서 키웠고, 다른 한 언니는 제게 산과 강으로 여행을 시켜주며 자연을 보여주고, 어린나이에 이해하기 힘든 문학과 음악을 이야기해 주었습니다.

그런 엄마 같은 언니가 지금 50일이 넘는 단식으로 죽어가고 있습니다. 그런데 저는 말릴 수가 없었습니다. 왜냐하면, 언니가 얼마나 천성산을 사랑하는지, 그것을 지키기 위해 얼마나 피나게 노력하며 싸웠는지를 잘 알기 때문입니다. 바짝바짝 말라가는 언니를 보면 애가 타지만 겉으로는 웃을 수밖에 없습니다. 제가 속상해하면 저를 집으로 보내려고 할 것이란걸 잘 알기 때문입니다.

그래도 설마 죽게까지야 놔두겠냐고 생각하면서 버티기를 50여일, 속살에는 여름장마에 습기가 차 생긴 피부병과 영양부족으로 검버섯 같은 까만 점들이 수없이 박혀 있습니다. 사람의 힘으로는 가능할까 싶을 정도로 걷고 말하는 것을 보면 신기하기까지 합니다.

어떤 사람은 뒤에서 뭘 먹고있는 건 아닌가 의심하는 분도 있다고 들었습니다. 그분께는 이렇게 말해주고 싶습니다. 당신이 30일 정도만 단식을 하고 바로 다른 음식을 삼켜보라고. 아마 죽지 않으면 위독한 지경에 이르게 될 것입니다.

저는 3번의 단식을 지켜보았습니다. 그래서 단식을 하는 것보다 단식이 끝난 뒤 더 위험하다는 것을 잘 알고 있습니다. 단식이 끝나도 바로 음식을 먹을 수가 없습니다. 우선 여러 잡곡을 푹 끓여서 꼭 짜내고 국물만 먹었습니다. 제철에 나는 채소와 다시마 끓인 국물 정도로 일주일정도는 속을 다스려야 죽이라도 먹을 수 있었습니다. 긴 단식 중에는 물 종류 이외에는 먹을 수 없다는 것을 단식을 해본 분이라면 잘 알 것입니다.

언니가 이런저런 핑계를 대며 억지로 등을 떠밀어 집에 오기는 했지만 가만히 앉아 있을 수가 없었습니다. 속상해서 집에 돌아오자마자 맡겨놓은 아이들을 데려올 생각도 않고 펑펑 울었습니다. 다른 때 같으면 울만큼 울면 속이 시원해지는데, 왜 울면 울수록 답답해지는 것일까요? 누구를 원망할까요? 단식을 하는 언니를 원망할까요, 아니면 가만히 쳐다만 보고 있는 청와대를 원망할까요, 그것도 아니면 하늘을 원망할까요?

제게 언니는 내가 죽으면 아무도 손대지 못하게 하고 니가 꼭 가족장으로 해달라고 신신당부를 했습니다. 저는 알았다고 안심을 시켰지만, 기가 막혀 웃을 수밖에 없었습니다. 어이없는 환경영향평가로 산과 계곡을 마구잡이로 훼손시키는 사람은 죄가 없고, 그것을 지키려는 사람은 죽음 앞에 서야하는 게 우리의 자연보호 현실이었습니다. 지키는 것 역시도 우리의 몫입니다. 모든 분들이 공이 적고 많음을 따지지 말고 한마음으로 도와주시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밥 한 그릇이 우주


  일완지식(一碗之食)에 함천지인(含天地人)이라. 곧 ‘밥 한 그릇에 하늘과 땅과 사람이 들어있다’는 뜻이다. 무슨 뜻인가? 장일순의 얘기를 들어보자.

