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연명의 雜詩 한 수
권정안 / 소장․공주대 한문교육과 교수
1. 나는 개인적으로 孔子를 존경하고 그의 삶을 배우고자 하는 사람이지만, 가장 좋아하는 사람을 꼽으라고 하면 역시 도연명을 들겠다. 그는 물론 「歸去來辭」와 같은 명문을 지은 뛰어난 문장가이며 「四時」와 같은 명시를 남긴 시인이지만, 내가 그를 좋아함은 이런 문장가나 시인으로서보다는 그냥 인생을 가장 인생답게 살았던 사람으로서이다.
중국의 蘇東坡와 우리나라의 退溪를 위시하여 수많은 선비들이 그의 詩文을 좋아하여 배우고 그의 인생을 흠모했던 것은 아마 이 점 때문이 아니었을까?
도연명의 이름은 潛. 연명은 字이다. 후세에 그를 높여 靖節先生이라 불렀다. 그의 증조부는 陶侃이란 사람인데, 晉의 大將軍으로 유명한 인물이다. 도간은 아침이면 옹기 백 개를 집 밖에 내놓았다가 저녁이면 다시 끌어들이는 일을 반복하였다. 사람들이 그 이유를 묻자, 한 나라의 장수가 된 사람은 평화시라 하더라도 전쟁이 날 때를 대비하여 체력을 길러두어야 하기 때문이라고 하였다는 착실한 사람이었다. 또 술을 몹시 좋아하였지만, 일정한 양 이상은 절대로 마시지 않았다. 그것은 소년시절 술 때문에 실수를 하고, 節酒를 하겠다고 부모님과 한 약속을 평생 지키기 위해서였다.
벼슬은 만년에 著作郞이란 말직에 뽑힌 일이 있다지만 彭澤令 석 달을 한 뒤에 감독관이 온다고 하자 ‘쌀 다섯 말의 봉급 때문에 허리를 굽힐 수가 없다’고 한탄하면서 「歸去來辭」를 노래하며 그만둔 것이 거의 전부이고, 다섯 아들을 두었지만 자식들에게서도 별 희망이 없으니 술이나 마시자고 한탄했던 사람. 집 앞에 버드나무 다섯 그루를 심어 놓고 스스로 五柳先生이라 자칭하며, 건실했던 증조부와는 달리 절제를 모르고 술을 좋아하여 누구 집이건 술이 있다는 소문을 들으면 그냥 찾아가서 술이 떨어진 뒤에야 돌아온 사람. 이런 그의 인생에서 도대체 무엇이 그를 가장 인생다운 인생을 산 사람이라는 흠모를 받게 하는 것일까?
도연명보다 선배로 晉나라 때 孫登이라는 隱士가 있었다. 그는 字가 公和로 유명한 竹林七賢 가운데 한 사람인 嵆康과 친하였다. 처음 혜강과 만나서는 상대도 하지 않다가 혜강이 휘파람을 멋지게 불자, 다시 한번 불어보게 하고는 온 골짜기를 울리는 멋진 휘파람을 불렀다는 사람이다. 이 손등이 거문고의 줄이 너무 많다고 여겨 줄이 하나인 一弦琴을 연주하였다. 도연명은 그 일화를 듣고는 줄이 하나도 없는 無弦琴 하나를 걸어만 놓고, 반드시 연주를 해야만 거문고의 흥취를 즐길 수 있는 것은 아니라 하였다. 이것이 이른바 ‘淵明無弦琴’의 고사인데, 음악을 연주할 줄 모르고 더욱이 거문고의 문외한인 나는 이것이 어떤 경지인지 잘 모르겠다.
