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루 두 세 시간씩 시험감독 하느라 바쁘시죠? 소중한 선생님의 시간을 뺏는 것 같아 죄송스러운 마음이 살짝 듭니다. 하지만 ‘오늘’ 이 이야기를 꼭 해야 할 것 같아서 이렇게 글을 드립니다.
예, 선생님. 오늘 제가 꼭 드리고 싶은 말씀은 ‘직원회의’에서의 교사의 발언권에 대한 것입니다. 물론 ‘민주적인 회의진행 과정’에 관한 것이기도 하지요. 저는 지금껏 ‘회의’란 한 사회의 구성원들이 어떤 사안에 대해 서로 다를 수 있는 의견을 조율하고 합리적인 의사결정을 해나가는, 누구에게나 열린 ‘소통의 場’이라고 생각해왔습니다. 구성원 모두에게 평등한 발언권이 전제되는 것은 말할 필요도 없겠지요.
그런데 저는 올해, 교사의 발언권을 빼앗는 ‘교직원회의’ 장면을 여러 번 목격했습니다. 선생님께서도 기억하시지요? 네. 세 번입니다. 발언하시던 선생님은 ‘시간이 없다’는 이유로 발언 중에 일방적 제지당하셨고, '교무회의는 사전에 교장의 ‘허락’을 받아야 발언할 수 있다', '교사는 교장의 지시와 명령을 받아야한다'는 제지 이유와 “교장 말에 자꾸 ‘말대꾸’해도 되는 겁니까?”, “지금 교장의 '지시'에 '불응'하는 겁니까?” 등의 폭언을 들었습니다(저는 폭언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그건 분명 원활한 회의진행을 위한 의사진행 발언은 아니었습니다.
그렇게 왈가왈부하는 시간만으로도 발언 중이던 선생님께서 충분히 말씀을 마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은 차치하더라도 저는 당시 교장선생님의 그 말씀들이 당황스러웠습니다.
․ 교무회의 때 발언을 하려면 교사는 사전에 교장의 허락을 받아야하나요?
․ (저는 아직 못 봤지만) 그런 규정이 있나요?
․ 교무회의는 이미 결정된 사항을 교사들이 일방적으로 ‘지시’, ‘전달’ 받기만하는 시간인가요?
․ 우리는 '우리들 교사와 아이들에 대한 사안'에 대해 늘 교장선생님이나 부장회의에서 결정 된 내용을 지시받거나 전달 받아야하는 수동적인 존재인가요?
정말... 그런가요? 그렇다면 '부족한 시간을 고려하고 회의 진행자를 배려하여 우리들의 의견을 최대한 자제하지만, 사안에 따라 교사 개인이 필요성을 느낀다면 누구든지, 언제든지 발언할 수 있다'는 지금까지의 제 생각은 교장선생님의 말씀처럼 수정되어야 하나요?
그래서 지난 9월 28일. 5교시에 여섯 분의 샘들이 (노ㅎㅈ, 윤ㅇㅈ, 정ㄱㅁ, 정ㅎㅊ, 최ㅈㄱ, 최ㅎㅇ) 교장선생님을 만났습니다. 그러나 그분들이 들은 이야기는 위의 이야기와 별반 다르지 않았다고 들었습니다. 교장선생님께서 새로운 제안을 하나 하셨는데 10월 10일, 이 문제에 대한 ‘난상토론’을 하자는 것이었죠. 10일이 시범학교 협의회가 잡혀있다고 11일(바로 오늘입니다)로 옮기자고 하셨지만 중간고사 기간에 전교직원이 남아서 토론을 진행한다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하지 않나요? 하여 날짜를 토요일 CA나 HR시간으로 옮기자는 제안을 했습니다만 교장선생님께서는 그냥 강행한다고 하셨고 며칠 전에는 ‘발언할 사람은 교무기획에게 신청하라‘는 글을 게시판에서 읽었습니다.
진행과정의 편의를 위한 것이라고 하지만 신청자에 한해서 발언하는 것이라면 그것이 과연 ‘난상토론’인가요? 저는 토론 중에 상대방의 발언을 듣고 갑자기 하고 싶은 이야기가 생각나는 경우가 많았는데 미리 신청하지 않는다면 그럴 때 입을 다물고 있어야 하나요? 사실 ‘난상토론’자체도 즉흥적으로 제안된 것이었고 이후에도 교사들의 의견을 묻는 과정 없이 그저 ‘통보’되었습니다. 그 날짜 역시 일방적으로 정해진 것이고 날짜가 변동된 후에도 그 이유나 진행방법 등에 대한 상세한 설명은 들은 적 없습니다. 발언할 사람은 ‘신청’하라는 게시판의 유인물 한 장이 전부였죠.
하여 애초에 문제를 제기했던 스무 명 남짓의 저희들은 오늘 난상토론을 거부하기로 했습니다. 저희 중 누구도 발언을 신청하지 않은 것은 이러한 이유입니다. 토론날짜, 방법을 정하는 과정에서부터 우리 교사들의 참여하여 의견을 개진할 수 있어야한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그것이 저희들이 문제를 제기한 바로 그 부분이었으니까요.
그리고 저희는 ‘교무회의’에 대한 교장선생님의 위와 같은 생각은 분명 우리 교사들의 생각과는 다르다는 사실을 당신께 알려드리기 위해 여러 선생님들의 서명을 받으려 합니다. ‘난상토론’에 신청자가 한 명도 없다는 이유로 교장선생님께서는 당신의 생각과 행동이 우리들의 동의를 얻은 것이라 생각하실 수 있고, 결국 교사들이 교무회의 때 발언을 하려면 사전에 교장선생님의 허락을 구해야 한다는 사실과 교장의 ‘지시’와 ‘전달’을 받는 것은 교사의 본분이라는 사실을 우리들 스스로 인정하는 결과가 될 것입니다. 교사들의 문제제기는 단순히 ‘말대꾸’나 ‘지시에 불응’하는 유치한 행위로 전락할 수도 있겠지요. ‘침묵= 동의’로 해석되는 상황은 우리 주위에서 너무나 자주 일어나지 않습니까?
선생님, ‘교무회의’는 ‘교직원들이 여러 가지 학교 업무에 관해 자유롭게 의견을 교환할 수 있는 회의’이어야하지 않겠습니까? 아이러니하게도 저는 이번 일로 회의에서의 개인의 발언권이 얼마나 소중한 것인지를 깨달았습니다. 마지막까지 보장받아야하는 것은 ‘내 생각을 자유롭게 말할 수 있는 권리’라는 것, 그것이 ‘모든 권리의 시작’이라는 사실도 함께 말입니다.
선생님, 저희와 함께하실 거지요?
2006. 10. 11. 새벽 두 시. ㅇㅇㅇ 삼가 드림.