군자(君子) 삼락(三樂)

 

권정안 / 소장ㆍ공주대 한문교육과 교수


삶과 행복

 

 사람들이 추구하는 삶의 가치와 목적은 제각기 다르고 또 다른 것이 정상이겠지만, 그래도 그것을 폭 넓게 정의해본다면 아마 행복이 아닐까 합니다. 사실 다른 것은 행복 자체가 아니라, 그 행복의 서로 다른 조건이 아니겠습니까? 이 때문에 우리는 나름의 행복을 가져다주는 조건들을 얻기 위해 애를 쓰는 것이며, 그런 조건들을 얻지 못하거나 얻을 희망이 없을 때 조바심을 내기도 하고 궁핍과 좌절의 고통을 느끼는 것인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러나 솔직하게 말씀드리면 50년을 넘게 살아온 저도 제 삶이 행복했는지 불행했는지 단언하기 어렵고, 과연 무엇이 행복했고 무엇이 불행했는지도 잘 모르겠습니다. 물론 내 뜻대로 잘되어서 득의양양한 경우도 있고, 아내와 연애할 때 설렘과 생명의 고양을 느껴본 경험도 있고, 타고르의 시처럼 아이들 얼굴에 떠오르는 미소를 보고 하늘에서 흘러내리는 축복을 맛본 경험도 있고, 지난 월드컵 때에 행복했던 몇 주일도 있고, 지난 겨울을 포함한 산중에서 행복했던 공부의 경험도 있습니다. 

 그래도 저는 여전히 제 삶의 행복에 대한 확신을 갖지 못합니다. 그것은 제가 이 여러 가지 행복했던 과거의 경험에 만족하기보다 행복의 조건들을 지금 여기와 미래에서 찾고 있기 때문인 것 같습니다. 그러니 분명히 저는 만족을 모르는 엄청난 욕심쟁이임에 틀림없습니다. 이런 욕심쟁이 아닌 사람이 세상에 몇이나 있느냐고 엉뚱한 핑계를 대 보지만, 노자에게 단단히 꾸중을 들어도 할 말이 없습니다.

 그 뿐만이 아니지요. 정말로 욕심은 끝이 없어서, 50쯤 나이를 먹은 지금에 와서 가장 후회스러운 것은 예전에 행복했던 것들을 다 잃어버리고 이제 와서야 그것이 행복한 것이었음을 알게 된 경우입니다. 훨씬 행복했을 것을 놓쳐버린 이 지난 날의 어리석음과 미숙함에 대해서는 도무지 용서가 되지 않습니다. ‘봄을 찾으러 온 들판을 쏘다니다가 돌아와 보니, 봄이 담장 위에서 기다리더라.’는 말은 얼마나 부러운 말인가요? 봄은 이미 가버렸으니.

 이처럼 우리 삶에 주어진 행복도 제대로 찾아 누리지 못한 사람이니, 이런 사람이 스스로 만들어 가는 행복에 대해서야 더 말할 게 있겠습니까? 공부 헛한 것이지요. 그래서 이제부터라도 공부 다시 해야 하겠습니다. 가슴을 저며 오는 무상감을 이겨내면서 말입니다.       

 


행복(幸福)과 열락(悅樂)


 앞에서 주어진 행복과 만들어 가는 행복에 대해서 언급했는데, 사실 행복이라는 한자어는 주로 주어진 것을 표현하는 말입니다. 행(幸)이란 말은 다행, 즉 ‘행운이 많음’을 의미하는 말로써 때로는 요행의 의미이기도 합니다. 복(福)이라는 한자어도 역시 하늘이나 신이 내려주는 좋은 조건이나 결과를 말하는 것으로, 인간이 성취한 좋은 조건이라는 의미의 덕(德)과 상대적인 것입니다. 우리가 운(運)이라고 부르는 것이 얼마나 우리의 삶을 크게 규정지어 버리는가를 생각해보면, 이 행운(幸運)과 다복(多福)을 합쳐서 행복이라고 부르는 것도 이해가 됩니다.

 그리고 오늘 우리가 살아가는 이 시대에 있어서 이 행복의 가장 중요한 실체는 풍요로운 삶의 조건인 것 같습니다. 그 속에서 우리는 대부분의 옛날 분들은 꿈조차 꾸지 못했던 풍요로운 물질적 조건을 갖추고 더 많은 자신의 욕망과 쾌락을 추구하며 살아갑니다. 물론 아직도 기본적인 생존 조건을 제대로 갖추지 못한 사람들도 있고, 상대적인 박탈감에서 현재의 풍요조차 도리어 상처가 되고 아픔이 되는 경우도 있지만 말입니다.

 그러면서도 우리는 과연 이 물질적 풍요와 욕망 충족의 쾌락이 행복인가 하는 회의를 느끼고, 이 물질적 조건과 욕망의 충족만이 행복이 아니라 사람마다 행복은 서로 다른 것이라는 다원적 가치의 시대를 찾아가고 있는 것으로 보이기도 합니다. 특히 물질적 풍요에 대한 추구가 필연적으로 초래하는 치열한 경쟁에 스스로의 삶을 낭비하는 것을 견디지 못하고, 행복의 조건에 대한 다른 대안을 찾는 기회를 가져본 사람들에게 이런 흐름이 강한 것 같아 보입니다. 

 모색되는 대안들은 다양해 보입니다. 가장 흔한 것은 자신의 건강을 위한 활동과 취미 생활, 그리고 이 둘을 결합한 형태의 활동 속에서 행복을 찾는 것으로 보입니다. 많은 기성세대가 이 흐름 위에 있으면서도 거의 맹목적으로 거기에 집착하는 형태라면, 요즈음의 젊은 세대들은 그들의 행복한 삶의 조건을 어떤 고정된 조건과 관계에서 찾지 않는 이른바 ‘쿨한’ 모습을 보여줍니다.

 기성세대의 한 사람으로써 저도 전자에 가깝지만, 이 양자 사이에 공통점은 오히려 행복의 외적인 조건이 아니라 행복의 주체인 개인으로서의 자기 자신을 소중하게 생각하는 점에 있는 것이 아닌가 합니다. 저는 기성세대나 젊은 세대가 보여주는 자신의 행복 찾기의 실제적인 내용에 대해서는 모두 동의하는 것은 아니지만, 행복의 외적 조건에 대한 맹목적인 추구에서 행복의 주체로 눈을 돌린 이 흐름에 대해서는 긍정적인 것으로 봅니다.

 왜냐하면 이 전환은 적어도 행복의 조건을 주어진 것으로 보는 수동적인 자세는 물론이고, 외적인 조건에서만 행복을 찾는 맹목적 추구의 멈춤과 반성이라는 두 가지 의미를 담고 있다고 보기 때문입니다. 저는 그것이 행운과 다복이라는 의미의 행복(幸福)에서 희열과 쾌락이라는 의미의 열락(悅樂)으로 무게의 중심이 옮겨가는 중요한 전환점이 될 것으로 봅니다.

 열락이라는 말은 만들어지고 쓰인 역사에 비하면 현실에서는 사실 별로 쓰이지 않는 용어입니다. 그것은 아마 우리가 지내온 대부분의 역사적 현실이 주어진 행복의 조건들에 의해 결정되거나, 행복을 말하기에도 너무나 참혹한 아픔과 상처들로 점철되어 있었기 때문이 아닌가 합니다. 실제로 이 풍요의 시대를 살아가고 있는 우리 회원들의 경우에는 스스로가 정당하게 성취한 행복의 조건조차 도리어 죄스럽게 생각하는 경우도 있는 것 같습니다.

 어쨌건 한자에는 초기에 열락의 열(悅)이라는 한자가 없었습니다. 물론 그 시대라고 희열이 없었겠습니까? 그래서 설(說)이라는 글자를 빌려 희열을 표현하는 문자로 사용했던 것입니다. 그런데 이 주 글자가 공통으로 가지고 있는 태(兌)라는 글자는 주역(周易)의 팔괘(八卦) 가운데 하나인데, 그 태괘의 중요한 상징 가운데 하나는 소녀(少女)입니다. 그러니 지금 열(悅)이라는 한자는 ‘마음 속에 젊고 아름다운 소녀 하나를 품고 살아가는 상태’를 표현한 것이라고 할 수 있겠지요. 요즈음 여성들에게 유행하는 꽃미남에 대한 노골적인 선호의 주역적인 버전이라고나 할까요?

 락(樂)이라는 한자는 본래 음악을 연주하는 악기 가운데 큰북과 작은북이 나무로 만든 악기 틀에 올려져 있는 모습을 그린 것입니다. 음악이 인간의 행복의 중요한 표현 양식이고, 동시에 인간의 행복을 돕는 도구임을 보여주는 것이라고 하겠습니다. 특히 북은 인간의 심장 박동과 가장 밀접한 연관을 갖는 악기여서, 사람의 심장의 움직임을 ‘북 고(鼓)’ 자를 써서 고동(鼓動)이라고 하는 것입니다. 그것은 인간의 즐거움은 항상 심장을 고동치게 하는 감동의 상태임을 의미하는 것이라 하겠습니다.

 이미 짐작하신 분들도 계시겠지만, 이 희열과 쾌락을 결합한 열락이라는 말은 공자의 논어 첫머리에 나오는 것으로, 우리 회지 창간호와 2호에 이 난에서 말씀드렸던 것입니다. 그리고 거기에서 희열이란 개인의 내면에서 홀로 우러나는 기쁨이라면, 즐거움은 더불어서 함께 나누는 것임을 말씀드린 바가 있었습니다. 그리고 이 공자가 말한 열락은 모든 사람에게 가능한 것이기는 하지만, 가장 중요한 관건은 그 열락의 주체인 인간이 군자라는 인간상을 갖추었느냐 아니냐의 여부라고 하였습니다.

 저는 이 공자의 행복론 아니 열락론이 유학이 그 이상을 실현하는 방법으로써 제시한 수기치인(修己治人)이라는 도(道)의 가장 중요한 동력이라고 생각합니다. 제가 유학에 대한 말씀을 드리면서 매번 유학이 우리에게 얼마나 지겨운 자기반성을 끊임없이 요구하는 것인가를 말씀드렸지만, 정직하게 말하자면 사실은 지나온 제 삶이 이 경지에서 얼마나 떨어져 있었는가에 대한 고백이었던 셈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저는 이 공자의 열락론이 상당히 설득력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것이 아마 제가 가슴을 스쳐 가는 세월의 무상감에 치를 떨고, 돈과 권력과 명예가 열락을 가져다 줄 것이라는 기대에 이리저리 귀를 쫑긋거리고, 온갖 쾌락의 달콤한 유혹에 수도 없이 스스로를 기꺼이 내던지고, 이기적인 자기 합리화와 우스꽝스러운 자아도취 속에서 나의 안일을 추구하는 피투성이의 삶 속에서도 아직 이 견해를 포기하지 못한 이유입니다.

   

                  

첫 번째 즐거움


 맹자는 이런 저에게는 너무나 부러운 분입니다. 유명한 맹자의 삼락(三樂)은 사실 군자(君子)라는 전제가 붙어 있는 것이니, 사실 제가 부러운 것은 그 열락이 아니라 그 군자라는 인간이라는 것이 옳을 것입니다. 맹자 진심장 상(盡心章 上)에 나오는 이 말은 이렇게 시작됩니다.


   군자에게는 세 가지 즐거움이 있는데, 천하의 왕자가 되는 것은 그 가운데 포함되지 않는다. (君子有三楽 而王天下 不与存焉)


 이 구절 가운데 ‘왕천하’라는 말은 지금은 이해하기 어려운 말입니다. 그러나 맹자가 사용한 이 말의 본래 뜻을 생각하면, 그것은 인류적인 지도자가 되어서 전 인류에게 안정되고 행복한 삶을 가능하게 하는 세상을 만든다는 의미입니다. 그것은 유학의 이상인 동시에 수만은 인류의 지성들이 꿈꾸어 온 이상입니다. 적어도 이런 노력을 해온 진정한 지성들에게 그 이상의 실현만큼 행복한 것이 또 있을까요?

 물론 이 말의 세속적인 의미가 절대 권력을 쥐고서 천하를 제 마음대로 요리하는 한 사람만의 절대 자유와 그 행복으로 이해되고 있지만, 맹자의 본의는 이것이 아님은 분명합니다. 사실 이 말이 갖는 본래의 의미는 오히려 앞의 논어에서 공자가 추구한 더불어 즐거운 삶의 궁극적인 경지를 의미하는 것이라는 점에서 쉽게 이해가 되지 않는 말입니다.

 다만 잘 알려져 있지는 않지만, 맹자는 이 구절의 바로 다음의 구절에서는 이 내용과 달리 “천하의 중심에 서서 사해의 백성들의 삶을 안정시켜주는 것을 군자는 즐거워한다(中天下而立 定四海之民 君子楽之)”라 하였습니다. 우리를 혼란스럽게 만들고 있지요. 그러면서도 맹자는 바로 이 내용을 삼락을 말한 뒤에 다시 한번 강조하여 되풀이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저는 이 구절의 의미를 ‘한 사람이 진정한 지성이 되어서 인류적인 이상을 구현하는 기회를 갖고 그것을 성취하는 것은 매우 즐거운 일이다. 그러나 군자에게는 이보다 더 큰 즐거움이 적어도 세 가지는 있다.’ 라는 의미로 이해합니다.

 그 첫 번째는 이것입니다.


   부모님들이 모두 살아 계시고, 형제들에게 아무런 탈이 없는 것이 첫 번째 즐거움이다.(父母倶存 兄弟無故 一楽也)


 우리가 행복의 조건들을 가치로 보는 것이라면, 이 말은 적어도 군자는 왕천하의 가치보다 부모님들이 모두 살아 계시고 형제들에게 아무런 탈이 없는 것이 더 높은 가치이며, 더 중요한 행복의 조건이라는 의미입니다. 자신의 행복과 열락을 중시하는 개인주의적인 가치관을 갖는 사람은 물론 사회적 이상 실현에 높은 가치를 부여하는 지성인들 모두에게 이 말은 녹녹하지 않은 도발적인 제안입니다.

 차라리 ‘자식들에게 아무 탈이 없고’ 라는 말이 들어갔다면, 저처럼 자식들을 길러본 사람들에게는 꽤 공감이 가는 말이었을텐데 말입니다. 물론 이 구절의 내용에 대해서, 그 부모와 형제에게 다른 조건이 붙어있지 않다면 상당히 공감을 하는 사람들도 많이 있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이 말이 자신의 행복이나 오늘날 가족의 중심이 된 소가족의 행복에 어떤 형태이건 장애가 되는 조건이 달려있는 부모 형제라면 어떨까요? 참혹한 말이지만, 우리의 부모님들이 한창 나이 때에 입버릇처럼 탄식했던 ‘자식이 웬수다.’ 하신 말씀은 거의 전부 말씀일 뿐이었지만, 그 말을 뒤집어서 말이 아니라 현실의 행동으로 부모님께 돌려드리는 일이 너무 흔한 시대에 우리가 살고 있는 것은 아닌지요? 그 속에서 형제의 무고함이야 더 이상 말할 것이 있겠습니까?

 오히려 저는 이 말의 가치를 더욱 절실하게 느끼는 사람들은 이 행복을 잃어버린 분들이 아닌가 합니다. 저는 다행하게, 정말로 다행하게 이런 행복을 누리고 있지만, 강의 시간에 이 말을 할 때마다 조심스러운 것은 저보다 훨씬 젊은 학생들 가운데 누군가에게 이 말이 못을 박는 것이 아닌가 하는 느낌을 받기 때문입니다. 내 일이 아님에도 정말 가슴이 저려옵니다. 그리고 내가 그런 행복을 갖고 있다는 것이 절대로 미안할 수 없는 일이면서도, 공연히 미안스러워 말을 주저하게 됩니다.

 맹자는 정확하게 알려져 있지는 않지만 아직 명성이 나기 이전에 아버지를 여의고, 오늘날 교육열의 상징처럼 되어있는 어머니를 모시고 살았습니다. 그러니 이 구절은 적어도 맹자가 아버지를 여읜 뒤에 나온 말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고, 그렇다면 맹자는 이 말을 자신의 행복을 자랑하기 위해 한 말 같지는 않습니다. 오히려 그 행복의 결여에 대한 쓰라린 가슴을 부여안고 한 말이라고 보는 것이 옳을 것입니다.

 그러면 맹자가 말한 ‘부모님께서 모두 살아 계시고 형제들에게 아무 탈이 없는’ 이 행복의 실체는 무엇일까요? 저는 그것을 ‘사랑 받고 사랑했던, 그것도 무조건적인 사랑의 체험’이라고 생각합니다. 우리들의 전 삶의 영역에서 두 번 받기가 참으로 어려운 이 사랑의 주인공들이 계신다는 것은, 설혹 우리가 이미 그 사랑을 받음을 더 이상 필요로 하지 않을 만큼 성장했다고 해도 얼마나 우리를 따뜻하게 만들어 주는 것일까요?

 세상에서 제일 불쌍한 사람은 어려서 부모를 잃은 사람이라 합니다. 불쌍하다는 말은 한자로 ‘불상(不祥)’이라고 씁니다. 복이 없다는 말입니다. 그것이 왜 복이 없는 것이겠습니까? 한창 부모의 사랑으로 자라야 할 나이에 바로 그 사랑을 줄 사람을 잃은 것만큼 복이 없는 것이 어디에 있겠습니까?

 그래서 일찍 부모님을 잃은 아이들에게는 작은 사랑 받음의 추억이라도 기억해보라고 권하고, 그 기억마저 없는 아이들에게는 그 사랑을 상상이라도 해 보라고 권하기도 합니다. 그러나 그 얼어붙은 가슴을 녹이는 일은 그래도 제가 할 수 있는 일이 아님은 너무나 분명하지요. 하물며 그 아픔을 스스로 이겨내라고 난 체하는 소리를 할 수 있겠습니까?

 더욱이 지금 세상에는 차마 말하기도 겁나는 더 참혹한 경우도 없는 것이 아닌 것 같습니다. 그래서 이 구절은 마지막으로 이런 행복이, 아니 그것을 갖지 못한 아픔이 하늘이 준 조건임을 암시하고 있습니다. 이상한 논리일지 모르겠지만, 인간은 참으로 아플 때 원망할 것이라도 있으면, 도리어 그것이 의지거리가 되는 것이 아닌가 합니다. 우리 인간은 그 원망을 받아줄 수 있는 하늘을 닮기에는 아직도 너무 멀었습니다. 

 맹자가 말한 첫 번째 즐거움은 사실 인간의 자유로운 의지에 의한 선택의 여지가 거의 없는 것입니다. 그것은 하늘이 결정하고 그 결정된 조건이 인간에게 주어지는 것에 가까운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 조건이 감당하기 힘들고 참혹할 때, 그래서 하늘이 그 원망을 받는 것이겠지요.

 그러나 사실 이 경우에도 인간에게 여지가 전혀 없는 것은 아닙니다. 맹자가 말한 ‘부모님 모두 살아 계시고 형제들 아무런 탈이 없는’ 이런 조건이 축복을 받은 모습임에는 틀림없고, 그것을 갖지 못한 경우에 인간이 불행함을 느끼는 것도 사실이지만, 의외로 현실의 모습을 보면 훨씬 좋은 조건을 받고 있으면서도 끊임없이 그 주어진 조건에 대해 불만을 느끼고 불행하다고 여기는 사람도 있지만, 역으로 분명히 다른 사람과 비교해서나 심지어 객관적으로 보아서 나쁜 조건을 받고서도 그것을 축복이라고 여기는 사람도 있는 것입니다.

 그것은 우선 하늘이 주신 조건을 받아들이는 인간의 자세에 의해 결정됩니다. 가장 바람직한 것은 우선 그 조건을 스스로의 현실과 운명으로 받아들이고 긍정하며 한 걸음 나아가 사랑하고 즐거워하는 자세라고 합니다. 니체는 이것을 ‘운명에 대한 사랑’이라고 말했지만, 동양에서는 이것을 ‘낙천지명(樂天知命)’이라고 하였습니다. 예를 들어 하늘이 좋은 부모와 마찬가지로 더 좋은 자식을 주시지 않았더라도, 이런 부족한 자식일지라도 축복이라고 여겨서 감사하고 행복해하는 것과 같은 것입니다.

 그러나 이런 자세가 중요한 이유는 일반적으로 오해하는 것과 같이 단지 이런 천명에 순종하는 소극적인 숙명론적 태도에 있는 것이 아닙니다. 이런 자세가 중요한 가장 큰 이유는, 이런 ‘낙천지명’하는 자세야말로 그 주어진 조건을 우리에게 주어진 현실의 유일한 조건임을 자각하고 인정하여, 바로 그 가운데서 우리 자신이 소중하게 생각하는 것들을 창출해 가는 터전과 출발점으로 삼을 수 있는 전제이기 때문입니다.