  “해월 선생님의 말씀 중에 밥 한 그릇이 만들어지려면 거기에 宇宙 一體가 參與해야 한다는 말씀이 있어. 宇宙萬物 가운데 어느 것 하나가 빠져도 밥 한 그릇이 만들어질 수 없다 이거야. 밥 한 그릇이 곧 宇宙라는 얘기도 되지. 잡곡밥 한 그릇, 김치 한 보시기 같은 소박한 밥상도 전 宇宙가 참여해서 차려 올리는 밥상이라는 거야. 그러므로 거기에 고기반찬이 없다고 투정하는 건 무엇이 올바르게 사는지를 모르는 엉터리 짓이야.”

  건강한 사람에게는 무엇을 먹든 다 달다. 맛있고 고맙다. 밥맛이 없다면, 밥상 앞에서 고마운 마음이 일지 않는다면 자신의 삶을 돌아봐야 한다. 뭔가 크게 잘못 살고 있는 게 分明하기 때문이다.

  “사람도 마찬가지야. 요즘 出世 좋아하는데 어머니 뱃속에서 나온 것이 바로 出世야. 나, 이거 하나가 있기 위해 태양과 물, 나무와 풀 한 포기까지. 이 地球 아니 宇宙 全體가 있어야 돼. 어느 하나가 빠져도 안 돼. 그러니 그대나 나나 얼마나 엄청난 存在인가. 사람은 물론 풀 한 포기, 벌레 한 마리까지도 위대한 한울님인 게지.”

  장일순은 飮食을 가리지 않았다. 外食을 할 때도 사람들이 권하는 대로 거절하는 법이 없이 따랐다. 추어탕도 먹었고, 개고기도 먹었다. 제일 좋아하는 것은 무엇이었을까? 아내에게 물어보았다.

  “칼국수였어요.”

  밥상에 무엇이 올라오느냐는 장일순에게 전혀 문제가 안 됐다. 여러 번 보았다. 밥을 먹기 전에 밥상을 향해 잠시 고개를 숙이던 모습을.

  “밥 한 사발만 알면 모든 것을 알 수 있어. 해월도 그런 말씀을 하셨지. 우리가 평생 배워 아는 것이 밥 한 사발을 아는 것만 못하다고. 대단한 말씀이지. 이 밥알 하나라도 하늘과 땅과 사람이 서로 힘을 합하지 않으면 생겨날 수 없는 법이야. 하찮게 보이는 밥알 하나가 宇宙를 백그라운드로 삼고 있는 셈이야. 靑瓦臺 빽 좋아하는데, 그런 건 아무것도 아니야. 밥알 하나, 티끌 하나에도 대우주의 生命이 깃들어 있거든.“

  佛敎의 食事 기도는 이런 내용으로 시작된다.

  “한 방울의 물에도 천지의 은혜가 스며있고, 한 알의 곡식에도 萬人의 勞苦가 담겨있다.”

 

- [좁쌀 한 알 장일순]  최성현. 도솔. 2004. 215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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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루탄을 쏘지 마라"

"위통을 벗어 던진 채 하늘을 향해 두 손을 쳐들고 더 이상 '최루탄을 쏘지 마라'며 아스팔트를 달리는 청년이 갑자기 카메라에 들어왔다.

1984~1990년 사이 시위현장만 집중적으로 지켜 보았던 당시에 그 동안 찍어 왔던 무수한 사진이 대부분 폭력장면투성이여서 데모 현장 속에서도 무엇인가 가슴에 와 닿는 사진이 찍혀 주기를 고대하고 있었던 이날, 1987년 6월 26일 평화대행진은 부산 출장 3일만의 일이었다.

전국적으로 80년대 최대의 시위로 불리던 이날 부산 문현동 사거리는 8천여 데모군중이 경찰과 대치하고 있었다.