도연명과 같은 시대에 慧遠이라는 승려가 있었다. 그는 당시 명망이 높아서 그가 결성한 白蓮社에는 당시 王公들이 가입하려 해도 쉽게 들어주지 않았는데, 친하게 사귀던 도연명은 가입의 요청을 받고도 거절했다고 한다. 특히 그는 廬山 東林寺에 거주하면서 누가 와도 그 절 앞에 있는 虎溪를 벗어나 전송하지 않는 것을 불문율처럼 지키고 있었다. 그것은 혜원이 호계를 벗어나면 반드시 호랑이가 울기 때문이었으니, 이 때문에 호계라는 이름이 생긴 것이다. 그런데 어느 날 도연명과 도사인 陸修靜과 함께 대화를 나누며 전송하다가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호계를 건넜고, 호랑이가 우는 소리를 듣고야 그 시내를 건넌 줄 알게 되어 세 사람이 함께 破顔大笑하였다. 이 상황을 그린 것이 바로 후세에 유명한 동양화의 소재 가운데 하나인 虎溪三笑圖이니, 그것은 곧 동양에서 濡佛道 三敎의 交涉과 會通의 상징으로 이해되는 것이다. 여기에서 도연명은 儒者의 자긍심을 잃지 않으면서도 다른 종교와 사상에 대해 너그러운 인간상을 보여준다.
2. 그러나 이것 만일까? 나는 그의 삶을 이해하는 관건은 그의 삶의 바탕에 있었던 세계관에서 비롯된 것이 아닐까 생각한다. 그러나 그는 철학이나 사상에 대한 저술을 남긴 학자가 아니다. 그럼에도 나는 그가 동양적 사상과 정신의 핵심적인 세계관을 가진 사람임을 확신한다. 그리고 그 내용은 그의 雜詩라는 시 한 수에 담겨있다고 본다.
열 구 다섯 연으로 된 이 五言 古詩는 이렇게 시작한다.
結廬在人境
사람들 사는 마을에 초가집을 지어도
而無車馬喧
수레와 말의 시끄러운 소리는 들리지 않는다
그는 후세 유학자들에게 ‘陶處士’로 불릴 정도로 유명한 隱士이다. 그리고 은사들의 고결한 삶은 자연 현실의 삶과는 거리가 있어야 한다. 전설적인 은사인 巢父 許由의 箕山 潁水와 같은 深山 幽谷이라야 역시 은사에게 걸맞는 은거지인 것이다. 그런데 도연명은 태연히 사람들 사는 世俗의 마을에 집을 짓고 세속 사람들과 함께 어울려 살아간다. 물론 人境의 境이란 글자에는 境地라는 의미 이외에 境界 邊境과 같이 변두리의 의미가 있으니, 도연명이 사는 인경은 단순한 세속이 아닌 세속의 변두리쯤이지만, 그래도 여전히 세속은 세속인 것이다. ‘ 꽃이 지기 전의 봄이 진짜 봄다운 봄이요, 산이 깊어야 절이 절다운 절이라.(花落以前春 山深然後寺) ’ 하는데, 그는 세속에서 살면서 어떻게 은사인 것일까?
그는 세속의 혼탁함을 피해 더욱 더 깊은 산 속으로 은거하는 과거의 은사들을 흉내내지 않았다. 그냥 그가 살아온 세속의 변두리 자리에서 그대로 살아갈 뿐이다. 그리고 이 도연명의 은거하는 방식으로부터 ‘ 작은 은사는 산중에 은거하고, 큰 은사는 저자에 은거한다.(小隱隱於山 大隱隱於市) ’는 은거의 逆說이 형성되었다. 조선 명종 때 神僧으로 알려진 震黙 一玉禪師는 장날마다 시장에 가서 자리를 펴놓고 종일 참선을 하다가 장이 파하면 자리를 걷고서 ‘오늘 장사 잘했다.’ 하였다던가.
그러나 도연명이 세속에 살면서도 은사일 수 있는 것은 역시 다음 구절 때문이다. 세속에 살아도 세속과는 달리 수레와 말의 시끄러운 소리가 들리지 않는 삶을 살기에 은사인 것이다. 여기에서 세속의 변두리는 도리어 은사의 훌륭한 삶의 터전으로 되살아나는 것이다. 逆接을 뜻하는 而를 써서 부귀를 상징하는 수레와 말의 시끄러운 분쟁을 잊고 사는 모습을 보여주며, 이 때 그가 사는 마을의 조촐한 초가집은 가장 훌륭한 은사의 거처임을 보여주고 있다. 실로 세속이 세속인 것은 그 장소 때문이 아니라, 그 속의 삶이 富貴와 名利를 추구하기 때문인 것이다.