 부모가 되어서 가장 완벽한 자식을 가져야만 부모로써 자식을 사랑하는 것이 아니라, 어떤 부족한 모습의 자식이라도 바로 그 자식을 사랑하는 것이 우리 인간이 주어진 조건 속에서 만들어 갈 수 있는 정의인 것입니다. 바로 이 길 위에만 부족한 자식이라는 주어진 조건을 바꾸어 갈 수 있는 유일한 길이 있는 것이 아닌가 합니다. 옛날 분들은 이것을 ‘명중현의(命中顯義)’라고 하였습니다. 자식과 부모 이외에 우리가 선택하지 않고 주어져 있는 여러 가지 조건들을 대입시켜 보시기 바랍니다.

 


두 번째 즐거움

 

 앞에서 주로 우리 인간에게 주어진 조건에 대해서 말씀을 드렸지만, 우리 인간이 갖는 내외의 조건은 모두 결정되어 주어진 것만은 아닙니다. 의외로 인간은 그 자신의 선택에 의하여 스스로의 내외적인 조건들을 만들어 가기도 합니다. 이것은 인간에게 자유의지에 의한 선택의 영역이 있음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물론 이것도 그 선택의 출발점에서는 주어진 조건을 근거로 하고 있다는 점에서 처음부터 완전히 자유로운 것은 아닐 것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분명한 것은 그 미래를 향한 매 선택의 순간에 우리들 앞에 다양한 선택의 가능성이 있다는 사실입니다. 그 선택의 주체가 비록 과거의 주어진 조건들로부터 완전히 자유롭지는 않고 그 조건에 의해서 규정되는 모습을 갖고 있다고 하더라도, 그 선택의 순간에 인간 주체는 다양한 선택의 여지들이 주어지고 그 가운데 하나를 선택할 수 있는 자유를 갖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그것도 거의 인생의 매 순간마다 말입니다.

 그런 면에서 이 곳이야 말로 진정한 의미에서 우리 인간의 자리인 것 같습니다. 불교에서 ‘일체유심조(一切唯心造)’라고 하는 말이 주는 의미는 바로 이것이 아닌가 합니다. 그러나 이 선택들은 동시에 인간에게 매우 엄중한 선택의 책임을 물어오는 자리이기도 합니다. 그것이 단순히 주어진 조건에 의해서 결정되는 것이라면, 우리는 그 결과들에 대해 그 조건들에 핑계를 돌릴 수가 있지만, 이 자유의지에 의한 선택에 영역에서는 책임을 돌리는 것이 쉽지 않고 그 스스로가 책임을 짊어져야 하기 때문이지요.

 이 두려움은 의외로 녹록하지 않아서 인간은 때로 그 자유의지의 주인으로서의 역할을 기꺼이 포기하기도 합니다. 선택 자체가 보이지 않는 미래를 결정하는 것에 대한 두려움에다, 그 선택의 결과가 실패로 드러나는 상황이 되풀이될 때, 그리고 그 책임을 감당하기 어려운 처지에 빠지게 되었을 때, 인간은 차라리 이 자유의지의 주인이기를 포기하고자 하는 유혹에 흔들리게 되는 것이 아니겠습니까?

 저는 개인적으로 이러한 두려움과 자포자기가 다른 사람의 삶과 그 삶의 조건들을 자신의 의사대로 휘두르고자 하는 탐욕스러운 지배의지와 함께, 우리들의 삶과 사회와 세계를 왜곡된 형태로 굴절시켜온 두 개의 기둥이라고 생각합니다. 우선 이 두 가지 내외의 질곡을 모두 거부하는 그 자리에 바로 맹자의 두 번째 즐거움의 출발점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하늘을 우러러 부끄럽지 않고, 굽어서 다른 사람들에게도 부끄럽지 않은 것이 두 번째 즐거움이다.(仰不愧於天 俯不怍於人 二楽也)


 스스로 자신의 삶의 주인임을 선언함은 그 어떤 다른 것에도 그 주인의 자리를 내어주지 않음이며, 그것은 당연히 나를 대신하여 나의 삶의 주인이 되려고 하는 모든 것에 대해서 단호하게 거절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너무나 미숙하고 너무나 나약한 우리는 이런 것들의 유혹과 위협을 거부하는 것이 얼마나 힘든 것인지를 잘 알기에, 맹자의 이 말 속에 담긴 자유인의 드높은 기상이 얼마나 부러운 것인가 하는 것도 분명하게 알고 있습니다.

 그런데 이 자유인의 드높은 기상은 사실 앞에서도 말씀드린 바와 같이 이 즐거움의 출발점에 불과할 분입니다. 아니 전에 말씀드린 것으로 말하면 그것은 더불어 함께 하는 즐거움이기보다는 자신만의 희열에 속하는 것이겠지요. 그것이 진정으로 더불어 함께 하는 즐거움이기 위해서는 당연히 이 자유의 기상과 그것이 주는 자기 희열에 머물러서는 안될 것입니다.

 그래서 이제 맹자의 글을 다시 읽어봅니다. ‘하늘을 우러러 부끄럽지 않음’이나 ‘굽어서 다른 사람들에게 부끄럽지 않음’은 하늘과 마주 선 나와 다른 사람과 마주 선 ‘나’의 부끄럽지 않음인 것입니다. 그 부끄럽지 않은 나의 출발점은 이미 말씀드린 자유인과 그 자유인의 희열이지만, 이 희열이 우선 다른 사람을 마주해서 더불어 함께 하는 즐거움이 되기 위해서는 다른 사람을 자유인으로 인정해야 가능한 것이 아니겠습니까?

 그것은 역시 다른 사람을 독립된 자유인이 아닌 나의 소유로 만들어 지배하려고 하는 참으로 끈질기고 무서운 유혹을 이겨내는 것이며, 그런 모든 제안과 권유를 담담하게 거절하는 용기를 필요로 하는 것이 아닌가 합니다. 정자(程子)께서 이 글을 공자가 인간다움을 성취하는 방법으로 제시한 ‘극기복례(克己復禮)’ 가운데 극기(克己)로 표현한 것은 참으로 뛰어난 통찰이라고 하겠습니다.

 우리가 누군가를 소유하고 지배할 수 있어서 즐거운 것이 아니라, 다른 사람을 소유하려는 우리 스스로의 유혹과 권유와 제안들을 담담하게 거절할 수 있어서 즐거우며, 나아가 다른 사람들을 어떤 경우에도 자유인으로 인정하고 존중하여 자유인과 자유인의 대등한 어울림을 만들어 갈 수 있어서 즐거운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이 구절은 일반적으로 자신의 양심에 아무런 부끄러움이 없는 즐거움을 표현한 것으로 이해하고, 또 그것은 상당한 정도 올바른 해석입니다. 그러나 자신의 양심의 부끄러움이 없다는 실체가 과연 무엇이겠습니까? 과연 현실의 우리는 우리 자신의 모든 행동을 정직하게 비춰보는 온전한 양심과 양심의 눈을 갖고 있다고 자부할 수 있는 사람이 있는 것이고, 또 그것이 가능한 것일까요?

 제가 몹시 부러워서 배우고자 하는 옛날 분 가운데 사마광(司馬光)이라는 분이 있습니다. 그는 중년이 훨씬 지난 나이에 ‘내가 평생 한 일 가운데 남에게 말 못할 일은 아무 것도 없다.’는 말을 하여 저를 절망시킨 일이 있는 사람입니다. 그 글을 읽었을 때, 저는 겨우 20대 초반으로 남에게 말하기 어려운 부끄러운 일이 헤아릴 수 없을 만큼 많았기 때문입니다. 맹자의 두 번째 즐거움 둘째 구절입니다.

 참 많은 세월이 지난 뒤에야 저는 겨우 이 사마광의 말이 그가 평생 아무런 잘못도 범하지 않았다는 의미가 아님을 눈치챘습니다. 아니 사실은 이런 의미인지 몰라도 그렇게 해석하지 않아도 되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그것은 아마 이렇게만 해석한다면 제 자신이 너무나 부끄럽고, 무엇보다도 그 잘못된 지난날을 돌이킬 수 없다는 절망에서 탈출하고 싶었던 것인지도 모르겠습니다.

 어쨌건 저는 사마광의 이 말을 그는 그가 한 행동에 대해서 어떤 사람을 마주해서도 당당하게 말할 수 있었다는 것이며, 이는 그가 자신은 완전한 인간이라는 오만의 표현이 아니라, 스스로의 행동을 비록 미숙하거나 부족한 것이라도 용기 있게 드러내고 당당하게 책임지겠다는 자존의 선언이라고 이해했습니다. 결국 이 경우 저와 사마광의 차이는 용기 있고 당당한 자존심을 갖느냐 못 갖느냐의 차이인 것이며, 이것은 돌이킬 수 없는 과거의 것이 아닌 내가 살아가는 모든 현재의 결단의 문제였던 것입니다.

 옛 분들은 맹자를 완전에 가까운 성현으로 보았고 이는 저도 인정하는 것이지만, 이런 관점에서 저는 맹자의 이 말은 완전한 인간이라는 자부의 표현이기보다 오히려 부족한 자신이라도 솔직하게 드러내는 당당한 자존의 희열과, 바로 그런 눈으로 다른 사람들의 부족한 모습을 너무나 분명하게 보면서도 그를 당당한 자유인으로 보아주고 대접해주며 더불어 함께 하는 즐거움을 표현한 것이라고 이해합니다.

 첫 번째 하늘을 우러러 부끄러움이 없다는 말은 더욱 두려운 말입니다. 우선 누가 하늘을 알겠습니까? 물론 저 푸르고 푸른 하늘[蒼蒼者 天]의 색을 모르겠으며, 그 창공이 무한하게 크다는 것을 모르겠습니까? 제 말은 도리어 우리가 일상에서 너무나 쉽게 끌어다대는 하늘에 대한 것이지요. 그런 의미에서 저는 이 맹자의 하늘에 대해서 정확하게 말할 자신이 없습니다.

 어떤 사람이 ‘나의 진심을 하늘은 아실 것이다.’ 하는 글을 지었는데, 이 글을 보고 정자께서 그를 준엄하게 질책하시기를, “하늘은 존엄하신 것이니, 하늘을 함부로 끌어다대지 말라.” 하였습니다. 저는 오히려 하늘을 함부로 말하지 않는 사람들이 하늘을 조금이나마 더 아는 사람이라고 생각합니다. 오죽하면 공자 같은 성인께서도 50이 되어서야 하늘의 명을 아신다고 하셨겠습니까?

 제 나이 이미 50을 넘겼지만, 저는 아직도 하늘이 무엇인지 또 그 하늘이 나에게 명하신 것이 무엇인지 온전하게는 물론 대충도 잘 모르겠습니다. 어떤 제자가 주자(朱子)에게 천명(天命)이 무엇인지를 물었더니, 주자가 대답을 하지 않았습니다. 잘 알아듣지 못하신 것으로 생각한 제자는 좀 더 큰 소리로 다시 물었더니, 이 위대한 인격과 학문의 소유자인 주자가 노여운 목소리로 ‘내가 천명을 모르는데, 어찌 대답을 할 수 있겠는가?’ 하였습니다. 그러니 제가 하늘을 잘 모르는 것은 너무나 당연한 것이 아니겠습니까?

 다만 옛 분들의 글을 보면, 맹자의 이 말 이외에도 여러 곳에 하늘을 말하고 있으니, 사서의 주석을 낸 주자가 하늘이나 그 하늘의 명령을 전혀 몰라서 이런 말을 한 것이겠습니까? 그래서 저는 주자의 이 말을 조금 다르게 이해합니다. 그것은 주자가 무엇보다도 하늘을 자신의 경험과 지식에 가두어두거나 제한하려고 하지 않은 자세를 가지고 있었음을 의미하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그것은 인간이 그의 미숙함과 온전하지 않음에 대한 자각인 것이며, 동시에 자신의 한계에 대한 정직한 인정을 의미하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그것은 우리 같은 사람이 꿈속에서도 도달하기 어려운 학문적 경지와 인격의 깊이를 갖고 있는 주자에게도 마찬가지였던 것입니다. 어찌 하늘을 가볍게 말할 수가 있겠습니까? 조용한 침묵이 필요할 것 같습니다.

 그러나 하늘을 가볍게 말하지 않기는 실로 진정으로 하늘을 알고 닮아가기의 첫걸음이 아닌가 합니다. 자신의 미숙함과 부족함을 정직하게 인정하고 겸허한 마음으로 하늘을 마주할 때, 우리는 우리의 완전함이 아닌 이 미숙하고 나약한 현존 속에서 언뜻언뜻 그 하늘의 편린들을 만나게 되는 것이 아닌가 합니다. 아니 우리 자신 속에서만이 아니라 다른 사람들과 온갖 사물들과 현상들 전체 어디서나 하늘을 만나게 되는 것이 아닌가 합니다.

 ‘우러러 하늘에 부끄러움이 없다’는 맹자의 말은 그래서 겸허하고 정직한 마음을 담은 외경의 눈길로, 사람만이 아닌 이 수 많은 하늘들을 있는 그대로 정직하게 만나고 함께 하는 즐거움을 말한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이것은 하늘이 나에게 주신 것들과 바라시는 것들을 자각하고 실현해 가는 ‘낙천지명(樂天知命)’의 터전 위에서, 이 세계의 모든 것들과 함께 하늘이 주시고 바라시는 것을 더불어 완성해 가는 즐거움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겠습니까?



세 번째 즐거움


 저는 하늘을 두려워하여 맹자의 두 번째 즐거움을 순서를 뒤집어서 말씀을 드렸지만, 논리적으로 말하면 역시 맹자의 순서가 옳은 것이 아닌가 합니다. 주어진 조건과 그 조건을 주신 하늘을 말한 뒤에 사람과 사람의 자유의지에 대해서 말하는 것이 바른 순서일 것이니 말입니다. 그리고 이 순서에 따라 다음의 세 번째 즐거움이 있는 것입니다.

 다시 정리를 해 볼까요? 두 번째 맹자의 즐거움은 이 세계의 모든 것들과 함께 하늘이 주시고 바라시는 것을 더불어 완성해 가는 것의 구체적인 실천의 시작을, 그 모든 것들 가운데 우선 나와 같이 미숙한 존재이면서도 가장 가까운 사람들과 더불어 사람들의 삶 속에서 만들어 가는 것을 말하는 것이지요. 저는 여기서 맹자의 인간에 대한 사랑과 신뢰를 보게 됩니다.

 왜냐하면 맹자가 살았던 시대의 사람들 대부분은 사실 맹자가 이러한 벗으로 삼기에는 너무나 참담한 모습이었는데도 말이지요. 여기서 앞의 구절을 다시 한번 돌아볼까요? 두 번째 구절에는 오해하기 쉬운 내용이 들어 있습니다. 그것은 하늘과 사람을 마주하는 맹자의 시각의 차이에 대한 것입니다. 맹자는 하늘에 대해서는 ‘우러러본다’는 의미의 ‘앙(仰)’이란 글자를 쓰고, 사람에 대해서는 ‘굽어본다’는 의미의 부(俯)라는 글자를 썼습니다. 이것은 하늘을 보는 맹자의 시각과 사람을 보는 맹자의 시각의 차이를 보여줍니다. 그리고 그것은 당연히 그 행동을 하는 마음과 의식 그리고 가치의 차이를 드러내는 것이지요.

 더욱이 우리는 많은 현실에서 하늘을 우러르는 시선들이 사람을 얕잡아보는 시선들이었던 경험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맹자의 이 시각의 차이에 대해서 더욱 의심스러운 눈초리를 거둘 수가 없는 것도 사실입니다. 그리고 온전하신 하늘과 비교해서 우리 사람들의 행태를 보면 이런 시각을 자초한 측면이 너무나 많은 것도 사실입니다. 더욱이 굽어본다는 표현이 아래를 향한 시각이라는 점에서 오해의 가능성은 더욱 커집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저는 이 맹자의 시각을 다른 의미로 읽어보고 싶습니다. 그 근거는 무엇보다도 앞에서 말씀드린 맹자의 인간에 대한 애정과 신뢰입니다. 적어도 맹자의 두 번째 즐거움이 단순한 자기도취나 자아만족의 즐거움이 아님을 인정한다면, 이 시각의 차이는 우리들의 일반적인 오해와는 전혀 다른 것임을 인정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러면 이 맹자의 시각의 이동은 도대체 무슨 의미를 갖는 것일까요? 그것은 우선 위로 하늘을 우러러보던 시선에서 아래로 사람을 바라보는 시선으로의 단순한 시각의 이동으로 이해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가 ‘마음이 가는 곳에 눈길이 가는 것이고, 눈길이 가는 곳에 마음이 가는 것이다.’라는 단순한 사실을 인정한다면, 저는 이 시각의 이동은 마음의 이동을 담고 있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굽어본다’는 부라는 글자는 우선 낮은 곳을 본다는 의미입니다. 저의 은사 가운데 한 분이신 안병주 선생님께서는 맹자의 정신을 한마디로 표현하면 ‘전국시대의 참혹한 현실에서 백성을 건져내려는 간절한 마음’이라는 의미의 ‘절어구민(切於救民)’라고 하셨습니다. 그것은 이 땅 위에서 가장 고통받는 낮은 곳의 사람들에게 시선을 돌린 것입니다. 그리고 그 백성이란 우리 자신이며 동시에 수 없이 많은 낮은 곳에 있는 것들 가운데 우리 인간에게 가장 가까운 곳에 있는 존재이기도 합니다.

 그래서 저는 맹자의 이 시각의 이동을 단순히 하늘을 외면하고 다른 곳으로 시선을 돌림이 아니라, 오히려 하늘의 시선을 따라 가깝고 낮은 곳으로 시각을 낮춘 것이 아닌가 합니다. 바로 그곳에 우리들이 더불어 즐거움을 함께 할 사람들이 보였던 것이며, 그것이 결국은 하늘과 더불어 즐거움을 함께 하는 것이 아니겠습니까? 아니 낮은 곳과 가까운 곳의 아픔과 고통을 더불어 함께 함으로써 하늘과 더불어 즐거운 것이라고 하는 것이 정확할지 모르겠습니다. 군자라면 말입니다.

  이제 맹자의 세 번째 즐거움을 말할 수 있는 준비가 된 것 같습니다. 군자는 하늘과 더불어 즐겁기 위해 가까우면서도 낮은 곳에 있는 사람들과 더불어 즐겁기 위해 하늘의 시선을 따라 내려왔습니다만, 그 즐거운 일을 누구와 더불어 해야 하는 것일까요? 아마 하늘의 시선이 가 계신 더 낮은 곳도 있을 것입니다만, 우선 먼저 이 즐거움을 함께 해야 할 것은 바로 사람들이기 때문에 맹자의 시선이 그 사람들에게서 일단 멈춘 것이 아니겠습니까?

 

  천하의 꽃다운 인재를 얻어 가르치는 것이 세 번째 즐거움이다.(得天下之英才 而教 育之 三楽也)

       

 우리 회원 분들은 대부분 교육에 종사하시는 분이고 또 적어도 교육에 대한 관심이 많으신 분들이니, 이 유명한 말에 대해서 나름의 이해와 공감이 있으실 것입니다. 아니 어쩌면 영재라는 말에 대해서는 거부감을 가지신 분도 꽤 있으실 지 모르겠습니다. 제 추측이 틀리지 않다면, 그것은 아마 현실에서 이 영재라는 말이 둔재(鈍才)라는 말과 상대적으로 이해되고, 그것이 사람에 대한 차별을 정당화하는 근거로 악용되는 경험들이 너무나 많기 때문일 것입니다. 차별을 당한 당사자인 경우는 더 말할 것이 없겠지요.

 옛날 분들이 말씀하시기를, 사람은 자신이 한 말에 대한 책임을 져야 한다고 하셨습니다. 한문으로 ‘입언지책(立言之責)’이라는 말입니다. 특히 맹자처럼 뛰어난 인물이어서 그 영향력이 큰 사람은 당연히 그 말에 대한 책임을 더 많이 지셔야 하겠지요. 옳은 말입니다. 그래도 만약 그 말의 본의가 아닌 것으로 오해를 받거나 왜곡을 당한 것이라면, 사실 그 중요한 책임은 오해하거나 왜곡한 사람들이 더 많이 져야 하는 것도 사실이겠지요.