경팔이 다탄두 최루탄을 일제히 발사하자 군중 속에서 갑자기 대형 태극기가 펼쳐지고 그 태극기 앞에 위통을 벗은 청년이 더 이상 '최루탄을 쏘지 마라'며 튀어나온 것을 나는 본능적으로 '이거다' 하며 목에 걸고 있던 세 대의 카메라 중 니콘 F2 300밀리 렌즈로 후다닥 2컷을 찍었는데 찍자마자 쳥년과 태극기는 인파 속으로 파묻혀 버렸다.

순간적으로 벌어진 이 영상은 나에게는 하늘이 준 선물이었고 기억에 남는 걸작 사진이 되었다.

그 청년의 절규는 정당성과 도덕성이 결여된 국가 공권력, 그리고 이 사회의 모든 오류와 이 세상을 향애 외치는 양심의 상징 같았따. 이 사회의 폭력, 탐욕, 무지, 저속, 잔인, 부정에 대해서 몸부림치는 청년의 모습이기도 했다.

5공화국과 6공화국의 정치형태에 분노하며 최루탄과 함께 눈물 흘리며 돌아설 때 나는 갈망했다. '이제 다른 사진을 찍고 싶다' 정말 민주화를 이루는 방법은 이것 뿐인가. 노동자가 임금을 올리고 대학생들이 민주사회를 요구하는 방법이 이것뿐인가. 그리고 그것에 대처하는 공권력 모두가 답답하고 울적할 때가 한두 번이 아니었다."

고(명진)기자는 특별히 민주화의 현장에 관심을 갖고 시위현장만 계속 다니다 보니 '데모 사진기자'로 소문난 기자였다.

역사적인 현장을 제일선에서 지켜보아야 하는 사진기자는 항상 진압경찰과 시위대의 중앙에서 시달려야한다. 전쟁터를 방불케하는 시위현장에서 방독면과 헬멧, 그리고 사다리, 무전기, 카메라 가방을 메고 시위대들의 돌멩이, 화염병과 경찰의 최루탄과 몽둥이를 피해가면 카메라 초점을 맞추는 행위는 엄청난 위험이 따른다. 폭력경찰을 사진 찍는 사진기자의 경우 폭력이 가해 오는 것을 각오해야한다. 최루타노가 파편이 피부에 박혀서 병원에 입원도 해야하고 화명병에 화상을 입고 붕대를 동여맨 채 쥐재다는 것도 다반사로 되어 있다.

[ 이 한장의 사진] 해설 전민조. 행림 출판 1994. 114쪽 인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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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콩 2005-03-01 21:2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오늘은 3.1절.. 이철수님 말대로 미완의 3.1절.. 저... 태극기..
 
썸데이 서울
김형민 지음 / 아웃사이더 / 2003년 12월
평점 :
절판


정확한 위치가 어디였더라.. 수영에서 광안리로 넘어가는 도로.. 수영로타리 못가서였던가? (눈썰미가 없어서리..) '그 그림'을 간판으로 만들어 붙여놓은 사무실이 있었다. '여성과 민족000' (에잉 기억력, 너마저도..) 이라고 씌여진 간판... 순간 움찔 놀라며 이 책 - [썸데이 서울]의 한 쪽이 떠올랐다. 몇 십 번은 지났을 이 길.. 왜 진작 보지 못했을까?

정확하게 말하면  <빼앗긴 순정, 파헤쳐진 나들목>이라는  글이다! 사실 책에 실린 사진과 그 사무실의 '간판'에 사용한 그림은 같은 것이 아니었는데 자연스럽게 연상되는 걸 보면 그 글 자체에 아주 많이 공감하고 또 반성하고 있었나 보다. 위안부 할머니들에 관한 글이었다. 작가는 PD로 취재했던 경험으로 이 글을 썼는데 할머니들의 삶을 바라보는 일반인(작가 자신을 포함한)들의 무심함에 통쾌한 펀지를 사정없이 날린다. 그것이 자신에게도 날리는 주먹이기에 '그러는 너는?'이라고 반문조차 할 수 없다. 이 책의 글들은 모두 이런 식이다.