그러므로 아무리 깊은 산에 은거했어도 마음이 세속을 향해 달려가면 그것은 도리어 영악스러운 속인일 뿐이 아니겠는가? 더욱이 그 부귀와 명리란 세속적인 삶을 사는 사람들 대부분이 치열하게 바라는 것이니, 당연히 그 속에는 아귀다툼과 같은 시끄러운 시비와 분쟁이 사라지지 않는 것이다. 조선조의 유명한 處士인 花潭 徐敬德 선생이 ‘富貴는 분쟁거리라 손을 대기 어렵다.(富貴有爭難下手)’는 말은 그 세속의 본질에 대한 통렬한 성찰을 보여준다.
세속에 살면 세속의 삶의 모습을 보여주던지, 은사의 삶을 살 것이면 깊은 산중에 은거하던지 해야한다는 관점에서 보면, 세속의 변경에 살면서 세속적 추구를 포기한 도연명의 방식은 이해하기 어려운 것인지도 모르겠다. 그래서 누군가가 ‘어떻게 세속에 살면서도 세속의 삶에 초연할 수 있는지’를 물어온다면, 도연명은 이렇게 대답을 준비해 놓고 있다.
問君何能爾
그대에게 묻노니 어떻게 그럴 수 있는가 心遠地自偏
마음이 머니 사는 곳은 저절로 한갓지네
인간의 삶이 그의 삶의 조건으로서 환경에 영향을 받는다는 것은 아주 오래된 진리이며, 대부분의 사람들의 삶에 적용되는 원리이다. 荀子가 ‘제멋대로 자라는 쑥도 삼대 밭에서 자라면 부축해주지 않아도 저절로 곧게 자란다.(蓬生麻中 不扶而自直)’이라 한 것은 그 대표적인 말이다. 이런 관점에서 보면 세속의 환경은 역시 인간을 세속적인 것으로 만드는 것이요, 은사가 되려면 역시 적절한 은거지가 있어야하는 것이다.
그러면 세속에 살면서도 세속의 환경에 구애받지 않고 심산이란 환경을 갖추지 않고도 은사처럼 살 수 있는 도연명의 삶은 어떻게 이해해야 하는가? 그것은 역시 인간의 삶이 수많은 환경과 조건에 의해 규정되는 것이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삶에는 그 자신의 능동적인 선택의 여지도 열려있다는 것에 대한 단호한 믿음과 자신이 그런 삶의 주체이고 주인이라는 선언이 아닐까?
그런 측면에서 우선 적어도 그에게는 부귀와 명리를 추구하는 삶을 사느냐 아니면 그것을 포기한 삶을 사느냐에 대한 선택은 반드시 환경에 의해 결정되는 것이 아니었던 것이다. 아니 그것은 도연명 이전에 이미 공자에게서 분명하게 확인되었던 것이다. ‘부귀가 추구할 만한 가치가 있는 것이라면, 내 비록 채찍을 잡고 수레를 모는 일이라도 내가 역시 하겠지만, 추구할 가치가 없는 것이기에 나는 내가 좋아하는 바를 하겠다.(富而可求也 雖執鞭之士 吾亦爲之 如不可求 從吾所好 : 論語 述而)’
현실적인 부귀를 포기하는 은사로서의 삶의 선택이 그의 삶의 조건과 환경이 강요한 것이 아니라 그의 주체적인 것이라면, 그런 은사로서의 삶은 당연히 사는 곳이 심산이냐 아니면 사람들이 사는 세속의 마을이냐에 따라 규정되는 것이 아니라, 그 삶의 주인인 자신의 선택에 의해 결정되는 것이다. 그러므로 관건은 마음이요, 그 마음이 세속의 부귀에 대한 관심과 멀리 떨어진 것이 어디에 살건 그가 사는 곳을 한갓지게 만드는 것이다.