 특히 글을 전체의 문맥에서 읽지 않고 앞뒤를 끊어서 의미를 확대하는 것을 ‘단장취의(斷章取義)’라고 하는데, 그것이 보다 높은 가치를 부여하는 것이라면 나름의 의미를 갖는 경우가 없는 것은 아니지만, 대부분의 경우는 자기 합리화를 위한 왜곡인 경우가 너무나 많은 것이 현실이기 때문입니다. 이것의 무서움은 사실 그들이 이런 왜곡을 했다는 사실만이 아니라, 그 왜곡이 본래의 의미를 정당하게 이해하는 것을 심각하게 가로막는다는 점입니다. 맹자께서도 참 난처하고 속이 상하실 것입니다.

 어쩔 수 없이 맹자를 위한 변명을 하게 되었습니다. 우선 ‘천하의 꽃다운 인재’라는 말을 주목해 주시기 바랍니다. 천하라는 말은 ‘하늘 아래’라는 의미이지만, 그것은 사실 ‘하늘 아래 그리고 땅의 위’ 즉 ‘천하지상(天下地上)’으로 사람의 세계, 그것도 사람의 세계 전체를 의미하는 개념으로, 당시 맹자 이전부터 그들이 아는 전체 인류사회를 의미하는 개념으로 사용되던 용어였습니다.

 그러면 과연 인류 전체를 통 털어서, 그런 큰 사회 단위에서 꽃다운 인재라고 불릴 사람은 누구이고 또 몇 사람이나 되겠습니까? 그리고 또 그런 사람을 제자로 만나 가르칠 수 있는 행운을 가진 사람은 몇 사람이나 되겠습니까? 우리 교육계에 떠도는 말 가운데 좋은 스승이 좋은 제자를 기르는 것이 아니라, 좋은 제자들이 좋은 스승을 키운다는 말이 있습니다. 나름대로 일리가 있는 말이라고 생각하지만, 적어도 교직에 몸을 담고 있는 사람들의 입에서 이 말이 나올 때, 저는 대개의 경우 그것은 비겁함이나 탐욕스러움의 무의식적인 발로가 아닌가 하는 의구심을 갖게 됩니다.

 사실 저의 경우도 이런 비겁함과 탐욕스러움에서 전혀 자유스럽지 못한 것이 사실이니, 이는 아마도 제가 들어야 할 질책이며 부끄러운 고백일 것입니다. 문제는 맹자의 이 구절을 긍정적으로 보건 부정적으로 이해하건 우리 모두가 바로 이런 부끄럽고 탐욕스러운 시각으로 맹자의 이 구절을 이해하고 있지 않은가 하는 것입니다. 하늘을 우리의 작고 더러운 그릇 속에 가두어 두듯이, 맹자를 우리의 못나고 탐욕스러운 그릇 속에 가두는 것이지요.

 그래서 저는 ‘천하의 꽃다운 인재’라는 이 구절을 ‘온 인류가 모두 꽃다운 인재’라고 읽고 싶습니다. 현실의 저처럼 이 구절을 부끄럽고 탐욕스럽게 이해하는, 말만하면 스스로 거룩한 성직에 종사한다고 자랑스럽게 내세우는 우리들을 포함해서 대부분의 사람들은 분명히 너무나 미숙하고 너무나 초라한 존재이지만, 그래도 맹자가 따라왔던 참으로 거룩하신 하늘에 시선이 바로 이 미숙하고 초라한 우리 모두에게 와 있는 것이 아니겠습니까? 인류 하나 하나가 거룩하신 하늘이 소중하게 바라보시는 존재인데, 정말로 하늘에 대한 외경을 아는 사람이라면 누가 감히 그를 꽃다운 인재가 아니라고 부정할 수 있겠습니까? 

 이제 나에게 그리고 우리 모두에게 있는, 그래서 하늘이 소중하게 보시고 맹자께서 그 시선을 따라 소중하게 보아주신 우리들의 ‘꽃처럼 아름다운 모습’이 무엇인지를 찾아보아야 할 때입니다. 우선 우리 모두에게 똑같이 있는, 그리고 우리가 아무리 스스로를 탐욕으로 더럽히고 미숙함으로 가려도 변함 없이 여기에 있는 것이 있다고 합니다. 공자는 그것을 ‘하늘이 나에게 덕을 낳아 주셨다(天生德於予)’ 하셨고, 맹자는 그것을 인간의 본성이라 하면서 그 꽃다움의 실체는 선(善)한 것, 그것도 절대적으로 선한 것이라 하였습니다.

 우리가 그 누군가에서 이 꽃다운 모습을 찾아내서 인정하고 길러줄 수 있다면 참으로 즐거운 일이 아니겠습니까? 아니지요. 그 누군들 이런 꽃다운 모습을 갖지 않는 사람이 있을 수 있겠습니까? 참으로 완강하게 스스로의 이 꽃다움에서 눈을 돌리고 다른 사람들에게서도 그 꽃다운 모습을 인정하지 않으려고 발버둥치는 경우를 제외하고 말입니다. 거짓된 자유의지의 무서운 함정이지만, 저를 포함해서 이 함정에 의도적으로 심지어는 기꺼이 뛰어든 경우가 적지 않은 것 같습니다.

 그러나 꽃다운 모습으로 우리에게 있는 것은 이것만이 아닙니다. 그것은 제각기 다른 것이랍니다. 물론 비슷한 모습도 있지만, 제각각의 그릇에 담겨 있으니, 결국은 제각기의 것일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마치 꽃들이 모두 꽃이고, 또 같은 종류의 꽃들이 있어도 결국은 하나 하나가 제각각의 꽃이 되는 것과 같습니다. 그것은 각자의 개성적인 재능이고 가능성입니다.

 그런데 사실 이 두 가지를 길러주는 것이 교육자의 참 큰 즐거움이고, 참으로 의미 있는 진정한 교육이기는 하겠지만, 과연 우리는 그런 즐거움과 의미를 누릴만한 자격이 있는 것일까요? 도대체 우리는 누구입니까? 우리는 그 꽃다움으로 가득한 그들을 길러주기는커녕, 도리어 우리들의 미숙함과 더러움으로 그 꽃다움을 망치고 더럽히는 것은 아닐까요?

 그러면서도 태연하게 ‘내가 누구를 키웠다’고 으스대고, 다른 사람들의 피땀어린 세금을 더 내라고 칭얼대고, 심지어는 아이를 볼모로 삼아 돈을 갈취하기까지 합니다. 세상에 더 큰 도둑과 강도들이 많아서 우리의 그런 모습이 폭로되지 않는 것을 다행스럽게 여기면서, 결국은 아무런 부끄러움과 두려움도 느끼지 못한 채, 조금이라도 그렇지 않은 모습을 가진 사람들을 바득바득 헐뜯으면서 말입니다.                

 그래서 저는 맹자의 이 교육이라는 말을 바꾸어 읽기로 했습니다. 그것은 우선 이 꽃다운 모습을 ‘알아주기’ ‘믿어주기’ ‘바라보아 주기’이며, 그것이 참으로 꽃답게 피어날 때까지 ‘참아주기’ ‘기다려주기’ ‘함께 아파 해주기’ ‘함께 울어주기’일 뿐 아니라 ‘끝없이 속아서 바보 되어 주기’ ‘모르는 체 눈감아주기’이며, 때로는 ‘보채기’ ‘닦달하기’ ‘꾸짖어주기’ 심지어는 ‘냉정하게 돌아서기’인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오직 그 아름다운 모습을 믿고 사랑하는 마음으로써만 말입니다.

 그래도 부족하지요. 정말로 중요한 것은 우리가 이런 사랑의 마음과 그 사랑에서 나온 행동을 하기에는 너무나 미숙하고 부족한 사람임을 정직하게 인정하고, 그들이 스스로 그 아름다운 모습을 피어낼 힘과 의지가 있음에 대한 믿음을 잠시도 잊어서는 안되고, 그들이 장래 우리의 미숙함을 넘어서서 우리를 도와줄 뿐 아니라 바로 지금도 우리의 미숙함을 끊임없이 채워주는 벗들임을 인정해야 할 것입니다.

 왜냐하면 저는 ‘더불어’라는 말이 갖는 진정한 의미는 오직 대등한 벗들에게 있는 것이고, 벗들 속에 함께 있지 않고는 더불어 즐거움은 없는 것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이 더불어 즐거움이 가능한 우리를 함께 있게 하는 지평은 어디일까요? 하늘의 시선이 머무시는 곳, 맹자의 시선이 따라 내려온 곳, 우리들의 시선이 머물러야 할 그곳을, 주자는 진리의 지평이라고 했습니다. 저는 우선 사람의 지평이라고 해두고 싶어서 이것을 인간의 진리라고 말해보지만, 그것은 역시 출발점이고 그 지평의  더 아래를 생각한다면 주자의 말씀에 동의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지루한 글이었습니다. 그래도 논어 첫머리에 대한 글과 함께 읽어주시면, 그 길이 하나임을 아실 수가 있을 것 같습니다.    ♠


댓글(1)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해콩 2006-08-10 19:0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권정안 소장님 추구 강의
연구소 홈페이지를 통해 녹음 강의로 들으실 수 있습니다. (www.chungnamedu.or.kr
)

함께 참여하시어 가꾸어 가는 강의가 되기를 바라시는 권정안 소장님의 바람처럼 선생님들 모두 함께하는 자리였으면 좋겠습니다.
궁금하시거나 하실 말씀이 있으시면 홈페이지 추구란 해당강의 밑에 쪽지글에 남겨 주시면 소장님의 답변을 들으실 수 있을 것입니다.

다음은 추구 강의 시작에 붙여 소장님께서 홈페이지에 올리신 글의 일부입니다.

“추구는 전통적인 초등 교육의 한 교과로서만이 아니라, 전통적인 교육내용과 방법이 어떤 세계이해와 인간이해 사회이해를 담고 있는지를 보여주는 좋은 재입니다. 앞에 말씀 드린대로 원문과 해석 그리고 제 나름의 풀이를 전통적인 성독과 함께 바로 올려드리겠습니다.
추구만이 아니라 전통적인 교육은 종합적인 학문의 성격이 강합니다. 오늘날로 말하면 통합교과적인 성격이겠지요. 그러므로 참가하시는 선생님들께서 각 부분에 대해 자신의 전공의 입장에서 좋은 내용을 첨가해주시는 것이 꼭 필요합니다. 추구는 시이니 시를 좋아하시는 분들이 관계된 시를 올려주시면 더욱 좋겠습니다.”
 

 

삶의 상처와 아픔

-시경 권이편

권정안 / 소장․공주대 한문교육과 교수


이 시는 삶의 아픔을 노래한 것이다. 사람이 가진 가장 큰 힘은 사랑이고, 이 사랑의 힘으로 우리는 노동을 통해서 나와 내가 사랑하는 사람들의 삶의 조건을 만들어 간다. 그러나 우리 인간 모두의 현실적 삶의 과정에는 그 삶의 굽이굽이마다 숨어 있다가 살며시 고개를 내밀어 우리의 삶을 뒤흔들어 상처를 만드는 갖가지 삶의 아픔들이 서려있다.

우리의 삶의 요구와 바램이 너무 커서 그런 것인가? 우리의 삶의 조건이 너무 부족해서 그런 것인가? 인간이 가진 가장 큰 힘인 사랑조차도 오히려 너무 작은 힘이라서 그런 것인가? 평범한 우리가 감당하기엔 너무 큰 사회와 역사가 할퀸 것이라서 그런 것인가? 모든 인간이 존재적 숙명으로 짊어진 ‘無常의 가을 바람’이 스쳐 지나간 것이라서 그런 것인가?

삶의 상처와 아픔은 제각기 다르겠지만, 이런 삶의 상처와 아픔들만큼 우리 인간을 우두커니 멈춰 서서 망연하게 만들고, 견딜 수 없는 조바심에 으르렁대게 만들고, 뼈저린 회한과 절망에 치를 떨게 만들고, 슬픔과 노여움과 원망으로 방황하게 하는 것이 또 무엇이 있을까? 누가 이 인간이 걸머진 삶의 상처와 아픔이라는 짊과 그 짊을 지우는 갖가지 숙명의 그물에서 초연한 체 할 수 있을까?  


     采采卷耳             도꼬마리를 뜯고 뜯어도

     不盈傾筐             기울어진 광주리도 채우지 못하네

     嗟我懷人             오호라 내 마음 속의 그리운 사람

     寘彼周行             저 큰 길 가에다 광주리를 내던졌다네


     陟彼崔嵬             저 높은 산이라도 오르고 싶으나

     我馬虺隤             내 말이 비루가 먹었네

     我姑酌彼金罍         내 짐짓 저 금 술잔에 부어 마셔서

     維以不永懷           이 사무치는 그리움 잊어보려네


     陟彼高岡             저 높은 산마루라도 오르고 싶으나

     我馬玄黃             내 말이 비루먹어 색이 변했네

     我姑酌彼兕觥         내 짐짓 저 물소 술잔에 부어 마셔서

     維以不永傷           이 사무치는 아픔을 잊어보려네


     陟彼砠矣             저 돌 비탈 산이라도 오르고 싶으나

     我馬瘏矣             내 말이 지쳐 다리를 절고

     我僕痡矣             내 종도 발병이 났으니

     云何吁矣             어쩌면 좋을지 한탄할 뿐이네



離別의 상처와 아픔


우리의 삶에서 겪게되는 상처와 아픔은 갖가지이지만, 그것들은 언제나 우리가 갖고 누리는 모든 내외의 조건과 나아가 새로운 것에 대한 관심을 우선 멈추고 잊게 만드는 것이다. 그 모든 상처와 아픔 가운데 아마 가장 보편적이고 다양한 폭을 갖고 있으면서 우리에게 절실한 것은 이 시가 보여 주는 것처럼 사랑하는 사람과의 이별이 아닐까?

1장은 그 이별의 아픔을 가진 여인의 노래, 아내의 노래이다. 사랑하는 남편과의 이별은 무엇 때문이었을까? 2장 이후로 보면 남편은 아마도 전쟁터에 있는 것 같으니, 國防의 義務를 수행하러 떠난 것 같다. 그러나 남편이 功名을 세우러 자발적으로 나간 것이건, 아내가 출세의 기회라고 권해서 보낸 것이건, 그리고 아마 대부분의 경우이겠지만 사회가 의무라는 이름으로 억지로 데려간 것이건, 그 모든 원인을 떠나서 지금 이 여인에게 가장 절실한 것은 사랑하는 남편이 그녀의 곁에 없다는 아픔인 것이다.

또 사랑하는 남편이 곁에 없다는 것이 어찌 이 한 가지 아픔만의 원인이겠는가? 가족의 생존을 위한 삶의 조건을 만드는 主役이었던 남편의 부재는 그대로 삶의 조건의 궁핍으로 이어졌을 것이고, 남편이 하던 모든 역할까지 짊어져야 하는 아내의 고생은 가시밭길이었을 것이고, 홀로 부모를 모시고 자식을 기르고 이웃과 어울려 살아가는 어느 한 가지인들 절름발이의 삶이 아니었겠는가?

그러나 이 모든 삶의 아픔들 그 뿌리에는 사랑하는 남편의 부재와 그 남편에 대한 그리움이 자리하고 있는 것이다. 도꼬마리는 큰길가에 흔하게 나는 풀. 어린잎은 나물로 쓰지만 평범한 음식거리이며, 열매는 약재와 기름을 짜는 용도가 있지만 가시가 있어 사람의 옷에 잘 달라붙고 잘 떨어지지 않아서 귀찮은 식물이다.

아내는 그 도꼬마리를 뜯고 또 뜯는다. 핑계는 나물을 뜯으러 나온 것이지만, 사랑하는 남편이 곁에 있다면 결코 이 평범한 도꼬마리 나물 뜯으러 오지 않았을 것이다. 더 맛있는 나물뿐이랴? 남편과의 즐거웠던 삶의 기억과 남편이 돌아온다면 함께 할 행복한 삶에 대한 다짐 속에서 아내는 다시 생각한다. 남편이 떠나갈 때, 할 수만 있었으면 이 귀찮은 도꼬마리 열매처럼 꼭 달라붙어 남편을 따라갔으면 좋았겠다고.

이런 갖가지 상념 속에 여전히 도꼬마리 나물을 뜯어보지만, 그리운 남편에게 가 있는 마음 때문에 밑이 얕은 기울어진 광주리도 채우지 못한다. 孔子는 ‘마음이 있지 않으면, 보아도 보이지 않고, 들어도 들리지 않고, 먹어도 그 맛을 모른다.(心不在焉 視而不見 聽而不聞 食而不知其味)’라 하였다. 어찌 ‘하루가 석 달 같고, 하루가 삼 년 같을 뿐(王風 采葛)’이겠는가? 진실로 매 순간은 ‘一刻如三秋’이면서, 동시에 시간은 그 헤어짐의 순간부터 멈춰버린 것을.  

상념에서 깨어나 그 아픔이 생생한 현실로 돌아온 아내는 그 광주리 큰 길 가에다 던져버린다. 돌아보면 별로 맛도 없는 흔하디 흔한 도꼬마리 뜯겠다고 큰길가로 나온 것부터 그렇다. 그 큰길은 사랑하는 남편이 떠나간 길이고, 그 그리운 사람이 돌아올 길이고, 그 그리운 사람에게 한 발이라도 가까운 곳이어서, 자신도 모르게 찾아온 것이 아니었을까? 그리운 남편이 있을 그 큰길의 저쪽을 아내는 우두커니 멈춰 서서 바라본다.

그 아내의 눈길이 닿은 저쪽 끝 하늘 아래, 그 그리운 사람이 똑같이 그리운 사람을 향해 서서 눈길을 보내고 있다. 그 시선이 만나는 곳, 아니 그 사랑하는 사람들의 거리를 넘어서서 그들의 사랑과 그들의 상처와 그들의 아픔은 하나이다. 이제부터 이 시가 남편의 그리움과 아픔을 노래한 것이지만, 그 본질에 있어서 그 아픔이 어찌 남편만의 것이거나 아내만의 것이겠는가? 1장의 아내의 아픔이 곧 남편의 아픔이고 2장 이후의 남편의 아픔이 곧 아내의 아픔이듯이, 이것은 사랑하는 사람의 부재와 갖가지 이별을 겪고 있는 모든 사람들의 것이다.    

朱子는 이 시를 ‘文王이 조회와 정벌에 나가 있을 때나 羑里에 구금되어 있을 때, 后妃가 지은 것이 아닐까?’ 하였는데, 과연 이 시가 문왕의 아내인 太姒가 지은 노래인지는 확인할 길 없고 또 내용으로 보아 여인 혼자의 노래는 않은 것 같지만, 이런 점을 제외한다면 주자도 역시 이 시를 사랑하는 사람의 부재와 그 이별의 상처와 아픔을 노래한 것으로 이해하고 있는 것이다.

물론 사랑하는 아내와 가족 고향을 떠나 낯선 戰場이나 他鄕을 떠돌거나, 심지어는 문왕이 羑里에 구금된 것과 같은 상황에 처해있는 남편의 상처와 아픔이 어찌 아내에 대한 그리움 한 가지 뿐이겠는가? 그 현실의 갖가지 困苦와 挫折은 말할 것도 없고, 그리움만 하더라도 어린 자식들이나 다른 가족과 이웃 친구들과 그들과 어울려 살아가던 추억들까지 그 모두가 그리움에 대상이 아니겠는가? 그래도 여전히 그 중심에는 사랑하는 아내가 있는 것이다. 이 아내에 대한 남편의 그리움은 아내가 있는 고향을 조금이라도 더 가까이 보고자 높은 산  언덕으로 발걸음을 옮기게 한다. 그러나 눈길로라도 아내가 있는 고향을 바라보고 싶은 남편의 현실은 더욱 가혹하다. 작은 틈이라도 내서 가까운 산마루에 오를 수만 있다면, 좀더 고향 쪽 가까운 곳을 볼 수 있을 텐데, 남편에게는 그런 여유마저 주어져 있지 않다.

내 말이 비루먹었다는 한탄은, 고향 쪽으로 가기는커녕 눈길이라도 멀리 보낼 수 있는 산마루에도 오를 여유와 방법이 없는 그 현실의 아픔과 탄식을 보여준다. 사랑하는 아내와 만날 방법이 없는 현실의 아픔과, 그래서 아니 그럴수록 더욱 깊어 가는 아내에 대한 그리움은 도대체 어디에서 탈출구를 찾을 수 있을까?