작가는 참으로 '예민한 양심'을 가졌다. 일상적이고, 그래서 사소하다고 느낄 수 있는 일들 하나하나에 '양심'의 촉각을 세우고  독자를 반성하게 한다. 물론 이 반성은 작가가 늘 앞서 하고 있다. 그래서 독자인 나는 '너는?'이라는 짜증스러운 질문을 할 수 없었다. 그 질문은 오히려 '그러는 나는?'으로 되돌아왔다.

하나하나 작은 글들은 80년대와 현재를 요리조리 오가며 추억을 떠오르게 하고, 그것이 그저 아름답기만 한 추억은 아닐 수 있다고, 지금도 그런 잘못들은 계속되고 있다고 말해준다. 그래서 이 책은 재미있으면서 재미만 있는 것은 아니었다. 가슴이 아릿하게 저려오기도 했다.

일상은 늘 계속된다. 우리는 일상을 살면서도 일상을 벗어난 특별한 사건에는 핏대를 세우며 '是'와 '非'를 가리려고 한다. 그러나 그것이 지겹게 반복되는 나의 일상이 되면 민감했던 촉수는 점차 무뎌져서 관용을 가장한 무관심으로 잦아든다.  작가와 같이 '민감한 양심'을 지니지 못한 나같은 사람은 더 그렇다. 덕분에 나의 일상을 돌아보는 계기가 되기도 했다. '나였다면? 그 시간에 나는 어디서 무얼 했더라? 나도 그런 '몰상식한 가해자 편'에 서있었던 것은 아닐까?'  '.............'

홍세화 아저씨는 그가 '아직 분노하지 않는'다고 했다. 글 속에서 그는 자주 '분노'했지만 그가 '진짜로  분노하게 되면' 어떤 모습일까 궁금하다.

2004. 8. 25. 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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느티나무 2004-08-31 11:1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11100 ㅋㅋ 제가 100번째 방문객이네요. 축하드립니다. 좋은 글 감사하구요.

해콩 2004-09-01 08:3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11100이게 어디 나오는 숫자? 100번째 방문객인지 어떻게 아시는 거죠? 아무리 찾아봐도.. 그런 숫자는 안 보이는디... 추천은 샘이 해주신 거죠? (제 리뷰 추천은 모두 샘께서?...! 허허허 ^^)
 

"인문. 사회과학과 자연과학 사이에는 한 가지 큰 차이가 있어 보인다. 자연과학의 '공부'는 깊이 들어갈수록, 정도가 높아질수록 어려운 이론이 나온다. 인간의 마음과 생활에 관한 '공부'인 인문*사회과학도 별의별 이론이 많기로는 자연과학에 못지않으면서도 되돌아오는 곳은 단순한 인간도 대체로 수긍할 수 있는 본질적 요체, 평균적 두뇌로 이해되는 간단한 결론이다. 무엇인가 자꾸만 어려운 이론이나 학설, 철학을 동원해야 자기의 정당성을 변론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정책*사상*결정*입장은 벌써 민중을 떠난 소수자의 것이다. 어떠한 이론을 근거로 계산해서도 한 가마의 쌀값이 농민의 생산원가에 미치지 못할 때, 농민이 누군가를 위해서 당하고 있거나 적어도 농민을 위한 농업정책이 아니라는 것은 농민에게는 어둠 속에 불을 보기보다도 분명한 사실이다. 그것을 알기 위해서 리카도의 지대론(地代論)이나 세이의 시장법칙이론을 농민은 공부할 필요가 없다. 하물며 마르크스의 자본론 같은 것은 들어본 일이 없어도 시골의 농민이나 평화시작의 소녀직공은 생존의 체험을 통해서 가치와 현실사이의 크게 잘못된 점을 알게 될 것이다"

리영희 [분단을 넘어서] (한길사 1984). 강준만 편저 [한국 현대사의 길잡이 , 리영희] 111쪽 재인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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