물론 부귀를 추구하는 삶을 선택하건 그것을 포기하는 삶을 선택하건, 그 은거지로 심산을 선택하건 세속의 마을을 선택하건, 그 선택 자체는 적어도 인간 주체의 자유이다. 그것은 도연명이 선택한 부귀를 포기하고 세속의 마을에 사는 삶과 마찬가지로, 부귀를 포기하고 심산에 은거하는 삶이나, 부귀를 추구하며 심산에 몸만 은거하는 삶이나, 부귀를 추구하며 세속에 사는 삶이 모두 인간에게 자유로운 선택으로 열려있음을 의미한다.
그렇다면 명백하게 이런 삶의 모습들은 외형적으로 서로 다르지만, 도연명이 선택한 삶의 모습이 다른 선택에 의한 삶들과 다른 의미를 갖는 것일까? 아니다. 그것은 자기선택이라는 점에서 본질적으로 같은 것이요, 그 차이는 오히려 이런 삶들을 선택한 인간 주체 자신에 의해 결정된 것이다. 도연명이 선택한 삶의 모습은 결국 그가 그의 인생의 주인임을 가장 분명하게 확인하는 삶의 한 가지 방식으로 선택된 것일 뿐이다.
그러므로 후세의 수많은 선비들이 그의 삶을 진정으로 부러워하고 흠모하는 것은, 단순히 속세의 명리를 떠나 고고하게 자연과 벗하는 그의 삶의 방식 자체 때문만이 아니다 그것은 우선 그러한 삶의 방식을 그가 주체적으로 선택함으로서 자신의 삶의 주인이 되었다는 점 때문인 것이다.
3. 나는 현실의 세속 속에서 단순히 개인의 부귀와 명리를 위해서가 아니라, 사회적이고 역사적인 정의와 진리를 위해 헌신하는 삶의 방식을 택한 많은 聖賢들을 진심으로 존경하며 배우고 싶다. 그리고 이런 삶의 방식이 얼마나 어려운 짐을 짊어지는 것인가를 어렴풋하게 짐작하기에, 이런 고결한 삶의 길을 가는 사람들의 선택은 당연히 주체적이 아닐 수 없다고 생각한다. 그것은 적어도 내가 본 그들은 그 어려워 보이는 길을 즐겁게 갔기 때문이다.
각 시대에 걸쳐 진정한 선비들이 언제나 모범으로 삼아 배우고 실천하고자 했던 이런 삶의 모습과 비교하면 도연명의 삶은 외형적으로 분명히 다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이들 사이에는 각자의 삶의 방식을 주체적으로 선택했다는 점과 그 삶을 참으로 즐겁게 살아갔다는 보다 근원적인 공통점이 있음을 확인할 수 있다.
깊은 산 속의 난초가 향기를 풍기는 것은 세상을 위해서이기 이전에 그 스스로의 생명에 충실한 삶 자체이듯이, 정의와 진리를 실천하는 고결한 삶과 현실적 명리를 떠나 자연을 벗삼는 도연명의 삶은 모두가 ‘무엇을 위한 삶’이 아닌 ‘스스로의 생명에 충실한 삶’이란 점에서 본질적으로 같은 것이 아닐까? 그리고 바로 여기에서 진정한 의미에서의 주체적인 삶, 즉 대상을 객체화하는 대신에 대상과 만남의 통로가 항상 열려있고 나아가 대상과 하나된 확대된 주체성으로 主客의 경계가 사라진 경지가 체득되는 것이다.
採菊東籬下 동쪽 울타리 아래 국화를 꺾다가
悠然見南山 조용히 고개 들어 남산을 본다
이 구절이 바로 이 시 전체를 지탱하는 핵심이다. 그 수많은 漢詩의 모든 구절을 합친 무게와 비교해도 오히려 이 한 구절이 더 무거운 의미를 지녔다고 한다면 내가 寡聞한 탓일까? 국화는 도연명이 가장 좋아한 꽃이다. 四君子 가운데 늦가을의 매서운 서릿발에도 의연하게 홀로 절개를 지키는 敖霜孤節은 도연명이 국화를 통해서 배우고자 했던 기상일까? 분명한 것은 도연명이 국화를 擬人化하여 인간적인 의미부여를 했건 스스로를 自然化하여 국화와 같은 地平을 열었건 간에, 그들 사이에 주객으로 대립된 手段化 事物化의 위험은 사라지고 참다운 만남의 통로가 열렸다는 점이다.