 

견뎌냄과 아픔의 심화


인간에게 요구가 있고 바램이 있되 그 내외의 조건이 그것을 충족시키지 못할 때, 바로 그 자리에 인간의 상처와 아픔이 있다. 中庸에 ‘천지의 큼으로도 오히려 사람은 유감이 있다.(天地之大也 人猶有所感)’ 하였으니, 이 요구와 조건의 괴리와 이로부터 생겨나는 인간의 상처와 아픔은 모든 현실적 실존 자체의 보편적인 본질인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그 괴리에서 오는 상처와 아픔에 해결 방법이 있고 탈출구가 있다면, 엄격한 의미에서 그 상처와 아픔은 더 이상 문제가 아니다. 진정으로 문제는 바로 그 방법과 탈출구가 보이지 않을 때에 있는 것이다. 자신의 능력 속에도 그 힘이 확인되지 않고 외적인 상황에서도 그 조건이 갖추어지지 않았을 때, 그 한계상황은 우리를 힘들게 하고 절망하게 한다.

이 ‘한계상황’과 ‘절름발이 삶’의 현실 속에서 우리 인간이 할 수 있는 가장 보편적인 대응은 바로 그 현실의 상처와 아픔이 우리를 힘들고 절망하게 하는 것을 우선 ‘견뎌냄’이다. 이 견뎌냄은 一見하면 너무나 소극적이어서 비극적으로 보이기까지 하는 것이지만, 돌아보면 현실은 물론 인류의 전 역사적 생존을 지켜 온 뿌리의 힘이며 우리 인간 하나 하나의 삶에서도 그 나름의 소중한 가치들을 지켜온 뿌리의 힘이 아닌가?

실로 견뎌냄은 인간을 포함한 모든 ‘생명의 살아있음’ 그 자체에 있는 뿌리의 힘이다. 그러므로 이 삶의 상처와 아픔은 우리 생명의 뿌리에 있는 ‘견뎌냄’이란 힘에 대한 도전이요 시험이다. 기독교의 성경은 ‘우리를 시험에 들게 하지 말아달라’고 기도하고 있지만, 그것은 도리어 이런 시험 속에서 폭로되는 우리의 견뎌냄이란 힘과 그 힘의 원천인 우리의 전 생명이 얼마나 軟弱하고 有限한 것인가에 대한 통렬한 자각이며, 그 흔들리는 존재라는 자각 위에서 이어지는 두려움과 회한의 표현이 아닌가?

‘폭풍 속에 흔들리는 갈대처럼’ ‘숲속에서 어미 잃은 아기 새처럼’ 그 삶의 상처와 아픔에 이리저리 흔들리면서도 겨우겨우 견뎌내는 우리는, 때로 그 현실이 너무나 두렵고 그 견뎌냄이 너무나 힘들어 짐짓 현실에서 눈을 돌려버림과 망각과 도피를 꿈 군다. 술은 그 길을 함께 해준 인류의 오랜 동반자. 남편은 짐짓 한 잔의 술로 그 아내에 대한 그리움을 짐짓 잊은 체 하면서 호기를 부려본다.

사내 대장부가 아내에 대한 그리움에 눈물을 보일 수 있나? 호기를 부려보지만, 그러면 술은 왜 마시는가? 矛盾이지? 그래 모순이다. 정직하게 말하면 이 한 잔의 술로 아내에 대한 이 처절하고 긴긴 그리움 잠시라도 잊어보려는 것이다. 남편의 독백은 계속되지만, 그러나 더 깊은 남편의 진실은 아내에 대한 절절한 그리움과 그 그리움을 잊으려 기울이는 술잔보다 더 철철 흘러 넘치는 가슴속의 눈물을 멈출 수 없음이 아니겠는가? ‘사무치는 그리움’ 잊겠다고 말은 해보지만, 그 말은 도리어 절대로 잊지 못하겠다는 생명의 북받치는 울음과 비명 그 자체의 역설적 표현일 뿐이다.

이별의 아픔과 사랑하는 아내에 대한 그리움 속에서 견뎌냄과 흔들림, 그리고 망각과 도피의 허망한 시도와 깊은 가슴속에서 터져 나오는 울음과 비명은 3장에서도 그대로 이어진다. 아니 그 현실은 더욱 더 어려워지고, 그 방법은 더욱 더 궁색해진다. 언덕은 더욱 높아가고, 비루먹은 말은 털 색까지 변해서 누렇게 되고, 물소의 뿔로 만든 잔으로 술을 들이켜 보지만, 그리움은 점점 傷心으로 깊어간다.

古詩 ‘行行重行行’의 몇 구절은 모두 이 사랑하는 사람과의 이별의 아픔을 노래한 것이다.


   

       行行重行行         가고 가고 또 가고 가니

       與君生離別         그대와 살아서 이별하였네

       相去萬餘里         서로 만여 리나 떨어져

       各在天一涯         제각기 하늘 끝 저쪽에 있네

       道路阻且長         길은 막히고 또 아득한데

       會面安可期         다시 만날 날 기약도 없네

       胡馬依北風         북쪽 오랑캐 말 북풍을 의지하고

       越鳥巢南枝         남쪽 월 나라 새 남쪽 가지에  둥지를 튼다네

       相去日已遠         서로 헤어진 시간 나날이 길어가

       衣帶日已緩         옷과 허리 띠 나날이 헐렁해가네(후략)



남편이 그리워 큰길로 나온 아내나 아내가 그리워 산봉우리라도 올라 고향을 바라보려는 남편, 북쪽 고향이 그리워 북풍에라도 기대는 胡馬나 남쪽 고향이 그리워 남쪽 가지로만 집을 짓는 越鳥의 마음은 무엇이 다른 것인가? 헤어짐의 시간이 길어갈수록 그리움이 상심으로 깊어 가는 남편의 마음은 몸이 점점 수척해져서 옷과 띠가 점점 헐렁해져 가는 모습과 무엇이 다른가?


怨望과 自責의 끝에서


그리움과 상심의 아픔과 상처를 견뎌내면서 터져 나오는 울음과 비명이 있는 그 누가 원망이 없을 수 있겠는가? 또 어느 누가 그런 원망에 대해서 섣부른 위로를 할 수 있으며, 하물며 함부로 비난할 수 있는가? 이 아픔과 상처를 공유하지 않은 사람의 비난이란 잔인함과 다른 말이 아니며, 공감 없는 섣부른 위로란 무책임한 자기 기만일 뿐인 것이다.

孔子는 ‘하늘을 원망하지 않으며, 다른 사람을 허물하지 않는다.(不怨天 不尤人)’ 하였지만, 누가 이 아픔을 가진 사람이 남을 허물하고 하늘이라도 원망해보는 것을 시비할 수 있겠는가? 또 공자는 ‘슬퍼하되 상심하지 않는다.(哀而不傷)’고 하였지만, 누가 이 상심을 지나치고 잘못된 감정이니 절제하고 평정을 찾으라고 권할 수 있겠는가?  그럴 자격이 있다고 나서는 것은 대부분 오만한 헛소리일 뿐이다.

남편은 우선 그 원망의 대상을 저[彼] 산에서 찾는다. 저 산은 왜 그리 높은 것인지, 저 산은 왜 오를 수 없는 돌 비탈인지, 모두가 원망스러운 것이다. 그 아픔에서 터져 나오는 비명을 누구도 대답해주지 못하는 상황에서, ‘저 높은 산’은 그의 아픔의 ‘저 쪽에 있는’ 모든 것의 상징이요, 당연히 원망의 대상이 된다. ‘남을 원망하고 하늘을 원망한들’ 누가 그 원망이 대상을 잘못 골랐다고, 원망의 방향이 잘못되었다고 비난할 수 있는가?   

그래서 ‘하늘을 원망하지 않고 다른 사람을 허물하지 않는다.’는 공자의 말은 단지 스스로의 뼈저린 아픔 속에서 온갖 원망을 하고 또 하다가, 마음의 상처를 달래고 또 달래다가 나온 다짐일 뿐이다. 이 아픔과 상처의 원인을 남에게 돌리면 사라질까? 시대의 탓으로 돌리면 사라질까? 하늘에 돌리면 사라질까? 무엇에 원인을 돌려 원망해보아도 사라지지 않는 아픔과 상처를 스스로 보듬을 수밖에 없다는 체념이며 다짐이다. 그러나 ‘하늘도 원망하지 말자’ ‘다른 사람도 허물하지 말자’는 체념과 다짐은 체념과 다짐일 뿐, 이 아픔과 상처에서 솟구치는 원망과 상심을 멈추게 할 수는 없는 것이다.

그러나 이 원망과 상심이 忿怒로 이어지기 전에 문득 밖에 있는 저 수 많은 산을 향해 보내던 원망의 시선은 스스로에게 돌려진다. ‘왜 나는 이 상처와 아픔을 미리 예견하고 대비하지 못했는가?’ ‘ 내 삶의 어느 모서리에서 이 상처와 아픔의 원인을 내 스스로가 만든 것은 아닐까?’ ‘ 그래. 틀림없이 그 때 그 일 때문에 이런 상처와 아픔을 내가 받게 된 것이니, 누굴 원망할 수가 있나.’ 남편은 온갖 因果를 떠올리고 가슴을 치며 후회하고 반성하고 자책해본다.

삶의 상처와 아픔을 직면한 인간은 누구나 밖을 향한 원망과 자신을 향한 자책 사이를 끊임없이 오가면서 그 상처와 아픔을 풀어낼 방법을 찾아 헤맨다. 그래서 원망할 것을 찾다가  찾다가 분노를 풀 대상을 찾지 못하면 하늘이라도 원망하게 되는 것이고, 자책을 하고 또 하다가 절망으로 자학에 이르기도 한다. 2장과 3장의 앞 두 구절은 이런 밖을 향한 원망과 자신을 향한 자책의 끊임없는 되풀이 과정을 보여준다.

그것은 마지막 4장에 이르러서도 마찬가지이다. 저 산은 왜 하필이면 돌 비탈인가? 내 말은 왜 지쳐 다리를 저는가? 그러나 이 원망과 자책은 결국 스스로에 대한 보다 깊은 자책으로 이어진다. 왜 내 종은 하필 발병이 났는가? 그것은 밖에서 원망과 분노의 대상을 찾기 어렵거나 그 대상을 알아도 원망을 풀 길이 없는 상황에 대한 절망의 끝에서 나온 것이기도 하지만, 동시에 그 후회와 반성과 자책의 심화가 절망과 체념의 끝을 넘어서 새로운 희망과 시작을 만드는 소중한 동력이 되기 때문은 아닐까? 

우리 대부분의 현실은 언제나 자책보다는 밖을 향한 원망과 분노로 그 상처와 아픔을 풀려고 하는 경향을 갖고 있다. 아니 자책할 것에는 애써 눈을 돌리려고 하고, 원망의 대상을 찾는 것에는 너무나 총명한 것이다. 여기에서 孔子는 ‘자신에 대한 자책은 두텁게 하고, 남에 대한 책망은 조금 하는 것(躬自厚而薄責於人)’이 君子라고 한 것이다. 그러므로 이제 다시 ‘하늘을 원망하지 않고, 남을 허물하지 않는다’는 공자의 말은 단순한 체념과 다짐만이 아니라, 이런 현실에 대한 통찰을 함께 담은 작은 목소리의 慰勞이자 自覺의 勸告이다.

이제는 더 이상 한 잔의 술이 아픔과 상처를 달래거나 현실을 도피하는 수단이 되지 못함을 직시한다. 잠시 그 순간만을 잊어서 해결될 문제가 아님을 자각하는 순간, 그 일시적인 방편은 무의미해지고, 눈은 잠시의 瞬間이 아닌 永遠을 겨누게 된다. 그러므로 4장에서는 2장과 3장에서 연이어 나온 한 잔의 술로 그리움과 상심을 잊으려는 가사는 더 이상 없다.  

그래도 이 시는 여전히 자책의 심화 속에서 어찌할 바를 몰라 탄식하는 구절로 끝을 맺고 있다. 아니 이 상처와 아픔은 그 자책과 탄식으로 끝을 맺을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자책을 하고 또 하면서 어쩔 줄 몰라 우두커니 서서 아내가 있는 고향을 바라보는 이 남편의 탄식을 누군가는 들어야 하고, 누군가는 답을 해야 하고, 누군가는 책임을 져야 한다. 나는 그 탄식 속에서 분노를 읽고 두려워할 줄 아는 누군가가 그립다.

유학의 이상적 지도자로 불리는 文王은 그런 ‘그리운 지도자’였다. ‘백성을 상처 입은 사람처럼 보고(視民如傷)’ ‘어린 아기를 돌보듯이(如保赤子)’ 하였다. 백성들의 탄식과 분노 이전에 그들이 무엇을 아파하는가를 무엇을 바라는가를 알고, 그 아픔과 바람을 내 아픔과 바람으로 받아들여 실천하는 진정한 지도자가 있었고, 그런 지도자가 참으로 그립다.

그러나 틀림없이 대부분의 이른바 지도자들은 단지 지배자였을 뿐이다. 이 남편과 같은 백성들의 아픔과 바람에 무관심하고, 그 탄식과 비명에 고개를 돌렸을 뿐 아니라, 그 상처와 아픔을 더 크게 만들고 그 탄식과 비명을 더욱 처절하게 만들고 그 분노를 노도처럼 키웠다. 그래서 나는 이 어리석고 추악한 지배자들은 물론 지도자도 더 이상 그리워하지 않는다.

이 각성은 ‘그리운 지도자에게서 희망을 찾아 새로운 시작을 하기’가 아닌 ‘스스로에서 새로운 희망을 찾아 시작하기’로 우리를 인도해간다. 그리고 이 轉換이 이루어졌을 때, 우리 삶의 모든 상처와 아픔도 그리움과 안타까움도 원망과 자책도 울음과 비명도 좌절과 체념도 절망과 분노도 또 누군가의 비난과 위로도 할큄과 권고도 발뺌과 변명도 모두 그 새로운 희망 찾기와 새로운 시작을 위한 소중한 동력이 된다.

우두커니 서 있는 남편의 시선은 아내에 대한 짙은 사랑과 그리움 속에서 작은 불꽃을 크게 키우고 있다. 아내가 여기에 없어도, 아니 저기에도 없어도, 아내에 대한 사랑이 이 가슴 속에 있는 한 그 삶의 모든 상처와 아픔은 도리어 그 불꽃을 더욱 오래, 더욱 크게 피우는 동력일 뿐이다.  ■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동아시아 교육철학의 근본정신


권정안 / 소장․공주대학교 한문교육학과 교수



사람과 세계


사람과 세계의 인연을 다시 묻는다

삶의 주체로서 우리 인간과 그 삶의 조건으로서 세계는, 적어도 모든 인간이 자신의 삶에 대한 관심을 가진 한, 뗄 수 없는 상호연관성을 갖는다. 그 관계의 성격과 관심을 갖는 영역이 어떤 형식과 내용을 갖든, 기본적으로 생명체인 인간은 삶의 요구를 가지고 있고 세계가 인간에게 주어진 유일한 삶의 조건인 이상, 인간과 세계 그리고 그 관계맺음에 대한 관심과 해명은 모든 시대에 걸쳐 일반적인 것이다.

인간과 세계 그리고 그 관계맺음에 대한 이 일반적인 관심과 해명은 동아시아 고대 사상과 그 흐름에서 천인지학(天人之學) 또는 천인론(天人論)이라는 학문적 영역을 구축해왔다. 그 기본적인 구조와 변화 발전의 양상은 본래는 점서(占書)였던 주역(周易)이라고 하는 경전을 중심으로 전개되어 왔는데, 학문적으로 말하면 세계를 중심으로 하는 존재론적 경향과 인간을 중심으로 하는 당위론적 경향이 상호 교섭과 대립 긴장을 통하여 보다 진전된 인간관과 세계관, 그리고 천인관계론(天人關係論)을 형성해 왔다고 할 수 있다.

인간과 자연, 존재와 당위, 과학과 윤리의 본질과 그 관계에 대한 철학적 물음을 내포하고 있는 이 사상적인 흐름은, 동아시아 고대를 통하여 이미 두 가지 특성적인 방향을 보여주고 있다.



인문주의의 방향

그것은 첫째 관심과 물음의 중심이 한 쪽에서 다른 한 쪽으로 이동하는 경향성을 보여준다는 것이다. 즉 하늘로부터 인간으로, 존재로부터 당위로, 자연으로부터 사회로, 생명적 가치로부터 인간다움의 가치로 관심의 중심 축이 이동해왔다는 사실이다. 공자(孔子)는 이미 이런 방향을 인간의 문화와 역사의 기본 방향으로 인식하였지만, 이것은 사실 동서양의 모든 문화와 역사가 진전하는 보편적 양상으로 이해할 수도 있을 것이다.

이 흐름을 지탱하는 가장 중요한 동력은 말할 것도 없이 이 세계에서 인간의 능력과 가치에 대한 자각과 합리적인 세계이해의 증대이며, 문화의 발전과 역사의 진전 속에서 확인한 인간 역량의 증대와 가치의 제고와 궤적을 함께 해서 강화되어 온 것이다. 주(周)나라 초기인 기원전 12세기 말에 결정적인 전환을 맞이하여 형성된 이 고대 동아시아 인문주의는 일반적인 인문주의의 보편적 특성에 하나인 강한 반종교적 성격을 띠고 있었다.

주례(周禮)라는 인문적 제도와 이를 통한 사회운영의 성공 그리고 이런 성취에 대한 자신감을 축적한 이들은 사회적 합리성의 확대를 통한 인문주의 문명 건설에 대한 낙관적인 태도를 가지고 있었다. 그러나 춘추시대로 들어오면서 이런 낙관적 견해는 심각한 도전에 직면하게 되었다. 그 핵심은 인문적 문화의 주체인 인간과 그가 창출한 문화제도의 상대성(相對性)이 너무나 빨리 그리고 다양하게 드러났기 때문이었다.

이런 한계에 직면했을 때, 그들은 이 인문주의적 문화와 역사의 발전과정에서 분명히 초기부터 의도한 것은 아니었지만, 종교적이고 신비주의적인 문화의 소멸과 함께 하늘과 자연과 존재와 생명적 가치에 대한 배제와 소외, 아니면 적어도 무관심과 방치를 상당 부분 동반한 것이었음을 상기하지 않을 수 없었다. 이와 함께 인간의 오만과 세계에 대한 경시는 이런 한계를 더욱 확대시켰다.

이 위험을 가장 크게 경고한 것은 노장사상(老莊思想)이었다. 그들은 세계를 종교적인 신앙의 대상으로 다시 살려내려고 할 만큼 반 인문주의적이지는 않았지만, 동시에 인간의 오만과 세계에 대한 경시가 초래할 인간정신의 상대적 빈곤과 그 사회적 병폐에 대해서는 놀라울 정도의 예언적인 통찰력을 분명하게 보여 주었다.

이런 관점에서 그들은 우선 인간의 가치와 문화가 보여주는 반자연적 특성을 인위(人爲)로 규정하고, 그 인위적 문화와 가치의 본질을 온전한 생명과 절대적 가치를 담지한 자연(自然)을 파괴하는 상대주의(相對主義)라고 규정하였다. 건강하고 순수한 영아(嬰兒)로부터 늙고 추하며 교활한 모습으로 죽음을 향해 거의 맹목적으로 달려가는 인간 군상과, 명리(名利)의 욕망에 매몰되어 가장 소중한 자신의 생명까지도 도구화하여 사물화(事物化) 되어버린 인간의 존재적 전락과, 이를 교묘하게 부추키면서 감당도 못할 허상의 고상한 규범을 내걸어 인간을 억압하는 주류문화와 지배계층 전체의 허위성(虛僞性)에 대한 노장의 냉소는 물론 당대 현실 속에 뚜렷이 나타난 인문주의의 한계, 즉 ‘전락(顚落)하는 상대주의’에 대한 문명비판(文明批判)이었던 것이다.

이 노장의 인문주의 비판이 당시 동아시아 고대 사회에 던진 딜레마는 다양한 반응을 불러 일으켰다. 아니 그것은 어쩌면 그 이후의 인류 역사는 물론 오늘날의 있어서도 다양의 형태로 변형되어, 지금까지도 우리 개개인과 사회에 딜레마로 제시되어 해결과 결단을 요구하고 있는 것이지도 모르겠다.

대체로 이런 딜레마에 직면한 인간과 사회는 대부분 그런 상황을 양자택일(兩者擇一)의 선택으로  받아들이고, 이 선택의 기준을 자신의 가치관으로 형성해가며 이 기준에 의해 자신의 삶을 만들어간다. 그리고 이 ‘피할 수 없는 선택’에 직면한 인간은 당연히 다른 선택의 가능성에 대한 긴장과 고뇌를 경험하고, 사회는 서로 다른 선택을 하거나 주장하는 구성원과 또는 다른 사회와 갈등과 충돌을 겪게 된다.

 

새로운 관계구조의 형성

노장사상이 던진 딜레마 속에서 바로 이 점을 문제의식으로 가진 일군의 사상가들에 의해 세계와 인간 자연과 인문의 딜레마적 상황을 돌파하려는 두 번째 특성적인 방향이 제시되었다. 그것은 세계와 인간을 새로운 구조의 관계맺음을 통하여 하나로 만들어 가는 방향이었다. 앞의 방향이 전 인류적인 보편성을 지닌 방향이라면, 이 두 번째 방향은 동아시아적 사상의 성격을 가장 명확하게 보여주는 특성이라고 할 수 있다. 세계와 인간을 하나의 관계 속에서 파악하는 이런 관점이 바로 천인관계론이다.

이와 같은 천인관계론은 대체로 세계와 인간의 관계를 삼 단계의 역동적인 구조로 이해하였는데, 그것은 관계의 출발점에서의 본질적인 일치와, 관계의 전개과정에서의 대립과 상호요청, 그리고 궁극적인 지향에서의 관계의 통일과 새로운 승화라는 패턴이었다. 이 삼 단계의 구조를 전통적인 표현을 빌리면 천인본일(天人本一) - 천인양립(天人分立) - 천인합일(天人合一)로 정리할 수 있을 것이다.    

이 구조에서 노장사상(老莊思想)이 주장하는 것이 천인본일(天人本一)로의 복귀(復歸)라면, 공맹(孔孟)을 계승하여 역전(易傳)과 중용(中庸)을 형성한 유학자들은 인간중심적 인문주의의 원칙을 고수하면서도, 본질 과정 지향의 제 단계에서 세계와 자연에 적절한 의미부여와 역할을 인정하는 새로운 관계구조를 설정하고, 그 관계의 핵심적인 고리를 제시하였다. 그들은 이런 모델을, 기본적으로 인문주의자이면서도 기존의 반종교적 인문주의자들과는 달리 종교문화적 전통의 긍정적 의미를 인문주의 문화의 터전과 본질로 수용한 공자(孔子)의 방식에서 찾았다.

물론 그 관계 구조와 관계의 중심적인 고리도 그들이 처음 찾아낸 것이기보다는 그 이전 동아시아에 있어서 세계 이해와 인간 이해 및 상호 관계에 대한 이해를 토대로 한 것이지만, 이런 이해들을 종합하여 천인관계론이라는 광범위한 사상체계로 구체화한 것은 분명히 이들의 사상적 공헌이라 하겠다.

앞에서 제시한 삼 단계의 관계구조를 통해서 확인할 수 있는 가장 중요한 사실은 세계와 인간이 그 모든 단계에서 기본적으로 공생(共生) 공존(共存) 공조(共助)의 관계맺음을 전제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특히 출발점과 지향점에서 이들의 일치와 통일은, 과정에서의 분립이나 중심이동이 단순한 다른 것의 배제와 소외를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도리어 그 본래의 일치를 회복하고 통일을 형성해 가는 과정으로서의 의미 있으며, 그 분립된 양자(兩者)가 모두 그 동력으로 의미 있음을 확인시켜주는 근거이다.

이것은 무엇보다도 구체적인 현실에서 본일과 합일의 체험 대신에, 현실적인 분열과 대립의 부분적인 과정 속에서 개인적 삶을 살아가거나 어떤 사회의 짧은 역사적인 단계를 살아갈 수밖에 없는 인간존재의 상대적 절망과 인간가치의 상대주의적인 한계를 돌파할 수 있는 인문주의적 선택의 일환으로서 의미를 갖는 것이었다. 그것은 노장사상처럼 상대적인 것의 포기와 취소를 통해서 절대를 회복하는 방식 대신에, 상대적인 것 자체에서 절대적인 차원의 가치를 인정하고 과정을 단순한 수단(手段)이 아니라 그 자체로서 영원한 가치를 지닌 것으로 이해하여, 모든 인간과 존재의 삶을 이 온전한 세계 속에서 의미 있도록 하는 것이다.

더욱 중요한 것은 이런 관계구조가 세계와 인간의 관계만이 아니라 모든 제 관계의 보편적인 동시에 바람직한 사유구조(思惟構造)로 확대되었다는 사실이다. 이런 사유구조는 인간의 사회적인 제 관계는 물론 인간과 자연, 인간과 사물, 집단과 집단의 외적인 관계맺음에서는 물론이요, 한 걸음 더 나아가 개체 속에서 타자와 집단의 모습을 확인하고 부분 속에서 전체를 인정하고 수용하는 내적인 관계맺음을 주시하고, 그 공생과 공존과 공조를 바람직한 것으로 지향하는 의식을 형성하는 출발점이 되었다.

이런 사유구조는 동아시아의 사상전통 속에서, 하늘 속에서 사람의 모습을 보고 하늘을 점점 인간적인 하늘로 만들었으며, 사람에게서 하늘을 보고 인간을 더욱 소중한 존재로 부각시켰고, 부분에서 전체를 보아 부분의 고립을 깨버렸으며, 전체에서 부분을 보아 전체의 내용을 풍요롭게 했으며, 타자에게서 나를 보아 타자를 우리로 받아들이며, 나에게서 타자를 보아 나를 확대된 자아로 성장시킬 수 있는 힘으로 기능하였다.


생명의 고리와 서로 살림의 벗

그러나 이런 사유구조가 동아시아 사상사의 흐름 속에서 언제나 살아날 수 있도록 한 가장 중요한 첫 번째 요소는 세계와 인간 사이에 영원한 인연을 맺어준 생명이라는 고리가 있었기에 가능한 것이었다. 초기 인류사회 어디에서나 그렇듯이 이 세계는 인간에게 변화(變化)를 그 특성으로 보여주는 것이지만, 동아시아에 있어서 그것은 단순한 변화보다는 오히려 생성변화(生成變化)로 인식되었다.

그것은 당연히 생성력 또는 생명력을 주시하게 되고, 세계와 인간을 생명을 고리로 한 관계맺음의 구조로 파악하게 하였던 것이다. 이는 당연히 세계가 인간을 포함한 모든 생명의 근원이며, 나아가 이를 고리로 한 그들은 가장 친화적인 관계를 본질로 한다는 세계에 대한 믿음을 형성하였다. 여기에서 세계는 냉정한 방관자나 타자가 아니라, 서로 생명으로 이어지고 우정으로 맺어진 동반자의 모습을 형성하게 된다.

서구적 문명의 전통 속에서 릴케는 ‘천사(天使)들이 다감하게 느끼는 이 우주(宇宙)에서 우리 인간은 아직 미숙한 존재일 뿐’이라는 절망에서 세계를 타자(他者)로 밀쳐내고, 겨우 ‘사물(事物)로써 태어나 사물들 속에서 사물로서 살다가 사물로서 죽어감’에 인간의 자리를 찾으려 발버둥쳤지만, 동아시아적 문화 전통 속에서는 저 무한한 하늘도 너른 대지도 하늘의 해와 달과 별들도 땅위에 솟구친 산과 흘러가는 강물도 그 가운데 스쳐 가는 바람과 흩뿌리는 비도 세계 자체와 그 속의 삼라만상(森羅萬象)도 모두 생명의 고리로 우리 인간과 본래 하나였고 지금도 하나이며 영원히 하나인 것이다.

바로 이 생명을 고리로 한 관계맺음에서 모든 나와 너에 대한 긍정과 신뢰 존중과 사랑이라는 인간정신인 동시에 세계정신이며 문명정신의 터전이 마련된 것이다. 그 생명을 고리로 한 관계맺음의 뒤에 서로의 역할은 한 마디로 말해서 서로의 생명을 살려감 이외에 다른 것이 아니다. 그래서 세계의 본질적 가치도 살려감에 있으며 (天地之大德 曰生 : 周易), 인간의 본질적 가치도 살려 가는 힘(元 善之長也 : 주역, 仁 德之總名 : 朱子)에 있으며, 그들의 관계맺음의 본질도 서로 살림(相生)에 있는 것이다.

이 본질의 일치와 서로 살림에 대한 굳건한 신념 위에서, 모든 현실에서 어울림과 조화는 물론 대립과 긴장과 갈등조차도 궁극적으로는 본래의 하나임을 회복하거나 보다 높은 지향을 성취하기 위한 소중한 동력이 된다. 그러므로 모든 역사적 현실은 언제나 그 이상을 성취하기 위한 토대이면서 한계이지만, 그 토대와 한계로서 역사적 현실이 우리에게 진정으로 요구하는 것은 토대에 대한 애정과 신뢰, 그리고 한계를 돌파하는 지혜와 용기로 서로 살림의 성취를 확대해 가는 것이다.

이런 관점에서 진정한 한계는 바로 이런 서로 살림의 부재(不在)와 부정(否定) 그 자체이다. 세계와 인간 그리고 그 관계맺음의 모든 영역에서 서로 살림의 부재와 부정의 본질은 무엇일까? 그것은 스스로에 대해서는 자만과 탐욕과 자포자기(自暴自棄)로 대상에 대해서는 증오와 소외와 불신과 경시로 나타나는 반생명적 타자회(反生命的 他者化) 사물화(事物化) 도구화(道具化)이며, 관계맺음에 있어서는 지배적 소유화(所有化), 권력화(權力化)와 이를 관철하는 죽임의 폭력화(暴力化)이다.   

그래서 배움과 가르침이란 우리가 언제 어디서 무엇과 어떤 관계를 맺건 이 서로 살림의 부재와 부정을 떨쳐내고, 바로 그 인간의 자리에서 점점 더 이 서로 살림이란 세계정신을 배우고 닮아 가는 인간의 세계화과정이며 동시에 이 세계에 점점 더 많은 서로 살림이란 인간정신을 채워 가고 키워 가는 세계의 인간화과정의 자체이다. 그리고 그 속에서 나와 우리와 모두는 서로 사랑하고 사랑 받으며 존중하고 존중받으며 신뢰하고 신뢰받는 스승이며 제자이며 결국은 본래부터 벗이었고 지금도 벗이며 영원히 벗이어야 한다.            

 

사람과 사람


우리 민족사를 보는 유학적 관점

단재는 그의 조선 상고사 총론에서 ‘역사는 我와 非我의 투쟁의 기록’이라 하였다. 우리는 이 말이 민족의 생존과 주체성이 극도로 위협받던 위기상황을 전제로 한 것임을 이해한다. 그러나 필자는 우선 이 말이 갖는 彼我의 관계구조와 관계내용에 주의하고자 한다. 그 때 이 말은 적어도 통시대적이거나 보다 넓은 차원의 보편적인 관점에서는 부분적인 진실이라는 한계를 갖는다.     물론 우리가 민족국가 형성 이전에서 시작하여 하나의 민족국가로서 동아시아의 역사무대 속에서 등장한 이후 오늘 인류사의 한 부분으로 살기까지, 우리의 역사적 체험은 우리 또는 민족적 주체성에 대한 긴장을 조금도 늦출 수 없는 것이었음은 분명하다.

그러나 우리가 동시에 잊어서는 안되는 것은 우리 민족의 역사가 피아의 대립구조와 내용으로만 점철된 것은 아니며, 그 대립을 포함한 공존과 친화 교섭과 고립의 다양한 구조와 내용을 경험해왔고, 그 모든 역사체험이 궁극적으로는 우리의 역사를 진전시키고 보다 보편적인 문명의 가치를 담은 문화를 전개하는 계기가 되었다는 점이다.

오히려 주체성이란 바로 그런 성공과 실패, 공존과 대립, 교섭과 고립의 역사적 경험들을 우리 민족의 역사와 문화발전의 계기로 삼아온 주체가 우리라는 의미이며, 그 주체가 항상 보다 넓고 높은 보편적 가치들을 획득하고 창출하는 역량을 담지하고 있었다는 점에서 진정한 의미를 갖는 것이라고 하겠다.

이 열린 주체성의 민족적인 근거 가운데 가장 중요한 것은 홍익인간의 이념이다. 필자는 이 이념에서 인간존중과 인간중심의 의식과 함께 우리 인간의 생명과 삶 그리고 심성의 근원인 이 세계를 긍정하면서, 우리 민족의 문명사적 의의를 하나 하나의 인간과 동시에 인류 전체를 폭넓게 도와 가는 주체로서 성장해가고자 하는 인류사적 전망을 확인한다.

이런 민족적 주체의 형성이나 그 전망의 구현은 물론 단숨에 그것을 이루고자 하는 조급함으로 가능한 것이 아니다. 그것은 개인 가족 부락 지역 국가 민족 인류를 거쳐 세계에 이르는 전 삶의 단계와 구조를 함께 감싸고 가야하는 원대한 과정이며, 각 단계에서는 항상 전 단계의 성취를 당대 문화건설의 주체적 기반으로 확인하면서 그 한계를 극복하고 새로운 지평을 열어 언제나 보다 확대되고 높은 다음의 단계를 지향하는 방식이었다.          


민족 단위의 역사의식 형성과 전개

필자는 이런 민족단위의 역사의식과 역사체험이 과연 정확하게 어느 시대에  어떤 과정을 거쳐 이루어진 것인지 정확하게 제시할 근거가 없다. 다만 역사적으로 고려는 분명히 이런 민족의식이 폭넓게 자리잡은 시기이며, 그 이전의 역사적인 단계에서 이런 의식을 형성하게 된 역사적인 체험이 자리잡고 있으리라는 견해들에 동의한다. 특히 김철준 교수의 견해에 의하면, 이 민족국가 의식은 부족적인 결집력을 성공적으로 동원한 통일신라가 그 경험을 보다 높은 단계의 민족공동체 건설에 실패한 것에 대한 반성의 과정에서 형성된 것이라 한다.

그러나 고려라는 민족국가의 형성은 이런 공감에도 불구하고 후삼국의 궁예와 견훤의 실패를 거친 뒤에야 가능하였다. 이들의 실패는 여러 가지 원인이 있을 수 있겠지만, 이들의 실패가 주는 교훈은 그렇게 작은 시간적인 비약도 용납하지 않는 역사현실의 냉엄함과 명백한 전망의 결여와 합리적인 실천방안의 미숙함이 초래하는 결과의 차이이다.

이 뒤 고려의 민족주의적 흐름은 비록 중세적인 한계를 갖는 것이었지만, 고려시대 전체에 걸쳐 모든 정치 문화 역사의 기본 방향으로 작동하여, 일반 민중에게도 폭넓은 공감을 가진 시대정신이었다. 이런 특성은 외침을 당했을 때 그것을 민족적 위기로 이해하여 단호하게 저항하는 의식으로 나타나기도 하였지만, 의외로 선진적인 문화에 대해서는 개방적인 수용을 통해 민족의 문화역량을 제고하는 개방성을 보여주었다.

한 사회가 보다 높은 문화와 확대된 보편적인 가치를 지향할 때는 주체적인 역량의 내적 심화와 확대가 반드시 수반되어야 한다. 그러나 역사가 보여주는 아이러니는 이런 확대된 문화 방향과 문화 역량을 준비하여 한 사회를 인도하던 지성은 그것을 민중이 학습하여 확대시켜 가는 과정에서 도리어 지배자로 전락하여 사회의 문화진전과 역사발전을 방해하는 걸림돌이 된다는 사실이다. 고려 후기에도 이 점은 마찬가지였다.

지배계층은 더 이상 새로운 민족문화의 전망을 세우지 못하였고, 그것은 고려 민족주의 문화가 한계에 부딪쳤음을 의미하는 것이었다. 이런 민족사적 한계를 인식하고 그 돌파구를 준비한 것은 성리학으로 이론무장을 한 일군의 신진사대부였다. 목은 이색의 문하에서 체계적인 학습을 통하여 이론 무장을 한 이들은 곧바로 그 이념의 사회적인 실천에 착수하였다.

 

동아시아적 문명사회의 건설

공맹의 이상과 성리학적 이론 및 수양을 통하여 역량을 비축한 이들은 당시 타락한 불교와의 사상적인 투쟁과 기득권을 가진 친원파(親元派) 귀족 권력과의 투쟁을 통하여, 유학적 문명사회관에 입각한 조선왕조를 건설하였다. 이 과정에서 포은(圃隱)과 삼봉(三峰)은 방법적인 차이를 보여 대립하였지만, 그 실질적인 내용과 전망에 있어서는 그들은 폭넓은 공감대가 형성되어 있었다.

그 공감대 가운데 가장 중요한 점은 고려가 갖고 있던 민족주의 문화의 성격과 내용을 계승하지만, 보다 확대된 동아시아적 세계관에 입각한 의식을 가진 사회인 동시에 보다 높은 문화내용을 담지한 문명사회를 건설해야 한다는 점이었고, 그들에게 있어서 그것은 곧 인륜문화공동체라는 유학적 이상사회를 지향하는 것이었다. 적어도 그들은 당시 동아시아 사회에서 전체적인 문명사회건설의 주역(主役)까지 되지는 못했지만, 우리 민족의 역사적인 단계를 그런 문명의 일원으로 진전시킨다는 사명의식을 갖고 거기에 충실한 점은 분명하다.

어떻게 보면 사대주의로 오해받기 쉬운 그리고 실제로 그렇게 오해받은 이들의 의식은 무엇보다 유학적인 의리관(義理觀)에 기인한 것이다. 그들에게 진리인 의리는 모든 일상에서 부모에 효도하고 국가에 충성하고 부부간에 사랑하고 존중하며 벗 사이에서 신의를 지키는 소박한 내용에서 출발한 것이지만, 가장 중요한 점은 삶의 전 영역에서 언제나 보다 높고 넓은 보편성을 지향하는 대의(大義)를 선택하기에 자신보다 사회를 임금보다 국가를 국가보다 백성을 그리고 때로는 문명한 인류 전체를 추구하며, 그 근거를 자신 속에 확인된 인간의 보편적인 양심에서 확인한다는 사실이다.

그들은 이런 대의를 구현하는 삶을 통하여 스스로의 삶과 나아가 우리 민족의 삶을 진리와 문명의 역사 속에서 의미 있는 것으로 만들어 가고자 하였다. 이런 문화방향 아래 조선초기 이들은 예제문화(禮制文化)의 건설과 관료제도 및 교육제도의 정비를 통하여, 당시 중국은 물론 인류사회 전체를 통해서도 가장 높은 수준의 문화를 건설하였다.

그리고 이 문화적인 성취에 안주하여 그 열매를 독점하려는 훈구파가 형성되었을 때는, 포은과 야은의 정신을 계승한 사림파가 등장하여 기존의 문화적인 성취를 좀더 높은 단계로 진전시키고자 하는 사회적 동력이 되었다. 그 대표자인 조광조는 당시 훈구파가 유학의 본령인 의리보다는 현실적인 명리(名利)와 사공(事功)을 추구하는 것을 강력하게 비판하면서, ‘공자의 도는 천지의 도요, 공자의 마음은 천지의 마음’이라는 유학의 본령을 구현하는 지치주의(至治主義)를 제시하였다.

조광조를 비롯한 이들 사림파는 여러 차례의 사화를 겪으면서 고난을 당하였다. 그러나 이런 사화에도 불구하고 이들의 이상에 대한 열정과 특히 인간이해에 대한 치열한 학문적 탐구와 수양 및 이에 기반한 실천, 그리고 이들에 대한 민심의 지지는 훈구파와 척신(戚臣)들에 대한 청산과정을 거쳐, 선조 무렵에 이르면 사림파가 독점적인 정치세력으로 성장하게 되었다. 이것은 조선조에 있어서 유학적 가치인 의리(義理)에 대한 사회적 합의가 이 시기에 이르러 명백해졌음을 의미하는 것이었다.

다만 이런 성취는 새로운 문화방향을 전망하고 이를 통한 문화기반과 제도의 혁신으로 이어지지 못하였다. 율곡의 경장론이 제시되었지만 이는 받아들여지지 않았고, 여러 차례의 사화에 지치고 새로운 주도적 역할에 자만한 사림파는 도리어 당파라는 내적인 분열의 길로 접어들게 되었다. 물론 당파는 표면적으로는 시비(是非) 선악(善惡) 의리(義利)의 기본이념에서의 갈등이기보다는 주로 구체적인 상황에서 어떤 방법이 진정한 의리를 구현하는 길인가에 대한 노선투쟁(路線鬪爭)의 성격을 가진 것이었다.