시인 김춘수는 그의 ‘꽃’에서 서로에게 오직 수단으로서의 가치만을 찾고자하는 현실의 관계맺음에 절망하여, ‘향기와 소리와 빛깔에 걸 맞는 이름을 붙여달라’고 절규하였지만, 인간 도연명에게 국화는 단순히 꽃이라는 존재적 의미 이상의 인격적 의미를 갖는 것이었고, 동시에 자연인 국화에게 도연명은 스스로를 수단화하려는 소유적 인간이 아닌 같은 자연의 일부였던 것이다. 그리고 그 인격의 지평인 동시에 자연의 지평에서 도연명은 국화에 손을 내밀어 만남을 시도하였던 것이다.
그러나 바로 그 순간에 새로운 세계에 대한 각성이 섬광처럼 찾아온 것이다. 그것은 문득 찾아온 것일까? ‘悠然’이란 일반적으로 오히려 悠久한, 또는 느린 시간을 표현하는 것이지만, 이 섬광처럼 문득 찾아온 각성의 순간은 마치 永遠한 시간이 멈추어선 것 같음을 표현하고 있는 것이 아닐까? 이 영원처럼 느껴지는 순간이 지난 뒤에 도연명은 조용히 고개를 들어 남산을 바라본다. 아니 남산이 언제나처럼 도연명을 바라본다.
스스로에게 물어 보라. 도연명이 남산을 바라보는 것인가? 남산이 도연명을 바라보는 것인가? 도연명이 주체이고 남산이 객체인가? 남산이 주체이고 도연명이 객체인가? 서로를 수단화하는 관계맺음은 말할 것도 없지만, 인격의 지평이나 자연의 지평을 열어 이루어지는 만남조차도 결국은 너와 나, 주체와 객체를 가르는 전제에서 출발한 것은 아닌가? 세계가 과연 이렇게 갈라질 수 있는 것인가? 주체와 객체가, 남산과 도연명이 갈라지지 않은 하나의 세계가 세계의 진상이 아닐까? 이런 세계에 대한 각성이 섬광처럼 도연명에게 찾아온 것이다.
4. 이 뒤의 구절은 가름이 사라진 세계가 보여주는 파라다이스. 그것은 젖과 꿀이 흐르는 풍요의 모습도 아니고, 호랑이와 토끼가 함께 어울리는 평화의 모습도 아니고, 仁義道德이 구현된 인륜사회의 이상도 아니다.
山氣日夕佳
산 기운 맑아서 저녁 노을이 고우니
飛鳥相與還
나르는 새와 더불어 돌아오도다
도시의 잿빛 노을은 그만두고라도, 얼마나 많은 저녁 노을들이 우리의 무관심 속에서 그냥 스러져간 것일까? 얼마나 많은 산뜻한 새벽이 그냥 흘러가 버린 것일까? 구름에 비낀 달과 심산에 홀로 피어나고 져간 이름 없는 풀꽃들과 하늘보다 더 푸른 가을의 강 물결들이 우리의 무심 속에 죽어간 것일까?
너와 나의 가름이 본래 없는 하나의 세계에서 그 아름다운 노을과 새벽과 달과 풀꽃들과 강 물결이 바로 우리인 것이니, 이 세상의 어떤 풍요가 이만큼 풍요로울 수 있으며, 이 세상의 어떤 평화가 이만큼 평화로울 수 있겠는가? 그 속에서 오래 사실수록 고마우신 부모님과 겉모습은 이미 시들었어도 정든 아내와 재주는 없어도 사랑스러운 자식들과 함께 살아가니, 구태여 인의도덕을 다시 들먹일 필요가 있는가?
세상을 가르고 또 갈라가며 혼자서 높은 왕관을 뽐내는 어리석음도 멈추고, 모두 빼앗지 않고는 만족할 줄 모르는 탐욕도 잠재우고, 이 세상의 부귀를 저 세상까지 이어가려는 악착도 부리지 말자. 오히려 이런 것들은 맑은 산 기운과 아름다운 저녁 노을로 온통 가득 찬 하나이며 전체이며 바로 우리인 이 세계가 진정한 파라다이스임을 눈멀게 하는 것이 아닌가?