이런 내적인 분열이 격화되는 과정에서 조선사회는 임진왜란과 병자호란이라는 두 차례의 야만적인 외침을 당하게 된다. 이 민족적 위기의 상황에서 사림을 통하여 배양되어 민중에게 스며든 의리정신은 이 두 차례의 외침을 극복한 가장 중요한 동력이 되었다. 임진왜란에 절사한 중봉 조헌은 ‘인도와 평화를 옹호하는 정신 속에서 진정으로 굳세고 영원한 힘이 나온다.’는 신념 아래 민족의 뿌리 속에 스며든 의리정신으로 이를 이겨낸다는 역사의식을 실천하였던 것이다.

 

근대의 사회변동과 민중의 대두

민족의 주체적인 자존의식과 동아시아적 보편세계에 대한 공헌의식으로 출발하여 사림의 의리정신으로 확대되어온 민족의 문화정신은 두 번의 외침을 통한 반성의 과정에서 민생회복을 중시한 실학운동과 문명사회 회복을 위한 배청북벌론으로 분화되었다. 반계, 성호, 다산 등 경기지역의 남인학자들을 중심으로 전개된 실학은 민생의 회복이 민족적 자주성의 실질적 토대가 된다는 관점을 가졌다면, 우암을 위시한 기호 노론학자들이 주도한 배청북벌론은 동아시아에 유일하게 남은 문명국가라는 자존심과 사명의식을 토대로 진리와 문명의 궁극적인 승리라는 역사적 당위를 실현코자 한 것이다.

실학적 반성과 대안의 제시는 지속되었지만 사회적 실천은 거의 이루어지지 못하고 문명적 대의를 표방한 노론 집권세력은 외척과 결탁하여 권력화의 길을 가면서 조선은 몰락의 길을 걷게 된다. 이런 상황에서 조선은 서양이라는 새로운 세계와 만나게 된다. 초기 선진적인 기술과 기독교를 통해 접근해온 서양은 차츰 침략적인 제국주의의 속성을 노골화하였다.

국력의 대소와 관계없이 기본적으로 주권을 인정하고 호혜적이고 평화적인 선린관계에 익숙한 우리 민족에게, 선진적인 문물과 종교까지 제국주의적 침략에 이용하는 이들의 속성은 매우 낯설고 당황스러운 것이었다. 실학은 서구의 선진문물을 배우자는 개화파로 이어지고 의리학파는 서구를 반문명적인 야만으로 규정하여 수동적인 형태의 척양척왜를 주장하였다.

그러나 이런 다양한 대응에도 불구하고 현실적인 정치권력은 물론 조선조를 지탱해 온 선비계층은 더 이상 새로운 문화방향을 제시할 이념적 지향도, 실천적 역량도 갖추지 못한 채 표류하고 있었다. 이런 혼란 속에서 오히려 민족의 문화전통을 계승하여 새로운 문화방향을 제시한 것은 각성한 민중이었다.

19세기 초반에 이미 당시의 현실을 민족사적 세계사적 전환기로 직감한 이들은 새로운 후천개벽의 변혁사상을 제시하여, 그것을 우리 민족의 새로운 문화방향으로 제시하였다. 그것은 크게 민족적 문화전통 속에서 형성된 인간존중과 평화의 정신과 유학적 의리사상의 교양 속에서 형성된 인도주의적 문명의식과 실천적인 사회의식, 그리고 새로운 인류세계의 전망을 담은 인간평등의 정신을 핵심으로 하고 있었다.

이들이 제시한 이념은 실로 우리 민족이 나아가야 할 문화방향을 넘어서서 인류적 문화방향이라 해도 아무런 손색이 없는 소중한 의미를 갖는 것이다. 그러나 그들은 역량이 부족했고 방법이 서툴렀으며, 무엇보다 수운(水雲)이 검무를 추며 그렇게 바란 때가 아니었다. 그리고 두 세기 우리는 우금치의 좌절과 가장 치욕스러운 식민지의 굴욕과 민족분단과 동족상잔의 전쟁과 인류적인 이데오로기의 투쟁과 개발독재의 경제성장과 금융자본주의 세계화 등 온갖 민족적 인류적 모순의 쓰레기 속에서, 바로 그것을 토양으로 삼아 신동엽이 예언한대로 온 세계와 인류의 밀알들을 썩혀 새로운 문명의 씨앗을 키워가고 있는 것이다.

그 옛날 어린 율곡은 금강산에서 ‘황혼에 만 그루 나무 가운데 홀로 서’ 있었지만, 이제 우리는 이 땅과 이 하늘과 이 인류사회가 모두 우리 인간의 세계라는 자부심과 우리 하나 하나의 역량을 키워 반드시 인간의 문명한 역사로 성취하겠다는 다짐과 실천으로 모두가 하나였으면 좋겠다. 그래서 이번 기행이 문명과 진리의 역사를 추동시켜 온 우리 민족적 지성들의 향기를 배우면서 그런 다짐과 실천을 기약할 수 있다면 더욱 좋겠다.    ■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시경 주남편의 경학적 이해

 

葛覃 - 勞動

 

권정안 / 소장․공주대 한문교육과 교수             

 

유학과 노동


후한 때 반고(班固)가 지은『한서(漢書)』의「예문지(藝文志)」에는 유학(儒學)의 기원을 ‘인륜 교육을 담당하는 사도(司徒)라는 관직에서 나왔다.'고 하였다. 그것은 말할 것도 없이 유학이 노동과는 거리가 먼 지배 계층에 속한다는 뜻이며, 그 주요한 관심도 생산과는 거리가 먼 추상적 윤리 도덕의 교육임을 의미하는 것이다. 이처럼 유학이 노동과 거리가 멀다는 것은 이미 공자(孔子) 당시에도 이런 평가가 있었다.

『논어(論語)』에는 이러한 내용이 있다. 즉 공자가 천하를 두루 돌아다닐 때, 제자인 자로(子路)가 뒤떨어졌다가 삼태기를 메고 가는 노인을 만나서 “그대는 우리 선생님을 보셨는가?” 하고 묻자, 그 노인으로부터 “사지를 부지런히 놀려 노동을 하지 않고 오곡(五穀)을 구분할 줄도 모르는 사람을 무슨 선생이라 하느냐?”고 조롱을 당하였던 일이다. 또 공자 자신도 농사짓는 법과 기르는 것을 묻는 번지(樊遲)라는 제자에 대하여 “나는 나이든 농부나 채소 가꾸는 사람만 못하다”고 하면서, 이런 생산 노동에 관심을 갖는 번지를 소인(小人)이라고 규정하였다. 물론 공자도 어린 시절에 일찍 부친을 여의고 가난하게 살았기 때문에, 가축을 돌보는 일이나 회계 정리와 같은 노동에 종사한 일이 있었다.

그러나 어째든 이런 공자의 관점은 그 이후의 유자들로 하여금 사지를 움직여 노동하는 삶과는 상당한 거리를 갖게 하였으며, 이 때문에 유학은 노동을 천시한다는 비판을 받게 한 것이다. 그리고 이런 비판은 상당수의 유자(儒者)라고 하는 사람들에 있어서는 정당한 것이었다는 점도 분명한 사실이었다.

다만 공자와 유학이 추구하는 이상이 단지 노동은 하지 않으면서 고상한 윤리 도덕을 논하는 것만은 아니었다는 것도 명백한 사실이다. 오히려 공자는 인간의 윤리적․도덕적인 삶을 인간다운 삶의 핵심으로 보아 일반 백성들에게 이런 삶을 요구했지만, 그것은 먼저 일반 백성들의 생존 문제를 해결한 뒤에 이를 기반으로 해야 가능한 것이라고 보았다. 이 점은 공자가 무거운 세금, 국가 재정의 낭비 등 백성들의 생존 기반을 무너뜨리는 폭정에 대하여 가졌던 분노와 비판을 보면 더욱 분명해진다.

그는 당시 노(魯)나라 계씨(季氏) 가문의 재상으로 있던 그의 제자 염구(冉求)가 계씨를 도와 가혹한 세금을 부과하자, 제자들에게 말하기를 “염구는 나의 제자가 아니다. 너희들은 그를 북을 쳐서 공개적으로 성토하는 것이 옳을 것이다(『논어』「선진」)”라고 하였다.

이렇게 보면 공자는 비록 제자들에게 노동을 가르치지는 않았고 성인(成人)이 된 후로는 그 스스로 노동에 종사하지도 않았지만, 이런 노동을 통해 살아가는 백성들의 삶의 조건을 파괴하는 부당한 정치와 지배 집단의 착취를 문제로 제기해 비판하였음을 알 수 있다. 즉 공자에게는 이 현실 정치의 문제가 가장 핵심적인 문제로 인식되었기 때문에, 상대적으로 일반적인 삶에서의 노동이 크게 부각되지 않은 것이라 하겠다.

앞에서 노동의 문제가 유학에서 중시되지 않았음을 말하였지만, 그러나 이 문제에 대한 유학의 나름대로의 견해가 전혀 없는 것은 아니다. 특히 공자가 직접 정리하고 제자들 교육의 주요 교재로 삼은『시경(詩經)』속에는 노동에 관한 많은 내용들을 담고 있다. 그것은 시경이 당대의 민중의 삶을 많이 반영하고 있으며, 유학의 주요한 관심 가운데 하나가 바로 이런 민중의 삶과 그 조건에 있었기 때문이다.

인간 생존은 많은 조건을 필요로 하는 것이지만, 일반 민중의 구체적인 삶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말할 것도 없이 의(衣)․식(食)․주(住)의 조건을 확보하는 일이다. 이 때문에 孟子는 항산(恒産)의 중요성을 강조하고 백성으로 하여금 식량과 재목(材木)에 부족함이 없어 가족을 충분히 부양하고 죽은 사람을 장사지낼 때 유감이 없게 만들어주는 것을 왕도정치(王道政治)의 출발로 보았던 것이다.

 

'생존의 조건을 만들어내는 노동’을 주제로 한 시, 갈담(葛覃)

그러면 이 중요한 의․식․주의 생존조건은 무엇을 통해서 얻어지는 것일까? 그것이 바로 인간의 노동이다. 실로 땀흘리는 노동의 소중함은 우선 그것이 인간의 생존 조건과 직결되기 때문이다. 명백한 사실은 우리의 식량은 어디선가 땀흘리는 농부들의 노동의 결과이며, 우리들이 입는 옷은 어느 봉제 공장의 노동자가 흘린 땀의 결정이며, 그 이외의 어떤 생존 조건도 이 땀 흘리는 노동의 결과 아닌 것이 없다는 점이다. 이 시의 주제는 바로 이 생존의 조건을 만들어내는 노동이다.

이 갈담(葛覃)의 주제인 노동은 모든 인간의 생존을 위한 외적인 조건을 형성하는 출발점이다. 한자의 '男'字가 '밭에서 힘들여 농사짓는 사람'을 그린 것으로 생존의 가장 중요한 조건인 식량을 생산하는 노동자를 의미하는 것과 같이, 적어도 성인(成人)으로서 인간은 기본적으로 자신과 가족의 생존조건을 확보하기 위해 노동을 해야 한다는 것은 어디에서나 보편적인 사실이며 동시에 정당한 가치를 갖는 것이다.

다만 이 갈담은 식량을 생산하는 것을 주요한 책임으로 짊어진 남성과 그 노동보다 옷을 만드는 길쌈노동을 하는 여인과 그 노동을 통하여 우리의 생존조건이 어떤 노동의 과정을 통하여 획득되며, 나아가 그 노동을 통하여 우리 자신이 어떻게 보다 성숙한 인간으로 성장해 가는가 하는 과정을 보여주는 대표적인 노래이다.


      葛之覃兮           칡넝쿨이 이어짐이여

      施于中谷           골짜기 한가운데로 뻗어간다

      維葉萋萋           그 잎새 무성한데

      黃鳥于飛           노란 꾀꼬리 날아와

      集于灌木           관목 숲에 모여서

      其鳴喈喈           그 울음소리 쪼롱쪼롱

      

      葛之覃兮           칡넝쿨이 이어짐이여

      施于中谷           골짜기 한가운데로 뻗어간다

      其葉莫莫           그 잎새 짙푸르거늘

      是刈是濩           이 칡을 베고 이를 삶아서

      爲絺爲綌           고운 베도 짓고 거친 베도 지으니

      服之無斁           그 옷 입어 싫어할 수 없네


      言告師氏           女師에게 말씀드려

      言告言歸           근친하러 다녀온다 여쭈라고 했네

      薄汚我私           내 평상복도 자금자금 빨고

      薄澣我衣           내 정장도 자금자금 빠니

      害澣害否           무언 빨고 무언 빨지 않겠는가

      歸寧父母           근친가서 부모님께 문안드려야지

 

사랑의 노동

1장은 갓 시집온 여인이 칡 베옷을 만들기 위해 칡을 베러 나간 노래이다. 골짜기로 뻗어나간 칡넝쿨이 무성하고 꾀꼬리 쌍쌍이 날아다니니 따뜻하고 화창한 늦은 봄이요, 야트마한 관목들과 칡넝쿨이 뒤엉켜 자라나는 척박한 비탈이다. 그러나 분명히 길쌈을 위해 칡을 베러 나간 이 여인의 노래에서 적어도 이 첫 구절에는 길쌈하는 노동의 어려움은 드러나지 않는다.

오히려 이 구절에서 느껴지는 분위기는 봄날의 화창함과 꾀꼬리의 아름다운 노랫소리뿐이다. 더욱이 쪼롱쪼롱 울어대는 꾀꼬리의 노래 속에는 신혼의 단꿈에 젖어 있는 신부의 즐거움이 배어 있다. 그것은 말할 것도 없이 앞의 관저에서의 부부사랑이 이어지고 있음을 보여주는 것이다.

출근한 남편을 기다리며 장을 보고 요리를 준비하는 신부나 집에서 기다리는 아내를 생각하며 직장에서의 업무를 즐겁게 하는 신랑에게, 그 모든 노동이 말 그대로 ‘고생스러운 몸짓’이 아니고 모두 사랑이 충만한 기쁨이듯이, 이 여인의 노동은 사랑하는 사람의 옷을 만들어주는 것이기에 어디에도 노동의 어려움은 드러나지 않고 오직 사랑하는 사람과의 삶의 기쁨만이 가득한 것이다.

생존의 조건을 얻기 위한 고생스러운 몸짓으로서의 노동, 그러나 이것도 사랑하는 사람을 위한 것일 때는 즐거운 사랑의 노동이 된다. 바로 이런 사랑의 노동이 모든 사람들의 보편적인 삶의 한 모습이 될 때, 우리 하나하나는 이 아름다운 노동으로 살아가는 정직한 삶의 주인들이 되고, 세계는 서로 서로에게 이 사랑의 결실을 나누는 따뜻한 공동체가 되는 것이 아닐까? 그립다. 

 

 

노동의 어려움

 

사랑의 노동이라 하더라도 ‘고생스러운 몸짓’으로 ‘수고스러운 일’로서 노동 자체는 역시 어렵고 힘든 것이다. 그것은 이 세계에서 우선 인간 생존의 조건을 획득하는 일 자체가 녹녹하지 않음을 의미하는 것이다. 녹녹하지 않은 정도가 아니라 그것은 때로 ‘간난(艱難)’ 그 자체이며, 때로는 생명 자체를 걸어야 하는 경우도 있는 것이다.

우리 인류가 농업사회로 접어들기 전에는 말할 것도 없고 그 이후에도 그리고 지금에도, 생존의 조건을 획득하기 위한 노동의 어려움은 전혀 녹녹하지 않다. 그러므로 그 수고로운 노동의 결과로 얻어진 생존 조건의 성취들은 그대로 ‘자신과 세계의 생존을 위한 공로(功勞)’가 되는 것이다. 역시 어렵지 않고 가치 있는 것은 없다.  

한여름 무더위 속에서 칡넝쿨을 베어서 뜨거운 솥에 삶아 굵고 가는 베올을 만들고 다시 그것을 베틀에 올려 옷을 만드는 노동의 어려움은 얼마다 고통스러운 과정인가? 지난 시절 우리의 아버지들이 그 삶의 대부분을 뙤약볕 아래서 농사일로 보내고 우리의 어머니들이 베틀 위에서 길쌈으로 지새운 것을 생각하면, 노동이란 어려운 것이라는 표현은 너무나 한가한 것이고 오히려 참혹한 것이라는 표현이 적절할 것 같다.

모든 어려운 노동의 과정이 반드시 가치 있는 성과를 얻는 것은 아니지만, 모든 가치 있는 성과들은 반드시 어려운 노동의 과정을 통해서 얻어진다. 아니 아주 작은 가치를 가진 성과물조차 역시 녹녹하지 않은 노동의 대가를 지불해야 한다. 제2장에서 여인은 이 어려운 노동을 통해서 아주 작은 생존의 조건조차도 그것을 획득하는 어려움과 소중함 그리고 그것으로 영위되어 가는 삶의 어려움과 소중함을 확인한다.

어찌 엉성한 베옷인들 싫어할 수 있으며, 거친 나물밥인들 함부로 버릴 수 있겠는가?

 

어려움을 통한 인간 성장  

이 삶과 노동의 어려움과 소중함에 대한 준엄한 깨달음은 우리를 철들게 한다. 물론 ‘안일을 좋아하고 수고로움을 싫어하는 것이 인간의 상정인 것[好逸惡勞 人之常情]’이기에, 노동하는 삶을 그 자체로 좋아함은 사람들의 일반적인 정서와는 거리가 있는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수고로운 노동을 우리가 감수할 수 있는 것은 그것이 우리 자신과 사랑하는 사람들의 생존조건을 만드는 창조적인 생산의 가장 중요한 조건이기 때문이다.

이 때문에 사랑의 가장 중요한 징표는 어려운 노동의 감수이다. 공자가 ‘누군가를 사랑한다면, 그를 위해 수고하지 않을 수 있겠는가?’ 한 것은 이를 의미하는 것이 아니겠는가?  그러므로 우리가 누군가를 진정으로 사랑하는가를 확인하려면, 우리가 과연 그 누군가를 위해서 어떤 수고를 마다하지 않았는가를 되돌아보면 된다. 또 누가 학생들을 진정으로 사랑하는 교육자인가를 확인하고자 하면, 그가 과연 학생들을 위해 어떤 수고를 했는가를 확인하면 된다. 또 누군가가 조국과 민족을 사랑한다고 하면, 과연 그가 조국과 민족을 위해 어떤 헌신을 했는가를 물으면 된다.

누군가를 사랑함으로서 어려운 노동을 감수할 줄 아는 것이 바로 우리를 진정한 의미의 성인(成人)으로 만들어 가는 첫걸음이다. 그러나 그것은 동시에 지금까지의 우리의 삶이 사랑할 줄 모르고 사랑을 받기만 하며, 사랑하는 사람을 위하여 수고로운 노동을 기꺼이 감수할 줄 모르는 철부지의 삶이었다는 자각이기도 한 것이다. 사랑함과 사랑을 받음의 어려움과 엄중함을 모르고 그것을 당연시했던 철부지의 눈뜨기이다.

그것은 자연 지금까지 노동의 어려움을 모르고 살아온 삶을 되새겨보게 만든다. 이 반성은 어디로 그 정서와 생각을 이어가게 할까? 신혼의 단꿈에 젖어 있던 여인은 노동의 어려움을 통해 철모르던 시절 거친 옷 입기 싫다고 투정 부리던 자신과, 그 투정을 다 받아주면서 노동과 삶의 어려움을 내색하지 않고 언제나 더 해주지 못해 가슴 아파하면서 사랑으로 길러주신 부모님의 은혜에 대한 새삼스러운 감동으로 자연스럽게 이어지게 된다.

이 새삼스러운 감동의 북받침은 친정 부모님들에 대한 그리움으로 이어진다. 누구보다 삶과 노동의 어려움과 소중함을 잘 아시면서도 사랑하는 자식에게 그런 내색조차 없이 더 잘해주지 못해 안타까워했던 것을 이제는 조금이나마 이해하고 감사하는 마음으로 찾아뵙는 근친(覲親)의 길인 것이다. 어떻게 준비를 하고 갈까? 

여인은 근친을 가면서 평상시에 입던 옷이나 외출할 때 입는 정장을 모두 깨끗이 빨면서 그 준비를 한다. 그것은 철모르던 자식으로부터 의젓하게 성장한 어른의 모습을 부모님께 보여드리기 위한 것이며, 시집간 딸이 행여라도 고생하고 구박받지 않을까 항상 걱정하시는 부모님을 안심시켜드리기 위한 배려이다.  노동의 어려움을 통해 부모의 사랑을 확인하고 다시 부모의 마음을 배려할 수 있을 만큼 성장한 인간은 아름답지 않은가!


 

노동의 사회적 공헌과 분노


땀흘리는 노동의 간난(艱難)과 신고(辛苦)를 마다하지 않는 것은 사랑이 있기 때문이지만, 적어도 그 노동의 성과는 전 사회의 생존을 가능하게 해주는 것이요, 이런 점에서 노동의 사회적 공헌은 절대적인 것이다. 특히 식량의 중요성은 재론의 여지가 없기에, ‘농사는 천하의 큰 뿌리  [農者天下之大本也〕’라고 한다. 또 ‘임금은 백성을 하늘로 여기고, 백성은 식량을 하늘로 여긴다[君以民爲天 民以食爲天]’고 하여,  식량을 ‘하느님의 하느님〔天之天〕’이라 하였던 것이다.

그러나 이 소중한 식량을 생산하는 농부와 그들의 노동은 그 사회적 공헌에 비겨 너무나 참혹한 대접을 받아왔다. 공자가 ‘농사를 짓는 것은 먹고살기 위해서인데, 바로 그 농사짓는 사람들 가운데 굶주리는 사람들이 가장 많다’고 탄식했듯이, 노동하는 사람들은 그 수고로운 노동의 성과물들을 터무니없이 빼앗기면서 가장 굶주려 왔다.

그래도 그 소중한 노동의 결과를 제공하는 것이 그만한 자격이 있는 사람에게 가는 것이라면 누가 무어라 하겠는가? 또 모두 다 같은 노동을 하자는 것도 아니다. 맹자(孟子)는 ‘어진 임금은 백성들과 함께 농사를 지어야 한다〔與民並耕〕’는 주장을 하는 농가사상가(農家思想家) 허행(許行)에 대하여, 사(士)가 천하를 다스리는 데에 공헌함을 강조하면서, “공인(工人)들의 일도 농사를 지으면서 함께 할 수는 없다. 그러니 천하를 다스리는 것만을 유독 농사를 지으면서 함께 할 수 있는 일이라 하여 강요할 수 있겠는가?『맹자』「등문공(滕文公)」상)”라고 말했다.

사람을 ‘정신 노동을 하는 사람〔勞心者〕’과 ‘육체 노동을 하는 사람〔勞力者]’으로 나누고, 마음 고생을 하면서 백성을 올바른 길로 인도하고 삶의 기반을 안정시켜 주는 사람은 노동하는 사람들이 생산한 결과를 제공받음이 천하의 보편적 정의라고 하였다. 이런 맹자의 주장에는 사회의 분업적인 구조에 대한 인식이 기초하고 있는 것이다.

그리고 이런 측면에서 맹자의 그 말은 상당한 정당성이 있다. 온 천하가 대홍수(大洪水)에 고통받을 때, 치수(治水)를 위해 9년 동안 자신의 집 문 앞을 세 번이나 지나갔으면서도 들어가 보지 못한 우(禹) 임금을 어찌 대접하지 않을 수 있겠는가? 농부가 농사를 지어 식량을 생산하고 이를 통해 사회적 공헌을 하듯, 지도자와 선비들이 그만한 사회적 공헌을 한다면, 이것은 단지 각자의 능력에 따른 분업일 뿐이며, 때로는 그 공헌도에 따라 더 나은 대접을 받음도 하나의 정의(正義)이다.

그러나 공헌은 없이 명예와 부를 누린다면 어떨까?『시경(詩經)』의「벌단편(伐檀篇)」은 이런 사람을 비판하고 있다.


   坎坎伐檀兮               열심히 애써서 박달나무 베어왔더니        

   置之河之干兮             저 황하의 물가에 내던져 두는구나

   河水淸且漣猗             황하의 물 맑고 또 물결도 곱지만

   不稼不穡                 씨도 뿌리지 않고 거두지도 않았는데

   胡取禾三百廛兮           어찌 벼가 네 창고에 가득하며

   不狩不獵                 사냥도 하지 않았는데

   胡瞻爾庭有縣貆兮         어찌 네 뜨락에는 담비가 매달려 있니

   彼君子兮                 저 진정한 군자들은

   不素餐兮                 공로 없이 흰밥 먹지 않는다

 

땀흘린 노동의 소중한 성과가 황하처럼 질펀하게 낭비되는 것을 보아야 하고, 그 호사스러운 낭비 위에 미끈하고 여유 있게 사는 자에 대한 분노는, 농사도 짓지 않으면서 곡식이 가득하고 사냥도 하지 않으면서 고기가 풍족한 것에 대한 신랄한 비난과, 공헌 없이는 흰 쌀밥을 먹는 짓을 하지 않는 진정한 지도자에 대한 기대와 그리움으로 나타난다.

이뿐인가? 이처럼 시위소찬(尸位素餐)하는 자들일수록 노동하는 사람들의 성과를 독점적으로 향유하면서도 도리어 그들을 경멸한다.


   糾糾葛屨               엉성한 칡으로 만든 신을 신어도

   可以履霜               찬 서리 내린 땅을 걸을 수는 있지

   摻摻女手               가늘고 여린 여인의 손으로도

   可以縫裳               멋들어진 치마를 만들 수는 있지

   要之襋之               허리 달고 동정 달아 내니

   好人服之               멋들어진 사람들이 입는다네


   好人提提               멋들어진 저 사람들 얌전떨며

   宛然左辟               내 옷 입고 품위있게 예의 차리는데

   佩其象揥               상아 빗치개를 곱게도 찼네

   維是褊心               그러나 마음은 왜 그리 좁은지

   是以爲刺               이 때문에 속상해 풍자하는 것일세

                      (『시경(詩經)』「위풍(魏風)」 갈구(葛屨))


어린 여공들의 여리디 여린 손으로 길쌈한 옷을 멋지게 차려입고 품위있는 체하면서, 감사는커녕 도리어 그들을 경멸한다. 어찌 분노하지 않을 수 있는가?

이뿐인가? 고마워할 줄 모르고 경멸할 뿐 아니라, 그 힘든 노동의 성과물들을 갖가지 이름을 붙여 갖가지 방법으로 도둑질해 간다. “무릇 백성으로 땅에서 농사지어 먹고사는 사람들이, 그 수확의 십분의 일을 내서 관리들을 고용해서는, 자신들을 공정하게 다스리는 임무를 맡겼다. 그런데 이제 그 고용의 대가는 모두 받아가면서도 그 맡은 일은 태만히 하는데, 온 천하의 관리들이 모두 그렇다. 어찌 그 임무에 태만한 것에 그치는가? 한 걸음 더 나아가 부당하게 백성들의 것을 도둑질을 한다.”( 柳宗元「送薛存義書」)

어찌 분노하지 않을 수 있겠는가?

 

노동의 기쁨과 삶의 정직성


생존과 사랑을 위한 노동은 사회와 역사로 나오면 온통 분노의 노동이 된다. 그러나 이 분노를 넘어서서 노동과 노동하는 삶에는 진정한 기쁨이 있다.

『시경(詩經)』의「빈풍(豳風)」7월편(七月篇)은 옛날 농업사회에서 그 노동과 노동하는 삶의 즐거움을 노래한다. 거기에는 온 가족이 들에 나와 일을 하다가 들밥을 먹으면서 권농(勸農)을 하러 나온 관리들과 어울리는 노래도 있고, 아가씨들이 봄날에 뽕잎을 따러 나섰다가 멋진 사나이에게 시집갈 꿈을 꾸는 노래도 있다. 사랑하는 임을 위해 길쌈을 하면서 행복을 설계하는 설렘의 노래도 있고, 농사가 한가한 틈에 함께 어울려 사냥하면서 신체를 단련하고 군사 연습을 하는 어울림의 노래도 있다.

늦가을 집안을 깨끗이 정돈한 뒤에 한 겨울 온 가족이 모여 오순도순 정담을 나누는 노래도 있고, 철철의 농산물로 입맛을 돋구면 술을 빚어 흥을 돋우고 한 해 동안 애쓴 농부들을 푸짐하게 대접하는 노래도 있다. 힘들지만 뿌듯한 가을걷이를 끝내고 지붕을 새로 덮고 단장한 뒤에 새해의 농사를 준비하는 기쁨의 노래도 있고, 한 해의 농사를 무사히 끝낸 감사의 마음으로 조상에게 제사를 올리고 함께 어울려 서로 만수무강을 축원하는 잔치의 노래도 있다.

이 노동과 노동하는 삶 속에서 기쁨을 얻는 이 정직한 삶이 가능한 세상, 그것이 바로 유학이 꿈꾸는 이상세계의 첫 걸음이다. 공자가 꿈꾼 인간이 인간답게 사는 세상이 이런 것이 아니겠으며, 인도(仁道)와 정의(正義)가 충만한 사회도 이 기반 없이 가능할 수 있겠는가?

그래도 땀흘리는 노동을 하고, 그 성과를 흐뭇해하며 소중하게 다루는 사람들은 안다. 그들의 정직한 노동의 대가조차 그들의 노동만으로 얻어진 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그들은 그 땀흘린 노동의 성과물 속에서 이 천지 자연의 한량없는 은혜와, 그 노동의 현장을 가꾸고  도구들을 발전시켜 온 조상들의 은혜와, 전 인류의 역사를 통해서 노동해온 모든 사람들의 땀방울을 보고 감사할 줄 안다.

한식(寒食)의 고사를 만든 춘추시대 개자추(介子秋)는 이렇게 말했다.


“다른 사람의 재물을 훔치는 자도 오히려 도둑이라 한다. 하물며 하늘의 공로를 훔쳐 제 노력이라고 말하는 자이겠는가!”


그러나 우리는 우선 이렇게 다짐해야 한다. 하늘의 공로를 훔치는 것은 고사하고 우선 남의 노동한 공로를 훔치지는 말자. 하늘과 조상에게 감사하기 전에 지금 우리의 삶의 주위에서 땀흘리며 노동하는 사람에게 감사하자. 그리고 우리도 이 소중한 삶에서 남의 공로를 훔치면서 헛 위세를 부리는 거짓된 삶에서 깨어나, 겸허하게 땀흘리는 정직한 삶으로 돌아가자.   ■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도연명의 雜詩 한 수

권정안 / 소장․공주대 한문교육과 교수


1. 나는 개인적으로 孔子를 존경하고 그의 삶을 배우고자 하는 사람이지만, 가장 좋아하는 사람을 꼽으라고 하면 역시 도연명을 들겠다. 그는 물론 「歸去來辭」와 같은 명문을 지은 뛰어난 문장가이며 「四時」와 같은 명시를 남긴 시인이지만, 내가 그를 좋아함은 이런 문장가나 시인으로서보다는 그냥 인생을 가장 인생답게 살았던 사람으로서이다.

중국의 蘇東坡와 우리나라의 退溪를 위시하여 수많은 선비들이 그의 詩文을 좋아하여 배우고 그의 인생을 흠모했던 것은 아마 이 점 때문이 아니었을까?

도연명의 이름은 潛. 연명은 字이다. 후세에 그를 높여 靖節先生이라 불렀다. 그의 증조부는 陶侃이란 사람인데, 晉의 大將軍으로 유명한 인물이다. 도간은 아침이면 옹기 백 개를 집 밖에 내놓았다가 저녁이면 다시 끌어들이는 일을 반복하였다. 사람들이 그 이유를 묻자, 한 나라의 장수가 된 사람은 평화시라 하더라도 전쟁이 날 때를 대비하여 체력을 길러두어야 하기 때문이라고 하였다는 착실한 사람이었다. 또 술을 몹시 좋아하였지만, 일정한 양 이상은 절대로 마시지 않았다. 그것은 소년시절 술 때문에 실수를 하고, 節酒를 하겠다고 부모님과 한 약속을 평생 지키기 위해서였다.

벼슬은 만년에 著作郞이란 말직에 뽑힌 일이 있다지만 彭澤令 석 달을 한 뒤에 감독관이 온다고 하자 ‘쌀 다섯 말의 봉급 때문에 허리를 굽힐 수가 없다’고 한탄하면서 「歸去來辭」를 노래하며 그만둔 것이 거의 전부이고, 다섯 아들을 두었지만 자식들에게서도 별 희망이 없으니 술이나 마시자고 한탄했던 사람. 집 앞에 버드나무 다섯 그루를 심어 놓고 스스로 五柳先生이라 자칭하며, 건실했던 증조부와는 달리 절제를 모르고 술을 좋아하여 누구 집이건 술이 있다는 소문을 들으면 그냥 찾아가서 술이 떨어진 뒤에야 돌아온 사람. 이런 그의 인생에서 도대체 무엇이 그를 가장 인생다운 인생을 산 사람이라는 흠모를 받게 하는 것일까?

도연명보다 선배로 晉나라 때 孫登이라는 隱士가 있었다. 그는 字가 公和로 유명한 竹林七賢 가운데 한 사람인 嵆康과 친하였다. 처음 혜강과 만나서는 상대도 하지 않다가 혜강이 휘파람을 멋지게 불자, 다시 한번 불어보게 하고는 온 골짜기를 울리는 멋진 휘파람을 불렀다는 사람이다. 이 손등이 거문고의 줄이 너무 많다고 여겨 줄이 하나인 一弦琴을 연주하였다. 도연명은 그 일화를 듣고는 줄이 하나도 없는 無弦琴 하나를 걸어만 놓고, 반드시 연주를 해야만 거문고의 흥취를 즐길 수 있는 것은 아니라 하였다. 이것이 이른바 ‘淵明無弦琴’의 고사인데, 음악을 연주할 줄 모르고 더욱이 거문고의 문외한인 나는 이것이 어떤 경지인지 잘 모르겠다.

 도연명과 같은 시대에 慧遠이라는 승려가 있었다. 그는 당시 명망이 높아서 그가 결성한 白蓮社에는 당시 王公들이 가입하려 해도 쉽게 들어주지 않았는데, 친하게 사귀던 도연명은 가입의 요청을 받고도 거절했다고 한다. 특히 그는 廬山 東林寺에 거주하면서 누가 와도 그 절 앞에 있는 虎溪를 벗어나 전송하지 않는 것을 불문율처럼 지키고 있었다. 그것은 혜원이 호계를 벗어나면 반드시 호랑이가 울기 때문이었으니, 이 때문에 호계라는 이름이 생긴 것이다. 그런데 어느 날 도연명과 도사인 陸修靜과 함께 대화를 나누며 전송하다가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호계를 건넜고, 호랑이가 우는 소리를 듣고야  그 시내를 건넌 줄 알게 되어 세 사람이 함께 破顔大笑하였다. 이 상황을 그린 것이 바로 후세에 유명한 동양화의 소재 가운데 하나인 虎溪三笑圖이니, 그것은 곧 동양에서 濡佛道 三敎의 交涉과 會通의 상징으로 이해되는 것이다. 여기에서 도연명은 儒者의 자긍심을 잃지 않으면서도 다른 종교와 사상에 대해 너그러운 인간상을 보여준다.    

                    

 2. 그러나 이것 만일까? 나는 그의 삶을 이해하는 관건은 그의 삶의 바탕에 있었던 세계관에서 비롯된 것이 아닐까 생각한다. 그러나 그는 철학이나 사상에 대한 저술을 남긴 학자가 아니다. 그럼에도 나는 그가 동양적 사상과 정신의 핵심적인 세계관을 가진 사람임을 확신한다. 그리고 그 내용은 그의 雜詩라는 시 한 수에 담겨있다고 본다.

열 구 다섯 연으로 된 이 五言 古詩는 이렇게 시작한다.


結廬在人境 

사람들 사는 마을에 초가집을 지어도

而無車馬喧

수레와 말의 시끄러운 소리는 들리지 않는다   

그는 후세 유학자들에게 ‘陶處士’로 불릴 정도로 유명한 隱士이다. 그리고 은사들의 고결한 삶은 자연 현실의 삶과는 거리가 있어야 한다. 전설적인 은사인 巢父 許由의 箕山 潁水와 같은 深山 幽谷이라야 역시 은사에게 걸맞는 은거지인 것이다. 그런데 도연명은 태연히 사람들 사는 世俗의 마을에 집을 짓고 세속 사람들과 함께 어울려 살아간다. 물론 人境의 境이란 글자에는 境地라는 의미 이외에 境界 邊境과 같이 변두리의 의미가 있으니, 도연명이 사는 인경은 단순한 세속이 아닌 세속의 변두리쯤이지만, 그래도 여전히 세속은 세속인 것이다. ‘ 꽃이 지기 전의 봄이 진짜 봄다운 봄이요, 산이 깊어야 절이 절다운 절이라.(花落以前春 山深然後寺) ’ 하는데, 그는 세속에서 살면서 어떻게 은사인 것일까?

 그는 세속의 혼탁함을 피해 더욱 더 깊은 산 속으로 은거하는 과거의 은사들을 흉내내지 않았다. 그냥 그가 살아온 세속의 변두리 자리에서 그대로 살아갈 뿐이다. 그리고 이 도연명의 은거하는 방식으로부터 ‘ 작은 은사는 산중에 은거하고, 큰 은사는 저자에 은거한다.(小隱隱於山 大隱隱於市) ’는 은거의 逆說이 형성되었다. 조선 명종 때 神僧으로 알려진 震黙 一玉禪師는 장날마다 시장에 가서 자리를 펴놓고 종일 참선을 하다가 장이 파하면 자리를 걷고서 ‘오늘 장사 잘했다.’ 하였다던가.

 그러나 도연명이 세속에 살면서도 은사일 수 있는 것은 역시 다음 구절 때문이다. 세속에 살아도 세속과는 달리 수레와 말의 시끄러운 소리가 들리지 않는 삶을 살기에 은사인 것이다. 여기에서 세속의 변두리는 도리어 은사의 훌륭한 삶의 터전으로 되살아나는 것이다. 逆接을 뜻하는 而를 써서 부귀를 상징하는 수레와 말의 시끄러운 분쟁을 잊고 사는 모습을 보여주며, 이 때 그가 사는 마을의 조촐한 초가집은 가장 훌륭한 은사의 거처임을 보여주고 있다. 실로 세속이 세속인 것은 그 장소 때문이 아니라, 그 속의 삶이 富貴와 名利를 추구하기 때문인 것이다.

그러므로 아무리 깊은 산에 은거했어도 마음이 세속을 향해 달려가면 그것은 도리어 영악스러운 속인일 뿐이 아니겠는가? 더욱이 그 부귀와 명리란 세속적인 삶을 사는 사람들 대부분이 치열하게 바라는 것이니, 당연히 그 속에는 아귀다툼과 같은 시끄러운 시비와 분쟁이 사라지지 않는 것이다.  조선조의 유명한 處士인 花潭 徐敬德 선생이 ‘富貴는 분쟁거리라 손을 대기 어렵다.(富貴有爭難下手)’는 말은 그 세속의 본질에 대한 통렬한 성찰을 보여준다.

세속에 살면 세속의 삶의 모습을 보여주던지, 은사의 삶을 살 것이면 깊은 산중에 은거하던지 해야한다는 관점에서 보면, 세속의 변경에 살면서 세속적 추구를 포기한 도연명의 방식은 이해하기 어려운 것인지도 모르겠다. 그래서 누군가가 ‘어떻게 세속에 살면서도 세속의 삶에 초연할 수 있는지’를 물어온다면, 도연명은 이렇게 대답을 준비해 놓고 있다.

 

問君何能爾

그대에게 묻노니 어떻게 그럴 수 있는가        心遠地自偏

마음이 머니 사는 곳은 저절로 한갓지네       

인간의 삶이 그의 삶의 조건으로서 환경에 영향을 받는다는 것은 아주 오래된 진리이며, 대부분의 사람들의 삶에 적용되는 원리이다. 荀子가 ‘제멋대로 자라는 쑥도 삼대 밭에서 자라면 부축해주지 않아도 저절로 곧게 자란다.(蓬生麻中 不扶而自直)’이라 한 것은 그 대표적인 말이다. 이런 관점에서 보면 세속의 환경은 역시 인간을 세속적인 것으로 만드는 것이요, 은사가 되려면 역시 적절한 은거지가 있어야하는 것이다.

 그러면 세속에 살면서도 세속의 환경에 구애받지 않고 심산이란 환경을 갖추지 않고도 은사처럼 살 수 있는 도연명의 삶은 어떻게 이해해야 하는가? 그것은 역시 인간의 삶이 수많은 환경과 조건에 의해 규정되는 것이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삶에는 그 자신의 능동적인 선택의 여지도 열려있다는 것에 대한 단호한 믿음과 자신이 그런 삶의 주체이고 주인이라는 선언이 아닐까?