타고르는 재물에 대한 끊임없는 욕심이 결국은 자신을 보물 창고 속의 죄수로 만들고, 세상을 노예로 만드는 권력을 탐함이 결국은 스스로를 묶는 쇠사슬이 될 것이라고 풍자하였지만, 그것은 부귀와 권력이 우리에게 자유를 줄 것이라는 착각을 경고한 것. 도연명은 하나이며 전체이며 바로 우리인 이 세계에 대한 각성이 우리에게 진정한 자유를 준다고 하였다. 나르는 새(飛鳥)는 인간이 오랫동안 꿈꾸어 온 바로 그 자유의 상징이다.
산 기운 맑고 저녁 노을 아름다운 이 세계에서 무엇에도 걸리지 않는 창공을 나르는 새처럼 자유로운 삶의 모습은 분명히 도연명이 꿈꾸는 이상, 아니 그것은 이미 살아가는 현실 그 자체이다. 그러나 더욱 중요한 것은 그 다음 구절에 이어지는 ‘相與’ 즉 ‘더불어’의 세계이다. 시의 내용은 나르는 새와 ‘더불어’이니, 이것은 도연명이 새처럼 자유롭기를 꿈꾼 것으로 볼 수도 있겠지만, 앞에서 말했듯이 그것은 도연명에게 더 이상 꿈이 아니다.
하필 새 만이겠는가? 하나이며 전체이며 우리인 이 세계에서 모든 것들은 서로 더불어 함께 하지 않는 것이 없는 것이다. 中庸에서 ‘만물이 함께 길러지면서도 서로 해를 끼치지 않고, 도가 함께 행해지면서도 서로 어긋나지 않는다.(萬物竝育而不相害 道竝行而不相悖)’라 하였지만, 도연명의 이 ‘더불어’의 세계에서 서로 해치고 어긋남을 구태여 말할 것이 있는가? 朱子의 점잖은 표현을 빌리면, ‘천지와 더불어 함께 흘러가는 것(與天地同流)’이다.
그 속에 돌아옴과 돌아감은 아무런 차이가 없는 것이다. 저녁이면 새들이 집을 찾아 돌아오듯이 자연스럽게 집으로 돌아온다. 그러나 그 자유롭게 하늘을 나르는 새들도 언젠가는 이 자연으로 다시 돌아가듯이, 이 인간의 모습으로 살아가는 도연명의 삶도 언젠가는 자연으로 돌아갈 것이다. 귀거래사의 표현을 빌리자면, ‘乘化歸盡’이니, 그것은 티끌먼지로 돌아감인지도 모른다. 그러면 또 어떠하랴? 결국 이 세계는 하나이며 전체이며 우리인 것을.
새들이 새들의 몸을 받아서 새로서 즐겁고 자유롭게 살다가 더 큰 우리인 자연으로 돌아가듯이, 도연명은 인간의 몸을 받아서 인간으로 즐겁고 자유롭게 살다가 더 큰 우리인 자연으로 돌아가는 것이며, 事物들이 사물로서 태어나 사물들 속에서 사물들과 더불어 사물로서 살다가 사물로서 돌아가듯이, 이 세계의 사물의 하나인 우리 인간도 인간으로 태어나 인간 속에서 인간과 더불어 인간으로 살다가 사물로 돌아가는 것이다. 거기에 자유로운 내 삶의 기쁨과 행복이 그리고 ‘더불어’ 돌아오고 돌아감의 아름다움이 가득하니, 大丈夫가 아니라도 우리의 삶이 이만하면 족하지 않겠는가?
바로 여기 이 삶과 이 세계에 있는 파라다이스를 버리고 어디에서 무엇을 찾아 헤매는 것인가?
5. 군더더기
此中有眞意
이 가운데 삶의 참 뜻이 있으니,
欲辨已忘言
가르고자 해도 이미 말을 잊었도다
말은 진실의 전체를 가르는 군더더기 도구. 그러므로 이 시도 그리고 이 시에 대한 나의 군더더기도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