 그런 측면에서 우선 적어도 그에게는 부귀와 명리를 추구하는 삶을 사느냐 아니면 그것을 포기한 삶을 사느냐에 대한 선택은 반드시 환경에 의해 결정되는 것이 아니었던 것이다. 아니 그것은 도연명 이전에 이미 공자에게서 분명하게 확인되었던 것이다. ‘부귀가 추구할 만한 가치가 있는 것이라면, 내 비록 채찍을 잡고 수레를 모는 일이라도 내가 역시 하겠지만, 추구할 가치가 없는 것이기에 나는 내가 좋아하는 바를 하겠다.(富而可求也 雖執鞭之士 吾亦爲之 如不可求 從吾所好 : 論語 述而)’

 현실적인 부귀를 포기하는 은사로서의 삶의 선택이 그의 삶의 조건과 환경이 강요한 것이 아니라 그의 주체적인 것이라면, 그런 은사로서의 삶은 당연히 사는 곳이 심산이냐 아니면 사람들이 사는 세속의 마을이냐에 따라 규정되는 것이 아니라, 그 삶의 주인인 자신의 선택에 의해 결정되는 것이다. 그러므로 관건은 마음이요, 그 마음이 세속의 부귀에 대한 관심과 멀리 떨어진 것이 어디에 살건 그가 사는 곳을 한갓지게 만드는 것이다. 

물론 부귀를 추구하는 삶을 선택하건 그것을 포기하는 삶을 선택하건, 그 은거지로 심산을 선택하건 세속의 마을을 선택하건, 그 선택 자체는 적어도 인간 주체의 자유이다. 그것은 도연명이 선택한 부귀를 포기하고 세속의 마을에 사는 삶과 마찬가지로, 부귀를 포기하고 심산에 은거하는 삶이나, 부귀를 추구하며 심산에 몸만 은거하는 삶이나, 부귀를 추구하며 세속에 사는 삶이 모두 인간에게 자유로운 선택으로 열려있음을 의미한다.

 그렇다면 명백하게 이런 삶의 모습들은 외형적으로 서로 다르지만, 도연명이 선택한 삶의 모습이 다른 선택에 의한 삶들과 다른 의미를 갖는 것일까? 아니다. 그것은 자기선택이라는 점에서 본질적으로 같은 것이요, 그 차이는 오히려 이런 삶들을 선택한 인간 주체 자신에 의해 결정된 것이다. 도연명이 선택한 삶의 모습은 결국 그가 그의 인생의 주인임을 가장 분명하게 확인하는 삶의 한 가지 방식으로 선택된 것일 뿐이다.

 그러므로 후세의 수많은 선비들이 그의 삶을 진정으로 부러워하고 흠모하는 것은, 단순히 속세의 명리를 떠나 고고하게 자연과 벗하는 그의 삶의 방식 자체 때문만이 아니다 그것은 우선 그러한 삶의 방식을 그가 주체적으로 선택함으로서 자신의 삶의 주인이 되었다는 점 때문인 것이다.

 

 3. 나는 현실의 세속 속에서 단순히 개인의 부귀와 명리를 위해서가 아니라, 사회적이고 역사적인 정의와 진리를 위해 헌신하는 삶의 방식을 택한 많은 聖賢들을 진심으로 존경하며 배우고 싶다. 그리고 이런 삶의 방식이 얼마나 어려운 짐을 짊어지는 것인가를 어렴풋하게 짐작하기에, 이런 고결한 삶의 길을 가는 사람들의 선택은 당연히 주체적이 아닐 수 없다고  생각한다. 그것은 적어도 내가 본 그들은 그 어려워 보이는 길을 즐겁게 갔기 때문이다.

 각 시대에 걸쳐 진정한 선비들이 언제나 모범으로 삼아 배우고 실천하고자 했던 이런 삶의 모습과 비교하면 도연명의 삶은 외형적으로 분명히 다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이들 사이에는 각자의 삶의 방식을 주체적으로 선택했다는 점과 그 삶을 참으로 즐겁게 살아갔다는 보다 근원적인 공통점이 있음을 확인할 수 있다.

 깊은 산 속의 난초가 향기를 풍기는 것은 세상을 위해서이기 이전에 그 스스로의 생명에 충실한 삶 자체이듯이, 정의와 진리를 실천하는 고결한 삶과 현실적 명리를 떠나 자연을 벗삼는 도연명의 삶은 모두가 ‘무엇을 위한 삶’이 아닌 ‘스스로의 생명에 충실한 삶’이란 점에서 본질적으로 같은 것이 아닐까? 그리고 바로 여기에서 진정한 의미에서의 주체적인 삶, 즉 대상을 객체화하는 대신에 대상과 만남의 통로가 항상 열려있고 나아가 대상과 하나된 확대된 주체성으로 主客의 경계가 사라진 경지가 체득되는 것이다.


採菊東籬下 동쪽 울타리 아래 국화를 꺾다가

悠然見南山 조용히 고개 들어 남산을 본다


이 구절이 바로 이 시 전체를 지탱하는 핵심이다. 그 수많은 漢詩의 모든 구절을 합친 무게와 비교해도 오히려 이 한 구절이 더 무거운 의미를 지녔다고 한다면 내가 寡聞한 탓일까? 국화는 도연명이 가장 좋아한 꽃이다. 四君子 가운데 늦가을의 매서운 서릿발에도 의연하게 홀로 절개를 지키는 敖霜孤節은 도연명이 국화를 통해서 배우고자 했던 기상일까? 분명한 것은 도연명이 국화를 擬人化하여 인간적인 의미부여를 했건 스스로를 自然化하여 국화와 같은 地平을 열었건 간에, 그들 사이에 주객으로 대립된 手段化 事物化의 위험은 사라지고 참다운 만남의 통로가 열렸다는 점이다.  

 시인 김춘수는 그의 ‘꽃’에서 서로에게 오직 수단으로서의 가치만을 찾고자하는 현실의 관계맺음에 절망하여, ‘향기와 소리와 빛깔에 걸 맞는 이름을 붙여달라’고 절규하였지만, 인간 도연명에게 국화는 단순히 꽃이라는 존재적 의미 이상의 인격적 의미를 갖는 것이었고, 동시에 자연인 국화에게 도연명은 스스로를 수단화하려는 소유적 인간이 아닌 같은 자연의 일부였던 것이다. 그리고 그 인격의 지평인 동시에 자연의 지평에서 도연명은 국화에 손을 내밀어 만남을 시도하였던 것이다.

 그러나 바로 그 순간에 새로운 세계에 대한 각성이 섬광처럼 찾아온 것이다. 그것은 문득 찾아온 것일까? ‘悠然’이란 일반적으로 오히려 悠久한, 또는 느린 시간을 표현하는 것이지만, 이 섬광처럼 문득 찾아온 각성의 순간은 마치 永遠한 시간이 멈추어선 것 같음을 표현하고 있는 것이 아닐까? 이 영원처럼 느껴지는 순간이 지난 뒤에 도연명은 조용히 고개를 들어 남산을 바라본다. 아니 남산이 언제나처럼 도연명을 바라본다.

 스스로에게 물어 보라. 도연명이 남산을 바라보는 것인가? 남산이 도연명을 바라보는 것인가? 도연명이 주체이고 남산이 객체인가? 남산이 주체이고 도연명이 객체인가? 서로를 수단화하는 관계맺음은 말할 것도 없지만, 인격의 지평이나 자연의 지평을 열어 이루어지는 만남조차도 결국은 너와 나, 주체와 객체를 가르는 전제에서 출발한 것은 아닌가? 세계가 과연 이렇게 갈라질 수 있는 것인가? 주체와 객체가, 남산과 도연명이 갈라지지 않은 하나의 세계가 세계의 진상이 아닐까? 이런 세계에 대한 각성이 섬광처럼 도연명에게 찾아온 것이다.

 

 4. 이 뒤의 구절은 가름이 사라진 세계가 보여주는 파라다이스. 그것은 젖과 꿀이 흐르는 풍요의 모습도 아니고, 호랑이와 토끼가 함께 어울리는 평화의 모습도 아니고, 仁義道德이 구현된 인륜사회의 이상도 아니다.

 山氣日夕佳          

 산 기운 맑아서 저녁 노을이 고우니

 飛鳥相與還           

나르는 새와 더불어 돌아오도다

 도시의 잿빛 노을은 그만두고라도, 얼마나 많은 저녁 노을들이 우리의 무관심 속에서 그냥 스러져간 것일까? 얼마나 많은 산뜻한 새벽이 그냥 흘러가 버린 것일까? 구름에 비낀 달과 심산에 홀로 피어나고 져간 이름 없는 풀꽃들과 하늘보다 더 푸른 가을의 강 물결들이 우리의 무심 속에 죽어간 것일까?

 너와 나의 가름이 본래 없는 하나의 세계에서 그 아름다운 노을과 새벽과 달과 풀꽃들과 강 물결이 바로 우리인 것이니, 이 세상의 어떤 풍요가 이만큼 풍요로울 수 있으며, 이 세상의 어떤 평화가 이만큼 평화로울 수 있겠는가? 그 속에서 오래 사실수록 고마우신 부모님과 겉모습은 이미 시들었어도 정든 아내와 재주는 없어도 사랑스러운 자식들과 함께 살아가니, 구태여 인의도덕을 다시 들먹일 필요가 있는가?

 세상을 가르고 또 갈라가며 혼자서 높은 왕관을 뽐내는 어리석음도 멈추고, 모두 빼앗지 않고는 만족할 줄 모르는 탐욕도 잠재우고, 이 세상의 부귀를 저 세상까지 이어가려는 악착도 부리지 말자. 오히려 이런 것들은 맑은 산 기운과 아름다운 저녁 노을로 온통 가득 찬 하나이며 전체이며 바로 우리인 이 세계가 진정한 파라다이스임을 눈멀게 하는 것이 아닌가?

 타고르는 재물에 대한 끊임없는 욕심이 결국은 자신을 보물 창고 속의 죄수로 만들고, 세상을 노예로 만드는 권력을 탐함이 결국은 스스로를 묶는 쇠사슬이 될 것이라고 풍자하였지만, 그것은 부귀와 권력이 우리에게 자유를 줄 것이라는 착각을 경고한 것. 도연명은 하나이며 전체이며 바로 우리인 이 세계에 대한 각성이 우리에게 진정한 자유를 준다고 하였다. 나르는 새(飛鳥)는 인간이 오랫동안 꿈꾸어 온 바로 그 자유의 상징이다.

 산 기운 맑고 저녁 노을 아름다운 이 세계에서 무엇에도 걸리지 않는 창공을 나르는 새처럼 자유로운 삶의 모습은 분명히 도연명이 꿈꾸는 이상, 아니 그것은 이미 살아가는 현실 그 자체이다. 그러나 더욱 중요한 것은 그 다음 구절에 이어지는 ‘相與’ 즉 ‘더불어’의 세계이다. 시의 내용은 나르는 새와 ‘더불어’이니, 이것은 도연명이 새처럼 자유롭기를 꿈꾼 것으로 볼 수도 있겠지만, 앞에서 말했듯이 그것은 도연명에게 더 이상 꿈이 아니다.

 하필 새 만이겠는가? 하나이며 전체이며 우리인 이 세계에서 모든 것들은 서로 더불어 함께 하지 않는 것이 없는 것이다. 中庸에서 ‘만물이 함께 길러지면서도 서로 해를 끼치지 않고, 도가 함께 행해지면서도 서로 어긋나지 않는다.(萬物竝育而不相害 道竝行而不相悖)’라 하였지만, 도연명의 이 ‘더불어’의 세계에서 서로 해치고 어긋남을 구태여 말할 것이 있는가? 朱子의 점잖은 표현을 빌리면, ‘천지와 더불어 함께 흘러가는 것(與天地同流)’이다.

 그 속에 돌아옴과 돌아감은 아무런 차이가 없는 것이다. 저녁이면 새들이 집을 찾아 돌아오듯이 자연스럽게 집으로 돌아온다. 그러나 그 자유롭게 하늘을 나르는 새들도 언젠가는 이 자연으로 다시 돌아가듯이, 이 인간의 모습으로 살아가는 도연명의 삶도 언젠가는 자연으로 돌아갈 것이다. 귀거래사의 표현을 빌리자면, ‘乘化歸盡’이니, 그것은 티끌먼지로 돌아감인지도 모른다. 그러면 또 어떠하랴? 결국 이 세계는 하나이며 전체이며 우리인 것을.

 새들이 새들의 몸을 받아서 새로서 즐겁고 자유롭게 살다가 더 큰 우리인 자연으로 돌아가듯이, 도연명은 인간의 몸을 받아서 인간으로 즐겁고 자유롭게 살다가 더 큰 우리인 자연으로 돌아가는 것이며, 事物들이 사물로서 태어나 사물들 속에서 사물들과 더불어 사물로서 살다가 사물로서 돌아가듯이, 이 세계의 사물의 하나인 우리 인간도 인간으로 태어나 인간 속에서 인간과 더불어 인간으로 살다가 사물로 돌아가는 것이다. 거기에 자유로운 내 삶의 기쁨과 행복이 그리고 ‘더불어’ 돌아오고 돌아감의 아름다움이 가득하니, 大丈夫가 아니라도 우리의 삶이 이만하면 족하지 않겠는가?

 바로 여기 이 삶과 이 세계에 있는 파라다이스를 버리고 어디에서 무엇을 찾아 헤매는 것인가?

 

 5. 군더더기

   此中有眞意

   이 가운데 삶의 참 뜻이 있으니,

   欲辨已忘言     

가르고자 해도 이미 말을 잊었도다

 말은 진실의 전체를 가르는 군더더기 도구. 그러므로 이 시도 그리고 이 시에 대한 나의 군더더기도 끝.


댓글(1)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해콩 2006-08-10 13:3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 한문 학습자를 위한 보충


한자에서 ‘보다’를 표현하는 글자는 見 視 看 觀 察 省 등과 함께 독특한 의미를 담고 있는 顧 望 眄 眺 眷 相 鑑 照 등 여러 글자가 쓰인다. 본다는 것은 인간이 이 세계와 만나는 가장 중요한 감각활동이며, 그 의사와 감정을 표현하고 전달하는 행동의 하나이다. 그 행위는 인간의 눈을 통해 이루어지기 때문에 대부분의 본다는 의미를 담은 한자는 당연히 눈을 그린 目字와 관계가 있다.
그런 의미에서 이 보다라는 의미를 표현한 가장 기본적인 한자는 見字이다. 그것은 눈과 사람을 결합한 글자로, 사람의 머리 부분에 눈만을 그려서 눈의 기능이 보는 것임을 표현한 글자이다. 다만 이 글자는 보는 대상을 글자 속에 담지 않고 오로지 인간의 본다는 행위를 주로 표현한 점에서 인간 중심적인 관점에서 만들어지고 쓰이는 글자이다. 그런데 현실에서 인간의 시선은 대부분 대상을 향해서 던져진다. 이처럼 인간의 시선과 대상을 함께 표현한 글자가 視이다. 인간의 시각은 본래 대상의 형태와 색깔을 파악하는 것인데, 그것은 빛을 전제로 가능한 것이고 당연히 이 빛 자체를 대상으로 하기도 한다. 이 글자에서 示는 하늘을 표현한 二(上의 古字)와 그 하늘에서 내려오는 해와 달과 별의 빛을 보여줌을 표현한 글자이다. 그러므로 존재가 그 자체를 빛을 통해서 또는 빛을 빌려서 보여주는 것을 사람은 그의 눈으로 보는 것을 그린 글자가 視인 것이다.
다만 대상이 그 자신을 드러내어 보여주는 것, 즉 빛과 형태와 색깔이 그 존재의 전부는 아니다. 물론 소리는 귀로 듣고, 냄새는 코로 맡으며, 맛은 혀로 보고, 촉감은 피부로 느끼지만, 그래도 그렇게 파악된 것이 그 대상의 전부는 아니다. 여기에서 視보다 좀더 치밀한 보기, 즉 자세히 살펴보기가 요구된다. 그것은 치밀한 보기가 곧 인간의 정확한 판단의 근거가 되어주기 때문이다. 觀 察 省 등이 이런 치밀한 살펴보기를 표현하는 글자이다.
보기가 자세히 살펴보기로 강화되어 가는 과정을 보여주는 대표적인 문장이 論語에 나오니, 그것은 공자가 인간을 판단하는 기준을 제시한 부분이다. ‘그 행동한 것을 보고[視], 그 행동을 한 근거인 가치관을 보고[觀], 그 행동이 자연스럽고 편안하게 이루어졌는가를 살피면[察], 그 사람이 어찌 자신을 숨길 수 있겠는가. 어찌 숨길 수 있으리오.(視其所以 觀其所由 察其所安 人焉瘦哉 人焉瘦哉 : 논어 爲政)’ 事物이나 事態에 대한 판단도 그렇지만 인간에 대한 판단은 매우 조심스러운 것이다. 그러면서도 인간은 이 세계와 인간에 대한 판단을 쉽게 멈출 수 없다. 그리고 바로 여기에서 인간은 자신의 판단의 미숙함과 오류의 가능성을 항상 열어놓는 도덕성을 갖추는 것과 함께 그 판단의 근거인 ‘보기’를 부단하게 학습하고 훈련하여야 한다. 앞에 열거한 觀 察 省은 바로 이런 의미를 담고있는 것이다.
이 가운데 視察 觀察 省察이란 표현에서 보이듯이 이 자세히 살펴보기를 대표하는 글자는 察字이다. 그러나 인간은 대상을 자세히 살피기 이전에 스스로를 돌아보는 반성력이 필요하고, 이것은 그 판단의 중요한 도덕적 근거가 된다. 자세히 살피기 위해 취하는 인간의 행동인 ‘눈을 작게 뜨는 것(少目)’을 그린 省字가 이 경우에 주로 쓰인다. ‘反省’ ‘省察’ ‘內省’ ‘吾日三省’ 등이 그 대표적인 용례이다.
看은 상당히 폭넓게 쓰이는 글자이다. 그것은 일반적인 보기를 표현하는 경우에도 쓰이지만, 看護의 예와 같이 돌본다는 의미로 쓰이기도 하고, 看破와 같이 각성이나 깨침의 의미를 표현하기도 한다. 특히 동양에서 ‘보기’를 통해 추구하는 것이 단순히 지적인 축적을 넘어서서 인간 주체 속에 觀을 형성하는 것이라면, 이 때에 각성이나 깨침은 바로 그 관을 형성하는 관건이 된다.
간자와 함께 ‘돌봄’, 또는 ‘돌아봄’을 표현하는 한자에는 顧와 眷이 있다. 顧는 머리를 돌려 돌아보는 것을 표현하는 글자인데, 인간이 머리를 돌려 돌아봄에는 서로 상반된 두 종류의 경우가 있다. 하나는 양심에 꺼리는 행동을 하거나 할 경우, 또는 주위를 살피면서 판단을 내리지 못해 머뭇거리는 경우이다. 범죄자가 자주 뒤를 돌아보는 것이나, 판단이 서지 않아 左顧右眄하는 것이 이 경우이다. 이 左顧右眄에서 眄은 顧와 달리 머리를 돌리지 않고 눈만 옆으로 돌려서 보는 것, 즉 斜視를 표현한 글자이다.
돌아봄의 또 다른 종류는 사랑과 관심의 행동을 표현한 경우이다. 그것은 어린 자식을 두고 그 곁을 떠나야하는 부모가 보여주는 행동이다. 돌아보고 또 돌아보아도 안심이 되지 않아 눈을 떼지 못하는 돌아봄을 표현한 글자가 顧이다. 이처럼 사랑으로 뒤를 돌아보고 돌보아주는 의미를 담고있는 글자는 顧字 이외에 많이 쓰이지는 않으나 眷字가 있다.
이 이외에 먼 곳을 바라볼 때 쓰는 眺字나 望字가 있는데, 특히 보름달을 그린 望字는 보는 사람의 기대와 바램을 담은 의미로 쓰인다. 所望 希望 名望 德望 등의 용례가 그것이다. 위에서 아래를 내려다보는 경우에는 드물지만 鳥瞰의 경우와 같이 瞰字가 쓰인다. 빛을 비추어 볼 때는 照字를 쓰고, 거울에 비추어 볼 때는 鑑字를 쓴다.
相字는 일반적으로는 ‘서로’라는 의미로 쓰이지만, 자연물의 대표인 나무와 인간의 눈이 만난 글자로서 대상의 모습을 표현하는 의미로 쓰이기도 하고 동시에 그 대상의 모습을 보는 것을 표현하기도 한다. 오랜 인류의 역사에서 인간에게 가장 유용한 존재였던 나무에 대해, 그것이 목재로 또는 땔감으로 적당한가를 살피는 것을 표현한 글자인데, 이 때문에 그 사람의 됨됨이나 모습을 살펴보는 觀相으로 확대되어 사용하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